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

 




'''남이섬 전경'''
1. 개요
2. 역사
3. 지리
4. 교통
5. 관광
6. 남이섬은 일제강점기, 민영휘가 친일 행위로 빼앗은 재원인가
6.1. '주식회사남이섬'의 공식 입장 전재(轉載)
6.2. 공식 입장에 대한 반론
6.3. 남이섬의 친일이슈에 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
6.3.1. 남이섬 실소유주와 가족관계
7. 2010년 선박 실족 익사 사고
8. 여담
9. 참고 문서

남이섬 홈페이지

1. 개요


북한강 한 가운데 있는 하중도. 또는 그 에 위치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한국관광공사 선정(2017~2018)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 100선' 중의 하나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과거에 강변가요제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운영주체는 지자체공공기관은 아니고 '''주식회사남이섬'''. 주식회사 남이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4번의 소유 관계 참조.
남이섬의 도로명 주소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남이섬길 1이다.[1]

2. 역사


남이섬은 본래 홍수 때만 이 되었지만, 1944년 일제가 청평댐을 건설하면서 북한강 수위가 상승했고 완전한 이 되었다. 앞섬이라는 뜻의 남섬(南島)으로도 불렸던 남이섬 지명의 유래는 남이섬 북쪽 언덕의 돌무더기에 조선 초기의 무장인 남이 장군이 묻혀있다는 오랜 민간전승에 기인하여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천우기행(穿牛紀行) 및 산수심원기(汕水尋源記) 등에 따르면 이러한 민간전승 내용과 함께 일찍이 남이섬을 남이서(南怡嶼)로 부른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島(도)가 큰 을 가리키는데 반해 嶼(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작은 을 뜻한다.
민병도와 민병갈의 友情스토리 남이섬 유원지의 설립자인 민병도[2]1965년 남이섬 조성 초기, 남이장군의 넋을 위로하고 장군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돌무더기 주위에 봉분을 쌓고 추모비를 세웠는데, '노산 이은상'이 추모 글을 짓고 '일중 김충현'이 글씨를 썼다. 남이섬에 있는 것은 허묘(虛墓)로서 남이 장군의 행정상의 진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시대 당시 반역죄로 처형당한 경우, 그 후손들이 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실제 묘지는 화성군 비봉면 남전리 산 145번에 몰래 만들었고 그 묘를 공식적으로 밝히면, 가 훼손되고 경우에 따라 관계자들이 죽음까지 당할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묘를 만들어 본래의 묘지를 지켜내고자 한 것이다.
1980,90년대에도 남이섬은 관광지로 유명하였다.

3. 지리


'''남이섬의 위치(빨간색 원 안)'''
'''가운데의 빨간색 선이 행정구역 경계이다.'''
북한강 가운데 있는 강원도 쪽으로 좀 더 치우쳐 있기 때문에, 행정구역은 강원도 춘천시지만, 접근 도로와, 이 으로 들어 가는 유일한 선착장은 경기도 가평군쪽에 있다. 춘천시 시내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상대적으로 가평군 시가지와는 상당히 가까워, 사실상 가평군이나 다름없다. 남이섬 내의 전화도 '''031'''로 시작되는 경기도 전화번호를 쓰고 있다. 따라서 실질 월경지로 분류된다. 춘천시도 나름 선착장을 만들려 여러 번 시도를 한 적이 있지만 대한민국 환경부의 제제로 좌절됐다. 수변구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의 직선 거리가 약 200여 미터 정도에 불과해 교량를 놓는 게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 하지만 국가 하천에 속해있는 섬이며, 또한 전체가 사유지이고, 일반 거주민은 단 1명도 없으며, 주식회사 남이섬 직원들만 체류하기 때문에 교량를 놓으려는 계획은 전혀 없는듯 하다. 또한 관광지 특성상 다리를 통해 걸어가는 것보다 선박타고 들어가는 것이 나름 분위기도 좋고, 내륙 지역에서 일반인이 선박를 타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기에,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면도 있다. 선착장은 남이섬과 정면으로 마주한 강기슭이 아니라 약간 북쪽으로 떨어져 있다. 그래서 남이섬까지는 배 타고 약 4~5분 정도 걸린다. 출발해서 좀 가나 싶은 느낌이 들면 금방 남이섬 선착장이 눈에 보이고, 이내 도착한다.
참고로 홍천강에 위치한 소남이섬(강원 춘천시 남면 발산리 산174)과는 크게 관련은 없다.

4. 교통


평소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여서 경기도 동부에서 춘천시46번 국도를 통해 이동할 때 자동차가 밀리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이 곳에서 해마다 굵직한 행사가 열리는데 대표적으로 5월에 열리는 남이섬세계책나라축제와 일러스트 공모전인 나미콩쿠르가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남이섬 선착장에서 약 1.5km 거리에 가평역(경춘선)이 있어 수도권에서는 수도권 전철이나 준고속열차인 ITX-청춘 열차로 1시간 내외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서울에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노선이 있다.[3] 가평역이나 가평터미널에서 남이섬 입구까지는 택시로 5분 거리이며, 시내버스도 다닌다.
선착장에서 남이섬 중앙까지 운행하는 남이섬 관광열차가 있다. 항목 참조.
관광객이 많이 몰릴 때에는 가평역에서 남이섬까지 걸어가도 좋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린다. 인근 음식점들은 식사 시 주차 무료, 혹은 4000원에 발렛 주차를 해주기도 한다. 인사동, 숭례문서울 시내에서 남이섬 입구까지 바로 가는 직행 셔틀버스도 있다.
지난 2010년 짚 와이어라는 새로운 이동수단이자 즐길 거리가 생겼는데 80m의 높이의 타워에서 남이섬까지 1분 만에 주파하는 엄청난 이동 수단이다. 이 짚 와이어는 남이섬 방향과 자라섬 방향이 있으며, 섬에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방향은 없다. 가격은 44,000원이다. (경기도민은 3,000원 할인) 남이섬은 현재 입장료(비자)는 1만 3천원, 중․고생 및 70세 이상 및 국가유공자는 10000원, 초등학생 이하는 7000원이며 단체 할인도 있다. 입장 요금에는 왕복 도선료가 포함되어 있다.
2014년에는 남이섬에서 바로 춘천의 관광지를 연결하는 셔틀버스를 시범운행했으나 춘천-가평간을 운행하는 모 시외버스업체의 반발로 불과 열흘 정도만에 중단했고, 다시 협의를 거쳐 10월부터 남이섬 및 각종 명소를 순환하는 춘천 시티투어버스로 재개장했으나 저조한 이용객 수로 2015년 2월부터 노선을 재개편하여 시행중에 있다. 또한 춘천시 구역 내에 별도의 남이섬행 여객선 선착장을 세워보고 유람선까지도 운행시켜보려했으나 수익성 등의 문제로 무산된 적이 있다.

5. 관광


나미나라 공화국이라는 마이크로네이션 컨셉을 쓰고 있다. 남이섬은 2016년 기준 연간 외국인 관광객 130만명을 포함, 전체 관광객 330만명이 드나든다.
서울, 제주도, 부산 다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희한하게도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관심을 보이는 국내여행지이다.[4] 국내 단일 관광지 중 외국인 방문객 최다 지역이 남이섬이다. 남산서울타워, 경복궁과 함께 외국인이 늘 많은 장소. 약 13만 , 섬 둘레가 5km 내외로 부지런히 돌아다녀서 하루 정도면 섬 전체를 관람할 수 있다. 이틀 이상의 일정을 잡은 경우엔 남이섬 주변 가평이나 춘천 등 다른 지역도 둘러봐도 무방하다.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히트친 겨울 연가의 주요 배경으로 나온 것을 비롯해 한국 드라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일본한류 팬들과 다른아시아지역 등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왕복 셔틀이 있을 정도이다. 남이섬의 면적은 약 46만 제곱 미터(13만 평)로, 중, 대형 종합대학교캠퍼스 크기와 얼추 비슷한 수준이다. 무슬림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자, 2014년부터 할랄 푸드 공인 인증 음식점까지 운영하고 있다. 섬에 비치 된 관광 안내 리플릿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태국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등 7개 언어로 제작되고 있다.
2016년 기준 외국인 방문객은 중국 35만, 대만 18만, 홍콩 15만, 태국 14만, 말레이시아 13만, 베트남 10만, 인도네시아 9만, 싱가포르, 필리핀 6만 명을 기록했다. 일본은 5천 명선으로, 한류열풍이 불 때에 비하면 크게 감소하였다. 중화권이나 동남아권 여행객에 비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산책로, 식당, 공연장, 타조사육장[5], 정원, 놀이기구, 기념품점 등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어 어지간한 테마파크나 다름없다. 특히, 다양한 배경과 함께 사진촬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 잘 조성되어 있는데, 남이섬의 트레이드마크인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어 소풍 가기에 좋은 곳. 메타세콰이어길의 원조로 알려져 있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월드컵공원 메타세콰이어길 보다도 못하다는 평이다.

이기 때문에 육로로 이동이 불가능하고 선박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오전 7시 30분부터 저녁 9시 40분까지 선박을 운항한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수시로(매 10~20분) 운항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30분 간격으로 운항한다. 또 다른 방법은 짚와이어를 이용해서 들어갈 수도 있다.
[image]
내에 정관루라는 뷰띠끄 호텔이 있는데 찾는 사람이 많아 3~6개월 전에 예약해야 한다. 본관의 객실은 화가, 공예가, 작가 등 예술가들이 직접 꾸며 어느 하나 같은 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2인실에서 4인실, 침대형과 온돌형 중에 선택이 가능하며, 원하는 디자인의 객실을 예약할 수 있다. 주말 가격(2인 기준)은 119,000원이고 평일 가격은 97,000원 이나 해 지갑 사정이 궁하다면 그냥 관광만 하자.
그 외에 가족룸 및 오두막 같은 별채들 까지 객실 44개의 본관과 서쪽 강변에 늘어선 별관 1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별관은 가족 또는 단체가 숙박할 수 있는 콘도별장, 두 사람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투투 별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텔 투숙객은 선착장과 호텔 사이의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호텔 옆에 수영장이 있는데,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투숙객은 할인 받은 금액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 에서 가을까지 날씨 좋은 날에는 풀사이드 바베큐가 열린다.
섬의 주요 동선을 따라 기찻길이 나있는데, 이곳에서 운행하는 유니세프 나눔 열차는 3000원에 이용할 수 있고, 수익금 일부가 유니세프에 기부된다고 한다. 눈, 비가 많이 올 경우에는 운행을 중단한다.
중앙에 도서관이 있는데, 건물 규모가 크다. 2층인 도서관엔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어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도 아깝지 않다. 도서관 내에 작은 미끄럼틀이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2층엔 나미콩쿠르 수상작이 전시되어있고, 그 중 1등작은 남이섬의 몇몇 가게에서 사갈 수 있다. 1층엔 다수의 식당이 존재한다.
도서관 옆엔 놀이터가 있는데[6], 대부분이 땅굴 속의 파이프를 타고 돌아다니는 구조[7]어린이가 아니면 이용하기 어렵다. 그 옆엔 자전거 대여소와 짧은 하늘자전거 레일이 있다. 자전거 대여소엔 1, 2, 4인용은 물론 전동 자전거까지 있다.
현 부회장인 강우현은 홍익대학교 미대 출신으로 남이섬 내에 각종 문화예술 행사와 설치 미술들을 만들고 있다. 다소 난잡해 보이긴 하지만, 관람객들은 연신 플래쉬를 터뜨리며 좋아하는걸 보니 제법 성공적인 모양. 겨울연가가 이 중흥의 시작인 관계로(그 전까진 남이섬 유원지였다. 그야말로 행락객들이 소주만 먹고 뛰놀고 고성방가하는) 겨울연가 관련한 눈사람, 메타세쿼이아길 등이 주요 트레이드 마크이다. 그 외에 섬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소주병을 납작하게 눌러 가공한 것들로 다리를 만드는 식의 재활용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이슬 정원은 참이슬병으로 만들어서 이슬 정원이라고 한다.
섬 서편으로 강변을 따라 쭉 이어진 나무로 된 산책길이 있다. 아침에 산책하면 좋다.
울타리에 갇힌 타조는 ‘깡타’라고 불리며 ‘깡패타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원래는 섬 내서 방목했었지만 관광객들의 도시락을 뺏어 먹는 등 소란을 피워 우리에 갇힌 신세가 됐고, 대신 공작을 방목하고 있다.
제이슨 므라즈가 남이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6. 남이섬은 일제강점기, 민영휘가 친일 행위로 빼앗은 재원인가


'''만일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다른 관점을 독립된 항목으로 새로 만들거나 기존 문단 내용에 추가하여 서술하기 바랍니다. 내용을 삭제하지 말고 가급적 기존 내용을 보존하고, 추가하기를 권장합니다.'''

6.1. '주식회사남이섬'의 공식 입장 전재(轉載)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내용이므로, '주식회사남이섬'측의 공식 입장 및 해명이 담긴 홈페이지 내용 전문을 나무위키에 전재(轉載)합니다. 판단은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하시길 권장합니다.

남이섬 홈페이지> 자주묻는질문> 인터넷에 나도는 남이섬의 친일 이슈에 관한 공식입장은 무엇인지요?

최근 인터넷에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악의성 글들과 일부 인터넷 언론에 의한 음해 기사가 나돌고 있습니다. 저희 남이섬은 사실이 아닌 허위 비방 내용에 대하여 언론중재위원회 제소를 비롯, 민형사 상의 적법 조치를 강구하고 있습니다. 악의성 허위 비방 글들에서 보이는 내용 항목들에 대한 주식회사남이섬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남이섬 설립자는 친일파인가요?

주식회사남이섬: 사실이 아닙니다. 금융인, 출판인이자 문화예술후원자인 남이섬 설립자 수재 민병도 선생은 참여정부 시기 '''대한민국 국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에서 지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뿐 아니라, 심지어 진보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함세웅 신부)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어디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의 요절한 부친인 민천식 또한 어떠한 친일명단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재 선생이 110년 전에 친일 행적이 있는 민영휘의 庶子(서자)인 민천식의 養子(양자)이기는 하나, 대한민국 정부와 진보민간단체 양쪽에서 수재 선생 및 그의 부친에 대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닌''' 것으로 공식 판명하여 주었습니다.

- 그렇다면 왜 친일 이슈에 거론되고 있는 것일까요?

주식회사남이섬: 친일 행적이 있는 민영휘가 당시 외국에 나가 있는 어린 학생이었던 수재 선생의 명의로 일제에 국방헌금을 납부하면서 오해가 시작되었으나, 이는 단순한 차명 납부로 밝혀지면서 현재는 오해가 풀어진 상태입니다. 항간에 명성황후 민씨의 비밀장부를 민영휘가 입수하여 남이섬을 구입했다는 황당한 이야기까지 있으나, 이 또한 공상소설에 조차 나오지 않을 법한 거짓 풍문일 뿐입니다.

- 남이섬은 일제 때부터 내려오거나, 불하 받거나, 친일 행위로 형성된 재원으로 구입된 재산인가요?

주식회사남이섬: 사실이 아닙니다. 남이섬은 1940년대 중반 청평댐이 완공되면서 온전한 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고, 그 이전에는 비만 오면 반쯤 잠겨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골의 싸구려 불모지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몇몇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터를 잡고 살던 남이섬을, 당시 금융계에 수십년간 몸 담고 있었던 수재 선생이 1965년 본인의 근로소득과 퇴직금을 모아 구입하여, 현지 원주민들과 함께 묘목 하나하나씩을 정성스레 심고 가꾸어 내었을 뿐입니다. 당시 강남 개발이 논의되던 시기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강남 땅 매입을 권유할 때 이를 뿌리치고 “푸른 동산 맑은 강은 우리의 재산, 성심껏 다듬어서 후손에게 물려주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세워 수만그루의 나무를 직접 심고 가꾸어 나간 일화는 아직도 유명합니다. 즉, 남이섬은 한두사람의 섬이 아닌 남이섬 원주민, 400여 임직원 한명 한명 모두의 50여년 피땀이 어려 있는 섬이며, 일제 시대부터 내려오던 개인 재산이 아니라 1960년대 신규 설립된 회사입니다. 50여년 전 돌 하나, 나무 한그루를 나르던 분들이 정년 80세 한 직장에서 아직도 함께 하고 있으며, 남이섬 개발 전에 농사를 짓고 살던 원주민들도 남이섬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현재도 왕래와 기여를 다하고 있습니다.

- 남이섬은 참여정부 시기 친일재산 환수를 피하기 위하여 법인 전환을 했나요?

주식회사남이섬: 사실이 아닙니다. 변변한 관광휴양지가 없었던 60년대, 주한 외국공관의 외교관들이 휴가철 일본 등으로 출국하여 돈을 쓰고 오는 것을 방지하여 외화의 국외유출을 방지하고, 건전한 국민관광지를 육성해 달라는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권유에 따라 1966년 12월 23일, 남이섬을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하였습니다. 이후 사업 등에서 일군 재원을 모두 남이섬 나무심기와 문화예술 지원에 수십 년간 쏟아와 오늘에 이릅니다.

- 남이섬 및 남이섬 임직원과 주주들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주식회사남이섬: 사실이 아닙니다. 남이섬과 남이섬의 수백여 임직원들, 수십여 주주들은 모두 성실하게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있으며, 특히 지역에서 가장 납세 공헌도가 큰 모범기업으로서 지역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식 이전에 있어서도 법에서 정한 모든 세금을 정정당당히 납부하고 있는 만큼, 인터넷에 떠도는 악의 음해성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 남이섬 임직원과 주주들이 서울 삼성동에 땅이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부촌의 대저택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주식회사남이섬: 사실이 아닙니다. 남이섬의 수백여 임직원들, 수십여 주주들 중 어느 누구도 서울 삼성동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항간에 떠돌듯이 미국 캘리포니아 부촌인 산타모니카 및 팰러스버디스의 대저택을 소유하고 있지도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 남이섬 임직원 및 주주들 중에는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주식회사남이섬: 사실이 아닙니다.

- 남이섬은 남이장군이 묻혀 있다는 거짓말로, 남이장군을 팔아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주식회사남이섬: 사실이 아닙니다. 수재 선생은 1965년 남이섬 조성 초기, 남이장군의 넋을 위로하고 장군의 기상을 기리기 위해 예로부터 남이장군의 무덤이라 전해지던 돌무더기 주위에 봉분을 쌓고 추모비를 세웠는데, 노산 이은상 선생이 추모 글을 짓고 일중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썼습니다. 한편 남이장군의 행정상의 진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남이섬 홈페이지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6.2. 공식 입장에 대한 반론


민병도가 자신의 퇴직금으로 구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근거나 증거가 부족한 변명일 뿐이다. 당시 민병도는 민영휘가 친일반민족행위의 대가로 축적한 재산의 대부분을 이미 상속한 상태였다.
민영휘 친일재산, 첩에 팔았다 해도…
친일 재산 논란에 휩싸인 ‘국민관광지’
친일 재산 환수와 관련 법률이 대상을 너무 좁게 적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8.15 광복 직후에 설립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형사법을 적용해 친일파 관련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다. 남이섬도 그러한 관점을 적용하면, 친일반민족행위에 기반해서 조성된 재산으로 '''몰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주식회사남이섬'의 공식 입장은 제대로 된 근거나 서면 자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설립자 민병도가 직접적으로 친일행위자가 아니라며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애초에 문제가 된 건 남이섬 설립자 민병도가 아니라, 민병도가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확정된 민영휘의 직계 자손으로서 유산 대부분을 상속했고, 그에 기반해서 조성된 재산이 남이섬이라는 것이 문제다.

6.3. 남이섬의 친일이슈에 관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단


[판결 요약]
“민병도는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남이섬을 매입한 것이지, 선대로부터 상속 내지 증여 받은 재산으로 남이섬을 매입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워 친일재산이라 할 수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이하 ‘친일재산’이라 한다)이라 함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 증여 받은 재산을 말한다. 이 경우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조 제2호).
민병도는 친일조사위에서 지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민병도의 부친인 민천식 역시 친일조사위에서 지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이나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 1938년 동일은행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하여 1965년 한국은행 총재직에서 퇴임할 때까지 25년간 금융기관에서 종사하였다. 민병도는 한국은행 총재에서 퇴직한 해인 1965년 그 동안 자신이 받은 급여와 퇴직금 등을 모아 남이섬을 매입하였고, 남이섬에 종합휴양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1966년 남이섬의 소유자를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로 법인화하였으며, 2000년 4월 ‘주식회사남이섬’으로 상호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민병도가 1965년 남이섬을 매입할 당시 남이섬의 매입가격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없다. 그러나 남이섬의 일부인 춘천시 방하리 198번지 토지의 1972년 당시 토지등급은 35등급이고, 35등급의 토지는 ㎡당 35원이며, 남이섬 전체 면적이 460,000㎡인 바, 1972년 당시 남이섬의 토지가격은 16,100,000원(=35원×460,000㎡) 정도로 추정된다. 이를 2018년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611,059,400원 정도인 바, (단, 이는 어디까지나 1972년 토지가액 기준이므로 이보다 7년이나 더 앞선 1965년 매입 당시에는 본 가액보다 더 낮았을 것으로 추정) 당시까지 민병도가 쌓아온 사회적 경력과 이에 수반하여 축적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자력(資力)을 고려하면, 민병도가 스스로 구입 가능하였을 금액으로 판단된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문제의 문구의 게재는 원고 남이섬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고, 그 내용이 진실하지도 아니하며, 각 문구가 이 사건 사이트에 계속 게재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원고의 명예 내지 인격권에 대한 침해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그 침해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피고들(언론사)은 해당 문구를 삭제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KBS NEWS 법원 “남이섬, 친일재산 보기 어려워”…언론사에 문구 삭제 주문
MBC NEWS 법원 "남이섬, 친일재산 아니다"…언론사에 문구 삭제 주문

6.3.1. 남이섬 실소유주와 가족관계


민영휘(1852년 5월 15일 ~ 1935년 12월 30일)는 일제 시대, 친일반민족행위자, 명성황후의 친척 조카.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민영휘 역시 대상자로 지목되었으나, 이미 재산의 상당수가 '주식회사 남이섬' 등으로 법인화 되어버려서,개인 명의 재산과 법인 명의 재산을 물리적으로 구별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70억원 정도만 환수되었다고 한다. 법원, 민영휘 후손 친일재산 국가환수 정당
민천식: 민영휘서자
이름
비고
민병도(민영휘 손자, 민천식의 아들)
제일은행장, 한국은행 총재 역임, 2006년 사망
민웅기(민병도 장남, 민영휘 증손자)
남이섬 소액주주, 사내 이사
민병도의 차남
기업체 경영
민인기(민병도 당질(5촌조카))
휘문의숙(휘문고등학교의 학교법인) (전)이사장
민덕기(민영휘 증손, 민병도의 당질(5촌조카)
풍문여고 설립자
민경현(민영휘 고손)
풍문학원 이사장
남이섬 지분 45%[8]을 소유한 민씨일가 대부분은 미국 국적으로,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전원 대한민국 국적자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7. 2010년 선박 실족 익사 사고


5월 26일에 왕복 선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 소풍을 가던, 고양시 화수중학교 학생이 사망한 사고이다. 남이섬 향하던 배에서 중학생 물에 빠져 숨져 남이섬 사고 "튜브, 철사로 묶여 사용못해" 논란 남이섬 안전관리 ‘허점’…중학생 1명 강물에 빠져 숨져, KBS[9]여러 명이 사진을 찍다가, 난간 부근에서 넘어져서 사람에 빠졌다. 주변인들이 사람이 떨어졌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선장은 장난인 줄 알고 들은 척도 안 했다고 배도 안멈췄다고 한다. 구명조끼와 튜브는 철사로 묶여 있어서 던질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4시간 뒤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사고로 인해 화수중학교는 현장학습을 근거리로 가게 되었다. (경찰 수사 결과 업데이트 필요)

8. 여담


  • 제주시 한림읍에 '제주남이섬주식회사'를 분할 설립해서, 제2남이섬, 일명 탐나라공화국을 운영하고 있다.
  • 주식회사 남이섬의 자본금은 10억원이며, 2016년 기준 매출액 302억원, 영업이익 86억원, 당기순이익 63억원을 기록했다.
  • 남이섬 서편에 작은 선착장이 또 있는데, 그곳에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그 배들은 8,90년대에 운영했던 배들이다.
  • 남이섬에는 소방차도 있다.
  •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있다.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청설모도 있다. 여름에는 타조를 아예 풀어 놓기도 한다.
  • 섬 남쪽에도 선착장이 있는데, 철길도 같이 이어져있다. 아무래도 기차를 들여올 때 이쪽으로 들여온 것 같다.
  • 가을에 남이섬에 가면 밤꽃 냄새가 매우심하다.


9. 참고 문서



[1] 지번 주소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 198번지이다. [2] 명성황후(민비)의 친척이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민영휘의 손자. [3] 청량리역, 상봉역 등지에서 1330-2를 탈 수도 있지만, 청량리역에서 가평터미널까지 1시간 40분 가량이 걸려 시간상 메리트가 떨어진다.[4] 강원도에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남이섬을 첫순위에 꼽는 한국사람들은 거의 없다.[5] 토끼도 있다.[6] 이름은 두더지 하우스[7] 타조굴이라고 써있는 굴에 들어가면 미끄럼틀 못지 않은 경사도 있다.[8] 전문 경영인 지분까지 합산하면 55%. 남은 45%는 국가 및 개인 소유.[9] 사고가 난 뒤 남이섬 측이 내놓은 대책이라곤, 관광객에게 주의하라는 표시를 한 게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