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
1. 미국의 정치학자
1.1. 개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58년간 강의를 하면서 유명세를 날린 스타 교수이다. 주로 비교정치, 국제정치 분야에서 많은 연구 업적을 남겼다.
1.2. 생애
예일 대학교를 졸업 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얻고, 23세의 나이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 대학교 교수,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37세의 나이에 다시 하버드로 돌아가 종신교수로 사망 직전까지 연구 및 강의 활동을 펼쳤다.
콜롬비아 대학교 교수 시절인 1957년, 30세의 나이로 저서 <군인과 국가: 민군관계의 이론과 정치>(원제: The Soldier and the State: The Theory and Politics of Civil-Military Relations)를 발표했다. 이 책은 문민통제를 비롯한 민군관계 연구에서 기념비적인 역작으로 평가받았으며, 헌팅턴의 학문적 명성도 크게 높아졌다.
민주화의 단계 및 유형 이론으로도 잘 알려진 정치학자이기도 하다.
1970년 격월간 국제정치 학술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의 창간을 주도하였다.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자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동료 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추천으로,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의 안보기획조정관(Coordinator of Security Planning)으로 1년 동안 재직했다.
이후 2008년 심장질환과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1.3. 문명의 충돌
정치학자로서 헌팅턴의 연구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역시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이다. 이 주장은 냉전의 종식 직후인 1993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고, 3년 후 동명의 저서로 확대 출간되어 세계 전역에서 치열한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1.3.1. 역사적 흐름
헌팅턴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에는 항상 크고 작은 분쟁이 벌어져 왔다.[1]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문명의 정체성을 대체하여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이 주도권을 차지하며 5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지속된다. 그러나 80년대 말까지 세계 질서를 결정하던 미국과 소련의 양극(bi-polar) 냉전체제가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리면서, 다극(multi-polar) 체제로 다시 세계질서가 재편된다고 주장했다.[2] 그리고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립을 위해 대신 싸워온 대리 전쟁 국가[3] 들 내부에서 쌓여온 갈등,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 정체성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3.2. <문명의 충돌>에서의 문화권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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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stern - 헌팅턴은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권을 Western으로 보았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일부 지역, 파푸아뉴기니 등이 있다.
- Orthodox - 헌팅턴은 정교회 문화권과 동구권을 Orthodox로 보았다. 발칸반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정교회 문화권과 구소련에 속해있던 지역이 있다.
- Islamic -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다만 같은 기독교 계열임에도 정교회를 Orthodox로 따로 분류한 것과는 달리, 수니파와 시아파로 크게 갈리는 이슬람 문화권은 그냥 하나로 묶었다. 이에 대해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이 있다.
- African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권이다.
- Latin American - 토착 문화(아즈텍, 마야 문명, 잉카 등)와 가톨릭 문화권(에스파냐, 포르투갈)이 혼합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 Sinic - 유교 문화권이다.
- Hindu - 인도 아대륙을 중심으로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힌두교 문화권이다.
- Buddist - 불교 문화권이다. 아예 다른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몽골을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과 함께 같은 문화권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기본적인 생활 방식도 매우 다르지만, 분류의 기준이 된 불교도 교리가 상당히 다른 종파를 믿는다. 몽골은 티베트 불교이고,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는 상좌부 불교이다. 이런 점도 헌팅턴의 분류가 지극히 자의적이고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의 소재가 된다.
- Japanese - 특이하게도 일본을 Sinic에 포함하지 않고 Japanse로 분류했는데, 유교가 국가의 근본이자 체제였던 국가에 비해 신토와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에서도 유교의 영향력은 매우 컸고,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부터 기원한 문물로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는 한국, 중국, 일본을 같은 문화권으로 묶는다.
1.3.3. 냉전 이후 세계 질서 예측
- 서구(Western)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며, 동아시아와 이슬람 문명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과 인근 국가들간의 세력 균형이 위협을 받을 것이며, 비서구 문명들은 자신의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강화해 갈 것이다.
- 서구의 압도적인 패권은 점차 약화될 것이며 그 패권은 점차 비서구 세계, 특히 동아시아 문명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패권의 이동은 비서구 사회의 자긍심과 서구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의 쇠퇴로 인하여 종교의 이념적 가치가 부활하여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비서구 국가들은 서구 문명의 타락성에 반감을 가지며 서구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할 것이다.
- 하지만 이슬람과 동아시아는 도전의 기반이 서로 다르다. 동아시아는 빠른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자기주장을 펼칠 것이며 이슬람은 인구 증가를 기반으로 자기 주장을 펼칠 것이다. 이 두 차이점은 두 문명의 각기 다른 도전이 세계 질서의 위협에 끼치는 정도의 차이를 야기한다.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세계 질서 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슬람은 비 자본주의적인 방식, 즉 테러리즘과 같은 무력 행사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즉, 동아시아보다는 이슬람이 더욱 세계 질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 자신들의 가치가 세계 보편적인 가치임을 주장하는 서구 문명에 맞서 동아시아(특히 중국), 이슬람의 도전이 앞으로의 세계 질서의 위협 요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교회(러시아), 일본, 인도(Hindu)는 이 문명의 경계선에 걸쳐서 있어, 협력과 갈등의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서구의 편에, 또는 비서구의 편에 설 것이다.
-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려는 것을 미국이 저지하려고 할 경우, 대규모 전쟁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1.3.4. 현실 세계 대입
이 책은 냉전이 종식된 직후인 1993년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후 세계 질서 변화에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주요 사건들이 발생했다.
- 이슬람 문명과의 갈등 - 새뮤얼 헌팅턴이 예언한 이슬람 문명의 부상과 갈등은 2001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IS의 등장과 이로 인한 일련의 테러 역시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 종교의 순수성 강화 -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슬람주의 세력이 성장하여 서구를 타락한 존재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대립하면서 자신의 세력권 안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요하고 있다.
- 중국의 경제적 부상 - 중국의 부상은 헌팅턴이 예상한 방식으로, 경제적인 성장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패권 장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위안화가 준 기축 통화화 되면서, 미국의 달러화 본위제 기반 경제 패권 역시 위협을 받고 있다.
-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 -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에서는 지속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4] , 경계선 상의 몇몇 국가들은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서 시소처럼 자국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 패권 이동에 따른 대규모 전쟁 -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에 의하면 세계의 패권이 한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이동할 때 대규모의 전쟁이 발생한다고 한다.[5] (다행히도) 아직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지만,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십수년 안에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4. 비판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팽배했던 학계에 경종을 울렸으며[6] , 새로운 분쟁의 원인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좋게 말하면 '명쾌하고 냉철한 선견지명'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분법적 숙명론과 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대립 선동'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1.4.1. 문명 간의 충돌은 숙명인가?
문명충돌론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의 대화, 공존 가능성과 이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은 평가절하한 채, 대립과 충돌의 숙명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문명도 엄연히 인간이 만든 것인데, 인간이 문명에 일방적으로 지배받기만 한다는 주객전도식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1998년 독일 학자 하랄트 뮐러도 <문명의 공존>(Das Zusammenleben der Kulturen)이란 저서를 통해 헌팅턴의 견해에 반박했다. 그는 문화는 섬처럼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이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났을 때 충돌이 아니라 양립하거나 새로운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에드워드 사이드[7] 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무지의 충돌"(The Clash of Ignorance)이라는 글로 문명충돌론을 비판했다.
문명충돌론의 지지자들은 코소보 전쟁, 9.11 테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등의 사례가 헌팅턴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 카에다와 이슬람국가가 세력, 규모 측면에서 이슬람 전체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보다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국가들 내부의 정치, 사회적인 불안정 및 취약성으로 이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제대로 예방 및 통제하는 데 실패한 것이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또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 르완다 학살 등 문명 내부의 충돌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도 '문명 충돌'이라는 요소만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보다는 동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국제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중요성의 비중 강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높다. 만약 동아시아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국제 질서의 주변부일 뿐이라면, 굳이 미국 같은 패권국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헌팅턴의 문명충돌론대로라면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대만, 한국 등은 진작에 중국과 협력 관계에 있어야 했겠지만, 오히려 문명적으로 이질적인 미국과 동맹 내지는 제휴 관계에 있으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1.4.2. 서구중심주의(미국과 서유럽 중심)
냉전의 종식으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의 구도가 무너지고, 명백한 적이 사라지자, 헌팅턴이 문화권이라는 새로운 진영 논리를 끌어들여 서구 세계(사실상 미국)가 상대해야 할 새로운 이념적 적대 세력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있다. 기존의 냉전 세계관이 끝나니 이제는 러시아를 '정교회', 서아시아를 '이슬람', 중국을 '유교'라는 식으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1.4.3. '문명'의 탈을 쓴 자의적 구분
헌팅턴은 1차적으로 종교, 문화에 따라 구분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국제적인 세력 논리를 이름만 바꿔 나누어 놓은 세력 정치 반영에 불과하다. 고대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부터 받은 문물로 사회 근간을 이룬 일본을 굳이 동아시아와는 별개의 문명권으로 구분하였는데, 정작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종교의 정치 개입을 부인하는 세속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냉전 시절 공산주의 지배의 영향으로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러시아와 동유럽을 '정교회'권으로 구분한 것도 똑같이 치우쳐진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 책이 소개되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문명'이란 말을 세계 4대 문명이란 식으로 고고학적인 의미를 담아 주로 썼기 때문에 가지는 반감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을 별개 문명으로 놓으면서 필리핀과 파푸아 뉴기니를 서구(Western) 문명의 일부로 간주했으니 종교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부분은 헌팅턴 개인의 선호에 따른 자의적 분류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미국 내 영향력이 적거나 세력 정치와 반대되는 경우는 정말 무성의한 분류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예로 스리랑카와 인도차이나 반도 일부 지역을 몽골과 함께 Buddhist(불교) 문화권으로 묶은 것을 들 수 있다. 애초에 몽골은 저 지역들과는 기후와 생활 환경 자체가 다르고 스리랑카의 싱할라인과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믿는 상좌부 불교와 몽골의 티베트 불교는 서구의 개신교와 카톨릭, 동구의 정교회만큼이나 교리가 판이하게 다르다.
경희대학교 교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중국과 한국을 같은 문화권으로 묶었다고 비판했다.
1.4.4. 미국 이민자 문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애초에 미국은 이민자인 영국 청교도들이 세웠으며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통해 키운 국가이기에 그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가령 히스패닉계가 미국 내에 지나치게 많아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만을 고집하여 미국 안에 독립 자치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등이 있다. 이는 실제로 미국 백인/흑인들의 불안감에 부합하며[8] ,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탰다. 헌팅턴의 이러한 주장은 좌파 학자들로부터 싸구려 음모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차별적 주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진영논리나 인종차별 논란을 떠나서 헌팅턴은 미국 역사를 아주 피상적으로 그것도 부정확하게 일반화한다는 주장을 피할 수 없다. 한국으로 치면 국민학교 시절의 "모든 한국인은 단군의 자손" 수준의 엄청 심플한 일반화이다. 일단 청교도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이 "미국의 청교도"라는 종교집단은 하나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초창기 미국으로 이주해온 종교적 소수자 집단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교파가 청교도[9] 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미국 백인 중 가장 인구 비중이 높은 집단은 주로 루터교회를 믿던 독일계 미국인이며, 미국 초창기 역사에서 정치 분야에서 활약한 교파 사람들은 상당수가 유니테리언 교회 신도였다. 16~18세기 미국에서는 유럽 각지에서 이주해온 칼뱅파 외에도 독일 루터교회 신도들도 많았는데, 루터교회는 청교도와 엄연히 갈래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독일계 루터파들은 초창기 미국 사회에서 이질감 없이 빠르게 적응했다. 미국 청교도가 단일화된 민족종교집단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미국이 영국에서 이주해온 청교도 문화와 제도를 이어받았다는 주장은 미국 보수층들을 결집시킬 이데올로기로는 나름 적합한 설명이겠지만 역사적 정확성을 놓고 보면 낙제점 수준의 설명이다. 미국 문화는 인종(영국계/독일계), 종교(개신교) 같은 요인 외에도 유럽/아시아와 다르게 전통 기득권층(토지귀족, 관료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던 사회적 요인, 이용 가능한 토지가 사실상 무한대였던 지리적/경제적 요인이 더 컸다.[10] 미국 영토가 21세기에도 계속 확장되는 것도 아니고 대신 사회와 경제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마당에 불법 이민자만 안 오면 미국 문화가 부패하지 않고 보전된다는 주장 자체가 의미가 없다.
물론 지나치게 PC적인 시각을 떠나서 보면 평균적인 멕시코계 미국인, 엘살바도르계 등등이 개인주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부패인식지수가 낮아 공과 사를 잘 구분 못하는 것 자체는 편견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그러나 새뮤얼 헌팅턴처럼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11] 같은 것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히스패닉들이 많이 이민 올 수록 미국 정체성이 위협받는다."라고 단순하게 주장만 하면서 자기 책에서 히스패닉 인구 증가 변화 지도만 두 장 딸랑 보여주면 이건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2. 미국의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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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년 7월 5일 or 7월 16일 - 1796년 1월 5일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인물들 가운데 1명. 코네티컷 주지사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의 일원으로 불린다.
[1] 몽골의 유럽 원정, 스페인 원정대의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 정복,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 등[2] 헌팅턴의 견해가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로 보는 견해-주로 자유주의 정치학-도 존재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와는 전면적으로 배치된다.[3] 대한민국, 쿠바, 베트남, 그 외 다양한 제 3세계 국가들.[4] 팔레스타인 분쟁 등[5] 무적함대 결전 및 30년 전쟁: 스페인 → 영국 / 네덜란드, 제1차 세계 대전: 영국/프랑스 → 독일, 제2차 세계 대전: 서구 유럽 → 미국[6] 당시 헌팅턴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 출판된 엘빈 토플러의 <전쟁과 반전쟁>도, 냉전을 넘어 앞으로 미국이 경험해야 할 전쟁은 매우 골치아픈 것이 될 거라 예견했다.[7] 팔레스타인 태생의 아랍계 미국 사회학자로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하다. 중동연구의 선구자로 꼽힘.[8] 과거 이탈리아계/폴란드계/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영어'''를 사용하거나 배웠다면, 히스패닉 쪽은 영어보다는 스페인어 사용을 '''선호'''한다.[9]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개신교 신학에서 분류하는 그 청교도가 맞냐는 논란도 있다.[10] 종교에서 아무리 평등을 강조해도 토지는 부족한데 인구만 많다던지 하면 해당 사회에 평등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자.[11] 이를테면 사우스파크의 꾸벡 에피소드에서는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을 덜 쥐어짜내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더 이상 미국으로 불법 체류자가 안 온다는 메시지를 피력하면서 인종차별 논란을 피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