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 매닝

 

'''일라이 매닝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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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LII'''
'''XLVI'''



'''슈퍼볼 XLII MVP'''
페이튼 매닝
(QB /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일라이 매닝
(QB / 뉴욕 자이언츠)'''

산토니오 홈즈
(WR / 피츠버그 스틸러스)
'''슈퍼볼 XLVI MVP'''
애런 로저스
(QB / 그린베이 패커스)

'''일라이 매닝
(QB / 뉴욕 자이언츠)'''

조 플라코
(QB / 볼티모어 레이븐스)

'''2016년 NFL 월터 페이튼상'''
앤콴 볼딘
(WR /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일라이 매닝
(QB / 뉴욕 자이언츠)'''
래리 피츠제럴드
(WR / 애리조나 카디널스)

J.J. 왓
(DE / 휴스턴 텍산스)

'''2020년 NFL 바트 스타상'''
칼레 캠벨
(DE / 잭슨빌 재규어스)

'''일라이 매닝
(QB / 뉴욕 자이언츠)'''

2021년 수상자



'''뉴욕 자이언츠 No.10 '''
'''이름'''
'''엘리샤 넬슨 "일라이" 매닝 4세
(Elisha Nelson "Eli" Manning IV)'''
'''생년월일'''
1981년 1월 3일 (43세)
'''국적'''
[image] 미국
'''출신지'''
루이지애나뉴올리언스
'''종교'''
감리회
'''가족 관계'''
아버지 아치 매닝 / 첫째 형 쿠퍼 매닝 / 둘째 형 '''페이튼 매닝'''
'''출신 대학'''
미시시피 대학교
'''신체'''
196cm / 99kg
'''포지션'''
'''쿼터백'''
'''프로 입단'''
'''2004년 NFL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샌디에이고 차저스 지명'''[1]
'''소속 구단'''
'''뉴욕 자이언츠 (2004-2019)'''
'''수상'''
'''[image] 슈퍼볼 우승 2회 (XLII, XLVI)
[image]슈퍼볼 MVP 2회 (XLII, XLVI)
[image] 프로볼 4회 (2008, 2011-2012, 2015)'''
[image] 월터 페이튼 어워드 (2016)
[image] 바트 스타 어워드 (2020)
1. 개요
3.1. 드래프트 논란
3.4. 그 이후
4. 까임의 연속(...)
5. 기타
6. 연도별 기록
7. 관련 문서


1. 개요


미식축구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소속팀은 뉴욕 자이언츠.
매닝 가문의 막내이자 페이튼 매닝동생. 별명은 엘리트 쿼터백[2]. NFL 쿼터백 중에서도 최고 엘리트였던 자기 형번번이 비교되었다.[3] 드래프트 나올 때부터 명예의 전당행 표를 예약해놓은 상태라는 평판을 들을 정도였던 형 페이튼에 비해 2004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되었음에도 데뷔 초기에는 형만큼 다른 동기를 압도하는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특정팀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드래프트 징징 때문에 프로생활을 시작도 하기 전에 평생까임권의 대상이었다. 신인이었던 2004년 시즌 개막 직전에 인터뷰에서 일라이는 '''나도 형만큼은 할 수 있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웃기지 마라!!!''' 라며 비웃었다(...).[4]
그러나 워낙 엄청난 형을 둬서 그렇지 그도 엄연히 벤 로슬리스버거, 필립 리버스같은 쿼터백들을 제치고 드래프트 전체 지명 1번을 받았던 '''특급 재능'''이었으며 프로 데뷔 후 '''슈퍼볼까지 2회나 차지'''하면서 확실히 엘리트로 분류될 자격은 충분한 쿼터백이었다. NFL 최고액 연봉선수 중 하나로,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과 경쟁이 붙곤 했었다(...).[5] 또한, '''슈퍼볼 MVP를 2회''' 수상했는데, 슈퍼볼에서 MVP를 2회 이상 수상한 사람이 바트 스타, 테리 브래드쇼, 조 몬태나, 톰 브래디밖에 없다는 점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식축구계에서 G.O.A.T가 된 선수를 2번이나 정상의 자리에서 박살내버린 위대한 기록을 쓴 선수이기도하다. 이른바 '브래디의 크립토나이트', '드래곤 슬레이어'

2. 대학 풋볼


프로가 되기 전에는 아버지 아치 매닝의 모교 미시시피 대학교에 진학, 올 미스 레벨스팀에서 대학 무대을 밟았었다.[6] 시기는 다르지만 형과 같은 컨퍼런스에서 뛰었었던 것. 그리고 이때부터 형보다 못한 아우라는 말 비록 내셔널 챔피언쉽 우승은 못했지만 대학 시절 내내 팀을 우승 후보급으로 이끌며 여러 영웅적인 활약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을 만들어냈던 형에 비해 4학년이 될때까지 개인 활약은 훌륭하지만 팀은 컨퍼런스 약체 신세에서 구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4학년 시즌 드디어 걸출한 활약과 함께 팀을 우승을 기대해볼만한 위치까지 이끌지만[7] 하필 같은 컨퍼런스 디비전팀이자 당시 닉 세이반이 이끄는, 그해 내셔널 챔피언쉽 위너 LSU 타이거스와의 맞대결에서 패해 컨퍼런스 우승에 실패한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는 슈가 보울에 진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를 꺾으며 대학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게 된다.

3. NFL



3.1. 드래프트 논란


비록 대학에서 매닝가문의 기대치만큼, 그리고 형만큼의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아버지나 형만한 재능을 충분히 보여줬던지라 일라이 역시 동년배 최고의 쿼터백 재능으로 평가받으며 2004년 NFL 드래프트에 참가, 유력한 전체 1순위 지명후보로 꼽히게 된다. 하지만 이때 희대의 NFL 드래프트 사건을 일으키게 되니, [8] 드래프트 지명권 1순위[9] 샌디에이고 차저스에 입단하기 싫다는 이유로 징징을 시전한 것. 거기다 드래프트 거부와 트레이드 요구 과정에서 자기 아버지까지 동원하는 바람에 더 심하게 까였다.[10] 아버지인 아치 매닝은 "샌디에이고에는 드류 브리스라는 확실한 주전 쿼터백이 있어서 일라이의 재능을 썩히기만 할 게 뻔하니까,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뉴욕 자이언츠 같은 팀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샌디에이고는 단시간 안에 일라이를 주전으로 기용하겠다고 설득을 했으나 실은 '''더 높은 계약금을 줄 수 있는''' 뉴욕 자이언츠에 가고싶다는 말이었다.
결국 일라이 매닝은 지명후 전체 4순위인 필립 리버스와 트레이드 되어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러고는 실질적으로 4순위니 4순위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는 자이언츠 구단을 상대로 입단 경위야 어쨌든 지명 받은 건 전체 1순위이니 1순위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11]면서 징징을 시전, 입단 과정에서 또 까이면서 자이언츠 팬들 중에서 여전히 이 선수의 안티가 존재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참고로 일라이의 아버지인 아치 매닝은 두 아들을 대학보낼때도 이런 식의 입김을 넣었다. 페이튼 매닝이 아버지 아치 매닝, 형 쿠퍼 매닝의 모교인 미시시피대학을 거절하고 테네시대학을 택했을때, 아치 매닝이 '''몇년만 기다려 얘보다 더 잘하는 동생은 미시시피로 보낼께'''라고 학교 관계자에게 말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결국 일라이는 1순위 지명후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된 뒤 전문가들 예측대로 신인임에도 6년 54M에 사이닝보너스 20M을 받는 역대 최고의 신인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당시 NFL은 다른 신인 드래프트가 존재하는 스포츠와 다르게 샐러리캡이 존재함에도 신인 선수에 대한 연봉, 계약금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퇴이후 이 징징거림을 재평가보는 쪽도 있다. 자기자신의 가치를 잘알고 현재 오너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카우보이스나 차저스 레드스킨즈) 또는 QB를 재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1라운더를 데려와놓고 트레이드 혹은 짜르기를 반복하는 (이전의 타이탄스나 현 돌핀즈, 제츠) 막장으로간 팀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을 잘키울수 있는 팀을 스스로 선택했다는건데, 콜츠의 선택을 거절한 명예의 전당의 존 앨웨이나 차저스의 선택을 거절한 일라이가 결국에 무시 못할 레거시를 만들어 놓고 은퇴를 하였기 때문에 요즘 5스타 QB들이 드레프트 전 재능도 재능이지만 성공을 위해 팀 운영이나 분위기을 알고 자신과 안 맞으면 거절할수있어야한다 보는 사람들이 나온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먼 미래인 2021년 역대 최고의 대학 쿼터백으로도 거론되는 트레버 로렌스뉴욕 제츠잭슨빌 재규어스중 한 팀으로 드래프트되는 상황이 일어나니 아예 일라이해도 무죄라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3.2. 첫 슈퍼볼 우승


우여곡절의 드래프트 사건끝에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 어찌됐건 벤 로슬리스버거, 필립 리버스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전체 1위에 지명된 쿼터백이니만큼 그가 받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루키 시즌은 주전이 되고 싶다면서 그렇게 입단한 자이언츠에서도 커트 워너에 밀려 절반밖에 선발로 나서지도 못했으며 두번째 시즌은 본격적으로 주전이 되며 시즌 초반 드디어 활약하기 시작하나했더니 후반가서 폼이 떨어지며 와일드카드전에서 캐롤라이나 팬서스에게 셧아웃 패배를 당하는 졸전을 펼쳐버렸다. 두번째 시즌도 9주차까지는 팀을 6-2로 이끌며 선전하더니 후반가서는 팀의 연패행진의 주역이 되면서 8-8로 시즌을 마쳤다.
그렇게 형은 커녕 그가 받던 기대에도 못미치던 쿼터백이 되는가 싶었는데... 2007-08시즌 역시 10승 6패라는 성적때문에 과연 자이언츠가 이 놈을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믿고 가야할지 의문까지 드는 와중에 턱걸이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가 사고를 쳐버리게 되니, 와카전, 디비전 라운드, 컨퍼런스 챔피언쉽에서 정규 시즌 기록들을 웃도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버린 것. 그리고 이어진 슈퍼볼 XLII(Super Bowl XLII)에서 정규시즌 전승에다가 전승 우승 도전으로 기세등등한 톰 브래디, 랜디 모스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경기 종료 35초를 남기고 역전에 성공해 뉴잉글랜드를 전승준으로 쳐박으며 자이언츠에 슈퍼볼을 가져오는 역사적인 승리까지 이뤄냈다.''' 당시의 경기는 슈퍼볼 역사에 길이남을 명승부이자 역전극으로, 그의 커리어의 반환점이자 평생동안 기억될 순간이었는데, 특히 4쿼터에서 쌕을 당할 절제절명의 위기를 빠져나와서 던진 패스[12]를 리시버 데이빗 타이리가 헬멧으로 꽉 고정시켜 받아낸 장면은 '''역대 슈퍼볼 최고의 장면''' 1위에 올랐다.[13] 이 경기로 자신은 슈퍼볼 MVP가 되며 형이 슈퍼볼 링을 얻은 바로 다음해에 슈퍼볼 링을 얻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 시즌의 전승준은 뉴잉글랜드 팬들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언급하기도 싫어할 정도의 흑역사이며 악몽 같은 최악의 슈퍼볼로 여겨질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3.3. 두 번째 슈퍼볼 우승


이어진 2008 시즌은 드디어 슈퍼볼 우승 경험치를 먹고 제대로 프랜차이즈 쿼터백스러운 활약을 펼쳤다. 팀도 12-4라는 호성적으로 디비전 우승과 함께 디비전 라운드로 플레이오프 직행을 한다. 그런데 하필 자신의 천적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만나면서 졸전을 펼쳐주면서 깔끔하게 패배를 당해버렸다. 비록 시즌을 또다시 일라이스럽게 끝내긴 했지만, 2009년에는 커리어 첫 4,000야드 패스 전진 기록을 세우면서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팀이 부상 문제에 시달리는 통에 8-8로 시즌을 마쳤으며, 2010년에도 4,000야드를 넘기며 팀을 이끌었지만 이번에도 천적 필라델피아 이글스에게 4쿼터에만 28점을 내주며 38-31로 역사적인 역전패를 당하며 지구 우승을 뺏기고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했다. 비록 나쁘진 않은 세 시즌이었지만 슈퍼볼 우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꾸준한 기복 덕분에 엘리트라기엔 부족함이 있는 모습이었던 참에 2011-12 시즌을 맞게 된다.
2011-12 시즌에는 수비가 부상 등으로 전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좋은 성적을 내긴 어려울거란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본인도 프리시즌 인터뷰에서 자신을 톰 브래디에 비교하며 대차게 까이기까지 했는데... 이 말은 이 시즌 슈퍼볼 역사 한정으로 '''현실이 된다.''' 정규 시즌 4,933야드로 5,000야드에 육박하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지만 팀이 수비불안에 시달리며 5할을 간신히 넘는 성적(9승7패)에 그쳤다. 그러나 다른 지구팀들도 함께 죽을 쒀준 덕분에 NFC 동부 우승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와일드카드 홈경기에 겨우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턱걸이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전설을 써내려가게 되니... 애런 로저스, 알렉스 스미스 등 엘리트 쿼터백을 차례차례로 꺾고 결국 46회 슈퍼볼(Super Bowl XLVI)에서 톰 브래디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4년 만에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그리고 경기 전 전문가 및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의 예상부터 경기 전개 내용, 결과까지 4년전의 판박이. 그리고 이 경기에서 '''다시 한번 톰 브래디를 슈퍼볼 준우승으로 처박으면서 명실상부한 톰 브래디 킬러로 떠올랐다.''' 거기에 두번째 슈퍼볼 MVP 수상은 덤. 이 두번째 슈퍼볼 우승으로 그토록 놀림을 받아도 결국 엘리트라 자칭하고 다닐만한 업적을 세웠으며 드래프트 때 징징거려서 깎아먹은 평판도 거의 묻어버리게 됐다.[14]

3.4. 그 이후


2012, 2013년에는 각각 프로볼에 선정되고 자이언츠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패싱 전진 선수가 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또다시 슈퍼볼 반지 보유 쿼터백치곤 확실하게 부족했다. 거기다 2014년엔 오델 베컴 주니어의 등장과 함께 커리어 최다인 4,410야드, 2015시즌은 조금 더 많은 4,436야드 [15]를 찍었지만 결국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계속 까이고 있다. 2년간 최약 오펜스 라인맨이라던가 러닝백과 일라이간 불협화음이 그칠날이 없었다는 핑계도 댈 수 있지만, 어차피 성적 안좋으면 까일수밖에 없는게 쿼터백 숙명. 계속 이런식으로 시간보내다 은퇴할 경우 2번 슈퍼볼 우승&MVP 따놓고도 명예의 전당에도 못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이다.
특히 슈퍼볼 50에서 페이튼이 생애 두 번째 슈퍼볼 우승을, 그 것도 역사상 최초로 두 팀에서 우승을 한 쿼터백이 되면서 슈퍼볼 우승반지 갯수도 똑같아지면서 우승 외엔 정규시즌 성적이나 플옵 진출등에서 한참 밀리는 일라이가 형 따라잡으려면 더 분발해야될 상황이다. 아무리 슈퍼볼 우승 반지 2개가 있어도 매년 쉬지 않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슈퍼볼 우승에 도전하던 형에 비해 정규시즌 승률 5할도 못채우고 예선통과도 못한 시즌이 많은 건 분명히 팀빨 이전에 일라이가 스스로 넘어야할 문제이다.
하지만 2018시즌 급격한 노쇠화로 이제 은퇴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고 뉴욕 팬들은 2019년 상위픽을 쿼터백에 쓰자고 하고 있다. 롱패스 능력의 실종으로 오델 베컴 주니어와 세이콴 바클리까지 있는데도 팀이 힘든 상태. 뉴욕 자이언츠도 일라이 매닝의 뒤를 이을 쿼터백을 찾고 있는 중. 게다가 오델 베컴 주니어까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로 이적하였다.
결국 2019년 드래프트에서 자이언츠가 대니얼 존스를 선택하며 일라이의 주전 활용은 앞으로 2~3년은 더 이어질 예정었으나... 초반부터 부진이 계속 이어지자 2019시즌 3주차에 일라이를 벤치로 내리고 존스를 선발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존슨의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초반 두 경기에서 2연승. 그러나 이후 경기부터는 오락가락하며 내리 연패중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팀에서는 이대로 존스를 프렌차이즈 주전으로 밀고가는 것으로 보인다.
존스가 시즌 막바지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하자 다시 주전으로 복귀! 라이벌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게임에서는 초반에 선전했으나 후반의 침묵으로 연장전 돌입후 아쉽게 패배한다. 그 다음주 마이애미와의 홈경기에서는 3개의 인터셉션을 내줬으나 2개의 터치다운 패스와 바클리의 활약으로 오래간만에 승리를 따낸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임을 예감한 듯 경기 종료 후 일일히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홈팬들의 환호에 화답하며 조용히 퇴장했다. 이후 존스의 부상이 회복되고 마이애미와의 경기가 일라이의 고별전이 되었다.
2019시즌 동안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자이언츠에서 주전 QB으로서 생활은 끝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은퇴 언급은 하지 않고 있고 다음주에 할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현역에 대한 의지는 여전하다. 트레이드 소식도 종종 나오고 있어 오프시즌 동안 거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1월 FA 선언과 동시에 자이언츠에서의 16시즌을 뒤로하고 전격 은퇴를 발표했다. 그래도 자이언츠 슈퍼볼 우승 중 2번을 만들어 내고[16], 그의 등번호인 10번이 영구 결번 되면서 명예롭게 은퇴하게 되었다.#

4. 까임의 연속(...)



자이언츠의 주전 쿼터백으로 무려 슈퍼볼 MVP를 두번이나 해봤지만 미국에서의 취급은 형에 밀리는 콩라인. 형보다 기복이 심하고 경기가 안풀리면 그게 표정에서 확 보이는게 언제나 진중하고 무게감있는 형과 비교되어 아마도 죽을때까지 전국구 2인자 취급을 당할 듯. 안습. 2013년 기준으로 현역 쿼터백 중 엘리트를 꼽으라면 보통 , 톰 브래디, 드류 브리스, 애런 로저스까지 네명을 꼽는데 일라이는 엘리트 쿼터백 논쟁에서 언급도 안된다.(...) 요즘은 드래프트 동기이자 직접적인 라이벌인 필립 리버스벤 로슬리스버거에 밀리는건 물론, 러셀 윌슨, 콜린 캐퍼닉, 캠 뉴튼, 앤드류 럭같은 젊은 쿼터백들에게 밀리는것도 모자라 매체에 때라서 토니 로모, 마이클 빅같이 안습하거나 한물간 쿼터백들보다도 아래에 놓기도 한다.[17]
2018년에는 루키 쿼터백 제러드 고프, 패트릭 마홈스보다도 평가가 못하다. 전술한대로 드래프트 동기인 실질적 라이벌 리버스와 빅 벤이 2018 시즌에도 꾸준히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일라이만 안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리버스만 슈퍼볼 반지가 0개일 뿐이지 차저스를 지금도 유력한 우승후보로 이끌고 있으며 , 빅 벤은 슈퍼볼 반지도 똑같이 2개에 승률은 일라이보다 더 높고 개인 스탯도 훨씬 준수하다.
미국내의 실제 NFL 전문가들까지도 일라이를 엘리트급 쿼터백으로 뽑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 2번의 슈퍼볼우승을, 그것도 톰 브래디에게서 일궈냈으니 엘리트급으로 뽑는 것도 당연한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슈퍼볼 우승은 쿼터백 1명의 힘으로 일궈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슈퍼볼 MVP 선정에는 쿼터백 프리미엄이 있기에 유리한거지 슈퍼볼에서 엄청나게 잘한 것도 아니다. 여기에 기복이 너무나도 심하다는 문제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형보다 더 심하다!'''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NFL의 특성상 이는 굉장한 문제거리이고 실제로 일라이의 평가절하 분위기가 조성된건 슈퍼볼 46 우승 이후 4년동안 자이언츠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지도 못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다. 실제로 일라이는 커리어 16시즌동안 6번 팀이 플옵에 올랐는데, 07,11 슈퍼볼을 차지한 두 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4시즌 합쳐서 0승이다(...). 즉 2번 대박치고 나머지는 광탈이었단 얘기. 똑같이 반지 2개인 빅 벤은 플옵 통산 13승에 심지어 명예의 전당에 거론조차 되지 않는 동기 필립 리버스조차 6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4시즌은 1승 이상 거두었으며[18][19] 2016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연속실패는 꺾었지만, 와일드카드 게임 2쿼터에서 그린베이 패커스애런 로저스에게 '''헤일 메리를 얻어맞고'''[20] 박살나는 동시에 4쿼터에 패스 직전 '''펌블을 시전''', '''경기종료 30초 전 인터셉션을 시전'''하면서 이미지만 구겼고, 그 다음시즌 최악의 시즌을 보내며 팀을 전체 꼴찌로 밀어넣고 만다. 여기에 고집불통 격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 역시 취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21].
형과 동생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면 이렇게 하기도 하고, 이러기도 한다. . 물론 실제로는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간혹 진짜로 트러블이 생기면 장남인 쿠퍼가 중재한다고 한다. 쿠퍼는 촉망받는 리시버였지만 척추질환으로 풋볼을 관둬야만 했다. [22] 참고로 이 첫째형 쿠퍼는 일라이와 정말 많이 닮았다.
[image]
위 사진에서 왼쪽부터 아버지 매닝, 첫째 쿠퍼 매닝, 일라이 매닝.

2013년 둘째 형님과 찍은 DirecTV 광고 Football On Your Phone.

형과의 비교 외에도 유독 디비전 라이벌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경기에선 약점을 보이는데, 2010년 시즌에서 졸전끝에 어처구니 없는 역전패를 당하고 나서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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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안풀릴때의 안습한 표정도 유명해서 엄청난 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슈퍼볼 50에서 브롱코스가 우승을 확정짓는 터치다운을 성공시키자, 형의 두번째 슈퍼볼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있다."''' 사실은 매닝 일가가 전원 다 모여서 스위트 룸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는데 페이튼의 두번째 우승이 거의 확정되자 온 가족이 기뻐하고 있는 데 혼자만 저런 표정으로 일관해서 "혹시 형이 자기하고 우승회수가 같아지면서 이제 우승반지 개수 가지고 형을 놀릴 수 없게 돼서 삐친게 아니냐"라는 식으로 안티들로부터 찌질하다면서 소소하게 까이기도 했다[23].

5. 기타



SNL에는 형들의 억압으로부터 동생들을 구해주는 Little Brothers의 후원자로 등장했다.[24] 일종의 자학개그.
2번의 슈퍼볼을 뉴욕팬들의 숙적 보스턴을 꺾어버리면서 뉴욕에 가져온 선수이기도 하기 때문에 슈퍼볼 XLII, 슈퍼볼 XLVI의 세대가 은퇴하게 되는 시점에는 무난히 영구결번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예상대로 은퇴와 동시에 일라이의 10번은 자이언츠 영구결번이 되었다.
2020년 은퇴함에 따라 일라이의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뉴욕 지역 언론등 상당수가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반면, 명예의 전당급 QB가 되기엔 통산 성적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많다. 향후 명예의 전당 후보로 오를 때까지 꾸준히 얘기가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디시인사이드 미식축구 마이너 갤러리의 갤주를 맡고 있다. 허당미+그렇게까지 엘리트는 아닌 쿼터백+뛰어났던 형+역대 최고의 감독,선수 콤비를 슈퍼볼에서 2번이나 쳐부숨이라는 말도 안되는 스토리가 인기의 비결. 일라이가 은퇴한 이후 갤러들은 매우 큰 허전함을 느꼈으며 다니엘 존스가 차기 갤주가 될 수 있을까?라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톰 브래디가 계속해서 우승을 추가해나가면서 결국 7회 슈퍼볼 우승이라는 무지막지한 대기록을 세우며 G.O.A.T에 등극하자 덩달아 일라이의 위상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이게 농담만이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분석까지 시도되고 있는 중.

6. 연도별 기록


'''시즌'''
'''소속팀'''
'''출장
경기
'''
'''패싱'''
'''러싱'''
'''시도'''
'''성공'''
'''성공률'''
'''야드'''
'''평균
야드
'''
'''터치
다운
'''
'''인터
셉트
'''
''''''
'''색야드'''
'''레이트'''
'''시도'''
'''야드'''
'''평균
야드
'''
'''터치
다운
'''
2004
NYG
9
197
95
48.2
1043
5.3
6
9
13
83
55.4
6
35
5.8
0
2005
'''16'''
557
294
52.8
3762
6.8
24
17
28
184
75.9
29
80
2.8
1
2006
'''16'''
522
301
57.7
3244
6.2
24
18
25
186
77
25
21
0.8
0
2007
'''16'''
529
297
56.1
3336
6.3
23
'''20'''
27
217
73.9
29
69
2.4
1
2008
'''16'''
479
289
60.3
3238
6.8
21
10
27
174
86.4
20
10
0.5
1
2009
'''16'''
509
317
62.3
4021
7.9
27
14
30
216
93.1
17
65
3.8
0
2010
'''16'''
539
339
62.9
4002
7.4
31
'''25'''
16
117
85.3
32
70
2.2
0
2011
'''16'''
589
359
61
4933
8.4
29
16
28
199
92.9
35
15
0.4
1
2012
'''16'''
536
321
59.9
3948
7.4
26
15
19
136
87.2
20
30
1.5
0
2013
'''16'''
551
317
57.5
3818
6.9
18
'''27'''
39
281
69.4
18
36
2
0
2014
'''16'''
601
379
63.1
4410
7.3
30
14
28
187
92.1
12
31
2.6
1
2015
'''16'''
618
387
62.6
4432
7.2
35
14
27
157
93.6
20
61
3.1
0
2016
'''16'''
598
377
63
4027
6.7
26
16
21
142
86
21
-9
-0.4
0
2017
15
571
352
61.6
3468
6.1
19
11
31
189
80.4
12
26
2.2
1
2018
'''16'''
576
380
66
4299
7.5
21
11
47
358
92.4
15
20
1.3
1
2019
4
147
91
61.9
1042
7.1
6
5
5
44
82.6
4
7
1.8
0
NFL 통산
(16시즌)
236
8119
4895
60.3
57023
7
366
244
411
2870
84.1
315
567
1.8
7

7. 관련 문서


[1] 지명은 차저스에서 받았으나 직후 전체 4픽이었던 필립 리버스와 트레이드 되면서 데뷔는 뉴욕 자이언츠에서 했다.[2] 성적도 성적이지만 약간 비꼬는 의미도 들어있다.[3] 실제로 지역 라디오와 언론들은 페이튼 매닝과 비교하면서 '형보다도 못한 아우'라고 노상 까댔다. "네 형은 이런데 넌 뭐니 대체??" 뭐, 이런 식으로...[4] 2011년 시즌 시작 전 뉴욕 지역 라디오 대담쇼에서 "당신은 최고의 쿼터백이라 생각하나요?"란 진행자의 질문에 "네, 그렇다고 믿어요."라고 대답했다가 여론과 안티들에게 "실성했나"란 까임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5] 형이랑 슈퍼볼 우승 횟수가 같으나 (2대2), '''2번의 슈퍼볼 우승을 전부 톰 브래디를 이기고 했다.''' [6] 형인 페이튼 매닝은 같은 컨퍼런스의 테네시에 진학했었다.[7] 이때 팀 동료로, 훗날 자이언츠에서 같이 슈퍼볼을 2번이나 따내는 활약을 한 거인 러닝백 브랜던 제이콥스가 같이 있었다.[8] 1998년 드래프트 전체 2번으로 지명한 쿼터백 라이언 리프가 폭삭 망한 후유증이 오래 갔다. 그해 전체 1번 픽이 바로 '''페이튼 매닝'''.[9] 이 시기의 차저스는 라이언 리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팀을 재건하여 매년 플레이오프 진출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었는데 하필 그해 주전 쿼터백 드류 브리스가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 주전에서 쫓겨나기까지 하는 등 폭망하면서 성적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서 1순위 지명권을 차지했다.[10] 한마디로 "네 나이가 몇인데 그 나이 먹고도 네 진로를 네가 스스로 결정 못하고 아버지 품 속에서 징징거리고 있냐?"라는 식. 비슷하게 1983년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콜츠 가기 싫어서 서부 가겠다고 뻐팅긴 선배 존 엘웨이는 자기 야구실력가지고 뉴욕 양키스 지명 핑계대면서 정치질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표면에 나서지는 않았다.[11] NFL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신인은 자기보다 앞선 순위로 지명된 선수보다 계약금을 단돈 1센트도 더 받을 수 없게 되어있다. 즉 일라이를 전체 지명 1순위로 취급하면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의 상한선은 무한대(...)이지만 4순위로 취급하면 3순위 지명자(애리조나 카디널스의 래리 피츠제럴드)의 계약금이 계약금의 상한선이 된다. 구단과 선수 입장에서는 일라이를 1순위로 간주하느냐 4순위로 간주하느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차이.[12] 이 장면은 50회 대회 때 역대 슈퍼볼 MVP들을 소개하는 행사에서 일라이가 등장할 때(6분 50초부터) 쓰이게 된다.[13] 더구나 데이빗 타이리는 이전에는 스페셜 팀에서 허드렛일이나 도맡아 하던 거의 듣보잡격 선수였으니...[14] 그럼에도 일부 안티들은 어김없이 시전되는 그의 인터셉션을 예로 들어 "아직까지 멀었다"고 도리질 중. 사실 지금까지의 커리어로 볼때는 형보다는 브렛 파브의 커리어를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플레이 스타일이 형보다는 파브에 훨씬 가깝기도 하고. [15] 참고로 페이튼은 커리어에서 4,500야드 이상을 총 6번 찍었고, 시즌 최고 기록은 '''5,477야드'''에 달한다.[16] 일라이가 현역이던 기간 동안 슈퍼볼 2번 이상 우승한 팀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피츠버그 스틸러스, 뉴욕 자이언츠가 끝이다.[17] 그래서인지 로모가 현역은퇴 시점에 만들어진 디시인사이드의 미식축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당당히 갤주로 등극해 하버드 출신 잉여+우승억제기 라이언 피츠패트릭과 틈만 나면 갈굼당하고 있다. 옆에서 고통받으며 발광하는 오뎅 때문에 더 비교된다.[18] 기복이 좀 있었고, 말년에 얹혀가는 이미지가 있었어도 형 페이튼은 17년 현역생활 동안 2001년,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2011년 2시즌 외엔 단 한시즌도 쉬지 않고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 시켰고 정규시즌+플옵 합쳐 200승을 거둔 승리의 사나이다.[19] 반면 일라이는 2018년 기준 124승 120패로 현역 최다 패왕이다. 일라이 다음 다패 2위인 브리스는 164승 116패로 일라이보다 무려 42승을 더했다.[20]조 벅이 헤일메리를 그 누구보다 잘 한다고 하면서 로저스를 찬양하였다.[21] 다시 말해, 특정 선수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하다. 즉 와이드 리시버 중 한명에게 꽂히면 주구장창 그 선수만 쓰는 식이다. 심지어 수비진들이 이를 간파하고 수비 포메이션을 바꿨음에도 그 선수만 고집하다가 인터셉트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22] Cooper Manning- 고교 졸업때 루이지애나 주 올스타급인 All-State 팀의 Wide Receiver로 뽑히며 아버지 Archie Manning의 모교인 미시시피 대학교에 입학 예정이었다. 대학교 입학 전 여름방학때 손가락과 발가락에 통증을 느껴, 미네소타주의 Mayo Clinic에 가서 진찰을 하니 척추협착증(Spinal Stenosis)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며 풋볼 선수로써의 인생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쿠퍼의 아들 아치 매닝(Arch Manning)이 고등학교에서 쿼터백으로서 삼촌들의 대를 잇기 위해 준비중이다.[23] 사실 위의 짤방에서 보여지는 허당 이미지가 강렬해서 그렇지 이 분 역시 승부욕으로 치면 둘째가라면 섭섭해 하는지라. 또 실질적으로도 프로선수로 뛸 수 있는 기간도 얼마 남지않았다. 올해 2016-17 시즌이 자신의 프로생활 12년째가 되니..은퇴하기 전에 한번 더 우승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는 하다.[24] 아버지 역할을 해줄 남자가 필요한 소년들에게 자원봉사자를 붙여주는 Big Brothers라는 자선단체의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