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슌페이
水野 俊平
(1968. 01. 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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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학자. 전남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前 전남대학교 일문학과 교수. 現 홋카이 상과대학(北海商科大学) 한국학 교수. 노히라 슌스이(野平 俊水)[1] 라는 필명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친근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해 매우 유명해졌으나 2005년 이후에는 극우인 게 들통나 일본으로 쫓겨난 이중인격자로 알려져 있다.
1968년 일본 홋카이도 무로란시 출생. 이후 나라현에 있는 덴리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였으며, 1990년 한국의 전남대학교에 유학을 왔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전남대에서 일문학과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 당시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3남을 두었다.
박사 과정 재학 당시부터 신문 기고와 방송 출연을 하기 시작했고, 교수로 지내던 시절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유창한 사투리 구사와 위트 있는 이야기로 인기를 끌어 TV 광고도 찍는 등 꽤 잘 나가는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2005년부터 한국에서 후술할 장 모씨에 의해 극우파 의혹이 점점 번져갔고, 이후 별다른 해명도 하지 않은 채 2006년 한국을 떠나 홋카이 상과대학의 한국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후술할 여러 논란으로 그에 대한 옹호론도 있지만 혐한 극우매체에 투고했다는 여러 증거들과 필명 사용, 미즈노 본인의 해명 불응으로 인해 아직도 논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네이버 등지에서는 미즈노 '순'페이로도 불리는데, 이는 완성형에 '슌'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드물게 업데이트를 하는 듯 보인다.
일본 주간 현대에 기고한 글
일단 그가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4년 조선일보에서 연재하던 '노래하는 역사'의 거의 매회 연재마다 반박 기고를 꼬박꼬박 하면서부터이다. 이 연재물은 작가였던 이영희[2] 가 기고한 것이었는데 만요슈를 "호남 사투리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고전 일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해석되어야 한다"며, 자의적 해석으로 일관했다.
이영희의 해석은 원문 한자를 일본어와 한국어 음으로 제멋대로 읽어 문장을 끼워 맞춰 만드는 언어유희 수준이었다. 이렇게 만들어낸 해석으로부터 유추한 여러 유사역사학 주장들, 예를 들어 연개소문이나 문무왕이 일본에 가서 천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매회 연재를 채웠다. 이를 미즈노는 거의 매 연재마다 독자 기고를 통해 반박하면서 서서히 한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영희는 그 이전 전두환 정권에서 공연윤리위원장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가위질로 악명을 떨쳤던 인물이기 때문에 문화계 전반에서 평판이 극히 안 좋은 인물이었다. 1986년에 김수용 감독은 중광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허튼소리"에 대한 그녀의 가위질에 항의해서 감독을 은퇴했을 정도다. 이런 사람이 이젠 조선일보라는 거대 신문 지면을 빌어서 환빠짓거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이영희를 꼬박꼬박 조목조목 반박하는 미즈노는 '''한일 양쪽 문학에 해박한 똑똑한 학자'''라는 좋은 인상을 주었다.
참고로 이영희의 이 연재물은 간 크게도 일본에서도 출간되었는데 일본 학계로부터 "'''조악한 방법론'''"과 "'''자의적 해석'''"으로 비판받았다. 이미 만엽집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 에도시대부터 철저히 이뤄져왔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에도시대 학자가 만요슈와 고사기에 쓰인 만요가나를 이후 거의 이설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연구해서 그 해독법을 만들어냈다. 그의 방법론은 후대에 신라의 향가 해석법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영희식의 해석법은 유사역사학의 범주에도 못드는 엉터리였다. 더 큰 모순은 이 연재물이 친일적인 일선동조론과 맥이 닿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국기원설을 내세우며 환빠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친일파의 논리였다.'''[3]
미즈노는 이렇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남대 박사 졸업 후에도 바로 모교의 일문과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고, 여러 책을 펴내며 한국 중심 역사관과 한국식의 일본사 해석을 비판했다. 이런 책으로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오키타 쇼리와 공저)"과 "속터지는 일본인", "다테마에를 넘어 일본인 속으로" 등이 있다.
참고로 그의 저서 중 하나인《속터지는 일본인》에서는 '일본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지도는 1585년에 나온 곤잘레스 디 멘도사의 지나대왕국지(支那大王國志)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듣기 거북하겠지만 사실이다. 동해 항목 참조.
한국에서 한때 유행한 일본을 공격한다식의 밀리터리 소설에 대해서 제대로 깐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김경진의 데프콘 2부 한일전쟁 편. 읽어보면 미즈노 교수가 책을 굉장히 자세하게 읽고 글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데프콘 류의 고증 오류나 무리한 설정들을 크게 비판하기는 했지만, 이건 장르의 문제지 한국의 밀리터리 소설만 꼭 집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본만 봐도 이런 류의 소설이나 만화는 한국보다 한술 더 뜬다.
현재도 학자로서 한국에 대하여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스사노오를 한국에서 소머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일제강점기 때 내선일체로 인한 역사왜곡에 비롯되었다는 설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렇듯이 그는 저서에서 객관성을 주장하면서 한국인 중심의 역사관이나 한국 중심의 민족주의를 비판했으며, 한국어를 잘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일본어 교재도 여러 권 냈는데 방송의 인지도 때문에 미즈노가 쓴 일본어 교재는 외국어 서적 중에서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미즈노가 극우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밝혀졌다.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신동아에 자세히 실렸다. #[4]
이후 한국 언론에는 전혀 비치지 않았으며, 극우파 의혹에 대한 해명도 일절 하지 않았다.
XTM이 시사 버라이어티 쇼로 그가 근무하는 대학교와 자택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했다. 이 사건 때문에 나쁜 놈이라는 인식이 한국 내에 널리 퍼졌는데, 사실 일본의 방송은 계약을 철저히 중요시해서 사전에 연락이나 상의를 안 하면 그 누구든지 일단 털린다. 한국의 경우라도 '''출연료에 대한 논의나 촬영에 대한 허락도 전혀 한 적이 없는데 갑작스레 장비 들고 불쑥 찾아와 다짜고짜 우리와의 정을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하라고 한다면 어느 연예인이 이를 허락해줄까?''' YTN스타에서 이에 대한 우려 섞인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꼭 미즈노가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XTM이 무례한 짓을 했지만, 본인이 만약 정말로 한국에서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다짜고짜 찾아온 카메라 앞에서라도 얼마든지 해명할 수 있었으며, 하다못해 사과를 하든지 혹은 오해 드립을 쳤어도 한국의 여론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나는 이제 한국과 상관 없는 사람이다"는 식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한 것은 한국의 여론을 악화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언플성으로라도 "그거 다 오해였고, 나는 아직도 한국을 사랑한다" 거나 혹은 "부적절한 행위를 해서 죄송하다. 앞으로는 자중하겠다"고 말했으면, 비난 여론은 누그러졌을 것이고, 지금처럼 예능계의 흑역사로 인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애당초 한국의 방송가는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도, 고영욱처럼 도를 넘는 범죄적인 물의만 빚지 않으면 시간이 지난 후 대부분 복귀가 가능하다.
이한 이후에도 일본 언론에는 가끔 출연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문화나 한일 관계 등에 있어서는 비중 있는 논객으로 다뤄지는 편이며 2008년에는 홋카이도 TV의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최근 인터넷 상의 한일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9년에 '백제와 백제 한자음 백제어'라는 책을 한국에 발간했으며, 그가 집필에 참여한 일본어 교재는 사건 이후에도 출간되거나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같은 해 한국 서원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지명학회가 주관한 학술 대회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과의 왕래를 아주 끊은 건 아닌 듯.
2011년에는 자신이 교수로 재임하고 있는 홋카이 상과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한국철도시설공단을 방문하였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식사를 하면서 '''"홋카이 상과대학에서 한국 전문가로서 스카웃을 받아 간 것이지, 몰래 떠난 건 아니다. 솔직히 가고 싶지도 않았다. 한국인 작가의 일본 관련 서적에 비평을 했을 뿐인데 이것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라고 해명하면서 일본의 잘못된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한국의 우수성을 찬양했다고 한다.
2016년에는 일본 학술진흥회의 지원으로 일제강점기 고지도에 나온 순우리말 지명을 분석해 일제강점기 이후 순우리말 지명이 상당수 한자화되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의 특징은 일본인들이 가타카나로 음사한 우리말 지명을 분석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가타가나 음사에 대한 연구가 적어서 주목을 받는 듯. 단 한국의 고지도가 아닌 일본의 고지도만을 이용했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2017년에 다음에 블로그를 개설하였다. 블로그를 개설한 이유는 모 신문사의 기자가 직접 연락해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자, 한동안 한국과 연락을 끊던 미즈노 교수가 해당 기자와 이메일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터뷰한 내용들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 내용들은 기사화되지는 못했고, 해당 기자를 포함한 한국 내 지인들이 일반에 공개하길 원해 블로그 형식으로 공개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글이 갱신되고 있다.
일본에 돌아간 이후로는 노골적인 혐한 활동은 하지 않고 있으며, 위에서 보듯 한국을 재방문했을 때는 우호적인 언플도 간간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즈노의 전공은 한국학이고, 한국에 혐한이나 반한 인사로 찍히는 것은 한국학 전공자로서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미즈노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립서비스를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아니다.
대체로 어느 나라이든지 한국학 교수들은 한국에 우호적인 편이며 한국을 높이 평가한다. 이건 당연한 게, 한국에 관심이나 애정이 없으면 굳이 전공할 이유가 없다. 만일 한국학 전공 교수가 완전히 한국과 척을 지게 되면 당장 밥줄이 끊어지는 건 둘째치고 한국 정부 주관의 학회 참석같은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쨌든 한국과 사이가 좋을 필요가 있다. 그러니 미즈노가 한국 관계자들 앞에서 한국 칭찬 몇마디 했다고 그의 성향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미즈노는 한국에서 활동할 때부터 일관되게 한국을 저평가했다는 사실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미즈노가 마녀사냥 당했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확실히 인정하는 것은 미즈노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친한이 아니었다는 점이다.'''[5] 미즈노가 출연한 TV프로나 언론 기고문을 봐도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나 익숙함을 표시한 적은 있지만, 한국이나 한국인 자체를 높이 평가한 적은 '''전혀 없다.''' 이는 미즈노와 비슷한 성향의 구로다 가쓰히로에도 보이는 성향으로 우익적인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한국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2013년에 한국생활에 대해 발표한 글을 보면 그의 성향을 바로 알 수 있다. 해당 글에 의하면 미즈노 스스로는 자신이 아무 잘못이 없으며 그저 한국 정권교체의 희생양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자신이 쓴 극우 의혹 글들에 대한 해명은 하나도 없고 '왜 몇 년이나 지난 후에 이게 터졌나' 란 반응만 서술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단 얘기. 그리고 '''블로그 성향이 매우 혐한적이니 참고할 것.'''
일본에 돌아간 이후에는 노골적인 혐한 성향의 글을 쓰지는 않고 있으나, 위 링크의 산케이 기고문을 보면 노골적인 표현만 없을 뿐이지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알게 모르게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진 일본 우익이나 혐한의 사고를 뼛속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 이 글을 보면 마치 자신은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모든 한국 언론들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혐한들의 대표적인 논조 중 하나가 모든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좌우를 떠나 그저 정부의 철저한 어용 언론들이며 오직 정부의 명령에 따라 반일 교육만을 일삼으며 많은 국제뉴스들이 정부의 입맛에 따라 필터링되어 미개한 춍들을 세뇌시킨다고 여긴다.
즉 혐한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나 자정능력 따윈 갖추고 있지 않으며 중국, 북한의 폐쇄적인 기관지들과 똑같은 저질이라고 여긴다. 미즈노 역시 정권이 바뀐 후 모든 한국 언론들이 바뀐 한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일괄적으로 자신을 이지메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당장 이 페이지를 봐도 당시 그를 우호적으로 서술한 YTN스타의 뉴스 등이 있었고, 불순한 의도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해명을 들으러 직접 찾아가기까지 한 XTM 등도 있었다.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혐한들의 망상과는 달리 한국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잘못하면 기자들이 단체로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때리는 것은 한국 언론도 똑같다.
그의 혐한 활동이 드러난 후 우파 언론들이 그를 때릴 때 많은 좌파 언론들이나 일본 관련 단체들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동조한 것은 결코 이들이 정부의 앞잡이여서가 아니라 '''이쪽이 봤을 때도 어떻게 쉴드 쳐줄 건덕지가 없어서였을 뿐이다.''' 애초에 정권의 성향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이나 북한 고위군인 같은 존재도 아닌데, 고작 바뀐 성향 하나 때문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유명세 있던 친근한 일본인 예능인을 공격할 수는 없고 굳이 위험을 자초해 공격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한국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해서 정부가 함부로 애먼 사람 하나 잡으려고 들다간 제대로 역풍을 맞아 두들겨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즈노는 자신이 마치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한국이 북한처럼 모든 언론을 동원해 자신을 따돌림하는 바람에 해명조차 못한 채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온 가련한 희생양인 것마냥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
미즈노가 장씨의 언플 때문에 과도하게 비난받은 것은 사실이고, 그가 일본으로 간 이후 케이블 방송국에서 무작정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분명히 방송사가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피해자이기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는다.
일단 미즈노가 장씨의 의도적인 디스에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한국을 떠나버린 것은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하기에는 정말로 부적절한 행위였다. 게다가 그 이후로도 거의 한국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장씨의 비방 및 중상이 더 확산된 경향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 오래 산 만큼 오히려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는 적극적인 반론을 펼친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이 있으나, 그는 확실한 언론계 인맥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려고 했다면 분명히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센 힘을 가진 두 언론인 조선일보, KBS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반론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면 그런 디스에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도조차 안 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법정에서도 피고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면 유죄를 시인하는 것으로 보는데, 반론 보도나 법적 공방을 제쳐두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결국은 스스로의 "혐의"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뭐 성격상 진실공방 같은 진흙탕 싸움이 될 게 뻔하니 염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만 말이다.
혹자는 2005년에 조영남이 친일 선언을 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은 것을 들어 미즈노도 비슷하게 마녀사냥을 당했지만 한국언론의 냄비 근성에 방어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조영남은 정말로 욕 먹을 작정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오해 드립의 미즈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2005년 8월경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방송과 언론 모두 자기 이야기를 듣지 않아 해명할 수가 없었다.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해명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 후에도 적극적인 해명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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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저서 '한국인의 일본위사'의 작가 프로필.
미즈노 자신의 저서에서는 필명(筆名)인 노히라 슌스이와 함께 사진과 프로필이 자세히 나오며, 경력도 적혀 있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필명 노히라에는 친절히 후리가나까지 붙여준 반면, 자신의 본명이 미즈노라는 사실은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다. 유명 작가나 연예인이 본명이 아닌 필명이나 예명을 쓰는 경우는 흔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려 인지도가 높아져야 유리한 학자가 왜 극우 잡지에 가명으로 글을 기고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논문이나 출판물이 많으면 교수 채용에 유리하지만, 일본의 대학들도 아세아 대학이나 다쿠쇼쿠 대학과 같은 극보수 성향의 대학을 제외하면 극우 잡지에 혐한 글을 쓰는 필자를 채용하지는 않는다. 고로 이렇게 가명을 쓴 것은 첫째로 한국인의 눈으로부터 자신을 감추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명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는 본래 이름인 미즈노 슌페이(水野俊平)의 한자 순서를 뒤바꾼 이름이며, 이미 1997년 한국에서 출판한 '일본인이 쓴 반일이야기'에서도 노히라 순수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2002년 출판된 한국인의 일본위사라는 저서에서도 같은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정체를 숨기려고 가명을 사용한 작가가 한국에서의 자신의 경력과 얼굴 사진까지 정확하게 포함하여 프로필에 기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체를 숨기려고 가명을 사용한 작가가 어째서 자신의 출신지와 출신학교, 그리고 한국 전남대학교 강사인 현 직업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프로필을 제공한다는 말인가. 심지어는 한국 KBS 출연 경력까지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본명을 놔두고 필명을 사용하는 일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비교적 흔한 일이며, 작가의 프로필 상에서 작가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가 제공된 만큼 굳이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가명을 사용했다는 추정은 무리한 가정이다.
위의 문단들은 선의로 해석한다면 오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미즈노가 빼도박도 못하게 혐한으로 낙인찍힌 것은 그가 일본에서도 극우잡지라고 알려져 있는 쇼쿤이나 SAPIO, 겐다이 코리아 등에 한국에 비판적인 글을 기고했기 때문이다. 미즈노가 글을 썼던 SAPIO는 그 유명한 김완섭과 고 젠카가 고정적으로 기고하는 잡지이며, 나머지 잡지도 '''SAPIO와 대동소이한 논조다.'''
다시 말해 '''미즈노가 혐한 혐의를 받은 것은, 배달부나 그밖의 미즈노 옹호론자들의 주장처럼 한국에 고언이나 쓴소리를 했다가 마녀사냥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익 잡지에 혐한적인 글을 쓴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능 언어영역에서 자주 나오는 강조의 오류의 전형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미즈노 교수의 저서가 국내에서 출간되었을 때 한국 학계의 평가는 일부 비판을 제외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환빠들에 대해서 미즈노가 정당한 논리와 고증으로 비판한 것은 한국의 일반에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고 그 당시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배달부와 미즈노 옹호자들은 포인트를 잘못 짚은 것이다.
미즈노는 그 잡지들의 편집진들이 어떤 의도로 그 글을 싣고 독자들이 어떠한 맥락으로 읽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당시 교육자와 방송인이라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적절한 처신이라 볼 수 없다. 때문에 그것이 이중적인 행동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공인의 매너 문제다. 하물며 한국인이 주는 봉급을 받던 그가 그런 식으로 이중적인 행동을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시사 관련 잡지는 뚜렷한 사상 경향이 있다. 기고자의 성향은 철저히 잡지와 코드가 맞아야 한다. 월간조선이 일반적으로 조갑제의 글을 싣고 진중권이나 박노자의 글을 싣지 않는 것처럼 SAPIO나 쇼쿤류의 잡지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들 잡지는 미즈노가 단순히 한국 전문가라고 해서 글을 실어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수까지 하고 있는 미즈노가 그 잡지의 성향을 모르고 기고했을 리도 없다. 단순한 사실을 이야기해도 싣는 매체에 따라 톤이 달라진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매 호마다 혐한 기사가 실리는 '''쇼쿤, SAPIO와 같은 잡지에 기고하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 혐한 성향이라는 것을 못박은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이 문서에서 미즈노 교수가 억울한 피해자인 양 서술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비판하거나 혹은 한국인의 자의적인 역사해석을 비판한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좋은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혐한 매체에 계속 기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글이나 행동이 좋은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 즉, 미즈노 교수가 학문적 양심에서 우러나온 정당한 비판을 한 게 아니라 혐한의 눈에 들만한 짓을 한 것이기 때문에 옹호하기 힘든 것이다.
미즈노 옹호자들은 역사 고증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것을 "지나치게 강한 민족주의에 빠진 한국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반일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하라"는 충심으로 기고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가 지적한 몇몇 사실은 분명히 한국인이 검토해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며, 역사는 항상 여러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즈노가 실제 우익논조의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보면 혐한이나 우익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들이 다분하다. 미즈노 교수가 2001년 SAPIO에 처음으로 기고한 글이 2001년 9월 26일자 SAPIO, <'특집, 한국 반일 증후군의 정체' 라스트 신은 항상 '일본의 식민지화' '지진으로 침몰' '원폭투하' 다. 엄청 팔린다! 엉터리 반일소설의 "어째서, 이렇게 되는거야!" 特集【韓国「反日症候群」の正体】ラストシーンは決まって「日本を植民地化」「地震で沈没」「原爆投下」だ バカ売れ!トンデモ反日小説の「どうして、こうなるの!>이다.
이 글에서 미즈노는 한국 내에서 출간된 일본을 공격한다 식의 소설의 특징을 4가지 항목으로 분류해 조목조목 비판했는데,
(1) 일본의 자위대가 한국을 침략한다.
(2) 일본 내에 국수주의적 집단이 있어 정재계를 좌지우지한다.
(3) 주인공에게 반한 일본인 여성이 꼭 등장한다.
(4) 결국 한국이 승리한다. 전반적인 내용 자체는 한국에서 출간한 저서인 '엉터리 책 비판' 과 별 차이가 없지만, 말미에 '''한국인은 옛날 일본에 자신들이 문명을 전수해주었다는 우월감과 현재 일본에 경제적으로 뒤쳐지는 자신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 반일의 원동력이다. 한국인이 일본을 이기고 싶다(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한 한국 반일 (소설)은 잘 나갈 것''' 이라며 한국인에게 반일은 공통된 정서라고 주장했다. 원문 번역
이후 2003년에 재차 SAPIO에 노무현 정부 시기 한국을 친북반미국가로 주장하며 일본의 위기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현세의 '남벌' 같은 맹목적인 반일/혐일 콘텐츠들이 대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던건 명백한 사실이다. 또 이런 분위기를 이어받아서 PC통신과 인터넷에서도 치욕의 역사를 다시 썼네 어쩌네 하면서 일본을 공격한다,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고 한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 같은 개소리를 늘어놓는 3류 대체역사소설들이 인기를 끌던 시대도 분명히 있었다.[8] 하지만 이렇게 말초적으로 민족정서를 자극하는 혐일/반일 콘텐츠들은 가루가 되도록 비판을 받으면서 미즈노 교수가 국내에서 활동하던 2000년대가 되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실제 년도별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흥행한 드라마의 목록을 살펴보아도 2000년대 이후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류의 반일/혐일 창작물이 흥행한 예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서점가에서는 반일은 커녕 일본소설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현상 때문에 한국문학 위기론이 진지하게 제기될 정도였다. 한국 시장에서 일본소설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은 2000년대 이후인데 그 시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미즈노 교수가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미즈노의 책이 한국에 출간되었으며, 기고문이 책의 내용과 다를 게 없다고 하나 미즈노 교수의 저서인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과 "속터지는 일본인", "다테마에를 넘어 일본인 속으로"는 국내에서 모두 2003년 이전에 출판된 것이다. 정작 기고문 자체는 책이 한국에 출판되고 난 2003년 이후에 작성된 것이며 문제가 되는 극우지 기고문은 한국에서 펴낸 저서에서는 당연히 빠져 있다.
일본인 중에는 한국을 잘 안다고 해서 지한파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미즈노의 행각은 소위 "지한파"라고 해서 절대 친한이 아니며 오히려 한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반 혐한보다도 더욱 교묘하고 정교하게 혐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예로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무토 마사토시가 있는데, 한국어에 매우 유창하며,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의 방송에 출연하여 모금활동에 한국어로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 돌아가서는 혐한서적까지 펴내면서 혐한활동을 하고 있다.
미즈노도 마찬가지인데, 무토보다도 더 한심한 것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부터 구로다 가쓰히로류의 '''지한파 혐한 논객 짓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9] 하지만 구로다의 경우 한국논단이나 월간조선 같은 극보수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조선일보에 책도 여러 권 내긴 했지만 적어도 미즈노처럼 '''한국의 기관'''에 소속되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구로다 가쓰히로도 서강대에서 시간 강사로서 강단에 선 적은 있다. 그러나 시간 강사와 교수의 위상은 천지차이이며, 일반적으로 시간 강사는 그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 외에도 구로다와의 차이점이라면 구로다는 산케이 신문에 고용된 기자로서 일본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며, 그가 쓰는 혐한 글은 익명이 아니라 실명으로 발표되는 것이지만, 미즈노는 방송에서는 친근한 이미지를 통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돈을 벌면서도 일본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일본 우익 중에서 친한, 지한파를 자처하는 이들의 한국관이 대체로 그렇지만, 이 사람이나 구로다 가쓰히로는 '''처음부터 한국이 일본과 대등한 국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일본보다 한참 떨어진 이류 국가지만 일본의 영향권에 있어야 하는 나라로 한국을 평가하고 있다.''' 이런 한국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한국에 우호적인 언플을 할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을 얕잡아보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다.[10] '''이런 사람을 친한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사람이 한국에 떳떳치 못한 일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쇼쿤'이나 'SAPIO', '주간문춘'과 같은 혐한매체에 한국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글을 쓴 사실은 어떻게 해도 되돌리기 힘들다.
혹자는 그가 지한파였다 하더라도 한일 국민감정상 한국에 대해 좋은 말만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미즈노를 변호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즈노의 만행이 폭로 당했던 2005년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옳지 못한 변론이다. 2000년대 중반은 일본 헤이세이 연호 이후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한일관계에 그나마 (지금까지는) 마지막 숨통이 트이고 있던 시기였고, 미즈노 사건은 당시 이례적으로 온화하던 한일관계를 정면으로 역행하여 한국 내 일본인들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실추시킨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사건의 당사자인 미즈노에게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다.
(1968. 01. 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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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력
일본의 한국학자. 전남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前 전남대학교 일문학과 교수. 現 홋카이 상과대학(北海商科大学) 한국학 교수. 노히라 슌스이(野平 俊水)[1] 라는 필명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내에서는 친근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해 매우 유명해졌으나 2005년 이후에는 극우인 게 들통나 일본으로 쫓겨난 이중인격자로 알려져 있다.
1968년 일본 홋카이도 무로란시 출생. 이후 나라현에 있는 덴리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였으며, 1990년 한국의 전남대학교에 유학을 왔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전남대에서 일문학과 교수로 채용되었다. 이 당시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3남을 두었다.
박사 과정 재학 당시부터 신문 기고와 방송 출연을 하기 시작했고, 교수로 지내던 시절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으며, 유창한 사투리 구사와 위트 있는 이야기로 인기를 끌어 TV 광고도 찍는 등 꽤 잘 나가는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2005년부터 한국에서 후술할 장 모씨에 의해 극우파 의혹이 점점 번져갔고, 이후 별다른 해명도 하지 않은 채 2006년 한국을 떠나 홋카이 상과대학의 한국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후술할 여러 논란으로 그에 대한 옹호론도 있지만 혐한 극우매체에 투고했다는 여러 증거들과 필명 사용, 미즈노 본인의 해명 불응으로 인해 아직도 논란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네이버 등지에서는 미즈노 '순'페이로도 불리는데, 이는 완성형에 '슌'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에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드물게 업데이트를 하는 듯 보인다.
일본 주간 현대에 기고한 글
2. 활동 내역
일단 그가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4년 조선일보에서 연재하던 '노래하는 역사'의 거의 매회 연재마다 반박 기고를 꼬박꼬박 하면서부터이다. 이 연재물은 작가였던 이영희[2] 가 기고한 것이었는데 만요슈를 "호남 사투리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고전 일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해석되어야 한다"며, 자의적 해석으로 일관했다.
이영희의 해석은 원문 한자를 일본어와 한국어 음으로 제멋대로 읽어 문장을 끼워 맞춰 만드는 언어유희 수준이었다. 이렇게 만들어낸 해석으로부터 유추한 여러 유사역사학 주장들, 예를 들어 연개소문이나 문무왕이 일본에 가서 천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매회 연재를 채웠다. 이를 미즈노는 거의 매 연재마다 독자 기고를 통해 반박하면서 서서히 한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영희는 그 이전 전두환 정권에서 공연윤리위원장으로 한국 영화에 대한 가위질로 악명을 떨쳤던 인물이기 때문에 문화계 전반에서 평판이 극히 안 좋은 인물이었다. 1986년에 김수용 감독은 중광스님의 일대기를 다룬 "허튼소리"에 대한 그녀의 가위질에 항의해서 감독을 은퇴했을 정도다. 이런 사람이 이젠 조선일보라는 거대 신문 지면을 빌어서 환빠짓거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이영희를 꼬박꼬박 조목조목 반박하는 미즈노는 '''한일 양쪽 문학에 해박한 똑똑한 학자'''라는 좋은 인상을 주었다.
참고로 이영희의 이 연재물은 간 크게도 일본에서도 출간되었는데 일본 학계로부터 "'''조악한 방법론'''"과 "'''자의적 해석'''"으로 비판받았다. 이미 만엽집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 에도시대부터 철저히 이뤄져왔다.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에도시대 학자가 만요슈와 고사기에 쓰인 만요가나를 이후 거의 이설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연구해서 그 해독법을 만들어냈다. 그의 방법론은 후대에 신라의 향가 해석법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때문에 이영희식의 해석법은 유사역사학의 범주에도 못드는 엉터리였다. 더 큰 모순은 이 연재물이 친일적인 일선동조론과 맥이 닿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한국기원설을 내세우며 환빠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친일파의 논리였다.'''[3]
미즈노는 이렇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전남대 박사 졸업 후에도 바로 모교의 일문과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고, 여러 책을 펴내며 한국 중심 역사관과 한국식의 일본사 해석을 비판했다. 이런 책으로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오키타 쇼리와 공저)"과 "속터지는 일본인", "다테마에를 넘어 일본인 속으로" 등이 있다.
참고로 그의 저서 중 하나인《속터지는 일본인》에서는 '일본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지도는 1585년에 나온 곤잘레스 디 멘도사의 지나대왕국지(支那大王國志)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듣기 거북하겠지만 사실이다. 동해 항목 참조.
한국에서 한때 유행한 일본을 공격한다식의 밀리터리 소설에 대해서 제대로 깐 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김경진의 데프콘 2부 한일전쟁 편. 읽어보면 미즈노 교수가 책을 굉장히 자세하게 읽고 글을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데프콘 류의 고증 오류나 무리한 설정들을 크게 비판하기는 했지만, 이건 장르의 문제지 한국의 밀리터리 소설만 꼭 집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본만 봐도 이런 류의 소설이나 만화는 한국보다 한술 더 뜬다.
현재도 학자로서 한국에 대하여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으며, 스사노오를 한국에서 소머리라고 주장하는 것을 일제강점기 때 내선일체로 인한 역사왜곡에 비롯되었다는 설을 내놓기도 하였다.
이렇듯이 그는 저서에서 객관성을 주장하면서 한국인 중심의 역사관이나 한국 중심의 민족주의를 비판했으며, 한국어를 잘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일본어 교재도 여러 권 냈는데 방송의 인지도 때문에 미즈노가 쓴 일본어 교재는 외국어 서적 중에서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3. 극우 잡지에 쓴 글이 들통나다
미즈노가 극우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밝혀졌다.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신동아에 자세히 실렸다. #[4]
4. 이한 이후
이후 한국 언론에는 전혀 비치지 않았으며, 극우파 의혹에 대한 해명도 일절 하지 않았다.
4.1. 케이블 티비 방송사 XTM의 취재 요구 거절
논란이 된 XTM의 프로그램 영상.(인터뷰를 거절하며) 이제 나는 더 이상 한국과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XTM이 시사 버라이어티 쇼로 그가 근무하는 대학교와 자택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했다. 이 사건 때문에 나쁜 놈이라는 인식이 한국 내에 널리 퍼졌는데, 사실 일본의 방송은 계약을 철저히 중요시해서 사전에 연락이나 상의를 안 하면 그 누구든지 일단 털린다. 한국의 경우라도 '''출연료에 대한 논의나 촬영에 대한 허락도 전혀 한 적이 없는데 갑작스레 장비 들고 불쑥 찾아와 다짜고짜 우리와의 정을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하라고 한다면 어느 연예인이 이를 허락해줄까?''' YTN스타에서 이에 대한 우려 섞인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꼭 미즈노가 잘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XTM이 무례한 짓을 했지만, 본인이 만약 정말로 한국에서 억울한 누명을 썼다면 다짜고짜 찾아온 카메라 앞에서라도 얼마든지 해명할 수 있었으며, 하다못해 사과를 하든지 혹은 오해 드립을 쳤어도 한국의 여론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나는 이제 한국과 상관 없는 사람이다"는 식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한 것은 한국의 여론을 악화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언플성으로라도 "그거 다 오해였고, 나는 아직도 한국을 사랑한다" 거나 혹은 "부적절한 행위를 해서 죄송하다. 앞으로는 자중하겠다"고 말했으면, 비난 여론은 누그러졌을 것이고, 지금처럼 예능계의 흑역사로 인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애당초 한국의 방송가는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도, 고영욱처럼 도를 넘는 범죄적인 물의만 빚지 않으면 시간이 지난 후 대부분 복귀가 가능하다.
4.2. 이한 이후 한국 관련 활동
이한 이후에도 일본 언론에는 가끔 출연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문화나 한일 관계 등에 있어서는 비중 있는 논객으로 다뤄지는 편이며 2008년에는 홋카이도 TV의 인터뷰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최근 인터넷 상의 한일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2009년에 '백제와 백제 한자음 백제어'라는 책을 한국에 발간했으며, 그가 집필에 참여한 일본어 교재는 사건 이후에도 출간되거나 개정이 이뤄지고 있다. 또한 같은 해 한국 서원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지명학회가 주관한 학술 대회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과의 왕래를 아주 끊은 건 아닌 듯.
2011년에는 자신이 교수로 재임하고 있는 홋카이 상과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한국철도시설공단을 방문하였다.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식사를 하면서 '''"홋카이 상과대학에서 한국 전문가로서 스카웃을 받아 간 것이지, 몰래 떠난 건 아니다. 솔직히 가고 싶지도 않았다. 한국인 작가의 일본 관련 서적에 비평을 했을 뿐인데 이것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라고 해명하면서 일본의 잘못된 사회 구조를 비판하고 한국의 우수성을 찬양했다고 한다.
2016년에는 일본 학술진흥회의 지원으로 일제강점기 고지도에 나온 순우리말 지명을 분석해 일제강점기 이후 순우리말 지명이 상당수 한자화되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의 특징은 일본인들이 가타카나로 음사한 우리말 지명을 분석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가타가나 음사에 대한 연구가 적어서 주목을 받는 듯. 단 한국의 고지도가 아닌 일본의 고지도만을 이용했다는 한계는 존재한다.
2017년에 다음에 블로그를 개설하였다. 블로그를 개설한 이유는 모 신문사의 기자가 직접 연락해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자, 한동안 한국과 연락을 끊던 미즈노 교수가 해당 기자와 이메일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터뷰한 내용들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위 내용들은 기사화되지는 못했고, 해당 기자를 포함한 한국 내 지인들이 일반에 공개하길 원해 블로그 형식으로 공개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글이 갱신되고 있다.
4.3. 과연 지난 혐한 활동을 반성하고 있는가?
일본에 돌아간 이후로는 노골적인 혐한 활동은 하지 않고 있으며, 위에서 보듯 한국을 재방문했을 때는 우호적인 언플도 간간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즈노의 전공은 한국학이고, 한국에 혐한이나 반한 인사로 찍히는 것은 한국학 전공자로서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미즈노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립서비스를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아니다.
대체로 어느 나라이든지 한국학 교수들은 한국에 우호적인 편이며 한국을 높이 평가한다. 이건 당연한 게, 한국에 관심이나 애정이 없으면 굳이 전공할 이유가 없다. 만일 한국학 전공 교수가 완전히 한국과 척을 지게 되면 당장 밥줄이 끊어지는 건 둘째치고 한국 정부 주관의 학회 참석같은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쨌든 한국과 사이가 좋을 필요가 있다. 그러니 미즈노가 한국 관계자들 앞에서 한국 칭찬 몇마디 했다고 그의 성향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미즈노는 한국에서 활동할 때부터 일관되게 한국을 저평가했다는 사실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즉, 미즈노가 마녀사냥 당했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확실히 인정하는 것은 미즈노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친한이 아니었다는 점이다.'''[5] 미즈노가 출연한 TV프로나 언론 기고문을 봐도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나 익숙함을 표시한 적은 있지만, 한국이나 한국인 자체를 높이 평가한 적은 '''전혀 없다.''' 이는 미즈노와 비슷한 성향의 구로다 가쓰히로에도 보이는 성향으로 우익적인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한국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2013년에 한국생활에 대해 발표한 글을 보면 그의 성향을 바로 알 수 있다. 해당 글에 의하면 미즈노 스스로는 자신이 아무 잘못이 없으며 그저 한국 정권교체의 희생양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자신이 쓴 극우 의혹 글들에 대한 해명은 하나도 없고 '왜 몇 년이나 지난 후에 이게 터졌나' 란 반응만 서술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단 얘기. 그리고 '''블로그 성향이 매우 혐한적이니 참고할 것.'''
일본에 돌아간 이후에는 노골적인 혐한 성향의 글을 쓰지는 않고 있으나, 위 링크의 산케이 기고문을 보면 노골적인 표현만 없을 뿐이지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알게 모르게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진 일본 우익이나 혐한의 사고를 뼛속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 이 글을 보면 마치 자신은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모든 한국 언론들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혐한들의 대표적인 논조 중 하나가 모든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좌우를 떠나 그저 정부의 철저한 어용 언론들이며 오직 정부의 명령에 따라 반일 교육만을 일삼으며 많은 국제뉴스들이 정부의 입맛에 따라 필터링되어 미개한 춍들을 세뇌시킨다고 여긴다.
즉 혐한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나 자정능력 따윈 갖추고 있지 않으며 중국, 북한의 폐쇄적인 기관지들과 똑같은 저질이라고 여긴다. 미즈노 역시 정권이 바뀐 후 모든 한국 언론들이 바뀐 한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일괄적으로 자신을 이지메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당장 이 페이지를 봐도 당시 그를 우호적으로 서술한 YTN스타의 뉴스 등이 있었고, 불순한 의도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해명을 들으러 직접 찾아가기까지 한 XTM 등도 있었다.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혐한들의 망상과는 달리 한국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잘못하면 기자들이 단체로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때리는 것은 한국 언론도 똑같다.
그의 혐한 활동이 드러난 후 우파 언론들이 그를 때릴 때 많은 좌파 언론들이나 일본 관련 단체들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동조한 것은 결코 이들이 정부의 앞잡이여서가 아니라 '''이쪽이 봤을 때도 어떻게 쉴드 쳐줄 건덕지가 없어서였을 뿐이다.''' 애초에 정권의 성향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이나 북한 고위군인 같은 존재도 아닌데, 고작 바뀐 성향 하나 때문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유명세 있던 친근한 일본인 예능인을 공격할 수는 없고 굳이 위험을 자초해 공격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한국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해서 정부가 함부로 애먼 사람 하나 잡으려고 들다간 제대로 역풍을 맞아 두들겨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즈노는 자신이 마치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한국이 북한처럼 모든 언론을 동원해 자신을 따돌림하는 바람에 해명조차 못한 채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온 가련한 희생양인 것마냥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
4.4. 미즈노 옹호론의 요지
- 미즈노가 기고한 글들은 반한적이기보다는 모두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옹호론의 입장에서 미즈노 교수의 저서나 주장을 분석한 블로그 참조.
- 미즈노가 쓴 필명 "노히라 슌스이"는 그저 자신의 이름 글자의 순서를 바꾼 필명일 뿐, 신분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 일본어의 한자 읽기는 같은 한자로 써도 여러가지가 나올 수 있다. 미즈노 옹호자들은 노히라 슌스이는 그저 한자를 바꾼 이름이어서 한국인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신분을 감추려고 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일본어나 일본 이름 읽기에 상당한 지식이 있지 않고서는 노히라 슌스이와 미즈노 슌페이의 이름만 보고서는 한자만 바꾸었다는 것을 쉽게 알아채는 것이 불가능하다.
- 극우파와는 먼 "맛의 달인"의 저자 카리야 테츠가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비판하다가 극우파로 몰려 수많은 인신공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 미즈노도 비슷하게 오해를 받았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 가령 천황제를 부정하고 일본의 전쟁책임론을 주장하는 오에 겐사부로와 같은 사람들도 대체로 한국의 강력한 민족주의는 부정적으로 본다. 그것을 가지고 그들이 반한 인사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들과 혐한 우익인사들은 질적으로 다른 인물들이다.
- 미즈노는 "반일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하라"는 의도로 한국인이 잘못 알고 있는 역사적 오류들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저런 책들을 펴낸 것이다. 또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역사적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편적인 교류만 해서는 진정한 우호를 이룰 수 없다' 라고 주장했다.
- 미즈노는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인정했으며, 위안부 문제에서도 사과했다. 문제가 된 '한국인의 일본위사'의 서문에서도 "한국인이 일본인에 대하여 하는 비판은 정론"이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단, 이는 '배달부' 블로그와 상관 없이 인터넷 상에 옹호론이 퍼져나가며 생겨난 말로 추정된다. 미즈노의 글 그 어디에도 독도의 영유권이 한국에 있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으며, 독도 영유권 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미즈노가 언급한 적 자체가 없다.
- XTM과 같은 언론의 미즈노에 대한 공격은 타진요를 방불케 하는 것이다.
5. 과연 억울한 오해의 피해자인가?
미즈노가 장씨의 언플 때문에 과도하게 비난받은 것은 사실이고, 그가 일본으로 간 이후 케이블 방송국에서 무작정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분명히 방송사가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피해자이기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는다.
5.1. 왜 언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나
일단 미즈노가 장씨의 의도적인 디스에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해명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한국을 떠나버린 것은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하기에는 정말로 부적절한 행위였다. 게다가 그 이후로도 거의 한국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장씨의 비방 및 중상이 더 확산된 경향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 오래 산 만큼 오히려 이러한 사안에 대하여는 적극적인 반론을 펼친다고 해서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반론이 있으나, 그는 확실한 언론계 인맥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려고 했다면 분명히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센 힘을 가진 두 언론인 조선일보, KBS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반론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면 그런 디스에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시도조차 안 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법정에서도 피고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하지 않으면 유죄를 시인하는 것으로 보는데, 반론 보도나 법적 공방을 제쳐두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결국은 스스로의 "혐의"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뭐 성격상 진실공방 같은 진흙탕 싸움이 될 게 뻔하니 염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만 말이다.
혹자는 2005년에 조영남이 친일 선언을 했다가 집중포화를 맞은 것을 들어 미즈노도 비슷하게 마녀사냥을 당했지만 한국언론의 냄비 근성에 방어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조영남은 정말로 욕 먹을 작정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오해 드립의 미즈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2005년 8월경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방송과 언론 모두 자기 이야기를 듣지 않아 해명할 수가 없었다.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해명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 후에도 적극적인 해명을 시도한 적은 없었다.
5.2. 왜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기고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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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저서 '한국인의 일본위사'의 작가 프로필.
미즈노 자신의 저서에서는 필명(筆名)인 노히라 슌스이와 함께 사진과 프로필이 자세히 나오며, 경력도 적혀 있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필명 노히라에는 친절히 후리가나까지 붙여준 반면, 자신의 본명이 미즈노라는 사실은 어디에도 밝히지 않았다. 유명 작가나 연예인이 본명이 아닌 필명이나 예명을 쓰는 경우는 흔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려 인지도가 높아져야 유리한 학자가 왜 극우 잡지에 가명으로 글을 기고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논문이나 출판물이 많으면 교수 채용에 유리하지만, 일본의 대학들도 아세아 대학이나 다쿠쇼쿠 대학과 같은 극보수 성향의 대학을 제외하면 극우 잡지에 혐한 글을 쓰는 필자를 채용하지는 않는다. 고로 이렇게 가명을 쓴 것은 첫째로 한국인의 눈으로부터 자신을 감추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명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는 본래 이름인 미즈노 슌페이(水野俊平)의 한자 순서를 뒤바꾼 이름이며, 이미 1997년 한국에서 출판한 '일본인이 쓴 반일이야기'에서도 노히라 순수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2002년 출판된 한국인의 일본위사라는 저서에서도 같은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정체를 숨기려고 가명을 사용한 작가가 한국에서의 자신의 경력과 얼굴 사진까지 정확하게 포함하여 프로필에 기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체를 숨기려고 가명을 사용한 작가가 어째서 자신의 출신지와 출신학교, 그리고 한국 전남대학교 강사인 현 직업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프로필을 제공한다는 말인가. 심지어는 한국 KBS 출연 경력까지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본명을 놔두고 필명을 사용하는 일은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비교적 흔한 일이며, 작가의 프로필 상에서 작가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정보가 제공된 만큼 굳이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가명을 사용했다는 추정은 무리한 가정이다.
5.3. 기고한 매체의 문제
위의 문단들은 선의로 해석한다면 오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미즈노가 빼도박도 못하게 혐한으로 낙인찍힌 것은 그가 일본에서도 극우잡지라고 알려져 있는 쇼쿤이나 SAPIO, 겐다이 코리아 등에 한국에 비판적인 글을 기고했기 때문이다. 미즈노가 글을 썼던 SAPIO는 그 유명한 김완섭과 고 젠카가 고정적으로 기고하는 잡지이며, 나머지 잡지도 '''SAPIO와 대동소이한 논조다.'''
다시 말해 '''미즈노가 혐한 혐의를 받은 것은, 배달부나 그밖의 미즈노 옹호론자들의 주장처럼 한국에 고언이나 쓴소리를 했다가 마녀사냥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익 잡지에 혐한적인 글을 쓴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능 언어영역에서 자주 나오는 강조의 오류의 전형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미즈노 교수의 저서가 국내에서 출간되었을 때 한국 학계의 평가는 일부 비판을 제외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해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환빠들에 대해서 미즈노가 정당한 논리와 고증으로 비판한 것은 한국의 일반에서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고 그 당시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배달부와 미즈노 옹호자들은 포인트를 잘못 짚은 것이다.
미즈노는 그 잡지들의 편집진들이 어떤 의도로 그 글을 싣고 독자들이 어떠한 맥락으로 읽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당시 교육자와 방송인이라는 직업을 가졌던 사람으로서 적절한 처신이라 볼 수 없다. 때문에 그것이 이중적인 행동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공인의 매너 문제다. 하물며 한국인이 주는 봉급을 받던 그가 그런 식으로 이중적인 행동을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게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시사 관련 잡지는 뚜렷한 사상 경향이 있다. 기고자의 성향은 철저히 잡지와 코드가 맞아야 한다. 월간조선이 일반적으로 조갑제의 글을 싣고 진중권이나 박노자의 글을 싣지 않는 것처럼 SAPIO나 쇼쿤류의 잡지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들 잡지는 미즈노가 단순히 한국 전문가라고 해서 글을 실어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수까지 하고 있는 미즈노가 그 잡지의 성향을 모르고 기고했을 리도 없다. 단순한 사실을 이야기해도 싣는 매체에 따라 톤이 달라진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매 호마다 혐한 기사가 실리는 '''쇼쿤, SAPIO와 같은 잡지에 기고하는 것은 당연히 자신이 혐한 성향이라는 것을 못박은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이 문서에서 미즈노 교수가 억울한 피해자인 양 서술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과도한 민족주의를 비판하거나 혹은 한국인의 자의적인 역사해석을 비판한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좋은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혐한 매체에 계속 기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글이나 행동이 좋은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 즉, 미즈노 교수가 학문적 양심에서 우러나온 정당한 비판을 한 게 아니라 혐한의 눈에 들만한 짓을 한 것이기 때문에 옹호하기 힘든 것이다.
5.4. 글의 어조나 논지 면에서
미즈노 옹호자들은 역사 고증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것을 "지나치게 강한 민족주의에 빠진 한국인들을 일깨우기 위해 반일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하라"는 충심으로 기고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가 지적한 몇몇 사실은 분명히 한국인이 검토해볼 가치가 있는 것들이며, 역사는 항상 여러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즈노가 실제 우익논조의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보면 혐한이나 우익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들이 다분하다. 미즈노 교수가 2001년 SAPIO에 처음으로 기고한 글이 2001년 9월 26일자 SAPIO, <'특집, 한국 반일 증후군의 정체' 라스트 신은 항상 '일본의 식민지화' '지진으로 침몰' '원폭투하' 다. 엄청 팔린다! 엉터리 반일소설의 "어째서, 이렇게 되는거야!" 特集【韓国「反日症候群」の正体】ラストシーンは決まって「日本を植民地化」「地震で沈没」「原爆投下」だ バカ売れ!トンデモ反日小説の「どうして、こうなるの!>이다.
이 글에서 미즈노는 한국 내에서 출간된 일본을 공격한다 식의 소설의 특징을 4가지 항목으로 분류해 조목조목 비판했는데,
(1) 일본의 자위대가 한국을 침략한다.
(2) 일본 내에 국수주의적 집단이 있어 정재계를 좌지우지한다.
(3) 주인공에게 반한 일본인 여성이 꼭 등장한다.
(4) 결국 한국이 승리한다. 전반적인 내용 자체는 한국에서 출간한 저서인 '엉터리 책 비판' 과 별 차이가 없지만, 말미에 '''한국인은 옛날 일본에 자신들이 문명을 전수해주었다는 우월감과 현재 일본에 경제적으로 뒤쳐지는 자신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 반일의 원동력이다. 한국인이 일본을 이기고 싶다(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한 한국 반일 (소설)은 잘 나갈 것''' 이라며 한국인에게 반일은 공통된 정서라고 주장했다. 원문 번역
이후 2003년에 재차 SAPIO에 노무현 정부 시기 한국을 친북반미국가로 주장하며 일본의 위기라는 내용의 글을 썼다.
- 2003년 10월 8일자 SAPIO, <친북 옹호, 북한 "미녀군단"에 완전히 농락당한 한국판 "바보, 바보 남북 멜로드라마"의 노텐키(시뮬레이션 레포트 빈발하는 노동 쟁의, 경제 추락, 그리고 북한 밀어주기-노무현 정권의 정체를 볼 수 있는 "친북반미국가" 한국의 폭주, 이것은 일본의 위기다!) 親北シンパ 北朝鮮「美女軍団」にまんまと籠絡された韓国版「アホ・バカ南北メロドラマ」のノー天気 (SIMULATION REPORT 頻発する労働争議、経済失速、そして北朝鮮シフト, 盧武鉉政権の正体見えた「親北朝鮮国家」韓国の暴走, これは日本の危機だ!)>[6]
- 2004년 8월 18일자 SAPIO 80~82p, <충격, '겨울연가'에서는 알 수 없는 한국 드라마 '엉터리 일본인' 仰天, 「冬ソナ」では分からない韓国ドラマ「トンデモ日本人」>
- 쇼쿤 2004년 8월호 177~184p, 엣 '욘사마' 까지도 반일? '겨울연가'에서 한일우호를 부추기는 건 좋지만, 한국 드라마는 천황 암살과 일본에 핵미사일을 투하하는 드라마로 가득 えっ「ヨン様」までが反日?「冬ソナ」で日韓親善を煽るのはいいが、韓国ドラマは天皇射殺や日本に核ミサイル撃ち込むドラマで一杯) 원문 번역[7]
1990년대 초중반부터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현세의 '남벌' 같은 맹목적인 반일/혐일 콘텐츠들이 대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던건 명백한 사실이다. 또 이런 분위기를 이어받아서 PC통신과 인터넷에서도 치욕의 역사를 다시 썼네 어쩌네 하면서 일본을 공격한다, 일본을 식민지로 만들고 한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 같은 개소리를 늘어놓는 3류 대체역사소설들이 인기를 끌던 시대도 분명히 있었다.[8] 하지만 이렇게 말초적으로 민족정서를 자극하는 혐일/반일 콘텐츠들은 가루가 되도록 비판을 받으면서 미즈노 교수가 국내에서 활동하던 2000년대가 되면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실제 년도별 베스트셀러 목록이나 흥행한 드라마의 목록을 살펴보아도 2000년대 이후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류의 반일/혐일 창작물이 흥행한 예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서점가에서는 반일은 커녕 일본소설들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현상 때문에 한국문학 위기론이 진지하게 제기될 정도였다. 한국 시장에서 일본소설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은 2000년대 이후인데 그 시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미즈노 교수가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미즈노의 책이 한국에 출간되었으며, 기고문이 책의 내용과 다를 게 없다고 하나 미즈노 교수의 저서인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과 "속터지는 일본인", "다테마에를 넘어 일본인 속으로"는 국내에서 모두 2003년 이전에 출판된 것이다. 정작 기고문 자체는 책이 한국에 출판되고 난 2003년 이후에 작성된 것이며 문제가 되는 극우지 기고문은 한국에서 펴낸 저서에서는 당연히 빠져 있다.
6. 결론
일본인 중에는 한국을 잘 안다고 해서 지한파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미즈노의 행각은 소위 "지한파"라고 해서 절대 친한이 아니며 오히려 한국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반 혐한보다도 더욱 교묘하고 정교하게 혐한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예로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무토 마사토시가 있는데, 한국어에 매우 유창하며,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의 방송에 출연하여 모금활동에 한국어로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 돌아가서는 혐한서적까지 펴내면서 혐한활동을 하고 있다.
미즈노도 마찬가지인데, 무토보다도 더 한심한 것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을 때부터 구로다 가쓰히로류의 '''지한파 혐한 논객 짓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9] 하지만 구로다의 경우 한국논단이나 월간조선 같은 극보수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조선일보에 책도 여러 권 내긴 했지만 적어도 미즈노처럼 '''한국의 기관'''에 소속되어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구로다 가쓰히로도 서강대에서 시간 강사로서 강단에 선 적은 있다. 그러나 시간 강사와 교수의 위상은 천지차이이며, 일반적으로 시간 강사는 그 대학에 소속되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것 외에도 구로다와의 차이점이라면 구로다는 산케이 신문에 고용된 기자로서 일본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며, 그가 쓰는 혐한 글은 익명이 아니라 실명으로 발표되는 것이지만, 미즈노는 방송에서는 친근한 이미지를 통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돈을 벌면서도 일본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일본 우익 중에서 친한, 지한파를 자처하는 이들의 한국관이 대체로 그렇지만, 이 사람이나 구로다 가쓰히로는 '''처음부터 한국이 일본과 대등한 국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일본보다 한참 떨어진 이류 국가지만 일본의 영향권에 있어야 하는 나라로 한국을 평가하고 있다.''' 이런 한국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한국에 우호적인 언플을 할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을 얕잡아보는 생각을 기저에 깔고 있다.[10] '''이런 사람을 친한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사람이 한국에 떳떳치 못한 일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쇼쿤'이나 'SAPIO', '주간문춘'과 같은 혐한매체에 한국을 비하하는 부적절한 글을 쓴 사실은 어떻게 해도 되돌리기 힘들다.
혹자는 그가 지한파였다 하더라도 한일 국민감정상 한국에 대해 좋은 말만 하기는 아무래도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미즈노를 변호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즈노의 만행이 폭로 당했던 2005년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옳지 못한 변론이다. 2000년대 중반은 일본 헤이세이 연호 이후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한일관계에 그나마 (지금까지는) 마지막 숨통이 트이고 있던 시기였고, 미즈노 사건은 당시 이례적으로 온화하던 한일관계를 정면으로 역행하여 한국 내 일본인들의 이미지를 심각하게 실추시킨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사건의 당사자인 미즈노에게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다.
7. 그밖에
- 진짜 사나이로 유명해진 샘 해밍턴은 미즈노 교수를 "한국에서 돈 실컷 벌어가더니 일본에 가서는 한국을 욕하더라. 정말 OO놈"이라고 부르며 비난했다. 여기서 '일본에 가서 한국을 욕하더라' 라는 말은 2008년 산케이 신문의 뉴스 사이트 ZAKZAK에서 한국은 브랜드를 키울 생각을 안하고 일본 것을 베끼기만 한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샘이 보고 말했기 때문.
- 개그맨 김구라는 MBC의 명랑히어로에서 "왜 인생을 그렇게 사느냐고 훈계해주러 가고 싶었는데 돈 달라고 해서 못 만났다. 한국 헐뜯는 이중인격자 미즈노, 한국에서 만두 CF찍었다는데 입에 만두를 넣어주고 싶다. 만두나 처먹어라."라는 독설을 날렸다.
- 미수다에 출연했던 베라 홀라이터의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이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비난을 받았는데 주요 언론들은 이를 미즈노 교수에 빗대어 해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라 홀라이터는 정말로 오역과 오해 때문에 비난을 받은 것이었고, 이미 많은 것이 한국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이 밝혀져 미수다에도 다시 출연했다.
- 이렇게 앞에선 웃는 낯으로 활동하다가 뒤에서 뒤통수 치는 케이스가 미즈노 이전에도 좀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가세 히데아키. 외교 평론가 겸 로비스트로, 1970년대 한국 야당 인사들과 교류를 맺으며 친한파 인사로 알려졌지만 1993년에 '박태혁' 이란 가명으로 한국을 폄하하는 책인 '추한 한국인'을 썼다. 이 책은 일본에서 누계 30만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이후 가세가 가명으로 이 책을 썼다는 사실이 도쿄 주재 한국인 기자에 의해 들통나 결국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는 도리어 극우 본성을 드러내면서 우익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1980~90년대 한국언론에 자주 나오던 한국학 연구자였던 다나카 아키라(田中明) 타쿠쇼쿠(拓殖)대 교수도 한국 언론에 발표하는 글에서는 한국을 치켜세우면서도 일본에 가서는 "한국이요? 형편없는 나라죠."라는 식으로 말하다가 그런 활동이 들통난 후에는 한국에서 코빼기도 못 내밀고 있다가 2010년 사망했다. 한때 한국의 언론에 자주 등장하던 인물이었으나 혐한 인사로 찍인 후에는 사망한 지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11]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섬나라 근성답게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민족이다는 편견이 한국에서 고착화되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재한 일본대사를 지낸 무토 마사토시도 비슷한 부류로 볼 수 있다.
- 한때 미즈노와 함께 출연했던 최불암(당시 본부장 역할) 등 좋은나라 운동본부 출연진들은 현재까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 반응이 없는 상태이다. 한때 방송에 함께 출연하였고 대면도 있던 사이이니만큼 이들의 입장에서도 몹시 당혹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 좋은나라 운동본부 방송을 제작하고 맡았던 KBS 역시 그를 캐스팅한 만큼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이 필요할 법도 한데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물론 따지고 보면 KBS도 그에 대한 진정한 피해자이자 억울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캐스팅 제안을 했던 때만 했어도 한국에 친숙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이후 행적은 저 당시 기준으로 당연히 알 수 없었는데다 그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캐스팅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다.
만약 이런 사실이 좋은나라 운동본부 캐스팅 제안 이전이나 제안 과정 중에서 알았다면 당연히 제안 파기나 출연 정지 등의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더욱이 KBS가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 국정감사 대상기관이기도 한 만큼 자칫 이 문제가 국감의 도마에 올랐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그렇게 될 경우 국감장에서 KBS 사장 뿐만 아니라 좋은나라 운동본부 제작진도 국감 증인으로 출석해서 이 사람의 문제를 직접 해명해야 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이다.[12]
- KBS 방송 출연을 버프로 자사 고향만두 CF 모델로 미즈노를 기용했던 해태 측 역시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이 없었다. 사실 해태 측은 미즈노의 병크로 인해 브랜드 이미지에 상처를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사실상 피해자 입장이다.
- 전남대학교 재직 시절엔 가족들을 데리고 전대 곳곳의 잔디밭에 놀러 나온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방송 출연으로 이름이 알려진 터라 타인이 괜히 알아보는게 싫었는지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었다고.
- 이라고 적혀 있었으나 실제 미즈노 교수의 명함에는 일본어 이름과 한국어 이름이 병기되어 있을 뿐이다. 근거 없는 선동은 조심하도록 하자.
- 2002년에 빌텍 김치냉장고 광고에 나와서 김치냉장고 원조가 빌텍이라고 했다. 정작 원조라고 주장한 빌텍김치냉장고는 잔고장이 잦고 AS 또한 부실해서 거의 망했다.
- 철덕으로도 유명하며 현재 일본내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어로 된 홋카이도 철도 정보원 이라는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8. 관련 문서
[1] 水野 俊平의 순서를 바꾼 것[2] 이 사람은 언론인 리영희(1929~2010)와는 다른 인물이다. 여성 수필가로서 일본에서 교육받았는데, 5공 시절 공연윤리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문화계 탄압을 자행하였다.[3] 환단고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쪽 계통의 유사역사학은 모두 친일파들이 만든 것이다.[4] 이 글을 쓴 장XX는 이후 정치적인 행보 때문에 말이 많았던 인물로 2021년 현재는 근황이 통 알려지지 않고 있다.[5] 좋은 나라 운동본부에 출연했을 때, 한국의 문제점이 나오면 항상 "일본은 저런 일이 없습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단 한번이라도 한국에 대한 좋은 말을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6] 단, 기사의 제목은 잡지 편집부의 영역이라는 것을 감안할 것.[7] 실제로 1992년 당시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분노의 왕국(고 변영훈, 김희애, 최불암 주연)>에서 이하연의 아키히토 천황 암살미수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일본 외무성이 한국 외무부(현 외교부)와 MBC 도쿄지국에 클레임을 건 적이 있었다.[8] 어느 장르나 그렇지만 대체역사소설도 명작도 많지만, 불쏘시개도 진짜 많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쏟아지던 대체역사소설들은 정말 서너작품 빼면 전부 불쏘시개였다.[9]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쫓겨나듯이 일본에 돌아간 이후로는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일본에서 교수로서 혐한적인 글을 쓰는 것은 좀 부적절한 일이기 때문에 삼가는 건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혐한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은 많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내뱉는 것은 교육자로서의 품위 문제와 직결된다. 대표적인 극우파 정치인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조차도 재특회 관계자들을 불러 재일 차별적인 "증오발언(hate speech)"를 하지 말라고 꾸짖는 연극을 할 정도로, 공인이 혐한 발언이나 혐한 기고를 한다는 것은 극우 성향의 일본인들에게조차 품위 없는 일로 간주된다.[10] 일본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위계질서 문화인데, 특히 우익지식인들은 이것을 국제관계에도 그대로 투영해서 동아시아를 최종보스=미국, 행동대장= 일본, 꼬봉(고기방패...)=한국라는 서열관계로'''만''' 이해한다. 그러니 한국이 대등한 관계와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어떻게 꼬봉이 오야붕한테 대들지??"하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당연히 일본우익들은 점점 한일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으며, 오히려 한국이 앞서나가는 부분도 많아지고 있다는 현실은 인정하지 못하고 "좀 귀여워 해줬더니 기어오르는 건방진 놈들"이라는 감정적인 반응만을 보이는 것이다.[11] 가세 히데아키는 2017년 8월 기준으로 80대임에도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다나카 아키라는 이미 저세상 분이다.[12] 알고 보면 제작진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답하기 난처한 상황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사람도 좋아보이고 친한적인 성향이 있어서 그렇게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캐스팅한 것인데 나중에 가서야 극우 본성을 드러내었으니 제작진들로서도 참으로 뭐라 답해주기 어려운 입장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감은 국회의원들 성향에 따라 공격적이고, 지나치게 비판적인 질의가 난무하는 경우가 있어서 정치와는 거리가 먼 좋은나라 운동본부 제작진들이 설령 국감 증인으로 나온다고 해도 쉽게 답할 수 있을지가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도 그렇지만 반일 정서가 짙어보이는 한국 사회 및 민심이나 그런 민심으로부터 선거 지지표 하나 얻어보려는 국회의원들의 노골적인 성향을 봐도 상황이 어찌되는지 이해할만도 할 일이다. 국감이 KBS를 감사한다고 해서 KBS의 모든 프로그램을 검열한다거나 지적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이 문제는 방송 면을 떠나서 국가관과 민족관 그리고 국민정서와 관련된 예민한 문제에다가 일본 극우와 관련된 문제이니만큼 국감 논제에도 충분히 오를 수 있는 중대 문제이기도 하고 명목상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공영방송 KBS에서 이런 속사정도 모르고 반한(反韓) 및 극우 성향의 일본인을 지상파 방송에 캐스팅한 점도 있어서 그냥 넘어가기에는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