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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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으로 KBS 공채 18기.[2]
1979년 3월 27일생, 경찰 아버지 밑에서 1남 2녀 중 셋째, 막내 외아들로 컸다.
2005년에 있었던 후배 기합/폭행 사건의 장본인으로 이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개그계에서 군기라는 미명 하에 암암리에 자행된 범죄들이 표면화되었다.
2. 활동
처음 데뷔했을 때는 공채가 아니었다. 김병달, 김기운과 함께 갈갈이패밀리 극단에서 타이즈와 쫄쫄이를 진행하던 중 심현섭, 강성범, 김준호 등 스타밸리 사단이 이탈해서 개콘에 위기가 오자 공채가 아닌 상태로 선발되어 개콘 데뷔. 코너가 끝날 무렵 김병달과 함께 18기로 데뷔를 했다.[3] 다만 김기운은 낙방 후 개그계를 떠났다.
공채로 뽑힌 이후에는 역사스페셜이나 다른 코너에 출연했었으며 , 안상태와 함께 한 코너인 깜빡 홈쇼핑이 대박을 치며 스타덤에 오른다. 데뷔 직후인 2004년까지만 해도 당시 25세의 나이로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 코너의 깜빡이, A YO!의 MC 깜빡, 깜빡 홈쇼핑 코너의 김깜빡 등의 코너가 유명해지며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깜빡밖에 없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지금이든 당시든 유행어/코너/캐릭터를 하나라도 만드는 게 개그맨으로서는 큰 성공이었으며, 본인도 이 코너로 전국적인 인기를 얻어 안상태와 함께 CF까지 찍었었으니 말 다했다. 폭소클럽에서도 해병대 교관으로 대활약, KBS 18기 중에서 제일 잘 나갔던 개그맨이었다.[4]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3. 사건/사고
3.1. 폭행 사건
2005년 5월, 후배 개그맨[5] 인 김지환의 허리를 각목으로 폭행한 사실이 알려져 구속되어 수감되었다. 게다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고''', 이미 그보다 1개월 전인 4월 초에 '''분장실에서''' 김지환의 동기 9명이 보는 가운데 "'''선배 대접이 건방지다!'''"며 마대자루로 5차례나 폭행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일각에서는 김지환 폭행사건이 알려지려고 하자 보복성으로 20기 개그맨 전체에게 원산폭격을 시킨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김진철에게 맞아 뇌진탕 증세를 보인 김지환은 김진철의 가족들에게 합의금은 물론 치료비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6] 김진철 가족의 간곡한 설득으로 치료비만 받기로 했다는 대인군자적인 풍모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방송에 나와 눈물을 흘리면서 공개적으로 김지환에게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합의서 전문.
이 과정에서 2005년 5월 4일, 녹화가 끝난 직후 KBS 개그맨 공채 20기[7] 중 14명을 연구동 옥상으로 불러내 원산폭격을 시켰다는 진술도 확보했는데, # 이 공채 20기는 구옥분, 김선하, 김재욱, 김지환, 김진, 노우진, 박휘순, 변승윤, 신고은, 신봉선, 유민상, 이동윤, 이상구, 정경미, 조지훈 등 전부 15명이며, 이들 중 단 1명인 신봉선[8] 을 빼고, 그것도 '''방금 막 방청객들 앞에서 공연을 끝낸 직후에''' 김진철의 명령으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뻗쳐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밖으로 드러난 것만 이 정도니 실상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9] 이러면서 타인에게 웃음을 파는 개그맨이라니 이건 뭐...갑: 김지환 을: 김진철
위 갑은 을로부터 전치 6주 상당의 폭행을 당했으나, 갑이 을의 가족으로부터 백배의 사죄를 받고 을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본인도 공인으로서 일정 부분의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체의 위자료 없이 을의 처벌을 원치 않아 본 합의서를 작성합니다.
2005년 5월 12일 김지환
그가 일으킨 후배 폭행 사건은, 유난히 현실은 시궁창 사례가 많은 개그콘서트 출신 혹은 소속 개그맨들 중에서도 단연 최악의 사건이였다고 손꼽을 만하다. 실제로 김진철보다도 군기가 더 빡센 선배들도 하물며 큰 폭행 사건은 안 일으켰다. 이런 와중에 '''"나도 선배에게 맞으면서 컸다."'''는 변명 아닌 변명이나 했으니...[10] 여기에 대한 '개그계의 군기 관행' 내용은 군기 문서를 참조하자.
당시 기사이다. 신인 때 본인도 선배에게 맞았다는 건 사실이고[11] "개인적 감정으로 체벌을 한 건 아니고, 동기 중에 남자가 3명뿐이라[12] 같이 군기를 잡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해 내가 혼자 나섰다"는 말을 했는데, 변명일 확률이 높은 게 상해를 입힌 게 두 번 다 김지환이었고, 18기 중 김진철 이상으로 악명높았던 '''류담'''이 있었으니...[13]
이 사건 당시, 대선배 심현섭[14] 도 나서서 후배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개그맨 특유의 끈끈한 유대관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고 일침을 놓았다. 실제로 심현섭은 '''가장 군기를 잡지 않는 개그맨에 속했고''', 이미 심현섭 세대만 해도 이런 똥군기는 오래전 1980년대의 선배들의 무용담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로 '''구세대의 악습''' 정도로 치부되는 상황이었다는 것.[15] 여기에 따르면 김진철은 이러한 범행을 저질러 이미 사그러져가던 악습을 되살리고 몸소 주도했다는 것이 된다. 물론, 실제로 그전에 똥군기가 사라졌었는지는 별론이라고 치더라도 그 시절을 몸소 경험한 심현섭조차 김진철에게 경악할 정도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김지환이 합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풀려났지만, 이후 방송가에서는 매장되었고, 웃기지도 않은 인간으로나 전락해버렸다. 이 때문에 KBS 2TV 개그콘서트 게시판에 가 보면 김진철의 개그가 웃기다는 반응보다는 오히려 아직도 저런 인간 쓰레기가 왜 나오냐는 반응이 많다. 10년 넘게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 김진철이 오성과 한음으로 복귀하자 후배 때려서 배역을 받아냈느냐는 비아냥도 있었고 유상무의 병문안을 왔을 때나 개콘 1000회 때 왜 나왔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3.1.1. 후배들의 구제?
똥군기 사건을 일으킨 것과는 별개로 그가 구속되자 많은 사람들이 발벗고 나섰다고 하며 사건 이후 김진철을 옹호하고 감싼 사람들도 있었다. 깜빡 홈쇼핑을 같이 한 안상태는 "좋은 친구였는데 안타깝다"라는 말을 했으며[16] , 안영미도 좋은 선배였는데 빨리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영자 역시 후배들과 정이 많아서 생긴 일이라는 인지부조화성 말로 김진철을 옹호했다. 더 심한 선배들이 많은데, 하필 김진철이 터졌다는 반응. 게다가 시청자들도 처음 일이 터질 때 김진철이 저랬을 리 없다며[17] 옹호하기도 했으며 되려 김지환을 욕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2015년경 19기[18] 개그맨 김대범의 방송 내용. 김진철이 나와 같이 썰을 풀었는데 김대범이 말하길 "김진철은 후배를 상습적으로 집합하고 구타하는 사람이 아니며 실제로 구타와 똥군기를 행하고 강조한 선배는 정글에 있다, 게다가 현장에 있었던 후배 개그맨들조차 방송보도가 왜곡된 감이 있어 아예 탄원서를 제출해 김진철을 구제하려고 했다"는 말을 했다. 심지어 피해자인 김지환도 군기를 잡은 사건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다만, 김진철의 폭행 자체는 옹호하지 않고 사적인 감정 때문에 폭행했다고 서술했다.
실제로 아래에 나오지만 사건을 일으킨 것 치고는 동기들끼리 사이가 매우 좋고 아예 오지헌 등 다른 개그맨이 김진철을 돕기까지 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군대에서도 고참급이 병영부조리 혐의에 연루되면 기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고참 라인들끼리 뭉치는 건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후배 기수에게 통제를 걸고 얼차려를 하는 등 군대 수준의 부조리가 있는 개콘이라면 선배 기수들끼리 '제 식구 감싸기'를 하는 것이 그리 이례적인 일까지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김진철은 평범한 수준의 인간성을 가졌고 인간관계도 원만하지만 폭력적인 부조리에 찌들어 폭력 고참이 되어버린, 군필 남성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일 것으로 예상된다.[19][20]
사건이 끝난 이후 피해자 김지환과는 체육대회에서 다정하게 시간을 보냈으며[21] , 또 다른 20기 피해자인 신고은과는 폭소클럽2에서 코너를 함께 했고 김진과는 함께 외국에 나가서 스케줄을 진행했다. 수많은 동료가 그의 이미지가 떨어지는 걸 막으려고 했지만 어쨌든 원산폭격이나 상해를 일으킨 건 변함없기에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진철하면 폭행 이미지로 굳혀졌다.
3.2. 사건 이후의 방송 활동
사건 1년 뒤인 2006년 4월에 뻐꾸기 위원회라는 코너에서 김아롱 장관이라는 캐릭터를 들고 복귀했지만 함께 개그한 박휘순[22] 과 윤형빈까지 뻘쭘하게 만들면서 시망했고 그해 말 봉숭아 학당에 복귀, 혼자 책상 위에 엎드려서 뭔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다가 '''"깜짝 놀랐네~"'''라는 대사와 함께 얼굴을 드러내는. '''깜짝이'''로 등장해서 뭐든지 깜짝 놀라는 개그(?)를 선보였다. 첫 등장 때는 당시 개콘에서 하차한 어벙이를 찾는다는 드립을 쳤다. 김진철의 등장, 안상태의 언급으로 첫 당시에는 환호가 쏟아졌지만[23] 몇 회 되지 않아서 새로운 PD가 봉숭아 학당 코너를 종영해버리면서 자연히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그러다 봉숭아 학당이 부활한 2008년 4월에 다시 나사 풀린 캐릭터를 들고 복귀, 나사빠진 캐릭터로 복귀했으나 다음부터는 역시나 반응이 없어서 도태되었다.
이 처지를 반영해서인지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스피드 고고'라는 코너 속 코너인 '작전타임'과 '24초'에선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자신 나름대로 죄책감 표현의 일환이었는지도? 하지만, 여기서도 별로 웃기지 못했다.[24] 아이디어를 누가 짰는지와는 별개로 개그 형식이 츳코미 타입으로 틀에 박힌 것과 과거 '스피드 고고' 때 저평가를 받은 것에서 보이듯 '중추적 역할' 을 맡으면서도 코너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은 실드를 쳐주기 어렵다.[25]
2010년에는 슈퍼스타 KBS 코너에서 박진영 캐릭터를 들고 다시 컴백[26] 했지만 박진영과의 싱크로를 제외하면 그저 심사위원석에 앉아있을 뿐 코너에 존재할 이유가 없는 병풍 역할이었다. 본인도 그걸 인지했는지, 전신 비닐옷이라든가 떡을 좋아하는 기믹으로 갔지만 결고 오래 버티지 못하고 스리슬쩍 사라졌다.[27]
이후 신 코너 엑스트라에서는 PD 캐릭터를 맡았지만, 레디 액션과 엑스트라들에게 짜증내는 거 말고는 하는 게 별로 없었다. 게다가 그건 전술한 코미디쇼 희희낙락의 '작전타임'에서 맡았던 농구단 코치를 그대로 가져온 기믹이며 토요일 밤 방영하는 개그스타에서도 PD에서 교사, 그리고 매니저로 배역만 바뀌었을 뿐 하는 개그가 발전하는 것도 없이 진짜 똑같으니 이젠 아예 정체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개그콘서트 쪽엔 거의 얼굴도 못 내밀었고, KBS 2TV에서 토요일 밤에 하는 아마추어 개그[28] 프로그램 개그스타 시즌 2에서 이봉원 홀의 도개걸스에서 여장남자 발레리노들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으며 여기에서도 기존의 역할에서 '''전혀 발전없이''' 멤버들에게 짜증만 내는 츳코미 역할만 계속 밀어붙이고 있었다.
2011년 7월 10일자로 개그콘서트 601회자에 코너 앗싸스쿨에 선생님 역으로 복귀했으나, 그 다음주 방영분부터 나오지 않았다. 이 사람하고 코너를 진행하면 1주 만에 잘리는 징크스라도 생긴 모양이다.
2012년 1월 8일자 팀명 징크스의 감독 역으로 복귀했다. 1주 만에 잘리는 것은 피했지만 역시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설 특집 프로그램인 '개그 월드컵'의 16강전에서 후배 3명과 함께 참전했지만, '''매우 더러운 개그'''(인간 분수)를 선보여 경고를 맞았고 이후 이어진 상대편 공격에 넉다운. 근데 이때에 분명히 한때 전성기였던 '깜빡이' 캐릭터를 언급했지만 기억을 못 하는 모습을 보여 진짜 깜빡이가 되었다...
1대 100 264회 방송분인 개그콘서트 특집에서 100인으로 참가했으며, 방송이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방송에서 보인 바로는 개그맨들과 별탈 없이 잘 지내는 듯하다. 인터뷰에 따르면 서수민 PD가 온 뒤로부터는 오랫동안 놀아서 걸어다니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책도 읽으면서 많이 유식해졌다고 밝혔으며 서수민 PD의 자식들이 개그맨을 하고 싶다고 하자 본인 자식은 PD를 시킬 거라고...
이후 그는 갑을컴퍼니라는 코너로 복귀했다. # 그리고 타 코너들과는 달리 마지막 회였던 2013년 3월 10일까지 쭉 갔다.
2013년 5월 12일에 이혜석(21기 개그맨), 곽범과 함께 오성과 한음이라는 코너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전까지 주야장천 보여줬던 잔소리만하는 캐릭이 아닌 백수#s-1 역할로 변신을 시도함으로써 데뷔 후 거의 9년 만에야 그나마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두 명의 힘없는 백수의 대화 & 끝없는 캐치볼이 주 내용이다. 다만 츳코미 요소만 없앴다 뿐이지, 찌질이라는 컨셉 자체는 이전에도 자주 내보인 바 있는 컨셉이다. 이 코너 역시 갑을컴퍼니만큼 제법 장수했으며, 2013년 11월 24일까지 6개월이나 갔다.
2013년 9월 8일부터 2013년 10월 27일까지는 세 명 중 이혜석과 함께 엔젤스로도 오성과 한음 것과 똑같은 복장으로 활동했으며 그가 개그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활동한 코너다.
4. 현재 근황
- 개그활동을 쉬고 결혼식장 등을 비롯한 행사를 뛰고 있으며 2015년 12월 말 서울 관악구 대학동에 쌀국수집을 오픈했는데, 기존 베트남 쌀국수집 바로 맞은편(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이어서 상도에 어긋나지 않느냐의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현재는 꽈배기 파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 2016년 5월 중순 고양시 웨스턴돔에서 이조원과 선후배쇼라는 타이틀을 걸고 유재석이 아끼는 후배라고 조그맣게 써있는 명함을 나눠주면서 호객을 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 고양시 뉴코아아울렛의 소극장에서 개그공연을 진행 중이다.
- 종종 18기 모임에서 그의 모습이 자주 발견되며[29] 의외로 동기들하고는 사이가 좋은 것으로 보인다.[30] 사실 김진철이 후배 폭행 사건을 일으킨 후 하락세를 걸을 때도 동기들이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한 동기는 아예 자기 개그맨 활동까지 접으면서 김진철을 도와주려고 했다고.[31]
- 동기는 아니지만 신인 시절에 자신이 따르던 형 김기운이 결혼식을 올리자 참석했다. 김기운은 타이즈와 쫄쫄이 이후로 개그계를 떠났지만 김진철은 그를 잊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대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형, 자기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착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 2018년 8월 홍대 코미디위크에서 갈갈이 패밀리가 다시 뭉치자 한때 타이즈와 쫄쫄이를 진행하던 본인도 역시 출연했다. 다만, 김기운과 김병달은 같이 등장하지 않았으며 아예 타쫄 자체를 선보이지 않았다. 2018년 11월 이화여대에서 공연할 갈갈이 패밀리 2018에서도 다시 한 번 출연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이번에는 타이즈와 쫄쫄이도 진행 순서에 있으며, 김병헌과 김기운 대신 오지헌과 김인석이 출연했다.
- 2018년 중반부터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지만 밑바닥 치는 조회 수에다가 조회 수에 비해 넘쳐나는 악플들 때문에 결국 몇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활동을 중단했다.
- 1000회 특집에서 안상태와 깜빡 홈쇼핑으로 간만에 출연했다.
5. 그 외
2010년 9월 4일에 4년 연하의 커플매니저 김현정과 결혼했다. 2009년 10월에 MC로 참여한 행사장에서 눈이 맞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고. 이후 2019년 이혼했다.
개그콘서트 공식 홈페이지의 개그맨 명단에서는 여전히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해당 링크. 복귀 이후 개그콘서트 코너인 '엑스트라', '슈퍼스타 KBS'에 출연할 당시에도 이 링크 명단에 없었다. 27기 공채 업데이트 이후 명단 부진 탓을 할 수도 있겠으나, 사건 직후부터 27기 공채 시점까지 계속 무대에 얼굴을 내보이는 동안에도 이 명단에선 쭉 제명당해 있었다. 즉, 방송사 입장에서도 그의 존재는 잠정적인 흑역사.
세월이 약인지 망각이 독인지, 재미없다고 욕은 먹을지언정 후배들 기합 폭행 거론은 줄어든 편이다. 동시에 그의 전성시절 개그(김깜빡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로 거의 잊혀져 점차적으로 개콘에서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다.
현재도 폭행 사건이 완전히 잊혀진 건 아니라서 김진철이 나오는 유튜브 동영상에 그를 조롱하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32]
샘 해밍턴을 개그콘서트 특채로 추천했던 인물이다.
상대가 다를 뿐이지 후배 신종령도 똑같이 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밝혀져서 개그계의 흑역사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참고로 신종령은 만취한 상태로 폭력을 두 번이나, 그것도 행인/기절한 사람을 상대로 저질렀다는 점에서 김진철보다 더한 흑역사가 되었다.
감수성의 내시로 유명한 김영민도 김진철의 팬이었다고 한다. 2005년 김영민이 KBS 개그맨 시험에 응시했다가 김진철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후 둘은 친해져서 김진철은 자신의 팬카페에 김영민의 공연을 홍보해준 적이 있다. 이때 낙방하고 김영민은 3년 뒤 특채로 개콘에 데뷔했다. 만약 2005년에 합격했다면 김영민도 김진철의 똥군기 및 폭행에 휘말렸을 수도 있는 일.
[1] 2019년 이혼.[2] 동기로 강주희, 류담, 서남용, 오지헌, 이수근(특채), 장동혁 등이 있다.[3] 이후 깜빡이 캐릭터를 맡느라 부각은 되지 않지만 타쫄 당시에는 슬랩스틱 실력도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릿지, 물구나무, 뒤구르기, 가로본능, 핸드스프링 등 여러 동작을 동원해서 글씨를 만들었다.[4] 서남용은 폭소클럽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개콘에서는 크게 히트한 코너가 없었고, 김병달은 타이즈와 쫄쫄이 이후 바람잡이로 활약할 뿐 다른 코너를 맡지 못하다가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 번쩍했다. 하지영은 일찍이 개콘을 떠나 리포터로 전업했고, 이동혁은 아예 출연이 없었다. 류담/장동혁/강주희/채경선/는 달인 진행자/노마진 캐릭터/트로트 가수/옹알스로 나중에야 빛을 봤고, 그나마 꽃보다 아름다워로 인기를 얻은 오지헌이 있었지만 김진철보다 인기가 한 수 아래였었다. 이수근은 특채라 당시에 아예 없었다.[5] 나이는 김지환이 서너 살 위지만, 이 사건 이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동갑으로 나온다. 정확한 정보는 불명이지만 김진철 본인이 팬카페에 실토하기를 '''형'''을 때렸다고 한다. 그러나 기수제 특성상 실제 나이를 반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지환도 KBS 입사가 늦었을 뿐 아주 젊은 시절부터 코미디언 일을 해온 사람이라서 KBS 기수로만 김진철이 앞설 뿐 순수히 코미디언 경력으로만 따지면 또 김지환이 위라는 말이 있다.[6] 합의 자체를 거부했다는 것을 보면, 심하게 화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7] 20기 특채들인 변기수, 윤형빈, 이종훈 등은 제외. 그런데 사실 이런 집합에서 특채는 열외하는 경우가 많다. 공/특채를 칼같이 따져서 그런 것보다는 특채의 경우 족보가 꼬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저 셋 중에 변기수만 해도 KBS 20기 특채이기 전에 SBS 공채 7기로 이미 2년 전에 방송 데뷔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13기인 김현기는 특채인 최국도 집합에 포함시켰다고.[8] 신봉선은 당시 병을 앓고 있어서 김진철이 얼차려에서 열외를 시켰다.[9] 20기 멤버들은 2005년에 확정되었으며, 김진철은 2003년 뽑힌 18기.[10] 굳이 배경을 설명하자면 개그계는 상하간의 규율이 군대와 체대에 버금가게 엄격해서, 조금만 트집이 잡혀도 단체로 나가서 구르고 맞는 일이 많긴 했었다고... 이후로는 많이 줄어든 듯. 하지만 설령 그런 사실을 참작하더라도 악습을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오히려 거기에 제대로 일조했다는 점에서는 결코 용납이 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똥군기의 대표적인 피해자인 유재석은 최고의 MC 자리에 오른 것도 그렇지만 김진철처럼 군기잡기는 않고 후배들에게 잘 해 줘서 후배 개그맨들 사이에서도 크게 존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신동엽도 선배들의 괴롭힘이 싫어서 MC계로 나갔고, 유세윤도 그런 부조리를 싫어해서 개그계를 나갔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김진철이 데뷔하던 당시의 개그콘서트의 초대 에이스인 심현섭 시절에도 심현섭은 군기를 잘 안 잡았다고 하는데...[11] 18기 바로 위의 17기 군기반장이 '''정형돈과 김병만'''이다. 김진철처럼 상해는 안 입힐지언정 이 둘도 꽤나 후배들을 때렸을 확률이 높다.[12] 전체 18기 남자 개그맨만 해도 오지헌, 서남용, 류담, 이수근, 장동혁, 채경선이 있다. 착각인지 당시 활동하던 남자 개그맨이 김진철 포함 4명뿐인지 불명.[13] 허나 당시 활동 동기에 오지헌, 장동혁, 이수근이 있고 희극인실에서 활동이 뜸한 편인 서남용, 이동혁, 채경선 등을 제외한 상태에서 군기반장 류담이 없게 되면 자연스레 김진철이 총대를 멨다는 그림이 그려진다.[14] 당시 심현섭은 스타밸리 소속 단체 이적사태 이후로 슬럼프를 겪고 있던 시기였다.[15] 일설에 따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경규가 개그계의 이른바 똥군기 문화를 극도로 혐오해서 실제로 한국 개그계에서의 똥군기가 한동안 근절됐었다가 어느 시점에 다시 부활했다고 한다. (MBC 희극인실에서 벌어진 일련의 폭행 사건들을 근거로 이경규의 의중도 허사였다는 말이 있으나, 사실 당시 MBC 희극인실의 경우는 전체 분위기와는 별개로 홍기훈 자체가 대인관계에 심한 문제가 있었다. 홍기훈은 후배들 뿐 아니라 본인보다 한참 선배인 이경실, 이재포와도 트러블을 일으켜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 이 얘기가 개그계 밖으로도 퍼진 이후 똥군기 악습을 되살렸을 인간으로 여러 이름들이 거론됐으나.... 사실 현재로서는 2000년대 초 개그맨들끼리 모여 소속사를 꾸리는 문화가 생겨나면서 또다시 유발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16] 안상태가 1년 후배지만 나이는 1살 더 많다.[17] 인기도 인기거니와 당시 이미지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18] 한 기수 후배인 19기와는 사이가 매우 좋은 것으로 보인다. 19기들과 함께 여러 개의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고, 유상무가 투병 중일 때는 김대범, 안상태와 함께 병문안을 왔다. 안상태의 SNS를 보면 서로를 부를 때 격식없이 부르는 듯하다. 김대범은 다른 방송에서 사건의 피해자인 김지환이 소극장에서 텃세 부린 일화도 말했다.[19] 곽한구의 경우에도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힘내라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었고, 빨간 줄이 그어진 후에도 함께 다니며 일하는 이들도 있다. 양원경처럼 기본적인 인성 자체가 바닥이면 동료들조차 외면한다. 게다가 양원경은 김진철과는 달리 서로 으쌰으쌰할 동기까지 무시하고 폭행하는 등 본인이 동료들의 외면을 받을 행동을 했다.[20] 비슷한 케이스로는 박승대가 있을 것이다. 박준형과 임혁필을 비롯한 갈갈이 패밀리와 좋지 않게 결별하고, 자신의 회사에 소속된 SBS 7기에게 온갖 착취와 억압을 했으며, 코미디 프로그램에 영향력을 가하며 정일진과 최성민 등 출연 개그맨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다는 게 만천하에 알려지며 안티도 많고 그를 증오하는 개그맨도 많다. 하지만 박준형이나 윤택은 화해 후 박승대와 자주 만남을 가지며, 이진호, 양세형, 이상준처럼 박승대의 애제자를 자칭하는 개그맨도 있는 편이다. 뱀발을 덧붙이자면 김진철은 이 박승대의 극단에 있었다.[21] 다만 여러 동료들의 시선, 기자들의 카메라가 있던 상황이라 김지환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22] 박휘순은 김지환과 함께 김진철에게 당한 피해자였다.[23] 이때에도 안상태의 후광을 빌려 필사적인 김깜빡 기믹으로 처절하게 굴었다.[24] 코미디쇼 희희낙락은 게스트 개그맨들이 저마다의 코너를 평가하는 제도가 있었으며 그의 코너는 늘 하위권이었다.[25] 박성호 문서의 각주에서 보이다시피 개그맨은 크게 네 종류가 있다. 개그맨 구실을 하려면 아이디어고 살리는 능력이고 하나는 필요하다는 소리다.[26] 사실 2003년 신인시절 때부터 김진철이 자랑하던 아이템이었다. 2004년 진행된 김병만의 역사스페셜에서도 박진영 패러디를 보였다.[27] 사실 심사위원석에 앉는 대부분이 그랬기 때문에 어느순간 부터는 이 심사위원의 등장 자체를 생략시키고 노래개그만 하게되었다. 그것을 감안해도 김진철은 이 들 중에서도 나머지처럼 성대모사를 한것이 아닌 단순히 닮은꼴로만 나온지라 가장 병풍역할이 심했다. 김진철이 사라진 이 후에도 성대모사 없이 그냥 닮은꼴로만 나온 역할들은 얼마 못가 짤려버리거나 성대모사가 가능한 역할로 바꿔나왔다.[28] 일부 선배급을 제외하면 공채 개그맨들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 맞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아마추어 속 숨은 진주의 선발이기 때문이다.[29] 왼쪽부터 장동혁, 김병달, 채경선, 오지헌, 강주희, 김진철, 이동혁, 서남용...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류담, 하지영, 이수근 등은 스케줄 때문에 바빠서 참석을 하지 못한 걸로 보인다.[30] 김진철 본인도 동기들과 함께 했던 코너가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31] 그 동기가 결혼할 때 김진철이 사회를 맡았다.[32] 그랬는데 그 조롱하는 댓글들이 달린 영상은 어느 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