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꿀이죽
1. 개요
미군 부대에서 먹고 남은 잔반+음식물 쓰레기 중 먹을 만한 부분을 건진 다음 죽처럼 끓여서 만든 음식. 6.25 전쟁 직후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가난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음식이자 대한민국의 현대 음식 역사에서 가장 슬픈 음식으로 전해지는 요리 중 하나다.
꿀꿀이죽이라는 이름은 음식 생겨먹은 모양새가 꼭 '''돼지나 먹을 쓰레기'''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지만... 위생적인 축산업을 강조하는 현대 기준이라면 '''이건 돼지도 못 먹이는 음식'''이다. 순화시키면 ''''UN탕''''이라고도 한다.[1]
2. 안습함
미군부대 '''짬통(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재료를 건져서 만든 음식으로, 1970년대 후반까지도 미군부대 근처 시장이나 골목의 허름한 식당에서 팔았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꿀꿀이죽을 기억하는 일부 노년층은 마찬가지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식재료로 만든 데서 유래한 현대의 부대찌개에도 반감을 가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부대찌개는 꿀꿀이죽과는 달리 가공 전의 미군 납품 식재료를 쓰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은 절대 아니지만, 재료 자체는 비슷하기 때문에 나오는 얘기이다.
충격과 공포의 당시 신문기사(1964).
더욱 기가 차고 코가 차는 것은 미군이 먹다 잔반통에 버린 것들이라 포크나 이빨자국이 보이는 소시지와 햄까지는 당연하다고 보더라도, 후식으로 보급된 껌과 담배, 심지어 '''콘돔'''까지 그대로 섞여있는 일도 잦았다는 거다.[2] 하지만 이런 것조차 당시엔 귀해서 건더기를 서로 가져가려고 실랑이를 벌였고, 경쟁에서 밀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건 국물 부분을 담아가 먹어야 했고, 수일 이상 방치돼 곰팡이까지 낀 것까지 삶아 먹어야했다.[3] 그러다 보니 꿀꿀이죽을 먹고 집단 식중독을 일으키는 사고도 굉장히 잦았다.
그래서 "궁핍한 시절을 겪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컬처쇼크, 겪었던 이들에게는 슬픈 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라는 책의 저자도 부대찌개 부분에 이런 주석도 남겼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은 "그런 걸 어떻게 먹어?" 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겠지만, 과거에는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버려?"라며 먹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것을 야기한 식량난이 인류의 가장 큰 숙제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9세기 유럽에선 부잣집의 집사 등 고용인들이 집에서 버리는 폐품들을 수시로 방문하는 업자에게 내다 팔며 부수입을 올렸는데, 여기에는 고기 삶고 버리는 국물 등도 있었으며, 이것들은 서민 식당의 요리에 쓰였다.
특히 한국은 가까운 과거에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불과 2~30년 전까지만 해도 쌀을 좀먹는 쥐 잡기 캠폐인을 벌였고[4] , 예방접종시 원조 물품 증정 이벤트를 벌였다 두 번 이상 맞고 골로 간 이도 있었는가 하면, 100년 전만 해도[5] 먹을 게 없으면 산나물을 캐든지 나무껍질 벗겨 먹든지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심지어 경신대기근 사태에는 병들어 죽은 소를 먹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은 사람이 허다했을 정도였다. 경신대기근이나 우크라이나 대기근 때만 해도 죽어서 쓰러진 사람도 잡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니 말 다 했다.[6]
3. 어린이집 꿀꿀이죽 사건
2002년 6월,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에 개원한 '''고려 어린이집'''에서 2005년에 교사들이 양심선언해 적발될 때까지 무려 3년 동안 생선 뼈, 이쑤시개 등이 뒤섞인 못 먹을 잔반을 "영양죽"이라며 아이들에게 먹게 한 사건이 있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원아 105명 중 100명이 장염, 만성 장 증후군, 아토피 피부병, 물사마귀, 식중독, 피부병 등 질병에 걸렸고, 지원금은 지원금대로 횡령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인간 쓰레기 수준.
2011년 기사에 따르면 해당 원장은 양심 선언한 교사를 모두 해고했다고 하며, 이후 더 분기탱천할 기사가 나왔는데, 서울특별시 도봉구 모 어린이집에서 버젓이 보육교사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고 한다. 기사 링크.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도 유치원 원장이 저지른 비리 중 이와 비슷한 사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마지막에 분노의 학부모들에게 쓰레기죽 식고문 참교육을 당한다.
4. 여담
부평깡통시장 내의 죽거리 밀집지역은 6.25 시절 유엔탕을 모아 끓여 팔던 도떼기시장이 시초라고 한다. 향토문화사전 내용. 그 당시 꿀꿀이죽을 사람들에게 팔던 죽집이 아직 두 집이 남아있다고. 당연히 지금은 위생적으로 문제 없는 영양가 있는 죽을 판다.
남극이나 북극, 히말라야 14봉 등의 극한지를 탐험하는 사람들이 현지에서 만들어 먹는 죽을 자조적으로 꿀꿀이죽이라고도 한다. 물론 모양만 닮았을 뿐이지 이 쪽은 채소와 쇠고기가 팍팍 들어가는 영양만땅의 고급품이다. 1끼에 2천 칼로리에 육박할 정도의 고열량[7] 이지만, 극한지에서는 거칠고 혹독한 지형과 추운 기후 탓에 소모되는 칼로리가 어마어마해서 이렇게 먹어도 살이 붙지는 않는다고 한다.[8]
현대에 들어서는 가정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잡탕죽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높은 확률로 김치가 들어가기 때문에 대개 색깔은 빨갛다. 경상도 내륙에서는 갱시기라고 부른다.
국방TV에서 6.25 전쟁을 겪었던 분에게 꿀꿀이죽에 대해 물었는데, 의외로 아주 맛있었다면서 그 분이 알려준 레시피대로 만들었더니 정말로 맛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시피를 살펴보면 햄이나 베이컨 같은 (그 당시로 보면) 고급 재료들이 엄청 들어가 있는데, 사실 당시에도 양이 적었을 뿐 햄과 베이컨은 진짜로 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먹다 남긴 잔반이라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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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이죽이라는 명칭 때문에 한국에만 존재한 음식처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일본에도 똑같은 음식이 존재했다'''. 일본에서는 잔반 스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지독하게 어렵던 시절, 한국처럼 미군 부대에서 나온 음식 찌꺼기로 죽을 끓여 먹거나 팔았고, 이 시절을 다룬 영화나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스즈키 세이준 감독의 1964년 작 '육체의 문'의 한 장면을 보면, 꿀꿀이죽을 먹다 콘돔을 발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 애니메이션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도 '럭키 스트라이크'라는 담배 껍질이 그대로 꿀꿀이죽에 섞여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9]
오키나와에서는 오키나와 전투 이후 가난한 환경에서 '''엔진오일로 만든 모빌 텐뿌라(モービル天ぷら)'''라는 튀김도 해 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생겼다. 물론 제대로 만든 엔진오일로 이랬으면 살인 수준이지만, 당시 일본군은 패전과 미국의 경제 제재로 석유 수입 제재에 동남아시아에서 원유 수급도 끊기자 소나무에서 채취한 송근유 외에도 정어리 기름, 귤껍질 기름 등 각종 동식물에서 기름이란 기름은 다 짜내서 원유의 대용품으로 썼기 때문에 엔진오일 역시 먹어도 죽지는 않을 확률이 높았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엔진오일은 엔진오일이라 잘못 먹으면 배탈은 기본이고 심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져 죽는 일도 있었다고...말 그대로 가난한 시대의 자화상.
나라가 충분히 발전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슬픈 추억 정도로만 남아있는 음식이지만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아직까지 현역이다.''' 필리핀의 극빈층이 먹는 'pagpag'라는 음식도 만드는 원재료와 방식이 꿀꿀이죽의 그것이고, 그외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음식들이 있다.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고사는 빈민층이라 해도 음식쓰레기를 별도의 가공이나 조리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먹기는 힘들것이다.
안녕 자두야에선 최자두가 부유해지고, 가난해지는 꿈을 꾸는 편이 있는데, 가난해지는 꿈에선 냉장고엔 먹을게 꿀꿀이죽밖에 없어 최미미와 최승기가 꿀꿀이죽을 마시는 장면이 있었다.
5. 관련 문서
[1] 비슷한 작명 센스로 붙여진 이름으로 존슨탕이 있는데 부대찌개의 이명(異名) 중 하나가 존슨탕이다.[2] 이는 미군들이 식후 이것들을 잔반과 함께 넣은 것으로, 어린이 소설 <아버지의 국밥>에도 꿀꿀이죽을 주면서 "천천히 후후 불며 먹어라, 담배꽁초 삼킬라." 하는 장면이 있다.[3] 다행히도 일부 부대에선 콘돔 담배같은 쓰레기는 버리지 못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4] 학교 숙제로 쥐꼬리를 모아오게 하기도 하였다.[5] 역사적으로 100년이란 기간은 어찌 보면, 인간의 생활양식이 변화함에 있어서 무지막지하게 짧은 시간이다.[6] 대기근 때뿐만 아니라 사고로 고립되어 움직일 수 없는 경우도 시체를 먹으며 버틴 경우도 있다. 일례로 우루과이 공군 571편 추락사고의 생존자들은 70여일을 사망한 사람의 시체를 먹으며 버텼다.[7] 잘 알다시피 한국 성인 일일 평균 필요량이 2000kcal다.[8] 사람이 추운 곳에 가면 몸이 열을 내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추위의 끝판왕이라는 남극에서 활동을 해야하니 저렇게 어마어마한 칼로리의 음식을 먹는 것. 또한 러시아 요리들이 하나같이 기름지고 짠 이유도 이 혹한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9] 당시 미군은 담배가 스트레스 해소나 현지에서의 사소한 거래 등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므로 본국에서 C레이션을 보급할 때 상자의 빈 공간에 사제 담배를 끼워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 담배가 '럭키 스트라이크'였다는 점을 고증한 것. 여담으로 한국에서는 럭키 스트라이크를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말보로가 많으나 일본은 반대로 럭키 스트라이크가 엄청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