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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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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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의 도시철도. 1995년 바르샤바 지하철 1호선을 개통하고 2015년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을 개통하여 2개의 노선이 있다.
아래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안습을 넘어서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는 폴란드 근현대사의 상징'''이 바로 바르샤바 지하철이다. 해당기간 동안 바르샤바의 도시철도망은 노면전차에 의존했으며 지하철이 개통되었어도 노선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관계로 현재도 트램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트램의 연장길이가 132km에 달하기 때문에 지하철과는 비교도 할수없을 정도로 커버리지망이 넓기 때문이다.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인 1919년(...)에 착공했다가 1995년에 1호선을 처음 개통하여 '''무려 76년 걸린 장대한 티스푼 공사'''의 역사가 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폴란드가 독립한 1918년에 바로 바르샤바에 도시철도를 놓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920년 삽을 뜨자마자 우크라이나 문제로 인해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이 벌어져 나라의 모든 예산과 국채를 전쟁에 쏟아부었다. 이 때문에 바르샤바 지하철 계획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1922년 리가 조약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이 소련한테서 핀스크(Pinsk) 등 갈리치아 일대를 뜯었다. 소련-폴란드 전쟁 와중에 왕년에 같은 나라였던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노(Wilno)를 삥뜯으면서, 폴란드는 땅덩어리가 2배로 커졌다.
신생 폴란드 공화국은 소련과의 전쟁 외에도 체코슬로바키아가 하부 실롱스크의 톄신 지방을 전쟁으로 뜯어가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는 단치히 자유시, 폴란드 회랑, 상부 실롱스크 문제로 외교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지하철 따위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한스 루터 수상이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을 일으키면서 폴란드 제2공화국 경제는 망했어요 상태가 되어버리고, 바르샤바 지하철을 위해 파놨던 공구들은 공사가 중단된 채 계속 밀려갔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닥치자 폴란드 경제는 망했어요가 아니라 '''파탄''' 나버려서 계속해서 바르샤바 지하철 계획은 밀리게 된다. 독일과의 무역 전쟁은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에 유화책을 제시한 1934년에 드디어 끝났고, 폴란드는 다시 경제성장을 하게 되면서 1936년 바르샤바 지하철을 다시 공사 시작하였다.
그러나, 1939년 9월 1일,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을 감행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뒤이어 이오시프 스탈린도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1939년 9월 17일 소련-폴란드 불가침조약을 깨고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하여, 폴란드는 완전히 멸망했다. 그리고 이 때까지 파 놨던 바르샤바 지하철 공구들은 이후 폴란드 망명 정부의 레지스탕스 기반이 되었으며, 1943년 유태인들의 바르샤바 게토 봉기, 1944년 폴란드인들의 바르샤바 봉기를 위한 폴란드 망명 정부와 유태인들의 비밀기지로도 쓰였다. 하지만 결국 나치 독일에 발각되며 '''해당 공구들은 폴란드 총독부에 의해 완전히 폭파'''되었다.
1944년 12월, 독소전쟁의 승기를 잡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폴란드를 접수하고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폴란드는 소련의 기대와 달리 공산당 정권이 계속해서 불안정했다. 스탈린이 국민투표 결과를 조작[1] 해서 공산당 정권을 세웠기[2] 때문에, 들어설 때부터 폴란드 인민 공화국의 정당성은 취약했다. 게다가 나치 독일 치하의 폴란드는 너무 처절하게 파괴되는 바람에 폴란드 공산정부는 전후 복구사업을 하는 데에도 헉헉댈 정도였다. 그래서 폴란드 국내에서는 1956년 포즈난 항쟁,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폴란드 봉기, 1980년대 그단스크의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운동 등 각종 시위와 항쟁이 빈발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지하철 공사를 안하려했던것은 아니었지만 폴란드가 당시 동구권내에서도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였기 때문에 지하철 공사는 진척되지 못했고 1980년대 들어와서야 소련의 지원으로 지하철 공사에 착공했지만 폴란드의 경제가 한창 안 좋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티스푼 공사로 진행되었다. 결국 1989년 동유럽 혁명에 따라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고, 1990년 폴란드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91년 폴란드 제3공화국 정부는 전면적인 바르샤바 지하철 재착공을 결정했다. 독일연방공화국과 프랑스 정부의 재정, 기술 지원으로 1995년 4월 7일 처음으로 카바티 역(Kabaty Station)에서 바르샤바 공과대학역(Politechnika Station)을 잇는 바르샤바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였다. 1920년부터 시작된 '''장장 76년의 역사 끝에 바르샤바에 도시철도가 들어섰다'''. 바르샤바 지하철 1호선은 2008년 10월 25일 므워치니 역(Młociny Station)까지 개통되어 완전 개통하였다. 대침체가 어찌어찌 완화된 2010년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 지하철 2호선도 1919년에 같이 계획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5년 3월 8일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 1단계 구간인 론도 다신스키에고 역(Rondo Daszyńskiego Station)에서 드보제츠 빌렌스키 역(Dworzec Wileński Station)까지 구간이 개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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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의 도시철도. 1995년 바르샤바 지하철 1호선을 개통하고 2015년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을 개통하여 2개의 노선이 있다.
2. 역사
아래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안습을 넘어서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는 폴란드 근현대사의 상징'''이 바로 바르샤바 지하철이다. 해당기간 동안 바르샤바의 도시철도망은 노면전차에 의존했으며 지하철이 개통되었어도 노선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관계로 현재도 트램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다. 트램의 연장길이가 132km에 달하기 때문에 지하철과는 비교도 할수없을 정도로 커버리지망이 넓기 때문이다.
폴란드 제2공화국 시절인 1919년(...)에 착공했다가 1995년에 1호선을 처음 개통하여 '''무려 76년 걸린 장대한 티스푼 공사'''의 역사가 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폴란드가 독립한 1918년에 바로 바르샤바에 도시철도를 놓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1920년 삽을 뜨자마자 우크라이나 문제로 인해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이 벌어져 나라의 모든 예산과 국채를 전쟁에 쏟아부었다. 이 때문에 바르샤바 지하철 계획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1922년 리가 조약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이 소련한테서 핀스크(Pinsk) 등 갈리치아 일대를 뜯었다. 소련-폴란드 전쟁 와중에 왕년에 같은 나라였던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노(Wilno)를 삥뜯으면서, 폴란드는 땅덩어리가 2배로 커졌다.
신생 폴란드 공화국은 소련과의 전쟁 외에도 체코슬로바키아가 하부 실롱스크의 톄신 지방을 전쟁으로 뜯어가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과는 단치히 자유시, 폴란드 회랑, 상부 실롱스크 문제로 외교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지하철 따위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1925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한스 루터 수상이 독일-폴란드 무역 전쟁을 일으키면서 폴란드 제2공화국 경제는 망했어요 상태가 되어버리고, 바르샤바 지하철을 위해 파놨던 공구들은 공사가 중단된 채 계속 밀려갔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닥치자 폴란드 경제는 망했어요가 아니라 '''파탄''' 나버려서 계속해서 바르샤바 지하철 계획은 밀리게 된다. 독일과의 무역 전쟁은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에 유화책을 제시한 1934년에 드디어 끝났고, 폴란드는 다시 경제성장을 하게 되면서 1936년 바르샤바 지하철을 다시 공사 시작하였다.
그러나, 1939년 9월 1일, 아돌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을 감행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뒤이어 이오시프 스탈린도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라 1939년 9월 17일 소련-폴란드 불가침조약을 깨고 전격적으로 폴란드를 침공하여, 폴란드는 완전히 멸망했다. 그리고 이 때까지 파 놨던 바르샤바 지하철 공구들은 이후 폴란드 망명 정부의 레지스탕스 기반이 되었으며, 1943년 유태인들의 바르샤바 게토 봉기, 1944년 폴란드인들의 바르샤바 봉기를 위한 폴란드 망명 정부와 유태인들의 비밀기지로도 쓰였다. 하지만 결국 나치 독일에 발각되며 '''해당 공구들은 폴란드 총독부에 의해 완전히 폭파'''되었다.
1944년 12월, 독소전쟁의 승기를 잡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폴란드를 접수하고 폴란드 인민 공화국을 세웠다. 그러나 폴란드는 소련의 기대와 달리 공산당 정권이 계속해서 불안정했다. 스탈린이 국민투표 결과를 조작[1] 해서 공산당 정권을 세웠기[2] 때문에, 들어설 때부터 폴란드 인민 공화국의 정당성은 취약했다. 게다가 나치 독일 치하의 폴란드는 너무 처절하게 파괴되는 바람에 폴란드 공산정부는 전후 복구사업을 하는 데에도 헉헉댈 정도였다. 그래서 폴란드 국내에서는 1956년 포즈난 항쟁,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한 폴란드 봉기, 1980년대 그단스크의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 운동 등 각종 시위와 항쟁이 빈발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지하철 공사를 안하려했던것은 아니었지만 폴란드가 당시 동구권내에서도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였기 때문에 지하철 공사는 진척되지 못했고 1980년대 들어와서야 소련의 지원으로 지하철 공사에 착공했지만 폴란드의 경제가 한창 안 좋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티스푼 공사로 진행되었다. 결국 1989년 동유럽 혁명에 따라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고, 1990년 폴란드 제3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91년 폴란드 제3공화국 정부는 전면적인 바르샤바 지하철 재착공을 결정했다. 독일연방공화국과 프랑스 정부의 재정, 기술 지원으로 1995년 4월 7일 처음으로 카바티 역(Kabaty Station)에서 바르샤바 공과대학역(Politechnika Station)을 잇는 바르샤바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였다. 1920년부터 시작된 '''장장 76년의 역사 끝에 바르샤바에 도시철도가 들어섰다'''. 바르샤바 지하철 1호선은 2008년 10월 25일 므워치니 역(Młociny Station)까지 개통되어 완전 개통하였다. 대침체가 어찌어찌 완화된 2010년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 지하철 2호선도 1919년에 같이 계획되기는 마찬가지였다. 2015년 3월 8일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 1단계 구간인 론도 다신스키에고 역(Rondo Daszyńskiego Station)에서 드보제츠 빌렌스키 역(Dworzec Wileński Station)까지 구간이 개통하였다.
3. 노선
- 바르샤바 지하철 1호선: 카바티 역 ~ 므워치니 역, 22.7km, 역 21개
-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 론도 다신스키에고 역 ~ 드보제츠 빌렌스키 역, 6.3km, 역 7개.
- 환승역은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Świętokrzyska(시비엥톡쥬스카) 역 한 곳이다.
4. 계획
-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 확장: 2028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 바르샤바 지하철 3호선: 2025년 착공, 2030년 개통 계획.
5. 요금
6. 안내방송
7. 기타
[1] 폴란드 인민 공화국 헌법은 4부분으로 쪼개서 국민투표를 했다. 그러나 실제 투표 결과에서 가결된 부분은 '''농지개혁''' 하나(찬성률 65%)였고, 공산 정권을 세우는 권력 사안이나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는 다른 부분은 모두 '''찬성률이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위대하신 스탈린 서기장 동무께서 친히 '''90% 찬성으로 조작'''하셨다.[2] 당연히 이것도 대대적인 부정선거였다. 1945년 폴란드 통일노동자당(공산당) 지지율은 선거에서 고작 '''16%'''에 불과한 대참패였다. 그러나 스탈린 서기장 동무께서 친히 '''85%로 조작'''해주셨다. 국민투표와 1945년 선거의 실제 득표는 소련 해체 이후 보리스 옐친 시대의 러시아 연방에서 러시아-폴란드 관계 개선의 일환으로 관련 자료를 폴란드 제3공화국한테 넘기면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