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폭력배/역사
1. 개관
사실 정당한 근로와 노동이 아닌 불로소득을 갈구하는 단체는 유사 이래 세계 어디서나 항상 존재해 왔다. 문명의 발상 이후 법이 있는 곳에는 범죄가 있었고, 그에 따라 범죄 조직도 있었다. 단적인 예로 구한 말 이전에도 도적, 검계, 시정잡배들은 늘 발견된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도 이들로 인한 사회문제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중국에서도 사기에 유협열전이 있어 사마천이 살던 당시의 유명한 유협 집단 두목에 대한 열전을 썼으며,[1] 아예 한고제나 소열제처럼 이런 유협이나 그에 가까운 무리들의 우두머리로 시작해서 황제가 된 인물도 있다.
물론 대한민국 기준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조직폭력배라 일컬을 수 있는 단체는 일제강점기 때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조직폭력배의 역사를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조직의 성향으로 구분하였다.
2. 상세
2.1. 구한말 이전
사실 이전 시대에도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해당 조직들에 대한 자료가 부실하다. 경대승이 조직한 도방을 조폭의 뿌리로 보는 의견도 있다.# 조선조까지는 주로 건달, 무뢰배, 불한당, 왈패, 왈짜라고 불려졌다. 이런 기둥서방인 왈짜들은 신윤복의 그림 기방난투에 잘묘사된다.
세조시대의 권신이었던 홍윤성의 무리도 조폭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으며, 그외 임꺽정이나 장길산, 홍길동의 도적무리들도 조직화된 범죄조직이라 볼 수 있다. [2] 조선시대 후기 기록에 조폭이라고 불릴만한 검계라는 조직이 나오긴 하는데 1세대 조폭과 연관성에 관한 기록은 없다. 검계들은 극도로 흉악하여 조선시대의 큰 사회문제였다.
흥선대원군이 조직한 천하장안, 고종이 독립협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동원한 보부상 조직들도 조폭과 유사하거나 그 원류로 보고 있다.관련 기사, 관련 기사 2
또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추설, 목단설, 북대라는 도적 조직이 나오는데[3] 백범일지가 자서전이고 이광수가 윤문해서 신뢰성은 높진 않지만 완전히 꾸며냈다고 보기도 힘들어서 어느정도 조선시대, 구한말의 범죄조직에 대해서 볼 수 있다. 기사
2.2. 일제강점기
1930년대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의 폭력배 조직의 양상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시장의 무뢰배, 거지패, 소매치기 조직, 도적떼들이 횡행했다.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야쿠자 같은 일본 범죄 조직들도 한반도에 유입되었는데, 이들에게 저항한다는 명목으로 이들의 방식을 벤치마킹했는지 이때부터 생겨났다. 주로 시장상인들을 위협하거나 보호 명목, 즉 "잡벌레들이 시장에서 행패부리면 우리가 도와주겠다"는 식으로 금품을 강탈하는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 야인시대 1부에 나오는 구마적, 김두한 같은 깡패들이 이런 부류. 낭만파라고도 미화되기도 하지만 그냥 삥 뜯는 양아치들. 김춘삼 같이 거지패로서 악행과 범죄를 저지르는 자도 생겨났다.[4]
김두한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깡패나 조직폭력배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으며, 김두한 본인에 따르면, 당시에 어깨나 건달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협객이라는 표현은 이보다 한단계 높은 것으로 일본 야쿠자의 극도(極道)와 동격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2.3. 해방 직후
8.15 광복 직후부터 6.25 전쟁 이전에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진영의 좌익과 자본주의 진영의 우익이 각각 깡패나 테러조직을 꾸려 적색테러나 백색테러가 성행했다. 이들은 좌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대립 속에서 이를 이용해 이권을 얻었다.
2.4. 20세기 중반
6.25 전쟁 이후에는 사회 혼란기를 이용해 부동산이나 UN연합군 특히 미군의 원조물자 등으로 이권과 이익을 얻으며 세를 불리더니 정계와 재계에 연계하여 이권과 이익을 강화한 부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같은 부류를 생각하면 된다.
당시 이승만, 이기붕, 곽영주[5] 등 자유당 인물들과 유착한 정치깡패 세력은 대단하여 조직규모도 크고 각종 총기로 무장하는 등[6] 오히려 현재의 폭력조직보다 위세가 대단할 지경이었다.
경찰학자 표창원은 2013년에 작성한 칼럼에서 ‘이탈리아와 미국의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 홍콩의 삼합회 등 뿌리 깊은 조직폭력(조폭)이 존재하는 국가에서는 늘 정치와 조폭 간의 유착 문제가 대두되곤 했다.[7] 특히, 정치적 불안을 오랫동안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때는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시절이었다.’라고 썼다.
야당 인사들에 대한 암살기도, 그들의 유세 및 연설에 깡패들을 보내 난장판을 만드는 등 온갖 사고를 쳤으나 정부와 결탁한 깡패라는 점 때문에 경찰력도 이들과 한패였다. 결국엔 이들의 배후였던 자유당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세가 위축되었고,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군부가 민심을 얻기 위해서 이들을 대대적으로 잡아들이면서 몰락하였다. 이들은 세번의 재판을 거치면서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이 중 유지광만 무기징역으로 형이 감형되고 이정재는 면회 없이 바로 형이 집행되었고 나머지는 마지막 가족 면회 후 사형이 집행되었다.
2.5. 20세기 후반
조일환이나 신상사같이 기존 세력을 물려 받은 조폭들이나, 70년대 경제성장으로 새로이 생겨난 조폭들이 주를 이룬다.
주로 카지노나 빠찡코에 연계된 도박업, 건설업, 유흥업, 운송업, 유통업, 무역업, 연예업, 금융업 등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21세기에 비해 부정부패도 상당했으므로 이 과정에서 생기는 검은 돈들을 챙기거나 혹은 지저분한 일에 관여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는데 이때부터 조폭 특유의 과시 문화(?)도 생겨났다. 이는 옆동네 조폭들도 마찬가지로서 경제적으로 성장하자 이전에는 간소히 했던 사카즈키고토 같은 의식들도 호화로운 행사로 탈바꿈 되었다.
7~80년대 한정적인 이권을 먹기 위해, 혹은 감정싸움으로 조폭간 전쟁이 많아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사보이 호텔 사건, 속리산 카지노 사건, 워커힐 호텔 사건,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등등이 있고, 이외에도 수많은 이권 다툼과 살인극이 수두룩하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삼청교육대로 잠시 눌렀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군사정권 시절의 엄중한 사회통제속에서도 조직범죄가 심해지고 이권 쟁탈전이 심해지자 정부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후 노태우 정권의 10.13 특별선언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영화 친구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게임 회색도시2가 이 시기 조폭들을 소재로 삼았다. 이른바 70~80년대 3대 조폭이라고 하는 양은이파 조양은, 범서방파 김태촌, OB파 이동재등이 여기에 꼽히는데, 이들이 매스컴의 영향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 졌을 뿐 진짜 전국구 보스들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8] 옛 오리지날 3대 패밀리들의 후계자들이 진짜 전국구라는 것. 김태촌 같은 경우 신상사, 조일환, 이강환, 정종원, 이승완 등등을 꼽았다.
시간으로 따지면 40년이나 지속된 유형이므로 이 시기를 좀 더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신상사와 조일환이 활동했던 시기와 김태촌과 조양은 등이 활약했던 시기 사이에 중간격인 인물들이 들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중간 시대를 세분화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외에도 김태촌과 조양은과 비슷한 시대에 정치깡패로 유명했던 김용남이나 매스컴을 타 유명해진 안상민 등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징역을 너무 오래 살다 보니 고통스럽다. 보스고 건달이고 조직이고 다 지겹다. 솔직히 나나 조양은이나 무슨 두목이냐. 우리는 평생 교도소나 다니는 실패한 인생이다. 진짜 두목들은 뒤에 있다.” 그는 자신이 인정하는 주먹계 보스로 정종원, 신상사, 조일환, 이승완, 박종석, 정학모, 이강환 씨 등을 꼽았다.
2.6. 2000년대 이후
범죄와의 전쟁으로 폭처법의 범단조항이 생겨서 과거와 같은 피라미드 형태의 전형적인 조폭은 유지하기 힘들어젔다. 따라서 점조직의 행태로 조직을 유지해 나가며 이를 바탕으로 구역과 조직에 개의치 않고 이합집산하며 합법적인 회사 및 자영업으로 위장하는 조폭들이 생겨난다.
2000년대가 되자 범죄와의 전쟁으로 감옥에 갔던 조직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복귀했고 그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재건되는 움직이 보였다. 전통적인 연예계와의 친분 관계를 살려 조폭 영화나 야인시대 같은 드라마들에 관여하는 등 잠시나마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일부 폭력배조직이 철거용역 등으로 잠시 흥하기도 했으며 200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일부 지방대학교 학생회와 연계하여 이권을 얻는 부류들이 생겨났다. 그 외에도 고전적인 형태의 조직들도 잔존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해외 원정 도박을 알선하거나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사설 토토 서버를 운영한다거나 아니면 성매매를 알선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조폭들은 과거의 조직과 구역 같은 장소 중심에서 인물 중심의 조직으로 변하고 있다. 전국구급인 두목들은 거의 반달화 되어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기업의 회장이 돼서 어느 한 조직이 아닌 여러 조직의 일선 두목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폭처법을 피하면서 현역 조직들의 스폰서가 되어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또 조폭 두목들간에 친목 모임을 통해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고 사업을 같이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권이 많은 해외 사설 토토 같은 경우 두목들끼리 협의를 거친 후 여러 조직이 같이 끼어들어 이익을 나눠먹는 모습도 보였다. 같이 공생하면서 벌어먹고 어느 특정 조직에서 탈피해서 그때그때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을 할땐 본가조직엔 이름만 걸어놓고 점조직처럼 움직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어떤 사건이 터저서 같은 식구끼리 움직여야 할땐 비상연락망이 가동돼서 일시에 모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다보니 일견 체계가 없어보여 폭처법의 범단 조항을 적용하기가 까다로워젔다.
이 시기를 다룬 영화로 비열한 거리가 있다. 신세계나 달콤한 인생 같은 영화들도 인기를 얻었지만 실제 조폭들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관련 기사
위의 3개 세대 조폭에 비해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의 거의 없는데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로 치안력의 증대로 세력이 많이 쇠락했고, 두 번째로 돈 좀 만지는 조폭의 경우 하이리스크-로우리턴 업종인 폭력배 조직을 그만두고 그 동안 벌어놓은 돈으로 반달화해서 합법적인 사업가로 전향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과거에 비해 인권의식이 진보하고 초상권 및 실명언급에 대한 언급 처리가 엄격해져서 아무리 거물급들이라도 어지간하면 해당 인물의 이름을 복자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3. 참조 링크
[1] 다만 여기에 적힌 이들은 상막장 폭력배들은 아니고, 그 나름대로는 의리와 품위를 인정 받은 케이스. 물론 그런 인물들을 골라 썼다는 점에서 그렇지 않은 상막장 건달패들이 당시에도 있었음은 충분히 추측 가능.[2] 특히 임꺽정이나 장길산은 강도떼로 볼 수 있지만 홍길동 같은 경우 조폭이나 정치깡패의 행태와 매우 유사하다.[3] 이 중 북대는 목단설과 추설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협력하지 않은 상대 조직 전부를 칭하는 용어이기도 했다.[4] 사실 김춘삼의 일화는 과장되고 교차검증이 안된게 너무 많아서 그를 체계적인 조직 생활을 하는 조폭이라고 보긴 힘들고 혼란한 사회상에서 태어난 신흥 거지패의 우두머리로 깡패짓을 한 경우에 가깝다.[5] 특히 곽영주는 반쯤 동대문파 조직원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 때문에 이정재, 임화수 등 동대문파 조직원들과 같이 사형 집행을 받았다.[6] 사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등을 겪은 탓이 크다. 게다가 당시 한국의 사회안전망도 미비했고.[7] 정관계와 범죄조직 간 유착의 대표적인 사례로 이탈리아는 줄리오 안드레오티 총리, 미국은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 일본은 고다마 요시오가 있다.[8] 특히 사보이호텔 사건이 너무 잘못 알려저 있어서 이런 오해가 많다. 사보이호텔 사건은 크게 과장된 것으로 조양은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실제론 조창조-오종철-조양은 세력의 완패로 끝났고 신상사와 그 후예들은 세력을 지금까지 유지하며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암흑가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