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선수 경력

 


1. 아마추어 시절
2. 프로 시절
3.1. 데뷔 후 2009년 시즌까지
3.2. 2010년 시즌
3.2.1. 포스트 시즌
3.3. 2011년 시즌
3.6. 2014년 시즌
4.2.1. 15-16시즌 김성근에 의한 혹사
4.3. 2017 시즌
4.4. 2018 시즌
5.1. 2019 시즌
5.2. 2020 시즌
6. 국가대표 경력


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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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철공고 시절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상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1]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30cm 이상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철공고 야구부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포철공고로 전학을 간 뒤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남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
그러나 그만큼 큰 키에 빠른 구속, 힘이 좋고 투구 동작도 내리찍는 파워풀한 스타일이라 포텐셜을 뒤늦게 폭발시키고, 2002년에 누구나 1차 지명을 할 것으로 생각했던 대구고등학교의 윤길현[2]을 제치고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3]

2. 프로 시절


포철공고 출신이며 2002년에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삼성의 쌍권총, 그리고 2015 시즌 한화의 불꽃남자. 몇 년간 삼성의 철벽 불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부상 등으로 실력이 하락해 이제 잊혀가는 선수가 되는 듯 했으나, 한화로의 이적 후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주목받던 시절은 있었지만, 한 번도 주인공이 되어 보지 못 했던 선수에서 2015 시즌의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주인공이 된 선수.
불펜 투수가 이렇게 화제성이 높은 경우는 최근 한국야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성근 감독의 엄청난 혹사를 꿋꿋히 버텨내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내는 모습이, 꼴지를 전전하던 한화가 2015시즌 가을야구 싸움을 하면서 얻은 투혼의 팀컬러와 잘 맞았기에 가장 언급이 많은 선수중 한 명이 되었다. 기존의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과 더불어 2015년 한화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
한화에서 김성근의 혹사가 논란이 되었을 때, 혹사를 우려하는 팬들의 걱정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권혁은 FA로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의 입장상 대놓고 감독에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항명을 할 수 없었고 본인 스스로도 워낙 투지가 강한탓에 오히려 '공을 마음껏 던질 수 있어서 좋다. 과도한 걱정이다'라고 발언했었다. 문제는 노리타들이 권혁의 투혼을 악용하여 김성근의 혹사를 정당화하는 프로파간다의 상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3.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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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데뷔 후 2009년 시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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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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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존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2007년
2002년 연고 팀 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1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4], 상대 선발 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5]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최전성기는 2007년으로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 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08년까지 보통 삼성의 승리의 공식은, 어떻게든 선발 투수로 5회까지 리드를 잡는다 → 권혁 1이닝 → 정현욱 2이닝 → 오승환 세이브.[6]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전에 등판해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하여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2009년에는 오승환이 어깨 부상으로 뻗자[7] 정현욱과 번갈아가면서 마무리로 올라오게 되었으며,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인지 갈수록 성적이 처참해져서 시즌 후반에는 심심하면 털리는 야라레 투수가 되어 버렸다. 지못미. 그래도 어찌어찌 21홀드를 기록함으로서 홀드왕 타이틀은 차지하였다.

3.2. 2010년 시즌


2009년의 심각한 혹사의 여파로 2010 시즌에는 속구 구속이 140km/h대를 못 찍을때가 많아졌다. 반면 구속이 줄면서 2009년까지 약간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컨트롤이 상당히 개선되어, 예전만큼 끔찍한 강속구를 뿌려대지는 않지만 정교한 제구를 통한 코너웍을 이용해 타자를 처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주게 되었다. 오히려 안정감만큼은 지난 시즌 이상이라는 평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결국 ERA 2.09에 7승 1패 4세이브 10홀드를 기록하며[8] 파이어볼러에서 완성형 투수로 변신. 안지만, 정현욱과 함께 삼성의 무적 불펜의 한 축을 이끌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삼성의 필승 불펜조를 선수들의 앞글자만 따서 '안정권'이라고 불렀을 정도다.[9] 문자 그대로 그들이 올라서면 안정권에 접어들 수 있게 된다는 것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덕분에 실제로도 선동열 감독도 2010 포스트시즌에 그런 그의 활약을 기대했으나...

3.2.1. 포스트 시즌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10]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플레이오프 2차전 : 4타자 상대하여 0.1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2볼넷 1희비 1실점(1자책) '''ERA 27.00'''.
플레이오프 3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 볼넷 1실점(1자책) '''ERA 99.99'''.
플레이오프 4, 5차전 : 등판 못함.[11]
권혁은 2010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⅔이닝 1홀드 2피안타 4볼넷 2실점(2자책) '''ERA 27.0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99.99, 패전'''[12].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 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을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상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결국 권혁은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박정권을 상대로 내리 3볼을 던지고 투구폼이 평소보다 매우 불안하다는 평을 받으며 1타자밖에 상대하지 못했다. 권혁은 이날 ⅓이닝 5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2010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0.2이닝 1패 1피안타(1피홈런) 2볼넷 1K 2실점(2자책) '''ERA 27.0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종합''', 2010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1.1이닝 1홀드 1패 3피안타 (1피홈런) 6볼넷 1K 4실점 4자책점 '''ERA 27.00''',[13] 1패를 기록했다.
스포츠 기사나 선동렬 감독등의 인터뷰를 볼 때 '권혁을 비롯한 불펜의 부진'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좋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이 높게 평가받고 있었고 나쁘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은 이번 포스트시즌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한 마디로 한 것도 없이 망쳐만 놓고 아무것도 못했다. 기록상의 평가로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지경.

3.3. 2011년 시즌


그 이후로 자신감을 급격히 상실, 2011년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아무래도 2010년 포스트시즌의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떨쳐버리려면 시간이 좀 걸릴 듯했다. 오죽했으면 충격으로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체중이 6kg나 빠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4월 16일 1군으로 돌아오면서 JOKKA 라인이 완성되었다.
8월 2일 넥센전까지 38경기 11홀드 1블론 ERA 2.70 WHIP 1.33 30이닝 23피안타(1피홈런) 18사사구 15K를 기록 중이다. 뭐 충분히 뛰어난 성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름값과 1억 9천만 원이라는 연봉을 생각하면 기대에 많이 못미친다. 보면 알겠지만, 경기당 1이닝이 안되는 수치로서 이는 당초 기대되던 강력한 셋업맨이 아니라 LOOGY, 즉 원 포인트 릴리프다.[14] 그런데 LOOGY들에게 가장 금물이라 할 수 있는 '''볼질'''이 심해졌다. 작년만 해도 73K/19BB였고 통산 K/BB도 2를 넘는데 올해는 어째... 물론 삼성 라이온즈나 국내 야구판에 권혁만한 레프티 릴리버가 있어도 얼마나 더 있겠냐마는, 이전에 비해 좀 안습인건 사실이다.
특이한 건, 좌우 상대 전적이 괴랄하게 밸런스가 안 맞았다. 좌타자 상대 14피안타(2루타 1개. BAA .241) 5K/11BB, 우타자 상대 9피안타(2루타 3개, 홈런 1개. BAA .191) 10K/6BB 1HBP(…). 이건 '''LOOGY가 LOOGY가 아니다.''' 아무래도 좌타 상대로는 그라운드 볼을 유도하여 맞춰잡는 전략인 듯한데, 그게 잘 안 되는 듯했다.
결국 2011년에는 평균자책점 1~2점대를 유지하는 좌완 릴리버라는 점만으로도 이래저래 팀에 유용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유일무이한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평균자책점과 WHIP을 보면 알지만, 본인이 볼질하고 내려갔다가 안지만, 정현욱 같은 흠좀무한 불펜이 전부 막아준 경우가 꽤 많았다. 그렇지만 삼성이 권혁 없던 시즌 초중반에 심하게 헤매던 것을 생각하면 어쨌든 삼성에서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릴리버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8월 6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로나쌩이던 정인욱이 초반 제구 실패로 무너진 후 팀이 스코어 1:6로 뒤진 상황에 패전처리로 등판하였으나, 실책과 본인의 여전한 제구난으로 인해 오히려 5실점하여 팀이 4:11로 대패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이 경기를 보면서, 많은 삼성팬들은 '삼성 핵심 불펜 중의 핵심이었던 권혁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는지, 그것도 '''패전처리에서도'''…'라는 반응을 보이며 많이 씁쓸해했다. 분명 삼성의 특급좌완계투였던 그의 위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 않을 상황이 아닐 수 없으며, 그야말로 처절하게 몰락한 거와 다름이 없었다. 당시 삼성의 쓸만한 좌완계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2011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부활이 정말로 절실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페이스를 좀 되찾은 모양인지 호투하면서 살아나는가 했더니, 8월 24일 청주 한화전에서 8회 3:2로 앞선 상황에서 나와 미친듯이 처맞고 1사 만루에서 강판, 바로 교체한 안지만이 그의 뒷처리를 하려다 오히려 역전을 허용하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가뜩이나 타선 침체로 인해 3연패에 빠져 있었던 팀을 오히려 4연패로 몰아넣고... 결국 이날 안일하게 경기 운영하다 경기를 내준 류중일, 9회말 흔들리던 바티스타를 상대로 영웅스윙을 시전하다 폭풍삼진당한 채태인과 함께 삼성 팬들에게 개같이 까였다.[15] 역시 이놈은 답이 없다...라고 생각하던 차 8월 26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8회에 등판하여 또 호투하면서 2연승의 밑거름을 다져놓았다. 좀 들쑥날쑥해도 두산에게만큼은 강한 점도 있었는데다가 무엇보다 이날은 구속이 어느정도 돌아와서 고무적이었다. 올시즌 내내 원래 부족한 제구에 구속까지 안나와서 고전하던 차에 나온 이날 호투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나와 ⅓이닝 2피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실점은 0'''이다. 사실 권혁 다음 투수가 1차전에서는 오승환, 4차전에서는 안지만인지라 분식회계를 안 당해서 실점이 없는 것뿐이었다.[16]
권혁이 이렇게 부진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했다.

3.4. 2012년 시즌


해당 항목으로.

3.5. 2013년 시즌


해당 항목으로.

3.6. 2014년 시즌


2013년 말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재활 차원으로 2군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시범경기에도 출장했고 개막전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경기에는 나오지 못했고, 결국 3월 31일 2군으로 내려갔다. 4월 25일 1군에 복귀했다.
복귀 후 모습은 비교적 성공적.
4월 25일 넥센전에는 점수차가 큰 상황이긴 했으나 2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5월 4일 NC전에는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내려갔으나, 5월 7일 SK전에는 4: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하여 제구는 불안했으나 1이닝을 막았다. 그리고 9회에 팀이 SK의 필승조를 탈탈 털며 뜬금없이 승리 투수가 되었다. 시즌 첫 승리이자 2012년 7월 12일 이후 664일만의 승.
6월 4일 허리 통증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갔는데, 권혁은 5월 20일 이후로는 등판하지를 않았다(...). 대신 백정현이 올라왔다.
6월 27일 김현우와 1군에 복귀했다. 이후 7월 5일 두산전에 등판하여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여줬다.
7월 24일 경기에서도 등판하였는데, 2이닝동안 전성기 수준의 피칭을 보여 삼팬들을 설레게 하였다. 유일하게 맞은 안타 하나가 전준우의 홈런인 것도 고무적, 그리고 7회초, 메가라이온즈포가 터지며 시즌 2승째를 챙겼다. 팬들은 이러한 활약에 후반기 삼성 불펜의 핵으로 재강림하기를 기대하는 중.
7월 25일 대구 NC전에서 10:6으로 앞선 9회초에 등판해 삼진 1개 포함 삼자범퇴를 기록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날 속구 최고구속은 149km/h.
7월 27일에는 1:1 동점 상황에서 등판해 1안타와 1볼넷을 기록했으나 삼진만 2개를 잡았다. 삼진/볼넷 비율이 4를 왔다갔다 할 정도로 안정적인 모습. 차우찬의 페이스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왼손 투수로 필승조에 포함될 듯 하다.
8월 6일 한화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고, 8월 8일 롯데전에선 한 타자도 못잡고 1자책을 허용했으나, 끝내기 홈런은 임창용의 블론 이후 나온 것이라 삼성팬들은 임창용을 까기 바빴고, 롯데전에선 좌우놀이에 휘말려 1타자를 출루시킨 뒤 심창민의 깔끔한 분식으로 실점한 것이라 권혁에겐 비판의 화살이 거의 없었다.
8월 11일 넥센전에선 이택근에게 2루타를 맞았으나 두 타자를 무사히 잡아내고 팀의 역전승을 견인했다.
이후로 잠시 부진하는 듯했으나, 8월 27일에 열린 롯데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6:4로 뒤진 5회초 2사부터 등판하여 타자 넷을 4타수 3K로 잡아내며, 초전부터 장작 포텐을 터뜨린 어느 용병과 이후 등판하여 장렬한 퐈이아를 시전한 수건이 부진한 가운데 제 역할을 했다. 다만 팀이 스코어 11:4로 탈탈 털린 것은 흠.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하여 서건창을 초구 외야 플라이로 잡아내고 배영수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그리고 이 등판이 유일한 한국시리즈 등판이 되면서 공 1개만 던지고 우승반지를 획득했다(…).
2014년 11월 26일, 삼성과의 FA 우선협상이 결렬되었다. 자신과 구단이 제시한 금액의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본인이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싶어서 나섰다고 밝혔다. 보통 FA선수가 기회 운운하며 협상이 결렬되면 대부분의 경우 '''기회=돈'''으로 인식되는게 일반적인데, 권혁의 경우 좋은 공을 던짐에도 불구하고 '''정말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삼성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권혁과의 협상 결렬에 매우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더군다나 2015년 삼성의 계투진에서 임창용, 안지만, 심창민을 빼면 제대로 된 투수가 없었기에 아쉬울 따름이다.[17]

4. 한화 이글스 시절


'''한화 이글스 시절'''
2014년 11월 28일, 한화 이글스와 FA 계약을 체결했다. 4년 총액 32억 원(계약금 10억 원, 연봉 4억 5,000만 원, 옵션 4억 원)으로, 거품이 가득 낀 FA 시장 상황에서 세간의 예상보단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맺었다. 정말 돈보다는 필승조나 마무리를 보장받길 원한 듯하였다.
이로써 한화는 20인 명단에서 빠져 kt wiz로 이적한 윤근영이라는 좌완 불펜의 누수를 그 이상의 커리어를 자랑하는 선수로 대체하였다.[18] 좌완 불펜이 부족한 한화에서 매우 긴요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이며, 출장 기회를 원했던 그의 바람은 충분히 충족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좌완 투수 조련에 매우 능하며 권혁과 같은 와일드 씽 유형의 불펜자원을 정말 잘 활용하는 김성근 감독과의 만남이어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때는 훗날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몰랐다.....[19] 오랜 감독 생활 중 처음으로 외부 FA 선수를 선물받은[20] 김성근 감독의 기쁨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한편 권혁의 FA 보상선수로는 상무 입대를 앞두고 있는 포수 김민수가 지명되어, 김민수는 상무 제대 후 고향 팀에서 뛰게 됐다.

4.1. 2015년 시즌


'''누군가 날 믿어준다는 건 굉장히 기쁜 일이다.'''

ㅡ 인터뷰 中

권혁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많은 열광을 받았던 시기이자 커리어하이 시점이었지만, 막판에는 결국 누적된 피로로 후반기를 씁쓸하게 마친 시즌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으로.

4.2. 2016년 시즌


결국 8월 24일, 팔꿈치 통증으로 서산 재활군으로 내려갔다.
해당 항목으로.
결국 10월 15일, 팔꿈치 수술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3번째 팔꿈치 수술이며, 뼛조각 제거 수술로는 두 번째.

4.2.1. 15-16시즌 김성근에 의한 혹사


2016년 8월 24일, 권혁은 팔꿈치 통증으로 인하여 1군에서 말소되었다. 2016년 8월 25일 기준으로 권혁은 66경기 95.1이닝을 기록 중인데, 비록 리그는 다르지만 메이저 리그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등판하고 있는 오승환이 61경기동안 64.1이닝을 던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21][22]
올 시즌 뿐만 아니라 권혁은 최근 '''2년 동안 144경기에 나서 207.1이닝을 던졌다.''' 2015년 10구단 체제 확립 후 KBO의 1시즌 팀당 경기수가 144경기인데, 2015년부터 2년 동안 권혁이 144경기를 등판했으니 '''2년 간 거의 하루 걸러 등판한 꼴'''. 또한 2년 동안 권혁이 던진 공은 '''3,752개'''로 경기당 평균 26개를 던졌으며. 특히 최근 2년간 한 경기에서 40개 이상의 투구수를 기록한 날은 모두 26차례나 됐고, 이중 50개 이상의 투구수를 기록한 날도 6차례에 달한다. 기사, 박동희 칼럼 또한 연투 횟수는 총 34회로 지난해 2연투가 12회, 3연투가 8회로 20번을 던졌고, 올해 2연투 10회, 3연투 4회로 14번을 던졌다. 같은 기간동안 박정진은 총 41회로 권혁보다 많이 연투를 했지만 투구 이닝수는 권혁이 훨씬 많다. 지난해 2이닝 이상 투구한 경기가 총 27회이고 이 중 3경기가 3이닝 이상 던진 경기였다. 올해는 2이닝 경기가 19회 그 중 3이닝 경기가 4회있었다. 즉, '''2년 동안 2이닝 이상 경기가 46회, 3이닝 경기가 7회에 달했다.'''
그리고 셋업 상황이라고 볼 수 없는 5점 차 이상의 경기에서 2년간 17경기 22이닝 355구를 던졌는데, 이 중에서 10점 차 이상 경기도 2경기가 있었다. 큰 점수 차에서 권혁의 경기감각을 조율하기 위해 등판한 경기도 있었지만 김성근 감독의 조바심으로 인해 등판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타고투저 시대라서 5점 차 리드가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최근 2년간 5점 차 리드가 뒤집힌 것은 1,282경기 중 30경기로 2.3%에 불과했다(2016년 8월 26일 기준).기사
최근 2년의 기록이 잘 실감이 안 나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국민노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정현욱의 시즌 최다 이닝 기록은 2008년 53경기 7선발 127이닝이며 등판 간격은 불규칙했으나 연투는 2연투만 5번 정도로 나름 등판 간격을 조절했었다. 다음 시즌 2009년엔 62경기 79이닝으로 2년간 115경기 206이닝을 던졌다. 게다가 정현욱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정현욱은 연투 시 오히려 컨디션이 살아나는 유형이었다. 일반 투수들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는 유형인 셈. 내성이 잔뜩쌓여있었다는 것이다. 즉, 권혁은 선발없이 국민노예를 뛰어넘는 등판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 혹사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이유 중 하나는 현 KBO 리그의 투수 혹사 기준이 김성근 감독의 투수기용 방식으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즉 '''김성근처럼 하지 않으면 투수 혹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예를 단번에 보여주고 있는것이 15~17 김진성인데, 김진성은 권혁보다도 더 많은 이닝[23]을 소화 했음에도 혹사로 감독이 많이 주목받지는 않는다.
최근 몇 년간 NCKT의 리그참가로 인한 경기수 확대, 극단적인 타고투저가 벌어지면서 투수들이 받는 피로감이 높아지고 있다.아무리 점수차를 많이 벌려도 금방 따라잡히거나 바로 역전당하는 경우가 많아지다보니 그나마 믿을 만한 선수라도 자주 나올수밖에 없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굴려지게 되며 결국에는 그 믿을만한 선수도 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매년마다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치열한 5강싸움으로 인한 심리 요소 때문에 투수들이 느끼는 피로도는 극심할 수 밖에 없다. 투수들이 이런 피로도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5강 싸움을 한다는 이유로 각 팀마다 3연투는 기본이고 4연투, 5연투까지 나오고 있다.[24] 그러나 한화의 혹사로 인해서 권혁 정도의 혹사가 아닌 이러한 혹사는 대수롭지 않게 취급되고 있다.
비록 김성근 감독의 투수기용 방식처럼 투수들을 노예 수준으로 혹사시키는 것보다 덜하지만 지난 해 본인이 개처럼 굴렸던 투수들이 후반기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도하고서도 전혀 배운 게 없이 또 굴리는 감독도 있다. 한화 팬들이 김성근에게 바랬던 모습은 그의 이미지로 여겨졌던 쌍방울 레이더스[25] 로 대표되는 "약체 팀을 강하게 만드는 감독"이었는데, 정작 김성근은 그 이미지에 집착한 탓인지 성적 조급증에 미쳐서 베테랑 선수 팔을 갈아넣는 감독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10월 30일 엠스플뉴스의 보도에서, 김성근 감독이 권혁에게 무통주사를 맞으며 1군에서 던질 것을 요구했다는 충격적인 기사가 보도되었다. 권혁이 난색을 표시하자 김성근은 서산에 머물던 권혁에게 감독의 권한을 이용해 '외박 금지' 등의 규정을 만들어 권혁을 단속했다는 것이다. 감독의 권한을 이용해 권혁을 가족과도 지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추가 보도로, 자비로 수술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수술 땐 구단 지원이 당연한 것이고, 계약서에도 나와있는 상황이다, 그걸 선수 자비로 하라고 한 것이 보복 아니면 무엇인가?'''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김성근 감독의 지시대로 2년간 그 누구보다 팀을 위해 열심히 뛴 권혁이 혹사로 인해 2군행을 택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얻었고, 이로 인해 수술을 결심했지만, 김성근 감독은 무통주사를 맞으며 던지길 원했고, 권혁은 "주사까지 맞으면서 던질 몸이 아니다"라고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이미 이 때는 권혁의 팔꿈치가 본인이 스스로 수술을 결심한 만큼 선수생명이 위험한 상태였었다.
그리고 권혁이 국내에서 치료를 하길 원하자 한화 선수들이 갔던 일본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을 원했던 김성근 감독은, 이에 발끈해 권혁에게 자비로 수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구단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고 하고, "말이 되느냐"며 분개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자비 수술을 지시한 것에 대해서 구단은 잠시 망설였지만 사실상 김성근 감독이 전권을 쥐고 있기에 이에 대해 반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권혁은 앞으로 선수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도 염려되었다. 기회를 더 얻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적한 팀에서 제정신인지 의심이 드는 작자를 감독으로 두게 되었던 탓에 이런 처지에 처하게 됐었다니... 본인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4.3. 2017 시즌


놀랍게도 19일 kt와의 시범경기에서 9대 1로 크게 뒤지던 9회초에 등판했다. 직구 구위의 점검을 위해 직구 9개로 3타자를 상대해 뜬공 2개, 땅볼 1개로 처리하고 내려갔다. 다행히도 통증은 없다고 밝혔다.
22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9회 말에 등판하여 2구만에 첫 타자를 중견수 뜬공으로 잡고 이동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이렇게 복귀가 순조롭게 진행되겠다 싶을 찰나...허리 통증으로 개막전 및 4월 복귀가 불투명하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한화 팬들의 우려를 낳고 말았다.
26일 이양기와 함께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고, 안영명, 장민재, 심수창이 거하게 불을 질러 크게 뒤진 7회초 등판해 공 3개로 2타자를 범타처리하고 송신영에게 공을 넘겼다. 6점 차라서 비판 소지가 있긴 하나 수술후 첫 1군 첫 등판이기에 경기 감각 점검 차원에서의 등판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2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홈경기에서 6-3으로 뒤진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그다지 좋지 못한 구위를 보여주며 1이닝 1실점을 기록하였다.결국 팀의 추격 분위기에서 찬물을 거하게 끼얹고 말았다.
5월 2일 SK전에서 역시나 지고 있는 8회 5번째 투수로 등판해 공 4개로 투수 땅볼 아웃 하나만 잡고 내려갔다. 이날 한화는 총 7명의 살려조를 투입해 역전승했다(...).
5월 3일 SK전 8회 말 무사 1루에 마운드에 올라 두개의 아웃카운트를 잡고 내려갔다. 0.2이닝 7구 1탈삼진.
5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또 등판하며 '''기어이 3연투'''를 달성했고 아웃카운트 2개를 잘 잡은후 조용호에게 2루타를 얻어맞고 윤규진과 교체되며 물러났다.윤규진이 나주환에게 투런홈런을 허용해 권혁의 주자를 분식했다.이날 기록은 0.1이닝 1실점.
5월 10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서 2사 주자 2루상황에서 등판하였으나 강민호에게 쐐기 투런포를 맞으며 멸망했다.[26] 결국 이날 기록은 0.1이닝 1실점을 기록했으며 시즌 ERA는 7.36을 마크했다. 김재영이 원 포인트로 쓰기 위해 기용된 투수라지만, 공도 4개밖에 던지지 않은채 2아웃을 잘 잡았던 상태라 감독이 너무 이르게 교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다만 5월 초 시점에서 강민호는 잠수함을 상대로 극강이었고, 애초에 김재영은 최준석, 이대호 저격용으로 끌고 온 것이기 때문에 나름 납득이 가기도...
5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친정팀을 맞아 불끄러 나왔다가 되려 1이닝 1실점으로 부진하였다.시즌 ERA는 4.70
다행히도 김성근이 경질되고 감독 대행으로 온 이상군이 대놓고 이기는 경기에서만 권혁을 쓰겠다고 한 덕에 앞으로는 혹사당할 일은 없을 듯하다. 두고 봐야 알 일이지만...
5월 25일 기아전에서 지고 있던 상황에 등판했다
5월 26일 NC전에 6회 윤규진의 뒤를 이어 등판해 1이닝을 든든히 막아주었으나 팀은 송은범의 처참한 구원 대실패로 8연패를 달성했다. 이날 패전팀의 홀드투수.
5월 27일 NC전에 8회 1이닝을 무사히 무실점으로 막고 송창식과 함께 홀드를 얻어갔다. 별로 주목은 안 받는 듯하지만 3연투째다. 그 중에 2경기는 필승 상황이긴 했지만.
5월 30일 두산전 이태양, , 송창식에 이어 4번째 투수로 등판해 6번째 공으로 타자를 맞혀 출루시켰으나 다음 타자를 초구 땅볼로 잡아 이닝을 끝냈다. 정우람이 나머지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홀드를 챙겼고, 이 날 기록은 ⅓이닝 무실점.
5월 31일 두산전 오간도, 송창식에 이어 3번째 투수로 등판해 ⅔이닝을 뜬공, 삼진으로 막았으나 끈질지게 공을 커트하는 김재환에 사구를 허용했고, 정우람과 교체되었다. 정우람이 나머지 이닝을 무사히 막아 홀드 하나를 더 추가. ERA 3.09.
6월 2일 SK전 3-4로 한점 뒤진 8회초 무사1루 세번째 투수로 등판해 2이닝을 퍼펙트로 막았다. 타선이 8회 1점을 내며 동점을 만들었고 9회 양성우의 극적인 끝내기 안타로 시즌 첫승을 안게됐다.
6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백투백 홈런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한 송창식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가 이번엔 김동엽에게 3타자 연속 홈런 기록을 달성하게 하는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27] 이날 기록은 1.2이닝 1실점 ERA 2.93.
6월 11일 삼성전에서 1점 앞선 8회 등판했으나 1아웃을 겨우 잡은 뒤 연속 안타와 볼넷으로 만루를 만든 뒤 강판당했고, 심수창과 장민석이 환장스럽게 모든 주자를 불러들이면서 비야누에바의 선발승을 날린 것은 물론 본인도 패전 투수가 되었다. 지들이 좋아하는 감독 하나 빠졌다고 팀이 지라고 저주를 퍼붓고 비웃어대는 미치광이들이야 "신나게 퍼졌다"고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며 비웃고 있지만 재작년과 작년의 혹사를 당하고 수술 후 반년도 안 되어 복귀했음을 아는 한화 팬들은 차마 욕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확실히 쉬어가줘야 하는 느낌. 참고로 경기 종료 시점에서 '''권혁의 FIP는 송은범보다 높다.''' (...)
팬들은 권혁은 2군으로 내려서 쉬게하고 추격조에서 가장 폼이 좋은 이동걸이나 구위는 좋으나 선발로 쓰기에는 이닝 소화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윤규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 자존심에 순순히 받아들일지는...필승조가 좋아보인다고 황금알 낳는 거위 배가르듯 써버린 대가로 '''한화는 6월 초 필승조가 단 한 명도 없는 팀이 되었다.'''
6월 16일 야구의 탈을 쓴 핸드볼(...)을 펼친 kt전에서 15대 14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8회 등판해 2타자를 범타처리하였으나 심우준에게 단타를 맞고 정우람과 교체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심우준이 어처구니없게 도루를 하다 아웃되면서 자책점없이 홀드를 기록했다.
6월 21일 대전 넥센전에 8회초 동점 상황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했다. 아쉽게도 팀은 9회 송창식의 1실점으로 1점차 패배.
6월 25일 대구 삼성전에 등판해 심수창의 주자 1명을 분식했으나[28] 투수 뜬공, 삼진, 2루 땅볼로 삼자범퇴로 막아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7월 5일 넥센전에서 이동걸이 방화를 저지르자 등판하였으나 안타 2개를 맞고 1실점을 기록한다 물론 김원석의 수비도 아쉽긴 하였으나 확실히 예전보다 기복이 심하고 구위도 저하된 듯 하다 겨우 3점대로 내린 방어율도 다시 4점대로 치솟은건 덤
7월 8일 강승현이 주자 1,3루를 만든 뒤 희생플라이로 실점한 8회 1사 상황에서 등판해 삼진-안타-유땅으로 2아웃을 잡고 홀드를 기록했다.
7월 12일 1.2이닝 2실점으로 역전을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팬들은 작년 혹사를 기억하며 까지도 못하고 감싸지도 못하며 안절부절하는 모습.
7월 23일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경기에서 4-3으로 앞선 7회말에 등판하였으나, 윤규진이 남겨놓은 승계주자를 실점시키며 비야누에바의 승리를 날려먹는 '''블론세이브'''를 범했고 팀이 8회초에 역전을 시켜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으나, 김재환에게 홈런을 얻어맞고 8회 2아웃 상황에서 정우람에게 바통을 넘겼다. 이날 기록은 1이닝 1실점.
7월 29일과 30일 감독대행이 연투를 시키자 보란듯이 연일 홈런을 맞고 말았다. 특히 30일 현 단장과의 다툼 끝에 임의탈퇴 후 복귀한 선수에게 맞은 만루홈런은 치명적. 팬들은 이제 그만 던져도 되니 제발 쉬고 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31일 1군에서 장민석과 함께 말소돠었다. 한화의 성적 부진과 선수들의 부상에 행복해하던 노리타들은 삼성에서도 원포인트로 쓰이던 직구 하나만 무기던 별 볼 일 없던 투수를 금지어가 키워서 그나마 사람답게 썼다며 날조를 시도했지만, 한화 안티들이나 야갤러들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만행이 널리 알려진지라 즉시 이닝 수와 투구 수를 들고 오는 진짜 한화 팬들에게 반박당하고 있다.
그런데 2군에서 '''선발로 등판해''' 3이닝을 투구했다는 것이 밝혀져 이상군과 최계훈 모두 욕을 바가지로 처먹게 되었다. 단 실제 상황을 살펴보면 '''5일을 불펜 피칭도 없이 쉰 후''', 선발로 올라가 '''약속된 투구수만 던지게 하며''' 3이닝을 던진 것인데 관음하던 그놈들에게 소재가 되는 바람에 이상군과 최계훈이 필요 이상의 욕을 먹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29]
결국 8월 18일 이후 다시 1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ERA 6점대로 프로 데뷔 후 최악의 성적. 물론 이는 혹사의 누적으로 인한 부진일 가능성이 큰지라 몇몇 정신병자들을 빼면 한화 팬들은 거의 욕하지 않는다.
그런데 허리 통증을 참아가면서 던졌다고 한다. 테이핑을 하고 참아가며 던지다가 더 악화된 것이며 '많이 던졌으니 다칠 때가 되었다'는 우려 섞인 소리가 정말 듣기 싫었다고.

4.4. 2018 시즌


사실 지난 3년간 던질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던졌으니, 범죄라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성적이 어지간히 나빠도 한화 팬은 차마 욕하지 못할 것이다.
스프링캠프 승선에는 성공했으나 연습경기에는 등판하지 않았다. 아직 컨디션이 덜 올라온 듯.
3월 17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3점차로 앞선 9회초 등판했으나 박석민에게 투런포를 허용하고 말았다. 강진성을 간신히 삼진으로 잡고 정우람과 교체되어 0.1이닝 2자책.
한용덕 감독, "권혁, 어깨 통증으로 2군에서 시작"
결국 어깨/팔꿈치 통증으로 2군에서부터 시즌을 시작하게 됐다.
4월 후반기쯤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2군 로스터에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실전 감각을 조율 중인듯?
2군에서 7경기 연속 무실점 중이다. 마무리 투수인 정우람은 컨디션 관리를 위해 경기당 1이닝만 소화하고 있고, 팀내 유일한 좌완 불펜인 99년생 박주홍, 4월 이후 유일한 살려조(...)가 된 송은범 등이 페이스가 약간 떨어진 상태여서 한번쯤 올려볼만도 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추격조 장민재와 이태양이 2~3점대의 방어율을 기록 중이고, 박주홍은 가능한 한 경험을 쌓아야 할 입장이라서 딱히 내릴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마침 팀 불펜진 방어율도 선두를 달리고 있으니, 더더욱 권혁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
허벅지 근육 파열로 인해 재활군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2군에서 7경기 연속 무실점을 하기도 했으니 아쉽게 되었다. 6월 후반까지 재활에만 4주가 걸리니 전반기 복귀는 힘들어 보인다. 한화 불펜이 방어율 1점대인 장민재, 박상원을 추격조로 쓰고 있을 정도로 잘 돌아가고 있으니 권혁을 무리하게 복귀시키기보다 회복에 전념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7월 19일 게재된 최계훈 2군 코치의 인터뷰에 의하면 재활이 순조로운 것인지 육성군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8월 15일 드디어 '''1군에 올라온다고 한다.'''#
8월 29일 서머 리그 경기에서 올라와 1⅓이닝 동안 1K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최고구속은 '''147km'''를 찍어내며 컨디션이 거진 다 올라왔음을 보여주었다.
9월 5일 마침내 1군 리그에 다시 등판했다. 처음에는 2연속 삼진으로 타자들을 잡아내며 활약했지만, 바로 다음 회에서 홈런을 맞은 탓에 강판되고 말았다. 그러나 결과와 무관하게 팬들은 권혁의 복귀 자체에 기뻐하며 그를 환영했다. 홀드는 덤.
9월 7일 등판, 선발이 7실점을 하면서 경기가 크게 기운 상황에 두번째 투수로 올라와 ⅔이닝 1실점을 하며 등판을 마쳤다. 팀은 크게 졌다.
9월 16일 LG전 8회초 등판해 박용택을 병살 처리하며 0.2이닝을 소화하고 내려갔다. 이 등판으로 KBO 통산 11번째 7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9월 27일 1이닝을 2탈삼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이후 이닝에서 팀이 역전하면서 올 시즌 첫 승을 기록했다. 이 승리는 권혁의 483일만의 승리였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투수 헤일 다음으로 등판하여 임병욱에게 안타를 맞은 후 교체 되었다. 이후 책임주자의 실점으로 이어졌고, 임준섭, 김범수, 박주홍 등 다른 좌완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며 더 이상 등판하지 못했다.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가 한화 이글스에서 뛴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5.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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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9일자 기사에 따르면 2군 선수도 포함된 1군 스프링캠프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불만을 표해 자유계약 선수로 풀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연봉 부분은 이견이 없어서 종전의 연봉에서 큰 폭으로 삭감된 2억원에 동의했지만 1군 스프링캠프 명단 제외라는 통보를 받고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스프링캠프에는 2군 선수도 데려간다.
2019년 1월 30일 결국 송은범, 이용규, 최진행과 함께 스프링 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게 될 뻔 했지만 나머지 3인이 극적으로 계약에 성공하여 권혁 혼자 남게 되었다.
권혁이 자유계약 선수를 요구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한화측에서는 부정하는 기사가 나왔다.
일단 구단은 연봉협상이라고 언급했지만 “현장이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판단한 결정이다. 지난해 송은범도 2군에서 캠프를 시작했고, 좋은 성적을 냈다. 2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1군 캠프에 부를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권혁은 “돈 때문이 아니다. 선수로서 내가 뛸 수 있는 환경, 많은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받고 싶은 마음뿐이다”고 말했다.
결국 돈에 상관없이 기회를 많이 주는 팀에서 뛰고 싶다며 구단에게 자유계약 신분으로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인터뷰 권혁 입장에서 1군 스프링캠프에 들지 못하고 2군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사실상 팀이 리빌딩 기조하에 자신을 전력 외로 보는 것일테니 차라리 기회를 주는 다른 팀에 뛰고 싶다는 요지였다. 한화는 내부 회의를 진행한 뒤 최종 면담을 한 번 더 하고서 팀에 잔류시킬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구단에서는 송은범의 사례를 들었지만, 반대 사례로 끝끝내 기회를 다시 얻지 못하고 방출된 심수창의 경우도 있다. 물론 심수창은 우완이었다는 점이 다르지만,[30] 기회를 얻기 위해 삼성을 떠나 온 한화로 온 권혁 입장에선 2군 스타트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한용덕 감독이 인터뷰에서 '작년 송은범 사례를 참고해서 추진하기로 한 결정인데 권혁이 다르게 이야기 해서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볼 때, FA로 영입됐던 선수들과 감독 간의 의사소통이 잘 안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9년 2월 1일 한화 이글스측에서 자유계약공시를 요청함에 따라 한화와 권혁의 4년간의 동행이 마무리 되었다.# 혹사의 여파등으로 인해 기량이 떨어진것은 맞지만 즉시전력감 좌완투수가 필요한 팀은 널렸기에, 향후 거처도 굉장히 주목 받고 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친정팀인 삼성은 좌완 불펜뿐만 아니라 심창민의 입대와 최충연 선발 전향으로 인해 불펜진 자체가 부족한 상황이라 노려볼만한 후보 중 한 팀이다.
이에 대해 권혁은 "'''한화 구단에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나로서도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겠나"면서 "그저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생각뿐이다"'''라는 바람을 전했다.이재국의 직선타
한편 이미 선수등록 마감일을 넘겼기 때문에 권혁이 어떤 팀으로 이적하든지 '''육성선수 계약만 가능하고, 1군 경기는 2019년 5월 1일부터 출전'''할 수 있다. 이어서 LG 트윈스에서 검토는 해볼것이라며 차명석 단장은 바로 조만간 결정하겠다는 입장은 아닌듯..
2019년 2월 3일 두산 베어스 에서도 권혁에 관심이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결국 2019년 2월 3일 바로 오피셜이 나오면서 두산에 합류하게 되었다.관련기사
또한 권혁이 가진 구위와 불펜 활용 가치에 높은 점수를 줬다. 자유계약 공시 이틀 만에 일사천리로 영입 합의까지 다다른 이유다. 두산은 프런트와 코칭스태프가 모두 상의한 결과, 강력한 구위와 불펜 활용 가치가 높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특히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단을 지휘하고 있는 김태형 감독의 의중이 크게 반영됐다. 두산 관계자 역시 '''"프런트와 코칭스태프 상의 결과 권혁의 구위와 불펜 활용가치가 여전하다고 판단했다. 김태형 감독의 뜻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이 영입으로 좌완 불펜난에 허덕이던 두산은 가뭄끝에 단비를 맞은것 같은 효과를 보았다.[31] 다만, 다소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다면 2월에 자유계약 선수가 되었기에 육성 선수로 계약하게 되고 1군 등판은 2019년 5월 1일부터 가능해진다. 공교롭게도 2019년 4월 30일 ~ 5월 2일 3연전이 두산 vs 한화 전이다. 이적 후 첫 1군 등판이 한화 상대, 심지어 대전구장에서일 수도 있다는 것.
두산팬들은 오키나와 캠프 도중 권혁 영입 소식에 좌완 불펜 부족이 해결될 수 있다면서 대환영의 뜻을 보내고 있다. 한화팬들은 권혁을 욕하는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로 갈라졌으며, 권혁을 응원하는 사람들중 극소수는 아예 응원팀을 두산으로 바꾸는 팀세탁을 했다.[32]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된 권혁은 '''"두산이라는 좋은 팀에서 뛸 수 있게 돼 영광이다. 선후배들과 합심해 올 시즌 우승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SW이슈] 권혁 품은 두산, 어떻게 일사천리로 영입 합의했나
권혁은 2002년 삼성에 데뷔할 때부터 한화까지 줄곧 등번호 47번만을 써 왔지만, 두산에서는 47번이 홍상삼과 겹쳐 47번을 고집하지 않았다. 두산에 남아 있는 번호 8, 64번 중에서 8번을 선택했다. 인터뷰 영상에서 "(의미를 부여하자면) '8회에 등판해서 막는다' "라며, "팬 분들은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8)라고 표현해주신 분들도 있다"고 하였다.

5.1. 2019 시즌


[image]
퓨처스에서 8경기 1승 2홀드 9탈삼진 평균자책점 1.00으로 실전 감각을 유지하다가 5월 1일 등록 가능한 날이 되자 바로 정식선수로 1군 콜업되었다.
목에 담 증세가 있어서 전 소속팀 한화전엔 등판하지 못했고, 3일 LG전부터 중요 상황에 등판 예정이라고 한다.
5월 3일 LG전 8회초 두산 유니폼을 입고 처음으로 잠실 마운드에 올랐다. 무난하게 투아웃을 잡았으나 김현수에게 내야안타 허용 후 이형범으로 교체되었다. 0.2이닝 무실점.
5월 4일 LG전 6회초 2사 1루 상황에 등판해서 3구째에 오지환의 도루를 박세혁이 저지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동점 상황에서 6회말 두산이 점수를 내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고 7회초에도 올라와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줬으나 이후 세 타자를 범타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리드 상태로 경기가 끝나며 두산 이적 후 첫 승을 기록했다. 1.1이닝 무실점 승. 마침 한화의 좌완들이 하나같이 부진하면서 야구 팬들은 박종훈 단장의 1패를 점치고 있다.
5월 9일 KIA전 7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등판하여 뜬공, 삼진으로 이닝을 깔끔하게 막아냈으나 다음 이닝 8회초에도 올라와 김선빈, 안치홍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2,3루를 만들었다. 다음 타자 최형우를 삼진 처리 후 김승회에게 마운드를 넘겼지만 김승회가 책임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며 모두 실점이 되었다, 1이닝 2K 2실점.
5월 11일 NC전 8회말 등판해서 뜬공, 삼진으로 투아웃을 잡은 후 모창민에게 2루타를 허용했으나 후속 타자를 땅볼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1이닝 1K 무실점.
5월 14일 삼성전 10회초 2사 1,3루 상황에 등판해서 박한이를 땅볼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0.1이닝 무실점.
5월 17일 SK전 7회말 등판해서 선두타자 고종욱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하고 한동민을 뜬공 처리 후 이형범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0.1이닝 무실점으로 두산 이적 후 첫 홀드를 기록했다.
5월 18일 SK전 7회말 1사 1,2루 상황에 등판해서 땅볼 유도를 해냈으나 2루수 오재원의 실책으로 만루 상황이 되었다. 후속타자 한동민을 내야 플라이로 잡아낸 뒤 이형범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0.1이닝 무실점 홀드.
5월 21일 KT전 5회말 2사 2루 상황에 등판해서 땅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6회말에도 올라와 1사 후 강백호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로하스를 삼진 처리 후 박치국에게 마운드를 넘겼으나 박치국이 책임 주자를 불러들이며 실점이 되었다. 1이닝 1K 1실점.
5월 22일 KT전 6회말 1사 1,2루 상황에 등판해서 뜬공,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0.2이닝 1K 무실점.
5월 24일 한화전 7회초 등판해서 선두타자 정은원에게 안타 허용 후 제라드 호잉을 뜬공 처리하고 윤명준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윤명준이 책임 주자를 불러들이며 실점이 되고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어 패전투수가 되었다. 0.1이닝 1실점.
5월 25일 한화전 6회초 등판해서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7회초에도 올라와 이성열을 땅볼 처리 후 이형범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1.1이닝 무실점.
5월 26일 한화전 7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등판해서 안타, 사구로 위기를 맞았으나 제라드 호잉을 땅볼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8회초에도 올라와 선두타자 이성열에게 안타 허용 후 박치국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두산 이적 후 첫 3연투 경기였다. 0.2이닝 무실점 홀드.
5월 28일과 29일 삼성전에서 연투를 기록했다. 이 중 29일 경기에선 연장 10회초 퍼펙트 이후 김재환의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마무리 투수였던 함덕주의 부진으로 인해, 김강률의 복귀 전까지는 권혁이 마무리 역할을 맡게 되었다.
5월 31일 kt전 9회 1사 1루에서 유한준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김성근에게 혹사 당했던 여파와 노쇠화로 인해, 좌타자에게는 강하지만 우타자에게는 심한 상성을 타는 한계를 드러냈다. 진짜 문제는 이날을 기점으로 최근 10경기중 '''8경기'''에 등판했다는 점이다. 두산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권혁의 투구수와 이닝이 적다고 해도, 3번이나 수술 경력이 있는 노장을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자주 등판시키는것에 대해 김태형 감독을 비판하고 있다.
이후, 6월 2일 KT전 7회 2사 1루 상황에 등판해서 강백호의 기습번트를 침착하게 처리하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0.1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하며 KBO 역대 2번째, '''좌완 최초''' 통산 150홀드를 달성했다.
6월 4일 KIA전 7회말 등판해서 프레스턴 터커, 최형우 좌타자 둘을 잡아내고 교체됐다. 0.2이닝 무실점.
6월 5일 KIA전 7회말 1사 2루 상황에 등판해서 프레스턴 터커를 삼진 처리하고 최형우에게 볼넷을 내준 뒤 교체됐다. 0.1이닝 무실점.
6월 7일 등번호를 8번에서 19번으로 변경했다. 또한 이기는 가운데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후 홀드를 추가.
6월 8일 9회초 2사에서 좌타자 서건창을 상대로 초구 1타점 적시타를 맞고 내려갔고, 팀은 1점차로 패했다. 주 4번째 등판이다.
6월 11일 한화전 8회말 등판해서 김태균에게 1점차 팽팽했던 경기에 쐐기를 박는 투런 홈런을 허용했다. 1이닝 2실점.
6월 12일 한화전 6회말 등판해서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이닝을 마무리했다. 1이닝 1K 무실점 홀드.
7월 30일 NC전 8회초에 원 포인트 릴리프로 등판하여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고 내려갔다.
8월 6일 한화전에서 마무리로 등판했으나, 주자를 계속 쌓아가다가 안타까지 맞아가며 2실점을 허용한뒤 강판되었다.
8월 28일~8월 29일 SK전에서는 좌타자들을 연속으로 잡아내며 한화전에서의 부진을 만회했다.
8월 31일 삼성전 9회초 1사 1루 상황에 등판해서 이학주의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여유있게 잡아서 1루 주자까지 아웃시키며 이적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0.2이닝 무실점 세이브.
9월 3일 키움전에서는 우타자에게 심하게 상성을 타는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홈런을 맞았고, 이어서 서건창에게 안타를 맞으며 강판되었다.
9월 12일 기아전에서는 마무리로 등판하여 타자들을 뜬공으로 막아내고 승리를 지켜냈다.
9월 15일 LG전에서 6회말 한 타자를 잡아냈지만 7회말 연속 안타를 맞은 뒤 강판됐고, 배영수의 분식으로 0.1이닝 2자책을 기록했다.
9월 28일 한화전에서 8회말에 등판해 좌타자들을 상대하는 임무를 마친 뒤 9회초에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10월 1일 NC전에서 6회초에 등판하여 위기 상황을 막아내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팀은 정규시즌 우승 확정.
2019시즌성적은 57경기 36 2/3이닝 23실점(20자책) ERA 4.91 2승 2패 1세이브 11홀드 21K WHIP 1.17 WAR -0.37[33]로 마감했다.
2019 정규시즌 권혁에 대해서 정리하면, 에이징 커브와 혹사의 여파 때문에 부정적인 예측이 많았으나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의 역할은 할 수 있다는것을 증명했으며, 장원준과 이현승, 함덕주의 부진으로 즉시 전력감 좌완투수가 부족했던 두산 입장에서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다만 나쁘게 말하면 반쪽짜리 투수가 되었기 때문에[34] WAR 수치는 하락하게 되었다. [35]
한국시리즈 1차전 6대 5로 앞선 7회 2사 상황에서 불펜들의 부진으로 주자가 쌓여져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으며, 송성문에게 안타를 맞으며 린드블럼의 승리를 날림으로서 다른 불펜 투수들처럼 부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다음 타자는 범타 처리하며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 3대 5로 뒤진 상황에서 9회초 등판했으나, 0.1이닝 2피안타를 맞으며 강판되었다. 사실 권혁은 정규시즌에서도 키움 상대로는 좌타자들에게도 유독 약했는데,[36] 한국 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키움 상대로는 좌우놀이 원 포인트 릴리프로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한때 권혁과 같은 팀이었던 이승엽 역시 한국시리즈 2차전 해설에서 권혁이 키움의 타자들을 상대로 철저하게 열세라고 강조했다.[37] 결국 2차전 이후로 등판하지 못했다.[38]
권혁 자신은 한국시리즈에서 부진했지만 팀은 키움 히어로즈를 스웝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정규 시즌 우승 당시 '우승 반지를 다시 끼고 싶어서 두산으로 왔다'고 말했는데, 그 말대로 소원을 이룬 셈.
두산에서 47번을 달고 있었던 홍상삼이 KIA 타이거즈로 팀을 옮겨가면서, 권혁은 삼성과 한화 시절에 사용했던 등번호인 47번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47번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바로 등번호를 바꾸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5.2. 2020 시즌


시즌을 완주할 경우 FA 재자격자가 된다. 200홀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선수로서는 고령인데다가 2015년~2016년에 겪었던 혹사의 여파로 우타자에게 심한 상성을 타게 된 만큼, 작년과 마찬가지로 좌타 전용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다.
4월 21일 LG와의 연습경기에 5회말 등판했으나 1아웃을 잡고 내야안타 후 3루수 실책에 이어 1루수 실책으로 실점했고, 이후에도 내야수들의 실책과 상대 타자들의 연속 안타로 인한 악재가 겹쳐 강판되었다. 최원준이 남은 주자를 모두 들여보내면서 0.1이닝 3피안타 4실점 1자책을 기록했다. 당일 경기는 권혁 본인에게 있어서 여러모로 운도 없고 컨디션이 올라오지도 않은 경기였다.
4월 27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 연습경기에 8회말에 등판했으나 한화에서 그동안 혹사를 너무 당한 후유증과 에이징 커브[39]가 다시 드러나기 시작한것인지, 연속 안타로 무사 1, 3루를 허용한 후 2루 땅볼으로 실점했고 볼넷을 내주는 등 1아웃을 잡는동안 그야말로 난타당하며 책임주자 2명을 남기고 함덕주와 교체되며 강판당했다. 이어서 제이미 로맥이 함덕주에게 쓰리런 홈런을 치면서 이날 0.1이닝 3실점을 기록하였다. 전체적으로 구속도 140km 직구를 제외하면 130km 후반대로 낮아졌으며, 그동안 빠르고 강한 직구 위주로 우직하게 피칭했던 권혁의 플레이 스타일을 감안해보면 느려진 구속을 구위나 제구로 커버할 상태도 아니기에 이대로라면 도저히 1군 타자들과의 대결에서 이길 가망이 없어보인다.
4월 29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원정 연습경기에 4회말 등판했으나 2아웃을 잡고 연속 볼넷 후 안타로 실점했고, 2사 1, 3루에서 피처 보크[40]까지 하면서 3루 주자를, 이후 안타를 또 맞으면서 총 3점을 내주고 강판되었다. 다음 투수가 3구 삼진을 잡으면서 이 날의 기록은 0.2이닝 3자책. 안 그래도 키움에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날도 구위가 살아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개막전 1군 엔트리에 진입하지 못했다.
허약한 두산 불펜 사정상 1군에 합류했고, 5월 22일 8회 2사 득점권 위기에서 삼진을 잡고, 9회 1사까지 범타로 처리한 뒤 우타인 대타 박석민의 타석에서 이형범과 교체되며 홀드를 기록했다. 그러나 팀은 2아웃을 잡는 동안 9실점(...)하며 대역전패를 당했다.
5월 26일 SK전 8회 2사 1루 상황에 등판해 정진기를 땅볼로 처리하며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8회 팀이 역전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1승.
5월 30일 롯데전에서 11회 1사 1루 상황에 등판해 병살타로 위기를 막았다.[41] 0.2이닝 무실점. 그후 11회말 팀이 허경민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2승.
6월 9일 NC전에선 4회말 4-6 역전당한 상황에 최원준의 뒤를 이어 등판했다. 삼진 1개를 잡았으나, 이후 안타를 두 방 맞으며 선행주자 2명을 홈으로 불러들였고 강판당했다. 이후에 등판한 김강률이 분식하면서 0.1이닝 2실점으로 평균 자책점이 9점대로 폭등했다.
2군으로 내려간 뒤 7월 1일 정상호, 이교훈이 말소된 자리에 장승현과 함께 콜업되었다.
7월 2일 키움전에서 7회초 7-7 동점상황에 등판에 서건창에게 3루타를 허용하고 바로 내려갔다. 공이 몰리자마자 곧바로 장타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씁쓸함만 느끼게 만들었다. 이후 등판한 윤명준이 분식하면서 역전을 당했고, 그대로 패전투수가 됐다. 최근 6타자를 상대하면서 1아웃 5피안타 3자책을 기록중인데, 이 중 2루타, 3루타 등 장타만 2개다. 도무지 1군에서 통할 상태가 아닌 상황. 결국 2군으로 내려간 상태이며 다시 1군으로 콜업되는건 어려워보인다.
8월 18일 롯데전 확대엔트리 시행으로 권휘, 장승현 등과 함께 1군에 올라와 4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0.2이닝 1피안타 1볼넷 1삼진을 기록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42]
그러나 8월 19일 허리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팀은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LG 트윈스에 2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으나 가을야구 엔트리엔 단 1번도 합류하지 못했다.
결국 본인 스스로 더 이상의 선수 생활 연장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뒤, 파란만장했던[43] 19년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은퇴를 선언했다. 기사 링크

6. 국가대표 경력



6.1. 2008 베이징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9539D 75%, #A01E20 75%, #1E2776 90%, #ffffff 95%)"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자책점
4구
삼진
상세
3
0
1⅓
0.00
0
0
0
0
0
0
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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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경력은 07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08베이징으로 2번. 베이징에선 3경기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기록 보면 알듯이 좌타 원 포인트 릴리프였다. 보직이 보직이라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온 경기는 무피안타로 임무를 충실히 완수했고 이때의 활약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1] 권혁의 회고에 의하면 경상공고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고 하다. 선반 설계와 용접을 배웠는데,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고...[2]롯데 자이언츠. 대구고 시절부터 고교야구계에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었을 정도로 두각을 드러낸 우완 유망주였고 덕분에 연고팀 삼성의 1차 지명 유력 후보였다. 또 다른 유력 지명 후보로 포철공고의 동료였던 투수 유혜정이 있었다.[3] 또다른 이야기로는 당시 삼성 감독이었던 김응용 감독이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인, 덩치 크고 공 빠른 왼손잡이 투수라 윤길현 대신 권혁을 1차 지명으로 뽑아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는 말도 있다.[4]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5]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6] 상황에 따라 정현욱과 권혁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JKO펀치라 부르기도.[7] 이는 삼성의 2009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직결된다.[8] 특히 삼진 개수는 유지하면서, 사사구 개수가 예전보다 월등히 줄어들었다.[9] 위의 2명과 권혁.[10]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11] 등판을 하지 못한 거 자체가 치명적이었다. 팀이 3, 4차전 모두 7명의 투수를 쏟아부었기에 4, 5차전에서 투수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권혁은 중심 불펜 역할을 예정중이었으므로 더욱 타격이 컸다.[12] 오승환김재현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득점한 주자를 내보낸 권혁이 패전투수가 되었다.[13]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포스트 시즌 평균 자책점을 모두 '''27.00'''을 찍는 위엄을 달성.[14] 물론 예전과 달리 선발 투수들의 소화 이닝이 6이닝 이상까지 올라갔으며 8회에는 힙합전사가, 9회에는 인간투석기가 풀가동 중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6~7회의 아웃카운트 4~6개를 정현욱, 권오준과 나눠 소화하게 되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할 변화도 아니다. 권오준만 해도 경기당 1이닝이 되지 않는다.[15] 2011시즌 권혁의 성적은 1승 3패인데 '''3패가 모두 한화전'''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삼성은 이 시즌에 유일하게 한화에게 상대전적에서 뒤졌다. 1승은 7월 19일 SK전.[16] 상세하게 따지면, 1차전에서는 1타자 상대 1피안타, 3차전에서는 팀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4차전에서도 1타자 상대 1볼넷을 기록했다.[17] 2016년 8월 현재 이 셋 중 임창용은 도박 사건에 연루된 뒤 방출되어 고향팀으로 이적하였고, 안지만 역시 도박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불법 도박 싸이트 개설 혐의로 계약해지당하며 셋 중에 심창민만 삼성에 남아있게 되었다.[18] 공교롭게도 두 선수의 등번호가 동일하기 때문에, 한화 관련 커뮤니티에선 주황색 잉어킹푸른색 갸라도스로 진화했다는 식의 드립이 인기를 끌었다.[19] 선수 본인도 계약을 체결하며 "김성근 감독님과 야구하고 싶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20] FA제도가 시행된 후 LG 트윈스SK 와이번스의 감독을 맡았으나 두 구단 모두 김성근 감독에게 외부 FA를 잡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양준혁(LG), 이진영(SK) 등 내부 FA를 타팀에 내주는 등 김성근 감독에게 FA는 연이 없었다.[21] 오승환은 전문 마무리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그런 오승환조차 최근 잦은 등판으로 인해 혹사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22] 당연히 오승환도 무지막지한 혹사다. '''다만 이 혹사에 가려진 것 뿐이다.''' [23] 특히 16~17년도 연속 80이닝 이상 소화 단,권혁은 2년동안 200이닝 이상 소화했고 김진성은 3년 동안 200이닝을 넘게 소화했고 권혁이 올해 30이닝 남짓만 소화 했음에도 김진성하고 1.1 이닝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24] 8월 셋째주 한 주동안 KIA 김광수박준표, 롯데 이정민이 4연투, 한화 심수창이 5연투를 했다.[25] 그러나 김성근 재임 당시 이 팀의 연봉 총액이 1위였다. 게다가 모기업이 튼튼하지 못해 이는 몰락의 단초가 된다.[26] 당연히 김성근이 팔꿈치 피수술자를 억지로 떙겨써서 발생한 참사라는게 중론.[27] 역대 27번째 기록이다.[28] 1루수 실책으로 나간 주자라 심수창의 자책점으로 기록되진 않았다.[29] 수술 중 재활기간이 아닌 이상 아무리 휴식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소위 던지는 '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몸을 푸는 선에서 규칙적인 투구는 필수적이다.[30] 2018시즌 한화의 우완 불펜은 좌완에 비해 상당히 넉넉했다. 젊은 선수들도 많았고.[31] 함덕주를 제외하면 좌완 불펜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였다. 이현승은 2018 시즌 부상으로 2019년에는 시즌 중반까지 콜업되지 못했다.[32] 인스타그램과 네이버 블로그를 보면 권혁 때문에 한화에서 두산으로 팀세탁했다는 사람들이 간혹 보인다.[33] 네이버스포츠 기준[34] 우타자 상대로는 거의 무조건 피안타나 홈런을 맞았다.[35] 물론 한화가 2019 시즌에서 망한건 권혁이 나가서 그런게 아니라, 2018년 뽀록으로 가을야구를 갔던 하위전력팀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그렇다.[36] 특히 서건창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37] 특히 권혁의 다운된 구위로는 키움의 좌타자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없음을 지적하며 안타까워했다.[38] 다만 4차전에서는 불펜에서 계속 몸을 풀며 대기하고 있었다. 4차전 막판에 김태형 감독의 실수로 이용찬을 강판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자 남은 불펜은 권혁과 배영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김태형은 둘중에 누굴 등판시킬지 고민하다가 ' 좌우상성을 심하게 타는데다가 키움 상대로 약한 권혁'보다는 '비록 많이 부진했어도 최소한 상성을 타지는 않는 배영수'가 더 낫다는 판단하에 배영수를 마무리로 등판시킨것으로 보이며, 배영수는 박병호와 샌즈를 모두 아웃시키며 두산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결정지었다.[39] 권혁은 2020 시즌에서는 한국 나이 기준으로 벌써 38세가 되었다. 서른 중반에야 1군에서 활약했던 박정진같은 선수가 아니라면 이 나이면 대부분은 은퇴를 선택하니 이상할 건 없다.[40] 셋포지션에 들어갔다가 몸 균형을 유지해주고 있던 왼발이 미끄러지면서 공을 아예 던지지 못했다.[41] 최주환의 호수비가 도왔다 [42] 그리고 이 경기가 본인의 마지막 1군 경기가 되었다.[43] 삼성에서 오랜 시행착오 끝에 안정된 좌완자원이 되었지만 류중일에게 외면받았고,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서 한화로 왔으나 김성근에게 지독하게 혹사당했고, 이후 구단과의 견해 차이로 인해 한화를 떠나 두산으로 이적하여 마지막 우승 반지를 얻은뒤 그 다음해에 은퇴했다. 즉, 권혁의 야구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