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소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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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폭소클럽 시리즈'''
폭소클럽

폭소클럽2
1. 개요
2. 특징
3. 주목 받았던 코너
4. 몰락


1. 개요


과거에 KBS에서 방영했던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
2002년 11월 1일 ~ 2006년 3월 6일 사이 방영했던 폭소클럽1[1]과 2006년 11월 25일 ~ 2008년 3월 26일 사이 방영했던 폭소클럽2로 구분된다.

2. 특징


개그 콘서트와는 달리 이쪽은 '''성인들을 위한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컨셉으로 방송했던 프로그램이다. 평일 밤에 비교적 늦게 하는 방송이라서 개그콘서트보다는 조금 더 수위가 높았다. 시사개그도 상당히 들어있는 편이었다.[2] 가끔 음담패설이 나왔으며 전반적으로 개그콘서트보다 고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폭소클럽1 중반 이후엔 절반정도는 개그콘서트와 유사한 코너들로 채워졌다. 당시 개그콘서트가 제2의 전성기[3]를 구사하면서 시간관계상 개콘엔 나오지 못한 양질의 잉여 코너들이 폭소 클럽에 나오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아직 풋사과인 공채신인들이 대거 출연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나중에 와선 KBS 코미디의 2부 리그의 성격이 짙어졌다. '''록기앤루키'''라는 이름으로 신인 개그맨이 개그를 하면서 경험 쌓는 무대도 있었을 정도다. 덕분에 웃찾사로 코미디언들이 대거 이적했어도 성공적으로 세대교체를 할 수 있었다. 사실 개콘의 2부 리그라고 해도 당시는 개콘과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기규모 자체가 컸기 때문에 폭소클럽의 인기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폭소클럽이 개콘보다 더 좋다는 마니아층[4]도 있었다. 참고로 이 당시 메인 PD는 다름 아닌 '''서수민'''(!)이었다.
나중에 생긴 개그사냥이 아마추어 리그로 자리하면서 개그사냥 → 폭소클럽 → 개그콘서트의 KBS코미디 테크트리가 생기게 되었다. 실제로 KBS공채 20기, 21기 인원 중 상당수는 개그사냥, 폭소클럽 출신이다. ex) 권재관, 유민상 등.
또다른 특이점은 게스트가 거의 출연하지 않던 당시 개콘에 비해 '''게스트가 빵빵했었다'''라는 점인데, 한참 대선을 목전에 둔 2007년경에는 '''허경영'''이 출연하기도 하였다.관련 기사
KBS 공채나 특채만을 고집하는 개그 콘서트[5]와는 달리 방송국과 경력에 상관없이 많이 등장했다. 그 예로는 신인 양성 프로그램에 몇 차례 출연했던 김진곤, 김완기, 김준현, 조윤호, 이광섭 등이 출연했고 타 방송국 공채 출신인 김구라(SBS), 장동국(SBS), 황봉알(SBS), 정용국(MBC), 김학도(MBC), 화니지니(MBC) 등도 출연했다. 개그맨이 아닌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폭소클럽에 많이 고정출연했는데 장경동(목사), 김홍식(이벤트 MC), 이은결(마술사), 삐에르 곽(신문사 칼럼니스트)[6] 등도 고정출연을 했다.
폭소클럽 방청객들에게 우산을 나눠줬는데 녹화 끝날 때마다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에 맞춰서 홍두깨 선생님이나 쥬라큘 미호크 등의 성우로 유명한 성우 장정진[7]이 '''"폭소클럽 즐거우셨나요? 그럼 우산을 활짝 펴주세요!"'''라고 말하고 방청객들이 이에 따라 우산을 활짝 펼치는 모습이 이색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다. 모두 우산을 펼쳤으면 장정진이 여러분들의 일상도 이렇게 펴질 거라 말하고 그 사이 출연진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며 개인기를 선보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하지만 장정진이 다른 예능 프로그램 녹화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서 세상을 떠났고 폭소클럽에서는 생전에 녹음된 목소리가 엔딩에 나왔으며 그 목소리에 모든 출연진들이 검은 양복을 입은 채 무대 위로 올라와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안타까운 건 2주 뒤가 폭소클럽 100회 특집이었다고... 장정진 사후 폭소클럽의 성우 겸 얼굴없는 진행자 역할은 김영민이 맡았다.[8][9]
폭소클럽만의 마무리 인사는 폭소클럽2에서도 계승이 되는데 이원준이 우산을 펴달라고 말하면 방청객들이 우산을 펼쳤다. 여담이지만 이원준 역시 장정진처럼 코너 곳곳에 목소리로 출연했는데 유민상의 '''대변인''' 코너에서는 유민상에게 질문을 던지며 신경전을 벌이는 기자 목소리로 출연. 이때 유민상은 싱크로 쩌는 이원준 성대모사를 선보였다.

3. 주목 받았던 코너


맨 처음에 나왔던 화니지니&미니-오승환, 최현진, 김영민[10], 이은결이 방송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던 '매직투나잇', 폭소클럽에서 제일 처음에 했던 박준형의 '게스트클럽', 홍록기의 '록기&루키', 서남용[11]의 사물개그, 정철규가 외국인 노동자 블랑카 역으로 나왔던 '블랑카(폭소클럽)의 뭡니까 이게', 김제동의 스탠딩개그가 제대로 발휘되었던 '대중 앞에 서는 법', 유기정의 '스마일맨', 유민상이 나와서 멸종된 '마른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하는 '마른인간연구 엑스파일', 강유미, 안영미가 나와 개그 콘서트Go! Go! 예술속으로의 전신이 된 와우 신선한데요, 그리고 유상무/장동민/홍경준이 나오는 개그콘서트 성공시대의 전신격 코너인 '3,6,9' 및 장경동 목사가 출연한 분필소리, 스탠드업 코리아, 김구라가 진행한 '뉴스&구라', 최양락의 '올드보이', 최형만의 도올 김용옥 선생을 패러디한 '돌강의' 등이 있었다.

4. 몰락


시청률개콘에 비하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재미는 꽤 있었기에 고정팬들은 꽤 있었던 프로였다. 실제로 당시 나왔던 몇몇은 현재 개그 콘서트에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고 또 개콘에 나왔던 코너들에 모티브가 되기도 한 프로도 있었다. 하지만 개그 콘서트의 2부리그적 성격이 강했던 프로그램인지라 개그 콘서트가 차차 하락하기 시작하자 (폭소클럽도) 동반 하락. 더불어서 폭소클럽의 재원들이 개콘에서 활약하면서 점점 하향세를 탔고, 결국 개편의 폭풍에 휘말려서 폭소클럽1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여담이지만 폭소클럽이 거의 끝물에 이르렀을 때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스마일 매니아 대표 박승대가 폭소클럽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며 스마일 매니아 소속 개그맨 지망생들을 투입시켰는데 그 라인업이 오늘날 보면 어마어마하기 짝이 없었다. 오인택, 양세찬, 김영, 남호연, 예재형, 이상준 등 이미 웃찾사에 출연하거나 훗날 웃찾사에 출연할 개그맨들이 등장했다. 이 당시 박승대와는 상관없이 훗날 SBS 9기에 합격할 김진곤과 임준빈도 폭소클럽에 출연했다.
폐지된 뒤 8개월 만에 폭소클럽2로 부활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바람.

[1] 따로 1이라는 숫자는 붙지 않지만, 폭소클럽2와 구분하기 위해 1을 붙인다.[2] 17대 대선 기간 때는 당시 대통령 후보들을 코스프레하고 나오는 코너도 나왔다.[3] 2003년에 시청률 35%를 넘기면서 예능 시청률 역대 1위를 기록했다.[4] 기본 컨셉이었던 성인 대상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호하는 시청자층. 나중에 박성호 등이 출연하면서 컨셉이 완전히 바뀌자 게시판은 이들의 항의로 아주 난리도 아니었었다.[5] 다만 개콘에서도 공채나 특채가 아닌 개그맨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있었다. 김진철, 김병달, 송준근, 이승윤 등은 KBS 공채 개그맨이 되기 전에 개콘에 고정 출연한 적이 있었다.[6] '''SBS 진실게임에서 레전드 에피소드를 남긴 그 삐에르 곽 맞는다.'''[7] 폭소클럽 코너 곳곳에 목소리로 참여하며 일명 '''얼굴없는 진행자'''라고 불렸다.[8] 김영민은 이전에 SBS '생방송 TV 가요 20'에서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장정진 전임으로 노래 소개 멘트를 담당하기도 했다.[9] 김영민도 2020년 별세하였다.[10] 참고로, 후에 감수성내시로 어느 틈 사이에 멤버로 합류를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2004년 9월에는 추석 특집으로 MC를 보기도 했다.[11] 이를 발판으로 2003년, 공채 개그맨이 됐지만 정작 활동은 점점 축소되어 이제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