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항목은 중국의 역대 전투 목록에 대해 다룬다.
발생 연도
| 명칭
|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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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세기(?)
| 목야대전
|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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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07년
| 수각 전투
| 정장공이 주환왕의 연합군[1] 주(周)·괵(虢)·채(蔡)·위(衛)·진(陳)으로 구성. 격파.[2] 주환왕의 어깨에 상처를 입혀 천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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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45년 ~ 기원전 679년
| 곡옥대진
| 곡옥이 진(晉)나라를 차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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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38년
| 홍수 전투
| 송양지인의 고사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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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32년
| 성복 전투
| 진문공, 초나라의 북진을 분쇄하여 패업을 달성.[3] 진 문공은 유리한 전황에서도 초나라 망명 시절 3번을 후퇴하겠다는 초 성왕과 한 약속을 지킨 후, 이어진 회전에서 초군을 격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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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27년
| 효산 전투
| 선진의 진(晉)군이 맹리시·백을병·서걸술의 진(秦)군을 전멸.[4] 효산은 현재 링바오시 남쪽으로 진령산맥을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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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97년
| 필 전투
| 초장왕이 중원 연합군을 물리치고 패업을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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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79년
| 언릉 전투
| 초나라가 진나라에게 패배하고 패권을 넘겨줌. 초나라 암흑기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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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06년
| 백거지쟁
| 초나라가 오나라에게 수도가 함락당하고 종묘가 불타는 굴욕을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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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96년
| 취리 전투
| 월왕 구천이 합려를 패사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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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94년
| 회계산 전투
| 오왕 부차가 구천을 패배시키고 수도로 끌고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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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84년
| 애릉 전투
| 오왕 부차가 북진해 제나라를 대패시키고, 회맹을 열어 패자를 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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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82년
| 홍상 전투
| 월왕 구천이 북쪽에 신경쓰는 오나라에게 일격을 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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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78년
| 입택 전투
| 고소 근처에서 오의 대군과 월의 대군간의 접전.[5] 오나라의 대패 이후 3년간 고소성 공성전이 전개되어 끝내 오나라는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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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89년
| 음진 전투
| 위의 하서태수 오기, 진의 대군을 소수의 군대로 대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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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64년
| 석문산 전투
| 진나라가 하서의 위군 격파.[7] 진은 위군 6만을 참수하고 하서땅에서 우위를 점하다. 전국시대 초기 위나라 헤게모니 몰락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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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54년
| 계릉 전투
| 손빈과 방연의 1차전. 방연이 대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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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43년
| 마릉 전투
| 전기와 손빈이 이끄는 제나라군이 마릉에서 위나라 방연의 군대와 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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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18~317년
| 제1차 합종군
| 소진의 주도한 1차 합종군이 함곡관에서 위염에게 대패, 수십만이 참수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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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11년
| 단양·남전 전투
| 초나라와 진나라의 총력전.[8] 한중을 상실한 초군이 관중평야 남전까지 반격하나 결국 초나라가 진나라에게 대패, 한중에서 상용까지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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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8년
| 의양 전투
| 감무의 진군이 한나라의 요지인 의양(宜陽)을 점령.[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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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1년
| 수사 전투
| 제,위,한의 연합군이 하남성 남부 수사(垂沙)에서 초나라 대군을 격파[10] 제의 광장, 위의 공손희, 한의 폭연이 이끄는 연합군이 초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그 지휘관 당말을 전사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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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96년
| 제2차 합종군
| 함곡관까지 이른 합종군이 무력 시위, 한·위의 영토 일부를 돌려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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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93년
| 이궐 전투
| 진나라의 백기, 낙양 남쪽 이수 협곡에서 한·위 연합군 24만을 참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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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84~279년
| 합종군의 제나라 정벌
| 악의가 이끄는 연합군이 제나라를 일시적으로 멸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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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79~278년
| 언영지전
| 진나라의 백기, 초나라의 수도를 함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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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73년
| 화양 전투
| 진나라의 백기, 위·조 연합군 13만을 참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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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70년
| 알여 전투
| 조사가 태행산맥의 입구 알여에서 호양을 대패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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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2~260년
| 장평대전
| 전국시대 막바지에 벌어진 최대의 전투,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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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9~257년
| 한단 포위전
| 절부구조의 고사로 유명. 한단 구원을 위해 신릉군이 병부를 훔쳐 위군을 이끌고 조나라를 구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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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1년
| 호대전투
| 연나라가 장평대전 이후 약해진 조나라를 공격하나 대패하고 수도인 계성이 포위당하기까지하는 굴욕을 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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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7년
| 제3차 합종군
| 신릉군이 합종군을 이끌고 몽오를 패퇴시켜 함곡관까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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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1년
| 제4차 합종군
| 춘신군 황헐이 이끄는 5국 연합군이 함곡관에서 해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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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3년
| 비 전투
| 진나라의 환의가 이끄는 10만 대군이 조나라를 침공하나 이목에게 전멸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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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1년
| 번오 전투
| 진나라의 왕전이 이끄는 30만 대군이 조나라를 침공하나 번오, 낭맹에서 이목에게 패하고 퇴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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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25년
| 성보 전투
| 이신이 20만 대군으로 초나라를 정벌하지만 항연에게 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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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23년
| 기 전투
| 왕전이 이끄는 60만 대군이 항연군을 패배시키고 초나라를 멸망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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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7년
| 거록대전
| 진(秦)군과 초(楚)군의 건곤일척의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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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5년
| 팽성대전
| 팽성을 빼앗긴 항우의 가열한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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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4년
| 정형전투
| 팽성전투 이후, 한(漢)군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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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4년
| 유수 전투
| 한신의 침공에 대한 초(楚)·제(齊)의 오월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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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02년
| 해하 전투
| 초한쟁패의 종결, 통일 왕조 전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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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9년
| 왕검성 전투
| 위만조선이 전한에 합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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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4년
| 제1차 대원 원정
| 이광리하의 한나라군이 대원으로 원정을 떠났으나 실패함.[11] 타클라마칸 사막의 주변국이 보급을 거부한 것이 큰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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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2년
| 제2차 대원 원정
| 이광리하의 한나라군이 대원으로 원정을 떠나 페르가나를 점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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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 곤양대전
| 왕망의 폭정과 한(漢)복원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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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년
| 적벽대전
| 전국(戰局)의 주도권을 장악한 조조의 강동 진공(進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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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년~222년
| 이릉대전
| 촉·오 외교관계 파탄에 따른 유비의 친정(親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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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년
| 비수대전
| 부견의 천하통일을 위한 남정(南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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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의 관련 사건/전투 문단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