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코 후지오 A

 

후지코 F. 후지오
후지코 후지오 A
''' 후지코 후지오 Ⓐ'''
''' 藤子 不二雄 Ⓐ |Fujiko Fujio Ⓐ '''
'''필명'''
후지코 후지오 A (藤子 不二雄 A(ふじこ・ふじお・エー)
'''본명'''
아비코 모토오 (安孫子 素雄(あびこ もとお)
'''국적'''
일본 [image]
'''출생'''
1934년 3월 10일 (90세)
일본 제국 도야마현 히미시[1]
'''직업'''
만화가, 작가
'''수훈'''
욱일소수장[2]
'''서명'''
[im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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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토야마현립 타카오카공예고등학교 졸업
'''데뷔'''
천사의 타마짱 (1951년)
'''주요 장르'''
일상물, 코믹, 공포
'''혈액형'''
A형
'''좌우명'''
내일로 미룰 수 있는 걸 오늘 하지 마라.
'''활동 기간'''
1951년 – 현재

1. 개요
2. 생애
3. 작품 목록
4. 여담
5. 수상경력
6. 틀 둘러보기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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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일본의 원로 만화가. 1951년 후지코 F. 후지오와 같이 마이니치 소학 신문에 투고한 천사의 타마짱이 채택되어 연재되면서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2. 생애


1934년 3월 10일 출생한 일본만화가로, 본명은 아비코 모토오. 후지모토 히로시(후지코 F. 후지오)와 함께 후지코 후지오로 콤비를 짜서 많은 만화들을 발표하였다.
도야마현 히미(氷見) 시[4]에 위치한 고젠지(光禅寺)[5]란 절에서 주지 승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타카오카시로 이사해 조즈카 소학교에서 후지모토 히로시(이하 F)를 만났다. 그 무렵 데즈카 오사무신 보물섬를 읽고 F와 함께 만화가를 지망하기 시작했고, 고등학생 때 마이니치 소학 신문에 '천사의 타마짱'을 연재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하였다. 졸업 후엔 큰아버지가 전무를 맡고 있었던 지역 신문사에 일하기도 했으나 F가 그를 찾아 초대하면서 자연스레 신문사를 퇴직했다.[6] F와 함께 도쿄로 이동했지만, 샐러리맨 경력으로 인해 여전히 신문사에 미련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F의 권유를 자신의 어머니와 상의해 결정하려고 했었으나, 예상외로 어머니는 '좋아하는 걸 하렴'이라고 말하고 고민한 끝에 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이후 토키와 장에서 이사하여 스튜디오 제로에 근무하면서 만화를 잡지로 연재하게 되었으며, 자세히 보면 F와 A가 합작으로 그린 만화는 요괴 Q타로가 마지막이다. 그 뒤론 후지코 후지오로 공동 필명을 사용하는 동시에 단독 만화를 연재해서 발표하였다. 콤비 해체 후론 후지코 후지오 A로 필명을 변경해 활동 중이며, 초창기엔 F와 마찬가지로 아동 만화들을 주로 그렸으나 오컬트, 마작, 도박 등을 중점으로 다루는 만화를 그리면서 주제를 늘려나갔고, 1960년대 후기부턴 웃는 세일즈맨 같은 성인만화도 연재하기 시작했다.

3. 작품 목록


  • 닌자 핫토리군
  • 괴물군
  • 프로 골퍼 사루- 1974년 ~ 1980년, 1982년 ~ 1988년('신 프로 골퍼 사루'로 연재함.)까지 소년 선데이, 코로코로 코믹에 연재한 골프 만화.
  • 마타로가 온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소년 챔피언에 연재했다.
  • 웃는 세일즈맨
  • 만화의 길- 원제는 만화도로, 1970년 ~ 1972년, 1977년 ~ 1982년, 1986년 ~ 1988년까지 연재한 자서전 만화. F와 A 자신을 모티브로 한 망가 미치오와 오노 시게루가 등장하며, NHK에서 2차례에 걸쳐 드라마화됐다. 이후 속편이 빅 코믹에서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연재되었다.
  • 요괴 Q타로- 후지코 F. 후지오와의 공동 작품. 초기엔 이시노모리 쇼타로, 츠노다 지로, 아카츠카 후지오도 협력하여 그린 적이 있었다.
  • 울트라B
  • 소년 시대 - 카시 헤이조의 '먼 길'을 만화화한 작품.

4. 여담


  •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나갔으며, 토키와 장에서 입주했을 때에는 단행본화되기도 했다. 그런 영향이 만화의 길 등의 작품에도 나타나 있다. 그 외에 존경하는 만화가는?이란 질문엔 반드시 '데즈카 선생님과 후지모토 군(후지코 F. 후지오)입니다'로 답했다. 특히 친구였었던 F와의 구상은 누구보다도 의욕이 강했으며 이 일들이 있을 때마다 "후지모토 군은 천재다.", "그가 없었다면 나는 만화가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로 인터뷰에서 말했다.
  • 후지코 후지오 A는 자신의 작품들이 파칭코·파치 슬로화되는 것을 제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2010년대까지 대표작인 닌자 핫토리군, 괴물군, 프로 골퍼 사루, 웃는 세일즈맨이 파칭코·파치 슬로화되었다. F의 작품들은 모에파치가 한 작품도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일종의 설정놀이로 후지코 후지오 A는 자신의 캐릭터들을 작품마다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 몇명만 꼽아 보자면...
    • 코이케 씨 - 모델은 친구인 애니메이터 스즈키 신이치. F가 사용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 사사키 - 비실이같이 생긴 샐러리맨으로, 상사로 나오는 에피소드도 있다. 후지코 후지오 A 다수의 작품에 등장한다.
    • "아"의 펭귄 - 펭귄인데도 불구하고 까마귀처럼 행동하며, 만화의 장면을 전환할 때 출연한다.
  • 채식주의[7]이다. 이는 사상 상의 이유가 아니라 에서 어릴 때부터 사찰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8] 식습관 자체가 굳어버려 고기생선을 몸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 데즈카 오사무에게 장어를 권유받아 한 조각을 먹은 직후 3초도 지나지 않아 다량의 코피를 쏟았던 일화도 존재한다. 그러나 도쿄 라멘[9]은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PAR맨 열정적인 날들'에서도 햄버거를 먹는 장면이 있으며, 2014년 10월호에서는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가쓰오 타타키란 회 요리를 매우 좋아했단 에피소드가 존재한다. 그리고 만화의 길의 속편에서는 자신을 모델로 한 주인공 '망가 미치오'가 식당에서 물고기 요리 대신 조개 요리를 먹는 등 어느 정도의 동물성 음식은 섭취 가능한 장면이 나온다.
  • 젊었을 때에는 본인이 직접 태어나서 한 번도 질병에 걸린 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건강한 몸을 자랑했다. 당시의 사교적인 성격으로 늦게까지 독한 을 마셔 그 다음 날 술이 남은 적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2013년 , 대장암에 걸려 입원 치료와 수술을 받았는데 이때 토키와 장에서 후지코 F. 후지오, 아카츠카 후지오, 이시노모리 쇼타로, 데즈카 오사무이미 죽은 동료들이 "어서 와." 라고 말하는 을 꾸었다고 한다. 약 1년 후엔 복부에 강한 통증이 나타나 병원 검사를 받고 장폐색으로 진단되어 입원하기도 했고, 2015년 3월 초 골프를 하던 도중 실신해 도쿄의과대학병원에 긴급 후송되어, 검사 결과 심장마비 진단이 나와 입원해 약 3주간 정맥 주사, 약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더불어 그 해 12월부터 점프 스퀘어에 연재하던 에세이 만화 'PAR맨의 열정적인 날'을 건강상 문제로 휴재하기로 했다.
  • 를 좋아해서인지 작품에서도 자주 개가 나온다. 이전에 키웠었던 아키타견의 이름을 'Q타로'로 부른 적도 있었다고. 타기나 유람하는 것을 즐겨 퀸 엘리자베스 2세에 승선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 만화보다 먼저 흥미에 빠진 매체는 영화였으며 F, 스즈키 신이치, 츠노다 지로와 8mm 카메라서부극을 촬영한 적도 있었다. 이 영화는 촬영 시간의 형편상 미완성이었지만 후에도 텔레비전 드라마 '켄짱 차코짱'의 극중극에서 총잡이 역으로 F와 공동 출연하기도 했다.
  • 골프 애호가로 노년인 현재도 종종 즐긴다고 하며, 이런 면모가 드러난 작품이 프로 골퍼 사루다.[10] 1970년토키와 장의 객원 멤버이자 공수도 바보 일대의 작가 츠노다 지로에게 이끌려서 한 극진 무술 회관에 반년 정도 입문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에 최영의의 제안으로 인해 명예 초단을 수여받기도 했다.
  • 많은 파티장, 회식에 참여하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매우 사교적인 성격이라 개인적인 친분을 많이 쌓은 만화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에 비하여 의외로 수줍어하는 성격으로, 상대방을 '君, 'さん' 등으로 부르는 것이 서툴러서 인칭은 에 "氏"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많이 붉혔었기 때문에 '전열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 20대가 되었을 때부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이것은 하얀 원고지의 반사광에 눈을 다친 것 때문으로, 한쪽 눈은 나중에 백내장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다.
  • F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동안인 편이었는데, 후지코 후지오 항목의 맨 첫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F와 A는 3개월 차이 친구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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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지코 후지오 A의 생가 근처에있는 히미시의 한 상점가는 '닌자 핫토리군을 만날 수 있는 도시'를 모토로 부흥을 시도하고 있으며, 닌자 핫토리군을 중심으로 한 후지코 후지오 A 작품 캐릭터 유물과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5. 수상경력


  • 1990년 - 후지모토상 · 야마 후미코 잡지 특별상 수상 [12]
  • 2005년 - 제34회 일본 만화가 협회상 문부과학대신상 수상 [13]
  • 2008년 - 고향인 히미시에서 자신이 그린 만화 캐릭터의 제공 등의 기여에 의해 명예 시민이 되었으며, 아사히 욱일소수장 수여
  • 2014년 - 제18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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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당시에는 히미 군 히미 정[2] 2008년 수훈[3] 토리 왼쪽에 있는 것이 서명이다.[4] 당시에는 히미 군 히미 정[5] 일본 조동종 소속.[6] 다만, 퇴사한 것을 두곤 큰아버지가 격앙된 표정으로 이야기할 만큼 불쾌해했었다고 한다.[7] 계란과 유제품은 먹는 락토·오보 채식주의자라고 한다.[8] 이 당시에는 일본에서도 선불교 승려들은 대처만 가능할 뿐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 개인 사찰 한정으로 육식이 허용되었지만, 집단 수행 기간 동안은 여전히 채식해야 한다.[9] 작가의 작품인 만화의 길에는 '마츠바'라는 식당이 언급되며, 직접 라멘을 먹는 장면도 나온다.[10] 작중에 등장하는 필살기의 대부분은 창작한 것이지만 한 필살기는 자신이 골프를 하던 중에 우연히 샷 한 볼이 깃발에 맞고 그대로 떨어졌는데, 원래는 컵 판정인 것을 경로가 빗나가 바위에 맞은 볼이 우연히 튀어 올라온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프로 골퍼의 중진인 아오키 이사오가 TV 프로그램의 기획으로 도전한 적이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노리면서 하기엔 거의 무리라고 결론짓기도 했다.[11] 일본은 한국과 달리 3월이 아닌 4월에 입학하므로 3월생까지 빠른 생일이다. F는 1933년 12월생이고 A는 1934년 3월생이므로 동갑이나 다름없다.[12] 영화 "소년 시대"[13] 전 작품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