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상호방위조약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大韓民國-美合衆國間-相互防衛條約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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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53864> '''한미동맹 60주년 로고'''[1]
'''체결일'''
1953년 10월 1일
(2024-12-22 05:48:37 현재 '''71'''주년)
'''가맹국'''
대한민국
미합중국
'''본부'''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미연합군사령부
'''모토'''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
'''병력'''
총 상비군 2,120,000 명(2015)
주한미군 37,000 명
보유 전차 11,274 대
보유 장갑차 44,032 대
보유 전투기 8,480 대
보유 군함 2,600 척
1. 개요
2. 체결 과정
3. 조약 전문
4. 의의
4.1. 대한민국의 국방 전략에 끼치는 영향
5.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에 종속됐다?
5.1. 갓끈전술
6. 조약 체결에서 이승만의 역할
7. 방위 지역에 대한 해석 논란
8. 제6조의 해석
9. 자동 개입에 대한 여부 논란
10. '태평양 지역'에 대한 해석
12. 어록
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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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미상호방위조약 가(假)조인식을 지켜보는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2]
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미국 사이에 체결 된 군사 동맹 조약.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이다.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조인하였고 1년 후 1954년 11월 18일 정식 발효되었다. 다만 명칭과 달리 실제로는 한국군은 미국 유사시에도 동원될 수 없으며, 미국이 한국 유사시에만 병력을 동원할 수 있으므로 한국 방위조약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미국과 여러 국가의 동맹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나뉘는데, 미국이 소속국으로서 다른 회원국의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하는 조약기구 형태인 나토와 그 이외의 동맹 국가들로 나뉜다. 이 중 후자는 주요 비 나토 동맹국(Major Non-NATO Ally)이라 하는데, 이 중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는 대한민국, 일본[3], 필리핀[4], 호주, 뉴질랜드[5]가 있다.

2. 체결 과정


6.25 전쟁이 발발 후 3년을 채워 가는 상황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경질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본토에서는 '무의미한 전쟁, 질질 끌지 말고 휴전협정 맺고 빨리 끝내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17일 당시 미국 브릭스 대사와의 회동에서 휴전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해외에 간섭을 하지 말자는 고립주의 방향으로 흘러가던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여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6월 18일 약 25,000명의 반공 포로를 직권 석방시키면서 반공포로 석방 사건을 일으킨다. 이 조치에 크게 놀란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약속 위반자'라고 비난했고 '이승만을 제거해야 한다'는 건의안이 나오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휴전협상 주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단독으로라도 북진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미국은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휴전에 응할 것을 제시, 1953년 7월 휴전협상이 체결되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3일 미국과 협상을 시작, 8월 8일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여기에 크게 기뻐하며 "이 조약으로 우리 후손들은 많은 혜택을 볼 것이다"라고 발표했다.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존 포스터 델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조인하였으나, 이후 삽입조항에 대한 양국의 의견차가 심하여 시간을 끌다가 1년 후인 1954년 11월 18일에 정식으로 발효되었다.


3. 조약 전문


본 조약의 당사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확인하며,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 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가 갖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동의 건의를 공공연히 또한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라도 국제적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무력을 행사함을 삼갈 것을 약속한다.

'''제2조'''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自助)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이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제4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용(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6]

'''제5조''' 본 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에 의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 효력을 발생한다.

'''제6조'''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이상의 증거로서 하기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서명한다.

본 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국문과 영문 두벌로 작성되었다.

대한민국을 위하여 변 영 태

미합중국을 위하여 존 포스터 덜레스

'''미합중국의 양해사항'''[7]

어떤 체약국도 이 조약의 제3조 아래서는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조약의 어떤 경우도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하에 합법적으로 존치하기로 된 것과 미합중국에 의해 결정된 영역에 대한 무력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하여 원조를 제공할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4. 의의


2021년 현재까지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성공작+@로 평가받고 있는데 일단 제2의 한국 전쟁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즉 조약의 가장 큰 목적인 '전쟁 방지'를 이뤄냈다. 여기에 국방력에 쏠릴 역량을 미군이 부담하여 대한민국은 경제개발에 그만큼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이다. 즉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하여 이후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를 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안보적 위기가 높은 국가들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3% 미만으로[8] 세계 평균과 그리 차이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매년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항시 전쟁 재발의 위험이 존재하는 한반도에 '미국이 전쟁을 막아준다'라는 안정감을 제공하여 해외 투자자금의 안정적 유치에 크게 기여해 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이승만의 생떼에 가까운 승부수에 심히 불쾌함을 내비치면서 마지못해 허락해 준 것이었으나,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우리 노선에 참여한 나라는 성공할 수 있다'라는 모범 사례로서 선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조약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일본에서 한반도까지 확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는 중국이 G2로 부상한 2010년대에 들어 더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일례로 서해에 항공모함을 파견해 한미합동훈련을 할 때마다 중국과 북한의 속은 타들어가지만, 수십년간 맺어온 돈독한 한미관계라는 명분이 있어 함부로 항의하기 힘든 상황.[9] 2017년, 24년 만에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한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역시 반세기 넘게 이어온 혈맹관계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성장한 한국의 발전 사례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대한민국 국회 연설 - 풀영상)
물론 역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적화통일을 좌절시킨 근원이라 볼 수 있다. 휴전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 보호를 담보하여 북한 수뇌부의 침략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북한 정권이 빼놓지 않고 외치는 요구사항 중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폐기'가 있는 것이다. 예 12356
조약의 내용상 '상호' 방위조약이므로 한국이 침략을 당했을 때 미국이 도와주는 것뿐 아니라 미국이 침략 받았을 때 한국이 도와주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일단 조문상 '태평양 지역'으로 활동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럽 지역이나 대서양 지역에서의 사태에는 자동참전의 의무가 없다. 가령 러시아군이 유럽 지역을 침공해서 NATO 및 미군이 방어전을 치뤄야 할 때, 한국군이 자동으로 유럽 지역에 파병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조문상 '태평양 지역'으로 활동범위가 한정되어 있기는 하나 일본 내 미군기지, 미국령 괌이나 하와이 등이 해당되며 사실 조문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전통적 한미관계를 고려하면 한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을 도와준다는 추측을 할 수는 있다. 다만 태평양 지역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총력전 단위로 침략받을 사태가 될 정도면 이미 조약에 따라 한국이 참전해도 의미가 없을 제3차 세계대전급일 가능성이 크므로 사실상 이 조약의 일방적인 수혜자는 가시적으로 유형의 군사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은 어떻게든 조약의 상호방위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를 높이려고 미국의 해외작전도 방위조약에 들어간다는 주장을 해 한국의 지원을 요구하고는 한다. 베트남 전쟁 때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한국군 파병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은 것도 이와 조금 연관된다.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서 참조.
그리고 제4조의 내용에 의거해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반면, 한국군 병력이 미국 영토에 배치될 권리와 의무의 근거는 일단 조문 상으로는 명시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의 전쟁선포권은 의회에 있으므로 실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미국 의회에서 거부한다면 미국이 해당 조약을 무시할 수 있다.[출처] 물론 한국이 자유주의 진영에서 이탈하지 않는 이상, 미국 의회에서 참전을 거부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군사적 요충지이자 동맹국인 한국을 이유 없이 버릴 수도 없거니와, 동맹국 간의 조약을 쉽사리 무시했다간 미국의 외교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고, 미국 영향하의 동맹이 삐걱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4.1. 대한민국의 국방 전략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오늘날 국방개혁 2020에서 가장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들은 이런 맥락을 전제로 이해해야 한다.
  • 첫 번째, 자주국방의 실현이다. 이는 과거 애치슨라인이 한반도를 포함하지 않자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적화통일의 기회로 보았고 무기와 작전참모를 통해 한국전쟁을 준비하였던 전례가 있듯이, 대한민국 정부는 정치적인 견해가 다를지언정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다른나라의 보수적인 면을 보인다. IMF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떨어진 적은 있어도, 국방비의 총액이 줄어든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대한민국 역대정부 국방비
  • 두 번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철수 배경을 되돌아 봄으로써, 현재 한반도의 상황을 분석하고 미래 한국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수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국가간의 동맹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무시되곤 했다.
대한민국이 인구 5천만에 작은 국토를 가졌지만 전체적인 군사력 면에서는 세계 6위에 해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는데 #, 이번 국방개혁은 앞으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국가의 안보는 스스로 지킬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겠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이를 오늘날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권 전환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만약 중국(+북한) vs 미국(+일본, 한국) 구도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규모가 국지전이건, 전면전이건 간에 한반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혹여 미국이나 중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양국의 영토에 직접적인 피해가 간다면 이는 핵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남오세티아 전쟁이나 6.25 전쟁과 같은 대리전의 양상이 재현될 것이며, 이는 즉 한반도가 다시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대한민국 국군에 대한 통수권은 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대통령 이 가지게 되지만,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이상 위와 같은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자동적으로 한국이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미중 양국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확전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적당한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고 협정을 통해 북한의 영토를 분할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10] 북한분할 문서를 참고할 것.
2020년 9월 17일, 미국의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견제하는 쿼드 플러스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했는데 #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고심중이다. 중국과 해상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집단 안보체제에 들어간 이후의 일을 생각했을 때 섣불리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에 종속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되었는지"의 여부를 미국 국익의 기여도로 측정하면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된 것은 사실이다.''' 흔히 한미일 삼각동맹이라고 부르는데, 극단적으로 애치슨 라인처럼 한국이 끊어지고 미일동맹이 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미국이 일본을 버리고 한미동맹만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닉슨이 말하는 미 국무부의 국익분류법에 따르면, 일본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활적 동맹'으로 분류되고, 한국의 안전보장은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로 분류된 일본의 안전보장에 직결되므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주일미군을 지키기 위해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이, '''한국을 버릴 수 없는 안전장치''' 구실도 하기 때문이다. 즉, 월남처럼 '버리면 그만'이라며 쉽게 손절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이 무너질 경우 동해를 경계로 미국의 ‘바이탈 인터레스트’ 국가인 일본이 직접 공산주의와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미국은 한국을 버릴 수 없다. 간혹 한국도 월남처럼 미국이 손절하고 발빼면 어쩌냐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본이 위협받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일본도 적극 찬성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일본의 안보 구상의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일안전보장조약 안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미국의 핵심안보동맹에 일본이 우선적인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일본이 한국보다 큰 국가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섬나라라는 특성에 근거하여 하와이, 괌과 함께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 안보지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함부로 동맹을 숙청할 수 있는지"의 여부로써 종속성을 따지자면 위와 같은 사항 때문에 한국이 역외 동맹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기에 한미동맹도 미국이 함부로 숙청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적잖이 미일동맹과 비등한 면이 있다. 전세계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중국의 수도와 가장 가까운 나라는 대한민국이며, 과거와 달리 현재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이 결코 버릴 수 없을 정도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극한의 실리를 추구할 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된다. 과거 중국은 한반도를 '''대륙의 심장을 찌르는 단검'''이라 평하였으며, 이는 중국 입장에서도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미국이 미일동맹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한미동맹을 "핏대 세우면서 여차하면 숙청할 사항으로 취급하기에는" 미국에게 한미동맹의 이득도 거대하다는 것이다. 이는 미일안보조약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기능성 측면에서는 개별운전(...)인 상태에서, 미일안보조약은 일본이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를 받는데 그 반대급부로 일본에는 국방군이 없는 반면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의 군대 보유에 제약이 없이-다시 말해 한국이 제대로 된 국방군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한미 양국이 서로를 지키는 양상이기에, 동맹의 계약상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일안전보장조약보다 앞선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동맹이 작동하는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 다시 말해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한미동맹이 자의적으로 절전 모드에 돌입할 것이냐(...)"를 따지자면 그렇지가 않으므로,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11], 이 부분은 상술한 한미동맹의 미국 입장에서의 중요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두 동맹조약의 규정을 살펴보면[12] 미일안보조약에서 한국에게 직접적으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는 조항은 "일본국의 시정 지대에서 미일 양국이 외침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한국이 일본을 침략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대목 뿐이고[13],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적국의 침략에 서로 공조해서 대응하는 내용과 주한미군을 배치하는 내용만 있지, 적국에서 미국의 동맹국가를 열외시킨다느니 하는 내용은 없다. 더욱이 이 두 상호방위조약에는 애꿎은 타국에게 선빵 날리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 있는데, 즉 타국에게 선빵 날리는 것은 동맹조약 위반인 것이다. 즉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미일동맹 위반에 해당)하면 한미동맹에 따라 한국 편에 서고, 한국이 일본을 침략(한미동맹 위반에 해당)하면 미일동맹에 따라 일본 편에 설 것이 예측되지,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미일동맹에 따라 일본 편에 서리라는 명제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무리가 많다.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대륙에서 해양으로 진출하거나, 역으로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원나라는 고려를 통해 일본 원정을 감행했고, 일제는 대륙 침탈에 앞서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 이처럼 교두보라는 위치는 다른 세력의 공격을 당하기도 쉽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접근성'''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남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에 넘어간다면, 일본은 그 대륙 세력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는 최후의 관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같은 해양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대륙으로 향한 발판을 잃어버렸으니 사실상 대륙에 대한 진출을 포기하고 방어전에만 집중해야 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구성하는 6개 국가(한국, 일본, 미국 vs 북한, 중국, 러시아)에서 한국이 미국과 일본 쪽에 서게 되면 잘 해도 균형을 이루는 것에 그치지만, 만약 어떠한 이유로 수틀린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쪽에 서게 되면 그 순간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일방적 우세로 넘어가버린다.
이런 지정학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카드이기 때문에 단지 '일본에 대한 위협' 문제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국익과 직결되어 있다.

5.1. 갓끈전술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안보 동맹국은 미국이지 일본이 아닌데다가 미국이 한국에 대해 미국과의 안보관계를 지키면 '일본과의 마찰이 생기면 동맹 깬다' 식의 압박을 가하지 않거나 자제한다는 점에서 한국에게 효용성이 그다지 크다고 볼 수 없다.[14]

6. 조약 체결에서 이승만의 역할


오늘날 미국의 국익에서 한반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에도 미국이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강력히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 '미국은 어차피 당시에 한반도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니까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라고 평가하면 조약 체결에 있어 이승만의 역할은 미미했다고 할 수 있고, '미국은 당시에 한반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승만의 노력으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라고 평가하면 이승만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냉전 당시 전면전을 대비함에 있어 한반도의 중요성은 그렇게 크지 않다. M48 전차로 베이징을 밀어보고 싶던 말던 아예 한반도가 통일되어 있어서 바로 요동지역에 밀고 들어가서 기동전을 벌일 수 있다면 모를까, 일단 조약체결이 거론되던 시점에는 이미 분단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던 시점인데 6.25 전쟁의 전개 양상을 봐도 알겠지만 한반도 지형 자체가 아프가니스탄 따위는 우스우리만치 기동전 자체가 어려운 지옥같은 산악지형에, 국토는 좁아 터져서 병력 밀집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포병과 공군의 지원을 받는 미군의 기갑전력으로 전선에 돌파구를 뚫어도 차량화 보병도 아니고 그냥 보병이 도보로 금방 다시 몰려와서 메워버리는 수준이기 때문에 현대 미군이 중동지역에서 보여온 기동전투에서의 교환비를 생각하면 대단히 곤란하다. 냉전당시 서유럽 평원에서도 기동을 위해 적어도 100km 이상은 보장되었는데 이보다도 좁은 지형에서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갈려나가는건 보병이며, 이런 최악의 교환비로 참호전 수준으로 느려터진 진격을 중국 육군과 북한군, 그리고 북중소의 방공군 + 공군을 상대로 이어나가는 건 미국 입장에서도 정말 피하고 싶은 전투다.
심지어 한국전쟁 발발 직전에는 한국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음을 미국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남한에 미군 지상군을 주둔시키는 선택지를 극력 반대했다. 만약 중국과 소련이 함께 개입하는 수준의 전면전 발생시 대륙으로의 진격은 커녕 미군의 생존 자체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합동참모본부에서는 한반도 정세를 논의할때 3차대전 발발시 한반도는 제2의 필리핀 바탄반도[15]가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가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 중국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역을 가장 빠르게 육로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같은 대명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차라리 미군이 평화시에도 중국에 대한 외교적인 압박은 커녕 돈만 잡아 먹는 한반도를 포기하고 일본에서부터 제 7 함대와 주일미군을 주축으로[16] 작전을 개시하면 중국 해안지역과 한반도 주요도시 전역에 대해 공군과 미사일 전력으로 전략폭격을 하고 50년대 당시로서는 아직 살아있던 국부군과 함께 중국 동남부나 동부해안에 상륙작전을 하는게 차라리 소련군이 뒷목잡을 시추에이션이다. 한반도는 애초에 소련 극동군구 방공군의 작전반경내라 오히려 한반도에서 애먼 병력만 축내느니 중국부터 처리해 나가고 소련 극동군구를 알래스카 쪽에서 묶어둠 으로서 소련이 서유럽에만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방대한 소-중 국경에 병력과 정보자산을 분산하여 배치하는게 미국으로서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승만이 냉전 초기부터 역설한 한반도 교두보론은 미국으로 하여금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진주만 폭격 전부터 일본의 야욕 그리고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의 중요성을 꾸준히 역설해온 이론이다. 이승만이 내세운 한반도 교두보론에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상술한 이유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실제 방위가 필요한 서유럽과 패전후 미국의 영향력 고정을 위한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휴전으로 인해 지속될 불안정한 정세와 대한민국이 지출할 국방에 대한 천문학적 예산 낭비에 대해 차관공급과 병행한 외교적인 달래기였기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인 파기가 가능한 조항이 존재하는 등 여러가지 제약이 많이 걸려있다.
이승만이 1948년 8월에 미국에게 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가능성을 물었을 때 미대사였던 무초는 "'''미국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이래 어느 국가와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일이 없다'''"고 답하며 거절했다. 이승만은 1949년 6월에 주한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상호방위원조협정', '주한미군사고문단설치협정'같은 큰 실익 없는 협정을 맺어주는게 다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미국은 상호방위조약 대신 16개 유엔 참전국들 명의로 '확대제재선언'을 공포하고 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시켜 주는 것으로 넘어가려 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영국및 영연방, 그리고 UN 참전국 전체를 상대로 보란듯이 반공포로 석방 사건같은 초강수로 미국과 제 1세계로 하여금 일본이 아닌 한국이야말로 진정한 제 1세계의 최전방임을 각인시켜 지금껏 지속되어온 한미동맹의 주춧돌을 때려박아 넣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는 이승만의 영향이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미국도 정부 차원에서 '인도적 차원에서든 일본의 부담을 돌리기 위해서든 간에 아무튼 동맹도 체결했겠다, 나름 제1세계 최전방이기도 하니 경제원조나 해서 먹고나 살게 해주자.' 하는 정도로 48억 달러를 '농업' 중심으로 지원하고 원조해줬지, 정작 후일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주역인 중공업이 아니었고 박정희 대통령이 중공업 산업의 기본인 제철 관련 단지를 자국화할 이유로 소박하기 짝이없는 연산 조강 30만 톤짜리 종합제철소인 울산제철을 짓기위해 차관을 빌리려고 미국의 AID에 지원을 요청하자 미국은 '그 정도 규모의 제철소를 돌리는 데는 철광석과 석탄 수입에만 연간 3500만 달러가 필요한데 한국은 연간 수출 실적이 1961년 당시 4200만 달러밖에 안 되니 도저히 원료수입을 감당할 수 없다'며 냅다 퇴짜를 날렸다.
상기한 사실과 같이 한국을 최빈국에서 건실한 국가로 만들어 중국에 외교적인 압력을 가하거나 중국을 공격할 때 지원해줄 수 있게 하기 위해 들여야 할 비용은 애치슨 라인만을 방어하는 비용보다 천문학적으로 높았다.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으로 남은 공장지대와 인프라는 모조리 전쟁으로 날아갔으며 새로 건설을 하더라도 언제 또 전쟁이 날지 모르는데다, 개발할 자원이 특출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농업조차도 국토가 작고 그나마도 산악지형이 국토의 태반인 여러모로 모든 조건에서 완전히 파탄난 국가에 투자를 하는 미친짓을 하느니 미국과 전쟁을 해볼정도의 해군력을 지닐 기술과 공업능력이 존재했었으며 한국에 군수물자를 수출하며 재건의 발판을 밟아가던 일본에 투자를 하는 것이 누가봐도 상식적인 판단이었음은 자명하며, 이승만이 주한미군과 상호방위조약을 못박음으로서 차관을 토대로 안정적인 투자와 건설을 이어나가 산업형태의 패러다임을 변경할 기회가 제공되었다.

7. 방위 지역에 대한 해석 논란


미국 영토에 대해서는 별 논란이 없지만 한국 영토에 대한 해석이 논란이 된다. 우선 MDL(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대해서는 한국 영토라는 데 이견이 전혀 없지만 그 이북 지역에 대해서는 양측의 의견이 상당히 갈린다. 한국은 MDL 이북 지역에 대해서도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북한이라는 독립국가가 점유한 영토이므로 한국과는 별개의 지역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북한에 대한 미수교와는 별도로 북한 자체는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국은 DMZ 이남 지역에 대한 방위 의무는 제대로 이행하겠지만 MDL을 넘어갈 경우 전시작전통제권을 근거로 한국군의 북진을 막거나[17] 아니면 한국군의 북진은 용인하되 미군은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고 한국군만 북한군과 맞서게 할 가능성이 높다.[18]
다만 미국은 최근 중국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는 쪽으로 가면서 친중정권 수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 주도 하의 통일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최근의 작계에서도 이런 점이 반영되어 미군 역시 북한에 개입하도록 되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국군 vs 북한군 문서 참고.

8. 제6조의 해석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조인하였으나 즉각 발효되지 않았는데 미국측에서 제6조에 이 조약의 파기요건인 '두 나라 중 한 쪽이 통고하면 1년 후 효력이 상실 가능하다'를 명기하였고 여기에 대한민국 국회가 불만을 표시하면서 발효가 지연되었다. 이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만약 '''상대방이 동맹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조약을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통고하면'(notify) 1년 후 폐기의 조건이 구축된다. 조약체결 후 60년간 별 시끄러운 얘기 없이 지내왔기에 두 나라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동맹이 영속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조약은 이 구절 때문에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즉 끊고 싶어도 못 끊는 장치를 해 놓은 그런 상황이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양국의 의지가 이 조약을 유지시키는 근본적 힘이다.
다만 '통고하면'(notify)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협의고 뭐고 없이 1년 후 자동 폐기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원문을 보면 may terminate라고 되어 있다. 이는 문법적으로 '필요조건'인데, 간단히 말하면 1년이 되기 전에 폐기 의사가 '''거역될 수 있는''', 즉 폐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에 반해 현행 미일안보조약은 '통고 시 1년 후 폐기'가 shall terminate로 '필요충분조건'이어서, 폐기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의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미일안보조약이나 폐기 의사를 통고하지 않으면 절대 안전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미일안보조약과 달리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폐기 의사가 통고되고도 조약 유지가 되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물론 한국은 이 파기조건 부분의 삭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고 현시각까지 해당 문구는 유효하다. 이러한 취약성 때문에 과거 지미 카터 치세처럼 한국과 미국 사이에 갈등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조약의 파기 가능성이 언급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 중 이 조약의 수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일부는 아예 폐기까지 주장하며, 미국측에서도 일부 싱크탱크들이나 2016년 대선 이슈인물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처럼 현 한미동맹 관련 조약 내용을 수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조약은 어느 한쪽이 만약에 마음만 먹게 되면 허무하게 실효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파기조건 문구를 넣은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오직 5개의 눈이라고 불리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4개국 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다른 영연방권 4개국처럼 미국과 특별히 연결된 게 아니라 미국 유대인들의 지원과 대중동 정책의 첨병으로써의 가치 때문에 유지하는 거라 한국이나 일본과 극단적으로 다른 것도 아니다. 이는 일본이 맺은 신 미일안전보장조약이라 불리는《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의 제10조와 동일한 문구라서 한국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만약 파기조건을 삭제하면 한국과 미국은 '영원한 동맹'이라는 뜻인데 미국의 방향과 정면 배치되기 때문에 한국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는 없었다. 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일본, 영국, 필리핀과의 조문에도 1년 기한 원칙이 똑같이 명시되어 있어 한국에만 특별대우를 할 수는 없다.'라는 논리로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9. 자동 개입에 대한 여부 논란


현재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자동개입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가 많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자동개입에 관련되어 있는 문항이 없다. 미일관계에 근간이 되는 미일안전보장조약도 얼핏보면 한미관계보다 높지만. 사실은 자동개입이 아니다. 이 조약에 5조항인 "미일 양국은 일본의 영역 및 재일 미군기지의 어느 한 쪽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는 경우 자국의 헌법상의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상이란 미국 의회를 말하는건데, 즉, '미국 의회에 승인이 되어야만 개입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한미상호조약 3조항인 이 문구도 헌법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있어서 '''미국 의회에서 승인 되어야 개입'''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나라들의 예시를 보면,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는 1949년에 체결된 나토 협약 제5항에는 동맹국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즉각 개입한다고 명시되어있다. 북한과 중국의 근간되는 조중 우호 및 상호원조조약또한 2조항에 "지체 없이 기타 및 원조 제공"이라는 문구가 있어 자동개입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1973년에 제정된 "미국의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을 발효했는데, 이 법에 따라 미군의 해외 무력 행동은 ▲미 의회의 ‘전쟁 선언’ ▲미국 영토와 소유물, 미군에 가해진 국가 긴급상황으로 제한된다.
미국 대통령은 '무력 행동 개시 48시간 내에 이를 미 의회에 통보'해야 하며, 미 의회의 ‘무력 행동’ 승인이 없을 경우 '최대 90일 내에 미군을 해외 분쟁지역에서 철수'해야 한다. 한반도 무력 충돌 발생시, 미 대통령은 ‘긴급상황’ 판단에 따라 미 의회의 사전 승인 없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군의 해외 전쟁 수행은 어느 경우든 '90일을 넘어 지속되려면'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백승주 자유한국당 "한미 조약에 자동개입이라는 워딩이 있나 없나" 질문에 "자동개입이라고는 없다"며 "(오전에) 의원님이 말한 법적인 자동개입 용어에 대해 인식을 잘못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기사
그러나 예외적으로 미군 병사나, 기지가 공격받았을 경우 미국 대통령은 즉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이른바 인계철선이다. #[19]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크림반도 침공이 있고 나서, 작년 6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군은 미국·캐나다·독일·영국군으로 구성된 NATO군 4개 대대를 러시아와 인접한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에 배치했다. 러시아의 향후 침공 시, 이들 부대가 NATO군이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3개월 안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미국은 자국민의 생명을 매우 중요시하는 나라인만큼 의회에서 개전 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확률은 낮다. 한국이 한강 이북의 주한미군 주둔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0. '태평양 지역'에 대한 해석


조약체결 당시 한국은 북한을 침략국으로 설정하였으나 조약 본문에는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태평양 지역'''으로 대응 범위를 추상적으로 잡아 놓았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 뒤에 버티고 있던 소련 및 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을 막아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 그리고 정부 고위급 인사들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의 목적을 북한을 막기 위한 것만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상 목적은 중-러의 힘을 억누르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또한 맞서 싸울 특정 이념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냉전 체제가 끝난 후, 더 나아가 한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중국과 러시아를 한국을 이용하여 견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역시 북한과 통일 후에 북한이란 주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을 이용하여 견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근본적인 목적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국가에 상관없이 어떤 나라라도 한국을 공격하면 미군이 개입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허접한 북한군이 침략할때만 도와주고, 정작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이 침략했을 때는 주한미군이 팔짱만 끼고 방관한다면 의미가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잃을 것이 많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을 적으로 돌리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무력 도발을 감행할 확률은 낮기에 한미동맹은 실질적으로 북한의 무력 침공을 억제하는 역할이 가장 크다. 그러나 21세기 이후로는 미군에 의지하지 않은 한국군 단독의 전력만으로 북한군의 전력을 월등히 앞지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한미동맹의 성격도 북한군만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가지는 잠재적 위협요소까지도 대비하는 포괄적인 성격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실제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의 국방백서에도 북한이 주적이라는 규정을 삭제했으며 대응 범위를 추상적으로 잡아 놓았는데, 이 역시 북한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당시에 이로 인해 논란이 좀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한 2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냐'는 질문에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답하는 등(북한은 33%) 반미감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친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상황에서 북한 주적표현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미국 하원의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은 한국이 안보에 대해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한국은 누가 적인가를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적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의 미군 투입을 문제삼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정도로# 한미관계가 삐걱대기도 했었다.
박근혜 정부가 장기간 동안 보였던 친중적인 행보와 사드 반대 여론, 그리고 반일감정으로 인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아 미국과 갈등이 있는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내용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도 있었다. 조약의 '태평양 지역'에서 보듯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의 가치는 태평양 방어이고, 현재 미국의 안보 전략은 국방비 절감 문제로 인해 각 지역마다 대리인을 두는 전략으로 바뀌었는데 아시아 지역의 대리인은 사실상 일본으로 결정되었기 때문.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한미관계가 비교적 회복된 현재는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어느 정도 불식된 상황이다.
2016년 4월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춘근 박사의 강의 셰일가스 혁명과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 편을 보자.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오바마조차도 미국이 사활을 걸었던 중동은 물론 전세계에서 슬슬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게 다 셰일가스 혁명에 기반한 무브였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미국의 고립주의는 더욱 심화되었다.
실제 과거 냉전시대에는 절대 미국에서 나오지 않았던 주한미군, 주일미군 철수 발언이 나오고 사우디, 독일의 미군도 철수시키자는 학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다만 저런 발언들은 실제로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압박 카드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남중국해 일대에서 군사분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은 기존의 고립주의 기조를 버리고 일명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새로운 안보전략을 구상한다. 이에 따르면 우선 일본, 호주, 인도와 일명 쿼드라는 안보협력 체제를 구축한 뒤에, 추가로 동아시아와 동남아 국가들의 참가를 유도하여 장기적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포위하는 집단 안보기구를 창설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구상이 현실화되면 일본과 한국이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국가들인만큼, 이 두 국가의 비중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며, 반대로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될 것이다.

11.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과의 차이점


북한중국 역시 한미상호조약처럼 동맹관계 조약을 맺었다. 조약은 모두 7조로 되어 있는데 이 중 핵심은 북중 양국 간 상호 자동군사개입을 규정한 제2조다. 여기에는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런 개입과 달리 한미상호조약에는 자동개입 문항이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는 외부세력에 의한 무력공격 발생 시 행동방식과 상호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중우호조약의 자동개입 조항과 달리 “유사시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2조에도 외부 침략에 대한 대응양식을 규정하고 있는데 “상호협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즉각적이고 의무적인 대응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주한미군이 ‘인계철선(引繼鐵線)’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사실상의 자동개입이 보장돼 왔다. 이는 주한미군이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 본토 병력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20] 두 조약 간 동맹의 영속성 역시 대조적이다. '''조중동맹조약 제7조에는 쌍방 간 수정 혹은 폐지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영원히 지속되도록 규정하고 있다.[21] 반면 한미동맹은 제6조에 따라 조약 기간이 무기한이지만 일방의 통고가 있으면 1년 후에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제3조를 보면,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명시되어 있는데, 현실의 북중관계는 경제적으로는 북한이 중국의 식량을 구입할 정도로 예속되어있지만, 자신들 주권을 넘보거나,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치, 군사적 대립관계에 놓여있고, 러시아 역시 과거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 조약을 맺었지만 냉전종식과 핵개발로 인해 이 조약을 폐기하고 대신 자동개입 문구가 없는 선린 우호조약으로 대체하였다. 군사훈련 역시 거의 없는 편이라, 중,러훈련은 있지만, 북-중, 북=러 연합훈련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22] 유엔 제재로 무기판매도 금지되어있다.[23]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7년 대선후보 당시, 미일안전보장조약은 자동개입이 명시되어 있고, 한미상호조약은 자동개입 조항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기사 그러나 미일안전보장조약도 사실 자동개입은 아니다. 미일안전조약 5조를 보면, 미일 양국은 일본의 영역 및 재일 미군기지의 '어느 한 쪽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는 경우 '자국의 헌법상의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한미상호조약 3조에도 각 헌법에 대처에 맞게 대응한다 명시되어 있는데, 미국에는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것이 전술한 인계철선 관련 조항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1963년 한미상호조약 자동개입 조항을 넣자고 했는데, 즉 2조 조항에 현재 한미상호방위조약 2조인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한다’를 ‘즉시 취한다’로 바꾸자고 했지만 미국이 거절했다.
한미상호조약과 조중우호조약의 차이점
'''비교조항'''
조중우호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
'''자동개입'''
2조 조항인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맡으면서 체결국에 대한 특정 국가의 침략을 방지한다. 체결국 가운데 한 쪽이 몇몇 동맹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3조 조항인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유효기간'''
이 조약은 양국 의회가 비준하지 않으면 효력이 생기지 않으며 양국이 비준서를 교환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비준서는 평양에서 교환하며 양국이 조약의 개정 또는 효력의 상실에 대해 합의하지 않는 이상 효력이 유지된다.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정리하면, 자동개입과 유효기간은 북중조약이 다소 유리하고 반에 한미조약은 직접적인 자동개입이 없고, 유효기간은 무기한이지만 어느쪽이든 상관없이 통보하면 1년 종지(終止)시킬수 있다. 자동개입을 보면 한미조약은 헌법상에 따라 대처를 선언한다. 즉 미 의회에서 승인을 내려야만 개입이 가능하는 반에 북중조약은 어느쪽이든 상관없이 직접개입이 가능하다. 지뢰를 표현하면 한미조약은 별도로 작동시켜 터져야하는 원격지뢰, 북중조약은 밟히면 터지는 지뢰라고 표현하면 된다.

12. 어록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는 것은 일본인이 다시 한국을 병합해도 좋다는 신호로 알기 쉽다. '''

1952년 10월 17일 애치슨 미국 국무부 장관을 만난 변영태 외무부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꺼낸 이야기.

'''미국에 대한 우리(한국)의 확고부동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10년 일본의 한국병합과 1945년 한반도의 양분(bisection)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두 번씩이나 미국에 의하여 배신당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전쟁재개에 대한 아무런 방지책이 없는 정전협정문이란 '한국에 대한 사형집행영장'에 불과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7월 로버트슨 미국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조약은 앞으로 우리를 번영케 할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8월 8일 조약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된 후 한 발언.


13. 관련 문서



[1] 한미동맹 60주년 기념선언 전문[2] 왼쪽에 앉은 사람은 한국 외무부 장관 변영태,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존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3] 미일안전보장조약.[4]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5] 태평양상호안전방호조약을 통한 미-호-뉴 3자 동맹[6] 참고로, 제4조의 실제적 내용 실현을 위해서 후에 한미행정협정이 체결되었다[7] 미 상원 비준간 추가한 조문에 대한 해석으로, 1954.2.1부 대한민국의 동의 하에 반영되었다. 123[8] 징병된 사병들의 '인건비'가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9] 미국의 지원으로 키운 일본, 한국, 대만의 대공산권 포위망은 미국의 동북아 외교의 큰 성공사례다. 중동에도 민주주의를 수출해보려했으나 미국의 자신감은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크게 손해를 보면서 꺼지게 된다. 비록 한국에서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잘 자리잡았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 일본, 대만 모두 민족주의와 냉전체제를 바탕으로 강력한 단일 민주정부가 구성된 반면 중동은 민족이나 이념보다 종파가 우선이라 세속적인 정체인 민주정으로 국민들을 통합하기 어려웠다. 당장 알제리부터 오만까지 4억 2천만 아랍인들의 국가만 15개정도 된다.[출처] 반미주의의 구조적 근간, Bruce Cummings[10] 그러나 한국의 반발이 매우 심할 것이다 애초에 북한을 분할 시키는게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전면으로 부딛히는 것이기 때문이다.[11] 국내외 주요 국제정치학자들이 십중팔구 동의하는 부분이 "한국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가인 다음에는 일본의 위협을 우려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것. 사실 일본의 극우세력이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보느냐, 즉 미국이 한국과의 동맹을 숙청하고자 핏대 세우느냐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을 반미 반서방 국가로 몰아가려고 시도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즉 미국의 국익 측면에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된 것이, 막말로 경술국치 2탄을 일본이 실현시킬 가능성으로 직결되지 않는 것이다.[12] 둘 다 한미/미일 양국의 비준 절차를 거쳤는데, 비준을 거치면 해당 국가의 법처럼 해당 국가 내에서 효력, 즉 강제성이 발생하므로 조약 규정을 통해 조약의 효력 등을 측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13] 독도에 대한 부분이 다소 우려될 수도 있지만, # 근래에 일본 측에서 독도가 미일안보조약의 해당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현실론을 내비쳤다(...)[14] 일본 우익도 정통파는 아베 독트린에 불만을 품는 이유가 미국이 일본을 위해 한국과의 동맹을 함부로 숙청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15]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좁은 회랑에서 포위 섬멸전을 당한 악몽이 되었던 곳이다.[16] 이때 당시 자위대는 경찰예비대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초기라서 제대로된 전력을 갖추지 못했다.[17] 물론 이럴땐 대통령이 직접 국군통수권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을 씹어 버리고 직접 북진을 명령하면 된다. '''군통수권보다 상위권한은 없다.'''[18] 6.25 전쟁 당시 중국의 입장도 이랬다. 표면적으로는 6.25가 조선반도(한반도) 내전이므로 한국군 북진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미군의 북진은 중국의 안보를 크게 위협하므로 묵과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실제로는 한국군이 워낙 형편없다고 보아(...) 북진을 하더라도 재조직된 북한군의 저항 때문에 별다른 전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본 것.[19] 사실 주한미군의 입장에선 심히 불쾌한 이름이다. 이는 주일미군을 비롯해 해외 주둔 미군들도 해당된다. 문서 참고.[20] 한국을 공격시엔 개입이 아닌 미군 내 기지, 즉 세계 주둔 미군 기지를 공격시 자동개입 한다는 의미.[21] 다만 조중동맹조약은 1961년부터 20년 단위로 자동갱신되는 방식이라 완전하게 유효기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22] 2011년 북-러간의 수색구조훈련은 한적은 있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처럼 정규적인 훈련은 하지 않는다.[23] 4차 핵실험으로 인해 소화기, 권총, 중화기, 군용트럭, 수류탄 등 다수 품목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