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역대 전당대회
1. 개요
한나라당의 역대 전당대회에 대한 문서.
2. 창당대회
- 1997년 11월 21일, 신한국당-민주당 합동 전당대회는 양당의 합당과 한나라당의 출범을 의결하고, 9개의 강령과 62개의 기본정책을 채택한 뒤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를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겸 한나라당 명예 총재로, 민주당 조순 총재를 한나라당 총재로 선출했다. 이어 조순 총재는 신한국당 이한동 대표위원을 한나라당 대표위원으로 지명했다.
3. 1차 전당대회
- 1998년 4월 10일, 한나라당은 대표위원직을 폐지하고 총재 중심의 단일지도체제를 채택했다. 이어서 조순 총재와 이회창 명예총재를 각각 총재와 명예총재로 재추대했다.
4. 2차 전당대회
5. 3차 전당대회
- 전에 이어 이회창 총재가 다시 당선되었다. 비주류 계파였던 김덕룡과 강삼재의 분열과 16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회창 총재가 비주류 측의 지구당을 대부분 자신의 계파 사람들로 채워넣었고, 총선에서도 승리했던 까닭에 손쉽게 재선에 성공했다.
6. 4차 전당대회
- 최초로 단일지도체제에서 집단지도체제로 바꾼 뒤 최고위원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득표한 서청원 당시 의원이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또한 집단지도체제로 바꿈과 동시에 여성 몫 최고위원 제도를 도입해 19.2%를 득표한 김일윤 당시 의원 대신 김정숙 당시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다.
7. 5차 전당대회
-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한 한나라당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했으나 재검표 결과 원래 선거 결과와 별반 차이가 없이 국고만 허비하자 서청원 당시 대표는 대선 패배와 불복에 책임을 지고 박희태 최고위원을 권한대행으로 지명 후 사퇴한다. 그 뒤 대선 패배를 다시 겪은 한나라당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1] 의 개혁안에 따라 개혁된 단일지도체제(당 대표와 지역운영위원 체제)를 택하고, 경선을 위해 일반당원 50%, 국민 50%로 구성된 22만 227446명의 선거인단을 구성했다.
8. 6차 전당대회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으로 인해 이른바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은 최병렬 당시 대표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사퇴하자 3개월 과도기 대표를 뽑기로 하며 여론조사를 포함시켰다. 결과 박근혜 당시 의원이 당선되었다.
9. 7차 전당대회
- 3개월 과도기 지도부를 뒤로 하고 한나라당은 집단지도체를 택하고 과도기 지도부 대표였던 박근혜 당시 대표를 대표로 선출한다. 이 전당대회는 여론조사와 인터넷 투표로 선출했으며 원희룡과 김영선 같은 소장파 의원들이 이강두, 이규택 등의 중진 의원들을 이기는 이변이 일어났다.
10. 8차 전당대회
11. 9차 전당대회
- 2007년 8월 20일 역사에 회자될 대선 경선을 치른 뒤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12. 10차 전당대회
13. 11차 전당대회
14. 12차 전당대회
- 계파색이 뚜렷하지 않았던, 다르게 말하면 친박과 친이 사이에 위치하던 홍준표 당시 의원이 친박으로 평가되었으나 사실 소신파이던 유승민 당시 의원과 친이가 밀던 원희룡 당시 의원을 누르고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이 전당대회로 인해 친박의 세력이 친이를 압도한 것을 물론 당권이 친박으로 넘어왔다. 또한 이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차기 대권주자를 찾지 못하던 친이는 몰락하고 만다.
- 이 선거에 출마한 이들 모두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당장 홍준표는 3개월만에 대표직에서 쫓겨나듯이 사퇴했으며 차기 총선에서 낙선했다. 또한 원희룡은 차기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으나 낙선하며 국회를 떠났고, 나경원 역시 차기 총선에서 출마조차 하지 못했다. 유승민도 당시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에게 찍혀있을 때이니... 권영세 역시 이 전당대회 이후로 두번 내리 낙선했다.
[1] 홍사덕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2] 공교롭게도 강재섭 원내대표의 후임 원내대표가 바로 이 전당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이재오다.[3] 상단의 표를 보면, 국민 여론조사 수치로만 보면 정몽준 후보가 비교적 큰 표차로 1등이지만, 당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인단 투표에선 세력이 미비하여 3등을 차지하였고, 반면 박희태 후보는 국민 여론조사에선 정몽준 후보에 밀렸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크게 이겨서 합산 1등이 되었다.[4] 17대 후반기(2007~17대 국회 임기 종료 시)와 18대 초반기(2009~2010)[5] 18대 국회 초반기(18대 국회 개원~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