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츠 오이겐(중순양함)
- 해당 함급의 중순양함 자체에 대한 설명은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항목 참조.
[1]
1. 제원
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의 자매함이니 스펙이 비슷하다. 자세한 정보는 문서 참고.
2. 개요
크릭스마리네의 아트미랄 히퍼급 중순양함 3번함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
함명은 사부아 공자 외젠의 독일어식 표기에서 유래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테게트호프급 전함인 SMS 프린츠 오이겐의 이름을 계승하였다. 전쟁 내내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참가하여 비스마르크가 후드를 격침시키는데 공헌을 했다. 이후 동부전선의 포격지원에 나서다가 전쟁이 끝나면서 미 해군에게 압수당한다. 이후 크로스로드 작전에서 미국의 렉싱턴급 항공모함 새러토가,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 나가토 등과 함께 가라앉는다.
3. 함생
3.1. 건조 배경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할 무렵인 1933년, 당시 독일 해군의 처지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독일은 1918년에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심한 규제를 받고 있었고, 그나마 남아있던 배들은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인해 파괴된데다가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어 독일 해군은 거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이 조약으로 인해 독일 해군에게 남는 것은 대부분 도이칠란트급 전함과 같은 이미 구식화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몇척과 SMS 엠덴과 같은 구식 군함들 뿐이었다. 따라서 독일은 재해권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거의 약소국 해군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33년, 독일이 재무장을 선언하고 베르사유 조약이 무용지물이 되어나가자, 독일은 영국 해군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두기 위해 함선 몇척을 더 건조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독일 해군에게 금과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소련이 급격하게 세력을 키우게 되자 이를 견제할 국가가 필요했는데, 그중 하나가 독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독일 해군조약이 체결되어 함선의 보유를 어느정도 보유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Z 계획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여 전함 2척(비스마르크급 전함)과 중순양함 3척(아드미랄 히퍼급 중순양함)의 건조에 착수한다. 물론 이 3척의 중순양함에 프린츠 오이겐도 포함되어 있다.
원래 프린츠 오이겐은 계획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 1척과 히퍼의 설계를 적용한 15cm(5.9인치) 포를 장착한 경순양함 2척을 건조하고 끝낼 계획이었으나, 소련 해군에서 180mm 주포 를 장착한 키로프급 순양함이 취역을 하자 계획을 급히 수정하여 중순양함 3척 건조 계획을 세운다. 이에 따라 프린츠 오이겐에 대한 건조 명령이 내려졌다.
1936년에 건조 명령이 내려졌고, 4월 23일, 킬 항구의 게르마니에베르프트(Germaniawerft) 조선소에서 건조가 시작되었다.
1938년에 진수식이 이루어졌고, 그로 부터 1년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당시 전황이 급했기 때문에 건조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40년 거의 완성되어갈 무렵에 하필 야간에 영국 공군에게 공습을 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피해가 경미했기 때문에 8월 1일, 프린츠 오이겐은 정식으로 취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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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식이 진행되고있는 프린츠 오이겐.
3.2. 실전
전술했듯 취역 전에 1940년 7월 1일에 킬에 대규모 폭격이 퍼부어졌다. 이때 프린츠 오이겐도 경미한 손상을 입었다.
1941년 5월, 프린츠 오이겐은 전함 비스마르크와 함께 함장 헬무트 브링크만 대령의 지휘하에 라인 연습 작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18일, 고덴하펜을 출격해 스카게라크 해협을 통과해 북해로 나오게 되었다. 24일,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은 덴마크 해협에서 영국 해군 순양전함 HMS 후드(Hood)와 교전하게 되었다. HMS 후드는 비스마르크의 공격에 의해 두동강 나면서 격침되었다. 이때, 프린츠 오이겐도 영국 해군 전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에 주포를 명중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비스마르크 추격전 문서 참조.
그후, 프린츠 오이겐은 비스마르크와 헤어지게 된다. 이때가 비스마르크와 프린츠 오이겐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프린츠 오이겐은 6월 1일 항구에 입항하게 되고, 7월 1일 공습으로 손상되었다.
그리고 1942년 2월 11일에서 13일 까지 '켈베로스 작전(Operation Cerberus)'-통칭 채널 대쉬(Channel dash)라고 부른다.- 에 참가하게 되었다.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이 작전은 영국의 도버 해협 눈앞을 통과한다는 매우 대담한 작전이었다. 3척의 주력함 중 두 전함은 기뢰에 피격되어 손상을 입었고, 프린츠 오이겐만 아무 피해 없이 통과하였다.
1942년 2월에 노르웨이로 이동했다. 그러나 2월 23일 트론 하임 앞바다에서 영국 잠수함 트라이던트 호가 발사한 어뢰중 1기가 함미에 명중하였다. 다행히 침몰만은 면했지만, 프린츠 오이겐은 항해불능 상태가 되었다. 또한 무려 50명의 인원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어찌 되었든 대파된 프린츠 오이겐은 트론하임항까지 예인되어 응급수리에 들어갔으며, 5월에는 킬 항으로 수리를 받기 위해 독일로 향했다. 영국 해군의 공격을 빠져 나가서 5월 18일에 킬에 도착하였다. 곧바로 함미 수복 작업에 들어갔으며, 1942년 말에는 수리가 완료되어 함대 훈련함으로 임무에 복귀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1944년이 되었고, 프린츠 오이겐은 발트해로 건너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프린츠 오이겐은 요새화된 고글란드 섬에 포격을 가하기도 하고, 핀란드에서 철수하는 독일군 병사들을 실은 수송선을 호위하기도 했다. 또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뤼초와 함께 소련의 후방도시 투쿰스에 포격을 가하는 선전성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서 오이겐은 대형 사고를 터트리는데, 1944년 10월 15일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라이프치히(Leipizig)와 충돌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그나마 프린츠 오이겐은 들이받은 쪽이었는 데다가 배수량도 라이프치히보다 거의 두 배나 커서 경미한 손상을 입는 것으로 끝났으나, 라이프치히는 거의 두동강나기 직전까지 갔고 이후 간단한 수리만 받고 종전까지 말 그대로 항구에 틀어박혀 있을수 밖에 없었다.
충돌사고 이후, 프린츠 오이겐은 고펜하펜으로 이동하여 한달간의 수리를 받았다. 수리가 끝나자, 프린츠 오이겐은 11월 20일부터 21일까지 4척의 어뢰정들과 함께 Sworbe 반도에 포격 지원을 실시했다. 이 때 무려 500번의 포격을 실시한 탓에, 오이겐의 포신이 마모되었고 이를 교체하기 위해 프린츠 오이겐은 다시 고펜하펜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1945년 1월, 포신 교체가 완료되자마자 프린츠 오이겐은 다시 임무에 투입되었다. 오이겐은 구축함 한 척과 어뢰정 한 척의 지원을 받으며 쾨니히스베르크로 진격해오는 소련군을 방어함과 동시에 쾨니헤스베르크를 방위하는 제 18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1945년 3월, 프린츠 오이겐은 탄약부족으로 고펜하펜으로 돌아온 뒤 그곳에서 탄약을 보충받은 후 이번에는 도이칠란트급 전함 슐리지엔과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뤼초와 함께 코펜하펜, 단치히, 그리고 헬라 인근으로 진격해 오는 소련군을 상대로 포격을 가했다. 이 작전에서 프린츠 오이겐은 주함포에서만 2025발이 넘는 포탄을 발포했다.
1945년 4월 8일, 프린츠 오이겐은 작전을 끝마치고 뤼초와 함께 슈비네뮌데 (현 폴란드 시비노우이시치에)에 정박했다. 그리고 4월 13일 34기의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가 오이겐과 뤼초를 격침시키기 위해 출격했으나, 구름이 짖게 끼어 있어서 일단은 철수했다. 이틀 뒤, 구름이 완전히 개자, 영국 공군은 다시 랭커스터들을 보냈고, 톨보이 폭탄 한 발로 뤼초를 격침시키는데 성공한다. 이 공습에서도 살아남은 프린츠 오이겐은 4월 20일 최종적으로 코펜하겐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종전 때까지 정박해 있었다. 이후 5월 7일, 독일이 최종적으로 연합군에게 항복하였고, 프린츠 오이겐은 독일 해군에서 제적됨과 동시에 영국 해군 관할이 되었다.
4. 최후
프린츠 오이겐은 격전의 한중간에서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전까지 살아 남은 행운의 함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후 전리품으로 미국에 넘겨져 미분류 다용도함 USS 프린츠 오이겐(USS Prinz Eugen, IX-300)으로서 미국 해군에 편입되었다. 조사와 시험을 마친 프린츠 오이겐은 크로스로드 작전 원자 폭탄 실험의 표적 함대에 배치되었다. 1946년 7월의 '에이블'과 '베이커' 실험에서 침몰하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잔류 방사능이 강하여 수리하지 못하였다. 이후 콰제린 환초로 옮기는 도중에 얕은 여울에서 전복되어 좌초되어, 현재도 그 위치(북위 8°45'9.49", 동경 167°40'59.60")에 놓여 있다.구글맵 링크
1978년, 프린츠 오이겐의 좌현 프로펠러가 인양되었으며, 이 함 승조원 출신 참전자들의 요청에 따라 독일로 반환되어 라뵈(Laboe)의 독일 해군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다.
2018년 프린츠 오이겐의 연료탱크에 남아 있던 잔존유를 회수하였다.#
유럽 해전에서 구르며 살아남았고, 종전 후 핵무기 실험에서도 버티다가 좌초되어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맷집이야 당시 해군조약에서 중순양함은 규격 1만톤으로 제한했으나 프린츠 오이겐은 이를 어기고 1만 5천톤 규격이었으니 맷집이 좋은 거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설계 문제로 배수량값을 전혀 못하였고, 배수량과 비교하면 우월한 맷집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미군에서 똑같이 탈조약형으로 만든 중순양함들과 나란히보면 과대평가가 있다. 그리고 독일 해군은 애초에 유보트를 활용한 통상파괴전 이외에 대규모 함대 운영을 한 것도 아니라 프린츠 오이겐이 살아남기에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었다.[2] 오히려 더 치열한 태평양 전쟁에서 구르고도 살아남은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포틀랜드가 프린츠 오이겐보다 더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5. 미디어에 등장
-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에서 2번에 걸쳐서 함명으로 채용된적이 있다. 건담 센티넬에서는 살라미스급 순양함에, 게임 SD건담 사이코 샐러맨더의 위협에서는 치베급 중순양함에 본함의 이름이 인용되었다.
- 네이비필드에 정규전함/항모트리 2차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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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비필드2에서 10티어 중순양함으로 등장한다.
- 함대 컬렉션에서 등장한다.
- 전함소녀에서 등장한다.
- 벽람항로에서 SSR중순양함으로 등장하며, 로그인 8일차에 무료로 받을 수 있다.
- 월드 오브 워쉽에 독일 8티어 프리미엄 함선으로 등장. 8티어임에도. 내구도가 45,000이라는 흠좀무한 맷집을 보여진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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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al Creed:Warships에서 4티어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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