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으로
1. 개요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육군의 포항 진입을 지연하게 만들었던 대한민국 육군 제3보병사단소속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제작된 2010년작 전쟁 영화다. 인터넷에서 잘 도는 이우근(당시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문근 사도 요한 신부의 동생) 학도병의 편지의 배경인 바로 그 전투이다. 극 중에서도 편지 부분이 나오는데, 듀나게시판의 누구는 이승복 사건처럼 조작 의혹을 제기했지만 엄연한 사실이다.[1]
2. 시놉시스
3. 줄거리
4. 등장 인물
4.1. 주역
[2] 을 대변하는 듯 하는 모습을 보인다. 눈앞에서 아군이 적병이 휘두르는 대검에 찔려 아둥바둥하는 와중에 총알을 꺼내면서 벌벌 떠는 장면을 보아도 알 수 있다.[3] 이후 포항에서는 전투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71명의 학도병들을 지휘하는 중대장직을 맡게 되는데,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는지, 다시 말해 어떻게 인정받는 중대장이 되어가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최후 전투에서 "학도병은 군인이다!" 를 복창하며 중대원들을 의기투합시키는 중대장에 걸맞은 면모를 보여준다. 풋풋한 모습의 어린 병사에서 군인이자 리더로 거듭나는 학도병 그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최후의 전투에서 옥상에서 기관총(DP28)으로 무쌍을 찍다 박무량 소좌에게 총알을 한방 먹이고 강석대 대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극중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 전쟁에 투입된 흔한 학도병의 심정4.2. 조연
4.3. 특별 출연
5. 평가
안시환 평론
일단 세트와 캐스팅, 전투 묘사 등은 나름대로 신경 쓴 티가 역력하고 소재 자체도 잘만 엮어낸다면 괜찮은 내용이었다. 다만 소재가 소재여서 신파물 혹은 반공물로 보일 여지가 많고, 소재에 비해 고증, 시나리오를 잘 엮지 못해서 적지 않게 지적을 받았다.
5.1. 연기력
일단 캐스팅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 아이돌 등을 투입한 덕에 "전쟁 영화=군인들이 단체로 나와서 총 쏘는 영화"라고 관심 없어하는 젊은 여성 관객층을 '우리 오빠'를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나오도록 하여 대거 끌어들일 수 있었다.[4] 2012년에는 네이버 영화 평점이 8.22로 꽤 높은 상태였으며, 이 영화에 평을 매긴 네티즌들의 경우 전쟁 영화 장르 치고는 이례적으로 10대 , 여성 관객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보다 더 전에 비슷한 수요층을 노렸던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같은 경우 수요층 마저 외면했으며 평점도 최악인 것과 비교한다면, 적어도 캐스팅 효과와 그 수요층을 만족 시킬 정도의 기본기는 제대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장르인 고지전이 작품성 자체는 더 괜찮았는데도 이슈를 끌지 못해서 망한 것을 생각해보자.
주연을 맡은 최승현도 기대보다 호연이었다는 평가. 비록 연기만 수십 년 해온 전문 배우들 만큼은 아니지만, 갓 입봉한 아이돌 출신의 배우치고는 준수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영화로 대종상 영화제에서 한류인기상을,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제[5] 에서 모두 신인연기상과 인기상을 수상했다. 다만 너무 앳된 티가 나서 전쟁 영화의 주인공에 필요한 박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었으며, 권상우의 고질적인 발음 문제, 차승원이 개그 전문 배우에서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하며 보인 어색함도 지적되었다. 특히 차승원의 "김일성 장군님에게 승리의 보고를 올리자!", "돌격~ 앞으로" 등과 같은 대사를 들어보면 분위기가 깨진다.[6]
5.2. 고증
고증의 경우 일단 무기와 장비 면에서 '전쟁 영화스러운' 소품들을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세심하다고 보긴 힘들다. 군데군데 눈에 보이는 허점들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소위 '육공트럭'이라고 부르는 K-511 트럭이 계속 등장하든지, 국군 전차로 M48이 버젓이 등장하고 인민군은 M4 셔먼을 끌고 나오든지, 70년대 후반에야 출시된 국산 K111 '찦차'를 국군이 몰고 다니고, 인민군인 차승원은 미국의 윌리스 MB(태극기 휘날리며 제작진이 제작한 영화용 장비로 보인다)를 타고 다니는 것이 대표적. "학도병이 M1 개런드를 실탄까지 두둑하게 챙기고 있다는 점도 어색하다. 실제 학도병은 일제가 남기고 간 아리사카 소총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실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전원 M1소총을 지급 받고 실탄 250발을 지급 받았다.[7]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보면 가령 북한 육군 보병군관인 차승원이 전장에서 하얀 제복[8] 을 입고 있고[9] , 당시 기준에서 엘리트[10] 인 학도병들 사이에 문제아인 소년범들(권상우 패거리 3명)을 설정한 것도 지적되었다. 다만 맥락상 갑조(권상우) 일행은 실제로는 학생이 아니었고 학사모만 쓴 학생을 사칭한 사람들이었다.
영화가 '사실의 재현' 보다는 단순히 포항에서 학도병들이 죽을 때까지 항전했다는 모티브만 빌려 각색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포항여중 전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크레딧에 실제 생존자들이 나옴에도 실제 포항여중 전투와는 차이가 나는 점도 적지 않으며 이 탓에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일단 소년원이 싫어서 지원한 학도병은 실제로는 없다. 학도병은 당시 기준으로 엘리트 자원이었고 포항여중 전투에 참여한 71명은 김석원의 수도사단에 소속되어 안동지구 전투에 참여한 수백 명의 학도병 중 일부로, 김석원이 3사단장으로 전임되며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집에 가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음에도 자신들을 처음 받아준 김석원 밑에서 싸우기 위해 포항까지 찾아갔다. 즉, 모두 실전 경험이 있었다.
- 영화에서는 고교생으로 묘사되었으나. 최승현이 연기한 학도병 중대장 김용섭은 서울대학교 2학년이었고, 제2소대장 김일호는 중앙대 2학년, 신원이 확인된 대원(생존자 및 전사자 포함 36명) 중 서울대 2명, 중앙대 4명, 국민대 1명 교통학교 3명 등 확인된 대학생 수만 10명이 넘었다. [11][12] 단 1소대장 유명욱은 배재중 6학년으로(오늘날 고 3) 대학생 형님들이 포함된 소대원들을 지휘했다. 물론, 당시엔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한 만학도가 많았으므로 나이가 많은 만학도일 가능성도 있다.
- 영화 속 학도병들은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여 포항 현지에서 모인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국각지에서 모인 대학생이 10명이고 성남중학교(경기도) 태백중학교 2명(강원) 한양중학교(서울)동성중학교(서울) 배재중학교 2명(서울) 청주중학교(충청) 신흥중학교(전북) 부평중학교(인천) 대구중학교(경북) 대구상업학교(경북)성광중학교(경북) 영신중(경북)등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었다.특히, 학도병 중 성남중학교 학생이 있는데 성남중은 전쟁 직전까지 사단장 김석원이 교장으로 있던 학교로 교장선생님 지휘하에 싸우겠다고 찾아온 제자이기도 하다.
- 학도병들은 간부(중대장과 소대장, 연락병)를 투표로 선출했으며 집총훈련과 총기 수입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수행했다. 즉, 이 영화는 집에 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조국을 위해 무기를 잡은 의로운 학도병들을 소년원 가는 대신 군대를 택한 오합지졸, 탕아로 만들었다.
- 포항은 낙동강 방어선에 포함되기 때문에 3사단은 포항에 계속 주둔해 있었다. 즉 3사단이 다른 방어선으로 떠나고 포항을 순전히 학도병 만으로 지킨 것은 아니었다. 단지 포항여중 전투가 벌어지는 시점에서 3사단은 해안에 포위되어 기동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학도병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분투해야 했다. 실제로 3사단은 부산광역시에서 창설되었으며, 전쟁 발발 당시에는 3사단은 영남 지역에서 빨치산 토벌에 투입되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영덕, 포항에 전투를 벌였다. 그 이후 알다시피 강원도 양양에서 38선을 UN군 최초로 돌파를 하게 된다.
- 포항여중 전투 당시 학도병들은 훈련과 총기수입을 마치고 잠들었다가 새벽 4시 반쯤에 갑작스러운 총소리를 듣고 급히 전투에 나섰다.
- 71명 학도병 외에 소수의 군악대원들이 남아있다 함께 싸웠다. 일부가 생존한 학도병들과 달리 이들은 전멸한다.
- 영화에서는 차승원이 맡은 북한군 장교 박무량이 부대의 통솔권을 틀어 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높으신 분들 지시에 따라야 했다. 박무량의 설정 계급이 소좌. 이걸로 지휘관이라고 해봤자 대대장이 고작이다. 대대장 정도면 부하가 500명 뿐으로 하급 지휘관에 속한다.
- 포항여중 전투 시점은 낮이 아니라 새벽이었다.
- 작중 묘사되는 북한군의 화력이 너무 우월하다.[13]
- 실제 포항여중 전투는 탄약도 수류탄도 다 떨어진 학도병들이 날아오는 인민군 수류탄을 도로 집어던지고 총검으로 총알을 상대하는 혈전으로 치달았으나 영화에서는 끝까지 실탄이 남아돌았다.
- 영화에서는 전멸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전사 48명, 부상 6명, 실종 4명, 포로 13명이었다. 영화에서는 스탭 롤이 올라갈 때 생존자 인터뷰가 나온다. 48명의 전사자들 중 10명의 신원만이 확인되었고 이들은 포항여중 앞에 임시로 가매장되었다가 1963년 국무회의에서 국립묘지 이장이 결의되었으며 1968년 국립현충원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의 석함에 안치되었다.
-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힌 학도병 13명은 미군 항공기의 공습을 틈타 근처 콩 밭으로 달아나 빠져나왔으나 이들 중 2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 참고로 북한 766유격대는 실제론 시체로 산을 쌓을 정도로 전멸하지 않은 채 물러나 영천 전투 보현산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 영화에서 나오는 북한군 전차가 전부 M4 셔먼, 즉, 미국 전차다. 그런데 한국 전쟁 당시의 북한군 전차는 소련제 T-34-85전차였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며 노획한 물건으로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실제 포항여중 전투는 UN군이 참전하기 이전이었다. 다만 전부 셔먼은 아니고 시가전에서 유심히 보면 패튼전차도 나온다. 셔먼은 중국 국민당군에게 랜드리스로 보내줬으니 가능은 하다.
- 극중 자신의 신체보다 큰 파파샤 기관단총을 들고 주인공 2명과 대치하는 북한군 소속의 소년병[14] 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포항여중 전투 중 북한군 소속의 소년병이 존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는 전쟁중 양쪽의 군대의 한명의 인명이라도 더 필요해서 소년병까지 동원했던 절박한 양측의 상황과 전쟁에 놓여진 어린이와 청소년, 한 사상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의 광기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장치로 보인다.@
5.3. 연출력
가장 크게 지적 받은 것은 사실 다른 요소보다도 감독의 전작 내 머리속의 지우개에서도 엿보인 고질적인 '''최루성''' 전개다. 심지어 70년대 반공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의 신파성이 문제인데, 그 결과 배우들의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너무 뻔해졌고(예외적으로 차승원이 맡은 박무량 캐릭터가 꽤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 이입할 틈을 주지 않고 픽픽 죽어나가게 만들어 비극성을 너무 강조했다. 이런 요소는 일부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감동 깊게 받아 들여진 듯하나[15] 이런 연출의 진부함은 아주 닳고 닳은 뻔한 클리셰라 할 수 있는 '''겉멋만 잔뜩 들어있는 사고뭉치 주인공이 온갖 민폐를 일으키다가, 어떠한 계기로 각성하게 되며 혼자 무쌍을 찍는''' 권상우의 캐릭터에서 절정에 달했고, 클라이맥스인 옥상 장면에서 인민군의 시체로 산을 쌓는 장면에서는 비웃음까지 유발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군대를 경험한 남자 관객들에게서는 가뜩이나 총 든 '''남자들'''밖에 안 나오는 영화가 시종 뻔하고 신파적인 전개로 일관하는 탓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즉 작품의 전개를 감동으로 받아들이느냐, 억지감동으로 받아들이느냐 따라서 작품의 평이 극과 극을 오간다.
초반에 총도 벌벌거리면서 들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학교 옥상 전투씬에서는 갑자기 북한군들의 시체를 쌓을 정도로 무쌍을 찍었다. 이건 영화가 진행할 수록 주인공의 실력이 점차 성장했다고 넘길 수도 있는데 그러나 북한군도 남한에 내려오면서 수 십번 전투를 하면서 내려온 군대들이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알 듯이 감독과 제작자들이 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만만하고 쉽게 보는 지 알 수가 있다.
특히나 후반부의 북한군 시체 쌓일정도로 무쌍을 찍는 장면(.....)은 영화의 분위기나 주제의식이나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이 영화가 반공물로써의 가치도 없다는것을 증명하는 부분인데, 조국을 위해 총을 든 학생들의 숭고한 희생과 비장함, 장렬한 죽음과 그런 희생을 만들고, 순수한 학생들에게 살인을 강요하는 전쟁의 참혹함[16] 같은 누구나 생각할법한 주제의식은 엿바꿔먹고, 주인공 둘이서 람보를 찍는(....) 부분은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비유를 하자면 화려한 휴가같은 5.18을 다룬 영화를 만들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주연 둘이서 기관총을 들고 계엄군의 시체를 쌓으며 무쌍을 찍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자. 과연 이 영화가 좋은 소리를 듣겠는가? 예시로 든 화려한 휴가도 실제 역사보다 시민군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온다는 비판을 들었는데, 이 영화 또한 학도병들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묘사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실존했던 학도병들의 희생을 격하하는 꼴이다.
6. 흥행
제작비가 113억 정도인데, 333만 명의 관객을 모아 평타 이상은 쳤다. 관객 동원 속도를 보면 개봉 첫 주 만에 100만을 찍고 20일 만에 250만을 찍는 등 초반부터 관객 동원력이 좋았고 실제로 관객 300만 돌파는 개봉 1개월도 안된 7월 12일에 이뤄졌으니 일단 첫 한 달 사이에는 분명히 흥행을 했다. 다만 그 해 여름에 딱히 강력한 경쟁작이 없었고 거대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막강한 입김 덕에 무려 3개월이나 개봉을 끌었는데[17] , 초반 이슈성에 비해 지속적인 관객 동원력이 못 따라준 탓인지 뒤로 가면서 첫 한 달 간의 기세에 비해 큰 흥행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초반의 기세 덕택에 최소한 손익 분기점은 넘긴 것으로 확인되었다.관련 기사
미국에서는 의외로 꽤 호평을 받았다.시사회 분위기맥스무비 기사 워싱턴 포스트 30주년을 맞는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관련 기사
미국 개봉 흥행 수익은 17만 6638달러. 할리우드 특성상 해외 영화의 상영관 자체가 적었던 것을 감안하면 나쁘진 않았으나 '''태극기 휘날리며'''가 미국에서 개봉하여 111만 달러를 벌어 들인 것에 견주면 아무래도 상당히 아쉬운 편.
일본에서는 전화 속으로(戦火の中へ)라는 타이틀로 상영되었으며, 방영 전 6.25시절 학도병을 다룬 특집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7. 진영 논리
개봉 도중에는 좌우 진영 간에 음모론이 난무하며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영화의 소재 자체가 좌파 쪽에서는 까고 우파 쪽에서는 마음에 들어할 수밖에 없는 아주 민감한 성격인 탓도 컸다. 일례로 진보 측 영화평론가 황진미의 경우 뜬금없이 북한의 남침 사실까지 애써 희석시키며 남침유도설이 유력하다는 심히 괴이한 논지의 평론[18] 을 썼으며, 한편으로는 우파들이 표를 강매해서 억지로 관객 수를 늘렸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반면 우파 쪽에서는 오히려 좌파 쪽에서 관람을 방해하고 악의적인 소문을 낸다며 역으로 항의했다. 이런 종류의 논란은 소재가 소재인 이상 작품성과 상관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좌파 측에서는 이 영화가 뉴라이트 사관, 심지어 MB국책 영화라는 평가까지 얹으며 수꼴이라고 욕하는 반응도 나왔고, 반대로 우파 측에서는 영화의 묘사가 한국군의 치부를 드러내고 북한군을 미화한 느낌이 든다고 좌빨이라면서 욕하는 반응도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가 국군이라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한심한 지휘 체계나[19] 학도병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등의 흑역사도 꽤 묘사하는 편이며, 마찬가지로 북한군 쪽도 비록 악역인 차승원이 너무 멋지게 묘사되긴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상찌질이 정치장교가 등장하고 결국 팀킬당하는 등 이런 쪽으로도 고증에 충실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뒷전으로 밀려난 본질이 있는데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인 학도병은 21세기 시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전쟁 범죄의 폐해 중 하나인 소년병이다. 그런데 좌우를 가리는 이념 논쟁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소년병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안 나왔다. 이러한 이념 음모론을 걷어내고 생각해보면 흥행에 가장 중요한 공을 세운 것은 단연 주연들의 팬인 10, 20대 여성들이다. 실제로 네이버 영화에 가보면 높은 평점을 매긴 상당수가 그쪽 관객들[20] 이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평이 올라오고 평점이 오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노이즈 마케팅이나 인위적인 압력만 갖고 관객이 들었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해외 시사회에서 빚어진 일본해 논란이나 권상우의 사고와 같은 악재까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외적인 조건은 호재보다 악재가 더 컸고, 그에 비해서는 확실히 선전한 셈이다. 일본해 논란의 경우 청연의 쪽박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 권상우와 관련해서도 흥행에 치명적 타격이 될 만큼 매우 불미한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메가톤급 악재였다는 것. 그럼에도 개봉 1개월이 못되어 300만 이상이라는 성적을 거뒀다는 것을 보면 이것이 그렇게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에 대한 비호의적인 여론에 적잖이 영향을 끼쳤고 제작사 측에서도 마음고생이 심했겠지만.
8. 여담
- 전쟁 영화이지만 정작 군부대 내에서는 극중 하극상이 나온다는 이유로 상영을 금지한다고 한다.[21] 단 2012년 경에 실제로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는 훈련병 상대로 단체 관람을 시켜줬다.[22]
- 본 영화와 고지전 이후 애국 색채가 강했던 영화들 제작이 시들해졌고,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도 기획에 들어갔으나 흥행 여부가 불확실해서 무산될 뻔하다가도 배급사와 투자사를 여러 번 교체하며 실제로 제작에 들어간 경우가 있을 만큼 현재 대세인 장르는 아니다. 물론 2012년 비슷한 장르의 R2B: 리턴 투 베이스가 개봉하였지만 진일보한 볼거리에 비해 개연성의 부실함으로 인해 참패하면서 현재 애국 색채의 밀리터리 영화들이 탄력을 잃은 면이 없지 않아 있다.
- 영화 음악은 은행나무 침대, 유령, 퇴마록, 지구를 지켜라, 쉬리, 7번방의 선물, 태극기 휘날리며 등으로 알려진 이동준이 맡았지만 마성의 BGM 항목에도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 음악과 달리 이 영화 음악은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다.
- 차승원은 <포화 속으로> 때문에 KBS 2TV 공부의 신 캐스팅 제의를 거절했다.
- 또한 성우 신경선이 단역으로 학도병 역으로 나왔다고 한다.
- 오장범이 폭발속에서 유유히 걸어나오는 모습이 '쿨가이는 폭발을 보지 않는다'는 밈으로 널리퍼졌다.
- 이 영화에서 3사단장으로 출연한 조원희는 그 이전에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진태, 진석이 소속된 대대의 대대장을 연기했고 인천상륙작전에서는 서울지역사령관을 연기했다.
- 영화의 상영이 모두 매듭지어진 지 한두 달 정도 지나자 연평도 포격 도발사건이 터졌다. 몇 달만 더 끌었거나 반대로 몇 달만 늦춰 개봉했으면 언론에서 연계 보도도 타고 영화 흥행에 이슈 몰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전쟁 영화 개봉에는 6월만큼 적당한 시즌이 없기에 자연스러운 개봉 수순이긴 했지만 어쨌든 관계자들은 쓴 침을 삼켰을 듯.
[1] 70년대 동일한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 같은 신파적인 내용보다는 마초적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영화였다. 당시 한국 육군 장교 역은 신성일. 그리고 실제 전투 기록은 제3보병사단에서 보관 중이다.[2] 연필이나 쥐어봤을 학생들이 총을 쥐고 전투를 벌이는 사태에 대한 심정.[3] 심지어 격발하지도 못한다. 지나가던 다른 아군이 인민군을 쏘아 죽이고 얼빠져 있는 장범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그냥 지나쳐버린다.[4] 실제로 필자가 개봉당시 상영관에 전쟁영화 치고는 여성 관객들이 많았던걸 확인했다.[5] 청룡영화제는 후원사 중 조선일보가 있어서 주최 측 구미에 맞는 선정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내 빅3 영화제 모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 이력까지 얻었다는 것을 보면 청룡영화제만 유독 선정 기준이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룡영화제가 의혹처럼 진짜로 이 영화를 편애했다면 다른 상도 왕창 안겨줬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 외에 감독상이나 기술상과 같은 다른 부문의 상은 일절 주지 않았다.[6] 차승원은 이전에 소방영화인 리베라 메에서 한번 악역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때는 어렸을 때 중범죄를 저질러서 징역 12년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연쇄 방화를 저지르는 방화범 역할로 등장해서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니었다.[7] 실탄 250발은 자동 소총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상당히 많은 휴대량이다. 오늘날 국군도 140발+280발로 보급받는다.[8] 원래는 김일성 전용까지는 아니지만 해군 군관용 하'''근무복'''이 아니면 비해군에선 '''예복'''이다. 즉, 전쟁터 한복판이 아닌 비전투시의 근무나 열병식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것. 그나마 상의는 영화에서의 용도가 고증과 다를지언정 형태는 고증에 맞으나, 흰색 일자바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복식이다. 영화상에서 차승원은 부츠를 착용하고 흰색 일자바지를 입고 있는데, 6.25 당시 좌관급 군관은 부츠를 착용했을 때, 하의로는 군청색 승마바지나 황색 승마바지만을 착용했었다. 그냥 메인빌런이니만큼 차별을 둔 것으로 보인다.[9] 영화에서 차승원이 맡은 박무량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은 실제 김일성이 항일운동 할 때부터 따라다닌 오른팔 오진우였는데 김일성 빽이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10] 대학은 고사하고 고교 진학률조차 매우 낮았던 시절이다. 정규 장교 양성 기관인 육사는 아직 4년제 학제조차 자리 잡기 전이었다. 이 때문에 전쟁 중에 급히 간부 후보생을 징발했는데 고교생 이상은 갑종간부후보생, '''장교 자원으로 분류'''했고 중학교 졸업까지는 을종으로 부사관 자원으로 분류했다.[11] 이 당시 대학생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였다. 당시 일반적인 경우라면 중대내에 대학생 한두명이 고작인데 36명중 10명이 대학생이라면 엄청난 엘리트 집단이다[12] 사실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갑종장교로 소위 임관이 가능했다.[13] 사실 이건 영화의 효과상 그런 것도 있다. 새벽 전투를 하기에는 화면이 받쳐주기 어렵고 70년대 영화도 대낮 전투에 우월한 화력의 북한군이 나왔다. 화력과는 별개로 김일성의 오른팔인 오진우가 연대장을 맡았고 남침 당시 2개독립여단중하나로(105전차여단, 766여단) 운영되었던 점을 보면 단순히 오합지졸의 북한군이 아님을 알 수 있다.[14] 그냥 소년병도 아니고 고등학생인 두 주인공보다 더 어린 초등 저학년 소년병(!!!)이다[15] 배우들의 열혈 팬들이 분포한 젊은 팬덤층에서는 꽤 고평가되는 듯.[16] 내지는 북한의 기습 남침의 부당함.[17] 물론 상영 기간과 별개로 상영관 수는 차츰 줄었다.[18] 그렇다고 소위 진보 쪽이 이 평론을 좋아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전제가 된 남침 유도설이 개드립이기도 하고, 황진미의 영화평이나 평론은 굳이 좌우를 가릴 필요 없이 영화팬들에게 전방위적으로 까이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자기 주관이 매우 뚜렷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영화와 관련 없는 괴이한 개드립(이를테면 라스트 갓파더의 평에 북한과 재벌의 세습을 운운하든지), 과도한 정치 드립과 페미니즘식 해석 등이 심하기 때문. 이 평론은 황진미 개인과 더불어 검토에 소홀했던 한겨레21의 문제도 크다.[19] 이 탓에 지원군이 제때 증원되지 않아 주인공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20] 게다가 이들은 자연히 자신의 커플이나 지인인 남자 관객들을 딸려오게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티켓 파워가 높다.[21] 그것도 간부의 재량일 뿐이지 2010년 추석 때는 모 사단 포병대대에서는 정훈장교가 애들이 심심할거 같아서 틀어준적도 있었다. [22] 물론 이 때도 그놈의 학생 무쌍 장면과 수많은 정규 군국을 상대로 승리한 정예병이라던 북한군이 자살에 가까운 돌격으로(전방 주시도 안한다!) 옥상에 돌입에 총맞고 죽는 개드립 장면 때문에 훈련병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지 못했다. 시체산을 보고 어이가 없어 웃어도 조교가 제지를 안할 정도. 이제와서 금지됐다면 하극상보단 이런 비현실적 면모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