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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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WE의 PPV 명칭
레슬매니아는 '''2016년 포브스 선정, 스포츠 이벤트 브랜드 가치 5위[1] '''에 책정된, '''지상 최대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행사'''다.
전 세계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가장 거대한 PPV이자, 1년 동안 북미에서 개최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들 중 하나에 거론될 정도로 큰 무대이다. '''꿈의 무대'''라고 불릴만큼 수많은 프로레슬러들이 이 PPV에 나오는 것을 영광이자 목표로 생각한다.[2]
1.1. 유래
아버지의 업무를 이어받어 WWE[3] 회장 직을 이어 받게 된 빈스 맥맨은 당시 프로레슬링 산업을 전국적으로 키우는데 힘을 쏟는다.
위험한 생각이라며 만류하던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유명한 프로레슬러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한 빈스 덕에 단체의 입지는 괄목할 정도로 상승했다. 그러나 비싸게 데려온 선수들의 몸값으로 인해 회사의 자금 상황은 서서히 안좋아지고 있었다.
빈스 맥맨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엄청난 도박수를 던지는데, 그것이 바로 '''프로레슬링 버전 슈퍼볼'''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거대한 규모의 프로레슬링 이벤트가 없었던 건 아니다. 과거 NWA에서 개최되던 '스타케이드'도 굉장히 큰 규모의 프로레슬링 이벤트였다. 그런데 빈스 맥맨이 구상한 이 흥행의 규모는 유래가 없는 파격적인 수준이었는데, 개최까지 준비 기간만 5년 가까이가 걸렸다. 그리고 1985년 3월 31일, 뉴욕시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사상 첫 '''레슬매니아''' 무대가 열리게 된다.
야심차게 시작한 레슬매니아의 첫 흥행은 프로레슬링 계에서 말 그대로 초대박에 가까운 흥행 실적을 기록했고, 이후 매년 규모가 계속해서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매년 3월 말 ~ 4월 초 WWE의 한 해를 정리하는 대형 이벤트로 완전히 자리잡게 된다. 빈스가 흥행을 기획하며 말했던 '''프로레슬링 계의 수퍼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레슬매니아라는 이름의 뜻은 프로레슬링 + 매니아이다. 명칭에 대한 유래는 비틀즈의 비틀매니아에서 따왔다는 설과 헐크 호건의 헐카매니아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는데, '헐카매니아'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1.2. 역사
레슬매니아는 1985년 1회를 시작으로, 2020년 기준 36회까지 매년 빠지지 않고 개최된 WWE의 역사이자 세계 프로레슬링 최대의 축제이다.
지난 1년간 WWE 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만이 이 무대에서 경기를 가질수 있으며, 선수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이기에 팬들의 경기에 대한 기대감 또한 매우 높다. 헐크 호건 vs 앙드레 더 자이언트나 더 락 vs 헐크 호건과 같은 경기는 '드림 매치'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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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기대치를 완전히 저버리는 경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기가 바로 WWE 레슬매니아 20의 브록 레스너 vs 골드버그의 싱글 매치다. 이 경기는 과대포장되어 볼 게 없던 레슬매니아 경기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미 프로레슬링 자체에 마음이 떠난 두 선수가 맞붙은 경기인데,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매우 어수선하고 의미없는 공방전만 이어진 지루한 경기다.
WCW와의 경쟁에서 최종 승리한 WWF 레슬매니아 17을 기점으로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으며 WWE 레슬매니아 24를 개최할 때는 '태양 아래 가장 거대한 레슬매니아'라는 부제를 붙였고, 그 어느 때보다 현란한 폭죽 퍼포먼스를 볼 수 있을 것이라 호언할 정도로 매년 규모가 거대해지고 있다.
레슬러들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경기에 관여하거나 호스트 역할로 얼굴을 비추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WWF 레슬매니아 14에서 열린 숀 마이클스와 스티브 오스틴의 경기에 특별 심판으로 등장한 마이크 타이슨, WWE 레슬매니아 23에서 바비 래쉴리의 링 사이드에 서있던 도널드 트럼프, WWE 레슬매니아 25에서 크리스 제리코에게 주먹을 날린 미키 루크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런 특별 인사들은 간혹 경기를 펼치기도 한다. WWF 레슬매니아 11에 등장한 당시 NFL 소속의 로렌스 테일러는 메인이벤트 경기를 가졌고[4] , WWE 레슬매니아 21에선 아케보노가 빅 쇼와 스모 경기를 가졌으며, 레슬매니아 24에선 플로이드 메이웨더가 역시 빅 쇼와 복싱 매치를 가졌다. 2010년대 들어선 디바 마케팅의 활성화와 함께 여성 연예인들의 섭외도 늘었다. 2011년엔 니콜 폴리지, 2012년엔 유명 리포터 마리아 메누노스가 출연해 경기를 가지기도 했다.
1.3. 역대 이벤트 항목
1.4. 역대 구매율
2000년대부터 해외 구매율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내 구매율로만 본다면 14~18, 23, 27, 28이 최고. 초기부터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유명인사들을 게스트로 초청하고 있다.
1.5. WWE 명예의 전당 (WWE Hall of Fame)
1993년부터 WWE는 과거의 명 활약을 펼친 레전드들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다른 스포츠에 존재하는 것처럼 프로레슬링계의 전설들을 환영하며 그들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공간으로 WWE 명예의 전당(WWE Hall Of Fame)을 창설한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초창기에는 레슬매니아 이벤트 중간에 이루어졌으나, 2005년부터는 레슬매니아 개최 하루전 같은 지역의 예술회관 등을 빌려서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아는 스타 헐크 호건[16] , HITMAN 브렛 하트, Nature Boy 릭 플레어[17] , 로디 파이퍼,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하트 브레이크 키드 숀 마이클스, 여성으로는 트리쉬 스트래터스 와 리타등 레슬링계를 주름잡던 전설들을 비롯해 과거의 인기 스타들 대부분이 헌액되었다. 또한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갑자기 요절한 후 사후추증 혹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은퇴한 레슬러들도 헌액되고 있는데, 전자의 경우 에디 게레로 / 후자는 에지가 해당된다.
다만, WWE와 안 좋은 관계로 인해 아직도 헌액되지 못한 레슬러들도 있다. 디 제네레이션 X의 맴버로 활동하며 에티튜드 시대를 이끈 여성 레슬러인 차이나와 무수히 많은 명경기를 선보인 크리스 벤와가 대표적이다.[18] 레전드 레슬러인 얼티밋 워리어는 WWE와 사이가 안좋아 계속 헌액이 못되다가 점점 관계를 회복해 2014년에 들어갔으며, 안티 WWE의 상징으로 불리던 스팅도 헌액되는등 관계가 안좋거나 애매했던 레슬러들도 최근엔 많이 들어가는 추세다.
처음 이 행사가 진행될 당시에는 '''WWE에서만 뛰었던 인사들만을 위한 공간 아니냐?'''라는 비판의 눈초리도 있었으나, 이후 WWE와 상관없던 인사들인 AWA, NWA의 전설들도 헌액이 되어지며 이러한 비판들은 줄어들었다. 대표적으로 AWA의 전설 번 가니에가 있다.
단, 첫 회 명예의 전당은 사실상 레슬링과 관계 없는 야구선수였던 피트 로즈[19] 가 수상자였기에 두고두고 비판을 받고 있다. 쇼에 몇 번 출연하긴 했지만, 경기를 가지지도 않았고 3번의 레슬매니아에 출연한 것이 전부다. 이외에도 종종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헌액되어 논란이 되곤 한다.
WWE 측에서도 이런 논란을 의식했는지, 2014년부터는 북미 지역 이외 출신의 선수들도 헌액하고 있으며 조금 더 격식을 차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이미 사망한 과거 전설적인 레슬링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레거시 어워드를 신설하였다. 14년에는 WWC의 창시자이자 푸에르튜 리코의 레슬링 영웅 카를로스 콜론과 15년에는 신일본에서 활동한 '비룡' 후지나미 타츠미가 헌액되었다.
1.6. 앙드레 더 자이언트 메모리얼 배틀로얄
레슬매니아 30 이후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추모하기 위해 시행하는 배틀로얄이다. 로얄럼블과 규칙은 같지만 순서대로 선수들이 등장하지 않고 한번에 등장하며[20] ,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모습을 본 딴 트로피를 수여하는것 외엔 별다른 해택이 없지만 WWE에서 공식기록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레슬매니아 36에서는 열리지 않았다.
1.6.1. 최다 경기 참여자
1.6.2. 우승자 목록
1.7. 역대 게스트
1.8. 흥행
매 년 레슬매니아 개최를 위해 수많은 주가 경쟁을 펼친다. 레슬매니아 하나 때문에 미국 전역이 한 곳에 모이기 때문에, 그 만큼 관광수익 등이 엄청나기 때문. 실제로 레슬매니아를 개최한 곳은 최소 몇달치의 지역경제를 한꺼번에 벌어다 줄 정도이다. WCW가 하락세를 걷고 레슬매니아의 입지가 공고해진 2000년대부터는 타 단체들이 레슬매니아 주간에 레슬매니아가 열리는 도시에서 흥행을 여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평소보다 수익이 더 나온다고 한다.
이때문에 그 해의 레슬매니아가 개최되는 도시에선 이벤트가 개최되기 한 달전부터 레슬매니아 분위기가 느껴질 수 있도록 도시에 여러 게시물과 부착물들을 전시하며, 개최 1주일 전에는 레슬러들이 참여하는 사인회 혹은 인터뷰 등의 간단한 이벤트들을 개최하는 것을 후원한다.
이러한 열기때문에 WWE는 아예 1~2년전부터 다음 레슬매니아가 열릴 장소를 일찌감치 정해놓기도 한다.
10의 배수의 주년은 뉴욕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지는게 관례다. 전설의 시작인 레슬매니아 1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졌기 때문인데, 실제로 레슬매니아 10, 20은 이 곳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레슬매니아 30부터는 이 전통이 깨져버렸다.
일반적으로 토요일의 WWE 명예의 전당, 일요일의 레슬매니아. 월요일의 '애프터매니아' 러로 이어지는 3일 정도의 주말 이벤트 정도였다. 그런데 2016년부터는 산하 브랜드 NXT의 최대 PPV인 NXT 테이크오버를, 2017년부터는 슬래미 어워드를 추가 배치하면서 사실상 한 주 자체를 WWE 레슬매니아 주간으로 만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 레슬매니아의 전통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은 아니지만, 사실상 일종의 관례나 전통으로써 굳어진 것들이다.
- 1. 레슬매니아의 마무리는 단체의 탑페이스 선수로 장식한다.[24]
또한 헐크 호건은 첫 8회의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 중 7번이나 출장하였다. 유일하게 레슬매니아 4에는, 영화 촬영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고, 빈 자리를 마초맨 랜디 새비지가 채웠다. 그런데 이 때도 호건이 메인 이벤트 경기에 난입해 새비지가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관례는 총 여섯 번 깨졌는데, WWF 레슬매니아 16에선 악역인 트리플 H가 승리했고, 더 락은 트리플 H와 맥맨 부녀에게 피니시 무브를 작렬하는 방식으로 퇴장했다. 상술한 레슬매니아 17에선 스티브 오스틴이 턴힐을 했다. WWE 레슬매니아 27에선 더 락의 난입으로 미즈의 승리로 끝났다. 레슬매니아 31에선 세스 롤린스가 머니 인 더 뱅크 권한을 사용하여 챔피언을 획득하면서 악역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WWE 레슬매니아 34에서도 브록 레스너가 로만 레인즈를 제압하며 악역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다. WWE 레슬매니아 35에서는 베키 린치가 트위너로써 론다 로우지와 샬럿 플레어에게 승리하면서 메인 이벤트를 마무리 했다.
- 2. 로얄럼블 경기의 우승자는 레슬매니아에서 월드 챔피언십에 도전한다.
2013년엔 두 챔피언십이 통합되었고, 2014년 로얄럼블 우승자는 자동으로 통합 챔피언십인 WWE 월드 헤비급 챔피언십의 도전자로 내정되었다.
원래 로얄럼블의 우승자의 레슬매니아에서의 챔피언십 도전 기록은 2008년 깨질 뻔 했다. 해당 해 로얄럼블 우승자 존 시나가 노 웨이 아웃에서 당시 챔피언이던 랜디 오턴에게 도전하면서 타이틀 매치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후 존 시나는 기존의 챔피언인 랜디 오턴과 또 다른 넘버 원 컨텐더였던 트리플 H와 레슬매니아 24에서 트리플 쓰렛 WWE 챔피언십 매치를 갖는다. 과정이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관례대로 된 셈이다.
로얄럼블의 우승자가 레슬매니아에서 월드 챔피언십에 도전했을때 승률은 상당히 높았으며, 특히 2001년(레슬매니아 17)부터 2007년(레슬매니아 23)까지는 로얄럼블 우승자가 모두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얄럼블의 2008년 우승자 존 시나와 2009년 우승자 랜디 오턴이 챔피언에게 패한데 이어 2010년 우승자 에지가 챔피언 제리코에게 패배, 2011년 우승자인 알베르토 델 리오가 챔피언 에지에게 패배하면서 이 도전권의 성공확률은 과거에 비해 떨어진 상태이다.
그리고 이 관례는 2016년 로얄럼블 매치가 로만 레인즈와 빈스 맥마흔 간의 대립 각본으로 인해 1 vs All WWE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 매치로 병행 진행되면서 최초로 깨졌다. 2017년에는 우승자 랜디 오턴이 당시 와이어트 패밀리와 연합하고 있던 상태였고 WWE 챔피언은 브레이 와이어트였기 때문에 랜디는 중간에 도전권을 포기했었으나 나중에 배신하면서 다시 도전권을 사용했다.
- 3. 언더테이커는 레슬매니아 무대에서 지지 않는다.
- 4. 행사 시작 전, America the Beautiful[25] 를 부른다.
- 5. 아나운서 테이블을 이용한 공격에 당하거나, 아나운서 테이블을 이용한 공격을 못 맞춘 선수는 승리한다.
레슬매니아 18 - 크리스 제리코 (C) VS 트리플 H: 페디그리#s-3를 시전하려 했으나 제리코의 백 바디 드랍으로 테이블에 떨어진 트리플 H가 승리, 챔피언 등극
레슬매니아 19 - 빈스 맥맨 VS 헐크 호건: 빈스의 사다리 위 레그 드랍을 맞은 헐크 호건이 승리
레슬매니아 20 - 트리플 H (C) VS 숀 마이클스 VS 크리스 벤와: D-X의 더블 수플렉스를 피폭당한 크리스 벤와 승리
레슬매니아 21 - 커트 앵글 VS 숀 마이클스: 숀 마이클스의 스프링보드 플란챠를 맞은 커트 앵글이 승리
레슬매니아 23 - 바티스타 (C) VS 언더테이커: 바티스타의 파워슬램을 맞은 언더테이커가 15연승, 챔피언 등극
레슬매니아 24 - 릭 플레어 VS 숀 마이클스: 아사이 문설트를 시전했으나 플레어가 피하여 혼자 테이블로 추락하고 갈비뼈 부상까지 입었던 숀 마이클스가 승리
레슬매니아 25 - 트리플 H (C) VS 랜디 오턴: 페디그리를 시전하려 했으나 오턴의 백 바디 드랍으로 테이블에 떨어진 트리플 H가 승리
레슬매니아 26 -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 숀 마이클스의 탑 로프 문설트를 맞은 언더테이커가 18연승, 숀 마이클스 은퇴
레슬매니아 27 - 언더테이커 VS 트리플 H: 트리플 H에게 스피닝 스파인 버스터로 반격당한 언더테이커가 19연승
레슬매니아 29 - 언더테이커 VS C.M 펑크: C.M 펑크의 탑 로프 엘보우 드랍을 맞은 언더테이커가 21연승
브록 레스너 VS 트리플 H: 브록 레스너의 수플렉스에 테이블과 박살난 트리플 H가 승리
레슬매니아 30 - 랜디 오턴 (C) VS 대니얼 브라이언 VS 바티스타: 대니얼 브라이언이 아나운서 테이블 위에서 바티스타 밤 + RKO 합체기를 맞았으나 승리
하지만 레슬매니아 32때 헬 인 어 셀 꼭대기에서 셰인 맥맨이 아나운서 테이블로 시전한 엘보 드롭을 언더테이커가 피한 뒤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날리고 이기며 이 기록도 깨졌다.
2. 게임
1의 항목의 인기의 여세를 받아 나온 동명의 게임 WWF 레슬매니아. 게임 개발 년도가 1990년대이기에 WWF가 게임 명칭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더 이상 발매가 되지 않음에도 문제거리가 있었는데 이는 각주 참조.
3. 관련 항목
[1] 순위는 차례로 슈퍼볼이 1위,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월드컵, 다음이 레슬매니아 순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이 전세계가 참여하는 초대형 이벤트고 슈퍼볼 또한 미국 내 수많은 풋볼팀들 중 단 두 팀만을 추려내는 이벤트임을 감안하면, 이런 이벤트들을 잇는 초대형 이벤트를 단독으로 개최하는 WWE라는 회사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2] 일본과 멕시코, WCW를 넘나들고, DRAGON GATE의 전신인 토류몬을 만든 일본 루차도르계의 레전드인 울티모 드래곤도 단 한 번이라도 '''레슬매니아에 참가하고 싶어서''' WWE와 1년 계약을 했다. 그리고 섀넌 무어등과 대립하며 레슬매니아 XX에서 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 오픈 챌린지로 꿈을 이루고 WWE를 나갔다. 흔히 안티 WWE의 아이콘이었던 스팅도 "레슬매니아란 무대를 동경하지 않는 레슬러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다.[3] 당연히 당시엔 WWF였다. 2002년 동일한 이름을 쓰고 있던 세계야생기금과의 법적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단체 이름을 개명했다. 여담이지만 세계야생기금은 2005년 WWE에게 여전히 WWF의 명칭을 붙여 판매하고 있는 레슬링 상품 판매 금지 내용으로 연방 법원에 소송을 걸었으나, 이번에는 제대로 역관광타버리며 WWE가 승소했다.[4] 그러나 이 경기는 1년동안 고생한 다른 프로레슬러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비판이 굉장히 많았으며, 흥행이 끝난 후에도 내부에서도 잡음이 많았다.[a] 現 올스테이트 아레나[5] 당시 공석이었다.[c] 現 로저스 센터.[6] 당시 WWF 챔피언이었다.[7] 당시 WWF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이었다.[8] 前 RCA 돔.[9] 이례적으로 더블 메인이벤트 형태로 진행. 경기 순서로는 호건과 시드의 경기가 마지막 경기였다.[10] 세스 롤린스의 경기 도중 캐싱인. 어느 쪽도 패하지 않은 상황이라 3명 모두 타이틀 매치 참가 선수가 되었고, 트리플 쓰렛 매치로 바뀌었다.[11] 당시 WWE RAW 위민스 챔피언이었다.[12] 당시 WWE 스맥다운 위민스 챔피언이었다.[13] 포스터에는 레슬매니아 2000으로 되어있다.[14] 구매율은 하락했지만 PPV 구매가격이 오르면서 기존의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경신했다.[15] WWE 네트워크를 통한 구매량은 66만7,000여 가구, PPV 구매자는 미국 내에서 40여만, 해외에서 29만으로 집계됨.[16] 흑인비하 발언으로 WWE 홈페이지의 명예의 전당 로스터에서 이름이 삭제된 상태. 다만, 공식적인 발표는 하지 않아서 복귀 가능성은 있다. 참고로 호건 본인은 제명당한걸로 알고 있는 듯 하다.[17] TNA에서 활동중이던 2012년에 헌액되었는데, TNA-WWE 양측간 합의를 봐서 가능했다.[18] 전자의 경우 포르노 배우 활동이 문제돼서 그렇다. 그러나 2019년 스테이블 '''디 제너레이션 엑스'''의 멤버로 사후추증이 확정되었다. 후자는 익히 알려진대로 가족을 살해하고 자살한 엄청난 흑역사가 원인.[19] 현역 시절에는 MLB 역대 최다 안타를 쳤던 명예의 전당 유력 후보였으나 감독 시절 자기 팀 경기를 두고 벌인 도박으로 인해 영구 제명에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마저 물 건너갔다.[20] 사실 로얄럼블이 원래 배틀로얄에서 파생된 경기이다.[21] 정확히는 "Special Enforcer"란 직함으로 등장하여, 메인이벤트에 심판 궐석시 대신 심판역할도 수행했다.[22] 27에서는 호스트로서 쇼를 주관함[23] 레슬매니아 호스트로서 쇼를 주관한다.[24]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WWF 레슬매니아 X-Seven때의 스티브 오스틴은 경기 당시에는 선역이었으나, 경기가 끝나고 빈스 맥맨과 손을 잡으면서 턴힐을 했다.[25] 진짜 미국 국가는 아니며 실제 미국 국가는 성조기라는 뜻의 The Star-Spangled Banner이다. 다만 이 국가가 노래 난이도가 상당하고 예전에 지어졌다보니 노예제 이야기가 있는 등 국가를 교체하자는 논의가 약하지만 지속되어왔고, 실제로 교체대상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노래가 아메리카 더 뷰티풀이다. 레슬매니아에서는 빈스 맥맨이 이 노래를 선호하기 때문에 국가 대신 아메리카 더 뷰티풀을 부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