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원(음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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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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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B 3집 자켓에 찍은 사진.(1992년)
최근 모습(2017년)[1]
친형인 장호일과 함께 015B에서 활동 중인 대한민국의 작곡가이자 음악 프로듀서이다.
2. 활동
2.1. 데뷔 과정, 무한궤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재학 중이던 1989년, 그전 해인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한 무한궤도가 정규 앨범 레코딩을 준비하던 시기에 키보디스트로 음악신에 데뷔하였다.[3] 사실 그 이전인 1988년에는 '실험실'[4] 이란 밴드로 강변가요제에 나갔었다가 1차 예선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신해철은 2000년에 본인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처음 음악을 하던 그 시절"이란 에세이 형식의 당시 인터넷 연재물에서
라고 회상했다. 정석원은 '공일오비 스토리'라는 에세이에서 언급하길, '아기천사'(신해철이 대체 멤버였으며 3차 예선에서 탈락했다고 함.)라는 밴드의 멤버로 출전했던 신해철은 이때 정석원의 연주가 끝나고 객석의 박수가 끝난 후에도 계속 객석에서 일어나 혼자 열렬한 박수 갈채를 보냈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다가가 "음악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반 년 후 무한궤도가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로 대상을 탄 직후 음반 레코딩을 앞두고 신해철의 제의로 세 번째 키보디스트로 영입되어 레코딩과 및 방송 활동을 함께하게 된다.[5] 그리고 앨범 활동 시기의 무한궤도가 방송에 출연할 때에는 보컬에 주력하는 신해철을 대신해 정석원의 친형이었던 정기원(장호일의 본명)이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서울대에서 왔다는 괴상한 3인조는 째즈도 아닌 가요도 아닌 골 때리는 곡을 연주했는데 밴드 이름이 실험실이었으며, 바벨 2세에 나오는 요미와 흡사한 키보디스트가 피아노 연주로 관객들을 으악 죽이고 있었다.(그의 이름은 정석원이었다..훗날 그의 별명은 요미가 된다…)"
2.2. 1990년대, 015B의 발족
1990년, 무한궤도의 해체 후 솔로로 데뷔한 신해철[6] 과 별개로 무한궤도의 소속사였던 대영AV에서 친형 장호일(위에서 언급하였지만 본명은 정기원)과 역시 무한궤도의 베이시스트였던 고 조형곤[7] 과 함께 015B 결성 후 데뷔, 015B라는 이름은 U2나 UB40 같은 영어와 숫자가 혼합된 이름을 짓고 싶었던 그들이 과거 몸담았던 무한궤도의 이름을 약간 바꿔 015B로 이어왔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8]
015B의 1집 작업 당시 소속사의 지원과 기대가 부족했고 소속사에서 015B라는 이름 조차 제대로 기억 못해 녹음실에서는 "궤도이탈"로 불렸다고, 이 시기까지만 해도 그들 또한 다른 무한궤도의 멤버들처럼 전업 음악인으로서의 데뷔를 생각지 않았다고 한다. 친형인 정기원의 경우 '나라기획'이라는 광고회사를 다니며 동시에 이를 숨기기 위해 본명인 정기원 대신 "장호일"이라는 사촌의 이름을 가명으로 썼다고 한다. 1집 "015B"는 발매 초반 큰 반향이 없었으나 타이틀 곡 "텅 빈 거리에서"가 라디오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 30만 장 판매라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거두자 2집 발매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2집 때는 무한궤도의 멤버였던 조현찬이 드러머로 합류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015B는 언제 해체될지 모르는 팀이었고, 프로뮤지션이라기보다는 대학 동아리 같은 느낌의 팀이었고, 라디오를 기반으로 입소문을 타며 매니아들의 인기를 조금씩 얻고 있었다.
015B는 1993년, 3집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발표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고, 015B의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하던 정석원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프로듀서이자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015B 뿐만 아니라,이승환, 윤종신 등의 음반에 크레딧을 올렸고, KBS 드라마 '연인'의 OST를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이 시절, 단 한 사람의 작곡가가 매 앨범마다 각기 다른 여러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수록하고 그것도 빼어난 멜로디 감각으로 친숙함마저 겸비하여 대중 앞에 내놓자, 열광적인 반향이 뒤따랐다. 당시 유행하던 PC통신상에서 '작곡계의 독재자',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였다.[9] 특히나 절정의 인기를 누린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수록된 015B 3집부터 5집까지의 활동 시기가 가히 정석원 본인의 리즈 시절이라 부를 수 있는데, 한국 대중음악의 절정기로 불린 1990년대에 소위 신세대의 대변자로 불렸던 서태지가 당대 10대들의 감성을 대변한다면 015B는 그보다 조금 높은 연령대인 20대(X세대)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한 축이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015B 음악의 핵심이었던 정석원은 앨범마다 수없이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면서도 대중성과 음악성을 절묘하게 조합시키는 솜씨가 빼어났다. 그런 실험적 시도 가운데에서도 앨범마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는 감성적인 발라드들이 항상 2~3곡 이상 배치되었는데, 본인이 스스로 존경한다고 밝힌 데이비드 포스터의 영향을 받아 세련된 편곡과 더불어 그 시대 대중의 감성코드를 잘 잡아낸 이 발라드 곡들이 팀의 인기를 유지시키는 요소이기도 하였다. 훗날 015B와 유사한 컨셉의 프로듀서 중심 그룹 토이를 성공시킨 유희열도 앨범의 곡 구성에 있어서는 이러한 정석원의 앨범 곡 구성과 컨셉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다.
015B 2집 60만 장, 015B의 3집부터 5집까지는 모두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고 4집에서는 가요톱10 골든컵도 015B의 이름으로 수상하였다. 한편으로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서도 활발히 활동, 윤종신, 이장우, 성지훈, 김태우 등 015B 객원가수 출신들의 음반 및 드라마 "연인", "파파"의 O.S.T에 참여했고, 이승환과의 친분으로 당대의 명반인 이승환 3, 4집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여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였다. 특히 4집 "HUMAN의 경우 그때나 지금이나 음악적 퀄리티를 위해 돈을 쏟아붓는 성향의 이승환과 함께 미국에 가서 David Campbell 등의 프로듀서 및 해외 세션과 함께 작업하는 등 당대 대한민국 대중 가요의 문법을 새롭게 쓴 이 앨범 작업과정의 전반을 함께했다. 자연히 "천일동안", "악녀탄생" 등의 곡에서 정석원 본인의 음악적 색채 또한 짙게 드러나있다.
하지만, 정석원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과도한 관심과 음악평론가, 네티즌 등의 공격에 많이 힘들어 했던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가요계 은퇴를 결심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96년, 그간 몸담아 왔던 유재학 사장의 대영AV에서 새롭게 음반시장에 참여하고자 했던 대기업 계열사인 LG미디어로 이적하였다. 정석원은 가수활동 은퇴를 결심하고 마지막 앨범인 "The Sixth Sense"라는 부제로 015B의 6집을 발매했다. 이번엔 팬들에게 대한 작별의 의미를 담은 이장우의 발라드 "나 고마워요"를 제외하고는 현대 클래식을 가져온 "작곡과 출신" 유희열의 도입곡 "일식"부터, 인더스트리얼, 헤비메탈, 테크노, 일렉트로니카 등 비주류 장르의 조합으로 미친듯이 질주하는 당대의 문제작, 독일의 바우하우스 운동의 재현을 표방하며 소위 "음악 장인"으로서의 역량을 과시했다. 앨범 판매량은 24만 장으로 대중적으로는 명백히 실패했지만[10] 훗날 정석원과 함께 작업한 박정현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데뷔 시(1996년) 감상했던 국내 음반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한국 대중음악 앨범으로 꼽았고 당시와 이후에도 이 앨범에 대한 많은 평론가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음악성에 있어서는 당대 주류 작곡가 중 최고 수준임을 새삼 인정받게 된 결정적인 성과물이다. 그리고 정석원은 6집 발표 이후 그해 하반기부터는 가수로서 은퇴했고 방송이나 언론 활동을 중단하고 프로듀서, 작곡가로서의 활동만 이어가고 있다.
2.3. 2000년대, 프로듀서 겸 작곡가, 015B 재결합
2001년 친형인 장호일의 기획사 플래티넘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이가희라는 신인 가수를 데뷔시키며 전업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사실상 객원가수 1인을 쓴 015B의 앨범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앨범의 발매를 통해 프로듀서로서 컴백, 그간의 인맥을 총동원한 화려한 피쳐링과 작곡가 군단[11] 이 함께했지만, 결과는 완전 망했어요. 소속사의 무능과 무력함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언밸런스"를 내세운 파격적인 노랫말[12] 과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천재 소녀" 컨셉, 무엇보다 그녀만의 개성이라 내세웠으나 아무리 좋게 들어도 미성숙한 아마추어 수준의 보컬도 한몫 했다. 초반의 발매 홍보 이후 가사 때문에 온갖 곡들이 방송금지를 먹은 데다 소속사의 힘이 없어 방송 출연도 거의 없었으니 이미 대형 기획사 위주로 재편되던 음악 시장에서 신생 기획사의 "문제작"(여러가지 의미에서)이 성공하기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높이 평가받은 편곡과 편집증적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공들인 사운드였기에 되려 아쉬웠던 앨범. 판매량 4만 5천 장. 초고속 인터넷과 MP3 불법 다운으로 앨범시장의 불황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그 조성모 등이 200만 장씩 팔아제낀 것이 바로 그전 해의 일이다.
그러나 2002년, 그는 국내 최고 수준의 여성 보컬을 만나 한국 음반사에서도 손꼽히는 결과물을 내놓았으니 바로 박정현 4집 Op.4의 전체 프로듀서를 맡은 것. 그간 가창력은 높게 평가받았으나 대중적으로는 그저 R&B 특화 보컬로만 기억되어 있던 박정현의 역량을 최대치로 뽑아낸 이 앨범은 꿈에의 기록적인 히트와 대중적 인기를 획득하면서 가수와 작곡가 모두에게 영광의 순간을 안긴다.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블록버스터식 편곡" 및 "오리엔탈 발라드"의 결정판으로 불릴 수 있는 타이틀 곡을 비롯, "Plastic Flower", "미장원에서", "생활의 발견" 등 수록곡 다수가 대중적 인기와 음악적 명성을 모두 획득하면서 "역시" 정석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015B 이후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된다. 판매량은 약 30만 장 이상.
이후 박정현 OP.4 라이브 앨범의 수록곡 "앤"과 박정현 5집의 수록곡, 윤종신 솔로 앨범 참여, 그 외 이승환 7집 앨범 참여 및 그의 드림팩토리 사단의 소속 가수 "하루"의 작업에도 참여하며 전업 작곡가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결국 2006년 015B로 10년 만에 컴백했다.[13] 특이하게 힙합 장르를 표방하면서 당시로서는 신예였던 버벌진트, 요조를 비롯, 케이준, BONI(신보경), 조유진, 유효림 등의 신인들을 기용, 그와 친분이 있던 기존 음악인들 중에서도 박정현, 다이나믹 듀오, 클래지콰이의 호란, 거기에 유희열까지 참여한 호화로운 객원가수진을 자랑했다. 그 외 이 앨범의 수록곡을 리믹스한 곡에 신곡을 덧붙였던 미니앨범 "Cluster vol.1"에서는 최근 주목받는 황치열과 페이지#s-5의 오현란, 그리고 그룹 E.O.S 출신으로 015B 및 토이의 객원가수로 인지도를 얻다가 "그랬나봐"의 성공 후 솔로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던 김형중이 이 미니 앨범 타이틀곡의 객원가수로 다시금 정석원과 작업했다.
015B의 7집은 1990년대 그들의 인기만큼 사랑을 받지는 못했고 판매량도 1만 7천 장 정도로 썩 좋지 못했다. 신보경이 부른 "잠시 길을 잃다"가 음원차트에 올랐지만 그 이전의 히트 정도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었다. 다만 정작 처음엔 타이틀로 내정했던 "처음만 힘들지"를 부른 요조나 초기부터 제법 우호적인 반응이 나왔던 "잠시 길을 잃다"를 부른 신보경 또한 앨범 활동을 고사함에 따라 인기를 끌 만한 곡을 타이틀로 활동하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다만 음악적 평가는 우호적이라 '잠시 길을 잃다'는 그 당시 많은 가수지망생들의 오디션 연습곡이 되었고 - 너무 많은 이들이 이 곡으로 오디션을 보는 바람에 엠넷의 '슈퍼스타K'에서는 이 곡을 오디션금지곡 리스트에 올리기까지 하였다.(참조). 한류스타 장근석은 이 앨범을 본인의 인생앨범으로 꼽으며 명반이라 칭했고(참조) 그 영향인지 장근석은 일본 공연 시 이 앨범의 객원 랩퍼였던 버벌진트를 동행했다고 알려진다.
015B 활동으로는 1장의 정규 앨범 "Lucky 7", "Cluster vol.1"(2007), '20th Century Boy'(2011) 등 2장의 미니앨범과 몇 곡의 디지털 싱글이 발매되었지만 그 이후 음악인생 동반자격인 윤종신이 미스틱89라는 회사를 만들자, 전담 프로듀서로 합류하여, 역시 전업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을 이어갔다. 정석원은 미스틱엔터테인먼트를 나오고 나서도 작곡가, 프로듀서로서의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015B 복귀 후의 작곡가 겸 프로듀서 활동으로는 박정현 8집에의 일부 참여 및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이 부른 "나 가거든", "겨울비" 편곡으로 언론에서 잠깐 주목을 받았고 로엔 소속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현재는 윤종신의 미스틱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함)의 제아 및 가인 미니앨범과 싱글, 아이유 2집과 3집, 지아의 미니 앨범에 수록곡을 제공했다. 특히 제아와 지아의 경우 타이틀을 맡았고, 지아의 '일년째'는 음원차트 올킬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다비치, 옥주현, 빅마마 등의 최근 음원에도 참여했다.
한때는 윤종신의 미스틱엔터테인먼트 전속 작곡가, 김연우, 퓨어킴, 김예림의 앨범 프로듀서로 작업했고 주로 월간 윤종신의 작곡가로 활약 중.....이긴 한데, 한때 015B의 객원가수였던 윤종신임에도 이제는 정석원 본인이 유희열, 하림, 이규호, 조정치에 이은 윤종신의 음악노예라 불려도 할 말 없는 듯. 본인의 성향상 그가 프로듀스했던 앨범은 예전부터 박정현, 윤종신, 이승환등 그가 친했던 상대가 대부분이었고, 그와 처음으로 작업해 본 국민가수 김연우는 "석원이 형은 정말 천재적인 사람이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참조
사실 2015년 겨울 기준, 활발히 지상파 및 케이블 예능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유희열", "윤종신", "윤상", "정재형", "이적", "이현우" 등의 1990년대의 작곡가-프로듀서 라인을 통틀어도 전성기 시절을 놓고 보았을 때 "015B 정석원" 만큼의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으면서 많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며 대중적 영향력을 누린 이는 단연코 없었다. 하지만 2017년에 와서는 "윤종신"이 가장 큰 대중적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
2017년 015B 본인들의 곡을 리메이크하는 '015B Antholgy' 앨범을 발표하고, 객원가수 윤종신, 김태우, 이장우, 조성민, 조유진이 출연한 'Homecoming' 콘서트를 열었다.
2018년부터는 015B의 자체 레이블인 'the015B'를 만들고 대표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015B의 신곡 시리즈인 'New Edition'과 리메이크 시리즈인 'The Legacy'를 런칭했고, 2018년 3월, 첫 싱글 '상수역 2번 출구'를 시작으로 매달 새로운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
2018년 이전의 015B 음악은 정석원 단독 작사, 작곡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시기부터는 공동 작사, 공동 작곡인 것도 꽤 많이 있다. 정석원의 만든 곡 중 대중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곡들은 발라드가 대표적이지만, 지금은 자체 레이블이기도 하고, 매달 내는 싱글 위주의 활동이다 보니 90년대 활동보다 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3. 평가
한창 활동을 하던 그 시절에도 "보여줄 것이 없다"면서 015B의 콘서트를 제외하고 TV 예능이나 음악방송에 거의 출연하지 않았고, 그것은 2006년 컴백 이후도 마찬가지다. 정석원이 출연한 방송은 손에 꼽을만한데 대표적인 방송 및 공연은 "1992 내일은 늦으리"와 몇 건의 토크쇼와 음악방송 그리고 빼빼로 CF정도가 있다.
정석원의 작사 능력은 무려 25년 전 015B의 데뷔곡인 '''텅빈 거리에서'''의 "야윈 두 손엔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 계속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 특유의 감수성과 감성 넘치는 가사의 매력을 인정받는다. 다만 015B의 곡들 가운데에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신인류의 사랑' 같은 곡의 세태 풍자 가사가 당시는 대중의 공감을 받았을지 모르나 이제와서는 본인들도 가사를 듣기가 힘들다고 한다. (시대가 많이 변했다. )
작곡이나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은 또한 높이 평가 받는다. 90년대의 인기 작곡가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꾸준한 작곡과 프로듀서 활동을 하고 있는것 해도 인정할만한 일이지만, 2000년대 이후에도 간간히 히트곡 혹은 스테디셀러가 나왔다. 대표적으로 "1월부터 6월까지", "잠시 길을 잃다" 등. 하지만 정석원은 015B 컴백 이후에도 전성기와 마찬가지로 방송이나 외부노출 없이 전업 프로듀서, 작곡가로만 활동하고 있어, 활발한 방송활동과 함께 음악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윤종신의 2000년대 활동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2011년 8월에 발간된 '대중음악 사운드' 3호에서 '최고의 프로듀서 10'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8년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는 015B의 3집 'Third Wave'가 64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유희열은 자주 그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도 한다.유희열이 주류 작곡가가 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정석원이기 때문이다.[14] 유희열이 군대에 있을 때, 유희열에게 전화를 걸어 이장우의 앨범에 도움을 요청했고 유희열은 3곡을 제공한다.
정석원과 무한궤도를 함께 했던 신해철은 "그(정석원)는 우리 나이 또래에서 드물게 코드 변환, 전조, 텐션 변화에서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배킹형 키보디스트"라고 표현했으며[15] "아무리 보컬이 개떡같이 불러도 알아서 키를 맞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작곡가와의 역량과도 분명 관련이 있겠지만 음악 비전공자임에도 건반과 피아노 연주 실력은 대중음악신의 동료들 중에서도 특히 높이 평가받는 듯. 여러 앨범에서 세션으로도 활약했다.
그러나 비판적인 의견도 있어서, "너무 잘난 척 한다, 기술적으로 파고 든다", "머리로 음악을 한다"라는 비판도 있었다. 물론 명문대 출신이라는 이미지도 한몫 한 듯. 음반작업을 할 때 철저히 1인 독재형이라서[16] 함께 작업했던 음악인들 중에서도 갈등을 겪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다만 예전 박정현의 인터뷰나 옥주현의 라디오에서의 멘트, 최근 아이유 등의 작업 노트를 보면 그것도 아닌 듯. 물론 40대 아저씨가 여동생 혹은 딸 뻘인 어린 여성 가수에게 엄하긴 어렵겠지만, 오랜 기간 동안 친분을 유지하는 뮤지션 들도 많으니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리는 성격임은 확실한 듯.
또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서태지와 마찬가지로 몇몇 곡은 표절 논란이 있었는데 '정석원은 해외에서 성공한 장르를 조금만 바꿔서 가져온다'라는 비판도 있었다. 본인 스스로는 015B 5집에서 대놓고 레니 크래비츠의 음악을 모방한 "시간"이라는 곡을 통해 이러한 표절논란에 대응했는데 창작과정에서 장르의 차용과 모방은 해외 대중음악신에서 자유롭게 나타나고 있고 이는 "표절"과는 다르며 단지 일부 비슷하게 들린다고 표절로 부를 수는 없다는 창작자의 입장을 피력했다. 다만 해외 장르의 도입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본인도 인정을 하는 듯 하다. "사실 외국음악의 이식이라고는 생각해요"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본인은 이에 대해서 매우 당당하며 그런 비슷한 형식의 음악을 만들면서 즐겁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4. 신해철과의 인연
데뷔를 이끌어준 것이 사실상 신해철이었다는 인연도 있고, 별개의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동일한 음반사에 소속된 음악적 동료로서 무한궤도 해체 직후에 서로를 존중하며 꽤 절친한 듯이 보였던 신해철과 정석원의 관계였다.[17] 그러나 본래 무한궤도에서 함께하던 시절부터 서로 추구하는 음악 장르 및 지향점의 차이가 있었음을 애초부터 서로 인정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의료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신해철의 빈소에 장호일을 비롯하여 무한궤도 멤버들과 함께 찾았다고 한다.
2015년 10월 27일, 신해철 1주기를 맞아 윤종신의 주도로 추모곡으로 기획된 "월간 윤종신" Special 싱글 "고백"(원 신해철 1집 수록곡)의 편곡 및 프로듀서로서 참여, 수익금은 전액 신해철 유족에게 기부된다고 한다. 윤종신은 보도자료를 통해 "신해철의 초창기 음악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으면서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뮤지션인 정석원과의 작업이 의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도 윤종신이 신해철의 후기 보컬 음색과 음악적 색채를 잘 표현해냈다. 이 곡은 고인에 대한 정석원의 음악인으로서의 존경과 존중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5. 사생활
방송활동을 하지 않고, SNS도 하지 않아 사생활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나 결혼 후 두 아이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말 장호일, 정석원 형제의 모친 사망 시 팬들이 식장에 조화를 보내다가 알아냈다고 한다.
6. 논란
6.1. 병역논란
병역에 대한 논란이 있다. 정석원은 1996년 015B의 90년대 마지막 앨범인 6집을 발표하며 015B 해체, 가요계 은퇴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군입대를 할 것이라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져 팬들은 그가 정말 군대에 가는 줄 알았다. 인기그룹 '015B' 해체 리더 정석원 군입대. [18] 1996년에 군대를 간다고 알려졌으나, 이후 2001년 동아일보에 입영연기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 함께 나도는 얘기로는 정석원이 캐나다의 영주권을 획득했다는 설이 있는데, 영주권 보유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없다. 영주권 취득 설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영주권을 보유하지 않고는 캐나다에서 30대가 될 때까지 버티기 어렵고, 입대 연기 신청 없이 불법체류 등의 다른 방법으로 병역기피를 했다면 귀국했을 때 바로 사법처리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이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간다고 알려졌지만, 결국 군대를 가지 않았다더라"는 것이 핵심이고, 정확한 내용에 대해서는 본인이나 관계자를 통해 알려지거나 병무청 등 공적 기관에 확인된 내용은 없으나, 위 단락에 인용된 단 2개의 기사를 증거로 그에 대한 논란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7. 참여 앨범
연도순. 작사 작곡만 포함. 굵은 글씨는 프로듀싱한 앨범.
무한궤도 - 「無限軌道」(1989)
신해철 1집 (1990)
'''015B 1집 - 「공일오비」(1990)''' - 이후 015B 앨범은 해당 항목 참고.
윤종신 1집 - 「처음 만날 때처럼」 (1991)
성지훈 1집 (1992)
'''윤종신 2집 - 「Sorrow」 (1992)'''[19]
'92 내일은 늦으리 (1992)
이규석 3집 (1992)
김태우 1집 -「Mutant」(1993)
이승환 3집 - 「My Story」(1993)
윤종신 3집 - 「The Natural」(1993)
'''정석원 - 「연인」 (1993)'''[20]
박주연 3집 (1994)
Styles 1집 - 「Styles」(1995)
이장우 1집 - 「이제, 그녀는 이 도시 어디에도 살지 않는다」(1995)
윤종신 4집 - 「共存」(1995)
'''이승환 4집 - 「Human」(1995)'''[21]
파파 OST (1996)
이동규 2집 (1996)
이장우 2집 - 「長友」(1996)
이장우 3집 - 「슈퍼마켓 러브송」(1999)
이승환 6집 - 「The War In Life」(1999)
이승환 7집 - 「Egg」(2001)
'''이가희 1집 - 「leegahee」(2001)'''
'''박정현 4집 - 「Op.4」(2002)'''
Haru 1집 - 「Really」(2003)
박정현 5집 - 「On & On」(2005)
윤종신 10집 - 「Behind The Smile」(2005)
신혜성 1집 - 「오월지련」(2005)
박신양 - 「연人」(2005)
제이민 - 「손뼉을 쳐」(2007)
'''윤종신 11집 - 「동네 한 바퀴」(2008)'''[22]
윤종신 월간 윤종신 2011 - 「行步 2011 尹鍾信」(2011)[23]
아이유 2집 - 「Last Fantasy」(2011)
박정현 8집 - 「Parallax」(2012)
가인 - 「Talk About S.」(2012)
제아 - 「Just JeA」(2013)
다비치 2집 - 「Mystic Ballad」(2013)
아이유 3집 - 「Modern Times」(2013)
퓨어킴 - '''「Purifier」(2014)'''
김예림 -「Simple Mind」(2015)
장재인 -「LIQUID」(2015)
브라운 아이드 걸스 - 6집 「BASIC」(2015)
[1] 왼쪽에 있는 사람이 정석원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장호일[2] 앨범 참여 멤버와 같은 것으로 미루어 무한궤도 현역 활동 당시로 보인다.[3] 앨범 표기에는 피아노 담당으로 되어있다.[4] 널리 알려진 정석원의 안티이며 소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를 자부하는 강명석이 이 이름가지고도 깠다."실험성"에 대한 집착이라는 평을 덧붙여서.[5] 이 부분에서는 정석원과 신해철의 기억이 다른데, 신해철의 글에서는 "팀 전력의 강화"를 위해 세 번째의 키보디스트를 영입했다고 되어있고, 정석원의 "015B 스토리"에서는 전업 음악가로서의 데뷔를 부담스러워 했던 건반 멤버 두 사람(조현문-범 효성가의 차남인 그 사람 맞는다, 김재홍)의 탈퇴 의사가 이어지자 신해철이 급히 대타로 정석원을 영입했고 정석원의 영입 이후 해당 멤버들이 다시 복귀했다고 한다.[6] 무한궤도가 계약 기간 내에 해체 시 나머지 계약 기간을 본인이 솔로 앨범으로 채워야 하는 계약조건이었다고 한다.[7] 개신교 목사의 아들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서 정석원과 코드가 맞았다고 전한다. 훗날 015B 가스펠 음반이 나오게 된 배경, 015B 4집 이후 버클리 음대 유학으로 015B 탈퇴, 이후 그의 친형인 조형민과 함께 '삶사람사랑'이라는 2인조 CCM 그룹으로 활동하였고 백석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2020년 7월 25일 사망.[8] 무(無)=0 한=1 궤도(orbit)=5B[9] 강준만이 '한국 현대사 산책'이라는 책에서 그를 서태지와 비슷한 반열에 올릴 정도.[10] LG의 손해도 막심했던 듯 오디오 구매 시 테이프를 사은품으로 주었다는 목격담도 있다.[11] 이승환, 윤종신, 하림, MGR, 유희열, 윤상 등등[12] 여성의 심리를 여과없이 묘사했다는 노랫말이 역겹다는 평도 일부 있었다.[13] 사실 형인 장호일이 015B 헌정 앨범을 기획하던 중에 정석원 본인이 먼저 컴백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간 고용살이 프로듀서를 하면서 기획사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꿈꾸었다는 듯. 컴백 이후에도 정석원은 일체의 방송활동을 하지 않고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의 활동만 이어간다.[14] 실제로 유희열이 이승환 4집에 참여하게 된 것도 정석원의 힘이 크다. 그래서 유희열이 준 곡은 '''변해가는 그대''', 최진우와 함께 공동 작사작곡인 '''부기우기'''.[15] 위에서 언급된 2000년의 "처음 음악을 하던 그 시절" 에세이에서, 무한궤도의 앨범이 처음 나왔던 1989년 기준의 평가.[16] 별명이 6집 수록곡과 같은 "독재자"였다고 한다. 사실 독재자라는 말은 015B 2집 부클릿 속 멤버 소개에 이미 언급되었던 말이다. 영어로 'Dictator'라고 써있지만.[17] 신해철은 공일오비 1집에 수록된 '난 그대만을'이란 곡을 작사, 작곡하고 직접 보컬까지 맡았으며, 015B 2집 수록곡인 불후의 명곡 '이젠 안녕'에서 단체 보컬 중 1인을 맡는 등 한 때 정석원과 상당히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신해철의 데뷔 앨범에도 정석원의 곡인 'P.M 7.20', '인생이라는 이름의 꿈'이 수록되어 있다.[18] 입대 전 팬미팅은 있었지만, 고별콘서트는 없었다.[19] 윤종신, 김형석, 신재홍, Andy 서와 공동 프로듀싱.[20] 드라마 "연인" OST 앨범을 겸한 정석원의 유일한 솔로 앨범이다. [21] 이승환, 데이비드 캠벨과 공동 프로듀싱.[22] 윤종신과 공동 프로듀싱.[23] 월간 윤종신의 7월, 10월호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