킹덤(만화)/줄거리
1. 개요
킹덤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하단 줄거리의 연표는 '''실제 역사가 아닌 킹덤의 진행 상황에 따라 서술한 것'''임을 밝힌다.(괄호 안은 해당 권 및 화)
실제 역사서(《사기》)에서도 당시의 기록에는 각 나라마다 충돌이 많으며, 1년 정도의 일은 앞과 뒤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실제 역사와의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각 문단에서 '''굵은 글씨'''는 키워드라고 볼 수 있다.
2. 과거
기원전 262년: 진나라와 조나라의 전쟁 발발.
기원전 260년: 진나라 육대장군 백기가 조나라 포로 40만명을 산 채로 파묻어버리는 것으로 2년 동안 이어졌던 '''장평대전'''이 끝나다.[2]
기원전 259년: 조나라 도성 한단에서 진나라 왕족인 영정이 탄생했는데, 장평대전의 원한으로 인해 '''어머니와 함께 조나라 백성들에게 갖은 박해를 받으며 성장'''하다.
기원전 252년: '''전신(戰神)이라 불리던 진나라 소왕''' 사망. 여불위의 의뢰를 받은 '''상인 시카 일당에 의해 영정의 구출 작전이 시행되고, 관계자 전원의 목숨을 댓가로 영정은 살아남았다.'''(8권 75화~81화)
기원전 251년: 창문군과 함께 영정이 함양에 도착하다.
기원전 246년: '''영정이 진나라의 왕위에 오르다.'''
3. 기원전 245년(시황제 2년, 1~10권)
춘추전국시대 중원 서쪽의 진나라의 어느 시골에서 노비 신분인 신과 표가 대장군이 되기 위한 무예를 닦고 있었다. 그러던 중, 표는 진왕 영정과 닮은 외모로 인해 창문군을 통해 궁으로 불려갔다. 한 달 뒤, 표가 '''왕제 성교의 반란'''[3] 에 휘말려 사망하게 되고, 신은 표의 유지를 잇기 위해 영정의 암살을 막으려 뛰어든다. 영정과 그의 측근인 창문군과 벽, 그리고 무법지대였던 흑비촌의 소녀 하료초와 함께 신은 자객들과 추격군을 따돌리고, 승상 갈 씨와 손을 잡고 함양을 장악한 왕제 성교에 대항하기 위해 산계로 가서 '''산민족'''의 왕 양단화를 설득하게 된다. 산민족과 함께 함양으로 돌아온 영정과 신 일행은 수많은 자객 집단과의 악전고투 끝에 왕제와 갈 승상의 반란을 제압하는데 성공한다.(1권 ~ 5권)
이후 위나라의 형양을 차지하기 위한 군대 모집에 신은 지원하게 되고[4] , 경험이 많은 오장 택규을 중심으로 같은 마을 출신인 미평, 미도 형제, 수수께끼의 인물인 강외와 함께 오(伍)를 이루어 참전하게 된다. 진의 대장군 급의 인물 중 하나인 표공 장군 휘하 제4군에 배속되어 '''사감평원에서 전투'''에 참여하게 된 신은 위나라의 강력한 전차 군단과 대장군 오경의 지략에 고전하게 되지만, 자신의 기지와 신기에 가까운 강외의 검술을 조력 삼아 천인장 박호신과 함께 적장 궁원을 죽이고, 그가 지키던 요지를 함락시키는 대공을 세우게 된다. 이후 전장에 나타난 '''전(前) 육대장군 왕의'''[5] 에게서 전쟁에 대한 조언을 받고, 표공을 저격하려던 오경의 측근 주귀를 벤다. 이 전투의 결과로 단번에 백인장으로 승격되어, 마을의 자랑이 되었다.(5권 ~ 8권)
승상 여불위에 의한 영정 암살 계획이 발동되어 다수의 신료들이 수 많은 암살 조직들에 살해된 가운데 강외가 천 년 전부터 내려온 어둠의 정점인 '''치우'''로 밝혀진다. 영정의 암살을 막기 위해 다시 궁궐에서 싸우는 신이었지만, 강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다가 다른 암살 조직의 개입으로 힘을 합치게 된다. 암살 시도는 막았으나 압도적인 세력 차이로 인해서 여불위가 자백함에도 불구하고 농담이라며 받아 넘기고 방면하게 된다. 전력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영정은 과거 갈 씨 휘하에 있던 사 씨를 영입하고, 군대에서의 승진을 열망하게 된 신은 왕의 장군을 찾아가 휘하에 들기를 원했지만, 무국적 지대의 평정이라는 임무를 받고 소수민족의 치외법권 지대에 연 씨와 함께 버려지게 되고, 하료초는 강외의 추천으로 창평군의 군사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8권~10권)
4. 기원전 244년(시황제 3년, 11~16권)
2월, 진나라의 대장군 몽오가 20만 대군을 이끌고, 전국칠웅 중 약소국이던 한나라를 공격하는 틈을 타 진나라의 요충지 '''마양을 조나라가 방난을 총대장으로 삼아 12만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들어오게 된다. 이에 진나라는 작년 위와의 형양 전투 당시 징병해 싸웠던 농민들[6] 을 포함해서 전 지역의 장병 들을 동원해 10만 명을 모아서 왕의를 총대장으로 몽무를 부장으로 삼아서 수비군을 편성해 마양으로 파견한다. 4달 만에 무국적 지대를 평정한 신도 이 대열에 합류해 미평, 미도, 택규, 전유 등을 오장으로 하는 백인대의 장으로써 참전하게 되었고, 영정 암살 사건 이후 자취를 감췄던 강외도 원수(유련)가 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합류하게 된다. 출전에 앞서 왕의는 영정에게 소왕의 전언을 전하고, 창문군과는 과거사를 털어놓으면서 자신이 왜 마양으로 가는지를 알려줬다. 그리고, 왕의가 출전한 이후, 조군 총대장이 방난이란 걸 안 이후에 놀란 창문군은 영정과 여불위를 비롯한 모두에게 지난 일[7] 을 알려주자 영정은 방난과 왕의 둘 다 마양 전투에서 상대방을 없애기 위해서 나서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낸다.(11권 108화 ~ 117화)
마양에 도착해 근처 건원에 진을 친 양군은 배치를 마친 상태[8] 에서, 진군 중앙의 몽무와 조군 좌군의 섭맹이 앞장서서 공격하고, 그 와중에 신이 이끄는 백인대는 왕의 장군에게서 '''비신대'''라는 부대명을 받고 그의 특명으로 백인대가 소수라는 점을 이용해서 큰 희생[9] 을 치르면서도 조나라 장군 풍기를 베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튿날 이후부터는 몽무의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으로 조 중앙군을 격퇴할 뿐만 아니라, 왕의의 작전까지 더해져 조군의 본진이 뒤로 후퇴했다.(11권 118화 ~ 13권 134화)
하지만, 이는 조군의 함정이었고, 이후, 조나라 삼대천이자 총대장인 방난이 등장해 무위를 떨치면서 비신대는 미도를 포함해 일부 병력들을 잃게 되었고, 또 다른 '''삼대천 이목'''까지 참전하면서 궁지에 몰린 왕의는 결국 방난과의 일기토 와중에 치명상을 입고, 구원해준 신에게 자신의 창을 물려주고 사망한다. 왕의의 죽음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이목은 주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부대를 후퇴, 조나라는 마양의 포위를 풀고 회군했으며, 왕의의 죽음을 전해들은 진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영정은 창문군에게 출진 전 자신에게 전한 왕의의 말을 전하며 흐느겼으며, 한 달 후에 복귀한 신 역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13권 135화 ~ 16권)[10]
5. 기원전 243년(시황제 4년, 17~18권)
마양 전투의 공적으로 삼백인대가 된 비신대는 특수 부대로서 주변에 쳐들어오는 소규모 적군들을 격퇴하면서 명성을 차츰 얻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 연나라와 조나라의 전쟁이 발발했고, 그 와중에 승상 여불위의 계략[11] 으로 인해서 조나라 재상 이목이 진나라 수도 함양을 방문. 여불위와 대면하게 되었다. 결국 진나라는 위나라와, 조나라는 연나라의 전쟁에 전념하기 위한 상호 간의 불가침 조약인 '''진조동맹'''이 맺어진다[12] . 이후 연회장에서 이목과 대면한 신은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13] , 이내 이목에게 '''"당신을 쓰러뜨리는 것은 바로 나야!"'''라는 좌중을 떼굴멍하게 만든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이후, 영정과 만난 신과 하료초는 각자가 진행하고 있는 상황을 털어놓는데, 영정은 그 자리에서 5년[14] 안에 여불위를 제압할 것이며, 그 때 신은 자신의 호령을 받는 장군이 될 수 있냐고 묻는다.(17권 174화 ~ 179화)
이후, 비신대는 좀 더 맹위를 떨치면서 위나라 공략에 나서고[15] , 그 과정 속에서 신의 비신대와 함께 왕분이 이끄는 옥봉대와 몽염이 이끄는 낙화대가 등장하면서 진군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함양에서는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후궁 세력'''이 등장하면서 대왕(영정) 진영과 여불위 진영의 신경전이 펼쳐진 가운데, 후궁 쪽에서 사 씨에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두루마리[16] 를 전하면서 대왕 진영에는 의도가 무엇인지 전전긍긍하는 사이, 홀로 태후에게 간 영정은[17] 태후에게 요청을 하긴 했지만, 오히려 태후 세력은 여불위 진영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처럼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대왕 진영이지만 영정은 여불위와 태후, 두 사람의 간통을 빌미[18] 로 정치적 공세에 나서게 되었고, 위기 속에서 여불위는 태후와 밀회를 하며 진의 모든 것을 가지겠다는 야망을 품게 된다.(17권 180화 ~ 18권 188화의 ⅔)
6. 기원전 242년(시황제 5년, 18~24권)
본격적으로 시작된 위나라의 '''산양성 공략'''에서 진나라는 몽오를 대장군으로 하여 왕전과 환의라는 두 부장과 함께 공격해갔으며, 비신대와 옥봉대, 낙화대는 몽오가 이끄는 본진에 같은 예비군에 소속되었다. 첫 전투인 고량성에서는 정란차를 동원한 옥봉대와 빠른 기습을 감행한 낙화대가 차지했으며, 아무 전공이 없던 비신대는 그 곳에서 민간인 약탈을 하던 다른 부대를 제압하면서 '''"자신들은 민간인들을 괴롭히지 않겠다."''' 라고 선언함으로서 진군 내부와 위나라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19] 그리고 이러한 진나라의 공세에 맞서 위나라에서는 망명해 있던 전(前) 조나라 삼대천 염파가 출전하게 되었고[20] , 그의 최측근 즉, 염파 사천왕 중 하나인 윤호에 의해 근리관에서 진군은 천인장 곽비, 장군 나원을 포함해서 상당수의 장교들을 잃었다. 과거 진의 육대장군과 함께 중화 최고의 명장 중 하나인 염파가 위군의 장수로 나선다는 소식[21] 에 그에게 수 십 년간 패배해왔던 몽오는 우연히 만난 신에게[22] 일발역전의 기회라는 격려를 받게 되고, 다음 날 공석의 된 천인장들을 대신해 왕분, 몽염, 신을 임시로 천인장으로 발탁하게 된다.[23][24] (18권 188화의 후반 ⅓ ~ 19권 200화)
임시나마 천인대가 된 비신대는 초수를 중심으로 한 옛 곽비대 700명을 편입했으며, 역시 천인대가 된 낙화대, 옥봉대와 함께 산양 근처에서 염파가 이끄는 위군과 맞서게 되었다. 그 와중에 강외는 신에게 아직 이루지 못한 상 언니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번 전투 이후에 잠시 떠나있겠다고 말한다. 이윽고 전장인 산양 인근인 유윤 평야에 도착해서 몽오의 부장인 왕전과 환의를 본 신은 근처에 있던 몽념에게서 이 둘이 왜 이름이 널리 알리지 않았는지[25] 알게 되었다. 전투 초반에는 윤호의 무위와 현봉의 지략에 중앙군의 상당수 부대들이 궤멸 직전까지 왔지만, 이후에는 중앙보다는 진은 왕전과 환의, 위는 강연과 개자방이라는 두 부장의 군대가 서로의 본진을 노리는 전개가 되었다. 우측에서는 시체 훼손과 위나라 병사로 위장하여 본진을 급습, 위나라 군사 현봉의 목을 따는 환의의 변화무쌍한 전법이, 좌측에서는 결전을 회피하면서 아예 산성을 쌓아버려 염파조차 놀라게 만든 왕전에 의해 전선이 교착된 상황이었으며, 중앙을 맡은 윤호를 잡기 위해, 신, 왕분, 몽념 세 임시 천인장이 연합하여 협공하지만, 윤호의 압도적인 무위에 의해 실패하지만, 신에 의해 윤호가 부상을 입기는 했다.(19권 201화 ~ 21권 223화)
이후 최종 결전에서 윤동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돌파해 오는 윤호를 신이 막아서고, 결국 장군의 무에 대해 어렴풋이 각성한 신은 사투 끝에 윤호를 처치하는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강외는 심각한 부상[26] 을 입었고, 여기에 강연으로 하여금 왕전을 포위하게 하고 후방으로 돌아간 염파가 산성으로 무장한 몽오의 본진을 공략하고 몽오와 일기토를 벌이게 되자 신은 몽념과 함께 본진으로 올라와 염파와의 일전을 벌이지만, 압도적인 힘을 감당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윤호의 사망으로 중앙군이 막혔으며, 현봉을 제거한 이후에 사라졌던 환의의 부대에 의해 위군의 본진이 함락되었으며, 벽의 지원[27] 과 함께 왕전의 부대가 건재한 것을 파악한 염파는 개자방이 지원해 진나라 본진을 파하더라도 결국 전쟁 자체의 승기는 넘어간 것을 깨닫고 위나라 병사들을 더 살리기 위해 몽오와 종전 협정을 맺는다. 그리고 몽오에게서 신이 왕의의 최후를 보고 그의 창을 물러받았다는 말을 들은 염파는 신에게 왕의의 최후가 어땠는지 물어보고 나서 윤호의 검과 함께 천하대장군이 가야할 길 즉, '''중화의 통일'''에 대한 얘기를 신에게 알려준 이후, 전장을 떠난다. 이후 진군은 위나라로부터 빼앗은 산양 지역을 평정하게 되었고, 비신대는 이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중간에서 강외는 복수를 하기 위해 이탈한다.(21권 224화 ~ 23권 242화)
염파는 패전의 책임을 지고 위나라에서 추방당하여 초나라로 망명하고[28] , 진나라에서는 산양 전투의 논공행상을 벌여 신은 정식으로 천인장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신은 영정에게 염파하고 있었던 일을 들려주면서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다짐한다. 이후, 위와의 전장에 복귀했지만, 과거의 원한을 갚기 위해 강외가 이탈하는 바람에 전술의 부재[29] 로 연전연패하던 비신대는 몽념의 도움으로 그의 동생 몽의를 군사를 들어오게 되는데, 정작 몽의 대신 비신대의 군사로 온 인물은 창평군에게 수업을 받고 신에게 돌아온 하료초였다. 처음에는 '굴러 들어온 돌'에다가 여자라서 신뿐만 아니라 일부에서 하료초를 못마땅하던 비신대였지만, 군사 빙귀를 위시한 위군에 의해 와해되기 일보 직전이던 위기의 순간에 하료초에게 작전을 넘기고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후 하료초의 재능을 모두가 인정하고, 그 계기로 잃었던 지역들을 되찾으면서 재기에 성공한다.(23권 243화 ~ 249화)
이후 진나라 조정은 창평군과 이사를 산양에 파견. 그 곳을 '''동군(東郡)이라 명명하고 확고한 진나라의 영토로 삼겠다는 선언'''을 하며 진나라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펼친다.[30] 이후 비신대와 낙화대는 명을 받고 남쪽의 초나라 전선으로 떠나는데, 그 전에 신과 몽념, 그리고 왕분[31] 은 서로 만나서 동군 선언의 의미를 생각해내면서 곧 닥쳐올 회오리를 예상하는데, 그러면서 초나 위가 아닌 조의 이목이 먼저 움직일거라고 신은 밝혔다. 한편, 이목 역시 동군 선언이 중화 통일을 향한 치명적인 한 수인 것을 간파하고 사전 작업으로 방난을 대장으로 십만 군대를 움직여 연나라를 공격한다. 초(楚)와의 전선에서 조와 연이 전쟁을 치른다는 소식을 들인 신은 하료초에게 연이 어떤 나라인지 듣게 된다.[32] 극신과 상대하던 이목은 자신의 지략을 역이용해 몸소 공격해 나선 극신에게 위기를 당하지만, 방난을 이용해 극신을 제거하고 하루만에 승리한다. 남쪽 전선에서 그 소식을 들은 진·초 양군은 이목에 대한 평가와 함께 서로 대치를 하고 있었다. 초군 천인장 항익의 도발을 견디지 못하고, 그와 일기토를 벌인 신은 중화십궁 중 하나인 백려가 항익을 지원하면서 일단락되긴 했지만,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천인장들이 초나라에 있다는 것에 생각하면서 하료초에게서 초나라에 대한 정보를 듣게 된다.(23권 250화 ~ 24권 253화)
한편, 진나라 함양에서는 후궁에 환관으로 분장한 노애가 태후의 밤 상대로 보내지면서 여불위와 태후의 음란한 소문이 사라지고[33] , 소문에서 벗어난 여불위는 세력 균형을 역전시킨 것도 모자라서 스스로 상국의 자리에 오르면서 권세를 이어가려고 한다. 이에 영정은 그동안 감금되었던 동생 성교와 그 일파를 풀어주면서 세력을 결집해 갈 씨의 사망과 여불위의 상국 임명으로 비어 있던 두 명의 승상직 중 한 자리에 창문군을 넣게 된다.[34] (24권 254화 ~ 256화)
계속해서 초나라와의 전선을 지키고 있던 비신대는 상부의 명으로 동금성으로 이동[35] 하던 중에 '''조의 이목과 초의 춘신군의 만남'''을 확인하였고, 이목과의 대련을 통해 그가 지략뿐만 아니라 무력까지 지닌 인물이란 걸 알게 된 신은 이들의 만남에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36] 그리고 신의 예상대로 이목은 초의 춘신군에 이어서 위나라의 경민왕을 만나며 '''진나라에 대항하는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후 동금성에서 신은 몽념에게서 '조초동맹'과 함께 다른 소식[37] 을 듣고, 이를 하료초와 같이 나누던 중에 수상한 부대가 있다는 정보에 성 밖으로 나와보니, 왕의의 옛 부하로 지금은 등과 함께 있는 녹오미와 간앙이었다. 조, 초, 위 일대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이들에게서 '''"장군(왕의)를 잃었던 마양 때보다 더 큰 폭풍이 불 것이다."'''라는 말을 들인 신은 놀라 점점 다가오는 폭풍을 느끼고 있었다.(24권 257화 ~ 261화의 ¾)[38]
7. 기원전 241년(시황제 6년, 24~33권)
초나라의 재상 춘신군을 총대장으로 하고 이목이 군략을 맡은 6개국의 '''합종군'''이 진나라를 공략에 나선다. 남쪽에서 초군이 오는 것을 시작으로 북쪽의 조, 뒤이어 위, 한, 연, 제가 오는 것을 안 진 조정과 군대들은 패닉에 빠지게 되었다. 남쪽의 초군 방어를 지원하러 가려던 비신대 역시 이 광경에 자신들의 나라가 침략당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패닉에 빠져 포기하고 있던 조정은 포기하지 말고 대처하고 싸울 것이다는 영정의 외침으로 진영과 관계 없이 각성해서 대책을 마련해갔으며, 창평군의 책략으로 아직 동쪽에 머물고 있던 채택의 외교술로 가장 멀리 떨어져 진나라로 오지 않던 제나라를 이탈시키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다른 5개국[39] 의 연합과 이들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진나라 본영은 나라의 국문이라 불리는 '''함곡관에 몽무, 등, 몽오, 장당, 환의, 표공, 왕전 등의 장군들과 모든 전력을 집중하여 방어전'''을 치를 것을 결의한다. 한편, 신을 비롯한 비신대는 이들을 쫓아서 가던 중, 뇌원 부근에서 오봉명(오경의 아들)의 위군과 단독으로 싸우던 표공 장군을 지원하면서 4일 동안 위군의 발목을 잡아놨으며, 함곡관 방어전에서도 표공 장군의 휘하에서 조나라와 맞선다.(24권 261화의 ¼ ~ 25권 270화)
본능형 장군인 표공이 먼저 공격[40] 했지만, 다른 형태의 본능형 장군인 경사[41] 의 함정에 걸려서 표공군이 궤멸되려는 찰나, 신은 후방의 위기를 미리 깨닫고 돌진하는 표공군을 역행해, 후방의 표공군 1만명을 지휘하여 참패를 막고 장평대전의 원한에 사로잡혀 있던 적장 만극을 베는 활약을 펼친다. 초강대국 초군을 상대하는 등과 몽무 연합군[42] 은 등이 초나라 1진의 장군인 임무군을 베는데 성공하고, 함곡관을 지키는 장당, 환의, 몽오는 정란차 등을 앞세운 한나라와 위나라의 공격을 막는데 성공한다. 또한 연나라의 산민족을 상대하는 왕전은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략으로 연의 대장군 오르도를 농락한다.(25권 271화 ~ 27권 289화)
압도적인 열세에서도 선전하는 진군이었으나 임무군이 전사한 뒤에 등장한 초나라의 2군 장군인 와린은 15일째가 함곡관이 떨어지는 날이라고 선언하고, 마침내 15일이 되는 날, 초군의 대장군이며 중화 최강의 남자라 불리는 한명이 전선에 등장하게 된다. 전장을 뒤흔드는 한명이지만 진군측에서도 중화 최강을 자부하는 몽무가 나서고 대격전 끝에 몽무가 한명을 무찌르는데 성공하였으며, 함곡관에서도 한나라 군의 독 공격을 당한 장당이 환의의 도움으로 한군 진영으로 잠입, 사력을 다해 한군 총대장 성회를 베게 되자[43] , 함곡관 방어전의 추가 크게 진나라로 기우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15일간 함곡관 옆 산맥을 넘어서 대기중이던 와린의 군세에 의해 함곡관의 성문이 노출되고 성문이 뚫리려는 찰나, 반대편 전장에서 오르도의 군세를 격멸한 뒤 사라졌던 왕전군이 나타나 성문을 사수하면서 와린의 전략을 무너뜨린다.(27권 290화 ~ 30권 319화)
함곡관 공략이 어려워지자 이목은 미리 빼두어 산맥을 넘게 했던 조군을 이용하여 진나라 수도 함양을 직접 타격하기 위해 나선다. 이를 감지한 표공과 비신대는 추격을 시작하지만 병력의 열세와 방난의 등장으로 표공이 전사한다. 화염을 꺼뜨리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 표공의 방패를 받은 신이었으나 표공을 잃은 절망감. 그리고 차례대로 작은 성들을 함락시키며 함양에 다가오는 조군으로 인해 상황은 절망적. 하지만 마지막 관문인 '''최성에서 직접 출전한 영정'''을 만나게 된다. 최성의 주민 2만명을 봉기시켜 공성전을 준비하는 진군. 영정의 격려와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이목조차 놀랄 정도의 저력을 발휘한 진군과 최의 백성들이었지만 7일간의 공성전 끝에 성문이 뚫리며 함락을 목전에 두게 된다. 하지만 그때 나타난 양단화가 이끄는 산민족의 군세. 조군을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방난이 등장하고, 왕의와 표공이라는 두 스승을 방난에게 잃었던 신은 마침내 방난과 맞서고 그를 찔러 중상을 입히는데 성공한다. 결국 이목은 미련을 버리고 후퇴를 결정하고, 합종군은 진 공략을 포기하고 회군하기에 이른다.[44] 합종군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던 신은 삼천장으로 승격했고, 새로 합류한 옛 표공병들과 함께 폐허가 된 진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재건 작업을 펼쳤다.(30권 319화 ~ 33권 356화)
한편, 비신대를 잠시 떠나 원수를 찾아서 조나라 곳곳을 다녔던 강외는 새로운 치우였던 유련을 만나 대결, 사투 끝에 원수를 갚았고, 강명에게 부탁[45] 하고 난 후, 비신대에서 떠난 지 392일(약 1년 25일)만에 복귀해 부대를 더욱 약진하면서 본인의 무공을 올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33권 357화 ~ 34권 364화의 ⅔)
8. 기원전 240년(시황제 7년, 34권)
'''작년에 벌어졌던 합종군의 여파로 인해서 각 국가들마다 대규모의 전투가 없던 시기'''였다.[46] 장군 몽오가 위독해 문병차 온 신과 몽념은 그의 최후를 지켜보았고,[47] 영정은 각기 다른 두 궁녀에게서 아들 부소와 딸 려를 얻었고, 왕전은 위의 경도성을, 환의는 위의 급성을 함락했다.[48] 한편, 합종군을 주도했던 춘신군과 이목은 책임을 지고 쫓겨났는데, 측근들에게 보고를 받은 이목은 각 국이 내란기이며 특히, 권력을 틀어 쥔 여불위와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영정이 있는 진이 '''가장 격렬한 내란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34권 364화의 ⅓ ~ 34권 366화)
한편, 합종군을 수습하였지만, 나라가 빈궁해진 탓에 절제된 생활을 해야 했고, 정치적으로 극한 대립이 오고 있던 함양에서 여불위는 자신의 재산으로 주지육림을 벌이면서 찬탈 음모에 서서히 시동을 걸었고, 영정의 동생 성교는 그 가운데에서도 세력 확장을 거침없이 하고 있었다. 영정 진영에서는 이를 경계하는 눈치였으나, 성교의 부인인 유의의 말[49] 을 듣고 성교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34권 367화 ~ 368화)
9. 기원전 239년(시황제 8년, 34~38권)
이목을 내친 후 조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곽개에 의해 조군 2만이 진나라를 침공하자 이에 대응하여 둔류를 방어하기 위해 '''왕제 성교가 출전'''하였다.[50] 하지만 둔류에서 여불위의 사주를 받은 자들에게 억류당하고, 조나라와 내통한 반란군의 주모자로 선언된다. 이에 놀란 영정을 사천인장에 오른 신과 더불어 천인장으로 오른 강외를 더해 오천인대가 된 비신대와 벽 장군이 함께 반란 진압과 성교의 구출을 위해 둔류로 출격하도록 했지만, 끝내 성교는 사망하게 되었다. 죽은 후, 다수가 살아남은 성교의 세력들은 유의가 이끌면서 영정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지만, 성교는 결국 반란의 주모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이후 신은 웃으면서 지나가는 여불위 앞을 막아서면서, '''"여불위 당신은 정의가 없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라고 경고를 보내지만, 오히려 '''"정의는 인품이 아닌, 이기는 자에게 깃드는 것이다!"'''라면서 지나가는 여불위를 보면서 '아직도 크게 보인다.'라고 느낀다.[51] (34권 369화 ~ 35권 378화)
합종군 이후 진나라는 산양을 발판으로 중원으로 나가기 위한 교두보인 '''저옹을 두고 위나라와 격전'''을 벌이게 된다. 진나라 장군 등과 위나라 대장군 오봉명이 대치하는 가운데 전 시대(오봉명의 부친인 오경과 같은 세대)의 위의 명장들인 화룡칠사 중 3인[52] 이 참전한다. 서로 긴밀하게 짜여져 있는 위군의 포진을 깨기 위해 옥봉, 비신, 녹오미 3대로 갈라져서 적의 3개 진영을 격파하고 본군을 치는 전략을 세운다. 왕분은 자백, 신은 개맹을 상대로 고전하지만, 결국 그들의 진을 격파하면서 왕분은 자백을 처치하고, 강외는 위군의 본진을 점령한다. 뒤늦게 추격한 신은 본진의 대장군 오봉명을 치려 했지만, 오봉명의 기책으로 화룡 중 한 명인 영황을 베는데 그친다. 물론 영황 역시 전 시대부터 명성을 떨치던 장군이기에 그 공적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저옹을 차지한 진나라는 동군(산양)처럼 저옹을 요새화하면서 서서히 중화통일의 움직임을 시작하였다.(35권 379화 ~ 37권 401화)
산양과 저옹의 요새화를 두고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그 여파로 함양에서는 정쟁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완성하였고, '''태후와 노애가 후궁가의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하여 진나라 북부 태원에 '애국'라는 나라를 건국'''하였다.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환관 조고의 행정능력으로 애국은 중화 전토에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동시에 초에서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와 몽무와 몽념이 방어하게 된다. 등이 몽무의 뒤를 이어 진나라의 두 번째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신과 왕분이 오천인장, 강외는 삼천인장으로 승격되다.[53] 이후 옥봉대는 녹오미군과 함께 초 방어전에 나서는 몽무와 몽념을 지원하고, 비신대는 융국과 함께 저옹 방어전을 지속적으로 펼친다. 한편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애국을 바라보며, 영정은 여불위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싸워야 한다는 단호한 생각을 하였다.(37권 402화 ~ 38권 407화)
10. 기원전 238년(시황제 9년, 38~41권)
진왕 영정의 가관 의식에 맞추어 '''태후의 애국이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를 뒤에서 사주한 여불위 역시 애국의 반란을 이용하여 진 왕족을 멸하고 자신이 왕이 될 계획을 꾸민다. 반란군의 수장 번오기[54] 부자는 위조된 옥새가 찍힌 문서를 활용해 함곡관을 넘었고, 수비가 약해진 함양을 공략하지만, 여불위에게서 등을 돌린 창평군의 연락을 받고 전선에서 출격한 비신대는 상록군과 최의 병사들과 함께 영정의 가족들을 구하고 반란을 제압하는데 성공한다.[55] 이 혼란의 와중에 무사히 가관식을 마친 영정은 여불위와 천하를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대해 담판을 벌여 제압을 하였다.(38권 408화 ~ 40권 433화)
패주했던 반란군들은 함국관 부근에서 창평군의 지시를 받고 혼 환의군에게 괴멸당했고[56] , 이들과 함께 진을 공격하려던 초군 역시 철수하였다. 체포된 주모자 노애와 번오기의 아들 번유기는 많은 이들의 분노 속에서 참형[57] 에 처해지고, 조고를 비롯한 다수의 애국 사람들은 촉으로 쫓겨났다. 노애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살리려고 아들 앞에서 절까지 했던 태후는 끝내 아들에게 버림을 받고, 탑에 감금되었는데, 몰래 들어온 영정은 노애와 태후 사이의 두 아이를 살려내 성 밖 은밀한 곳에 숨겨두었다고 귓속말로 전했다.[58][59] 탑에서 나온 영정은 신[60] 에게 앞으로의 해야 할 일(여불위 세력의 처리 및 중화 통일 구상 등)을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육대장군'의 부활을 선언'''했다.(40권 434화 ~ 41권 438화)
신은 정의 그 발언을 이후, 조와의 전선에서 몽념, 왕분과 얘기하면서 가능할만한 후보군들을 추렸으며, 그로부터 5일 후에 양단화가 위나라의 요충지 연지성을 점령해 열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후에 초나라의 효열왕이 죽고, 재상인 춘신군이 암살당했는데, 초에 망명와 있던 염파의 주선으로 만난 와린과 이원이 초의 재상에 올랐다. 이로 인해 진은 초 급슨 계획 대신 조의 흑양 언덕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에 임한다.(41권 439화 ~ 441화 중반까지)
11. 기원전 237년(시황제 10년, 41~46권)
비신대는 환의군 휘하에서 조나라의 '''흑양 언덕 공략'''을 위해 나선다. 이에 조나라에서는 경사를 대장군으로 하여 이안의 성주 기혜군을 더해 반격에 나선다. 밀림인 흑양 지대를 손에 넣기 위해 요지인 5개의 언덕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와중에 신은 사투 끝에 조의 총대장 경사를 베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총대장의 죽음을 숨기고 전투를 계속한 기혜군은 결국 언덕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당초 기본 전략이 언덕 쟁탈전이라던 환의는 절호의 기회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포로를 고문하여 알아낸 기혜의 약점인 이안성을 목표로 삼고, 조나라 포로와 주변의 백성들로 시체의 탑을 쌓으며 기혜가 지키던 이안성을 공략하겠다 협박한 환의의 계략에 대 참사를 막기 위해 결국 기혜는 이안으로 병력을 물리고, 진군은 기혜가 방어 설비를 만들고 있던 흑양 언덕을 여유롭게 취하며 승리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환기군의 약탈을 본 비신대는 이에 대항하다가 싸움까지 나서, 결국, 경사를 벤 공적이 상쇄된 채 언덕을 요새화하고 주변 지역 순찰에 들어갔지만, 이런 비신대의 모습에 반한 나귀가 합류하면서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61] 그리고 숨어서 전황을 살펴 본 이목 또한 환의의 약점과 기혜의 발견이라는 소득을 얻은 채 경사의 복수를 다짐했다.(41권 441화 뒷부분~45권 484화)
한편, '''제나라 왕 건과 조나라 재상 이목이 채택과 함께 진의 수도 함양을 방문'''한다. 먼저 담화를 가진 제왕은 진왕 영정에게 천하통일의 명분을 묻고 영정의 목표가 정복이 아닌 새로운 법치국가를 만든다는 것임을 알고 그때가 되면 진에 항복할 것임을 밝힌다.[62] 한편, 이목은 현 시대의 평화를 위해 전국칠웅 모두가 동참하는 동맹을 제안하지만, 영정은 일시적인 평화일 뿐, 하나된 중화를 만들기 위한 전쟁을 계속하겠다 선언하고 이에 이목 역시 진 조정에 '''"누가 와도 나한테 이길 수 없다! 올테면 와라!"'''라면서 전쟁을 선포하고 귀국한다. 한편, 흑양 전투 이후, 낙화대와 인수인계를 한 비신대는 후방으로 이동해 신병 보충 및 훈련을 벌이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 표공군 휘하에 있던 중화십궁 창원의 두 아들인 인, 담 형제와 간두를 비롯한 신병들을 모집하였다. 한편, 여불위는 노애의 반란에 연루되어 실각하고, 유폐되어 있던 태후가 궁궐로 돌아왔다. 여씨 사주의 한 사람으로 투옥되어 있던 이사가 법을 다루기 위해 영정에게 재등용되는 등 진나라 내부에서는 작년 노애의 반란 사건 이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 와중에 이목에 의해 조 서부 공략이 쉽지 않다는 걸 안 창평군[63] 은 영정과의 독대에서 무리이긴 하지만, '''한단 아래의 업을 공격'''하는 것이 어떤지 알려준다.[64] (45권 485화 ~ 46권 496화의 ¼)
12. 기원전 236년 이후 (시황제 11년~ , 46권~ )[65]
기원전 236년: 중화통일을 위한 첫 단계인 조나라 정벌을 위하여 '''조나라 제 2의 도시인 업을 공략하는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목이 설치한 조 서부의 방어기지들을 무시하면서 조 왕도권을 직접 타격하는 전략을 창평군과 창문군 등이 짜면서 이를 실행할 인물로 '''왕전을 총대장으로 하여, 양단화와, 환의의 대장군급의 장수들과 비신대, 옥봉대, 낙화대까지 합해 총 20만에 가까운 진군'''이 출정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신은 그 동안 영정에게 보관하고 있던 前 육대장군 왕의의 창을 받았다.[66] 중계기지 금안을 기점으로 흑양에서 조나라 서부를 공략해 이목을 당황하게 하면서[67] , 비신대와 양단화에 의해 진군은 단숨에 조나라 남부인 열미를 공략하여 함락시켰지만, 사실 열미는 '''일부러 적을 끌어들이고 포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허술한 성'''임을 드러나 창평군이 세운 모든 전략의 토대가 무너졌다. 이에 왕전은 회군 대신 업성 주변의 조나라 성들을 모두 함락시키고는 그 백성을 업으로 몰아넣어 업 성내의 식량을 소모시키는 작전으로 맞선다. 결국 '''업과 진군 중 어느 쪽이 먼저 군량이 떨어지는가에 달린 군량전'''이 벌어진 가운데 '''환의군은 업을 포위하고, 양단화군은 견융족과의 전투, 왕전군은 비신대, 낙화대, 옥봉대와 함께 이목군과의 전투'''에 나서게 되었다.(46권 496화 ~ 48권 517화)
벽과 함께 견융족과 이목군 휘하의 순수수 연합과 대치에 나선 양단화의 산민족 연합군은 군량의 일부가 불에 타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벽이 만회하면서 견융족 족장 로조를 처치하고, 남은 견융족을 포섭함과 동시에 요양을 차지하였다. 한편, 이목군과 주해평원에서 대치한 왕전군과 비신대, 낙화대, 옥봉대는 이목의 치밀한 계략과 함께 과거 조 삼대천 중 한 사람인 인상여의 휘하였던 요운과 조아룡, 그리고 마남자, 기수, 금모 등과 지루한 싸움을 이어나갔다. 가져온 진군 군량이 바닥이 났고, 양 측 모두 장수부터 일반 병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피해를 낸 상태에서 15일째에 양측 중군이 맞붙는 전면적인 대전을 펼치게 되었고, 우익에 있던 비신대는 옥봉대의 왕분이 사투 끝에 요운을 무찌르고 나서, 이목의 본진으로 협공에 들어가다가 방난과 대치하였다. 신보다 먼저 방난과 맞선 강외가 방난의 손가락을 절단했지만 패했고, 뒤이어 온 신이 '''사투 끝에 방난을 처단'''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잠시 의식을 잃게 되었다. 이 과정을 근접거리에서 지켜본 이목은 전 부대를 후퇴시켜 환의가 포위하고 있던 업을 구하러 가게 되고, 왕전군은 모든 부대의 10분의 8정도를 주해평원에 남기고, 나머지(10분의 2) 정예병들을 이끌고 이목군의 뒤를 치기 위해 진군했으며, 방난을 처치한 후 잠시 의식을 잃었던 신도 회복해 왕전과 몽념, 왕분 등과 함께 이목을 치러 갔다. 이틀 정도 왕전군과 이목군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지속되는 와중에, 업 성은 일찍이 왕전의 계략[68] 과 많은 수의 난민들의 저항을 버티지 못한 채 이목군이 업에 도착한 18일째에 안에서 성문이 열리면서 환의군이 업성을 함락시킨다.(48권 518화 ~ 58권 635화 전반부)
하지만, 성 안에는 이미 식량이 없어졌고, 주해평원에 남아 있던 잔여 부대까지 합류한 이후, 업성 외곽에서 포위망을 갖춘 이목군에게 진군은 꼼짝없이 성 안에 갇힌 상황. 황하의 수로를 통한 진군의 병량 지원도 실패되어 절망 속인 상황에서 '''이목이 갑자기 왕도(한단)으로 소환'''[69] 되었고, 조의 수군이 남은 진의 수군을 전멸시키기 위해 포위를 풀어버리자, '''왕전은 제에서 군량을 들여와 군대를 먹이기 시작'''한다.[70] 한편, 업 공략이 최종적으로 성공을 하자, 창평군은 위 방면의 등 부대를 열미로 보내 요양과 업에 갇혀있는 업 공략 연합군 구출에 나서고, 업에서도 그 동안 혼수 상태에 있던 왕전군 휘하의 아광이 부대를 재편성해 열미의 후미를 공격하기 위해 출발한다. 등과 아광, 양쪽 부대에 갇힌 상태에서 마남자에게 그간의 소식을 접한 순수수와 호첩은 열미와 업, 요양을 포위하던 모든 부대를 북쪽으로 돌리고, 진은 요양, 열미, 업을 비롯한 '''조의 왕도권 남부를 모두 장악'''하였다. 이후 한 달을 더 기다려 본영에서 지원병이 오고, 비신대를 비롯한 업 공략군의 일부는 귀환하게 되었다. 함양에서 성대한 귀환식을 마친 비신대[71] 는 풍리에 있던 신의 집에서 화려한 연회[72] 를 벌였고, 사흘 후, 하료초와 함께 영정과 창문군을 만난 신은 그들에게서 자신이 장군이 될 수 없는 심각한 문제[73] 를 듣고 나름 생각해 보다가 과거 표도 비슷한 경험[74] 을 듣고 자신도 '''이신(李信)'''이라고 정했다.[75] (58권 635화 후반부 ~ 641화)[76]
업을 공략하고 5개월이 지난 후, 진나라는 군대와 백성들을 대거 업을 비롯한 옛 조나라 왕도 남부권으로 이주했으며[77] , 하료초와 몽의는 함양에서 그간의 전황을 의논[78] 하면서 다음 준비를 생각해낸다. 진·조 양측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라 미뤄졌던 논공행상이 이뤄져, 총대장 왕전을 비롯해 환의와 양단화는 제1공의 특별대공을 받았으며[79] , 낙화대 몽염, 옥봉대 왕분, 비신대 이신은 제1등의 특별공으로 '''장군의 직함을 받게 되었다.'''[80] 이후, 부대를 재편해 15,000의 군(軍)으로 재탄생한 비신대는 다시 업 전선으로 향하게 되고, 이 와중에 조의 수도 한단에서는 카이네와 순수수가 이목을 구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기던 중, 이목의 처형을 앞두고 '''조도양왕이 갑자기 죽었다.''' 조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태자 가는 미리 앞질러 정권을 장악함과 동시에 이목을 비롯해 도양왕이 옥에 가둔 인사들을 석방해 진군의 침입을 대비하려고 했지만, 도양왕이 죽기 전, 남긴 유언을 통해서 '''조나라 왕위는 막내인 천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천을 비롯한 곽개 진영은 가와 이목 진영을 초토화 시키면서 태자 가는 한단 북쪽의 작은 성으로 쫓겨났다. 이목은 약간 지치긴 했지만, 주변의 격려에 기운을 차리고 측근들과 함께 사마상이 있는 청가로 이동했으며, 진과 조와의 전황은 일찍이 이목의 전언을 들었던 곽개가 자신이 하는 것처럼 휘두르면서 고착상태에 빠졌다.(642화 ~ 647화의 ½)
기원전 235년: 교착 상태인 진·조 전선을 타개하기 위한 논의 중 사씨가 늦게 입궐해 영정과 창문군[81] 에게 3년 전 노애사건의 연좌로 실각한 후, 봉지였던 '''하남에 있던 여불위의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력을 했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면서 여불위의 제거를 해야 한다고 말하자, 뜻을 알겠다면서 영정은 두 사람 앞에서 여불위와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후 홀로 하남으로 간 영정은 여불위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거기서 여불위는 영정에게 "함양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여긴 꽤나 억누르고 있지만, 사람이 사람을 불러 그 동안 감추던 원념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끔임없이 반란의 무리가 나오는 원인은 '''제가 아니라 대왕이시다.''' 노애 반란 당시 자신을 사형시켰으면 했는데, 너무 다정하다."고 밝혔다.[82]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진언이라면서 여불위는 지난 날 가관식 당시 자신과 영정의 대담에서 영정이 밝혔던 것이 아직 유효함을 알고 그의 무운을 빌면서 영정의 천하통일 과정과 이후의 세상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물러갔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여불위가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이 들려왔지만, 이는 대역이었으며, 여불위 본인은 소수의 측근들 과 함께 하남을 탈출해 중화 유람에 나섰다.(647화의 나머지 ½ ~ 648화)[83]
한편, '''업과 한단 사이의 진·조 전선은 아직 교착 중인 상황'''에서 창평군은 '''초나라의 십호성을 위에 넘기는 조건으로 위와 3년 동안의 동맹을 제안'''했다. 이에 초나라 전선에 있던 몽무가 위나라나 등보다 먼저 초의 십호성을 치기 위해 출전했고, 이에 십호성의 장수들도 성에서 나와 싸우게 되었다. 여기에 진에서는 등과 녹오미, 초에서는 항익과 백려까지 나오면서 그 규모가 점점 커졌고, 최종적으로 오봉명이 이끄는 위군까지 도착해, 초군 11만 vs 진군 5만 + 위군 7만의 전투가 시작되었지만, '''과거 초에 멸망당했지만, 초군과 대등한 경기력으로 생존했던 십호성의 장수들'''에 의해 위군의 장수가 죽는 등 전황은 전혀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급기야 오봉명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자신들을 '조공', 진군을 '주공'으로 삼는 계책[84] 과 함께 장수들이 가고 없는 십호성에 정란차를 비롯한 대군을 보내 함락시키고, 등에 의해 수호왕이 생포되면서 첫 전투는 진과 위 연합군이 승리하였다. 다만, 사로잡힌 수호왕은 '십호성의 비밀'을 알고 싶다는 등과 녹오미에게 자신들 특히, 만우의 비밀을 말할 테니 몽무를 불러오면서 그들에게 자신들 특히 만우의 과거와 변화[85] 를 말하면서 "사람의 어리석음 그 너머에 뭔가가 있다."면서, 이제 다 얘기했으니 자신의 목을 치라고 했지만, 오히려 등은 추후, 초나라와의 전쟁에 있어서의 정보와 만우의 결말을 직접 보라며, 수호왕을 처형하지 않는다. 한편, 십호성 함락 소식을 접한 초에서는 와린이 진·위 동맹에 대해 상대에게 역효과라면서 만우와 만나겠다면서 움직였고[86] , 진에서는 동맹에 대한 양쪽의 이익을 논하면서 다시 조나라 전선에 집중하기로 하지만, 십호성에 입성한 등과 몽무 앞에서[87] 오봉명은 '''"우리에게는 이익이지만 당신들에게는 대실패!"'''라면서, 지금 사마상이 있는 청가에 있는 이목이 있는 한, 진은 3년 안에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한다면서 등과 대치했다.(649화 ~ 661화)
십호성을 함락한 후, '''위는 한을 침공'''하고, '''진은 다시 조와의 전선으로 모든 부대를 집결해 한단 공략'''에 나선다. '''낙화대와 옥봉대의 맹활약[88] 하는 반면, 비신대는 조군에 밀리면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89] 이에 이신은 직접 강외대를 찾아가 강외의 상태를 보면서, 이유가 뭔지 회복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대화하려다가 적이 온다는 소식에 다시 나가고, 다시 홀로 잠들던 강외는 꿈에서 본 물체로 인해 갑자기 깨어나게 된다. 한편, 그 즈음 낙화대에서 아광, 창앙 쪽에서 강외가 조나라 병사들을 쓸어버린다는 소식을 접하지만, 현실과 맞지 않은 탓에 넘어갔는데, 얼마 안 있어 미평대를 와해시키려는 조나라 병사들을 '''치우가 와서 전멸을 시키는데, 그 치우는 강외가 아니라 그녀의 후배였다.'''[90] (662화~663화(현재))
[1] 상당수 업 공방전(주해평원 전투)와 그 이후의 상황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부터는 아직까지 단행본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2] 이 생매장 장면은 합종군 편 함곡관 전투 당시 만극이 비신대 앞에서 밝혔다.[3] 실제 역사보다 몇 년 앞서 일어났지만, 진압 후 기록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역사와 보조를 맞춘다.[4] 벽은 이 때 천인장으로 전투에 나선다. 다만 신과 벽은 같은 부대는 아니다.[5] 뒤에 나왔지만, 당시 왕의는 염파이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휘하 부장들을 이끌고 가던 중이었다.[6] 이들은 몽오의 한나라 공격 당시에는 참여하지 않았다.[7] 9년 전(대략 기원전 254년경) 창문군, 왕의, 규가 당시 조의 영토였던 마양을 공격하고 있을 때, 방난이 단기로 규의 진영을 휩쓴 것도 모자라서 규를 죽인 일로 그 소식을 들은 왕의에 의해 방난은 얼굴에 상처를 입었으며, 창문군과 왕의는 규를 병사(病死)로 방난은 왕의에서 죽인 것로 꾸몄다. 그런 방난이 살아서 총대장으로 왔으니, 그런 보고를 들은 창문군으로서는 당황스러웠을 듯. 자세한 건 왕의, 규의 1.2 문단, 방난 문서 참조.[8] 창평군의 허락을 받은 몽의와 하료초도 근처 고성에서 전황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원래 몽의는 한나라 공격 때 따라가기로 했는데, 할아버지인 몽오가 막았다고 하였다.[9] 서전 이후 연이 신에게 패랑의 오에 있던 절이 절명했다고 하자, 신이 열일곱 명째라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웃으면서 보내주라."면서 대인배 모습을 보인 패랑과 갑툭튀한 왕의 덕에 분위기가 달라졌지만...[10] 여기까지가 킹덤(만화)/애니메이션의 1기에 해당된다. 다만 1기에는 영정의 과거사와 여불위의 영정 암살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다.[11] 조나라 왕이 총애하는 춘평군이란 신하를 납치하면서 춘평군을 데리고 오고 싶으면 조의 재상이 함양으로 오라는... 하필 그 시점 조의 재상이 이목이라는 점.[12] 조건으로 이목이 심혈을 기울여 개조한 한고성을 진에게 주는 조건이었으며, 조에서는 춘평군 대신 평도후라는 대신이 진에 남기로 했다. 이 과정을 지켜 본 진과 조의 관리들은 아연실색과 놀람 그 자체였으며, 이는 창평군의 호출로 강외와 함께 함양의 대전에 온 신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창평군이 신을 부른 목적은 기회를 봐서 이목을 처단하는 것.[13] 그 와중에 거센 비판을 하면서 반박하는 문신 하나를 엎어치기 한 녹오미와 큰 항아리의 술을 다 마시고 동강내면서 술이 떨어졌다면서 돌아간 몽무는 덤.[14] 5년 뒤면 영정의 나이가 22세가 되는데, 이 때 가관식을 진행한다.[15] 이는 강탄을 처치하고 난 후, 표공이 있던 아수성으로 심부름 가던 벽이 알려주었다.[16] 심지어 두루마리 겉면에 찍힌 인은 과거 왕제의 난 당시, 숨겨두었던 옥새인데, 그걸 복제한 것으로 보인다.[17] 이 사실은 최측근인 창문군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모자 사이의 관계가 궁금했던 벽에게 창문군은 지난 일들을 알려주면서 '''둘 사이에는 ‘어둠’만이 있었다.'''는 서슬퍼런 평가를 내렸다.[18] 이는 후궁에서 목간 정리를 하던 중 두 사람의 밀회 장면을 훔쳐본 궁녀 향이 목숨을 걸고 영정에게 알려주었다.[19] 이 일은 그 광경을 목격했던 몽념이 배후에서 정리한 탓에 크게 번지진 않았다.[20] 사실 이는 3년 전, 염파가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망명할 때, 왕의가 그 소식을 듣고 불쑥 찾아와, 만약 따분하게 되면 몽오와 붙으라고 언질을 주었다.[21] 창평군의 전령 대신 나선 몽무가 알려주었다. 그 이전 몽무와 몽념 부자를 보고 '''전혀 닮지 않았다'''면서 놀란 신은 덤.[22] 사실 몽오는 커다란 압박감을 느끼면, 일부러 노병으로 변장하고 진지를 돌아다니다가 풀밭에 눕는 버릇이 있고, 이 때가 그러했는데, 우연히 사냥감을 들고 돌아가던 신에게 얼굴을 밟혔다. 당연히 신은 그 노병이 자신의 상관들 중에서도 대장군이자 총대장이란 건 천인장 임명 때까지 까맣게 몰랐다![23] 그 중 신에게는 조건으로 천인장 세 명 이상, 장군은 하나. 만약 실패할 경우, 오장으로 강등한다는 그야말로 가혹한 조건을 걸었는데, 신은 만약 실패하면 병졸로 가겠다면서 자신이 노리는 건 염파의 목이라고 호언장담까지...[24]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 본 몽무는 자신들의 부장들에게 '''"아버지(몽오)는 군재(軍才)는 떨어지지만, 사람 보는 눈은 천하에 따를 자가 없다. 아버님이 천거했다면 문제없을 것이다."'''라고 부친의 사람 보는 눈을 높게 평가했다.[25] 환의는 잔인한 산적 출신, 왕전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이 있어서 소왕 시절부터 음지에 머물렸다는...[26] 사실, 신이 윤호를 부상을 입혔을 때, 초수를 돕던 강외도 부상을 입었지만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 날 아침, 강외와 같이 누워있던 신은 그가 누웠던 자리에 묻은 피를 보고 직감하였다. 따라서 윤호가 윤동을 펼치며 오자 이를 막기 위해 출동할 때, 부상병 200명과 강외를 남겼는데, 그 쪽을 윤호를 지원하려 온 개자방군이 공격해오니, 부상입은 강외가 사투를 벌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비신대는 강외가 여자란 사실을 알게 되고, 적병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지키자는 결의를 한다.[27] 사실 벽은 길을 잃고 흩어진 아군들을 수습하던 중, 본진에 이상을 느끼고 추스려 지원해 온 것이었다.[28] 나레이션을 통해 그의 말년이 잠시 소개 된다. 하지만, 그는 이후 초나라에서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자세한 건 염파(킹덤) 문서 참조.[29] 강외 문서에도 나오지만, '''그 동안 비신대의 작전은 강외가 혼자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전략의 짜는 그녀의 모습에 비신대에 편입했던 전 곽비대 부장 출신인 초수마저 놀랬을 정도. 참고로 정규 전략 교육을 받았던 초수도 그 동안 보급 등의 이유로 자리에 이탈했던 날이 많았다. 즉, 강외와 초수 없이 작전을 신과 연 부장이 맡았으니... 약하기만 한 위군을 상대로 연전연패했던 것은 당연지사...[30] '''당시는 영토를 뺏고 빼앗는 일이 끊임없이 벌여졌고 빼앗은 땅은 얼마 안 가서 뺏기는 게 상식이기 때문에, 그 땅에 백성을 이주시키고 군(郡)으로 삼는 이 이례적 행위는 절대 넘겨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이며, 국책으로 삼는다는 건 뒤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 즉, 이 선언은 진이 본격적인 영토 확장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이후 나레이션을 통해 드러났다.[31] 두 부대와는 달리 왕분의 옥봉대는 산양 수비를 맡았다.[32] 하료초 설명 직후에 극신과 채택이 대화에 나서는데, 자세한 건 두 사람 항목을 참조.[33] 이에 대해선 대왕(영정) 진영뿐만 아니라 여불위 진영에서도 일부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있나 보다. 사태에 대해 모르고 있던 이사에게 어느 신하가 진실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그 신하는 그날 밤에...[34] 창문군은 좌승상으로 임명되었고, 다른 한 자리(우승상)은 창평군이 임명된다. 그리고 승상 임명 이후, 영정은 여불위에게 "누가 마신 독(영정은 성교, 여불위는 태후(후궁))이 센 게 아니라 자신과 당신(여불위) 중에 누가 더 센가."라며 일종의 선전포고를 하였다.[35] 다만, 중간 지점에서 길이 없어서 난감하던 중, 한나라의 공격을 받던 서(徐)라는 소국을 구하고, 동금으로 가는 지도를 얻게 되었다.[36] 헤어지면서 이목은 신과 하료초에게 '''"전력(戰歷)을 쌓아가고 있는 당신들이라도 실제로는 전쟁의 진짜 무서움을 알지 못한다."'''는 냉혹한 말을 남겼다. 이에 신도 '''"네가 우리(진)에게 어떤 책략을 쓰든 우린 정면에서 날려버리겠다!"'''라고 선전포고를 날렸다.[37] 왕분의 이천인장 승격과 영정의 총애를 받은 궁녀 향의 회임(향 외에 다른 궁녀 한 명도 회임했다고 한다.)[38] 여기까지가 킹덤(만화)/애니메이션의 2기에 해당된다. 2기에는 1기에서 다루지 않았던 영정의 과거사 내용이 들어가 있다.[39] 조, 초, 위, 한, 연[40] 본래 초군(한명과 임무군)이 개전의 호령을 하면서 선수를 하려고 했지만, 기다리다 지쳤는지... 표공이 먼저 선공을 날렸다. 이를 지켜본 왕분의 평이 그대로.[41] 이목 曰, 표공은 사자처럼 덤벼들지만, 경사는 거미처럼 함정을 쳐 놓고 먹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침묵의 사냥꾼'''으로 자신도 두려워 하는 존재이다.[42] 몽념의 낙화대와 왕분의 옥봉대는 등 장군 휘하로 참전.[43] 적장을 벤 후, 장당은 그대로 숨을 거뒀고, 낙마하려던 그의 시신을 환의가 잡는다. 자세한 건 장당 문서 참조[44] 회군하면서 합종을 이탈했던 제를 치려고 했지만, 한명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은 몽무가 회복도 하지 않은 채 뒤에서 기습을 하면서 이렇다 할 전공을 얻지 못했다.[45] 유련의 시체를 감춰 다음 번 축제가 열리지 않게 해서 강족 내 강식과 강례를 살리고자 했으며, 빠져 나온 뒤에는 마을의 할멈에게만 유련을 죽였다는 사실을 보고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단행본 56권(603화부터 613화까지)의 부록만화에 따르면, 유련의 죽음이 판명되었기 때문에 또다시 축제가 벌어질 예정이라고 한다.[46] 《사기》에는 그 해 초반에 혜성이 지나갔다고 기록되고 있다.[47] 당시 몽무는 전선에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해당 화 말미에 술잔을 놓아 부친을 그리워하는 몽무의 모습이 그려졌다.[48] 유이한 전투였지만, 함락 직후의 행동은 달랐다. 왕전은 포로로 잡은 병사들을 복종시킨 반면, 환의는 백로(몽오)에게 바치는 예물이라면서 포로들을 화형시켰다.[49] 옥좌가 아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길을 모색하고 있으며, 만약 영정을 토벌한다면 여불위를 먼저 친 후에 정면에서 당당하게 나설 것이라면서, 형제가 힘을 모아 실권을 왕족의 손으로 되돌리고, 나라의 번영이 이어지기를 빈다고 밝혔다.[50] 사실 곽개는 조나라 조정에서 그 일을 은밀히 요가(창문군의 스파이)라는 인물에게 알려주었고, 당시 몽무, 왕전, 환의 등 주요 장수들이 다른 전선 쪽에 있는 상황이라서 여불위는 친정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로 건드렸지만, 여불위의 의도를 알아챌 뿐만 아니라 둔류에 처가가 있던 성교가 자청해서 출전한 것이다.[51] 이후 나레이션으로 '영정과 여불위의 싸움의 결판까지 앞으로 1년'이라면서 다가올 최종전을 예고하고 있었다.[52] 자백, 영황, 개맹으로 화룡칠사 문서에도 나오지만, 14년 전의 사사로운 일로 인해 오경을 제외한 나머지 6인이 서로 대립. 그리고 자백이 반대편의 3인을 직접 제거했다.[53] 단, 신과 왕분과는 다르게 강외는 이후 408화에서 저옹 토루 위에서 신과의 대화에서 삼천인장 승급을 받은 것으로 짧게 나온다.[54] 실제 역사에서는 진왕의 군제 개편을 반대하다가 실각하고 연나라로 망명한다. 이후 역사서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왕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 형가에게 진왕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자결하여 자신의 목을 내어준다는 것은 후대의 창작.[55] 초반에는 비신대와 상록군, 최성의 병사들이 같이 반란을 진압했으며, 최종에는 옹에서 온 창평군과 창문군 일행과 합세해 반란군을 이끌던 융적공을 창평군이 해치우면서 마무리되었다.[56] 환의는 모든 걸 도려내라고 했지만, 그러지 말라는 창평군의 지시가 이미 있었다.[57] 노애는 차열형에, 번유기는 참형에 처해진 것으로 그러졌다. 번오기는 변장한 채 아들이 참수당하는 걸 본 후에는 작중에서 퇴장.[58] 만화에 참고하는 《사기》의 '여불위 열전'에는 반란 진압 이후 두 아이를 자루에 담아 때려 죽였다고 한다.[59] 저자인 하라 야스히사는 40권 말미 후기에 '1화 정도 남아있지만, 이야기의 전반부(국내통일)이 끝났습니다.'라고 표현했다. 즉, 40권까지가 대략적으로 킹덤의 1부였던 셈 [60] 당시 신은 애국 반란 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입은 터라 치료차 잠시 머물렸다. 그 외 비신대는 하료초가 이끌고 다시 돌아왔는데, 융국의 바가지를 긁게 했다.[61] 사실 이 부분에 있어서, 이유라도 묻자는 환의의 말에 나귀의 답은 '''"의외로 비신대의 밥이 맛있다."'''라는 단순한 이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비신대로 올 때, 나귀와 그 일행들은 얻어 터지게 맞은 채로 왔다.[62] 이 때 동석했던 채택은 진왕과 제왕의 회담을 마친 후에 숨을 거둔다. 자세한 건 채택 문서 참조.[63] 이목이 일찍부터 흑양에서 태행산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성을 쌓고 방어진을 형성해 '''조 서부 공략 자체가 10년 정도의 장기전으로 예상'''한다고 창평군은 보았다. 대관식 이후, 영정이 신에게 '''15년 이내 중화통일을 해야 한다고 선포'''한 것과 비교하면... '''15년(참고로 그 기간이 진이 버틸 수 있는 기간이라고 한다.) 안에 육국을 멸망시킬 수 없다!'''[64] 업을 공격하면 3년 안에 조의 왕도(수도)인 한단을 점령함은 물론, 조를 멸할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모험에 가까운 전략이다.[65] 상당수 업 공방전(주해평원 전투)와 그 이후의 상황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부터는 아직까지 단행본이 최종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상태이다.[66] 왕의와 표공이 각각 마양 전투와 합종군 전투에서 방난에게 당한 후, 그들이 각각 들고 있었다가 죽기 전에 신에게 던진 창과 방패는 신이 바로 들고 싸우기보다는 영정에게 맡겼다.(이 내용은 356화의 전후처리 과정에서 악뢰의 발언에 신이 답한 것이다.) 그리고 작품 초창기부터 표가 들고 있던 검으로 싸우던 신은 둔류 전투 이후부터는 왕의의 창을 들고 싸울 수 있게 그와 비슷한 창을 들고 여러 전장에서 싸웠다.여담으로, 신이 왕의의 창을 받을 때, 창 자체가 얼마나 무겁고, 위압감이 있던지 들고 오던 병사도 낑낑거렸고, 그 광경을 본 비신대 고참들과 강외가 놀랐으며, 신 본인도 받을 때 잠깐 휘청거렸다. 또한, 그 전에 신을 배웅하려 온 영정을 본 비신대 고참들(참고로 이들 다수가 그 동안 신의 입에서 나온 영정이 누군지를 몰랐다가, 최성에서 이목과 대치하기 전에그와 만난 신의 입을 통해 알게 되고 나서 엄청나게 놀랐다고...)은 진군 도중에 신입들을 꿀밤을 때리면서 그 자리에서 예를 표하기도...[67] 동시에 연과 연합해 조의 동부를 공략하기도 하였다. 다만, 이는 사마상에 의해 진전이 없긴 했지만...[68] 업을 포위하기 전에 몰려오는 난민들 속에 병사들을 숨어 들어가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다수의 식량 창고들을 불태웠움.[69] 주해평원 전투의 패전 책임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아마도 그간 쌓였던 도양왕의 질투와 이를 악용한 곽개의 모함이 아닐까 싶다.[70]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왕전 문서 참조.[71] 여기서 그 동안 신이 들고 있던 왕의의 창이 보이지 않았지만, 649화에서 다시 사용하는 것으로 나온다. 어쩌면, 잠시 누군가에게 맡겼거나 작가의 연출 부족이 아닐까 싶다.[72] 만화 초반, 왕제 성교와 갈 승상의 난을 진압한 후 받았던 오두막이 아닌, 전유의 부하가 새로 지어준 '''어마무시하게 큰 집'''이어서 그런지 다들 과장된 리액션을 보였으며, 연회 때에는 가족까지 데리고 온 부하들도 있었다고...[73] ...라고 뜸을 들였는데, 사실은 '''이름(정확히는 성씨(姓氏))'''[74] 표가 정의 대역이라는 중임을 받고 나서 성씨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에도 무엇으로 성씨를 줘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당시 영정이 먹고 있던 과일(복숭아(李))를 보고 그걸로 성씨를 정했다고...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창문군도 어이가 없었을 정도로...[75] 641화 마지막 페이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이신이라고 하겠다는 신의 말에 영정이 바로 알았다고 답하자, 주위에 있던 창문군과 하료초는 그야말로 과한 다한증 리엑션을 펼쳤다.[76] 641화 마지막 페이지 세로줄과 맨 하단에 "진조연합군 편 종결! 다음 시리즈 설계를 위해 킹덤은 3화분 휴재합니다." "다음화는 6/4일에 재개합니다."라는 문구가 있어서 그 동안 연재를 쉬었다.[77] 불안정함 속에서 빨리 정착시키기 위해 이사를 파견할 정도.[78] 이들의 대화 중간에 산양 부근까지 들어온 위의 오봉명군 관련 소식과 한단 감옥에 갇혀 있는 이목의 모습이 비춰졌다.[79] 단, 아직 대치 중이기 때문에, 총대장 왕전만 입궁했으며, 환의와 양단화는 대리인이 대신 받았다. 그것도 중간의 두 장면으로 한정해서...[80] 영정 옆에 있던 신하가 이신의 공적을 말할 때에 끝에 얼마나 떨던지 말을 더듬고 눈물까지 날 정도였으며, 하료초와 연, 초수, 중계역을 통해 근처에서 대기하던 비신대 일원들도 눈물 바다를...[81] 창문군은 그냥 따라온 것이다. 물론 사씨는 이사나 창평군에게 들려주는 것보다 낫다고 해서 같이 듣기는 했지만...[82] 그러면서 그 다정함이 나중에 약점이 된다고 밝혔다. 아마 작품 후반에 나올 것 같은...[83] 여기서 연재가 또 다시 휴재에 들어갔다. 작가 개인 사정 혹은 코로나 19의 영향이 있는 것 같은데, '''8월 6일''' 발매호부터 재개했다.[84] 천두운과 맞붙던 란미박을 진군 방향으로 가게 해 싸우게 하고, 그 곳에 있던 등과 몽무로 하여금 수호왕이 있는 본진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 사실 몽의는 이 때, 거의 리엑션 캐릭터로 거의 공기화 수준이었다. [85] 본래 만우는 12년 전(기원전 247년 무렵), '''초에 저항하던 소국 '백'의란 나라의 대장군으로 인접한 '역'이라는 소국의 대장군이던 천두운과 함께 초군에 저항'''했지만, 저항하던 도중에 나라는 항복을 했고, 본인과 부대들은 저항하던 중에 예전 자신들의 나라의 백성들을 없애버린 것에 충격을 받았던 것 즉, '''짊어지고 있었던 것에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이는 초의 이간책으로 다른 십호성의 장수들 역시 비슷하게 당하고 항복한 이후에 춘신군에 의해 십호성으로 배치가 되면서 '불락(不落)의 십호성'이 된 것이다. 이어 수호왕(중간에 '자신은 순자 밑에서 공부했던 유학자'라고 말해 녹오미를 놀라게 했다.)은 '''"만우는 모든 것이 허무해지면서 빛났던 마음마저 허무의 바닥으로 죽어 비극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몽무에 의해 변화가 생겼다.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만우가 몽무에게 통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자, 몽무의 부하 중 한 사람이 만우가 몽무에게 한 말을 하려고 했으며, 몽의 또한 '아버지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찰나, 몽무가 만우처럼 무거운 걸 짊어지고 있냐는 녹오미의 말 한 마디로 거의 묻히긴 했다.[86] 성이 함락된 소식을 듣고, 만우와 다른 장수들은 되찾기는커녕 오히려 수도인 '영'으로 이동하고 있던 중이었다.[87] 물론, 몽무는 상대 즉, 위군을 보자마자 그냥 등을 돌렸다. 물론, 란미박도 마찬가지였고...[88] 두 부대 모두 지휘관인 몽념과 왕분의 능력이 장군이 되면서 더욱 증가하였고, 두 부대 모두 새로 합류한 애섬(낙화대)과 아화금(옥봉대)의 활약까지 더하면서 상승하고 있다.[89] 이후, 이신과 하료초, 그리고 비신대 주요 부장들간의 대화를 보면, 비신대가 밀리는 이유는 1. 주해평원 전투 당시 전사한 前 부보병장 송좌의 빈 자리가 너무 커서 후임인 패랑(부상을 입은 탓에 화면에서는 빠짐.)이나 강두 등의 신병들의 분전에도 보병단의 힘이 밀리고 있는 것.(같이 전사한 거해의 기마대의 경우, 각각의 부대들이라서 다른 곳에서 채울 수 있음.) 2. 이 부분은 아려가 진단한 것인데, 주해평원에서 금술로 신을 살린 후, 줄곧 잠이 든 채 움직이지 못한 강외로 인해 그의 부대 5천명이 나아가지도 않고 있다는 것.[90] 외모나 말투로 봐서는 강족의 강식이나 강례.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위에서 즉, 합종군 이후 강외가 유련을 죽이고 난 이후에, 후배들(강식, 강례)이 다치는 걸 원치 않아서 유련을 죽였다는 얘기를 마을의 할멈에게만 전해달라고 했는데, 이후 단행본 56권의 부록 만화에 다시 '축제'가 벌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합종군 때가 기원전 241년, 지금 작중 시점이 기원전 235년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진행되어서 차기 치우가 나왔을 수 있다. 어쨌든 '''강외의 후배'''라고 하는 저 치우의 정체는 다음 화(663화 연재 말미에 휴재 알림이 있어서 2020년 12월 중순에 나올 예정.)에서 밝혀질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