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밀리온 성역 회전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7장 ~ 9장
- 은하영웅전설 OVA 51~53화
- 시기: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표준력 4월 24일 14시 20분 ~ 5월 5일 22시 40분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이후 사실상 자유행성동맹군 최후의 잔존 함대였던 양 웬리 함대와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생환한 제14함대, 제15함대가 연합한 1만 6,420척, 190만 7,600명의 병력과 은하제국군 최고사령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 직속 함대인 1만 8,860척, 229만 5,400명이 자유행성동맹령 버밀리온 성역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은하영웅전설의 두 주인공이 나름 대등한 조건에서 제대로 승부한 최초이자 최후의 전투이다.
2. 배경
제국군은 로이엔탈 함대를 통해 이제르론 요새를 공격하여 동맹 정부의 주의를 끈 다음, 미터마이어 함대를 동원하여 일거에 페잔 자치령을 기습 점령하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가진 채로, 아무런 피해없이 페잔 회랑을 점령하여 손쉽게 동맹령으로 진입할 길을 얻었다. 덤으로 페잔 자치령 항로국의 정보를 완벽하게 획득하는 대성과를 얻어 그동안 의문에 감춰져 있던 자유행성동맹령 전체의 성도를 파악하는데도 성공하였다.
제국군 내부에서는 이때 두 가지 방안이 건의되었다. 첫째는 최단시간내로 란테마리오, 잠시드, 켈림 성역을 돌파하고 동맹 수도성계 바라트를 점령해 동맹의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 둘째는 시간이 걸리겠으나 란테마리오 성역 부근에서 진격을 중단하고 인근 성계를 제압하여 보급선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 차근차근 바라트 성계를 공격하자는 안건이었다. 압도적인 물자,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한 라인하르트로서는 굳이 서둘러 바라트를 공격하다가 일이 틀어질 것을 염려하여 두번째 안건을 채택, 동맹령 간다르바 성계의 행성 우르바시를 점령하여 제국군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한편, 자유행성동맹군은 아스타테 회전에서 2, 4, 6함대를 잃어버리고 제국령 침공작전과 암릿처 회전을 거치며 3, 7, 8, 9, 10, 12함대를 잃어버렸으며 추가로 구국군사회의 쿠데타를 통해 11함대마저 잃어버리면서 정규함대는 이제르론 요새에 주둔한 양 웬리 함대와 수도 방위를 담당하는 제1함대, 단 2개 함대만이 남게되었다.
게다가 양 웬리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에서 제국군 로이엔탈이 지휘하는 제국함대와 맞서 싸우는 상황이라 페잔 회랑을 통해 침공해오는 최소 15만 척이 넘어가는 제국군을 막을 병력은 오직 1함대 하나뿐이었으며 결국 동맹군은 함대 재건을 위해 긴급히 편성된 소함대, 성간순찰대, 성계 방위대 중 중장부대 등 동원할 수 있는 부대는 모조리 동원하고 황급히 건조하던 신조함과 지역 경비용이나 후방으로 빠진 노후함들까지 사방에서 긁어 제14, 15함대를 추가로 편성해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 지휘하에 출격하여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제국군을 요격하였다.
모든 면에서 제국함대보다 열세인 동맹군은 사력을 다했으나 패배를 면치 못해 제1, 14, 15함대가 거의 전멸하였고 이제 자유행성동맹이 가진 전력은 양 웬리가 지휘하는 이제르론 요새 주둔 함대의 약 1만 5,000척과 란테마리오에서 겨우 살아남은 잔존함대 약 수천 척만이 남은 반면 제국 함대는 전투 함선만 가볍게 약 10만 척이 넘어가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자유행성동맹은 멸망의 기로에 몰렸다.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잘 훈련되었으며 사기마저 충만한 10만 척 이상의 제국 함대'''에 맞서 양 웬리는 '''패배를 거듭하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으며 오직 민주공화주의를 지키겠다는 일념만으로 뭉친 2만 척의 동맹 함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양 웬리는 단 한 가지, 자유행성동맹이 극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는 딱 한 가지 방안을 구상하였다.
당시 은하제국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통치체제에 있어 최대 약점은 바로 '''절대적인 1인자 라인하르트와 수많은 3인자들이 구성된 조직이라는 점이었다.''' 힘있는 2인자가 존재함으로써 혹여 1인 권력 체제가 위협받을 가능성을 우려한 오베르슈타인의 냉철한 견제 하에 오베르슈타인의 본의는 아니었으나 라인하르트의 반신이나 다름없으며 사실상 굳건한 2인자 자리에 있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사망한 이래 그 누구도 키르히아이스의 자리를 대신하진 못했다.[3] 만약 이런 조직 구조상에서 절대 1인자인 라인하르트에 신변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면 오직 라인하르트 개인이 지금까지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는 은하제국 현 체제가 그대로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4] 양 웬리는 바로 이 약점에 자유행성동맹의 운명을 걸었다. 아무도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양 웬리가 제시한 이 방법은 그야말로 '''최악의 전세를 단 한 번에 뒤집고 멸망 직전에 몰린 조국을 구해낼 기적'''의 비책.
당시 잠수탄 욥 트뤼니히트를 대신해 정부를 이끌고 있던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은 이런 양의 전략을 이해하고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여 양 웬리의 원수 승진도 팍팍 밀어붙이고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수도 방위를 위해 1함대를 파견할 수 없다던 과거의 모습도 다 벗어버리고 자유행성동맹이 가진 모든 전력을 양 웬리에게 일임하였다. 사실상 동맹의 운명을 양 웬리에게 맡기고 해 줄 수 있는 지원은 몽땅 다 해준 것이다.
3. 전초전
동맹군의 전략적 목표는 단순했으나, 단순한 만큼 어려웠다. 라인하르트를 상대로 승리해야 하고, 또한 라인하르트를 '''전사시켜야 했다.'''[5] 라인하르트 휘하의 은하제국군은 약 10만 척, 양 웬리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들 2만 척이 안 되는 함대를 이끌고 전면전을 펼친다는 것은 그저 자살일 뿐이었으니 양 웬리는 라인하르트가 최전선에 나서는 것을 선호하는 인물이라는 점과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지속적으로 라인하르트를 자극하여 그를 최전선으로 끌어내되, 양 웬리와 라인하르트가 단독으로 대결해야 한다'''는 목표를 수립하여 광활한 동맹령에 산재한 수많은 보급기지들을 거점으로 삼아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였다.
10만 척에 달하는 함대 모두가 한꺼번에 움직인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다. 양 웬리가 여기에 맞서 정면승부로 나올 리도 없고, 제국 함대 하나하나가 양 웬리가 가진 전체 함대와 맞먹으니 결국 함대를 따로따로 운용한다. 그럼 양 웬리는 그 함대와 각각 1:1로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어 라인하르트의 자존심을 쿡쿡 쑤셔 결국 분노한 라인하르트가 양 웬리를 직접 상대하러 나서게 된다는 것이 이 작전의 핵심.[6]
제국군은 간다르바 성계의 우르바시 행성을 전초기지로 삼아두었기에 동맹군으로서는 우르바시에 정보망을 집중하고 있다면 제국군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반면에 제국군으로서는 양 웬리가 동맹령 전체를 기지로 삼아 여기저기 누비고 다니는 상황이라 양 웬리의 현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양 웬리를 상대로 제국군 함대 전력 모두를 똘똘 뭉쳐 다니게 할 수도 없었고, 수송선단 습격전을 통해 제국군이 이용할 1년치의 보급품이 한방에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면서 더더욱 뭉쳐 다니면서 물자를 낭비할 수도 없었다. 결국 각기 출격시킨 함대들이 차례로 라이가르 성역 회전, 타실리 성역 회전 등의 연이은 패배를 당하며 물자 손실에 함대 손실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원정함대 전체가 사용할 약 1년분의 보급 물자가 모조리 잿더미가 되버린 까닭에 병사들의 식량 배급에도 차질이 빚어졌고 슈타인메츠, 렌넨캄프, 바렌의 3개 함대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라인하르트는 이런 양 웬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나 휘하 제독들이 양 웬리에게 무참히 패배하는 것도 모자라 보급선도 차단당하며 자신을 포함한 은하제국군 전체가 양 웬리 한 사람에게 놀아나자 점차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며 결국 타실리 성역 회전의 '''3번째''' 참패 보고를 받는 와중 패배로 침울해진 바렌 제독의 보고를 도중에 끊어버리고 집무실로 돌아가버렸다. 휘하 제독들을 단독으로 내보내면 패배를 면치 못하고 2개, 3개 함대를 붙여서 보내면 양 웬리가 숨어버려 부족한 물자만 더욱 빠르게 소모될 뿐이라는 판단을 내린 라인하르트는 '''본인 스스로가 단독으로 나서 양 웬리를 꾀어내야한다'''는 결론을 내고 양 웬리와의 단독 전투를 준비한다.
결국 최소 5배가 넘어가는 압도적인 병력차는 라인하르트 직속 함대와, 양 웬리 함대간 '''1개 함대씩의 전투'''로 동등해졌으며 이는 양 웬리가 사전에 의도했던 바 그대로였다.
4. 병력 배치
제국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숫적 우위를 버리고 최고지휘관이 단독으로 나서는 라인하르트의 작전안을 반대했으나 이미 자긍심에 상처를 입은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작전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휘하 함대를 동맹령 곳곳에 분산 출격시켜 해당 성역들을 제압한 뒤 자신과 양 웬리가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함대를 반전시켜 양 웬리를 포위섬멸 한다는 작전안을 수립하여 제독들을 설득시켰다.
라인하르트의 이러한 작전은 꼭 상처받은 자긍심과 같은 개인적 감정에 기인한 것도 있는 매우 위험한 작전이기는 하나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가진 작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제국군의 입장에서는 적국 영토에 깊숙히 침입한 상황에서 양 함대가 지리의 익숙함에 의자하여 게릴라전을 펼친다는 아주 골치아픈 상황에 봉착해 있었던 것. 주력군이 모두 양 함대를 추격하자니 양 함대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가 없고, 양 함대를 찾아내기 위해 병력을 동맹령 곳곳으로 분산시키면 양 함대에게 각개격파 당할 것이며, 그렇다고 주력군이 모여있으면 전면전을 회피하고 보급망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는 양 함대에 의해 고사당할 위험이 있는 것.
이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주력군이 수도를 공격하여 동맹을 멸망시킨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 뿐인데, 하이네센을 함락하여 동맹을 굴복시킨다고 하더라도 동맹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소수의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주력군은 다시 제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으며, 이 경우 주력군이 돌아간 뒤 양 함대가 소수의 주둔군을 격파하고 동맹을 재건하는 것을 막기가 어려운 것. 그렇다고 양 함대에게 격파당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병력을 남긴다면 제국 국내의 병력 공백으로 인한 지배력 약화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막대한 병력 유지비용 및 보급의 어려움을 계속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며 이 주둔군 역시 (오히려 더 줄어든 규모로) 양 웬리의 유격전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임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제국의 입장에서는 동맹의 마지막 전략적 군사력이자 동맹의 마지막 보루인 양 함대를 격파하지 못하면 동맹을 정복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러나 제국군 주력이 양 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추격하자니 양 함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고, 양 함대를 찾아내기 위해 병력을 분산하자니...(이하반복)
결국,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양 함대를 정면 대결로 이끌어내어 격파한다'는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연히 양 함대는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정면 대결을 피하려고 할 테니 '기꺼이 양 함대가 전장에 뛰어들만큼'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내걸어야 했던 것이다. 양 함대 입장에서도 지속적인 게릴라전은 동맹령 전역을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정면대결로 제국군의 주력을 격파할수는 없다는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전장에서 라인하르트 개인을 격파하여 제국군을 붕괴시킨다'는 수단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자기 자신을 미끼삼아 양 웬리가 원하는 해결책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대신, 역으로 라인하르트 자신이 원하는 해결책의 가능성도 열리는 상황을 만들어 넨 것이다. 전력 면에서 압도적인 우위였던 라인하르트가 선택하기에는 몹시 위험하고 도박적인 면이 있는 작전이지만, 성공하기만 하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최종적인 승리를 얻어낼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했던 것.
말하자면 자신의 전술적 능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기반으로 양 웬리의 행동을 예측하고 유도한 일종의 심리전술이었던 셈이다. 물론 역으로 양 웬리의 입장에서도, 게릴라전을 통해 라인하르트를 자극하여 라인하르트 스스로가 단기결전을 위해 자신의 유리함을 포기하고서라도 전장에 나서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버밀리온 성역 회전은 말하자면 두 군사적 천재가 서로 대화 한 마디 하지 않고 이끌어낸 일종의 '''합의''' 였던 것.
작전이 개시되자 제국군의 각 함대는 동맹령 곳곳으로 출격하였고 라인하르트도 직속 함대를 이끌고 출격, 바라트 성계 방향으로 진격하였다. 이러한 제국군의 행동은 루드밀러 성역의 한 소행성에 건설된 기지에서 제국군의 동향을 관찰중이던 양에게도 보고됐다. 다만, 양 웬리는 작전을 구상할 당시 제국 함대가 각지로 출격하면 라인하르트는 간다르바 성역에 남아있을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러나 라인하르트가 양의 예측을 벗어나 동맹 수도성계, 바라트 성계쪽으로 진격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수도가 공격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양은 예상보다 더 이른 시점에서 라인하르트와 싸워야만 했다.
양과 참모진 모두 라인하르트를 요격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모두 버밀리온을[7] 지목하고 있었고, 라인하르트 역시 버밀리온에서 양 웬리와 마주칠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기에 양측 모두 버밀리온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는 란테마리오 패전 직후 병력을 수습중이던 라이오넬 모튼 중장의 14함대와 랄프 칼센 중장의 15함대가 가담했다. 원래대로라면 통합작전본부의 승인을 받은 후 이동해야 됐지만 이미 군부는 거의 마비 상태로 통보만 하고 바로 양 함대에 합류했다. 어차피 전권이 양에게 일임된 상태라 별 문제는 아니었고, 더불어 은하제국 정통정부군 '''전원'''인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제독과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5인의 이름 모를 군인이 참여했다.[8]
버밀리온 인근에 도착한 동맹군은 무라이 참모장의 주도 하에, 제국군은 롤프 오토 브라우히치 중장의 주도 하에 탐색전을 펼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다. 상대를 발견했다고 바로 전투에 돌입할 필요는 없으니 양군은 각각 휘하 병력에 전투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5. 전개
5.1. 상승과 불패
4월 24일 14시 20분, 제국군과 동맹군이 첫 포화를 주고 받는 것으로 버밀리온 성역 회전이 개시되었다. 일단 교전은 시작되었으나 라인하르트와 양 모두 기상천외한 전략전술을 내놓는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점을 서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 상대방의 계략을 의심하였다. 만약 병력을 잘못 움직였다가 패배하게 된다면 후일을 도모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9] 함부로 수를 내기보다는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맞붙게되어 두 명장의 전투는 '''의외로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양쪽 모두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서론 전개 정도로 기대했던 전투는 예상 외로 달아올라 단순한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기에 양측 모두 다음 전술을 수행하기 위한 잠시 소강기를 가졌다.
이후 라인하르트는 원래 구상해뒀던 직속부대를 마치 여러 장의 종이를 겹쳐서 올려놓 듯이 부대를 배치하는 기동적 종심 방어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동맹군은 마리노 준장을 선봉으로 내세워 기동력을 바탕으로 제국군의 방어선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은 라인하르트가 기동력 중심의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 각개격파가 주특기였고, 양 웬리가 유려한 종심 방어와 일점 집중 포화로 카운터를 펼치는 것이 주특기였는데 이 전투에선 서로 입장이 반대가 되어있었다. 작중 서술에 따르면, 두 사람이 이렇게 자신의 주특기와 반대되는 전술을 구사한 것이 버밀리온 성역 회전을 혼전 양상으로 끌고 간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견해도 있었다고.
그보다 이전에 제국군 1진이 동맹군과 막 첫 포화를 나누려는 순간, 투르나이젠이 이끄는 2진이 갑자기 최전방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하여[10] 작전에도 없던 투르나이젠 함대에 돌발 행동에 제 1진에서 교전하고 있던 제국군은 갑작스럽게 돌격해오는 투르나이젠 함대를 피하기위해 전열에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전열이 회복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으나 '''빈틈만을 노리고 있던 양 웬리'''는 당연히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빠른 맹공으로 전열이 무너져있던 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아야 했다. 게다가 양은 교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교묘하게 진형을 바꿔서 오히려 손쉽게 제국군을 털어먹을 수 있도록 병력을 배치했다. 후방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라인하르트는 분통을 터뜨렸다. 오베르슈타인은 차분한 태도로 투르나이젠 잘못을 지적했고,[11] 라인하르트는 전투가 끝났을때 '''자기가 아직 살아있거든 오베르슈타인의 충고를 따르겠다'''고 답해주었다.
이렇게 초반에 잠시 삐끗거리는 부분이 있었으나 작전 무시하다가 제대로 박살난 투르나이젠이 늦게나마 정신을 차려 이후는 라인하르트의 의도대로 제국군이 종심방어진을 펼치고, 동맹군이 이를 돌파해내는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4월 29일까지 동맹군은 제국군의 9개 방어진을 상대해야만 했다. 이 때 율리안 민츠가 라인하르트의 작전을 정확히 통찰해내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한편 양이 대응책을 수립하는 사이 발퀴레와 스파르타니안 사이의 공중전이 전개됐다. 제국령 침공작전 이후 동맹군이 새로이 도입한 3기 1체 전술이 지금까지 큰 효과를 발휘해 왔으나 여기에 크게 데인 제국군에서도 대책이 마련되기 시작하여 버밀리온에서 호르스트 슐러 중령의 제국군 항공대에서도 3기 1체 전술을 도입하고 기존의 아군 전함과 연계하는 전술까지 가미해 동맹군 항공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올리비에 포플랭의 항공대는 절반 정도가 전사하였고 이반 코네프 항공대는 항공대장 이반 코네프가 제국군 순항함의 포격에 전사하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5.2. 신나는 라인하르트 낚시
동맹군은 라인하르트의 의도대로 계속해서 펼쳐지는 방어진을 공격하기만 했다. 그런데 9번째 방어진까지 분쇄한 동맹군은 갑자기 공격을 중단하고 지금까지 밀고 들어온 거리보다 훨씬 더 멀리 후퇴하여 탐색이 어려운 소행성의 틈바구니에 숨었다. 라인하르트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 갑자기 약 1만 척에 달하는 동맹함대가 제국군의 좌측 방향에 나타나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누가 봐도 이는 양동작전이었고 여기에 휘말려 병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되려 제국군이 동맹군을 각개격파에 나설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한 라인하르트였으나, 문제는 '''소행성군에 남아있는 함대가 양동일지, 좌측에 나타난 함대가 양동일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오베르슈타인도 확신하지 못하고 '''보란듯이 등장한 좌측 함대가 양동일 가능성이 높으나 되려 이를 이용해 반대로 나선 것일 수 있다'''고만 진언하자 라인하르트는 좌측 함대가 양동을 가장한 동맹군의 주력 함대라 판단, 최소한의 호위 함선만을 제외한 '''모든 함대를 투입했다.'''
'''그리고 이것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약 1만 척 이상으로 보였던 동맹함대는 실제로는 약 2,000척에 불과한 양동함대였다. 함선에 여러 운석을 견인시켜 규모를 위장하고 있었으며 소행성 지대에 대기하고 있던 함대가 바로 '''양 웬리의 주력함대'''였다. 제국군이 양동에 속아넘어가자 양 웬리는 주력함대를 라인하르트의 본진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돌진시켰다.[12] 이로 인해 라인하르트의 꼬리를 양 웬리가 잡은 형국이 되고 말았다.오퍼레이터: 후방, 다른 적 부대가 빠르게 돌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속아넘어갔단 것을 깨달은 투르나이젠, 브라우히치, 알트링겐, 카르나프, 그뤼네만 등의 제국군 지휘관들은 황급히 함대를 돌려 양 웬리를 막아세우기 위해 달려갔으나 방금전까지 자신들이 추격하고 있던 동맹군 함대가 퍼붓는 포화에 양동을 위해 견인중이던 대형 운석들까지 날아들어[13] 큰 피해를 입었으나 무엇보다 라인하르트의 안전이 최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했으므로 제국군은 피해를 무시하고 양 웬리의 측면을 공격, '''측면 돌파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양 웬리의 계략'''으로 제국군의 공격에 붕괴되는 것처럼 보이던 동맹군은 제국군의 돌진에 발맞춰 전진을 멈추고 좌우로 펴지며 '''들어오는 제국군의 좌우를 감싸안았다.''' 양동부대, 라인하르트를 노린 돌진, 이 모든것이 '''제국군 주력부대를 노린 속임수였던 것이다.''' 제국군은 라인하르트의 보호를 위해 전열이 흐트러진 상황에서 전방과 좌, 우가 막히고 동맹군 양동부대에 후방까지 차단당하며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포위당했다.'''
거기에 양 웬리는 제국군 주력을 포위망 안에 묶어둠과 동시에 호위함 몇 척과 함께 사실상 홀로 남은 제국군 총기함 브륀힐트를 향해 별동대까지 파견해 라인하르트는 '''탈출을 종용받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라인하르트는 패배는 인정해도 부하들을 다 잃고 구차하게 살아남지는 않겠다며 함교를 떠나지 않았고 이에 친위대장 귄터 키슬링 준장이 수석부관 슈트라이트 소장의 지시 아래 '''무례를 무릅쓰고 강제로 탈출함에 탑승시키려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때 키슬링이 라인하르트를 강제로 끌어내리려던 찰나에 '''브륀힐트에 근접한 호위함이 격침'''당해 그 충격으로 브륀힐트가 요동치며 라인하르트를 제외한 전원이 바닥에 넘어진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가 넘어진 에밀에게 손을 내밀며 일으키려는 찰나 브륀힐트의 바로 코앞에서 '''동맹군 전함이 주포를 발사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느닷없이 브륀힐트 코앞에 있던 동맹군 전함이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브륀힐트의 오퍼레이터는 상황 파악을 한 후 환희에 찬 보고를 한다.
"뭘러 함대입니다. 뮐러 함대가 원군으로 와 주었습니다! 살았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299
5.3. 철벽의 뮐러
나이트하르트 뮐러는 류카스 성역의 물류기지를 공격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뮐러는 동맹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기지 쪽에서 순순히 투항 의사를 밝혀왔다. 이는 물류기지 책임자 오브리 코클랭이 부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심지어 주요 물자를 파기하거나 방사능에 오염시키자는 주장도 민수용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뮐러는 처음 코크란의 행동을 듣고 배신자의 그것과 동일하게 여겨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곧 생각을 고쳤다. 그리고 함대 참모로 초빙하려 했으나 코크란이 거절하여 아쉽게도 무산됐고, 물류기지의 동맹국 사람들이 안전하게 퇴거하여 수도 하이네센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14]
어쨌든 당초 예정보다 빨리 상황을 정리한 뮐러는 즉시 반전하여 버밀리온 성역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 라인하르트가 위기에 빠진 순간 전선에 도착하여 구원해줄 수 있었다. 이는 라인하르트도, 양 웬리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었다. [15] 결국 측면에서 나타난 뮐러의 공세는 모튼의 제14함대가 다 뒤집어써야 했고, 3,960에 달하던 함대 전력이 1,560척으로 줄어 1시간 만에 손실률 57.7%을 기록하는 무시무시한 피해를 입으며 모톤 제독까지 전사한다. 만약 뮐러가 제 전력을 유지했다면 이 시점에서 양 웬리 함대를 외곽에서 역 포위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도 있었으나, 워낙 급하게 오는 바람에 4할 이상의 병력이 낙오된 상태였고, 따라서 일단 라인하르트를 구한 후 포위망의 일각을 뚫어 라인하르트 직속 함대의 구조를 우선시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당한다.'''
5.4. 뮐러의 내응, 그러나 여전한 제국의 패색
뮐러의 도착으로 포위망 외곽의 전황은 그나마 제국군에게 아주 약간 유리하게 흘러갔으나, 포위망 내에서는 여전히 동맹군이 공격을 휘두르면 제국군은 그저 때리는걸 맞아주기만 할 뿐. 이미 수 시간에 걸친 동맹군의 포위공격에 시달린 알트링겐과 브라우히치 함대는 '''이름만'''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투르나이젠 함대는 그래도 함대라고 부를 전력은 남아있었으나 쏟아지는 포화를 힘겹게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그뤼네만은 기함이 피탄되어 사령관이 중상을 입고 후송되어 참모장이 지휘하는 상황이었고, 유일하게 여력이 남아있던 카르나프는 사투를 벌이며 라인하르트에게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
카르나프의 요청을 받아든 라인하르트의 대답은 간단했다. 지원 병력이 있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 보낼 예비 병력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더구나 자신이 양 웬리의 작전에 훌륭하게 말려들어 패배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겨나간 터라 라인하르트는 부하에게 내리는 답신에 극도로 날을 세웠다.
부하장병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답신이 내려오자 카르나프의 분노가 폭발한다."우리에게 잉여 병력은 없다. 그곳에서 전사하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발할라에서 듣겠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05~306
카르나프는 남은 함대를 재편성하여 외곽에서 포위망 돌파를 시도하는 뮐러 함대와 함께 포위망에 최후의 공격을 시도, 포위망의 일부를 무너뜨렸고 뮐러 함대가 진입하여 각 함대가 함류하는데 성공한다."죽으라고?! 오냐, 죽어주마. 먼저 죽으면 발할라에서는 내가 고참이지, 험하게 부려먹어 줄 테니 두고 봐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06
허나 이 또한 양 웬리의 작전이었다. 외곽에서 뮐러 함대의 공세가 거세지자 양 웬리는 포위망의 일부를 '''일부러''' 열어주어 안 쪽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제국군과 이를 지원하기 위해 돌입하는 뮐러 함대가 좁은 공역에 밀집하기를 노렸던 것. 제국군이 작전대로 움직이자 양 웬리는 휘하 함대에 집중 사격을 지시,[16] 탈출하던 카르나프는 기함이 격침되며 전사하였고 뮐러의 기함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 등 제국군은 또다시 치명상을 얻어맞았다.
결국 뮐러 함대의 합류도 소용없이 제국군은 또다시 구석에 내몰렸고 뮐러는 불과 수 시간만에 기함을 4번이나 바꾸며 처절하게[17] 저항했으나 동맹군은 이를 분쇄하고 곧 라인하르트의 기함, 브륀힐트를 사정권에 포착하게 된다.
'''그런데...'''
5.5. 동맹정부의 항복 선언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는 당초부터 고작 함대 1개뿐인 양 웬리와 결전을 벌이는 도박이 아니라 동맹 수도성 하이네센을 집중 공격하여 양 웬리 함대를 정치적으로 무력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입장에서는 제국의 군주된 입장상 스스로의 자긍심과 제국 함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이를 무시하였고 다만 양 웬리와의 결전이 위험하다는 점은 인정하여 힐데가르트를 우르바시에 제국군 주둔 기지에 남겨놓고 출격한다. 힐데가르트는 제국 함선 하나를 잡아 탑승하여 버밀리온 성역 회전의 초반부를 지켜보았고,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가 본격적으로 격돌하기 시작한 시점에 미터마이어에게 달려간다. 이후 라인하르트의 위험을 역설하고 미터마이어를 설득하여 동맹 수도성 하이네센으로 미터마이어 함대를 진격시킨다. 당초 오스카 폰 로이엔탈에 대하여 약간의 꺼림직함을 느끼고 있어 일부러 볼프강 미터마이어만을 찾아가 설득했으나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과의 우정과 2인자 무용론에 주의를 기울여 인근 로이엔탈 함대에게 연락, 설득하여 같이 하이네센으로 진격한다.[18]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는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당시 모두 격파되었고 동원가능한 함선들은 모두 긁어모아 양 웬리에게 주었으니 하이네센에는 행성을 방어할 만한 수단이 전혀 없었고, 제국군이 하이네센 근방까지 진군하는 것을 그냥 바라만 봐야 했다. 우주력 799년 5월 5일 하이네센에서 6,000km거리의 공역까지 진군한 제국함대 3만 척은 다음과 같이 동맹정부에게 항복을 강요했다.
통신을 보낸 제국군은 즉시 극저주파 미사일을[19] 발사하여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의 지상 부분을 날려버렸다. 이는 권력자들은 시민의 안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지만 관공서가 파괴되면 극도로 민감해지는 것을 노린 것이었다.『나는 은하제국군 상급대장 볼프강 미터마이어다. 그대들의 수도 하이네센 상공은 이미 아군이 제압했다. 나는 자유행성동맹 정부에 전면 강화를 요구한다. 즉시 모든 군사활동을 중지하고 무장을 해제하라. 따르지 않는다면 수도 하이네센에 무차별 공격을 가할 것이다. 회답까지 세 시간을 기다리겠으나, 그 전에 여흥 한 가지를 보여 주겠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23
그러나 자유행성동맹 정부는 진작에 정신차린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과 알렉산드르 뷰코크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위시하여 양 웬리의 승리를 확신하며 제국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제국군이 페잔을 점령했다니까 잽싸게 유감 성명 하나 발표하고 숨어버린 욥 트뤼니히트가 스리슬쩍 나타나 항전을 주장하는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에게 과거 그가 저지른 부정부패를 들면서 조롱하고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파괴한 양이 이 사태를 초래한건데 누굴 믿느냐는 식으로 조롱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알렉산드르 뷰코크 사령장관이 트뤼니히트를 통렬히 비판했다."제국군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소. 무차별 공격을 언급한 이상 그럴 수 밖에 없지."
아일랜즈 국방위원장이 항의하자 트뤼니히트의 두 눈에서 바늘을 내던지는 듯한 시선이 날아갔다.
"내가 정식으로 리콜이라도 당했던가? 그렇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면 종전을 결정할 책임과 자격이 내 손에 있다는 뜻일세. 그 책임을, 그 자격을 가진 자가 다하겠다는 것 아닌가."
"부디 그만두십시오."
국방위원장의 목소리는 분노보다도 비참함에 흔들리고 있었다.
"민주정치 제도를 악용해 그 정신과 역사를 더럽힐 권리는 각하에게 없습니다. 각하 혼자서, 국부 알레 하이네센 이래 2세기 반에 걸쳐 쌓아 왔던 민주국가의 역사를 타락시킬 생각이십니까?"
트뤼니히트의 입술 양끝이 올라간다 싶더니, 그의 얼굴은 한층 더 가면 같은 인상을 더해갔다.
"이젠 아주 훌륭한 말씀을 다 지껄이시는군. 아일랜즈 군. 자네는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네만, 나는 똑똑히 기억하네. 부디 각료로 삼아달라고 우리 집에 값비싼 은식기 세트를 들고 왔던 그날 밤을 말일세."
이렇게나 비열하고 악의에 가득 찬 말을 들어본 자는 일동 중에서도 거의 없었다.
"아울러 자네가 어떤 기획에서 얼마나 되는 헌금이며 리베이트를 받아먹었는지, 선거자금을 분배받았을 때 그중 몇 퍼센트를 빼돌려 별장을 사는 데 썼는지, 공금을 쓴 여행에 부인 외의 여성을 데리고 갔던 것이 몇 번인지, 나는 모두 알고 있다네."
국방위원장의 넓디넓은 이마는 더위 탓이 아닌 구슬땀을 무수히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삼류 정치꾼입니다. 현재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의장 각하, 당신 덕이지요. 각하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만큼 각하께서 망국의 위정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바꿔 주십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르지만, 양 제독이 로엔그람 공작을 전투에서 물리친다면 동맹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한 개인의 불행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나 이것은 사실입니다. 로엔그람 공작이 죽고 제국군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면, 그들이 차기 패권을 다투는 동안 양 웬리 제독에 국방체제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우리의 뒤를 이을 다음 정치지도자가 그와 손을 잡고......."
"흥, 양 웬리라."
목소리가 독물이 될 수 있다면, 트뤼니히트의 목소리가 바로 그러할 것이다.
"생각이나 좀 하고 말하게. 양 웬리 그 멍청한 작자가, 과거 이 별을 지켜 주던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파괴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제국군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었을 걸세. 이렇게 된 것도 양 웬리 탓이지. 명장은 무슨 놈의 명장. 앞날도 보지 못하는 무능력자가 아닌가."[20]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25~327
그런데 난데없이 하전입자 라이플로 무장한 지구교도 10여명이 지하회의장에 난입하여 트뤼니히트를 호위하고 반대파를 위압하였다. 트뤼니히트는 반대파를 감금한 뒤 뻔뻔하게 최고평의회 의장 명의로 우주력 799년 5월 5일 22시 40분 모든 동맹군, 특히 양 웬리 함대에게 적대행동 중지 및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다."예,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있었더라면 이 행성만큼은 분명 지킬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다른 성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행성, 그리고 당신네들의 권력만 무사하다면 다른 성계가 아무리 불바다가 되더라도 태연히 전쟁을 계속하겠다 그거로군요."
일흔 살이 넘은 노장의 목소리는 격렬하지는 않았으나, 트뤼니히트의 폭언 앞을 화강암과도 같이 막아섰다.
"쉽게 말해 동맹은 이제 수명을 다 써버린 겁니다. 정치가는 권력으로 장난치고, 군인은 암릿처에서 봤듯 투기적인 모험에 골몰하고.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 이를 유지할 노력을 태만히 했지요. 아니, 국민들조차 정치를 일부 정치꾼에게 맡긴 채 참여할 생각이 없었으니....... 전제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군주와 중신들의 죄 탓이라지만, 민주정치가 쓰러지는 것은 모든 국민 책임입니다. 당신을 합법적으로 권력의 자리에서 몰아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나 스스로 그 권리와 책임을 포기하고 무능하고도 부패한 정치가들에게 자기 자신을 팔아치운 거지요."
"연설은 다 끝났소?"
욥 트뤼니히트는 엷게 웃었다. 양 웬리가 이를 보았더라면 한때 인상에 깊게 박혔던 공포와 혐오의 감정을 새삼 다잡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소. 연설할 때는 이미 지났소. 이젠 행동으로 나설 때지. 잘 들으시오, 트뤼니히트 의장. 나는 힘으로라도 당신을 저지할 것이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27~328
5.6. 양 함대의 항복
트뤼니히트가 항복을 선언한 순간, 버밀리온에서 양 함대는 제국군 총기함 브륀힐트를 주포 사정권 내에서 포착한 순간이었다. 승기를 잡은 양 함대에서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정전명령과 그에 따른 함대 후퇴에 분노와 망연자실에 빠져 버렸다. 더스티 아텐보로는 정전명령을 듣자 정부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한편 발터 폰 쇤코프는 정전명령을 수신한 직후, 양 웬리에게 정전명령에 볼북종하고 라인하르트를 사살할 것을 요구했다.
그 발언에 기함 히페리온에는 침묵이 돌았으나, 그것도 양 웬리의 말에 깨졌다."자, 정부의 명령 따위 무시하고 전면 공격을 명령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세 가지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의 목숨과, 우주와, 미래의 역사를 말입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이대로 전진하기만 하면 역사의 한복판을 걸을 수 있습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11~312
양 웬리의 명령대로 동맹군은 함대를 후퇴하여 전투행위를 중단했다. 그러나 동맹군 병사들은 분노와 망연자실함에 사로잡혔다. 일부 병사들은 정부의 정전선언을 이적행위로 규정하면서 명령에 불복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였다.[21] 하이네센에 가족이 있는 몇몇 장병들은 정부의 정전명령을 지지했으나, 그것도 정부를 비난하는 대다수 전우들이 풍기는 살벌한 분위기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몇몇 병사는 양 웬리를 찾아가 정전명령에 불복종할 것을 요구하려고 했다."......응. 그런 방법도 있겠지. 하지만 내 사이즈에 맞는 옷은 아닌 것 같군. 그린힐 소령. 전군에 후퇴 명령을 전달해 줘."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12
그 시각, 기함 히페리온의 회의실에는 동맹군 간부들이 집결해 있었다. 가장 먼저 발언한 것은 은하제국 정통정부군 소속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중령이었다. 슈나이더는 동맹정부의 결정이므로 정전은 어쩔 수 없지만, 동맹군이 보신을 위해 메르카츠 제독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면, 슈나이더로서는 이를 방관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은 슈나의더의 말에 동의하면서 메르카츠 제독에게 훗날을 대비해 몇몇 함정과 장병을 이끌고 은둔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 말에 올리비에 포플랭, 카스퍼 린츠 등 몇몇 간부들이 양 웬리가 고안한 '움직이는 셔우드 숲' 함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쇤코프, 피셔 아텐보로 등 대다수 장성급 장교들은 제국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합류하지 않고 처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게 전함 8척, 우주항모 4척, 순항함 9척, 구축함 15척, 무장수송함 22척, 공작함 2척에 장병 11,820명은 파괴와 전사로 위장된 채, 제국군을 피해 버밀리온 성역을 떠났다.
반면에 양 웬리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바로 우주먼지로 전락할 예정이었던 라인하르트는 동맹군이 자신의 기함 코앞까지 전진한, 그들이 다 이긴 전투를 갑자기 포기하고 정전을 요청하는 모습에 심히 당황해했다.
전투가 중단되고 머지않아 하이네센을 점거한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함대로부터 세밀한 보고가 올라왔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그제서야 사태의 전모를 파악했으나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 이전부터 자신의 부하들이 양 웬리에게 패배하자 인내심이 폭발해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나섰으나 본인마저 역시 패배하다 못해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전사 직전까지 몰렸다가 겨우 목숨을 부지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인하르트의 자존심은 갈기갈기 찢어져버렸다."어이가 없군! 왜 갑자기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앞으로 한 걸음, 아니, 반 걸음이면 놈들은 승리하는 것 아니었나?! 눈앞의 승리를 내팽개칠 정당한 이유가 어디에 있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41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5월 5일 22시 40분, 12일간 계속되었던 버밀리온 성역 회전이 종결되었다. 제국군의 함대 손실률 87.2% 장병 손실률 72%, 동맹군의 함대 손실률 81.6% 장병 손실률 73.7%. 양 군에서 약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말 그대로 사투였다.'''"......난 승리를 양보받았단 말인가?"
사정을 깨달은 라인하르트가 검은색과 은색 군복에 감싸인 우아한 몸을 지휘석 깊이 묻고 중얼거렸다.
"한심한 이야기로군. 나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승리를 양보받은 거야. 마치 거지처럼......."
라인하르트는 웃었다. 그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는 화려함과 생기가 결핍되어 있었다.
조각과도 같은 웃음이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41~342
5.7. 두 명장의 만남
동맹정부의 정전명령으로 전투가 종결 된 뒤, 뒤늦게 달려온 비텐펠트, 파렌하이트, 바렌, 슈타인메츠, 렌넨캄프 함대는 버밀리온 성역에 주둔한 양 웬리 함대를 4만 척의 우주함정으로 포위했다.[22] 그러나 이미 메르카츠 제독을 비롯한 60척의 함대가 버밀리온 성역을 이탈하여 제국군에게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역사에 기록될 두 명장의 만남은 전투가 끝난지 만 24시간이 지난 우주력 799년 표준력 5월 6일 23시였다. 자유행성동맹군 이제르론 요새 및 주둔함대 사령관 양 웬리 원수는 은하제국군 총기함 브린휠트로 가서 제국군 최고사령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와 역사적인 회담을 하게 되었다.
브륀힐트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양 웬리는 '허공의 귀부인'이라 불리는 브륀힐트의 아름다운 내부 구조를 보고 경탄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제국군 간부들도 양 웬리를 보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도무지 불패의 마술사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은, 라인하르트처럼 미남자도 아니고 켐프처럼 장부도 아닌 대학에서 강의나 할 청년학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타인메츠 제독은 "내가 저런 놈에게 졌단 말인가"라고 속으로 말했다가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한 자신을 뉘우쳤다고 한다.
양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한 것은 '양장' 나이트하르트 뮐러 대장이었다. 뮐러는 양 웬리가 제국에 태어났다면 자신은 바로 양에게 용병술을 배우러 갔을 거라고 말했고 양은 뮐러 같은 장수가 동맹에 있었다면 자신은 지금쯤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수 있었을텐데 라고 말했다. 뮐러의 안내를 받은 양은 라인하르트의 개인실에서 처음으로 라인하르트를 보게 되었다.
두 사람의 회견은 아스타테 회전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라인하르트는 아스타테 회전에서 양이 자신의 통신에 답신하지 않은 것을 꺼냈고 양은 이에 자신의 무례를 사과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에게 제국원수 계급을 줄 테니 제국으로 전향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양은 자신이 제국에 태어났다면 바로 라인하르트에게 달려갔을 것이지만 동맹에서 태어나 제국 사람과는 다른 물을 마시며 자랐으니 몸에 맞지 않는 물을 먹으면 탈이 난다고 거절한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거대한 무훈에 비해 부족한 보상과 지나친 견제를 받지 않느냐고 물었고 양은 차마 연금만 받으면 장땡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스스로 충분히 보상받았으며, 자신의 충성심은 민주주의에서만 성립된다고 답했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좀 더 근본적인 주제, 민주주의의 결점에 대해 논한다.
그러자 양은 라인하르트의 말은 화재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불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한다. 그 말을 들은 라인하르트는 그 것은 전제정치도 마찬가지며, 폭군이 출현한다 해서 전제정치의 장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답한다."민주주의란 그렇게나 좋은 것일까? 은하연방의 민주공화정은 루돌프 폰 골덴바움이라는 추악한 기형아를 낳지 않았던가."
"......."
"게다가 경이 사랑해 마지않는, 아...... 이건 내 생각이네만, 그런 자유행성동맹을 내 손에 팔아넘긴 것은 동맹의 국민 다수가 자신의 의지로 선출된 국가원수였네. 민주공화정이란 국민이 자유의지로 자기 자신의 제도와 정신을 타락시키는 정치체제인가?"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54
그러자 양은 전제정치의 장점을 부정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전제정치의 해악을 논한다.
그 말에 허를 찔린 라인하르트는 양의 주장이 참신하지만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자신을 설득할 생각이냐고 말했다. 양은 그 말에 자신은 라인하르트의 주장에 대한 안티테제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답했으며, 우주에 유일무이한 진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팔은 거기에 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자신은 진리 따위는 필요하지 않고 오직 싫어하지 않는 자의 말을 듣지 않는 힘만이 필요했다고 말하며, 양에게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양은 자기만 안전한 곳에 숨어 전쟁을 찬미하고 애국심을 강조하며 타인을 전장으로 떠밀고 후방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자를 싫어하며, 라인하르트는 그런 자들과 달리 항상 진두에 선다고 감탄한다. 그 말에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의 인정을 받아 기뻐하고, 죽은 벗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라인하르트는 오래 전 키르히아이스와 함께 둘이서 우주를 손에 넣을 것과 비열한 대귀족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을 맹세한 것과 키르히아이스를 위해 언제든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으나 정작 매번 희생한 것은 키르히아이스라고 중얼거렸다."국민을 해칠 권리는 국민 자신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루돌프 폰 골덴바움, 또한 그보다도 훨씬 소인배지만 욥 트뤼니히트 같은 자를 권좌에 앉힌 것은 분명 국민 자신의 책임입니다. 남을 책망할 수 없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그 죄악의 크기에 비하면 100명의 명군이 베푸는 선정도 조그맣게 보일 정도지요. 하물며 각하처럼 총명한 군주가 출현하는 일이 지극히 드문 것을 고려해 본다면 장단점은 명백해지지 않을지요......."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55
키르히아이스 이야기를 끝낸 라인하르트는 다시 주제를 현실로 돌려, 양의 상관인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가 책임은 자신이 지겠으니 다른 자의 죄는 묻지 달라고 호소한 것을 꺼냈다. 양은 뷰코크 사령장관다운 말이지만 뷰코크 혼자 책임을 진다면 면목이 없다며 그 청을 거절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제국의 문벌귀족과는 달리 동맹군은 호각의 적수로 생각하기 때문에 제복군인 1인자인 통합작전본부장을 수감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전쟁이 끝난 후 피를 흘리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고 답했다. 그리고 양을 자유롭게 풀어준다면 어떻게 처신할 건지 물었고, 양은 이 말에 퇴역하겠다고 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라인하르트와 고개를 끄덕이면서 회담은 끝났다.
회담 이후 라인하르트는 생애 처음으로 하이네센에 발을 디디게 된다. 이후 역사는 바라트 화약으로 이어진다.
6. 결과
손상률, 사망률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숫자로 따져보면 제국군은 동맹군보다 두배나 많은 대군을 이끌고도 같은 비율의 손해를 봤다. 간단하게 말하면 동맹군 1명을 잡자고 제국군 두명이 죽은 셈. 심지어 라인하르트는 뮐러의 조력까지 받았음을 고려하면 전투 자체는 양 웬리에게 주도권이 넘어간 상태였고 사실 상술된대로 '''양 웬리가 결사항전을 포기한 덕분에''' 비슷했지 항복이 몇초만 늦었더라도, 또는 양 웬리가 동맹 정부의 높으신 분들을 무시하기만 했더라도 제국군의 피해는 숫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겉잡을수 없이 커졌을 것이고 남은 세력 조차 구심점인 라인하르트의 전사 이후 갈갈이 찣겨나갈게 뻔했다.
양 웬리는 최후의 희망을 남기기 위해[23]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원수에게 율리시스를 포함해 전함 8척, 우주모함 4척, 순항함 9척, 구축함 15척, 무장수송함 22척, 공작함 2척 및 카스파 린츠 대령 외 로젠리터 연대의 일부 병력과 올리비에 포플랭[24] 중령 등 11,820명의 군인을 맡겨 탈출시킨다. 물론 이 전함들과 인원들은 격침 및 사망으로 위장.
메르카츠 제독이 전선에서 이탈한 후 제국군은 버밀리온 성역에 집결하기 시작했으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과 양 웬리는 최초이자 최후의 회담을 하게 된다. 이후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 사이에 맺어진 바라트 화약이 체결되어 조약에 따라 동맹 병탄은 일시적으로 유예되었지만 사실상 속국으로 전락하였다.
이 전투에서 동맹군은 제14함대 사령관 라이오넬 모튼, 제국군은 카르나프가 전사했다. 그뤼네만은 중상을 입었지만 전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죽거나 부상을 입지는 않았으나 전투 중 라인하르트와 오베르슈타인에게 단단히 찍힌 투르나이젠은 좌천당해서 다시는 일선에 나오지 못했다(...).
한편 동맹정부가 최후의 신뢰도 져버리게 되면서 양 웬리 함대의 면면은 동맹정부를 아예 불신하게 되었고 스스로 동맹정부와의 연을 끊어가며 완벽히 양의 사병화가 이루어졌다.[25][26]
7. 평가
보급 함대 격멸을 시작으로 하여 버밀리온 성역 회전까지의 양 함대의 전투는 후세에 '군사 활동의 예술' 전략사상 획기적인 거대한 양동작전으로 '최후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등으로 극찬을 받게 된다. 라인하르트의 기동적 종심방어도 나름 획기적인 것이나 전술적으로 패배하는 바람에 그 가치를 깎아먹고 말았다.이 회전의 승자가 제국군과 동맹군 중 어느 쪽인지, 이 점에 관해서는 전쟁사 연구가들의 견해가 분분하다. 양측 사상률이 모두 7할을 넘는 것은 군사상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었으므로 소수점 이하 몇 퍼센트의 미세한 숫자로 승패를 결정하는 행위는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럼 과연 이것을 '무승부'라 해야 할까.
(중략)
당사자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이에 대해서는 명백한 기록이 남아 있다. 두 최고지휘관들은 모두 자신을 승리자라고 보지 않았다.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이긴 것이 아니라 승리를 훔쳤다는 혐오감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반면 양은 어떤가 하면, 전술적 승리보다 전략적 승리를 훨씬 중시하는 자신의 군사사상에 비추어 보았을 때 승리를 확신할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어쩌면 과대평가일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 상대가 성공한 면을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콤플렉스마저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45~347
후세에 전략 연구가들은 이 전투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는데, 이는 이 전쟁에서 양측의 주요 인물인 양과 라인하르트 양측 모두 자신이야말로 패배자라고 주장했던 것도 컸다.[27]
7.1. 라인하르트에 대한 논란
후세에 양 웬리의 군사적 예술이라 평가받은 이러한 게릴라 작전은 제국군 중추부에 양 함대를 제거하지 못하면 동맹은 정벌할 수 없다는 생각이 심어 주었다. 하지만 힐데가르트나 비텐펠트가 주장한대로 양 웬리의 도발따위 무시하고 하이네센으로 직행했으면 전쟁이 더 빨리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28]
하지만 당시 제국군 제독들은 양 웬리의 성향을 몰랐다. 한참 양 웬리에게 털려서 욱한 비텐펠트가 수도 공격을 주장했을 때는 미터마이어는 "하이네센 점령하고 주력함대 뺀 다음에 남은 병력만으로 양 웬리 함대랑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며 양이 하이네센을 탈환하고 동맹을 재건하면 헛수고"란 말로 반박했다. 당시 문벌귀족을 타파하고 개혁을 진행해 국가재정이 풍족해진 제국이었으나 이런 대원정을 계속 반복하기엔 전비 부담이 너무 극심해진다. 그러니 일반적인 관점에서 미터마이어의 주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 관점에서 양 웬리가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동맹령 전역을 돌아다니며 게릴라 전을 벌이는 것은 악몽 그 자체다.[29] 실제로 동급 병력으론 제국의 명장들이 양 웬리한테 상대가 안 된다는 게 무려 3번이나 연속으로 증명되었으니. 사실상 제국의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서 제국이 입은 피해는 동맹의 제국령 침공작전 실패로 입은 손실에는 못 미쳤어도 엄청난 피해였다.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입은 손실도 적지 않은데 양 함대에게 3개 함대가 괴멸되었고 2천만 원정군의 각종 보급물자도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렸다. 이중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을 제외한 나머지 손실이 모두 양 함대에 의한 것이니 양 웬리를 의식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에 제1차 란테마이로 성역 회전조차 막판에 양 웬리가 끼어든 바람에 적 함대를 완전히 궤멸시키는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일시적으로 제국군이 패닉 상태에 들어가게 했으니 의식을 넘어 은연중에 공포심을 가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리고 사실, '일반적인 성향'이 아니라 '양 웬리의 성향'에 따라 대처했다고 하더라도 제국의 입장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양 웬리를 무시하고 바로 하이네센을 공격하여 동맹 정부를 항복시켰다면 양 웬리 역시 그 항복 명령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어차피 제국의 주력군 전부가 동맹에 주둔할 수는 없는 이상 소수의 점령군만 남고 주력 함대는 본토로 귀국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정부의 직접적인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것과 달리, 점령군을 격파해서 국가를 재건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에 해당하는 일이므로 양 웬리가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즉, 소수의 주둔 병력만 남아서 양 웬리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은 마찬가지인 셈. 그렇다고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키면 [30] 그건 그것대로 보급과 그로 인한 재정문제, 제국 본토 주둔 병력의 감소로 인한 통제력 악화, 동맹령 주둔 병력에 대한 통제와 지휘관 문제 등등 제국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기게 된다. 뭐, 동맹에게 항복조건으로 양 웬리의 제거를 요구한다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버밀리온 성역 회전 종료 후 바로 제거할 수도 있었으므로 논외. [31]
오히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양 함대가 입은 손실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이나 회랑 전투에서 양 함대의 전투력이 증강되는 결과를 불러왔을 수도 있다. 사실 양 웬리에게 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서 잃은 병력이 4만 척 초반대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 손실이 더 늘어난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제국의 동맹 점령 계획 자체가 구조적으로 붕괴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을 정도.[32]
즉, 양 웬리를 중심으로 한 동맹군의 전투능력 자체를 파괴하지 않으면 하이네센을 점령하고 정부의 항복을 받아낸다고 해도 동맹을 완전히 무너트렸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인식 자체는 옳았던 셈. 다만 그 과정에서 라인하르트 자신이 위험에 처하게 됨으로써 양 웬리를 무너트리지 못하고 동맹 정부의 항복으로 전쟁을 종결함으로써 이후 또 한 번의 대규모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보면 미터마이어와 라인하르트의 계획이 실패하기는 했으나, 비텐펠트나 힐데가르트의 계획에 따라 성공했더라도 결과는 어차피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과 이후 줄지어 일어나는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회랑 전투-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시바 성역 회전을 통해 사실임이 드러났다.
더불어 전투에서도 다소 허술한 판단과 행동을 보여 제국군을 위기에 빠뜨렸다. 이때 라인하르트도 그렇고 오베르슈타인도 그렇고 양 웬리가 병력을 분산시키려 든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다만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을 참모로는 높게 평가했으나 전술지휘능력에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본대에 소수 호위부대를 두고 주력 대부분을 좌측에서 깔짝거리는 동맹군에게 보내는 삽질을 저질렀고 하마터면 발할라에 먼저 갈 뻔했다.
7.1.1. 라인하르트의 전장 이탈 문제
양 웬리 vs 라인하르트의 결전에 집중하다보니 잊혀지는 문제지만, '''사실 라인하르트가 패배를 받아들이고 전장을 이탈(탈출)했다면 제국의 승리다.'''"각하, 셔틀을 마련했습니다. 부디 탈출할 결심을......."
부관을 돌아본 라인하르트의 눈동자에는 싸늘한 광채가 어렸다. 이 순간 푸른 얼음빛은 보는 이가 숨을 들이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주제넘은 짓은 하지 말도록. 나는 필요하지 않을 때 도망치는 전법을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비겁자가 마지막 승자가 된 예가 있던가?"
"감히 아뢰옵니다. 이곳에서 전장을 이탈하시더라도 패배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뭇 제독들의 함대를 규합하여 다시 복수전을 시도하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298
양과 라인하르트는 물론, 제국의 쌍벽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도, 그리고 동맹의 국방위원장 월터 아일랜즈도 일반적인 상황에서 전술적 승리를 축적시켜 전략적 상황을 역전시킨 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은 단 하나, 라인하르트의 생물학적 후계자도 권력서열 No.2도 없는 현실을 이용하여 라인하르트를 전사시키는 것 뿐이었다.
즉, 설사 버밀리온에서 라인하르트가 참패를 당하더라도 '''본인만 살아있다면''' 압도적인 전력차를 이용하여 여전히 동맹에 대한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물론 보급문제 등으로 장기 주둔이 어려워지곤 있었지만 동맹의 제국원정때처럼 즉각적인 전면철수를 고려할 정도로 나쁜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버밀리언 성역 회전에서 라인하르트에게는 두 차례의 위기가 있었는데 첫째는 양의 낚시질에 당해 예하 함대가 포위당하고 본영으로 동맹군의 별동대가 쇄도할 시점, 두 번째는 뮐러까지 양에게 당해 털리고 양이 전선을 재구축하여 브륀힐트를 함포 사정거리 내에 포착한 시점(즉, 동맹의 항복명령이 전달되기 직전 시점)이었다. 첫 번째 시점에서는 슈트라이트 준장이 탈출을 권고했으나 그놈의 자존심때문에 탈출을 거부했고, 두 번째 시점에 대한 제국측 묘사는 없었으나 첫 번째와 비슷했을 상황으로 보인다.
먼저, 첫 번째 시점에서 탈출했다면? 제국측은 라인하트트 직속 B급 제독들이 지휘하던 함대를 모조리 상실하지만 기라성같은 A급 제독들과 그들의 함대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는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뒤이어 전장에 도착한 뮐러가 보다 더 유연하게 전술을 구사할 수도 있었다. 뮐러가 함대 전력의 6할만 가지고도 양 함대에 공세를 펼치며 포위망을 분쇄하려 한 이유는 결국 '''라인하르트가 전장 이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투를 지속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포위된 제국 함대를 구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라인하르트가 전장을 이탈한 상황이었다면 뮐러는 보다 침착하게 포위망 분쇄에 집중했을 것이고, 양 웬리 역시 라인하르트의 이탈을 알았다면 '''전략적 목표 달성에 실패'''했으니 뮐러 함대의 공세를 맞받아치고 포위된 제국 함대를 섬멸하기보다는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철수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시점에서 탈출했다면? 첫 번째 시점보다 더 상황이 좋다. 설사 힐데가르트에 의해 하이네센 강습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이 시점 양 함대에서 실제 전투 수행이 가능한 전력은 3천 척에 불과했다. 중파된 함정들을 다 복구시킨다고 해도 1만 척에 미달한다. 동맹은 판돈을 모두 양 웬리에, 양 웬리는 버밀리언에 걸은 상태였고 그렇게 판돈을 다 걸어 버밀리언에서 완승을 거두더라도 라인하르트를 못 잡으면 쓸데없는 전력만 날리는 셈이다. 이 시점에서 라인하르트가 탈출했다면 라인하르트는 자신의 직할 함대 + 뮐러 함대 반수를 날리는 대가로 양 함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날리는 것이며 이는 숫적으로 열세인 동맹에 매우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양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노력하더라도 만 척도 안되는 함대로 다른 제국군 제독들의 함대를 상대하는 건 무리다.
즉, 라인하르트가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여 탈출한다면 버밀리온 성역 회전은 '''전술적 패배'''에 그칠 뿐이지만 본인의 높은 자존심덕에 탈출을 거부했고 그 결과 '''전략적 패배'''로 귀결될 수 있었다. 실제 전사상에도 유능한 지휘관들이 패전을 하면서도 후일을 기약하며 탈출하는 경우와 패배에 충격받아 자결 혹은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경우가 많은데 라인하르트는 후자였으며, 그것도 일개 전선 지휘관이 아닌 제국이라는 거대세력의 유일무이한 정치지도자였다. 라인하르트와 정치, 군사지도자 측면에서 비슷했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도 7년 전쟁 당시 숱한 패전을 겪었음에도 품 속에 넣어둔 극약을 먹지 않고 참고 또 참으며 반전의 기회를 노렸고 결국 승리할 수 있었다.
물론 양 웬리 역시 라인하르트의 성격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지만, 라인하르트는 은하제국의 유일무이한 군사정치지도자라는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자존심을 한 수 접고 탈출을 선택했어야 했다. 본인이야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필요없는 때에 도망치는 법을 배운 적 없다고 외쳤으나, '''필요할 때에 도망치는 법'''은 사관학교에서건 실전에서건 이미 잔뜩 배웠을 것이고 버밀리온은 바로 그 필요할 때 도망치는 법을 써야 할 장소였다.[33]
7.2. 기동적 종심방어 문제
사실 은영전에 기반한 거의 모든 게임에서도, 현실의 그 어떤 종류의 전투도 상대보다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은 이상 이런 '겹겹이 속치마' 종심 방어진을 구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잠시 후 양 함대에게 처절하게 각개격파당하는 제국군을 목도하게 된다. [34] 아니 돌파가 아니라 어차피 상대방 함선이 적기 때문에 아예 섬멸을 해버리면 제국 입장에서는 축차 투입, 축차 소모가 되어버린다.
이는 현실의 종심 방어 전술과 유사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처음부터 개별 제대(梯隊)로 구성된 다중 방어진을 구축하는 것에 가깝다. 방어선 붕괴 후의 재정비는 지휘통제체계가 방어선 붕괴 과정에서 와해되기 쉬워 성공적인 후퇴를 기대하기 어렵고, 공격 측도 바보가 아니라 최초 방어선 돌파 내지는 적의 후퇴조짐을 포착하는 동시에 전과 확대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게 되기 때문.[35]
굳이 이와 비슷한 걸 꼽자면 예비대를 통한 후방 방어선 구축과 전방의 부대를 후방으로 돌려 재정비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고도 말할 수는 있다. 다만 이때도 방어선 붕괴 후의 재정비가 아니라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퇴각, 후발 부대와 바통 터치하고 재정비하는 것이지 본편에서 나온 것처럼 방어선이 돌파된 후에 뒤로 빠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게임이나 현실의 문제는 접어두고 소설 상에서는 이 방어진은 충분히 제구실을 했다. 제2진이 돌출해서 두들겨 맞은 것을 제외하고 라인하르트의 종심 방어진은 성공적으로 방어를 수행하며 전력상으로 열세인 양 웬리에게 출혈을 강요했고 양 웬리는 결국 방어진을 뚫는데 실패해서 다른 작전을 펼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라인하르트가 넘어가는 바람에 양 웬리가 전투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지 라인하르트의 전술적 패배는 오히려 기동적 종심 방어를 포기하고 양 웬리의 미끼를 물어버렸기 때문이다. [36]
7.3. 양 웬리에 대한 논란
7.3.1. 전투 개시
양 웬리의 전략은 작중 시점에서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정치적 한계로 인해 어느정도는 모순적인 상황을 내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양 웬리의 전략은 지속적인 게릴라전을 통해 제국군을 소모시켜 나가며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켜 보겠다는 것인데, 이 '대전략'을 실행하는 관점에서 보면 버밀리온 성역 회전은 지나치게 이른 시점에 벌어진 결전이다.
순수하게 군사적인 관점으로만 놓고 보자면, 양 웬리는 제국군이 견디다 못해 철수할때까지는 일전을 벌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라인하르트의 목을 따는 것이 전략 목표라면, 그것을 이룰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점은 제국군 전력이 가장 낮아질 때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두 전투에서 양 함대가 보여준 막강한 함대전 역량을 생각할때 물자가 소모될 대로 소모되고 사기도 추락한 제국군을 분산시킨 후 각개격파한다면 압도적인 승리도 노려볼 수 있고, 목표한 라인하르트의 전사도 이뤄낼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37][38]
그러나 버밀리온 회전 당시 제국군은 보급부대가 당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싣고 온 물자가 아직 여유분이 존재했고, 라인하르트의 카리스마까지 겹처서 사기도 여전히 높았다. 즉 충분히 전력이 저하되기 이전의 상황이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라인하르트가 홀로 나왔다고 1:1 맞다이를 시도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이전의 두 전투에서는 전력 소모가 거의 없다시피했다지만, 결전에서 큰 피해를 입는다면, 그리고 라인하르트를 죽이는 데 실패했다면 뒤를 도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제국군에는 아직도 많은 전력이 남아있는 이상 라인하르트가 이들을 재결집해 버리면 이전처럼 놀라운 전과를 올리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따라서 양 웬리의 일전 결심은 군사적인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기보다는 그 이상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볼수밖엔 없다. 즉, 군사적인 이유라면 결전을 벌여서는 안되지만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결전을 벌일 수밖엔 없었다는 것. 실제로 양 웬리는 제국군 여타 함대와 라인하르트가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을때 전투를 벌이고자 했지만[39] 계산 결과 그 경우 하이네센이 전투에 휘말려 버릴 위치에서 싸우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기에 버밀리온에서 일전을 택하였다는 묘사가 소설, OVA 모두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는 자유행성동맹의 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행성동맹은, 은하제국처럼 행성 오딘에서 모든것을 일일히 지시내리는 체제가 아닌, 수많은 자치정부들이 바라트 성계를 중심으로 연합한 연방제의 성격을 가진 국가이다. 자유행성동맹은 작중에서 연방제 국가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다만, 정부의 신뢰도가 떨어질 경우 각 성계가 동맹으로부터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자체는 작중에서 명시하고 있다. 단지 주로 하이네센에 묘사가 맞춰지고, 자유행성동맹군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단일 국가처럼 비출 뿐이다. 은하제국이라면 변방 유인성계 몇십개 정도야 쉽게 내주고 공간을 내어줄 수 있지만[40] 자유행성동맹이 이를 방기한다면? '''자치정부들은 동맹 정부의 책임 방기를 이유로 동맹에서 이탈해 버릴 수 있다.''' 실제로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도 '''여길 지나가면 인구가 밀집된 유인성계고, 유인성계가 전쟁에 휘말리면 각 성계는 동맹의 방위 의무 방기를 문제삼아 동맹을 이탈하고 제국에 붙을 수 있다'''[41] 는 이유때문에 동맹은 결전을 결심했고, 제국도 충분히 결전 지역을 짐작할 수 있었다.[42]
이건 결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전쟁에서 이겼어도, 동맹이 해체되어 버리면 그건 승리가 아니다.''' 동맹에서 이탈한 자치정부가 중립을 선언하거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제국군에게 물자를 공급한다면 '''유격전 과정에서 올린 성과는 다 헛수고가 된다.''' 이것저것 다 잃어 가면서 유격전을 고집해 제국군을 돌려보내도 동맹이 해체되거나 행성 대부분이 독립해버리면 아직 후방에 여유전력이 존재하는 제국은 언제든 다시 침공할 수 있고, 그대로 은하제국의 우주통일이 실현될 것이다.[43]
7.3.2. 정전명령 복종
양 웬리가 하이네센의 정전지시를 따른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44] 실제로 만약 거기서 라인하르트를 제거했다면 자유행성동맹은 생존을 보장받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실제로 작중에서도 '통신병들이 조금만 센스있게 늦장보고를 했으면 됐잖아!' 내지는 '그냥 쏴버리자!' 하는 장병들의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다만 '하이네센 10억 죽어도 나머지 120억을 구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따르는 것은 양 웬리가 작중에서 극히 혐오하고 절대 그런 식으로 소수를 희생시켜서는 안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논리를 들이미는 것은 결국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시점에서 하이네센이 사실상 인질이 되었음을 생각해야한다. 아르테미스의 목걸이가 없는 궤도는 장악당했고, 통합작전본부 건물이 날아갔다는 것은 하이네센의 생명줄을 제국군이 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설령 항복명령을 무시하고 라인하르트를 발할라로 보낸다 쳐도, 분산되었던 함대들은 이미 반전하여 돌아오고 있었다. 뮐러는 단지 그들 중 빨리 돌아온 제독 중 하나였을 뿐이며 동맹군은 뮐러의 저항을 분쇄시켰을 때 이미 정신은 둘째치고 육체적으로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또한 양 웬리가 항복명령에 응하지 않았을 때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이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버밀리온의 잔당들과 반전해오는 제독들을 연파하여 결국 승리한다쳐도 양 웬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이네센의 사형언도 또는 잿더미가 된 자유행성동맹일 수 있다. 누가 봐도 손해보는 장사고 양 웬리로선 그 불확실한 가능성에 도박을 걸 수 없다. 양 웬리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제국군의 바라트 성계 진입을 막지 못한 시점에서[45] 체크메이트였고, 정상적인 군인이라면 여기서 항복하여 국가의 손실을 최소화해야한다. 그게 명예나 가치관을 위해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행위를 혐오하는 양 웬리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양 웬리라는 캐릭터를 형성하는 두가지 축은 '군은 정치에 복종해야 한다' 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혐오'한다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본다면 그 행동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고, 오히려 거기에 따르는 게 양 웬리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양 웬리가 신념을 지켰다고만 하기엔 이후의 과정에서 모순이 있다. 양은 하지만 전쟁에서는 졌어도 민주주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중에 대비책으로 메르카츠를 숨겨둔다. 하지만 이럴 거라면 굳이 그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양의 생각이 옳은 것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46]
일단 양이 버밀리온 성역 회전을 이끌어낼 때까지의 결론으로 당시의 동맹이 제국을 격퇴하는 유일한 방법은 라인하르트라는 유능한 지도자를 제거하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자명했다. 버밀리온 성역회전을 포기하고 양이 준비했던 방법이라는 것들은 거기에 비하면 효율적인 면에서 지극히 떨어지고 성공확률도 높지 않은 것이다.
양의 버밀리온 성역 회전의 포기는 한마디로 이 시대에서 민주주의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랬다면 차라리 양은 현 시대의 역사적인 흐름을 인정하고 본업이라고 생각하던 역사가로 돌아가서 그래도 민주주의가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 차라리 옳은 일이다. 전쟁이 계속됨에 따라서 결국 사망자가 얼마나 더 발생했는지를 생각하면 과연 양이 하이네센의 시민들의 안전을 생각한 인도적인 고민만을 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양을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것이 양이 마지막 순간에 라인하르트를 처치했다면 양은 민주주의는 살아남게 했어도 위의 언급처럼 자신의 신념은 모두 스스로 부인해버리는 격이 된다. 결국 양이 그 순간에 명령을 따른 것은 그의 위치와 평소의 신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분을 생각해보면 양의 결정은 이론과 현실의 부조화, 자기모순의 괴로움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작가가 이상이 현실과 부딪혔을 때 생기는 자기모순을 조롱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47]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는 제국군에게도 있다. 힐데가르트의 조언에 의해서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에게 합류하지 않고 하이네센으로 직행했는데 결과가 좋아서 망정이지 그 자체로만 보면 항명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문제였다. 동맹 정부로부터 항복할 것을 요구받은 양 웬리와 묘하게 비슷한 면이 있다. 물론 라인하르트의 명령은 그다지 비합리적이고 억울할 명령은 아니었지만.
7.4. 만약 라인하르트가 전사했다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전사하고 양 웬리가 생존하는 순간, 제국군은 동맹군이 몇 명이 살았든 제국군이 몇 명이 남았든 전원 제국 본토로 서둘러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 제도 오딘에서의 반란 가능성
- 라인하르트 휘하 제독들의 내분
라인하르트 휘하 제독들의 내분 가능성의 대해서는, 라인하르트에 부인이나 아이 또는 명백한 2인자(생전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있었다면 휘하 제독들은 그를 추대해서 그의 휘하에서 계속 싸울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유로, 라인하르트가 전사했다면 최소한 제국군 절반은 제국으로 서둘러 철수해야 하는데, 이를 누가 지휘해야 할지 논란이 생긴다. 라인하르트 휘하에는 2인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동 3인자 오베르슈타인,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중에서 지휘관을 뽑아야 한다.
다만 오베르슈타인에 경우 우주함대 총참모장 자격으로 브륀힐트에 동승하고 있었으니 라인하르트가 전사했다면 오베르슈타인도 같이 전사했을 가능성이 높고,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다른 제독들의 강력한 반감을 사고 있는 데다가 휘하에 함대 전력도 없으니 추대되기는커녕 살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48] 그렇다면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 둘 중 하나는 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누가 남고 누가 돌아가든 로이엔탈은 딴마음을 품을 수 있다.[49] 둘 다 제국으로 돌아간다 쳐도, 다수의 병력을 남긴다면 그들이 자유행성동맹을 함락시킨 후 딴 생각을 품을 수 있고, 1-2개 함대 정도의 소수의 병력을 남긴다면 이는 양 웬리에게 죽으라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자유행성동맹군이 전멸했다 쳐도 양 웬리는 이미 제국군의 명장들을 몇번이나 엿먹였으며, 천하의 이제르론 요새를 아군 피해 전무로 함락시킨 불패의 명장이다. 양 웬리와 자유행성동맹이 건재하고 라인하르트가 전사한 상황에서, 소수의 병력을 놔두고 귀환한다는 것은 하책 이하의 우책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것은 제독들이 직책상 상관인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을 따른다는 전제 하이다. 라인하르트 휘하 제독들 사이의 관계는 절대로 명백한 상하관계가 아니었으니 실제로는 휘하 제독들이 분열을 일으켜 콩가루가 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고 양 웬리가 예상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제국 원정 함대는 양 웬리 함대에게 맛있는 먹잇감이자 한 끼 식사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면 양 웬리에게 아군의 정보를 넘겨 차도살인지계를 쓰는 제독도 나올 수 있다.
굳이 라인하르트 사후 제국군의 분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자면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이 협력하여 쌍두체제를 구축하고(오베르슈타인은 만약 살아있으면 여기 협력하고) 다른 제독들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다.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의 경우 일단 제독으로써 다른 제독들보다 한 단계 격이 높은 3인자군에 속하는 인물인데다 두 사람의 개인적 관계 역시 극히 절친하고 서로를 신뢰하는 친구 관계이므로 이 둘이 힘을 합쳐 다른 제독들에 대한 확고한 우위를 입증하여 상황이 수습될 가능성이 있는 것. 또 쌍두체제이므로 한명은 남아서 양웬리와 맞서며 원정을 지속(최소한 동맹과 양 웬리 견제)하는동안 다른 한명은 제국으로 귀환하여 제국 내의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도 가능한 것.
하지만 이 방안 역시 그 실현 가능성에는 상당한 불안요소가 많은 것이... 일단 라인하르트 휘하의 다른 제독들이 미터마이어&로이엔탈의 우월한 입장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라인하르트 막하 장수로써' 자신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지 주군으로써의 지위까지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있다. 즉, 상위의 권위인 라인하르트가 건재한 상태에서 상관이나 선임자로서의 두 사람은 인정했지만, 라인하르트의 권위가 사라진 상태에서 주군으로써는 인정할 수 없다고 저항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 심하면 일대일로는 못 이길 쌍벽이라도 여러 제독들이 한꺼번에 손을 잡고 덤벼들수도 있고, 당장 정면으로 반기를 들지는 않더라도 두 사람의 주도권을 인정할수는 없다고 소극적인 반항이나 불복종적인 태도를 취할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설령 쌍벽이 협력하여 반항하는 제독들을 격파하고 굴복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치더라도... 그 와중에서 발생할 혼란이나 전력 손실을 양 웬리가 결코 가만히 놔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위 서술처럼 분쟁에서 열세에 처한 제독이 양 웬리에게 아군의 정보를 넘겨 차도살인을 통한 역전을 꾀할수도 있는 것. 이렇게 되면 양 웬리 입장에서는 그냥 내전에 돌입한 각 제국군 제독의 진영을 돌아가면서 툭툭 쳐주는 것만으로 손쉽게 격퇴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의 협력구도라는 전제 자체가 정치적으로 극히 불안정한 것이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차라리 삼두체제면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위태로우나마 권력의 균형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어도, 쌍두체제의 경우 거의 필연적으로 양대 권력자간에 '너 하나만 잡으면 내가 쨩먹음!' 라는 사생결단이 벌어지는 법이다. 당장 하나는 동맹에 남아 동맹을 압박하고 양 웬리를 견제하고 나머지 하나는 제국으로 돌아가 정국을 안정시키자고 하면, 대체 누가 양 웬리와 동맹측 잔여세력의 위협을 견뎌내야 하는 험지에 남고, 누구는 제국군의 세력기반인 제국 본토를 비교적 손쉽게 재접수하러 들어갈것이냐는 갈등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것. 본래대로라면 이 양자갈등에서 균형추가 되어주어야 하는것이 3인자 3명의 나머지 하나인 오베르슈타인이지만... 오베르슈타인에게는 자기 함대도 없고, 제독으로써의 경력도 없고, 하다못해 제독들 사이에서의 인망조차 없다.(...) 분열 및 혼란기가 끝나고 다시 정치적 문제가 중요해지는 시기가 돌아오면 다시 맹활약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당장 군사적 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제독간의 내전기에는 양대 명장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줄 무게추가 되긴 커녕 살해나 안 당하면 다행일 것이다. 그리고 2인자를 극혐할정도로 불안정한 정치체제를 싫어하는 오베르슈타인이 극히 불안한 쌍두체제를 지탱하려고 무게추 역할을 한다는 것도 우습다. 오베르슈타인의 성향으로 보면 차라리 쌍벽중 더 유리해보이는 한쪽에 붙어 다른 한쪽을 무너트림으로써 빨리 체제안정성을 다시 확보하려고 하는 쪽이 더 어울리는 것[50] .
설령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이 우정과 신뢰의 힘으로 내분이나 갈등을 피하고 협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1인자 유고 후 1인자를 노리는 3인자간 대결정도가 되면 그건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미터마이어든 로이엔탈이든 그 밑에 추종자의 라인이 생겨버릴 것이고, 두 사람은 서로 죽도록 싸우기 싫고 친구를 배신하느니 차라리 자기가 항복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런 추종자들에게 떠밀려서라도 상호갈등구도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것. 당장 로이엔탈만 보더라도 그릴파르처의 음모에 휘말려 원치도 않았던 반란을 일으킴당했고 미터마이어의 경우에도 미터마이어 자신에게는 지극히 충성스러웠지만 동시에 로이엔탈을 극히 경계했던 바이어라인 같은 부하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당사자들이 아무리 서로 싸우기 싫어해도 주변에서 싸워라 싸워라 밀어붙이면 떠밀리지 않고 견뎌내기는 지극히 어려우며, 권력이나 조직의 구조적 갈등에 의해 강요받는 입장을 개인의 성격이나 노력으로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것.
이 점에서는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작품이 캐릭터 소설의 성격과 정치우화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은영전의 각 캐릭터는 캐릭터 소설의 장르적 논리에 따라 조형되고 움직이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정치우화의 장르적 논리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각 캐릭터 단위로 보면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은 결코 서로를 배신하지 않을 충직한 친구 사이이고, 제국군의 각 제독들 역시 충직함과 성실함을 가진 무인들로써 권력욕을 앞세워 서로 대립하다 나라를 붕괴에 몰아넣을만큼 어리석지는 않은 인물들로 조형되며, 제국 국내에서도 이미 문벌귀족들은 라인하르트에게 철저히 탈탈 털린 상태로 설령 라인하르트가 쓰러졌다고 해도 마땅히 반기를 들 인물조차 없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큰 줄기는 이런 각 캐릭터와는 별개로 이야기의 큰 줄기는 '권력 앞에서는 친구도 가족도 믿을 수 없고', '자기 세력을 가진 군 지휘관은 억제력이 사라지면 언제나 최고권력에 도전하거나 군벌화 될 수 있으며', '수백년에 걸쳐 한 나라를 지배해 온 세력들은 설령 그 세력 내부가 모순과 문제점으로 가득할지라도 한순간에 뿌리뽑을 수는 없다' 는 현실적 논리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라인하르트가 전사한 시점에서 제국군은 더 이상의 군사행동을 지속할 수 없으며, 제국령으로 전 병력이 철수할 수밖에 없다. 제국으로 귀환한 뒤 내부를 안정화시키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은 후에야 동맹으로의 재원정을 실행할 수 있으며, 어쩌면 이미 점령한 페잔 자치령에서조차 철수해야 할 수 있다.
하이네센 궤도를 장악한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함대가 퇴각 전 하이네센을 폭격할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다만, 아직 하이네센 궤도를 장악하기 전에 라인하르트의 전사 소식을 접하였다면 하이네센 폭격의 가능성은 확 떨어진다. 위에 나온 것처럼 당장 제국 본토로 퇴각해야 할 시점에서 하이네센 공격은 더 이상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逆) 청야작전의 일환으로서 철수하기 전 동맹의 힘을 빼놓기 위해 하이네센을 파괴한다는 선택지도 있을 수는 있지만, 이것도 퇴로가 보장되고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하다. 이미 동맹령 침공작전 자체가 실패하고 당장 본국으로 귀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고 퇴로도 불안하며 언제 양 웬리 함대가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행동은 심각한 낭비일 뿐이다. 남은 이유는 '라인하르트의 복수를 위한 화풀이' 정도인데 두 제독 모두 여기에 매달릴 만큼 감정적인 자들도 아니다. 결국 하이네센에서 지체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 밖에 없다. 특히 미터마이어의 경우 민간인에 대한 범죄를 끔찍할 정도로 혐오하기에 자기가 하기는커녕 하자고 하는 부하가 있으면 심하게 질책할 것이다. 로이엔탈 역시 미터마이어만큼은 아니지만 그 자신도 민간인에 대한 범죄는 좋아하지 않는다.[51]
역사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바로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내가 있었고 곧 태어날 유복자도 있었으며 전사한 것도 아니었지만, 당시 알려진 세계의 대부분을 정복한 위대한 정복군주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부하들이 내분을 일으켜 거대한 헬레니즘 제국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내분을 일으킨 장군들 대부분은 알렉산더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고 대왕이 죽은 뒤에도 변함없는 충성을 바친 장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열을 막을 수 없었다. 즉 훌륭한 지도자의 부재, 그리고 그 후계자의 부재는 전제군주제 국가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논쟁은 양 웬리가 만약 전사/암살당했다면 어땠을까로 옮겨보면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의 리더십의 차이를 보여준다. 라인하르트는 그 자신도 인정했듯이 민중들에 대한 덕이 아닌 상승의 명장으로서의 리더십이 주였다. 반면 양 웬리는 물론 그 자신도 불패의 명장으로서의 리더십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주로 부하들과의 허울 없는 사이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 등이 강조된다고 볼 수 있겠다.[52]
8. 게임에서 재현된 모습
은하영웅전설 4EX에서는 버밀리온 성역 회전 시나리오를 선택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시작하면 제국의 각 함대가 동맹령 곳곳을 공격하고 있고 버밀리온에서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가 맞붙고 있는 상황. 소설이나 OVA 묘사와는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함선 숫자만을 보자면 전함 숫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제국군이 유리해 보이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라인하르트와 휘하 제독들이 맵 중앙을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있다. 반면에 동맹군은 양 웬리와 휘하 제독들이 맵 왼쪽 아래편에서 뭉쳐있다.
제국군이 각개격파당할 수도 있지만, 동맹군이 앞의 함대와 싸우는 사이 뒤에있는 함대 전체가 돌진하여 동맹군을 압도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동맹군이 승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약점이 제국군에 존재한다. 바로 '''라인하르트의 함대편제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전투부대와 후방의 지원함선부대까지 거의 꽉꽉 차있는 양 웬리 직속함대에 비해 라인하르트의 직속함대는 기함부대를 포함해서 고작 3개이다. 전방에서 싸울 전투부대도, 후방에서 이를 지원할 보조부대도 없다. 그래서 컴퓨터끼리 맞붙여보면 동맹군이 라인하르트의 직속함대를 잡아버리고 라인하르트를 전사시키며 '''시작 5분만에 게임을 깨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은하영웅전설 VI에서는 버밀리온 성역 회전 시나리오를 전장으로 선택할 수 있다. 특징은 사실 시나리오와 제국군 쌍벽이 반전하여 버밀리온으로 진입하는 가상 시나리오 두 가지가 있는데 컴퓨터끼리 붙인다면 '''뭘 선택해도 동맹군이 라인하르트를 잡는다.''' 일단 뮐러를 위시한 구원군이 제때 오지 않으며 도착하기 전에 이미 라인하르트의 직속 부하들이 양 웬리의 직속 부하들에게 쓸려나가고, 구원군이 도착하더라도 맵상 끝에서 나오기 때문에 전장까지 가는 사이에 라인하르트 함대도 다 털리고 게임오버(…). 양 측 제독들의 성향이나 스탯 면에서 동맹군이 조금 더 우세하다는 점이 큰 요인이다.
동맹군으로 플레이할 경우, 양 본대만 선택하고 아군들의 용전분투를 차분히 감상(…)해도 족하다. 반면 제국군으로 플레이할 경우 약간 손이 바쁘게 된다. T.O.P.급인 양 휘하의 제독들에 비해, 싸구려 커피급인 라인하르트 휘하 잉여들의 조작이 조금은 성가시기 때문이다. 다만 '''전장의 묘한 지형'''(전장에 퍼져 있는 성간 가스로 인해 탐색, 이동 범위에 제약이 있다)과 '''게임의 '묘미'인 적극성'''을 활용(앞에서 언급한 종심진을 포기하고, 성격이 '신중'인 제독들을 미끼로 하여 성격이 '일반', '돌진'인 제독들의 피해를 줄이면서 그들의 적극성을 올리는 운용을 하면 된다. 일례로 막판에 적극성 200이 되어 있는 카르나프, 투르나이젠을 보면 은근히 든든하다)하면, 원군이 오기 전에 넉넉히 양을 우주의 먼지로 만들 수도 있긴 하다. 더 빨리 끝내려면 라인하르트가 초반부터 직접 나가 싸우는 것을 추천한다. 라인하르트 본인도 무척 강하거니와, 카르나프, 투르나이젠, 브라우히츠의 적극성이 한 턴에 10씩 폭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기함이 피폭당하면 반대로 한 턴에 10씩 적극성이 나락으로 떨어지니 컨트롤에는 유의해주자.
물론 이건 컴퓨터를 상대하는 경우 한정. 사람끼리의 대전이라면 '''가장 밸런스 맞는 전장'''으로 손꼽히는 미션이며[53] 이 경우 초반 우수한 공전대를 활용한 동맹의 우위 → 중반 적극성 폭주 플레이를 활용해 제독들을 능력치 뻥튀기시켜 제국이 주도권을 잡음(적극성 차이가 상당하면 기존 능력치는 잉여인 제독들도 양 웬리와 대등하게 싸운다) → 후반부 적극성을 따라잡은 동맹이 다시 우위를 잡음의 형태로 판이 진행된다.
은영전 반다이남코판에서 동맹군 시나리오 도중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를 '다 부수느냐', '반만 부수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데 절반을 남겨둬도 욥 트뤼니히트는 무조건 항복한다.
덤으로 제국 측 시나리오에서 키르히아이스 생존루트로 갈 경우, 모두 우려하던 중 키르히아이스가 남아서 라인하르트 보좌하는 스토리로 가는데, 바르바로사가 안 나온다. 어째서?!
9. 기타
이 에피소드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비극적인 멸망을 모티프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중장이 이끄는 폴란드군은 압도적인 러시아 제국의 공세 앞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진 폴란드를 구원하기 위해 곳곳에서 분투하다 바르샤바를 방위하기 위해 병력을 집결하고 최후의 전투를 준비했다. 그러나 부패한 타르고비차 귀족 연합이 폴란드 정부를 장악하여 종전과 이들의 무장 해제를 지시했고, 포니아토프스키는 수많은 부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분을 삭이며 받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그의 군은 해체되었고, 2차 폴란드 분할이 일어나 폴란드 연방은 반신불수의 괴뢰국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뒤, 러시아에 대항하는 코시치우슈코의 대반란이 터지자 이들은 마치 2차 라그나뢰크 작전 당시의 양 웬리 함대처럼 다시 군을 재결성하여 러시아에 대항하게 된다.
흔히들 두 주인공이 대등한 조건에서 벌인 전투라고 이야기되곤 하지만 실제론 라인하르트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전투였다. 왜냐하면 시간만 끌면 10만척에 달하는 지원군이 오기 때문. 실제로도 뮐러의 지원군이 아니었으면 라인하르트는 진작에 전사했다. 여기에 덤으로 제국 함선 성능이 좀 더 높고 병력 또한 조금이지만 많았다. 게다가 황제직속부대이니 병사들도 정예일 가능성이 높다. 그에 비해 양 웬리쪽은 양 웬리 함대+신병+패잔병+노후함 조합
안 그래도 안티팬 어그로를 끌어모으는데 일가견이 있는 욥 트뤼니히트는 저 정전명령을 내린 것 하나 때문에 팬덤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물론 전술적 행동을 놓고 보자면 두 주인공인 라인하르트와 양의 판단도 욕을 먹을만 하지만 주인공인데다 워낙 옹호하는 의견이 많다 보니 트뤼니히트에 비해서는 덜 까이는 편이며, 특히 양은 오히려 불쌍한 희생양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54] 더불어 양이 정부의 정전명령을 받아들이는 부분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IF 시나리오가 가장 많이 나오는 전투이기도 하다.
더불어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양 웬리가 프레데리카에게 청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율리안을 통해 그 소식을 들은 알렉스 카젤느는 칵테일을 꺼내 건배를 하며 "그 멍청이가 드디어 용기를 냈군!"이라 말했다. 다만 청혼할 때 대사가 '''이 전투가 끝나면'''으로 시작했다. 그렇다, 사망 플래그의 일종이다! 하지만 양 웬리는 주인공이었으니 플래그 따위 씹어먹은 모양. 일단 청혼 시 프리데리카 그린힐 양이 연금 운운한 것을 보면 이기건 지건 은퇴할 생각이었던 듯 하다. 실제로 종전 후 퇴역과 함께 결혼에 골인하고 꿈에도 바라던 연금생활과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냈…으면 좋았겠지만 동맹에 판무관으로 파견나온 헬무트 렌넨캄프가 폭주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전투의 후반 상황을 보면 4차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버밀리온 성역 회전의 모델인 걸로 보인다.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다케다가 9살 연상인데, 양과 라인하르트를 라이벌로 설정하면서 동년배로 설정하면 이상하니 다케다와 우에스기의 관계를 떠올리면서 양을 9살 연상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이 싸움에서의 참혹한 묘사는 OVA의 경우 더 처참하게 묘사된다. 완전 고어물.[55]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장병들의 모습과 불타는 욥 트뤼니히트의 사진 액자가 교차하면서 씁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가 뭘 했는지 생각해보면 버밀리온에서 전사한 동맹군 장병들이 안쓰러울 지경.
과거 아스타테 회전에서 전투가 끝나고 철수할 때 라인하르트가 양에게 "귀관의 용전에 경의를 표한다. 재전의 그날까지 건강하라."는 전문을 보냈는데, 양은 적장이 굳이 답신을 원하지는 않을 거라며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그걸 굳이 기억하고 있다 버밀리온 전투 후의 일대일 대담에서 그 이유를 캐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