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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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9년 10월 1일에 설립한 미국의 게임 제작사.
2. 역사
2.1. 설립
아타리 개발자들이었던 앨런 밀러와 데이비드 크레인, 로버트 화이트헤드, 래리 카플란이 워너 경영진들과 레이 카사르 아타리 사장의 푸대접 때문에 1979년 아타리를 나와서 차린 회사. 그 덕분에 초기 아타리 2600 게임 제작을 시작으로 상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동시에 세계 최초의 서드파티 게임사이기도 하다.
엘런 밀러와 데이비드 크레인, 로버트 화이트헤드, 래리 카플란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게임에 대한 성공 보수와 게임 크레딧에 자신들의 이름이 나오게 해 달라는 주장 때문에 워너 경영진과 레이몬드 카사르 사장에게 중국의 4인방에 빗대 Gang of four로 이미 낙인찍혀 있었으며, 특히 레이몬드 카사르 사장과 직접적으로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1] 결국 넷은 아타리를 떠나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 변호사이면서 벤처캐피탈을 운영하고 있었던 짐 레비는 이들의 계획에 관심을 가졌고 이들에게 투자금을 조달해 주었다. 결국 이 넷과 짐 레비 다섯 명이 1979년 10월 1일 액티비전을 설립하였다. 액티비전이라는 이름은 짐 레비의 아이디어로, 아타리보다 알파벳 순서로 앞서는 단어를 찾고 있던 와중에 액티브(Active)와 텔레비전(Television)을 합성한 말을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아타리는 액티비전이 아타리 2600 게임을 만들지 못하도록 온갖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변호사였던 짐 레비의 도움으로 소송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결국 아타리는 액티비전이 아타리 2600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액티비전은 아타리에게 아타리 2600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였다. 이로써 서드파티 개념이 탄생했으며 액티비전은 최초의 서드파티 회사가 되었다.
2.2. 초창기 성장과 아타리 쇼크
1982년 고전 플랫폼 액션 게임이었던 피트폴을 내놓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게임은 아타리 2600 역사상 2위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그외에도 100만장 이상 판매된 액티비전 게임은 6개나 되었고, 그 덕에 1983년 종업원은 60명뿐이었지만 단숨에 6천만 달러 규모의 매출액을 기록한 중견 기업이 되었으며 그해에 나스닥에도 성공적으로 기업 공개를 할 수 있었다. 게임 제작에 대한 노하우와 급속한 성장 덕에 그들은 다른 게임회사들과 다르게 아타리 2600 외에도 인텔리비전과 콜레코비전에도 게임을 내기도 했다. 또 상하이 시리즈로 '마작 솔리테어' 장르를 만들기도 했다. 1986년부터 1999년까지 마작을 유행시킨 주범이다.
그러나 1982년 말부터 아타리 쇼크를 맞이하면서 액티비전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로 인해 1983년 래리 카플란은 아타리로 다시 돌아갔고, 1984년에는 로버트 화이트헤드와 앨런 밀러가 액티비전을 떠나 애콜레이드를 설립하였다.
짐 레비는 경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정용 컴퓨터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1986년 6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던 인포컴을 인수했다. 이는 그가 이사회와 갈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사회는 1987년 CEO였던 짐 레비를 브루스 데이비스로 교체했다. 데이비드 크레인은 브루스 데이비스가 이매직의 마지막 CEO로서 파산 회사 관리를 하던 모습을 알고 있었고, 그를 게임회사 CEO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역시 브루스 데이비스와 갈등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이듬해인 1988년 데이비드 크레인마저 액티비전을 떠났다. 이로써 설립자 5명 모두 아타리 쇼크로 인해 액티비전을 떠나게 되었다.
1988년 액티비전은 미디어제닉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액티비전을 비롯해 산하 여러 회사를 자회사로 만드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미디어제닉은 텐 포인트 오라는 산하 회사를 만들어 컴퓨터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나려는 것이 목표였고, 그 전까지 액티비전과 인포컴은 각각 게임기 게임과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는데, 1988년 필립스와의 퐁 특허 분쟁에서 패소하여 660만 달러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인 1989년 인포컴은 결국 문을 닫았다.
2.3. 로버트 코틱과 새로운 액티비전 탄생
액티비전에 대한 얘기 이전에 로버트 코틱에 대한 얘기가 조금 필요하다. 1963년 뉴욕의 부동산 변호사 아버지와 예술 수집가 어머니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로버트 코틱은 어려서부터 사업에 대해 자질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친구들에게 3달러에 재떨이를 팔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명함을 가지고 다니면서 샌드위치 배달 사업을 하거나, 테니스 라켓 줄을 파는 사업, 지갑을 파는 사업들을 했다고 한다. 또한 맨하탄에 미성년자들을 위한 클럽을 임대하는 사업도 했다고 한다.
1982년 미시간 주립대학교 미술사학과에 입학한 그는 기숙사의 같은 방 친구, 하워드 마크스의 컴퓨터에 대한 관심 덕에 IT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애플 리사에 있는 소프트웨어들과 유사한 기능이 애플 II나 코모도어 64에 돌아갈 수 있게 만든 통합 소프트웨어 패키지, Jane을 만들었다.[2] 그 후 호텔 카지노 그룹을 보유하고 있었던 스티브 윈에게 30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아 Arktronics라는 벤처 기업을 설립했다.
Arktronics의 소프트웨어, Jane으로 인해 로버트 코틱은 스티브 잡스의 눈에 띄게 되었고, 스티브 잡스는 그들을 만났다. 로버트 코틱의 뛰어난 사업 자질을 본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자퇴할 것을 권했다. 그의 조언을 들은 로버트 코틱은 1983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참고로 로버트 코틱이 학교를 그만두려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크게 반대했는데, 쓰레기 같은 것들 다 치워 버리고 학교에서 공부나 하라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는 윌리엄스 일렉트로닉스[3] 의 아케이드 게임 '디펜더'와 윌리엄스 부부(시에라 온라인의 전신)가 만든 어드벤처 게임 '미스테리 하우스'를 통해 비디오 게임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87년 코모도어 아미가 500을 보며 이것을 게임기로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 보았던 그는 창업자 어빙 굴드를 설득해 그의 투자자 파트너들, 스티브 윈, 하워드 마크스와 함께 코모도어 인터내셔널을 인수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로버트 코틱은 북미 지역 닌텐도 캐릭터 라이선스 기업이었던 Leisure Concepts[4] 를 인수하였으나 그는 비디오 게임을 만드는 회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식을 처분하였다. 이렇게 로버트 코틱이 비디오 게임 산업 주위를 기웃거리는 도중, 1990년 12월 그는 그의 투자자 파트너와 브라이언 켈리, 넷과 필립스까지 끌어들여 44만 달러에 미디어제닉 지분의 25%를 인수하였다. 그 당시 미디어제닉의 재무 상태는 2백만 달러의 자산에 부채가 무려 3천만 달러로 자본 잠식 상태였다. 로버트 코틱은 채권자들을 만나 채권 회수나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하는 대신 출자전환할 것을 설득하였고, 8명의 종업원을 제외한 모두를 해고한 다음 구조조정 작업을 실시했다.
로버트 코틱은 미디어제닉의 모든 자산을 평가해 게임 제작과 유통과 관련된 가치 있는 자산 외에는 모두 매각하였다. 그리고 조크 시리즈의 가치를 인정해 후속작인 리턴 투 조크를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미디어제닉이라는 이름을 다시 액티비전으로 바꿨다. 리턴 투 조크의 상업적인 성공과 이전의 1989년 멕워리어의 퍼블리싱 성공, 그리고 로버트 코틱의 투자자 그룹의 추가 투자로 빚을 변제하면서, 회사는 1993년 10월 나스닥에 액티비전 이름으로 재상장해 4천만 달러의 투자금을 받는데 성공했다. FASA와 액티비전의 멕워리어 2 개발에 대한 분쟁으로 FASA 대신 액티비전이 1995년 멕워리어 2 시리즈 여러 게임을 개발했고 총 7천만 달러의 실적으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큰 성공을 기반으로 로버트 코틱은 여러 게임 회사를 인수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1997년 레이븐 소프트웨어를 시작으로, 네버소프트, 인피니티 워드, 트레이아크, 그레이 매터 인터랙티브 등을 사들였다. 그들의 간판 게임 프랜차이즈인 콜 오브 듀티 시리즈도 인피니티 워드를 후원하고 인수한 200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2.4. 비방디 게임즈와 합병
이렇게 성공가도를 가던 액티비전에게도 걱정이 있었다. 그 당시 게임 업종의 신사업 장르였던 MMO 게임의 부재였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로버트 코틱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성공을 지켜 보았고, 그것에 바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이미 비방디 그룹의 계열사였고, 결국 비방디 그룹의 CEO였던 장 버나드 레비와 블리자드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로버트 코틱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인수를 원했지만, 비방디는 매각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마이크 모하임을 만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중국 시장에 진출했음을 알게 됐고, 결국 로버트 코틱은 비방디 게임즈와 합병해 비방디 그룹 산하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래서 2008년 7월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탄생했다. 비방디가 액티비전 블리자드 지분의 52%를 보유하는 대신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CEO는 로버트 코틱이 맡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후 자사주를 매입함으로서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분리하게 되었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사실상 액티비전이 소유한 회사가 되었다.
2.5. 이후
현재는 각종 콘솔 게임 및 PC 게임에 이르기까지 기종을 안 가리고 손을 뻗고 있다. 멕워리어 시리즈나 퀘이크 시리즈, DOOM 시리즈 등 id 소프트웨어의 게임들의 퍼블리싱을 담당하기도 했다.[5] 주요 게임으로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나 기타 히어로 등 폭넓은 범위를 커버한다. 007 영화 관련 게임의 라이센스도 가지고 있어 블러드 스톤이나 골든 아이 등의 타이틀을 발매했다. 토탈 워 시리즈의 영원한 명작인 로마: 토탈 워를 퍼블리싱하기도 했다.
비방디 게임즈와 합병하여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되면서 점점 예전 EA의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6] 이 부분에 대해서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 항목 참조. 현재 <기타 히어로>, <트루 크라임>, <토니 호크> 시리즈의 추가 개발을 취소했다고 한다. 무슨 생각인건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를 기점으로 더 이상 공식 한글화된 게임이 나오지 않다가,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에서 '''8년 만에''' 한글화가 이루어졌다. 심지어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4를 기점으로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최초로 더빙까지 확정되었다.[7] 하지만 블랙 옵스 4의 한글화는 욕을 잔뜩 먹었다.
그런데 2012년 7월 2일 블룸버그 통신을 통해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지분 52.8%를 비방디가 매각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자세한 것은 액티비전 블리자드 항목 참고.
그동안 콜옵을 제외하면 평가가 바닥을 치는 게임들을 계속 내면서 사실상 콜 오브 듀티 시리즈로만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게임사이다.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아닌 액티비전만 단독으로 본다면, 사실상 리니지로만 먹고사는 엔씨소프트랑 비슷한 케이스. 그나마 최근에는 헤일로 시리즈 개발사였던 번지의 새로운 IP 데스티니 시리즈의 흥행과 자사 게임들의 배틀넷 출시를 통한 PC 유저층 확보, 그리고 프롬 소프트웨어의 신작 게임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를 배급, 스파이로 시리즈와 크래시 밴디쿳의 리메이크작을 제작하고 호평받으면서 점점 콜 오브 듀티 위주의 경영에서 벗어는 것으로 보였으나, 번지가 이탈하고 그나마 있던 콜 오브 듀티와 별 연관이 없이 독자적으로 게임을 만들던 하이문 스튜디오마저 콜 오브 듀티 제작에 편입되면서[8] 산하 스튜디오들의 콜 오브 듀티 편중화는 더 심해졌다. 그래도 크래쉬 밴디쿳 시리즈나 스파이로 시리즈 같은 구 인기작들을 내놓기는 한다.
3. 산하 스튜디오
3.1. 폐쇄/매각된 스튜디오
- 그레이 매터 - 콜 오브 듀티: 유나이티드 오펜시브 발매 이후 2005년에 트레이아크에 흡수
- 네버소프트 - 스파이더맨, 토니 호크 및 기타 히어로 개발. 콜 오브 듀티: 고스트 발매 이후 2014년에 인피니티 워드에 흡수
- 래디컬 엔터테인먼트 - 프로토타입 시리즈 개발을 전담하고 있다. 프로토타입 2의 실패 이후 액티비전이 스튜디오 규모를 대폭 줄여 버렸고, 현재는 보조 업무에만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 비자르 크리에이션즈 - 엑스박스 게임 스튜디오가 유통한 프로젝트 고담 레이싱 시리즈로 유명해져 2007년 액티비전이 인수했다. 이후 Geometry Wars 시리즈, 블러(게임), 제임스 본드 007: 블러드 스톤 등을 개발. 제임스 본드 007: 블러드 스톤을 마지막으로 2010년 11월 매각을 추진했으나 인수 희망자가 없어 이듬해인 2011년 2월 해체.
- [image] - 주로 스카이랜더스 시리즈나 기타 히어로 시리즈 등 여러 게임들의 다른 플랫폼 포팅이나 닌텐도 DS, Wii 게임을 제작했으나, 2017년 크래시 밴디쿳 트릴로지의 리마스터 작업을 주도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2020년에는 토니 호크의 프로 스케이터 1, 2편 리마스터 또한 맡았으나, 이 게임을 마지막으로 2021년 1월에 액티비전에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산하로 옮겨 갔다.# 아직 합병 단계는 아니지만, 이 스튜디오의 직원들은 향후 블리자드 소속으로 바뀔 예정이다.
4. 액티비전이 제작/배급한 게임
액티비전 산하 프랜차이즈는 ☆
4.1. 제작한 게임
- 007 게임 시리즈
- 기타 히어로 시리즈[9] ☆
- 리틀 컴퓨터 피플
- 마블 원작의 히어로 게임
- 데드풀
- 마블 얼티밋 얼라이언스
- 마블 얼티밋 얼라이언스 2
- 스파이더맨 게임 시리즈 - (2000~2014)
- 멕워리어 2
- 배틀존
- 블러 ☆
- 상하이 시리즈
- 솔저 오브 포춘 시리즈
- 스카이랜더스 ☆
- 스타워즈: 다크 포스 사가
- 싱귤래리티
- 울펜슈타인 시리즈
- 인터스테이트 '76 / 인터스테이트 '82
- 콜 오브 듀티 시리즈 ☆
- 크래쉬 밴디쿳 시리즈[10] ☆
- 토니 호크의 프로 스케이터[11] ☆
- 트랜스포머 게임 시리즈
- 프로토타입 시리즈 ☆
- 피트폴
- 헤비기어 1 / 2
- DJ Hero
- Zork 시리즈[12] ☆
4.2. 배급한 게임
- 007 게임 시리즈
- 다크레인 / 다크레인 2
- 데스티니 시리즈[13]
- 데이 오브 디피트
- 둠 3 / 둠 3: 악마의 부활
- 로마: 토탈 워
- 멕워리어
- 문명 콜 투 파워 / 콜 투 파워 2
-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
- 스파이로 시리즈 ☆
- 신
-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snes)
- 엠파이어즈 근대사회의 여명
- 워킹 데드: 서바이벌 인스팅트
- 울펜슈타인 시리즈
- 코라의 전설/게임
- 퀘이크 시리즈
- 트랜스포머 게임 시리즈
[1] 항간에는 카사르가 게임 개발자들을 수건 디자이너에 비유하면서 게임 같은 건 아무나 만들 수 있다는 악담을 했다는 설이 퍼지기도 했는데, 카사르 자신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였다. 다만 그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로 '신경질쟁이 프리마돈나'라 불렀고 이것이 언론 보도로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다.[2] 애플 리사의 LisaWrite와 LisaCalc, LisaList를 오마쥬해 JaneWrite와 JaneCalc, JaneList라는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었다.[3] 핀볼 머신이나 주크박스, 슬롯 머신을 만들던 회사. 퐁의 성공 이후 비디오 게임 산업에 진출했고, 게이머들에게는 아케이드 게임 회사 미드웨이를 인수한 회사로 유명하다.[4] 1995년 4Kids Entertainment가 되는 회사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5] 둠 2부터 퀘이크까지만 해도 GT 인터랙티브가 이드 소프트웨어의 게임을 퍼블리싱했으나, 퀘이크 2부터 이드 소프트웨어가 제니맥스 미디어의 자회사로 들어갈 때까지 액티비전에서 담당했다.[6] 아이러니하게도 액티비전의 시작은 상술했다시피 아타리의 푸대접과 아타리를 먹은 워너의 상업정책에 반발해서 나온 것이었다. 원래부터 좋은 소리는 절대 들을 수준이 아니었지만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7] 사실 엄밀히 말하면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NDS에서 엉망이긴 해도 더빙이 되긴 했지만...[8] 사실 이전에 콜 오브 듀티 AW를 전세대 콘솔로 포팅하는 작업을 맡긴 했다. 하지만, 모던 워페어 리부트에서 레이븐 소프트웨어처럼 제작에까지 참여하게 되었다.[9] 기타 히어로 초대작과 2를 제외한 전 작품을 제작[10] 리메이크작 이후의 시리즈를 제작[11] 2007년 게임까지 제작[12] Return to Zork를 제작[13] 2까지만 배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