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정치군사대학
金正日政治軍事大學
Kim Jong-il Political Military university
1. 개요
대남 간첩(공작원)과 무장공비(전투원)을 양성하는 북한의 교육기관이다.
평양직할시 룡성구역 신미리와 형제산구역 학산리 지역 산 속에 캠퍼스가 위치해 있다.
비밀 기관이기 때문에 북한 지도상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외부에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평화 2동이라는 가짜 주소와 130연락소 또는 695군부대[1] 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보안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 북한의 조선로동당, 조선인민군, 정부 주요기관의 간부 및 대남공작의 인재를 육성하기 때문이다.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일의 이름이 들어간 유일한 교육기관이었지만, 2012년 10월 5일 북한의 경찰대학 역할을 담당하는 인민보안대학이 '''김정일인민보안대학'''으로 개칭되면서 김정일의 이름이 들어간 첫번째 대학이 되었다. 김정일의 이름이 들어간 교육기관인만큼 대남 적화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쏟아 붓는 예산도 북한의 도 예산에 맞먹을 정도이며 졸업하면 당·군·정의 엘리트 코스와 북한 일반 노동자의 3배가 넘는 봉급[2] 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저 단순한 간첩 양성 대학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정일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재학생과 졸업생의 자부심과 충성심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소위 최고 지도자와 당의 명령만 떨어지면 어떤 짓이라도 저지르는 무서운 집단이다. [3]
2. 연혁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월북한 남로당 출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빨치산부대와 남파공작원을 훈련하기 위해 황해도에 설립한 금강정치학원(金剛政治學院)이 기원이다.
한국전쟁이 사실상 실패하게 되자 권력기반 약화를 우려한 김일성은 박헌영과 리승엽을 필두로 하는 남로당파에게 미제 스파이활동과 공화국 전복 음모 혐의를 덮어씌워 숙청했는데 당시 남로당계열이 대부분이었던 금강정치학원도 이 과정에서 폐쇄 위기를 맞았지만 대남공작 인재확보를 위해 존속시켰다.
1960년대 금성정치군사대학(金星政治軍事大學)[4][5] 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92년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기념해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명명되었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조선로동당 작전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2009년 작전부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정찰국, 35호실과 통합되어 정찰총국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정찰총국 소속인지 독립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3. 선발
각 시, 도, 군에 있는 로동당 5과 지도원들이 고등중학교 4학년 이상이나 대학생 중에서 출신성분, 사상, 체력, 지능,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철저히 뒷조사해 입학자격을 준다. 최고 권력자의 이름이 붙은 학교인 만큼 주로 핵심계층의 자녀들이 선발된다.
대학생들은 주로 평양외국어대학이나 각 도에 있는 외국어학원생들 가운데서 선발[6] 한다.
4. 교육과 훈련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는 전투원과 공작원을 양성한다.
전투원은 한국의 북파공작원과 같은 역할로 대남침투와 침투루트 개척, 테러, 암살, 폭파 등을 주임무로 한다.
공작원은 한국의 국가정보원 요원 및 간첩과 같은 역할로, 정보수집과 분석, 종합, 판단을 주임무로 한다.
훈련생은 공작이나 침투 중 극한상황에 처해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해 '''인민군 특수병종의 4~5배가 넘는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반복한다.
훈련생은 '김일성 김정일 혁명사상과목'이 40%, '전투원으로서 신체단련과 격술, 사격 훈련'이 40%, '운전 및 무전, 컴퓨터 기술교육'이 20%를 차지한다. 이 훈련을 받으면 2달씩 야산에서 생존하며 사단급 적에 맞서 도망다닐 수도 있고, 그냥 인민군과 주먹질 하는 정도라면 1:15로 싸워도 살아남으며, 남한에서 양복 입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해 보이고, 맨손으로도 칼 든 인민군한테 싸워서 이기고, 달리는 차량을 잡아타는 등등 인간병기가 되는 모양이다.
4.1. 교육
교육기간은 5년이다.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사상교육이다. 철저한 사상교육을 통해 자부심을 심어주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북한 공작원은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체험해도 쉽게 변심하지 않는다. 주체사상을 철저히 주입시키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역사, 철학 등을 배우는데 특히 사상교육 중 자폭에 대한 것이 인상 깊다. 철학교재 5장의 제목은 '''혁명적 자폭관(自爆觀)'''으로 김정일이 대남사업을 직접 지휘하면서 교과목에 자폭론을 집어넣어서 전투원이든 공작원이든 자폭론을 배워야 한다. 교육 과정을 마치고 나면 수령과 당을 위해서 자폭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총폭탄(銃爆彈) 정신'''으로 무장하게 된다.
정보기관원으로서 정보학도 배운다.
어학도 침투국의 현지인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교육한다. 김현희도 일본어가 일본인과 구별이 안 될 정도여서 수사 초기 난항을 겪었다.
현지화 훈련도 한다. 침투국가의 현지인처럼 보이기 위해 훈련한다. 이 대학에는 ‘이남화 혁명관’이라는 부서가 있는데, 1990년대 초 안명진씨에 따르면 납북 억류자 중 20여명이 교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지하터널 속에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고 훈련'''하며 노래방 연습에 영화도 수백편이 넘게 본다. 특히 실제로 남파되는 인원은 아예 1년씩 남한 출신 교관과 합숙하며 말투를 훈련한다.
간부 체험 훈련도 한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후 대학에 입학해 선후배 동기 교수를 대하는 방법밖에 모르기 때문에, 침투 국가에서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해서 다양한 나이의 사람을 대하는 연습을 미리 해두면서 사회성을 기르기 위함이다.
4.2. 훈련
- 구보
김정일은 대남사업을 직접 지휘하기 시작하면서 전투원들에게 “모든 전투원은 하룻밤에 40~80km는 돌파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며 투철한 사상과 함께 강철같은 체력을 요구했다. 이 후부터 전투원들은 20kg 이상의 모래주머니를 메고 행군훈련을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현지인처럼 생활하면서 정보수집이나 주요 인물을 포섭하는 공작원들은 굳이 행군훈련이 필요 없는데도 김정일이 훈련을 지시했고 공작원들도 행군훈련을 하게 됐다. 이 때문에 북한군 특수부대를 상회하는 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매일 4km, 주말 20km, 월말 40km의 산길을 달리는 훈련을 하며 정기적으로 25~30kg 모래주머니를 메고 40km는 4시간, 60km는 6시간, 80km는 8시간 내에 주파하는 훈련도 한다.[7]
매일 4km, 주말 20km, 월말 40km의 산길을 달리는 훈련을 하며 정기적으로 25~30kg 모래주머니를 메고 40km는 4시간, 60km는 6시간, 80km는 8시간 내에 주파하는 훈련도 한다.[7]
- 사격훈련
- 격술 훈련
격술은 북한의 전투무술로 급소를 가격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는데 중점을 두고 훈련한다. 여기에 더해 하루 수천번의 격파와 배 위로 차를 지나가게 하거나 유리병 조각 위에 웃통까고 누워 고통을 견디는 차력도 훈련한다.
맨손뿐만 아니라 격검이라는 나이프 파이팅과 단검, 표창, 도끼 등을 던져 표적에 명중시키는 훈련도 한다. 특히 김일성의 일당백(一當百) 정신 교시로 교육생들은 북한의 특수부대원 5~6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할 수 있다는 정신무장을 하고 있다. 일례로 평양 중심지에 있는 유원지에서 일반인과 군인을 김장 담그는 바람에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고 인민군 1개 대대를 30명 정도가 순식간에 박살내버렸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1993년 귀순한 간첩 안명진은 130연락소에서 훈련받을 당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주 교육 중 하나였으며 작은 방에서 칼을 든 정치범을 맨손으로 1~2분 안에 죽일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맨손뿐만 아니라 격검이라는 나이프 파이팅과 단검, 표창, 도끼 등을 던져 표적에 명중시키는 훈련도 한다. 특히 김일성의 일당백(一當百) 정신 교시로 교육생들은 북한의 특수부대원 5~6명 정도는 혼자서 상대할 수 있다는 정신무장을 하고 있다. 일례로 평양 중심지에 있는 유원지에서 일반인과 군인을 김장 담그는 바람에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고 인민군 1개 대대를 30명 정도가 순식간에 박살내버렸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1993년 귀순한 간첩 안명진은 130연락소에서 훈련받을 당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주 교육 중 하나였으며 작은 방에서 칼을 든 정치범을 맨손으로 1~2분 안에 죽일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 장비훈련
자동차, 트럭, 오토바이 등 각종 운송수단의 운전법이나 독침 등의 무기의 조작법을 훈련한다.
- 통신훈련
주로 공작선과 연락소에서 주고받는 모스 통신, 무선 통신, 레이더 조작 등을 훈련한다. 한미연합사 감청부대를 속이기 위해 음어와 암호로 교신하고 허위 전파를 발사하는 훈련과 전달내용을 음어나 암호로 변경하는 방법(logic)을 훈련한다.
- 육상전술훈련
독도법: 지도를 머릿속에 완전히 외워서 산길을 행군한다.
구덩이 파는 것: 최단시간 내에 비트를 파고 완전히 은폐하는 훈련을 한다. 북한 간첩 김동식씨에 따르면 대학 4년간 100개 가까운 구덩이를 파본다고 한다.
구덩이 파는 것: 최단시간 내에 비트를 파고 완전히 은폐하는 훈련을 한다. 북한 간첩 김동식씨에 따르면 대학 4년간 100개 가까운 구덩이를 파본다고 한다.
- 기습파괴훈련
2~3명의 소규모 인원으로 중요시설을 정찰하고 폭파하거나 목표를 매복 기습하는 훈련.
이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 북한 내의 방송국이나 관공서를 기습하는데, 그냥 태평하게 있는 기관에서 물건을 훔쳐오는 것이 아니라 며칠에 침투할 것인지 예고장을 주고 경계 상태로 만든 뒤 침투한다. 기습 대상 기관에서는 어떻게 막아야 할 지 벌벌 떨기도 한다.
이 훈련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 북한 내의 방송국이나 관공서를 기습하는데, 그냥 태평하게 있는 기관에서 물건을 훔쳐오는 것이 아니라 며칠에 침투할 것인지 예고장을 주고 경계 상태로 만든 뒤 침투한다. 기습 대상 기관에서는 어떻게 막아야 할 지 벌벌 떨기도 한다.
중요인물을 암살, 납치하는 훈련.
- 유격전술훈련
- 침투 안내훈련
고정간첩과 접선하거나 목표지점까지 안내하고 장비를 지원하는 훈련. 잠수함이나 반잠수정을 이용해 공작원을 침투시키기 위해 해안의 특성과 조류변화 등을 파악하는 훈련. 비무장지대나 해안을 통해 공작원을 직접 침투시키기 때문에 북한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해상전술훈련
바다나 강에서 장시간 활동 가능하도록 수영훈련을 하며 일정 시간 내에 8km, 10km를 헤엄치는 훈련을 한다. 얼음물 속에서 버티는 한랭극복훈련도 하며 스쿠버 다이빙 훈련 및 수중폭파 훈련을 통해 대형선박에 잠수해 잠입하고 선박을 탈취하는 훈련도 한다.
김동식씨에 따르면 20일간 하루에 8시간씩 수영과 잠수만 훈련받았다고 한다.
김동식씨에 따르면 20일간 하루에 8시간씩 수영과 잠수만 훈련받았다고 한다.
- 항해전술훈련
해기사 제도의 항해사/기관사 제도처럼 항해/기관과정으로 나누어져 있다. 항해 과정은 공작선의 항법, 항해술을 훈련하며 교육생은 5톤급 이상 2백 톤급 이하의 선박을 단독으로 운전할 수 있다.[8] 기관 과정은 공작선의 엔진을 담당하는 훈련이다.
- 기타훈련
5. 진로
졸업생은 상위나 대위 계급을 받고 조선로동당 작전부, 35호실, 225국 등에 배치되어 일한다.
임무가 끝나면 초대소에서 재교육 받으며 성적이 가장 좋으면 대남공작에 투입되고 성적이 낮으면 일본 같은 해외로 투입된다.
사상, 신분, 실력이 인정된 최고의 엘리트로 평가되기 때문에 설령 졸업을 못하더라도 북한 각 지역의 조선로동당 지도원이나 주요기관의 간부로 일할 수 있을 정도이다.
유명한 졸업생으로는 정경희, 이선실, 김현희,[9] 안명진 등이 있다.
6. 봉화정치대학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봉화정치대학이라는 분교가 있는데 본교에서는 주로 전투원과 대남공작원을 교육하고 분교에서는 전투원보다는 군사훈련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여성들이나 해외공작원 또는 본교를 졸업한 전투원이나 재교육이 필요한 공작원, 비밀리에 선발된 요원들을 교육한다.
교육기간은 과정에 따라 1년~3년이며 지하당 건설이론, 정보학, 지형학, 적국활동 심리학, 외국어, 남한 및 국제정세, 비합법활동전술, 수영, 잠수, 운전, 열쇠기술 등을 교육받는다.
여자의 경우는 기초화장법에서 남성을 유혹하는 기술까지 배운다고 한다. 때문에 여자의 경우 '''선발기준 중에 미모가 포함되며 그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다.'''
현역 공작원의 재교육을 위해 초대소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전향했지만 1999년 민혁당 사건을 일으켰던 김영환이 봉화정치대학의 공작원에게 교육 받았다고 한다.
110연락소라는 위장명칭을 사용하며 조선로동당 대외연락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대외연락부가 당 소속에서 내각 소속으로 개편된 뒤에는 소속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7. 관련 문서
[1] 1956년 5월 대남공작원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순안정치대학(또는 통일대학)으로 불렸다. 이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흡수되었다.[2] 졸업후 작전부에 배치되면 165원의 월급을 받는다(2000년 기준) 일반 노동자의 월급은 60~70원.[3] 잡힌 다음에 조사과정에서 전향하는 경우는 있어도, 잡힐 때까지 몇 달 ~ 몇 년씩 자수를 하지 않고 목숨걸고 간첩활동을 하는 걸 보면 이들의 충성심을 짐작할 수 있다. 자폭과 자살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기 때문에 대간첩작전에서는 군경의 인명피해도 많다. [4] 김일성에서 일(日)자를 빼면 김성(金成) → 금성(金星)이 된다.[5]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운영하는 금성정치대학과는 다르다.[6]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김현희도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 전공자였다.[7] 매월 200km를 달리는 셈이다.[8] 한국 기준으로 6급 항해사에 해당한다. 선원업무처리지침에서는 여객선을 제외한 200t 미만 배의 경우 6급 이상 항해사면 몰 수 있게 하고 있다. 온갖 간첩 훈련을 받아가며 겸해서 30~70t짜리 잠수정이나 간첩선을 몰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라 4급 항해사처럼 전문적인 교육을 해내지 못 한다.[9] 김현희는 1년 단기코스를 훈련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