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금융 기업집단. 2018년 5월 기준으로 재계서열 30위. 대표적인 계열사로는 교보증권과 교보문고, 교보AXA자산운용 등. 한국 생명보험업계의 빅3(교보, 삼성, 한화) 중 하나로 비생명보험 부문까지 합친 총자산총계나 매출액에서 국내 보험 업계 3위이다. 금호그룹, 삼양그룹, 대상그룹, 쌍방울, 하림, 부영, SM그룹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호남 기업이다.
현재는 비상장기업으로 금융사 기준으로 국내 최대를 자랑한다. (전 분야로 보면 GS칼텍스나 부영그룹에 뒤쳐진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무디스의 최고 신용등급인 A1 등급을 국내 보험사에서 유일하게 5년 연속으로 받고 있다. 지급여력비율은 370%에 자기자본이익률은 국내 보험사 1위인, 재무건전성이 매우 우수한 기업이다.
삼청동에서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삼청터널 명판에 교보생명이 기증했다고 적혀있다.(1970년 12월 완공) 교보정보통신 건물도 그 옆에 있다. 1970년 창업주 신용호 회장은 동작동 3만 6천 평의 자기 땅을 국립묘지 부지로 국가에 넘기면서 대신 성북동 10만 7천평을 받은 바 있다. 교보생명은 1990년대까지 이 땅을 꾸준히 매각하였다. 이 토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이 교보주택단지로 불리는 성북동 330번지 일대이다.[1]
피상속인의 지분 대부분은 장남 신창재에게 상속됐다.(2018년 현재 33.78%를 보유 중) 30년 간 형님을 도와온 신용희 씨(2012년 작고)가 명예회장에 오르는 대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신창재 씨가 회장이 됐다. [2] 현재 신창재 오너 일가는 일절 경영에 관여하지 않으며 부인과 두 아들 모두 단 한 주의 지분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창재 회장은 2010년 첫부인 정혜원 봄빛문화재단 이사장과 사별한 후 2013년 재혼했다. 현재 부인 박지영씨는 이화여대 대외협력처에서 10년 근무했고, 현재는 평범한 주부로 대외노출을 극히 꺼리고 있다. 재계 30위의 그룹사임에도, 정략 결혼 따위는 하지 않았다. 회장 일가는 물론 친척들도 사치를 모른다는 업계의 평판이 있다.
[image]
2003년 암 투병으로 타계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1800억원 상속세 납부는 당시에도 전례가 없는 사상 최대 액수로 화제였다. 원래 최초 신고납부액은 이보다 500억 정도 낮은 1340억원대였으나 국세청 과세 실사 과정 중 비상장 주식의 가치 평가액이 산정액보다 높아지게 되었고 특수관계인 지분 기준으로 인한 할증까지 적용되면서 500억 정도 늘어났다. 사실 교보생명 측에서는 억울하다 할 수도 있었으나, 유족들은 비상장주식 물납 등을 통해 상속세를 완납하는 모범 사례를 남겨 사회의 본보기가 되었다. LG그룹의 구광모 회장이 2018년 사망한 구본무 회장에게 상속을 받으면서 납부한 9215억에 이어 2번째로 많은 액수이다.
2. 기업공개 문제
교보생명은 보험업 기준은 물론 재계 순위로도 명실상부한 대기업이다. 코스피시장에 당연히 상장되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1980년 교보문고를 설립할 때에는 금산분리 규제가 없으므로 문제가 없었다. 2005년 교보문고에 대한 유상증자를 할 때에도 금융감독원에서 교보문고는 공익성이 강한 사업이라며 금산분리의 예외를 인정하여 증자를 허용했다.
2005년 7월 의결된 금산법 개정안은 부칙 경과 규정을 둬서 초과 지분에 대한 강제 처분은 법 개정 이후에만 적용하고 이전에 취득한 주식은 의결권만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2005년 금융감독위원회는 교보문고의 증자 승인을 한 바 있다. 기업 공개만 아니라면 교보문고 지분 보유는 현행 규정상 문제가 없다.
교보생명은 2001년, 2005년, 2009년, 2015년, 2017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이 그나마 상장 가능성이 가장 높았으나,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 사전협의 때 교보문고 금산분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상장을 포기했다. 교보문고를 끝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신창재 회장의 의사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25%까지 내려갔던 교보문고 지분 역시 2009년 상장을 포기하고 2010년 되사들여서 2018년 현재 교보생명이 100% 보유하고 있다. 2009년 당시 교보문고와 교보핫트랙스를 먼저 상장시켜 지분율을 내려놓고 교보생명을 상장시킨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나돈 바 있다.
과거 "그런데 서적판매업을 영위하는 교보문고가 2010년 개정 보험업법에서 규정한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자회사의 주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2010년 개정 보험업법이 통과되면서 정부에서 제시한 유권해석이 변경되어 버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2010년 개정 보험업법으로 인해 교보문고에 대한 금감원의 출자 승인이 철회되었다. 그래서 교보생명은 2010년부터 교보문고의 소유 자체가 불법 상황에 놓인 것이다. 상장하지 않으면 증권신고서를 금융감독원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고 신고만으로 되므로 유상증자는 된다. 그러나 교보생명의 상장은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보험업법 개정으로 인해 금산분리 강화가 도입되어 금감원에서 승인을 내줄 수가 없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현재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정부 기관들은 교보문고의 경우 보험업법에 따라 승인받은 교보생명 자회사로 명확히 보고 있다. 애시당초 교보생명이 교보문고의 최대주주인 것은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수준인데 대한민국 2~3위권 굴지의 생명보험회사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을 하고 있다면 정부가 절대로 간과할리가 없다."라는 서술이 있었다.
그러나 위 문단은 잘못된 서술이다. 다만 금산분리의 대상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은행이며, 비은행 금융회사는 전혀 상관없다. 교보생명이 기업공개를 하지 못하는 것은 보험업법 제109조 때문이 아니라 최대주주 신창재가 재무적 투자자와 맺은 이면 옵션 계약으로 인해 상장의 전제 조건인 주식 분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제109조는 기업공개를 안 하더라도 적용되는 규정이다. 반면, 금산분리 원칙은 비금융회사의 비은행 금융회사 소유를 금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우기술을 보유한 다우키움그룹이 키움증권을 포함한 금융, 비금융 계열사를 지배하고 기업을 공개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교보생명의 기업공개 문제는 금산분리 내지 교보문고, 교보핫트랙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마찬가지로 비은행 금융회사인 키움증권을 비금융회사가 지배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 삼성생명도 비금융회사인 삼성물산이 대주주이지만 잘만 상장되어 있다. 한화생명은 비금융회사인 한화63시티를 100%를 자회사로 두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기업공개에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애시당초에 교보생명은 보험업법에 따라 이미 교보문고 소유를 승인받았기 때문에, 보험업법 제109조 위반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애플투자증권도 비은행 금융회사이기 때문에 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이 대주주 적격성을 인정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밝혀진 부실이 없는 상태에서 "논란"이 있다는 이유 만으로 인허가를 금지할 권한은 당연히 정부에 없다.
금감원에 문의한 결과 "2010년 보험업법 개정으로 교보생명의 교보문고에 대한 금감원의 출자승인이 철회되어 2010년부터 교보문고의 소유가 불법 상황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교보생명(당시 대한교육보험)은 1981.4.10. 당시 보험업법 제19조 및 보험업법 시행령 제16조에 따라 교보문고 설립(지분율 100%)에 대한 재무부장관의 승인을 얻었으며 2010년 개정 보험업법은 그시행일 이후 적용되는 것으로 그 법률 개정으로 시행 이전에 얻은 교보문고에 대한 승인결정은 철회되지 아니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답을 얻었다. 즉 교보생명의 교보문고 소유 승인은 철회되지 않았으며, 2010년에 개정된 법은 그 날 이후부터 소급적용 되므로 실정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것이 금감원의 공식 입장이다.
[image]
교보생명 지분은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이 33.78%를 보유하고 있고 나머지 지분은 대부분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나눠가지고 있다. 2018년 10월 재무적 투자자들이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를 기다릴 수 없다며 신창재 회장한테 풋옵션을 행사하겠다고 하였다. 교보생명은 2018년 11월 이사회를 열고 기업공개 추진 의사를 결의하겠다고 했지만 2019년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 재무적 투자자들은 국제상업회의소(ICC)에 중재를 신청하여 신창재 회장 측과 풋옵션을 두고 대립하고 있다. 중재로 인해 교보생명이 추진하던 기업공개(IPO)와 상장은 난관에 부딪혔고 중재는 단심제로 최악의 경우에 신창재 회장은 경영권이 박탈되고 교보생명의 매각이 진행될 수도 있다.
3. 역사
1958년 6월 대산 신용호 창업주가 조준호, 이규갑, 최봉열 등 7명과 함께 '태양생명보험'이라는 명칭으로 발기인 대회를 열었으나 11일 뒤 '대한교육보험'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회사 이름에 반드시 '생명보험'이 들어가야 한다는 당시 보험업법 규정 때문에 '태양생명보험'으로 설립 등기를 한 것이다.# 1958년 7월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제도'를 창안해서 첫 상품 '진학보험'[3] 을 내놨고 8월에 정식 개업했다. '화랑계약'이라고 해서 군인 가정을 공략했으며 저축 장려 방법의 하나로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보험이 육성되면서 같이 컸다. 영업 모델은 방문판매가 주였는데 방문판매 영업 직원에게 줘야할 커미션도 많았고 자기자본이 작으며 보험 레버리지가 높아 위태로웠지만 한국이 고도 성장기라 버틸 수 있었다.[4] 이후 1964년 폐업된 '협동생명보험' 계약 일부를 인수한 후 1967년 대한민국 육군과 계약을 맺고 대상을 대한민국 해군 등으로 늘려가는 등 파죽지세로 성장했는데 업계 6위로 출발한 교보생명이 단숨에 업계 1위로 도약하는 해였다.
창업 10년째가 되던 1967년 사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왔다고 생각한 신용호는 회장이지만 경영에서 손을 떼고 대표이사를 고용해 경영했다. 사장 평균 근속이 1.7년일 정도로 자주 바꿨다고 한다. 문제는 자본이 충분하지 않았고 방문 판매 때문에 영업 직원에게 높은 수수료가 나간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고도 성장기 한국에서 유치한 자본을 성공적으로 재투자해 사업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1974년 업계 최초로 모든 업무를 전산화하는 등 선구적인 노력을 계속해갔다. 1979년 광화문에 24층짜리 교보빌딩을 짓게 되는데 신용호는 서울 한복판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점이 하나쯤은 필요하다며 지하 1층을 전부 교보문고로 만든다. 당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신용호 회장에게 직접 '생각만 하던 일을 실제로 해줘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 한다. 자서전에까지 칭찬하는 글이 있을 정도이다.
교육보험은 생명보험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신선한 시도로 평가돼 신용호는 1983년 국제보험회의로부터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다. 이전까지 교육보험에 주력해 오다가 1980년대 이후 사교육이 성행해 교육보험이 다 보장할 수 없게 되자 일반 생명보험 업무를 주로 하기 시작했다. 1984년 업계 최초로 순보험료식 책임준비금 100% 적립을 단행한 후 1987년에 '계성원'이란 연수원을 열었고, 1988년 교보투자자문을 설립한 후 1994년 서울신탁은행으로부터 대한증권을 인수하는 등 금융업 중심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1995년에 현 명칭으로 변경하고 1998년에 퇴출생보사 BYC생명의 보험계약을 인수했다.
위와 같은 공적과는 달리 큰 위기도 있었는데, 1996년 의사였던 신창재 회장이 이사회 부회장으로 처음 경영을 맡고 얼마안가 IMF 사태가 터졌다. 2000년 당시 연 2500억원에 이르는 적자와 2조 4천억의 자산 손실 등 회사가 빈사 상태에 빠졌었으나 악성 계약을 그만두고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여 회생하였다. 2012년 우리금융지주, 2013년 ING생명, 2014년 우리은행 인수를 추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2018년 현재 정부 소유의 교보 그룹 지분은 남아있지 않다. 한국수출입은행이 5.85%를 소유하고 있으나 상속세와는 관련이 없다. 아울러 교보생명은 비상장이나 기업공개 떡밥 때문에 몇 차례 감정 평가를 해서 공정가치가 부여되어 있다. 다만 수출입은행에서 교보생명 주식을 취득원가(액면가)로 기재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금융회사들이 IPO를 전제로 한 교보생명 증자에 참여한 바가 있어서 유한회사 형태로 참여 중인데 이들은 액면가가 아닌 공정가치로 평가 중이다. 대략 주당 4~5만원 선인 듯.
2019년 7월 삼성생명이 보유하던 생보부동산신탁 지분 50%를 인수하면서 완전자회사로 편입하였고 2020년 1월 교보자산신탁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2020년 하반기, AXA손해보험과 교보AXA자산운용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4. 기업 정신
4.1. 2001년 이전
- 창업이념
'''국민교육 진흥, 민족자본 형성'''
- 사훈
'''성실'''
- 우리의 지표
'''어제를 반성하고 내일을 창조하자'''
'''1. 생활설계사 수입증대를 제1의로 하자'''
'''2. 전 시민을 교보생명 가족화하자'''
'''3. 계약자봉사를 신계약에 우선하자'''
'''4. 창립이념 구현하여 복지사회 건설하자'''
'''5. 세계속의 교보생명으로 도약하자'''
'''6. 맡은 과업 완수하여 자기발전 이룩하자'''
4.2. 2001년 이후
- VISION 2010 (2001 ~ 2010)
'''2010년 국내시장에서 타깃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회사'''
- VISION 2015 (2011 ~ 2015)
'''고객보장을 최고로 잘하는 보험사 (고객보장 No1.)'''
- VISION 2020 (2016 ~ )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상품/채널 혁신 No.1 생명보험회사'''
- 핵심가치
'''고객지향, 정직과 성실, 도전정신'''
5. 경영진
5.1. 역대 임원
- 명예회장
- 신용호 (1975~2003)
- 회장
- 이연 (1960~1961/1962~1965)
- 신용호 (1967~1975)
- 신용희 (1975~1994)
- 이도선 (1994~1997)
- 신창재 (1999~2000)
- 대표이사 회장
- 신창재 (2000~ )
- 부회장
- 이도선 (1985~1989)
- 이강환 (1989~1990/1992~1994)
- 김영석 (1990~1992)
- 이중효 (1997)
- 대표이사 사장
- 신용호 (1958~1967)
- 조준호 (1967~1969/1972~1973)
- 황호영 (1969~1972)
- 배민홍 (1973~1975)
- 최봉열 (1975)
- 김동준 (1975~1977)
- 박성복 (1977~1982)
- 이도선 (1982~1985)
- 이강환 (1985~1989/1990~1991)
- 김영석 (1989~1990/1992~1994)
- 신평재 (1991~1992)
- 이중효 (1994~1997)
- 이만수 (1997~1998/1999/1999~2000)
- 김재우 (1998~2000)
- 최정훈 (1999~2000)
- 권경현 (2000~2002)
- 장형덕 (2002~2003)
- 윤열현 (2019~ )
- 대표이사 부사장
- 권경현 (2000)
- 박성규 (2004~2006)
- 대표이사 전무
- 권경현 (1999~2000)
5.2. 이사진
6. 건물
교보생명 본점의 자랑 중 하나가 주소(종로 1번지)다. 도로명 주소로도 지번 주소로도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 (종로1가)라고 쓰면 된다. 지은지 얼마 안 되었던 1980년대에는 교보생명, 교보문고를 마케팅할 때 종로 1번지임을 활용하기도 했으며 그래서 교보생명 입장에서는 종로 1번지라는 명칭이 회사의 명운을 가를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종로 초입에 있다보니 건물 자체가 보신각과 더불어 대한민국 대표 간선도로 종로의 상징, 종로 그 자체로 대접받고 있다. 엘리베이터 관리번호인 승강기 고유번호[11] 0000-001번도 바로 여기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 행정안전부가 도입한 엘리베이터 고유번호 부착 시연회에서 종로 1이라는 도로명주소의 상징성에 걸맞게 교보빌딩을 0000-001로 지정하였다. 건물 내에 승강기가 22대 있는데 번호가 0000-001부터 0000-022까지로 부여되었다.
현대 모더니즘 건축[12] 양식으로 지어진 교보생명 종로 본사 건물은 사실 신용호 전 회장이 도쿄의 주일미국대사관[13] 을 보고 건축가인 시저 팰러에게 의뢰한 것이다. 팰러는 대형 건물 발주에 신이 나서 이것저것 안을 제시했는데 신용호 회장 측에서는 "다 됐고, 그냥 저 주일미국대사관이랑 똑같이 생긴 건물을 지어주시오" 라고 했다고 한다(....) 시저 팰러는 벙쪘지만 그래도 만들어는 줬다고. 다만 이 때문에 팰러의 저작물 중 도쿄 주일미대사관은 있어도 교보생명 건물은 흑역사 취급한다고 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전국 각지의 교보빌딩들은 대부분 본사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이 때문에 원 설계자인 시저 펠리가 화가 나서 저작권 소송을 걸 정도였다.
어쨌거나 현재는 저 빌딩이 교보의 상징적인 건물이라는 인식을 주는데는 성공하였고 본사는 광화문을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광화문사옥과 지방사옥은 리모델링되어 있으며 아래 시저펠리 복사본의 건물 리스트는 아래에 설명되어 있다.
[image]
강남 교보타워는 스위스 루가노(이탈리아어권) 출신의 건축가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을 지은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다. 교보그룹 사옥들의 특징 중 하나가 건물 외벽에 입주회사들 간판이 하나도 없다.
7. 계열사
7.1. 금융
- 교보생명보험
- 교보자산신탁
-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
- 교보AXA자산운용
- 교보증권
- KCA손해사정
- 코에프씨교보한화그로쓰챔프2010의6호: 사모투자전문회사이다.
7.2. 비금융
- 교보문고
- 교보데이터센터
- 교보리얼코: 교보빌딩 등 부동산관리를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창업주 신용호 회장의 맏조카인 신동재 씨(신용국의 아들)가 회장을 지냈다.
- 교보정보통신: 정보통신 전문업체, 교보생명, 교보증권 전산시스템 개발 담당을 주로하는 회사이다.
- 교보핫트랙스: 신창재 회장의 남동생 신문재 씨가 회장을 맡았었고 2005년 교보문고가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 제일종합관리서비스: 교보리얼코의 자회사로 전국 교보사옥의 미화/안내/경비/기타 의 서비스업 회사이다.
7.3. 산하 공익재단
국민 교육/문학 진흥/농촌 살리기에 뜻을 두었던 대산 신용호 창립자 뜻으로
- 대산문화재단 : 국내의 대기업 산하 재단으로는 최초이자 유일한 문학 전문 재단이며 문학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맨부커 수상자인 한강(소설가) 등 유명 작가들이 대부분 대산문화재단의 문학 진흥 사업 이력을 갖고 있다. 대산문학상, 대산문학총서, 동북아 대장정 등이 유명하다. 교보빌딩에 크게 붙은 광화문 글판(세종문화회관 건너편)의 문구 선정도 하고 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채식주의자> 역시 대산문화재단이 영국 출판사에 번역 자금을 지원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 해외 선진 농업 기술 연구 및 농촌 진흥 사업 등을 펼치는 대산농촌재단
- 장학 사업 및 교육자 시상 사업을 펼치는 교보교육재단
이상 교보그룹 산하 3개 공익재단을 통해 어마어마한 돈을 사회 공헌 사업에 쏟아붓는 중. 이런 좋은 이야기를 딱히 홍보 수단으로 안 쓰고 그냥 묵묵하게 하는게 교보그룹 스타일인 듯하다.
7.4. 해산/매각
8. 관련 문헌
9. 둘러보기
[1] 흔히 말하는 성북동 부촌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대사관저와 현대, GS, 오리온, 두산을 비롯한 재벌들의 저택이 밀집해있으며 교보생명 일가들도 여기에 터전을 잡고 있다.[2] 2003년 상속 당시 신용희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신인재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은 도합 13.25%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2018년 3월 현재는 5%대로 지분이 줄었다. 신인재 씨는 신창재 회장이 경영을 하던 당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었다고.[3] 자녀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학교가 바뀔 때마다 학자금을 돌려주는 상품이었다.[4]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는 부친 주종환 교수가 신용호 회장이 창업하던 단계 때 불려갔다가 그냥 나왔었다고 말했다. 조그만 사무실 하나에 여직원 1~2명 놓고 교육보험을 만든다는게 못 미더웠다고 회고할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고 한다.[5] 허정도: 2018년 현재 교보문고, 교보핫트랙스 대표이사[6] 이석기: KAIST 출신의 재무담당이사. CFO[7] 이중효: 안건회계법인 파트너, 상임고문[8] 황성식: 삼일회계법인 부대표[9] 이상훈: Affinity Equity Partners 한국 지사장[10] Hari R. Rajan: Corsair Capital 파트너[11] 행정안전부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 대한민국 내에 설치된 모든 엘리베이터가 등록되어 있다.[12] 르 코르비쥐에부터 시작해서 1960년대 중후반까지 유행했던 사조. 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된지 벌써 30~40년 쯤 됐다.[13] 이 건물 또한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14] 2011년에 막혀있던 옆 벽면을 뚫어 유리벽으로 교체하였고 이후 세련되고 훨씬 잘 트이고 친환경 에너지 건물로 인정받았다.[15] 2019년 3월에 외관을 유리벽으로 붙여 개보수했다.[16] 지방사옥 리모델링으로 현재 붉은색 계열의 현대적인 건물로 바뀌었다.[17] 현재 개인사업자에게 매각되어 부분 리모델링한 상태다. 노란색 띠에 둘러져 있고 2층 대문부분도 개조하였다.[18] 지방사옥 리모델링으로 현재 격자 모양의 건축 디자인으로 완전히 바뀌었다.[19] 전국 교보생명 빌딩중 가장 협소한 편에 속하여 1999년 구 고속터미널 자리에 신축하려매입하고 건물을 올리던 중에 유통시설로 설계변경이 이루어져 까르푸(현 홈플러스 스페셜)가 개점하고 맨 위 7층만 교보생명이 사용하고 있다.[20] 지방사옥 리모델링으로 현재 격자 모양의 건축 디자인으로 완전히 바뀌었다.[21] 삼희빌딩에 매각되어 역시 리모델링되어 시저펠리 특유의 옆면 벽이 완전히 일반벽으로 바뀌었고, 2층 대문도 일부 개조되었다.[22] 지방사옥 리모델링으로 현재 정면 대문과 2층부분이 통유리로 교체되었다.[23] 지방사옥 리모델링으로 현재 전면 통유리로 교체되었다.[24] 지방사옥 리모델링으로 현재 정면 대문과 2층 부분이 통유리로 교체되었다.[25] 지방사옥 리모델링으로 현재 회색계열과 검은색 계열의 격자무늬 스타일 건물로 완전히 바뀌었다.[26] 원래 교보생명 목포가 있었으나 영업부는 현재 이전되었고, 현재 그 자리는 건물이 완전히 장례식장으로 리모델링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