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식(정치인)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시흥시 을)'''
''선거구 분리''
박병윤[1]

'''제17~21대
조정식'''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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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원회 의장'''
제4대
김태년

'''제5대
조정식'''

제6대
한정애

'''사무총장'''
제2대
주승용

'''제3대
조정식'''

제4대
양승조

'''대한민국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제19대 후반기
김동철

'''제20대 전반기
조정식'''

제20대 후반기
박순자

'''대한민국 제17 ~ 21대 국회의원 
조정식
趙正湜 | Cho Jungsik
'''
<colbgcolor=#004ea2> '''출생'''
1963년 12월 25일 (60세)
서울특별시
'''거주지'''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본관'''
순창 조씨[2]
'''종교'''
천주교 (세례명: 요한)
'''학력'''
동성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가족'''
배우자 조미선, 아들 조석주
'''소속 정당'''

'''지역구'''
경기 시흥시 을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7, 18, 19, 20, 21
'''소속 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보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경력'''
제정구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국민통합추진회의 기획위원
열린우리당 교육연수위원회 부위원장
열린우리당 초선의원 모임 '처음처럼' 운영위원
열린우리당 초선의원 모임 '처음처럼' 대변인
열린우리당 제5정조위원장
열린우리당 수도권발전 및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회 경기도발전위원회 간사
민주당 원내대변인
민주당 원내부대표
산업단지 혁신 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
민주당 야권통합협상대표단 단장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
국회 연구모임 아젠다 2050 정회원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민주연구원 이사
'''SNS'''

1. 개요
2. 생애
2.1. 정계 입문 전
2.2. 정계 입문부터 출마까지
2.3. 5선 의원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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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대한민국의 제17대~21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며 지역구는 경기 시흥시 을 지역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했었다.

2. 생애



2.1. 정계 입문 전


1963년 12월 25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에는 열렬한 운동권은 아니었다. 운동권 관련 학회에 가입은 했는데, 그냥 가입하고 책 읽는 수준에서 끝났고, 1985년에는 집회 대표 주동자로 나섰지만, 집회 후에 군대에 입대하면서 체포와 투옥과 같은 일은 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 운동권 학생들이 갖는 이력인 학교 제적 경력 없이 무탈하게 졸업하게 되었다. 특히 무탈한 졸업은 조정식의 부친이 간곡히 부탁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학생 시절에 안 하던 활동을 대학 졸업 후에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신분을 숨기고 프레스공으로 취직해서 노동운동에 종사하기 시작한 것. 4년을 노동 현장에서 활동하던 조정식은 1990년 3당 합당이 발표되자, 남아있던 야권 세력인 속칭 꼬마민주당에 합류하여 전문위원 자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2.2. 정계 입문부터 출마까지


14대 총선에서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면서 빈민운동의 대부로 사회적인 존경을 받던 제정구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시흥-군포 지역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조정식은 제정구의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3] 그리고 제정구 의원과 함께 정치적 역정을 같이 해서 1995년 DJ에 의한 민주당 분당 때도 새정치국민회의로 가지 않고, 통합민주당에 잔류했고, 통합민주당이 다시 1997년 대선 과정에서 둘로 나뉠 때도 제정구를 따라 한나라당으로 이동했다.
1999년 제정구 의원이 별세한 이후에는 역시 통합민주당에서 같이 한나라당으로 건너온 이부영의 보좌관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의 특별 보좌역을 맡아 대선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2003년 이부영을 따라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민주당계 정당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었다.

2.3. 5선 의원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경기도 시흥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 후 2008년 실시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통합민주당 후보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민주통합당 후보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2020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연이어 당선되어 내리 5선을 달성한다.[4]
초선으로 당선된 뒤 열린우리당 교육연수위원회 부위원장, 열린우리당의 초선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의 운영위원과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초기에는 친노 직계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열린우리당의 해체 과정에서 손학규 쪽에 우호적인 의사를 보이면서 계파로는 흔히 손학규계로 분류된다. 재선 의원 때는 원내대변인, 원내부대표,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3선 의원을 역임중이던 2014년 8월부터 2015년 2월까지는 새정치민주연합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협상력과 조정력은 인정받았지만, 자신만의 무언가가 약간 아쉽다는 평가가 있다. 다만 조정식 의원처럼 선수는 많지만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의원의 경우 지역구 관리에 충실한 국회의원이 주를 이루며 이로 인해 지속적인 주민의 지지를 받는다. 굵직한 뉴스에 오르내리는 국회의원은 300명중 50명 정도인걸 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인도 의식을 하는지 모르지만 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원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원하던대로 20대 국회 상반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본인의 학부 전공이 건축학이고 상임위원장을 맡은 국토교통위원회가 전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전공을 잘 살린 선택이라는 호평이 잇따랐다. 모두가 노리는 알짜 상임위이니 그럴 수 밖에. 왜냐하면 SOC(사회간접자본)의 지역구 투하를 약속하고 당선된 후 국토위에 소속되면 소속 상임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예산 배정 등을 통해 공약의 실천이 쉬워져 차기 선거에 유리하기 때문. 게다가 소위 위원장이나 간사, 상임위원장이면 간단한 지시 하나만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2017년 11월 15일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관리 기본법안을 대표발의하였으며, 위 법안은 수정가결되어 202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2019년 1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 임명되었다.
7월 11일,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토론회에서 '정치·외교 실패가 원인', '보여주기식 대응'이라는 발언이 나온 것에 대해,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라며 "일각에서 정부 노력을 폄훼하고, 우리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여 유감"이라고 대응했다. #
충남 아산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계기로, '민식이법'으로 알려진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일부법률개정안'을 대표발의했는데, 정작 '''발의자 본인'''이 2000년 7월 음주 측정을 거부하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15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21대 총선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전략공천[5]을 확정받으면서 5선에 도전하여 69,720표, 득표율 67.0%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는 수도권 당선인 중 최고 득표율이다.[6][7]
21대 국회에서는 국회부의장보다는 원내대표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일단 원내대표로 김태년이 선출되었으니 차기를 노릴 듯 하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2 - 1995
정계 입문

1995 - 1997
합당[8]

1997
합당[9]

1997
탈당

1997 - 1998
입당

1998
탈당

1998 - 2003
복당

2003
열린우리당 합류를 위한 탈당

2003 - 2007
창당

2007 - 2008
합당[10]

2008 -2008
합당[11]

2008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12]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3]

2016 -
당명 변경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시흥 을

'''34,469 (59.4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3,313 (51.13%)'''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34,596 (59.62%)'''
'''3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33,780 (47.03%)'''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69,720 (67.02%)'''
'''5선'''

5. 둘러보기










[1] 시흥시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이다.[2] 28세손 식(湜)자 항렬을 쓴다.[3] 제정구의 보좌관 3인은 제정구의 지역구를 훗날 다 물려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시흥 을의 조정식, 시흥 갑의 백원우, 군포의 김부겸 이 세 명이다. 이들은 다선 의원이나 거물급이 되었다. 백원우는 재선에 그쳤지만 2017년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맡게 되었고, 김부겸은 내리 3선을 지낸 군포를 떠나 19대 총선부터 당의 사지이자 고향인 대구로 낙향한 후 20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일약 대권주자로 위상이 압도적으로 상승했고 결국 문재인 정부에선 아예 '''행정안전부장관'''으로 입각했다.[4] 안민석, 김진표, 변재일과 더불어 17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되고 민주당 당적으로 '''내리 5선'''에 성공한 넷 뿐인 현역의원이다. 민주당계 정당이 역대급 대패를 당했던 18대 총선에서도 살아남았던 무서운 사람들. 조경태도 17대부터 내리 5선이지만 20대 총선 직전에 새누리당으로 이적했고, 이상민18대 총선에서는 자유선진당 당적으로 당선되었으므로 저 카테코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박병석 의장은 16대 총선부터 내리 6선을 달성했다.)[5] 당초에 전 시흥시장 김윤식을 포함, 3자 경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정국에서 정책위의장에게 경선을 시킬 수 없다는 명분(...)으로 하루만에 경선이 철회되고 전략공천으로 바뀌었다. 민주당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표방한 '시스템 공천'에 역행하는 오점 중 하나였으며, 강력하게 반발하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까지 내비쳤던 김윤식이 결국 포기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더 논란이 커질 뻔했다.[6] 서울 최고 득표율로 당선된 강남구 병유경준(65.38%) 보다 높다.[7] 참고로 전국 1위는 광산구 을민형배(84.0%)가 차지했다.[8] 개혁신당(1995년)과 신설 합당[9]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10]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1]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12]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3]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