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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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팔레스타인'''
1. 개요
2. 상세
2.1. 대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관계
2.2. 가자 지구 봉쇄와 충돌
2.3. 일제강점기와의 차이점
3. 관련 문서


1. 개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관계.

2. 상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견원지간으로 서로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단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존재를 자국 내 자치정부 비슷한 존재로 인정하고 요르단 강 서안 지구가자 지구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자치 영역으로 인정해주었지만 그것은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팔레스타인 역시 오슬로 협정을 받아들였지만 스스로를 독립국이라 주장하며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인들 입장에서 이스라엘 유대인은 이스라엘 건국 초기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재산을 뺏고 학살을 자행했으니 관계가 매우 나쁘다. 툭하면 폭정을 저지르는 터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있어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악의 집단이다. 따라서 사이가 매우 나쁘며, 양 국민들이 서로를 해하는 악순환이 70년넘게 지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책이라면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에 대한 글이 빠짐없이 있다. 팔레스타인은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스라엘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국제적인 체육대회 같은 행사에 참가하는 것조차 이스라엘의 승인이 필요할 정도이며, 기업조차 이스라엘 정부가 허락해 주지 않고, 설령 허락한 기업들조차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각종 규제를 걸어놨고, 세금유대인보다 더 많이 물린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물가는 대한민국보다 높으며, 소득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뮌헨 올림픽 참사를 일으킨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은 테러 과정에서 네오 나치의 지원을 받았으며, 네오 나치의 지지를 꽤나 받고 있다. 이것은 네오 나치에게는 이이제이, 팔레스타인에게는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진영논리의 한 예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거두 중 하나라고 불리는 아민 알 후세이니나치즘에 동조하며, 나치 독일에 부역을 하며 세르비아계 학살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에 티토가 그를 잡아 죽이려 이를 갈았지만 그는 잽싸게 팔레스타인에 달아났다. 자세한 내용 및 기타 관련 내용은 아민 알 후세이니 문서와 관련 링크, 네오나치 문서의 팔레스타인 부분, 반유대주의, 이슬람 극단주의를 참조하면 좋다.
이런 점에서 인도의 찬드라 보세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다른 조직이 저지른 짓이지만, 팔레스타인 독립운동가가 여기에 협조했다는 점과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이 협조했다는 점, 그리고 팔레스타인이 테러리스트들을 대외적으로 영웅이라고 선전한다는 점과,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거기에 동조 혹은 방조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점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을 비롯한 아랍인들마저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취급됐으며, 이는 현재 서구에서 무슬림, 혹은 아랍계에 대한 가장 질 나쁜 인종차별적 모독 중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주류는 세속적 아랍 민족주의,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받으며, 여성 인권이나 다른 종교, 민족과도 훨씬 더 유화적이었던 PLO나 PFLP 산하의 지원병(fedayeen, فدائيون)들이었으며, 하마스의 부상은 이들이 오슬로 협정 이후 부정부패로 심각하게 지도력에 금이 간 아라파트 체제가 무너지면서 생긴 일이다.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도 2018년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땅이며 예루살렘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수도라고 말했다. 물론 이스라엘의 압제를 아라파트와 자치정부가 대항할수 없었던 것도 있다. 당장 대중 문화에서 체 게바라 같은 팔레스타인 저항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유명한 여성 페다인 레일라 칼레드의 경우만 보아도 그렇고, 하마스의 부상 이전 명실부공한 두번째 팔레스타인 저항 단체였던 팔레스타인 인민 해방전선(PFLP)의 경우 아예 기독교 신자인 조지 하바쉬가 창설하고 지휘했던 집단이다.
아랍 민족주의의 선봉에 서있던 것이 서구와의 접점이 많았던 아랍계 기독교 지식인들이었고, 오스만 말기에 간행되어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을 널리 확산시키며 지역민들을 이어주고 시오니즘을 비판하던 대표적 근대신문 '필라스티니'도 기독교 신자가 만든 언론이었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원래 동로마의 영역이었던데다 십자군 전쟁의 주된 전장이었다 보니 기독교인 공동체도 많았고, 이들을 집중 박해하여 추방한 건 팔레스타인 무슬림 측이 아니라 이스라엘 당국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 같은 이슬람 vs 서구세계라는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거대 담론에서 조금만 벗어나 현지의 직접적인 역사와 각 세력들의 역학 관계를 살펴 보면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권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부상과 접점은 있어도 근본이나 주된 성격은 전혀 다른 분쟁이란걸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공식적으로 세속 국가이고 종교 강요는 없지만 유대교의 영향력이 굉장히 강하며 다른 종교를 싫어하고 배척한다.
건국 당시 이스라엘 사정상 회유책을 벌일 능력이 없었다. 팔레스타인을 회유하려면 장기간 막대한 양의 물품들을 배급하며 각종 복지를 펼쳐야 하는데, 당시 이스라엘은 물자가 심각하게 부족해서 전쟁에서 부상당한 유대인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 무기들은 대부분이 적으로부터 노획한 것들이거나, 예전에 쓰건 구닥다리를 개량한 것들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이 할 수 있던 것은 외면하거나 강압책을 벌이는 것뿐이었는데, 팔레스타인을 외면하기에는 당시 팔레스타인에 지나치게 반이스라엘 조직이 너무 많았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불경기로 인한 높은 실업률과 경기침체로 경제 문제가 심각해 장기간의 회유책이 힘든 상황이다.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기만 해 양측이 피해보고 있는 상황이다.
2015년 10월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유혈 충돌이 격렬해진 가운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홀로코스트는 팔레스타인의 아민 알 후세이니가 히틀러에게 사주한 것"이라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알 후세이니가 친나치 활동을 벌인 것은 맞고, 홀로코스트에 동조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나, 홀로코스트의 계획과 책임은 엄연히 아돌프 히틀러나치 독일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을 하였다.이스라엘 내에서도 네타냐후의 이러한 주장에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을정도.
이스라엘 정부가 동예루살렘에 새로운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추진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재개한다고 전한다.# 이스라엘 측도 압류해뒀던 팔레스타인 측 세금 11억 달러를 넘겨줬다.#
2021년 2월에는 이스라엘측에서 팔레스타인측에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했다.#

2.1. 대 하마스, 헤즈볼라와의 관계


먼저 가자 지구를 장악한 하마스, 팔레스타인, 레바논에 위치한 헤즈볼라는 국제법상 인정된 정치 정당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PLO와 이스라엘이 합의를 보았던 자치정부안에 반대하면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2006년 팔레스타인 의회 선거에서 승리하고 특히 가자지구를 석권하다시피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 헤즈볼라만 멸망시키면 모든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가자 주민들이 점점 하마스의 광신적인 통치에 싫증이 나고있는 바람에 하마스의 지지율은 썩 좋지 않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하마스의 무자비한 전략(민간인을 향한 무분별한 미사일 발사 및 인간 방패)과 인권 침해를 점점 알아가면서 아랍권을 제외하곤[1]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가 자발적으로 정권을 포기할 리도 없고[2] 지지자들도 상당하기에 줄어든다 해도 이스라엘의 비타협성과 탄압으로 늘 다시 지지를 확보하니 큰 문제가 없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측에게 절대적인 전재 조건으로 내거는게 협상 하고 싶으면 무장을 해제하라고 요구하고 이쓴데, 미국과 유럽 상대로 계속 팔레스타인측은 무장해제 하지 않는다고 저들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테러리스트라 언플을 하고 있지만 세계 여론은 파타와 이스라엘 진보파도 정부보고 그런식으로 하니 협상이 되겠냐며 비판하고 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완벽하게 하마스를 때려잡으려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3] 이스라엘은 하마스로 인해 당분간은 괴롭힘을 당할 것은 명백하다. 게다가 이스라엘 유대인들도 끝이 안보이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과의 전쟁, 팔레스타인인, 아랍인들의 테러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평화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극우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이스라엘 정계도 큰 문제라서 그저 폭력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어 원인제공을 하고 있다.[4] 그러다보니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나쁜 집단이라며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사진과 미디어로 홍보해도 전혀 먹히지 않고 오히려 국제여론은 팔레스타인의 피해만 보지 이스라엘 피해는 자업자득이라며 비웃음만 당한다. 이스라엘에서도 이젠 자조적으로 국제적으로 욕먹는 나치와 더불어 제 2의 나치라며 우리 이스라엘이 붙는다든지 이스라엘 내 시사만화로 국제적으로 미국 외 우리 동맹은 없다, 그 미국에서도, 유태인 후손들에게도 점차 동맹국이라는 점을 질색하는 문제라고 풍자되고 있다.
하마스뿐만 아니라 헤즈볼라는 더욱 이스라엘이 고전 중이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국회에 진출한 정당이다. 게다가 하마스와 달리 세속적인 모습을 통하여 매스 미디어 전에서도 이스라엘에게도 덤벼든다.
이스라엘에게 비극은 하마스나 헤즈볼라가 국제적으로 욕먹어도 지지자들 및 새로 들어갈 인구층이 탄탄하는 점이다. 게다가 헤즈볼라를 소탕하고자 레바논으로 쳐들어간 2006년에 이스라엘은 150명이 넘는 전사자를 냈다. 6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 전군 전사자가 몇 백명 수준이던 걸 생각하면 일개 테러단체라고 부르는 헤즈볼라에게 이 정도 전사자를 냈으니 이스라엘에서도 우리가 졌다라고 분노했다. 그렇다고 레바논으로 쳐들어가 총력전을 벌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2.2. 가자 지구 봉쇄와 충돌


'''가자 지구 봉쇄 정책'''은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중 가자지구의 하마스 테러 공격을 예방하기 위한 정책으로 본 의도는 그것이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주민들까지 봉쇄당하게 되었다. 하마스가 아닌 파타가 집권한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이 같이 살기까지하는 서안지구와는 대조적이다.
감시탑을 설치하고 저격수를 배치하여 수많은 하마스 대원들을 사살하였고[5] 그중에 일부 민간인들도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6] 거주구의 건물들이 하마스의 엄폐물이 된다는 이유로 불도저로 모조리 밀어버리기도 했다. 이를 저지하던 소수 팔레스타인 사람들 및 하마스 지지자들이 피해를 입고 미국인 여성 레이첼 코리는 불도저에 압사당했다. 하마스 요인 암살을 위해 차량을 미사일로 파괴하기도 했다.[7] 참고로 금지된 무기와 신무기 실험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2008년 12월 가자 전쟁 때 가자 지구가 폭격 당하는 장면을 TV 프로그램에서 경기 스코어에 비유하면서 중계를 하고 이를 이스라엘인들이 술 먹고 즐기는가 하면 길거리에서 뛰면서(jumping) 환호하는 모습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덴마크 언론인이 ‘스데롯 시네마’라 부르며 이스라엘판 악마를 보았다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가자 지구에 대해 지원하려고 하면 국적과 목적을 불문하고 일단 검역하려고 드는데 왜냐하면 하마스로 무기가 공급되는 것을 철두철미하게 막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공격으로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한다.
2009년 1월 9일에는 하마스로 유입되는 무기를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국경선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UN의 팔레스타인 난민 기구 구호 트럭에 공격을 하는 대형사고를 쳐서 UN이 항의하며 아예 지원 중단을 결의한 사례가 있으며, 2010년 6월 4일 벌어진 가자 지구 구호선 총격 사건도 국제적인 비난을 샀다. 결과적으로 9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총격을 받고 숨지면서 UN은 물론이고 국제 사회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매서운 비난을 쏟아냈으며 주요 동맹국인 터키조차 등을 돌려버리면서 이스라엘에선 난리가 벌어졌다.
이집트에서도 이스라엘 대사관이 가자지구 공격에 항의하는 이집트 민중들에게 공격받아 진압 당시 3명이 사살당하자 반이스라엘 감정이 터지면서 이집트 현 임시 정부까지도 위기에 빠져 터키와 이집트라는 막대한 군사 강국들이 적이 되는 거 아니냐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그런데 정작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책임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터키에 있었다.
가자 지구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착촌이나 도시에 출입이 불가능하며 용역업 등의 일로 통행시에도 공항의 몇 배에 달하는 검문을 받는다. 가자 지구를 제외하고는 무장한 팔레스타인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서안 지구 사람들도 다를게 없다.
이런 가운데 2011년 10월 17일, 5년 동안 헤즈볼라에 납치되어 억류되었던 사병 길라드 샬리트가 석방되었는데 이스라엘 측은 샬리트 이 1명의 석방 조건으로 120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포로들을 석방시키기로 했다. 이는 이스라엘 건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화제가 되었고 이스라엘 극우세력들의 반발 속에 결국 강행되었다.
2012년 11월 가자지구에 선전포고하여 또 한 번 폭격을 갈겼다. 이때 공격 예보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하는데, TV 방송 외에 SNS도 범위에 들어간다. 예를 들면 트위터에 "가자 지구를 폭격할 예정이니 대피하라 #가자 지구" 라는 식이다.
2012년 11월 가자지구 폭격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되려 이스라엘에 대한 반발만 불러와 결국 11월 29일 UN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비가입 참관국 인정을 이끌고 말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이제 팔레스타인은 UN 전쟁범죄 제소권을 가지게 되어 이스라엘로선 골아프게 되었다. 독일이 기권하긴 했지만 마지못해 기권했을 뿐이며 반대 분위기는 없었을 정도. 물론 제소권이 생겼다 해서 바로 무슨 큰 변화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아무도 안한다.
이후 2014년 7월에 가자지구를 폭격했는데 너무나 막나가는 이스라엘 정부와 그걸 좋아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반 이스라엘 시위가 곳곳에서 열리는 등 반발만 불러왔다. 프랑스에서는 유태인 가게들이 습격받아 약탈되어 프랑스 경찰이 출동하고 지나가던 골수 유대인 하레디들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나치 새끼들이라는 욕을 대놓고 들어야 했다. 미국조차도 유태계 정치인인 존 캐리가 "우선 이스라엘의 정당방어이긴 한데 이건 너무 심하다. 민간인 피해가 크니 이스라엘도 좀 물러섰으면 한다."라는 태도를 밝혔다. 해외 유대인들도 저놈들 때문에 우리만 피해본다며 비난을 가했다.
2016년에도 4월에 이스라엘의 계속된 봉쇄로 발생한 버스 폭탄테러와 계속된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받자 다시 공군과 포병으로 가자지구를 공격했다.

2.3. 일제강점기와의 차이점


일제강점기일제대한제국의 멀쩡한 주권을 뺏은 것에 가까운 반면 팔레스타인의 경우, 인티파타 이후 오슬로 협정에 의해 이스라엘의 영토였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자치국가를 세운 것이다.[8] 약자에 대한 대우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존재한다. 조선의 경우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제가 직접 통치한 반면,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의 경우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아 1967년부터 현재까지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들은 팔레스타인 건국당시 돌려받지 못한 상태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에 한해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조선의 경우는 일제에 병합되어 식민지가 되었으며 일제는 이전부터 일본 열도의 본토를 유지중이었다. 일제는 조선을 본토와는 별개의 식민지로 여겨 조선인들을 학살하거나 외부로 추방하기보다는 주류에서 배제하여 착취하고 지배하거나 말기에는 강제로 동화시키려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이 오스만 제국영국의 지배를 받을 때 유대인들이 이주하여 국가를 세웠으며 이후 전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인들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을 추방하였다.[9][10][11][12]
일제의 경우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로 삼았기 때문에 학살보다 강제노역, 창씨개명 등 조선인을 일본의 2등신민으로 만드는 데 주력한 반면[13], 이스라엘의 경우 팔레스타인, 특히 하마스와 같은 무장단체를 때려잡는 것에 중점을 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2등 시민[14]이 아닌 유대인 국가에서 철저히 배제해야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가 강제노역시키거나 위안부로 만들거나 강제개종, 히브리어 창씨개명을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창씨개명이나 강제노역 등이 없었던 건 비단 이스라엘 뿐 아니라 다른 몇몇나라들도 있었다(예를 들면 아시아, 아프리카, 멜라네시아의 여러 나라들). 분명히 이러한 문제가 없었기에 일제로 비유하는 것은 다소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겠지만 어디까지나 이러한 점들이 일제스럽지 않을 뿐이지, 그렇다고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스라엘처럼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한 나라들이 야만적이거나 막장스런 만행이 없었다는 건 아니다.[15] 이스라엘과 일제는 둘 다 약자를 괴롭히고 있다는 점에서만 비슷할 뿐 세부적으로나 양상으로나 완전히 다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국제법상으로는 타국가이지만 서로가 인정하고 있지 않기에 단순히 타국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스라엘은 아직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역시 어디까지나 자치정부로 간주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와 그나마 비슷한 사례로는 양안관계가 있다.[16]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중국과 티베트 또는 위구르만 해도 일제강점기와 비슷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탄압하는것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이스라엘과 같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기도 했던 국가들을 완전히 일제와 동급으로 칠 수는 없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저지르는 만행들(또는 그런 만행들 중에서 일부)이 일제와 다를 바가 없다며 비난을 받기도 하는 것뿐이다. 쿠르드 분쟁이라던가, 팔레스타인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아일랜드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의 팔레스타인은 사실상의 독립 국가로 이슬람 국가들과 반미국가들 그리고 스웨덴과 같은 중립을 표방하는 선진국들의 승인을 받았지만 대한민국을 위시로 하는 친미, 친서방 국가들과 이스라엘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팔레스타인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기 전까지는(정확히는 이스라엘이 동정받았을 때) 오히려 이스라엘이 한국과 더 비슷한 공통점이 있다고 여겼고,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가들을 일제 등 외세의 침략으로 보았다.
이에 대한 반론도 일부는 있는데, 팔레스타인과 일제강점기의 상황이 공통점이 거의 없음에도 비교예시로 자주 사용되었던 것은 한국 역사상 그나마 팔레스타인과 비슷했던 시기가 일제강점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에서 외세에 의해 민족 전체가 지배를 받은 적은 거의 없었고 그 중에서 외세의 완전한 지배 기간을 꼽자면 일제강점기가 가장 잘 알려져 있어 일반인들도 공감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권을 찾는등 반쯤은 성공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이 여전히 간섭하며, 서안의 경우는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늘리면서 이스라엘의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보니, 이 점 때문에 식민지배를 받는 지역 및 국가로 연상시킬 수 밖에 없으며,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러한 비판을 듣게 된 것이다.[17]
물론 언급했듯이 팔레스타인도 2012년 11월 29일 유엔에서 주권도 얻고 정식 국가급 위치로 인정받아서 2013년 이후 이스라엘로부터 독립되기 이전의 상황이랑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정확히는 팔레스타인이 자치 정부에서 국가로 선언한 것으로 완전한 독립까지는 아니되 일부분 이스라엘로부터 벗어나기도 한 점도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경우도 정당의 상황이 심각한 게, 하마스는 군국주의에 해당되는 군벌이고, 파타는 독재를 하는 등 팔레스타인의 정치 내부 역시 이러하다보니 팔레스타인도 내부 인권 탄압이 심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듣는다. 차라리 조선의 독립운동과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하마스, 파타 등의 정치성향의 정당들을 따지는 걸 떠나서 일반 팔레스타인인들(또는 구체적으로 그 중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경우)의 자치정부 및 국가로 승인되기 전의 독립운동 시기, 이스라엘로부터 다시 되찾으려는 영토 반환 등이 비슷하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옛 독립운동 시기, 반이스라엘 시위, 일부 영토점령과 그로 인한 불법개척에 대한 항쟁이나 빼앗긴 영토를 되찾으려는 저항 등이 일제강점기의 조선과 비슷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이스라엘 = 나치 또는 일제 및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 팔레스타인 = 조선으로 보긴 어렵다. 다만 이를 반박하겠다고 그 반대로 지나치게 팔레스타인을 비하해야 할 이유도 없다. 심지어 국내 극우 성향 블로그들(여기서 말하는 극우는 기독자유통일당 계열)에서는 아민 알후세이니의 사례를 과장, 날조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은 다 백린탄에 맞아 죽어도 마땅하다는 식의 극언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일제강점기와 비교해서 보는 견해가 우세했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계에서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감정이입을 했던 점을 생각하면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국내 주요 언론에서는 한경오를 포함해서 일제강점기 한반도 상황과 팔레스타인 상황의 직접 노골적인 비교는 자제하는 편이고 주로, 마이너 언론이나 블로그 등에서 일제 강점기 당시 한국과 팔레스타인 상황을 비교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및 아랍계 국가들과의 분쟁도 포함)의 경우 제일 올바르게 보는 방법이라면 중립적으로 보는 것이다. 국제 사회 대부분이 이국 방안(또는 양국 방안)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러한 이유도 적지 않다.

2.4. 음모론


과거부터 현재까지 간간이 나오는 음모론 중 하나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연극이라는 주장이 있다. 물론 학계에서는 일말의 신빙성도 없다고 무시되는 음모론이다. 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둘 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주장한다. 이 음모론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및 독립단체들과 이스라엘 정부가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한 거다!"라고 할수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완전 절멸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에게 막대한 돈을 줘서 협력을 구해내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팔레스타인 주권을 위해 규합하면, 이스라엘은 이들을 개박살낸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독일이 홀로코스트로 인한 자신들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후원해줘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학살을 벌이게끔 유도한다는 음모론이 있다. 이 음모론은 주로 혐독들과 "지금의 독일 정부는 네오나치에 의해 조종받는다"는 음모론을 맹신하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된다.
비슷한 주장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대사기극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 주장은 지나치게 확대해석되거나 과장된 점이 너무 많다.

(음모론 1) 이스라엘의 민간인 소녀 사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시위대에 참여하고 있던 소녀를 총기로 사살했다는 뉴스가 전세계에 알려져 이스라엘군에 대한 무자비한 이미지와 비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무자비함을 비난하기 이전에 이스라엘 군인이 민간인 소녀를 사살하게 된 경위에 대해 팔레스타인의 시위 문화를 짚고 넘아가야한다. 팔레스타인의 시위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앞세우고 그들의 손에 무기를 들게 한다. 이스라엘군인들이 쉽사리 공격할수 없는 점을 악용한 것이며 이 위험한 대치 상황 중에 어린아이와 여성들이 희생된다.

어느정도는 사실인데, 하마스나 헤즈볼라 단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음모론 2) 팔레스타인 민족의 뿌리는?

아랍국가 팔레스타인 민족의 뿌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테러리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야세르 아라파트(Yasser Arafat)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이다. 1947년 UN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국가를 인정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가 건립되고 이 지역에 살던 아랍인들이 난민이 되자 주변의 아랍국가들은 이 난민들을 받아주지않았고 이들을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하며 이들에게 이스라엘을 테러하는 임무를 주었다. 야쎄르 아라파트는 테러를 통해 이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고 UN은 이들은 팔레스타인 민족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지방은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이전에도 아랍인과 사마리아인, 드루즈인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지역이였으며 그 이전에 살던 고대 유대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오스만 제국과 그 이후에 유입된 아랍계 인구들도 많았고 체르케스, 보스니아에서 온 사람들도 섞여있었지만 예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은 맞는다. 당장 그 후세이니 가문부터가 12세기경부터 정착해 살아왔다.
또 반드시 요르단 서쪽에 한정되는 영토국가로 존재해왔어야만 비로소 영유권을 주장할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지역이 이슬람화 이래 유의미하게 구분되지 않았다면 그 작위적인 경계를 기준으로 독자성을 평가해야 할 까닭부터가 없다. 애초에 한반도와 달리 팔레스타인의 경우 그곳을 본토로 삼은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 와중에 민족성과 국가건립의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은 언제든 생겨나고 없어지기 마련이다.
아랍권은 더욱 그래서 이슬람화 이후 왕조의 신민으로서 하심, 라시드 같은 씨족, 또는 디마식, 모술 같은 지역 단위의 정체성이 있었을 뿐, 시리아 민족, 이라크 민족 이런 거 없었다. 요르단 하심 가문만 해도 히자즈에서 오스만을 섬기다가 아랍 반란에 이르러서야 요르단에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의 근본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민족, 국민의 개념이 없던 때도 지역과 씨족 정체성은 있었다.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로 1915년 맥마흔 서약 및 벨푸어 선언 이래로 이스라엘과의 투쟁에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확립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애초에 팔레스타인 측이 스스로 별개의 민족으로 존재해왔다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그간 아랍세계의 협력을 호소했는데 "역사적 팔레스타인" 유무를 따지는 것은 가짜문제로 논점을 흐릴 뿐이다.
사실 유대인들도 유대교를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집단이었다가 아랍 민족주의보다 불과 1.5세대 앞서 헤르츨이 이끄는 시온운동에 의해 근대적 의미의 네이션으로 거듭난 것이며, 이스라엘이라는 현실 국민국가의 꼴을 갖춘 것은 그보다도 뒤의 일이다. 게다가 저런 논리로 따지면 미국과 유럽에 수없이 많은, 유대인 정체성은 받아들여도 이스라엘이란 국가적 정체성엔 딱히 관심 없는 세속적, 비시오니스트 유대인들은 전부 이스라엘이 존재 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된다. 당장 유대인 사회 내에서도 세파르딤, 아슈케나짐, 미즈라힘 간의 대립이 심하고, 근대 이전엔 씨족과 마을 중심으로, 현대에 와서는 크게 세속주의, 개혁주의, 보수주의, 정통주의로 나누어 지는 성향에 따른 유대인들간의 집단 내 횡적 정체성 구분도 굉장히 강하다.
또한 아랍국가들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난민 수용을 거부했다고 보기 어렵다. 요르단강 서안지구는 1차 중동전쟁 당시 요르단이 접수했고 이곳의 난민들을 국민으로 수용하려 했었다. 그러나 원래 사막지대라 인구 자체가 적던 요르단은 되려 팔레스타인 출신들에게 머릿수로 밀릴 처지였고 PLO는 아랍 사회주의 성향 공화파인 데다가 3차 중동전으로 서안지구를 잃은 뒤 요르단 내에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기에 하심 왕가에겐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70년 양측 사이에 "검은 9월"이라 불리는 내전이 터지고 그 결과 PLO 측은 요르단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이후 레바논으로 향한 팔레스타인인들은 그곳에서 내전을 일으켰다.

3. 관련 문서


[1] 아랍권은 이스라엘이 그 꼴 당해도 싸다며 하마스를 감싸준다.[2] 이스라엘에 항복해도 학살 아니면 감옥에서의 고문과 학대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이스라엘의 노예로 사느니 싸우다 죽는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만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싸우는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다.[3] 하마스를 때려잡으려면 몇 년 아니면 몇 십년을 각오해야하는 장기전으로 가야하는데 이스라엘은 인구가 적고 경제력도 한계가 있어서 장기전을 못한다. 이스라엘을 심하게 괴롭히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페다이를 멸망시키는데도 8년이나 걸렸다. 그런데 페다이보다 더 조직적이고 강한 하마스는 30년 가까이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말려죽이기로 한다해도 하마스도 바보가 아니라서 살아남으려고 애를 많이 쓰니 이 작전으로 가는 것이 한계가 있다. 게다가 하마스 말고도 여러무장단체가 골고루 조직되어서 이스라엘에게는 더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마스 항목에 이들 세력과 하마스가 모여 찍은 사진이 하나 올라와있다.[4] 하마스가 제시한 협상 조건을 보면 하마스 입장에서 많은 양보를 했고 제대로 지키기만 한다면 평화는 그나마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부는 지키기 싫다며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5] 하마스도 저격수를 양성하여 상당수의 이스라엘 군경과 민간인들을 죽였다. 하마스 저격수의 저격 실력은 전차 위에서 장갑판으로 보호받아 기관총 공격하는 전차병을 헤드샷을 날릴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 저격수가 자폭테러범, 로켓공격만큼 공포의 대상이다.[6] 이스라엘은 하마스만 사살했다고 주장했지만, 소수 민간인 및 외국인도 소탕에 휘말려 피해를 당했다.[7] 이스라엘측 의견은 '하마스가 타고 있다고 추측하는 차량에 공격을 가함'이었다[8] 다시말해 팔레스타인의 주권이 생긴 것이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일제강점기와 비교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물론 정확히는 자치국가였기에 일제강점기 당시의 조선을 비롯한 일제의 점령지의 상황에 비하면 오슬로협정 이후의 가자, 서안 지구는 상황이 좋았지만 자치국가였기에 한계적인 주권이었다)[9] 이 추방 과정에서 데이르 야신 마을 학살 사건과 알다와이마 마을 학살 사건, 아부 슈샤 마을 학살 사건 같은 팔레스타인인 학살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하였다.[10] 한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추방하지는 않았고 1차 중동전쟁이 끝날때까지 추방을 면하거나 난민이 되더라도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난민이 된 소수의(대략 전체 인구의 15%)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이스라엘 시민으로 귀화해서 살아가는 상대적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일제 역시 조선인들을 쫓아내고 땅을 뺏어 일본인들에게 주거나 철도를 건설하는 등의 정책을 펴기도 했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1948년 전쟁 중에 했던 것과는 양상이 매우 다르다. 오히려 현재의 서안 지구의 상황이 이와 비슷하다[11] 다만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피난이 온전히 유대계 민병대와 이스라엘의 추방과 학살 때문이었는지는 논란이 존재하기는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이스라엘의 역사가인 베니 모리스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피난이 이스라엘의 추방과 학살 뿐만 아니라 아랍 국가들과 아랍 지도자들의 피난 격려로 인해서도 일어났다고 주장하였고 이스라엘이 처음부터 인종 청소를 계획한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갑작스럽게 자행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유대계 미국인 학자인 노먼 핀켈슈타인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일란 파페는 1차 중동 전쟁 당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학살과 추방은 이스라엘이 사전에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한 인종 청소라고 주장하였다.[12] 아랍 국가들이 쫓겨온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은 채 난민으로 방치한 것 역시 난민 문제가 지속되는데 영향을 주었다. 다만 요르단은 제외. 요르단은 점령한 서안 지구 주민들과 피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서안 지구와 요르단에 남아 살고 있으며 자신들의 고향으로의 귀환권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13] 당시에는 인권 같은 것이 없었으므로 강제노역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14] 2등시민은 오히려 미즈라힘,베타 이스라엘과 같은 비아슈케나지계 유대인이나 이슬람, 기독교와 같은 비유대인계 이스라엘인들이다.[15] 아시아만 해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의 관계를 보면 서로 불신과 감정 악화 때문에 보복을 이룬 경우가 많으며, 부건빌 내전을 보면 솔로몬 제도계 원주민들 역시 파푸아뉴기니 정부에 앙심을 품으면서 분리독립하려고 했을 때 여러가지 인권 문제들이 많았다. 아프리카의 경우는 르완다부룬디, 심지어 유럽에서도 IRAETA, 그리고 동유럽에서는 유고 내전이, 그리고 최근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방의 노보로시야 연방 분쟁 등이 있다. 이들이 저지른 행동들에서도 창씨개명이나 강제노역 등이 없었을 뿐이지, 여러가지 만행들 역시 많았다. 이런 만행들은 분명히 비난받아야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그들의 존재까지 무시받아야 되는 건 아니다. 이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이다.[16] 다만, 양안관계와 달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관계는 서로 민족이 다르다.[17] 정확히 현재 말하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영역(옛 자치 정부가 세워진 서안 지구) 상당수를 불법 점령 중인 지역에서 그곳에서 이스라엘로부터의 재독립되어 팔레스타인 영토를 되찾는 걸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