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茶房
1. 개요
차를 마시는 곳. 茶房(찻잎이나 다구를 파는 가게가 아니다). 이름에 차 다가 들어갔지만 다방의 가장 주력 상품은 차보다 커피. 그래서 한국은 차보다 커피 문화가 더 익숙하게 되었다. 커피 이외에도 생강차, 쌍화차, 율무차, 생과일 주스 등 여러 종류의 음료를 판매한다. 그러나 음료의 전문성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 녹차 뿐 아니라 다른 차들의 경우 티백[1] 또는 파우더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스도 그냥 PET 병에 있는 거나 요구르트 같은거 컵에 따라주는 정도다.
2. 과거의 다방
거슬러 올라가면 1968년 발굴조사를 통해 신라에 다연원(茶淵院)이라는 경주 창림사에 딸린 다도실의 존재가 드러났고, 고려에서도 개경에 많은 다점(茶店), 다방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에 이 다방을 설치하였다. 물론 현대의 다방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에서의 다방은 왕실이나 외국 사신에게 차를 대접하는 의례를 맡았다.
한반도 최초의 근대식 다방은 구한말인 1902년 정동에 있던 손탁호텔(Sontag Hotel)에 부설된 것이지만, 본격적인 다방 문화의 시초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경성 이곳 저곳에 '끽다점'(喫茶店)[2] 을 차리면서부터다. 남대문역에 있던 끽다점과 1923년 종로에 생겨났던 '후타미'(二見) 등이 있었다. 물론 조선인이 차린 다방도 아주 없진 않았는데, 복혜숙이란 사람이 운영했던 '비너스'[3] 와 시인 이상이 생계를 위해, 예술가들이 모일만한 장소를 만들기 위해 차렸던 '제비다방'이 가장 유명했다.
의외로 일제강점기에는 카페와 '끽다점', 다방, 찻집 등의 표현이 혼용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로는 다방이란 표현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끽다점은 철저하게 일본식 표현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으며, '카페'도 사실상 90년대에 와서야 부활한 표현이다.
80년대까지 다방은 오늘날의 카페와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많은 젊은 지식인과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던 곳으로, 그 문화는 전후 프랑스의 지성인들이 형성했던 카페의 지적 문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 당시의 다방은 유럽의 살롱 역할에 가까웠다고 봐도 좋을 듯.
50년대 명동 일대의 다방에는 '''문인'''들이 죽치고 있었다. 문예회관에는 김동리와 서정주를 중심으로 한 기성 문단의 '선생님'급 문인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다방에는 젊은 문인들이 꿰차고 앉은 식이었다. 청동다방에는 오상순이,[4] 포엠에는 박인환과 이봉구가 드나드는 식이었다. 특히 오상순은 '무소유'를 실천한 문인으로 유명한 만큼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었다.' 그래서 항상 그가 앉아있는 청동다방이 그의 주소지 노릇을 해서, 심지어 오상순에게 문안이나 세배를 오는 문인들도 청동다방으로 가야 했다. 한국전쟁으로 다들 부산으로 피난갔던 시절에도 문인들이 다방에 모이는 건 똑같아서, 김동리는 부산에 피난온 문인들이 모이던 다방을 소재로 '''<밀다원시대>'''라는 단편소설도 썼다.
상황이 이런 탓에 다방 마담들도 문인들을 많이 배려해주었는데,[5] EBS 문화사 시리즈 <명동백작>[6] 에는 다방 '모나리자'의 마담이 외상값에 못이겨 문을 닫으며 문인들이 맡겨두었던 시계, 신분증 등을 돌려주는 장면도 등장한다. 조병화는 자신이 드나들던 다방의 마담에게 헌정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명동이 소비문화의 중심지가 아닌 '창조'의 중심지 노릇을 하던 시절의 이야기.
60년대로 넘어가면서 문화 중심지가 대학로로 옮겨가고, 대학로 주변에 '돌체' 등의 음악감상실이 생겼는데,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다방이었다. 대학로 일대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생과 법대생들이 애용했던 '''"학림다방"'''이라는 곳이 특히 유명했는데, 70년대 중반 학번들까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이 다방을 한 번 이상 이용했으며 추억으로 생각할 정도. 현대 한국문학이 싹튼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7] 이곳은 지금도 혜화역 3번 출구 앞에서 성업중. 아르코 예술극장 로비에 분점도 있다. 한편 연대생들이 70~80년대에 애용했던 신촌 독수리다방도 유명했고, 90년대에는 커피전문점으로 이미지 변신을 하면서 명맥을 유지해 나갔지만 프랜차이즈의 범람으로 인하여 2005년 결국 폐업했다...가 2013년에 애칭이던 독다방 이름으로 다시 부활했다. 원래 주인 할머니의 손자가 다시 영업을 하는 듯하다.
예로부터 한국영화계의 중심지인 충무로도 다방의 성지였다. 영화 배우들이나 감독들이 새로운 영화 구상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할 때 다방만큼 좋은 곳도 없었기 때문. 원래 배우였다가 연출가로 전업한 남기남은 스타다방에 갔다가 그곳에서 미남 배우인 최무룡을 보고는 '나같은 얼굴로는 배우하면 안 되겠구나.'라며 절망했다고.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몇 군데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카페 문화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전이었고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나 멀티플렉스 극장 같은 문화시설은 물론, 무엇보다도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휴대폰이 대중화된 2000년대 초반 이전까지는 '''약속장소와 시간을 확실히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덕분에 다방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는 종종 약속장소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위와 같은 특별한 케이스는 물론 보통의 2~30대들도 친구를 만나려면 다방으로 약속장소를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때문인지 아예 상호 자체가 '약속다방'인 곳도 꽤 많다. 지금도 다방에 혼자 들어가면 사람 만날 약속 있냐고 반드시 확인해보는 관례가 남아 있다.
당시의 다방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예로, 한국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 김기수씨가 은퇴 후 명동에 차린 "챔피언다방"을 들 수 있다. 당시 챔피언다방은 명동의 노른자위 땅에 있었는데(지금의 전진상 교육관 옆), 젊은이들의 약속장소로 꽤나 붐볐다. 그리고 당시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사이폰 커피를 팔았다.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히 고급 커피를 팔았던 셈.[8]
하지만 이 때에도 퇴폐적인 다방이 아주 없던 건 아니다.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특수끽다'(特殊喫茶)[9] 란 이름으로 변칙 영업을 하는 다방이 존재했으니 알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70~80년대에도[10] 그냥 평범한 다방인줄 알고 들어갔다가 레지들이 '''착석'''을 하고 치근덕 대는 통에 황급히 빠져나왔다는 경험담을 가끔 들을 수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정화되면서 그나마 이러한 문화가 외곽으로 밀려나서 다행인거지[11] , 다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준 접대부 취급을 받았고, 사실상 천한 직업의 오명을 벗지 못했다. 이러한 흐름이 아래에서 보이는 "티켓다방"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방하면 커피보다는 쌍화차가 떠오르는 사람도 많을 것인데 그 배경에는 5.16 이후에 커피 판매 금지 같은 이상한 상황도 있었기 때문이다. 외래품 판매 금지와 엮이면서 커피의 판매가 중단되더니, 이후에는 코코아, 홍차 등을 파는 것도 금지되었고 커피를 못파니 콩가루를 태워서 만든 '''콩피''' 같은게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가 계란 노른자 띄운 쌍화차로 대표되는 구식 다방 이미지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구식 이미지를 역으로 빈티지스럽게 이용해서 살아남은 다방들도 있다. 인사동이나 충무로 등지의 오래된 다방들은 일부러 초창기 인테리어나 소품들을 최대한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하얀 도자기로 된 재떨이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놋쇠주전자같은 골동품도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은 배달도 해준다.'''커피 마시게 이민 서둘러?'''
진짜 커피를 팔다가 들켜 벌칙 휴업에 처해진 다방들이 있었다.
한 달 남짓 쉬다가 문을 다시 연 후부턴 당국에 지극히 협조하는 태도로 나온다는 중론인데 그 실증물은 '콩피'라고 하는 액체 - 본명은 물론 '네오 커피'니 '카피'니 하는 것들이지만 맛은 '네오'는 커녕 '네오'의 사촌도 못된다는 게 민의 - 때문에 '콩피'라는 가명이 생긴 모양 - 다방가의 고객들은 그래도 이걸 문화수(?)로 알고 마시고 있으니 브라질의 농무상이 이 실정을 보았으면 이민 교섭보다 '커피' 염가수출안을 들고 나올 것만 같다.
13일 하오 최고회의 구내식당에서 엿들은 얘기지만 '골덴' 재건복을 입은 직원 수 명이 둘러앉아 하는 말이 걸작 -
"브라질 이민은 되는 거야 안되는 거야?"
"글쎄, 요즘은 별로 떠들썩하진 않더라..."
"책방에선 브라질어 입문이란 책이 잘 팔린다더군..."
"하여튼 갈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건너가서 커피 재배라도 해서..."
"고국에 보내달라! 이 말인가"
"그건 자네 사상과 흡사할 꺼야"
- 가명, '콩피'라는 그 괴물을 마시면서 이렇게 담교하는 관리들을 위해서도 브라질 이민 공작은 서둘러야 할 것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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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에 관해 잘 정리된 기사다.
3. 현재의 다방
오늘날 '다방'이라고 하면 아래와 같은 티켓다방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80년대 후반부터 서구식 카페의 등장과 함께 위기 의식을 느낀 일부 다방이 변칙 영업을 실시한 것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 이후 건전한 다방들은 모두 커피 전문점에 밀려 대부분 도태되었고, 퇴폐적인 티켓다방만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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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다방. 매장은 지하에 있다)
간판에 커피숍(간혹 커피숖)이라 씌어 있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딱 보면 다방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있다. 커피 체인점과 착각하면 애먼 일이 일어날수도...
경기도북부의 군부대 밀집지역에는 외출 외박을 나온 군인들을 상대하는 다방이 상당수 있었는데(2005년 당시), 이 다방들은 티켓다방이라기 보다는 카페의 낙후된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군부대를 살펴보면 다방 레지와 연애를 하는 병장 한둘쯤은 있다.
서울특별시에도 변두리 지역에는 다방이 몇 군데 남아 있다. 물론 변두리 지역에서도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은곳에만 남아있거나 그냥 없어져서 간판만 남은 경우도 있다. 90% 이상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고, 가끔 건물 2층에 있는 곳도 눈에 띄지만, 일반 커피숍과 같이 1층에 있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건물에 아예 지하가 없는 경우 1층에 위치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예를 들어 가리봉 시장 일대에서는 지하,1층,2층의 모든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런저런 다방을 많이 경험해본 자에 의하면, 보통 2층에 있는 경우는 일반적인 동네 사랑방 격의 다방이 많으며, 지하 1층에 위치한 경우 종업원과의 음란행위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수라고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없지 않다. 다방마다 서비스가 천차만별이라 오래된 경험자만이 분위기를 파악하고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카더라.
손님의 말상대를 주 업무로 하는 다방에서 일하는 여종업원을 "레지"라고 하는데,[12] 보통 커피 한잔을 시키면 "레지"의 것 까지 두잔이 나온다고 한다. 웹툰 트라우마에서 자판기용 다방커피로 적절히 표현했다.다방커피 요새는 일손이 부족해서 오너 혼자서 마담 겸 레지 노릇을 도맡는 경우도 꽤 있는 듯 하다.[13] 레지가 따로 있는 경우는 높은 확률로 노래방에 가자고 하거나 술을 사달라고 유혹 한다.[14]
서울의 구로나 대림 인근에는 중국인 레지가 많이 있다. 한국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으니 자칫하면 말 한 마디 못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어야만 할 수도 있다. 수원역 인근의 다방도 절반 가량은 중국인 레지를 고용하고 있다. 특히 신장개업이라 써붙인 경우는 가능성이 높다.
농담삼아 어항이 있으면 다방, 어항이 없으면 카페라고 한다. 다방 어항에는 잉어나 청거북이가 적절하다. 어항말고도 동양화 액자나 붓글씨 액자가 있는 경우도 있다.
어째서인지 출입구가 두 곳 있는 가게가 많이 있다. 이 경우 간판도 물론 출입구마다 하나씩 두 개를 달아놓는데, 한 쪽은 커피숍이라 씌어 있고 다른 쪽은 다방이라 씌어 있는 경우가 왕왕 보인다. 굳이 따질 이유는 없지만.
참고로 이곳에서 타주는 커피는 '''다방커피'''라고 일컫는다. 특유의 향과 맛을 지녔으며 한번 맛보면 빠져드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 맛의 비밀은 2:2:2비율과 인삼가루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커피를 주문하지 않고 머뭇거리면 커피보다는 다른 차류, 특히 쌍화차 같은 것들이 강추 들어온다. 이 쪽이 커피보다 비싸기 때문. 요즘은 바로 술로 가자는 경우도 많아진 듯. 다만 술이라고 해도 한두 병 정도 곁들이로 판다는 차원이고, 본격적인 주점에는 못미친다.
무려 커피나 기타 다류(茶類)의 배달이 가능하며, 혼자서 시키더라도 "레지"의 몫까지 두잔을 시키는 것이 예의다.
지방 모텔이나 여관 등지에서 남자 혼자 숙박할 경우, 자정 넘어서 다방에 커피 배달을 시키면 높은 확률로 "티켓"을 끊을 건지 제안해 온다. 물론 말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고, 실제로 표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다방에서 종업원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면서 '시간당 얼마'의 '''렌탈비'''를 내는 것을 티켓을 끊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변형 매춘인 것이다. 물론 렌탈비 이외에도 모텔비나 팁 등의 추가적인 부대 비용이 들어간다.
가끔 "티켓다방은 시골이나 군부대 주변에나 남아있지 않나요?"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주변 환경의 깨끗함에 감사해하자.''' 시골과 군부대 뿐만 아니라 공단 등에서는 '''출장업소'''로서 성업 중이며, 어린이들이 살건 말건 무차별적으로 성인 광고를 뿌려대서 잊을 만 하면 뉴스에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이곳은 주로 본게임을 빌미로 만만하다 싶은 상대를 골라서 돈을 뜯어먹으려 하는 곳이기에 되도록이면 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기도 하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T라는 메뉴도 있었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25도 짜리 싸구려 리큐르였다. 이순원의 소설 ‘19세’에서 등장인물 ‘돼지 아빠’라는 사람이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돼지 아빠가 티를 더 가져다 달라고 하자 주인공은 ‘그것이 술이란 것은 한창 나중에 알았다’고 독백한다.
4. 카페와의 차이점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다거나 동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두 곳을 자세히보면 '''엄연히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방에서 공급하는 커피의 경우는 대부분 '''인스턴트 커피가 주재료로 나오는 편'''이고 메뉴에 있어서도 '''밀크커피''', '''블랙커피''', '''프림커피''' 가 주 메뉴에 속하는 편이다. 또한 테이블에 항상 설탕과 성냥이 비치되어 있기도 한다.[15] 물론 일부는 원두커피를 파는 곳도 있다.
이와는 다르게 카페에서 공급하는 커피의 경우는 주로 브라질, 콜롬비아, 자메이카, 인도네시아 등 커피 생산국에서 수입해온 커피 생원두를 카페 본 매장에서 즉석으로 로스팅하는 식으로 커피를 공급하고 있는 편이었고 메뉴도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떼''', '''에스프레소''' 등이 주 메뉴에 속하는 편이고 가게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거나 핸드 드립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이 지상층에 위치해 있거나 번화가 또는 주택가 등지에 위치해 있는 것이 다른 점이다. 또 다방과는 달리 케이크, 베이글, 쿠키 등 디저트도 한 곳에서 취급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또 이탈리안풍을 본딴 경우도 많고 젊은층의 감각에 맞춰서 컨셉을 정하는 경우도 있으며 테이크 아웃 전문 기준으로는 테이크 아웃 위주로 커피 주문을 할 수 있다.
다방에서는 커피가 나오기 전 점원이 손님 앞에 와서 생수를 직접 갖다주기도 하고 커피를 직접 갖다주는 편이지만 카페는 커피가 나오기 전에 '''점원이 직접 손님 앞에 와서 생수를 갖다주지 않고''' 오히려 에비앙이나 페리에 같은 제품을 돈 주고 사서 마셔야하지만 대신 손님의 추가사항이나 요구사항에 따라 갖다 줄 수 있는 대비를 갖추고 있고 '''커피가 나오게 되면 울리게 되는 진동벨'''을 통해서 손님을 호출하여 커피 메뉴를 직접 가져갈 수 있는 방식으로 되어있는 편이다. 또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다방은 직원이 직접 치워주는 편이지만 카페는 손님이 다 먹은 잔반을 직접 카페 카운터나 반납대 등에 반납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편이다. 즉 카페의 경우 손님과 점원이 분리되어 있다면, 다방은 손님과 좀 더 접점이 있다.
5. 다방의 명칭
가장 흔한 것은 지역 이름을 딴 다방이다. 대림동에는 '대림다방', 신림동에는 '신림다방' 등등 다방이 있는 곳이라면, 그 동네 이름을 딴 다방이 틀림없이 있다.[16] 다만 요새는 지역에 따라 다방이 아예 한 집도 없을 수도 있다.
지역명칭을 제외하면 여성스러운 인명이나 초원, 태양, 풀잎, 평화 등등 자연 친화주의적인 이름들이 은근히 널리 쓰이는 편. 전술한 바와 같이 꽃마차의 경우도 저런 류의 명칭을 주로 사용하지만, 이 경우에는 간판에 커피 대신 양주/맥주가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참고하자. 이미지가 부드럽고 기억하기 쉬워서일 듯하다. 기본으로 두 자 이름이 선호되지만, 가끔 '흑장미' 처럼 석 자인 경우도 눈에 뜨인다. 그러나 넉 자를 넘어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역에 따라서는 '원다방'이나 '길다방' 등 외자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특히 '정다방'이 유독 많이 보인다.
왕년에는, 규모가 큰 기차역 근처에 역전다방이 필수적으로 있었다. 지금도 몇 몇 역 주변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카페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다방' 이라는 표기가 점점 사라지고, 대신 '커피숍'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이 늘었다. 물론 표기만 바꾼 것이고 가게 내부나 메뉴는 그대로. 또 '커피/호프'라는 표기도 근자에 다수를 이루고 있다. 커피보다는 좀 더 이문이 남는 주류를 중심으로 삼게 된 것이다. 다만 이 경우 다방에서 술 한 잔 정도 판매한다는 차원이고, 본격적인 주점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난다.
6. 사건/사고
1965년에 발생한 평창동 불륜처 살해 사건에서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가출한 뒤 다방에서 일했었다. 1970년에는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대식 카페와 경쟁력 면에서 많이 밀린데다 영업 방식도 낙후되었고 퇴폐업소 이미지가 강해졌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일자리를 찾던 초등학생 소녀가장을 고용해 티켓을 끊게 한 업주가 적발되었다. 처음에는 티켓을 안 끊어도 된다며 고용한 뒤 화장품값 명목으로 수십만원의 돈을 반강제적으로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매겨 '티켓을 끊어서 빨리 돈을 갚을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취재한 방송취재진들이 그 일대 다방들을 조사한 결과 여종업원들의 상당수가 미성년자였다는 점 때문에 충격을 주었다.
또한 2005년에는 강원도의 한 여성이 자신의 12살짜리 '''친딸'''을 강제로 룸살롱에서 일을 시켜 모은 돈으로 다방을 차린 뒤, 그 친딸을 또 티켓 배달로 부려먹은[17] 사례가 범죄재현프로인 형사에 보도되기도 했다.
2003년에 발간된 일본의 가이드북에서는 부산 일대의 다방에서 매춘 알선을 한다고 소개했는데 진위는 불명. 소개된 내용으로 보면 티켓다방과는 다른 형태인 듯하다.
[1] 이건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전문점도 마찬가지.[2] 다방 혹은 카페를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3] 야인시대에 나오는 동명의 카페의 모티브. 김이수가 주인이다.[4] 물론 오상순은 당시에도 육순을 넘긴 시인이긴 했다. 오상순은 청동다방에 드나드는 젊은이들을 강제로 붙잡고 글을 남기게 해 이를 '청동시대'라는 동인지로 만들기도 했다.[5] 유명 문인이 죽치고 있으면 손님이 딸려오니 그랬겠지만.[6] 드라마에 다큐 형식을 끌어들여 정보석이 해설하고 생존중인 관련인들의 증언을 삽입했다.[7] 김지하가 본명 김영일 대신 '지하'라는 필명을 지은 곳이 바로 학림다방이다. 문학평론가 김현, <한국문학통사>의 조동일 등도 이곳을 드나들었다.[8] 요즘도 스타벅스 리저브에서나 마실 만한 커피다. 심지어 리저브에서도 사이폰은 1000원 추가.[9] 반대로 건전한 다방은 '순끽다'(純喫茶)로 불렀다. 참고로 현대 일본에서 '순끽다'(준킷사)는 술을 전혀 팔지 않는 카페란 뜻으로 쓰인다.[10] 의외로 80년대까지는 바, 식당같은 곳도 이런 퇴폐업소가 암암리에 존재했다. 전자의 경우 쉽게 말해 아예 매춘을 대놓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후자의 경우 소위 말하는 요정(방석집)의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60~70년대 호스티스물을 보면 이러한 곳의 묘사가 잘 나와있다.[11] 아직도 재개발이 안 된 도시의 변두리 지역이나 일부 시골에서는 티켓다방을 찾아 볼 수 있다.[12] 어원은 불분명하며 크게 두 가지 설로 나뉜다. 원래는 다방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던 여종업원만 레지(스터)라고 불렀다가 아예 여종업원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와전되었단 설, 그리고 '레이디'가 변형된 것이란 설이 있다.[13] 1년 내내 신장개업과 더불어 여종업원 모집을 써붙이고 있는 가게가 많이 있다[14] 사실 다방 가까이에 노래방이 있는 경우가 제법 된다. 단순한 우연이거나, 옛날 다방 자리에 노래방이 생긴 경우도 굉장히 많으니 근처에 노래방이 있다고 무조건 그런 영업을 하는 다방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전술한 바와 같이 다방마다 허용범위, 서비스가 천차만별이니 판단은 알아서 하도록 하자.[15] '''서비스'''가 좋은 가게는 아예 테이블 위에 휴지나 물티슈도 상비해둔다.[16] 가끔은 엉뚱한 동네 이름을 갖다 붙인 다방조차도 있다.[17] 낙태수술까지 시킨 뒤에도 계속 일을 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