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대통령 집권기

 


1. 개요
2. 제1차 오바마 행정부: 변화를 말하다
2.1. 무역 정책
2.2. 의료보험개혁
2.3. 극좌 대통령?
2.4. 집권 1기의 현실적 어려움
2.7. 소버린 쇼크
3.1. 당시에 제기되었던 재선가능성
3.2. 슈퍼팩 논란
3.3. 선거 내용과 재선 성공
4. 제2차 오바마 행정부: 위기의 오바마, 하지만 돌파구는 있다.
4.1. 공화당과의 충돌
4.1.1. 재정절벽 문제
4.2. 연달아 일어난 테러 사건
4.3. 그리고 반전. 지지율 50% 회복
4.6. 동성결혼 지지선언
4.7. 이란 협상 타결
4.8. 파리 기후 협약 타결
4.9. 9.11 소송법 거부권 행사 및 오바마 임기 최초 의회의 거부권 기각


1. 개요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집권기를 정리한 문서.

2. '''제1차 오바마 행정부''': 변화를 말하다



영상제목이 2008년 1월 21일로 되어있으나 잘못 표기되었으며 사실은 현지시간 2009년 1월 20일(한국시간 1월 21일)이다. 2008년도는 오히려 부시 대통령 재임기이며 2009년 해당 영상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오바마 행정부로 막 교체되던 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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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때문인지 흑백 갈등 관련해서 유명하기도 했던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거 때문인지 그의 당선은 전세계적으로 떠들썩하게 보도되었다. 몇몇 지역은 다른 나라가 아니라 자국 대통령 혹은 총리 선거를 하는 거 같을 정도였다. 한국의 경우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서 한 5일 정도 내내 뉴스 첫번째 소식이 미국 선거에서 그가 이기고 있다 혹은 당선이 확정되었다, 당선되었다였고 그 외엔 오바마 당선 혹은 오바마 개인에 관한 걸로 3~4가지는 오바마와 연관된 뉴스를 내보냈다. 전혀 다른 뉴스(예를 들어서 부산에 교통사고가 났다거나)로 넘어가는 데 10분~20분 정도 걸렸을 정도다.
오바마는 변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미국 국내 정치에서는 중산층과 약자, 소수계층의 보호에 주력하는 한편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 해결, 이라크 내의 병력을 철수하는 대신 미국에게 실제로 위협이 되는 알 카에다를 제거하기 위해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ISAF 병력증파 등이 주로 추진할 정책들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과는 협상을 통한 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고 보호무역주의 성향으로 한미 FTA에는 상당히 부정적인 탓에 한국과는 마찰을 일으킬 우려가 있는 편이다.
어쨌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오바마에게 세계가 더 우호적인 건 사실인 듯하다. 얼마나 능력을 펼칠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오바마마저 실패하면 미국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점에서 참 이래저래 무거운 짐을 안고서 출발하는 대통령인 듯하다. 선거 운동 초반에는 정책 공약이나 정치적 성향 때문에 항간에는 '''"흑인판 케네디"''', "'''겉은 검고 속은 하얀 오레오 오즈'''"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2.1. 무역 정책


오바마는 선거 운동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한미 FTA의 개편을 통한 미국의 우위 선점" 을 주장해왔고 동시에 "남한을 통한 북한 정부와의 대화" 보다는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 채널 개설" 과 "대북 정치의 포용성 강화" 를 언급해왔다.[1] 만일 오바마가 이러한 발언들을 실제로 임기 동안 수행한다면 수출 주도형 경제를 영위해온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대북관계에 있어 한국의 고립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에게 있어 한미 FTA는 단 한 번도 중심적인 주제로서 다뤄진 적이 없었다.[2] 그리고 오바마 개인의 보호무역 성향 자체도 많이 과장보도된 편인데 그의 경제적 성향은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미국의 대표적 보수신문 시카고 트리뷴의 지지기사의 일부에서 알아볼 수 있다..

"His economic policy team is peppered with advisers who support free trade. He has been called a 'University of Chicago Democrat'~~a reference to the famed free-market Chicago school of economics, which puts faith in markets."

"그의 경제 정책 팀은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보좌관들로 가득 차있다. 그는 '시카고 대학 민주당원' 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자유시장 경제를 중시하고 시장의 자율능력을 신봉하는 시카고 경제학파를 가리킨다."

애초에 시카고 학파는 유독 신자유주의에 친화적인걸로 유명하다. 참고로 시카고 트리뷴은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는 대표적인 보수신문이다. 그리고 정치인들 선거의 중심적 테마와 공약, 정책구상에서 좀 벗어난 주제에 대한 선거용 발언은 믿기 힘든 것으로 악명이 높다. 가장 큰 예로 조지 W. 부시는 선거 토론회 중 미국의 역할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2.2. 의료보험개혁


미국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의료 보험 및 Medicaid 에 관련된 개혁안이 수많은 진통 끝에 찬성 60, 반대 39표로 2009년 12월 24일 미국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이 법안 때문에 46년만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미 상원이 투표를 하고 1차대전 이후 25일간 계속 회의를 벌인 기록이 나왔다. 의료보험법 개정 때문에 미국의 몇몇 인간들에게 빨갱이 취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는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성향인 리버테리안이 맞물려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총기 난동으로 인한 사망자가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총기를 일반 시민들이 가지고 다닐 수 있게 한 것도 전미 총기 협회(NRA)의 간섭도 있었겠지만[3] 이런 리버테리안적인 경향 탓도 크다. 호머 심슨의 발언이 바로 그 예이다. 호머가 전미 총기 협회에 가입을 하고 총기 소지하는 이유를 ''''영국 왕이 미국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냐'''' 는 이유였다. NRA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식민지 시대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미국 국민들이 스스로 총을 들고서 영국과 싸우고 이로 인하여 국가보다는 '''개인''' 스스로가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기본적인 마인드 가 깔린 대사로 추정이 된다.
2010년 3월 22일, 드디어 하원에서도 통과되면서 미국의 오랜 숙원인 건강보험 개혁법(Affordable Care Act, 일명 오바마케어)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중도보수 민주당 의원들 때문에 원안과는 달리 공공보험 옵션이 삭제되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저소득층에 대한 정부 공공보험인 메디케이드가 확대되었고 저소득층 이상의 미국민들에게는 소득에 따라 정부가 보험가입자들을 의료비지원을 하여 새로 도입되는 의료보험시장을 통해 경쟁하는 민영보험을 들게 하였다. 대신 선택적으로 보험을 들지 않는 미국인들에게는 벌금이 부과되도록 하였다. 그밖에도 의료보험 회사가 의료보험 가입자를 그 어떤 사유에서라든지 거절하거나 치유기간 중 의료보험 서비스를 중단하는[4] 행태를 금지하였으며 기존에 존재하던 보험의 평생혜택,연간혜택 금액의 제한을 없애고 도리어 보험자의 연간 의료비 지출에 상한도를 두었다. 이러한 시스템 도입은 세계적으로 네덜란드나 스위스형의 의료보험 체계에 미국이 다가서는 모양새이다.
어쨌건 이 법안이 양당합의가 아니라 행정부와 민주당 단독 통과라는 형태로 법안이 성립되어 당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법안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마땅치 않은 데다가 법안이 효력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번 법안을 논의하면서 미국 사회에 반오바마 세력이 조직화되었고 민주당 내부의 낙태 반대론자들도 이번 법안에 반대하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분열이 생긴 상황이라 오바마 정부의 레임덕이 이 법안으로 인해 촉발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거기다가 미국의 기형 의료 시스템상 이 의료보험법이 적용이 된다 하더라도 막대한 돈이 환자에게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의료보험이 없다면 병원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하고 의료보험이 있어도 병원과 의료보험회사가 뒷거래로 삭감 금액을 결정한 뒤 환자에게 납부 요청서를 보내는 방식이라 의료보험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큰 수술의 경우에는 몇백만원에서 심지어 수천만까지 다다르는 돈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5] 이런 문제가 시정되려면 공공보험이 전국민상대로 도입이 되거나 정부가 의료비용을 규제를 해야한다.
결국 의료보험안은 실상은 민주당 극좌공세로 오바마 정부에게는 크나큰 폭탄이 되어버렸으며 2010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이 불리한 입장에 서있는 것이 현실이다. 좌익 세력 쪽에서도 상당수가 이로인해 '오바마는 무능하다' 라는 설득론에 넘어가버렸으며 결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과반 이상 차지하면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이래저래 시작은 좋았으나 80-85%의 국민 대부분이 이미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공격에 취약한 국민정서와 같은 한계를 맞아 역효과를 불러오게 되어 버렸다. 그나마 상원은 과반을 지켜낸 것은 다행한 일이라지만 공화당은 중간선거 승리 후 의료보험 개정안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공화당이 과반을 차지한 하원은 의료보험 개정안 폐기시키려는 시도를 서른 네 번이나 했다. 이 정도면….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의료보험 개정안에서 벗어나서 월가의 만행을 막는데 치중하고 있으며 이는 재선을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듯 보인다. 한편 그의 측근들의 의견으로 볼 때 재선 후 의료보험 개정안을 다시 밀생각이었던듯 하다.그리고 2012년 6월 28일에 오바마케어가 '''합헌'''이라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2014년까지 3천 2백만 여명의 미국 국민들이 건강보험에 새로 가입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중. 오바마의 지지율도 중간층의 이동으로 상당히 올랐다. 2012년 선거에선 공화당이 하원 다수를 지켰으나 의석 수가 줄었고, 상원은 민주당이 2석을 더 얻었다 (민주당과 코커스하는 무소속 의원 둘 포함).
2015년 6월 25일, 미 연방 대법원은 오바마케어 시행 과정에서 지급되고 있는 정부 보조금에 대한 위헌 여부 최종 심리에서 6대3 합헌 판결을 내렸다. CNN보도

2.3. 극좌 대통령?


2011년, 오바마 집권 이후 북미관계에서 큰 변화를 기대했던 국내의 좌파들은 상당히 실망했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컸지만 오바마 정부가 대북 정책을 한국 정부에 사실상 위임하다시피 하면서 이로 인해 한-미 공조가 더욱 공고해져버렸기 때문이다(참고).
게다가 천안함 피격사건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급진적으로 북미 관계를 진전시키기 어려워졌다.
  • 오바마가 인기가 높아서인지 현 정부는 "오바마와 코드를 맞추겠다(참고)"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코드가 안 맞다며 까였다(참고). 다만 거시경제에 한해서는 의외로 그다지 의견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참고).
  • 한편 이명박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장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란의 폭력적인 시위진압을 비판하는 요지의 발언을 해서 참고 "교수들에 이어 오바마가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근데 진짜 몇몇 극우적인 미국인들은 오바마는 좌빨 공산주의자에 무슬림 테러리스트라고 '''믿고 있다'''. 진지하게 오바마는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됐을 정도. 2015년 미국 내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미국 전 국민의 29%가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인식하고 있다.

2.4. 집권 1기의 현실적 어려움


현재 가장 큰 문제라면 자국 내에서의 평가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 특히 청교도 정신에 영향받아 돈을 버는 부자들에게 관대하면서 국가가 행하는 공공사업에 믿음을 가지지 않는 미국의 풍토 때문에 공공 사업 추진이 주요 정책인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도가 낮아지는 게 사실. 특히 월가에서 터진 세계금융위기를 뒷수습하는데 있어서 계속 마찰이 터지고 있으며[6] 미국인들 대부분이 '''국가 주도로 부의 재분배를 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진정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오바마 뿐만 아니라 이후 대통령들 넘어야 할 산이 많을 듯.
뿐만 아니라 오바마를 뽑은 국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언급한 부시 정권을 통한 공화당의 불신과 단순히 부시가 삽질한 걸 오바마가 당선된 것 하나만으로 모든 문제가 단숨에 고쳐질 거라고 믿었던 묘한 기대감이 반작용이 되고 있는 이유도 있다. 한마디로 대선 기간에만 정치에 관심을 잠시 가졌다가 오바마가 당선되자 "오바마가 뽑혔네? 이제 알아서 잘 살게 해주겠지? 이제 모든게 다 잘 풀릴 거야 yay!" 모드로 다시 정치 무관심 모드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 지금의 추세는 이제까지 별 생각도 관심도 없던 오바마 정권의 행태가 미심쩍어지자 법 공부를 하러 간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그가 다른 종교에 보여주는 유화적인 태도가 몇몇 미국인 사이에선 반감을 사고 있다. 그라운드 제로 주변에 이슬람 사원을 건립하는 문제에 대해 오바마가 지지를 천명하고 나서자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는 타임지 조사에서 미국민의 '''27%'''가 ''''오바마 대통령은 무슬림이다'''' 라고 믿고 있는 걸로 드러났다. 애초에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종교가 마이너 하다고 문제 삼는 거에서 이미 에러. 특히나 신정국가삘이 충만한 텍사스를 비롯한 남부와 중부주들에서 이런 경향이 심각하다.

2.5.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공화당의 중간선거 승리로 오바마 정권의 임기 후반기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던 가운데 공화당은 의료보험 개정안 폐기를 선언하면서 폐기법안을 하원에 상정해 통과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2011년 1월 8일에 터진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은 미국에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 사건의 원인으로 그동안 보수 논객들과 정치인들의 오바마 정권 까기가 도마에 오르면서 보수 측이 위기를 맞은 반면 오히려 오바마 정권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1월 12일,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난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식을 참석해서 추모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은 감동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이성적 면모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이 추모 연설은 철저하게 비정치적이고 감성적이어서 오히려 더 호평을 받는다는 분석.

투싼 추모식장에서의 오바마 대통령 연설.연설 전문 번역

2.6. 오사마 빈 라덴 사살


2011년 5월 2일, 오바마가 보낸 DEVGRU 팀이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이후 2012년에 오바마는 이 공로로 미 육군 특전대로부터 명예 그린베레로 임명되었으며, 네이비 실 트라이던트 배지도 수여받았다.

2.7. 소버린 쇼크


빈 라덴을 사살해서 지지율이 한껏 올라가고 재선가도에도 청신호가 켜진 것도 잠시, 이후에 '''연방정부의 국가부채한도'''가 발목을 잡았다. 미국의 독특한 특성상 연방정부의 국가부채 한도를 올리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부도가 나는''' 사상 초유의 위기가 도래할 지경이 된 것.
이 때문에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까지 직접 공화당 지도부와 국가부채한도를 올리는 문제를 협상했다. 그러나 재정 적자를 줄이는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은 의견이 엇갈렸는데 민주당은 "증세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 을 주장한 반면 공화당은 전통적인 보수의 주장대로 "감세와 복지예산 축소를 통한 재정적자 감축" 을 주장해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국가부채한도에 도달하는 위험수위에 도달하기 직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하지만 협상의 결과는 공화당의 승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이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공화당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는데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층에선 반발이 일어났다.
게다가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부채한도 문제에 대해서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사는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미국의 재정 적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했고 결국 미국의 신용등급을 실제로 강등시켜버렸다. 결과는 전세계 주식시장의 떡실신. 당시 오바마는 이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지만 스탠다드 앤 푸어스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안습.

3. '''우여곡절의 재선 도전'''



3.1. 당시에 제기되었던 재선가능성


오바마 대통령이 과연 재선에 성공할지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일단 부정적인 견해로는 미국 경제의 장기 불황 가능성이 오바마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렇게 중도표는 공화당에, 반대로 실망한 서민과 소수인종, 진보표는 투표를 안하는(…) 상황이 예측되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징크스들이 오바마의 재선가도를 막을 것으로 보였다. 경향신문 기사
  •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의 대선 직전 소비자 신뢰지수의 평균은 95였다. 소비자 신뢰지수가 77 이하일 경우에는 재선에 실패했다. 지난 10월 미 소비자 신뢰지수는 72.2였다."
  •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재임 이후 전국 실업률이 7.2%를 넘을 경우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모두 실패했다. 지난 10월 발표된 미 전국 실업률은 7.9%였다."
특히 실업률이 문제였다. 공화당은 이 징크스를 내세우며 오바마의 실업률이 8%를 넘는다고 계속 공세를 펼쳤고 이에 오바마는 그 이하라며 반박했다.# 또 공화당은 오바마에게 카터의 이미지를 덮어씌우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 "역대 민주당 대통령 중 재선을 노리는 투표에서 상대 후보의 키가 더 클 경우 재선에 실패했다. 가장 최근의 예는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에 패한 것. 오바마의 키는 6피트 1인치(1m85), 롬니의 키는 6피트 2인치(1m88)다."
그러나 미국 대선 결과를 7번이나 맞춘 아메리칸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 앨런 리치트먼은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리치트먼 교수는 오바마가 실책과 악재들로 인해 2008년의 카리스마를 잃은 건 맞지만 상대편인 공화당에 오바마를 능가할만한 카리스마를 지닌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외교 안보상으로는 큰 실수가 없고 오히려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써 성과를 거둔점은 재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것. 다만 경제 문제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주요 도박사들도 오바마 편이었다.
게다가 공화당이 미트 롬니와 뉴트 깅리치가 대선 후보 경쟁을 하면서 공화당에선 오바마만 유리하게 만든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바로 공화당 지지가 분열되고 있는 것.''' 미국 보수파들에겐 롬니가 공화당에서 인기를 얻는 걸 두고 착잡하게 봐야 하는게 롬니 후보는 바로 개신교에서 이단이라고 하는 모르몬교도이니 오바마를 무슬림으로 몰면서 반대하는 것들이 이런다고 오바마 지지자들에게 비아냥을 듣는 판인 것. 또 "롬니케어"라고 알려진 주지사 시절 건강보험 정책도 역시 롬니가 "공화당의 탈을 쓴 리버럴"이라는 오해를 받기 충분하다(이는 매사추세츠가 근본적으로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낙태동성애에 대해서도 보수적이지만 종교적 이유는 아닌 애매한 스탠스. 반대로 중도 혹은 온건 성향의 공화당 주류는 깅리치가 네오콘, 티 파티와 손을 잡고 무개념 발언들을 일삼는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여기에 리버테리안 성향의 론 폴이 10대, 20대의 컬트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게 공화당 자체가 크게 두파, 작게는 세네파로 지지층이 분열되고 있는 안습한 상황. 롬니가 좀 낫지만 롬니가 나오면 보수파가 이탈하고 깅리치가 나오면 중산층이 이탈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
이를 반영한 듯 일반적인 미국의 여론 또한 '오바마가 잘 해서라기보다 공화당의 혼란 때문에'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 시작 이전까지는 오바마의 우세를 점쳐왔다. 물론 롬니가 공화당에서 큰 표를 잃은 것은 아니었으며 도리어 모르몬의 텃밭인 유타 주에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지지'''(73%:25%, 심지어 일부 카운티에서는 89%:8.8%도 나옴)를 받았다.
결국 문제는 경기의 절대적 상황이 아닌 추세였다. 2011년 9%에서 2012년 8%로 점차 하락하는 실업률의 추세는 잭 웰치 등의 디스 발언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데 큰 공신이 되었다. 게다가 (1956년을 제외하고) "주식시장이 선거 직전 3개월 동안 상승하면 현직 대통령만 재선에 성공" 했는데 '''"미국 주식시장은 3개월간 약 2.5% 상승했다"'''(경향의 같은 기사).
'''그리고 2012년 11월 7일,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재선 성공 항목 참조.

3.2. 슈퍼팩 논란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인 "미국을 위한 최우선 행동"에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슈퍼팩 논란에 휘말렸다. 슈퍼팩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 표명이 가능한 정치인 후원회를 일컫는 말인데 무제한의 정치자금을 투입해서 특정 후보 지지나 반대 광고를 내보내는 게 가능하다.
먼저 미트 롬니의 슈퍼팩이 3천만 달러를 퍼부어서 뉴트 깅리치 등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까지 디스하는 광고로 TV를 도배했다. 이에 뉴트 깅리치도 지지 않고 라스베가스 카지노 거물의 자금을 중심으로 한 슈퍼팩을 동원해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을 승리하면서 선거전을 돈싸움으로 만들어버린 상황.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슈퍼팩에 대해서 ''''민주주의의 적이자 기업들의 무제한 정치자금 통로''''라면서 강력하게 비난했지만 문제는 공화당 후보들이 무제한의 엄청난 자금으로 오바마 반대 광고 융단폭격을 일삼자 결국 현실에 순응해서 자신을 지지하는 슈퍼팩의 행동을 용인한 것.
이런 지지의사 표명에 공화당에서는 오바마가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라고 맹비난했고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도 공화당 방식으로 선거 운동을 하면 미국민들은 오바마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게다가 슈퍼팩의 문제는 당연한 것이지만 '''받아먹은 만큼 토해내야 하는''' 인류 고래의 진리로 보면 오바마가 재선되더라도 사실상 무제한 자금을 제공한 슈퍼팩의 뒤에 서있는 기업들을 봐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오바마가 슈퍼팩과 절연한다면 미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재선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 어쨌든 슈퍼팩 논란으로 오바마도 롬니, 강리치와 더불어 사이좋게 돈 전쟁의 시궁창으로 자진 입수해버렸다.
사실 오바마는 이미 대통령이 된 시절부터 기존 지지기반이던 민주당 좌파들의 기대를 상당히 저버렸고 특히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과 상당부분 타협을 하면서 중도 쪽으로 우향우를 한 입장이다. 이는 빌 클린턴과도 겹치는데 현재까지는, 그리고 결과론적으론 이런 정책이 재선으로 효과를 보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의외로 슈퍼팩을 통한 선거전의 효력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다.[7]

3.3. 선거 내용과 '''재선 성공'''


'''Four more years(4년 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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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일찌감치 오바마의 재선 준비에 돌입하였고 2012년 중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은 밋 롬니를 대선 후보로 확정하였다.
이후 공화당 전당대회를 통해 반짝 지지율이 상승한 롬니는 9월 17일 그의 비공개 선거자금 모집 행사에서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의료보험과 먹을 것, 주택 등 모든 것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서 세금은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을 것" 이라고 발언(47% 발언)한 것이 드러나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대선 판세가 급격하게 오바마 쪽으로 기울었다. 이 행사에서 일하던 스콧 프라우티라는 바텐더가 찍어서 올린 녹화본을 이어 받아서 본격적으로 퍼트린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손자인 제임스 카터다.'''
그러나 경제 문제를 다룬 1차 TV 토론회에서 절치부심한 롬니에게 회심의 일격을 허용한 오바마는 큰 폭으로 따라잡히며 재선을 위협받는다. 오바마는 뒤늦게 2차, 3차 토론회에서 우위를 점하였으나 기존 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집 등 후속 효과가 잇따르면서 롬니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초접전 양상을 계속 보여주었다. 선거 직전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으며 따라서 오하이오, 플로리다, 버지니아 주, 노스 캐롤라이나, 콜로라도 주 등 경합주의 승패에 따라 선거가 결판날 것이 분명하였다.
롬니는 토론회에서의 일격 이후 기존의 47% 비하발언 등의 실책을 딛고 당선을 눈앞에 둔 듯 하였으나 태풍 샌디가 미국을 덮치면서 상황이 다시 뒤집히기 시작했다. 뉴욕주와 뉴저지주 등 동부가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상황에서 오바마는 공화당 소속인 크리스티 뉴저지주지사를 동반해 헬기를 타고 상황을 직접 살피면서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미국 동부에선 정전에 휘발유까지 부족하여 주유소마다 경찰이 서있는 모습이 연출되는 상황에 교통마비까지 겹쳐(가로수 및 가로등이 도로 위로 많이 쓰러졌다.) 최악의 상황 중에 오바마는 대통령전용기를 이용하여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고 이전에 재난 예방 및 대책에 관련된 부서를 축소하겠다고 말한 롬니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결국 동부에서 지지율이 올라갔고 기존에 오바마를 비난했던 크리스티 역시 (자신의 야심[9]과 주 민심 등의 상황을 감안하여) 오바마를 극찬하였다. 더불어 공화당 출신 무소속 뉴욕 시장인 블룸버그도 기후변화에 대처하기에 적합하다면서 오바마를 지지하였다. 선거날의 날씨도 맑아서 민주당에 유리한 높은 투표율이 기대되었으니 결국 50% 후반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에 투표가 마쳐졌다.[10]
결국 2012년 11월 6일(한국 시각으로 7일) '''재선에 성공'''하였다. 전체 538명의 선거인 중 303인을 거의 확정적으로 획득하여 201인을 획득한 밋 롬니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고 오바마와 달리 패배연설 원고도 쓰지 않았다는 롬니는 패배를 인정하였다.
선거 개표는 시작과 함께 초반에 일제히 공화당 우세주의 투표함이 열리며 롬니의 우세로 시작되었다. 오바마는 동북부의 작은 주들에서 천천히 선거인단을 확보해 나갔지만 중북부의 중규모 주에서 앞서나가는 롬니에게 뒤졌다. 그러나 오하이오플로리다의 개표가 시작되자 서서히 오바마는 롬니를 따라잡기 시작하였고 선거인단 수에서도 본격적으로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텍사스로 롬니가 앞서나갔지만 오바마는 뉴욕주에서 앞서 나가며 다시 따라붙었다.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텃밭)' 과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텃밭)' 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양 후보에게 모두 흡수되었으며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스윙 스테이트의 표심이 중요해졌다.
이와중에 이번 미국 대선 3대 경합주로 분류되었던 오하이오 주와 플로리다 주, 버지니아 주는 50:50에서 오차범위 내의 격전이 개표 내내 계속되고 있었다. 오하이오 주의 경우 오바마에게 우호적인 카운티의 투표함이 먼저 개봉되면서 초반 오바마가 10% 이상 앞서기도 했지만 곧장 롬니에게 오차범위 내로 따라잡히며 한두번 뒤집히기까지 했다. 플로리다 주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순위가 몇 번이나 뒤바뀔 정도였고 며칠 뒤까지 결과가 정해지지 못했다. 버지니아 주에서는 오하이오의 반대의 경우로 롬니가 여유 있게 앞서다가 막판에 오바마에게 따라잡혀 역전을 허용했다.
결국 롬니는 경합주 중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신승하였지만 이는 사실 예상되던 바였다. 도리어 콜로라도 주위스콘신 등 중요한 주가 하나둘씩 오바마의 낙승이 점쳐지고 인구가 가장 많아 55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캘리포니아의 투표함이 열리면서 결국 뒤처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오하이오와 버지니아에서 오바마의 승리가 확실해짐에 따라 롬니는 패배를 인정하게 되었다.
당초 전국 지지율에서는 롬니가 앞서고 선거인단 확보 수에서는 오바마가 앞서 조지 W. 부시가 전국 득표수에서 뒤졌지만 선거에서 승리했던 2000년 선거의 재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분석이 있었지만 NYT의 선거 분석단 "538(five-thirty-eight)" 은 부정적이었다[11]. 공화당 우세주의 개표가 거의 끝나고 민주당의 아성인 태평양 3주(워싱턴 주, 캘리포니아, 오리건)의 개표가 시작되자 20만표 격차를 두고 몇 차례 기우뚱 거린 끝에 동부시간 밤 10시 반(한국 시간 12시 33분) 무렵 전국 득표 역시 오바마가 앞서기 시작하면서 선거 후에 불거질 문제 역시 차단되었다.
선거 전에 뉴욕 타임즈의 경우 롬니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31가지,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221가지라는 분석을 했었는데 과연 오하이오 등의 큰 주를 얻으면서 승리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비등하면서도 뒤쳐지는 듯 했지만 큰 주 여럿을 먹으면서 대역전하였다. 밋 롬니가 도전자로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동안 조용히 전략적으로 중요한 주에 집중적으로 선거 운동을 한 오바마의 전략적 압승이라는 평가다.
이로써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에서 ''''최초로 재선된 흑인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선거인단은 332 대 206, 득표는 51.1%(6590만표)로 지난 선거보다 360만표 가량 덜 받았지만 격차는 497만표(3.9%)를 냈다. 100명 이상의 차이를 벌리는 압승이었다.
선거인단은 2008년에 비해 노스 캐롤라이나(15석)과 인디애나(11석), 분할 선거인단제도를 시행하는 네브래스카의 1석을 잃었으며[12] 이는 선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인디애나는 원래 중부에서 보수성향이 가장 강한 주로 08년에 승리한 게 특이한 경우였고 노스 캐롤라이나는 높은 실업률로 지역 여론이 좋지 않았다.[13] 오바마는 경합주로 거론되던 플로리다, '''오하이오'''[14], 버지니아(big 3), 콜로라도, 위스콘신, 뉴햄프셔, 아이오와, 네바다에서 모두 승리하는 위업을 거뒀다. 오바마가 승리한 주는 26개 주+워싱턴 D.C. 였고, 롬니는 24개 주에서 승리했다. 또한, 선거인단이 20명이 넘는 주 가운데 텍사스 주를 뺀 뉴욕, 일리노이, 펜실베니아,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오바마가 승리하면서 최종 승리의 발판을 놓게 되었다.[15]
참고로 출구조사에서 백인 인구는 40%만이 오바마를 뽑은데 비해 동양계와 히스패닉은 70% 가까이가 오바마를 찍었고 '''흑인의 93%가 오바마를 뽑았다'''고 대답. 이는 공화당이 자초한 바가 큰데 민주당에 우호적인 소수인종의 투표율을 낮추기 위해서 photo ID로 신분을 의무 확인하라고 주장했다가(테네시 주는 2011년부터 실제로 그러고 있다!) 소수인종들의 미움을 사 반공성향이 강한 아시아계는 물론 실향민격인 쿠바계 히스패닉까지 48%가 등을 돌려버렸다!
반면 백인 남성들은 오바마에게 등을 돌려 미시시피 대학에선 오바마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불태우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체포되었고[16] 트위터에서도 온갖 인종차별적 욕설이 나오는 데다가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 ''''혁명을 일으켜야 된다'''' 며 나라를 뒤집자는 식의 트윗을 했다가 비판을 받자 지웠다.
이 와중에 무식한 인간들이 많이 보여서 깨알같은 즐거움(…)을 주었는데 영국 여왕에게 잘못했다면서 제발 다시 영국에서 살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편지가 오는가 하면[17] 어떤 여자는 호주로 가서 독실한 기독교인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트윗을 올렸는데 '''호주는 대통령이 없으며(영국 여왕이 국가원수인 영연방) 2012년 기준으로 여성 총리에 독신에 무신론자인 사람'''이다. 그리고 오바마가 당선되면 직원 해고한다는 회사들이 있었는데 '''진짜로 해고했으며''' 백인 보수층의 멘붕이 심하다보니 단순히 이런 멍청한 발언에서 오바마를 암살하고 싶다는 인간도 나와서 국가 기관에서 긴장 중이었다.

4. '''제2차 오바마 행정부''': 위기의 오바마, 하지만 돌파구는 있다.




4.1. 공화당과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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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재정절벽 문제


집권 2기가 시작되자마자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겪어야 했던 문제는 재정절벽(Fiscal cliff) 문제였다. 당시 미국의 재정절벽 문제는 연방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협상이 2013년 1월 1일까지 완료되지 못할 경우, 전 대통령 조지 부시의 감세 혜택이 자동으로 종료되고 오바마 집권 1기 때 시행되었던 2%의 페이롤 세금 감면이 끝나게 되며, 정부가 한꺼번에 엄청난 액수의 재정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재앙과도 같은 문제였다. 재정 절벽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미국 경제는 무려 8천억 달러의 규모 축소가 예상되는 상태였고, 전 세계가 숨죽이고 미국 정계를 주목하였다.
사실 2009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를 통해 겨우겨우 경기를 부양해 놓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2012년 하반기 들어 겨우겨우 실업률과 주택경기가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마당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더블딥으로 직행하는 급행열차를 타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결국 재정절벽 시한 하루 전이던 2012년 12월 31일, 부자 증세와 실업 수당의 연장 지급, 여타 세액 공제 등 핵심적인 부분에 합의점을 찾는 데 성공하여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경우 이 정책에 대한 반발이 커서 재정절벽 협상안을 얼른 통과시키지 않고 밍기적거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일정 부분 충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 사가 갑자기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재정절벽에 못지 않은 악몽, '시퀘스터(Sequester)' 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4.1.2. 시퀘스터 문제


시퀘스터는 2013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1조 2천억 달러에 달하는 양의 재정지출을 자동으로 삭감하게 되는 조치이다. 시퀘스터 문제는 2011년 하반기부터 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늘어만 가는 재정적자에 대해 고심하던 미국 의회에서 2011년 8월 예산관리법을 의결한 뒤 2012년 말까지 재정건전화 대책을 마련하였다. 시퀘스터는 이 재정건전화 대안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할 경우 자동으로 발동되는 장치였던 것이다. 일종의 시한폭탄과 같은 것.
민주당공화당은 재정절벽 협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부채한도의 재증액과 시퀘스터 문제를 가지고 부딪혔다. 공화당은 재정절벽 문제에서와는 달리 의료와 교육 등 사회보장부문의 지출을 낮출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 역시 "부채한도 증액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라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였고, 의회에서는 미봉책으로 시퀘스터의 발동을 2개월 미뤄 두었지만 이는 정말 말 그대로 미봉책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2013년 2월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해외 기업과 정유업체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 국방비 2천억 달러 축소, 메디케어 예산 4천억 달러 축소, 농업보조금 2천억 달러 축소 등의 수정안을 제시하였으나, 공화당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였고 그중에서 재정절벽 협상 때 이미 부자 증세를 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증세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면서 또 협상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당과 공화당 양측은 시퀘스터 발동 하루 전인 2013년 2월 28일 각자 대체법안을 상원에 제출하였지만 자당 의원의 자당 대체법안에 대한 반대표가 속출하는 등 전 미국인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막장스런 행태만 보였고 결국 두 법안은 모두 부결되었다.
그리고 2013년 3월 1일, 결국 시퀘스터가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정부기관이 줄줄이 문을 닫으며 업무가 마비되자, 협상 압력이 높아졌고 결국 이것도 해결을 보았다는 편으로 보여지고 있으나, 실상은 공무원들더러 휴업이니 출근하지 말라고 해 놓고는 결국 나중에 봉급을 지불해서, 공무원들에게 유급휴가를 준 셈으로 끝났다.

4.2. 연달아 일어난 테러 사건


2013년 4월 2차 집권초기 이지만 불안정한 상황인데 앞서 총기규제와 관련해서 강한 반발도 있지만, 보스턴 폭탄테러 사건, 상원위원 집무실과 백악관으로 독극물 배송, 테러는 아니지만, 웨이코 비료공장 폭발 사고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들 참조.

4.3. 그리고 반전. 지지율 50% 회복


여러가지 악재와 난조에도 불구하고 일단 미국이 경제지표 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기 시작하자[18] 2015년 상하원 합동회의장에서 가진 연두교서[19]에서 중산층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펼치겠다면서 감세정책을 고수하는 공화당을 압박하며 강공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20]## 연두교서 풀 버전(자막)

"소수만 특출나게 잘사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득과 기회를 확대하는 경제에 충실할 것인가…답은 자명하다. 중산층 경제다."

"상위 1%가 축적된 부에 걸맞은 세금을 내지 않아 초래되는 불평등의 간격을 메우자."

특히 이날 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1년 내내 일해서 1만5000달러도 못 받고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If you truly believe you could work full-time and support a family on less than $15,000's year?) '''직접 해보십시오!(Go try it!)'''"라고 한 연설은 미국 내에서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켜 순간 동의율이 '''90%'''에 이르기도 했다.## 영상
언론에서도 '''옛날의 오바마가 돌아왔다!'''며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공화당은 "어차피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의미없는 발언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를 벌이고 있다."고 반발했지지만, 중산층의 표가 걸려 있는 사안을 건드렸기 때문에 공화당에서도 오바마의 공세를 방어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곤혹스러워 했다.

4.4.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2015년 6월 22일, 미 상원은 대통령에게 신속협상권(Fast-track)을 부여하는 TPA 법안을 60-38로 통과시켰다. 이는 행정부가 타결한 무역협정 내용을 의회가 수정하지 않고 찬반표결만 내리는 법안이다. 여당인 민주당에서는 자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이에 반대해 왔으나 오바마는 공화당과 손잡고 이를 통과시켰다. 사실 TPP는 중국의 AIIB를 견제하고 미국의 아시아권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성격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워싱턴포스트는 TPA의 통과에 대해 오바마의 중요한 정치적 승리라고 평했다.

4.5.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


사실 TPP보다 이 TTIP가 더 큰 떡밥이다. 한국에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2016년 타결 및 비준동의 완료를 목표로 '''미국유럽연합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했으며 EU에서 받아들여 현재 협상 진행중이다.

4.6. 동성결혼 지지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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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무지개 기둥 백악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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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2008년 선거 엠블렘을 무지개색으로 치환한 엠블렘. 무지개는 당연히 동성애를 포함한 성소수자를 상징한다.
동성결혼 문제가 논란의 도마에 오른 가운데 조 바이든 부통령이 동성결혼을 지지한다는 표명을 밝히자 오바마 대통령도 이것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오바마는 대놓고 ''''동성결혼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발언으로 미국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동성결혼 지지선언이 의도적인 정치적 계산에 의한 도박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21] 동성애자들을 비롯한 성 소수자들은 적극적인 활동가들이 많고 진보적 입장이기 때문에 적극 지지층이 필요한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는 것. 상대적으로 미트 롬니가 고딩 시절에 게이 친구들을 괴롭혔다는 폭로가 맞물린 시점에 나온 것이라서 더욱….
오바마의 지지율은 이후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는데, 동성결혼을 지지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정략적(이념적)이다'''라는 미국 국민들의 판단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경제 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오바마가 정작 중요한 문제인 경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말하지 않고(성소수자가 아닌 미국 국민들 입장에선) 부차적인 문제인 동성 결혼 같은 걸로 술수나 부린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이다. 단, 이 하락은 일시적이었고, 가장 결정적인 스윙 스테이트에서의 지지율 하락이 별로 없었으며 오히려 "오바마 케어" 합헌 결정 이후 대반등을 했다.
2011년에는 성 소수자가 미군에서 복무하는 것을 규정하는 Don't ask, don't tell 제도를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2012년 재선가도에서도 이 전략은 적중했다. NYT(뉴욕타임즈)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출구조사 전체의 5%를 차지한(5%는 3%를 차지하는 아시아계보다도 많은 수이다) 성소수자들은 76:22%로 압도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한 반면 이성애자들은 49:49%로 뚜렷한 호오를 표시하지 않았다.#
2015년 6월 26일, 미 연방 대법원은 5-4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헌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NYT기사[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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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공식 트위터는 계정사진을 무지개색 백악관 아이콘으로 변경했으며 대통령 공식계정은 #LoveWins 해시태그로 트윗을 띄웠다.
Today is a big step in our march toward equality. Gay and lesbian couples now have the right to marry, just like anyone else. #LoveWins
오늘은 평등을 향한 우리의 행진 중의 큰 한 걸음입니다. 이제 동성애자 연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결혼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LoveWins

4.7. 이란 협상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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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4일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비엔나에서 역사적인 이란 핵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지난 2002년 8월 이란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폭로되면서 시작된 이란 핵 위기는 13년 동안 협상과 갈등을 반복한 끝에 평화적인 외교 협정으로 마침표를 찍었고 오바마는 임기내 최대 외교 업적을 이루게 되었다.
오바마는 2007-2008년 민주당 경선과 대통령 대선때부터 이란, 쿠바, 북한같은 적성국들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힐러리 클린턴과 존 매케인 모두 오바마가 순진하다면서 비난을 했지만 적성국들에 대한 오바마의 대화 제스쳐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대와 함께 그의 대외정책의 핵심이었다. 오바마가 당선 된 후 대통령 임기 초반때 이란에 손을 내밀었지만 강경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이란의 대통령이어서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방침을 바꾼 오바마는 2011년 유엔에서 미국이 EU, 러시아, 중국과 연대를 이뤄 강력한 대이란 경제제재를 통과시켰고 이는 이란 경제에 큰 타격을 주게 된다. 2013년 이란 대선에서 중도 개혁 성향의 하산 로하니가 미국과 핵 협상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핵무기보다 경제난 탈출을 원했던 이란 중산층과 젊은 유권자들은 로하니 대통령을 전폭 지지하여 그를 당선시켰고, 이란의 국가적 최종 결정권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로하니 대통령에게 협상 전권을 위임하며 힘을 실어주어 이란이 핵 협상에 나설수 있었다. 오바마 역시 경제제재는 이란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경제제재 유지를 주장하면서 협상자체에 반대해온 이스라엘과 사우디 아라비아등의 수니파 국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무장관 존 케리를 파견하여 핵 협상을 추진했다. 본인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정이 결렬되자 케리는 이란 핵 협상에 엄청난 집요함을 보였줬는데 72세의 나이로 자전거에서 떨어져 대퇴골이 골절되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협상 시한을 본래 6월말에서 7월 7일, 10일, 13일, 14일로 네 차례나 연기하며 18일 동안 이란의 외무장관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와 마라톤 줄다리기를 벌였다.
협상의 핵심은 이란이 원심분리기 숫자를 19000에서 5000가량으로 줄이고 우라늄 농축량을 97% 축소하며 플루토늄에 필요한 중수로 설계 변경 등으로 핵개발 활동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만약 국제적 중재기구가 핵사찰을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란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해제했던 이란의 경제제재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또한 이란의 무기 수출 금지는 5년 동안, 탄도미사일 관련 제재는 8년간 유지되고 만약 이란이 협상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65일 안에 경제재재가 부활한다.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은 역사가들과 평론가들에 의해 이 핵 협상 타결이 닉슨의 중국과의 수교, 지미 카터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 레이건고르바초프의 핵군축 협상만큼 중요한 외교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과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로 한떄는 중동에서 가장 미국에게 최우방국이었던 이란이 적성국이 되고 양국은 36년간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해왔다. 이 시기동안 미국은 이란을 공격한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기도 했고 1988년 이란의 민항기를 사고로 격추시키고는 사죄도 없었으며 조지 W. 부시가 2002년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북한과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올려놓기도 했다. 이번 협상 타결로 36년만에 이란이 국제사회에 복귀하게 되고, 미국과의 대화의 물꼬를 틀게 되어 양국은 장차 시리아 내전 종식, IS 격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레반 견제같은 현안에서 협력도 가능하게 되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에서 단 한 표도 얻지 않은 채 자신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과 국내적 성과(오바마케어)를 둘 다 이뤄낸 희귀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이란 핵 협상 논쟁의 가장 큰 패배자는 미국의 의회를 로비해가면서 이란과의 핵 협상을 강력하게 반대해오고 이란의 핵 시설들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폭격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미국내 여론몰이와 로비에 있어서 오른팔 역할을 했던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이란의 라이벌인 사우디 아라비아로 평가되고 있다.
물론 협상이 타결됐다고 이란 핵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제 막 커다란 고비 하나를 넘겼을 뿐이다. 전문가들이 핵 문제에 관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비핵화가 최종적으로 성공하려면 합의 이행 단계에서 쌍방의 성실한 합의 이행과 상호 신뢰 구축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협상 타결이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부터 뒤끝 마찰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는 이러한 불협화음을 극복하고 이란 비핵화가 달성될 수 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4.8. 파리 기후 협약 타결



4.9. 9.11 소송법 거부권 행사 및 오바마 임기 최초 의회의 거부권 기각


양당의 지지를 얻어 발의되고 양원을 통과한 9.11 소송법(Justice Against Sponsors of Terrorism Act, 약자로 JASTA)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JASTA는 9/11 테러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9/11 테러의 희생자 가족들이 미국 법원을 통해서 소송을 걸 수 있는 법이다. 대체로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미국 법원을 통해서 소송을 걸 수 없는데, 이건 1974년에 제정된 주권면제법(Foreign Sovereign Immunities Act, FSIA)과 미국 연방 대법원 판례법 때문이다. 이 법이 발의되었을 때 백악관은 이 법이 통과되면 외국 정부에서도 비슷한 법을 제정하여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가 있으며 외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안전에도 우려가 생길 것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일찍이 밝혔다. 존 브레는 CIA 국장도 국가안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이라며 우려를 표현한 바 있다.
오바마가 거부권을 행사한지 5일 후인 9월 28일에, 상원과 하원 모두 오바마의 거부권을 뒤집는데 필요한 표수를 충족시켰다[23]. 상원은 네바다의 해리 리드(반대표를 던졌다), 버지니아의 팀 케인, 버몬트의 버니 샌더스(투표 불참)을 제외한 모든 상원의원이 거부권 기각에 찬성했다 (97-1). 하원도 435명 중 348명이 찬성해서[24] 필요한 찬성표 수를 가뿐히 넘김으로써 오바마 임기 사상 처음으로 거부권이 뒤집히게 되었다.
대다수의 민주당원들도 거부권 기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오바마의 레임덕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4.10.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임기 말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지만 결국 힐러리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지고 낙선하고 말았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오바마 케어를 당장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리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그의 레임덕은 확실해졌다. 백악관에서 가진 첫 만남에서도 기자들 앞인데도 서로 표정이 굳어있었고, 당일에 바로 인수팀 관계자가 '오바마 금융개혁법을 철폐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다만 트럼프가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아웃사이더로 당선되었다는 점이 오바마에게는 기회로 남았다. 공화당 내부와 민주당측의 대선직후 반발에 직면한 트럼프가 자연스레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과 손잡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오바마로부터 정권 인수인계 지도를 받으면서 트럼프의 정책과 인사가 유화적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부시 대통령 또한 나와 견해에서 많은 차이가 났으나, 인수인계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 또한 그럴 것."이라며 트럼프에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인수인계를 진행하기로 했다.


[1] 발언 원문을 보면 미국의 우위 선점과는 거리가 있음.[2] 참고로 많은 이들이 예로 드는 클린턴 행정부 때 슈퍼 301조 발동은 보호무역적인 정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신자유주의적 행동에 가깝다. 클린턴 행정부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를 상대로 국내용 정책을 팔아먹는데 정치적 역량을 다 쏟아부어서 대외정책에 있어서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결정에 많이 휘둘렸다.[3] 물론 이건 헌법에 의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 미국 헌법 개정안 제 2조에 의거, 개인의 물리적 방어를 위한 총기 소유는 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합법적으로 총기류를 소지하려면 몇 개의 면허가 필요하다.[4] 미국의 의료보험회사는 이전 질환 병력이 있는 환자의 가입을 거절하는데 이것은 보험회사의 필연적 속성이긴 하지만 아픈 사람이 의료보험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5] 참고로 보통 암 수술의 경우에는 부위에 따라 다르지만 보험이 '''있어도 1만달러 이상'''이 드는데 보험이 '''없을 경우 환자에게 300~400만 달러'''라는 금액이 청구된다(한화 약 '''40~50억원'''). 즉 보험 없는 상태에서 병 한 번 잘못 걸리면 인생 쫑난다.[6] 기껏 은행들을 살려줬더니 저소득층 대출을 줄여버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소비 심리 자체가 얼어붙어 장기 침체로 가버릴 수밖에 없으니 정부 쪽에서도 은행에 압박을 넣고 있다.[7] 슈퍼팩을 통한 유세는 미국 선거법의 규제 때문에 효율적인 광고 전략을 짜는 게 어려운 반면 개인 소액기부는 그런 게 없어서 개인 소액기부가 많은 오바마가 돈은 더 적게 받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효율은 더 좋다고 한다.[8] 버락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 후 작성한 트윗이며, 2014년 3월 2일까지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된 트윗이었으나, 2014년 3월 3일 가장 많이 리트윗이 된 트윗은 엘런 디제너러스가 가져가게 되었다.[9] 차기 대통령을 노리고 있는데 오바마가 되면 4년만 기다리면 되지만 롬니가 되면 최소 4년, 최대 8년을 버텨야 하는지라 이러한 계산이 작용한 것[10] 지난 1968년 이래 미국은 40년간 투표율이 50% 초반으로 거의 비슷하게 유지되었다.[11] "538" 은 플로리다에서 오바마의 0.0002%(100표)의 우세를 예측한 것을 포함해 모든 주의 결과를 맞췄다. 물론 퍼센테이지까지 맞췄다는 건 아니고… 여하간 조지 W. 부시 사태의 재현은 선거결과가 나온 시점에서는 그저 허풍에 불과하게 되었다.[12] 365대 173에서 27석이 아닌 32석이 줄어든 것은 지역간 인원 조정 때문.[13] 그리고 카운티별로 집계한 투표를 보면 샬롯과 랄리 같은 대도시를 제외한 지역들은 대부분 공화당을 찍었다.[14] 오하이오 징크스라고 해서 이곳의 선거인단을 차지하면 대선에서 승리하는 징크스이다. 2차 대전 이후 이곳을 빼앗기고도 대선에 승리한 건 존 F. 케네디가 유일하였으나 1960년 이후 60년만에 조 바이든이 오하이오를 도널드 트럼프에게 뺐겼음에도 승리하며 징크스를 깨트렸다.[15] 또한, 4년 후에 도널드 트럼프가 펜실베니아와 플로리다 주를 민주당으로부터 빼앗으면서 승리하게 된다.[16] 그러나 이는 공화당 지지성향이 매우 강한 미시시피 주의 지역적 특성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의 아성인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U.C. 버클리에서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또한 평균적으로 미국의 20대는 2008년보다 조금 부족한 약 63%가 오바마를 지지한 것으로 CNN 출구조사 결과 밝혀졌다.[17] 그러면서 사회주의자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는데 '''영국은 미국 교과서에서도 사회주의의 예로 드는 곳이다'''.[18] 2014년 4분기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5%가 넘었는데 이 수치는 근 20년 동안 미국이 기록한 최고 기록이다.[19] 한국으로 치면 신년연설이 되겠다. 미 대통령이 매년 1월 의회에 제출하는 신년도 시정 방침을 말한다.[20] 이날 오바마는 정책 반대시 거부권 행사를 암시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였는데, 역대 대통령 중 이렇게 강력한 거부권 행사 의지를 보인 적이 처음이라고 한다.[21] 동성결혼 지지선언 관한 후일담에 따르면, 오바마의 이런 지지선언 표명은 바이든이 오바마 팀에게 예고도 없이 독단으로 '말실수'를 통해 밀어붙인 결과라고 한다. 오바마 재선 캠패인은, 아직 여론이 동성 결혼을 받아들이기엔 시기상조라 판단해 시민결합과 Don't ask, don't tell 폐기를 밀어붙일 계획이었다. 바이든의 '말실수' 이후, 오바마 재선 캠프는 부통령 후보를 바이든에서 힐러리로 교채 하는것까지 고려를 했을정도. [22] 저 판결 당시 미국 연방 대법원의 구도는 진보: 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여성), 소니아 소토마요르(여성), 엘리냐 케이건(여성), 스티븐 브라이어) / 보수: 4(앤토닌 스캘리아, 클래런스 토머스, 존 로버츠(연방대법원장), 새뮤얼 얼리토 / 중도보수: 1(앤서니 케네디) 였다. 동성결혼에 찬성한 사람은 진보 4명과 중도보수 1명으로 총 5명이였다. 중도보수 앤서니 케네디는 대법원의 구도상 스윙 보트라고 불린다. 근데 본인은 이렇게 불리는 걸 엄청 싫어한다고. 그리고 이미 예전에도 동성애자들의 인권에 대한 판결에는 항상 동성애자들 편에 섰다. 앤서니 케네디가 이 판결문에서 썼던 보충의견은 많은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앤서니 케네디, 연방대법원 문서 참조. 참고로 저 보수는 상당히 강경한지라 완전 꼴통같은 의견을 개진했다.[23]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집으려면 양원의 2/3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24] 민주당원 59명, 공화당원 18명이 반대표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