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승희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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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5대
백남치

제16대
함승희

제17대
정봉주




이름
함승희 (咸承熙)
출생일
1951년 2월 10일 (73세)
출생지
강원도 양양군
학력
서울양정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법학 / 석사)
의원선수
1
의원대수
16
약력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형사부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
법무법인 대륙 대표변호사
제16대 국회의원
제17대 박근혜 대통령후보 클린선대위원장
친박연대 최고위원
친박연대 공천심사위원장
강원랜드 대표이사 사장
1. 개요
2. 생애 및 정치활동
3. 사건·사고
3.1. 강원랜드 법인카드 부정 사용
4. 여담
5.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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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법조인이다.

2. 생애 및 정치활동


1951년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다. 서울양정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과정을 졸업,수료하였다. 그리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후버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후인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 후일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구속의 도화선이 된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 율곡사업 비리 등을 파헤치며 스타 검사가 되었다.[1] [2] 1994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자유민주연합 백남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원내부대표를 역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때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정봉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한 후 한나라당에 입당, 경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하고 친박계에 속하게 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친이계의 공천 학살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에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친박연대 후보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이계인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3. 사건·사고


2014년부터 3년 간 강원랜드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러나 각종 비리 논란(청탁비리, 호화리무진)이 있었다. 그리고 2017년 10월 19일 국정감사에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그 다음 질문 하시죠"라는 무례한 답변을 했다가 그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문서 프로필의 사진이 2017년 국정감사때 나온 장면으로 이때 안대를 하고 나왔다. ###

3.1. 강원랜드 법인카드 부정 사용


2018년 8월에는 재직 시절 주말마다 비서진을 대동하고 30대 여성 손모씨[3]와 만나 밀회를 즐기며 법인카드로 데이트 비용을 결제한 것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3년치 법인카드 사용내역 총 1,694건 가운데 함 전 사장의 자택과 손모씨의 빌라가 있는 서울 반포동방배동 서래마을 인근에서 무려 314회를 사용했다는 것. 이는 강원랜드 서울지사가 있는 역삼동에서 사용한 횟수(146회)의 2배를 넘는다. 실제로 함 전 사장의 운전기사와 비서들은 거의 매주 금요일이면 손씨가 사는 서울 방배동 빌라로 가야 했고, 함 전 사장이 손씨와 함께 레스토랑,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오면 비서들은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법인카드로 결제를 한 뒤 자택으로 모시는 게 주요 임무였다고 한다.#

4. 여담


  • 아들(함재원)도 검사이다(연수원 40기).
  •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 1995년 성역은 없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두달간 전체 도서판매 1위에 오를 정도의 베스트셀러였다.
  •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형을 받게 된 12*12 군사반란 재판과 5*18 진압관련 재판의 도화선이 된 것은 박계동 의원의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4]"였다. 그런데 이 사건은 이미 함승희 검사가 문민정부(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3년에 수사를 통해 밝혀낸 것이었으나, 문민정부의 외압때문에 묻혀버린 사건이었다.[5]
  • 김종인 의원의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홍준표 의원이 2012년에 이어 2020년 4월 25일에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함승희 검사의 요청"으로 검사실에 들어가서 김종인 전 경제수석의 자백을 받았다고 했으나, 함승희 검사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6]
  •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만 보면 김종인 의원과 악연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실제로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가깝다. 2004년 김종인 의원이 새천년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을 때도, 함승희의 막후 조력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2012년 박근혜 비대위의 비대위원으로 임명될 때에도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측근이었던 함승희의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함승희는 박근혜 비대위의 비대위원으로 물망에 올랐으나 막판에 합류하지 않았다. 또한 함승희가 2008년 설립한 학술 연구단체인 '포럼오래'의 공동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 함승희가 설립한 포럼오래 출신 인사 중에서 화제가 된 사람이 여러 명인데, 김종인은 박근혜 비대위원, 박근혜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거쳐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대표를 역임하는 등 정치권의 거물인사가 되었고[7] 포럼오래의 정책연구원장 김병준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이었으나, 이후 노선을 바꿔서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서리가 되었다.[8] 김병준은 2018년 지방선거 참패 후 공석이 된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갑)
새천년민주당
50,745 (43.17%)
당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갑)
새천년민주당
23,154 (26.72%)
낙선 (3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갑)
친박연대
12,098 (17.34%)
낙선 (3위)


]

[1] 영화 더 킹을 보면 극 중 주인공인 한강식 검사가 문민정부때 하나회 숙청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나온다. 사실, 하나회청와대국방부의 수뇌부가 주도가 되어서 숙청작업을 주도했고,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으므로 검찰이 개입하여 숙청했다는 것은 고증오류다. 하나회 관련 인물을 검찰 수사로 숙청한 케이스를 찾는다면 함승희 검사가 율곡사업 비리수사로 관련인물들을 기소 및 형사처벌한 것이 가장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2]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ws&query=%ED%95%A8%EC%8A%B9%ED%9D%AC+%ED%99%8D%EC%A4%80%ED%91%9C&oquery=%ED%95%A8%EC%8A%B9%ED%9D%AC+%EC%A0%84%EB%91%90%ED%99%98&tqi=UB4tmsprvN8ssOIIRDdssssstNo-066936&url=http%3A%2F%2Fmonthly.chosun.com%2Fclient%2Fnews%2Fviw.asp%3Fctcd%3DE%26nNewsNumb%3D201801100007&ucs=JpR%2BpoV7Nt8p [3] 함 전 사장이 강원랜드 사장이 되기 전 만든 ‘포럼 오래’에서 2011년부터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인물이다. #[4] https://namu.wiki/w/1995%EB%85%84%20%EB%85%B8%ED%83%9C%EC%9A%B0%20%EB%B9%84%EC%9E%90%EA%B8%88%20%EC%82%AC%EA%B1%B4#s-8[5] 당시 문민정부는 노태우 대통령와 김영삼, 김종필3당 합당을 통해 출범한 정부였기 때문에 노태우와 관련된 자금은 김영삼 정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때문에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레임덕에 빠질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을 방치할 수 없었고, 검찰 수뇌부와의 협상을 통해 사건을 무마한 것이다. 실제로, 이후 1995년 11월에 노태우가 구속되기 전에 노태우 측은 김영삼의 선거자금 관련정보를 가지고 협상을 시도했다. 노태우를 구속시키면 김영삼의 선거자금건을 폭로해서 정권의 도덕성을 추락시키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반감이 컸고, 두 사람의 처벌에 국민의 여론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민정부는 정면돌파를 했고, 오히려 대통령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김영삼 대통령의 판단이 적중한 것이다.[6]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056398 [7] 김종인 의원은 2012년 총선대선, 2016년 총선 승리의 주역이 되었고,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탄생에도 주요한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8] 김병준을 국무총리로 추천한 사람이 함승희라는 이야기는 여의도 정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곧 탄핵당하는 바람에 국무총리 임명은 물거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