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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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경내에
옮겨 복원된 안동별궁의 현광루와 경연당.
1. 개요
2. 역사
3. 건물들의 수난


1. 개요


安洞別宮.
한성부 북부 안국방,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3길 4 - 구 풍문여자고등학교 자리[1]에 있던 조선시대별궁이다. 옛 명칭으로는 '동별궁'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안국동별궁(安國洞別宮)'이라고도 한다.

2. 역사


원래 이 자리는 명당으로 유명해 조선 초기부터 왕실에서 사용한 땅으로 세종 때에는 왕자 영응대군대저택이 있었고 1471년(성종 2년)부터는 연경궁(延慶宮)으로 불리며 성종의 월산대군이 살기도 했다. 월산대군이 그 집 안에 정자를 하나 세웠는데 성종이 직접 풍월정(風月亭)이란 이름을 내려줄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또한 인조 때에는 드라마 화정으로 유명한 정명공주와 그 남편 영안위 홍주원[2]이 되어 크게 넓어졌는데 이 무렵 헐었던 인경궁의 남은 자재 약 170칸분을 이용하였으며 이 후 홍주원의 자손들이 크게 번창하여 더욱 명당으로 여겨졌다. 숙종 때에는 이를 사들여 막내 아들 연령군으로 삼기도 하였다.[3]
19세기 이후 임금이었던 헌종철종후사가 없었던 반면, 적장자를 얻어 매우 기뻤던 고종원자왕세자 책봉 및 가례소를 마련하기 위해 이 곳에 1879년(고종 16년) 11월에 본격적으로 왕실 직속 별궁으로 공사를 시작하였다. 1881년(고종 18년) 완공하였고 안국방 소안동에 있다 하여 안국동 별궁이라 하였다. 일상에서는 줄임말인 안동별궁으로 많이 불렀다.
1882년(고종 19년) 2월, 왕세자 이척(순종)세자빈 민씨(순명효황후)가례를 여기서 올렸다. 하지만 순명효황후는 1904년(광무 8년) 사망하고 1906년(광무 10년) 황태자 이척은 새 황태자비 윤씨(순정효황후)와 두 번째 가례를 치뤘는데 그때 가례도감이 설치된 곳 역시 안동별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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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안동별궁 전경을 찍은 사진
1910년 경술국치 이후에는 잠시 상궁들이 모여 살기도 했다가 1936년 큰 길에 면해 있는 768평이 최창학[4]에게 15만원에 낙찰되었다. 1937년에는 명성황후의 먼 일족이자 휘문고등학교 설립자 민영휘아내 안유풍이 당시 30만환으로 부지 4천여평과 함께 부속 건물을 매입한 뒤, 이 자리에 경성휘문소학교를 세웠다. 7년 뒤 증손자 민덕기가 폐교된 다른 여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증조모의 이름 '풍' 자와 휘문의 '문'을 따 풍문여학교로 개편했고 8.15 광복후 풍문여중과 풍문여고로 나누었다. 1992년 풍문여중은 폐교되었고#, 풍문여고는 계속 그 자리에 있다가 2017년 강남구 자곡로로 이전한 뒤 풍문고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서울시에서 부지를 매입해 공예박물관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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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학교 건물로 쓰일 당시의 안동별궁 현광루

3. 건물들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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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문여고 내에 있던 안동별궁 건물
주요 건물들은 풍문여고가 들어선 뒤에도 한 동안 대부분 제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나 학교의 부지확보와 건물 신축을 위해 남아있던 정화당과 경연당, 그리고 현광루를 해체해 다른 곳으로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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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당
정화당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으로 이전되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요정 '선운각'이 되었고[5] 김성곤 쌍용그룹 회장이 별장으로 쓰기도 했다. 1975년 김성곤 사후 '쌍용중앙연수원'이 되었다가 1997년 동양화재로 매각돼 현재 메리츠화재 연수원으로 존속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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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컨트리클럽에 있을 당시 현광루와 경연당
현광루와 경연당은 풍문학원 이사장 민병도[6]개인 별장과 자신이 회장으로 있었던 골프장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의 한양컨트리클럽 신코스 18번 홀로 옮겨져 수영장 관련 건물로 사용되다가 2006년 무렵 존재가 확인되었고 이후 문화재청에서 매입 후 복원하여 현재는 충청남도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경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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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루
그리고 민병도가 설립한 또 다른 관광지 남이섬 유원지 동쪽 끝에 있는 ‘정관루’라는 목조 건물이 안동별궁의 건물 일부라는 설이 있다. 남이섬 유원지 측은 이 건물이 1965년 남이섬을 구매 할 무렵 서울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하는데, 2006년 당시 강우현 남이섬 사장은 풍문여고에서 옮겨왔다는 얘기를 들었다했지만, 당시 공사에 참여한 한 목수포도청 건물을 옮겨와 지었다고 주장해 아직 확실하게 결론짓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앞서 말한 건물들은 사정이 나은 편인데 《고종실록》에도 존재가 확인된 '정상루(定祥樓)'의 경우 어디 있는 지 확인이 안 된다. 만약 남이섬 정관루가 만약 안동별궁 건물이 맞다면, 정상루가 옮겨와 정관루가 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 2017년 3월에 강남구 자곡로 152로 이전[2] 혜경궁 홍씨의 6대조.[3] 원래 연잉군이 갖고 싶어했는데 숙종이 무시하고 연령군에게 주었다고.(...) [4]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된 친일부호. 김구 선생에게 경교장을 마련 한 그 인물 맞다.[5] 김재규중앙정보부장애인 장정이가 마담으로 있었다는 곳. 정인숙 사건과 관련 된 그 곳 맞다.[6] 민영휘손자. 민덕기의 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