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영화)

 



'''사일런스'''(2016)
''Silence''

'''제작사'''
IM 글로벌
세치 고리 픽처스
카파 데피나 프로덕츠
샤프소드 필름
에밋/훌라/오아이스 필름스
시켈리아 프로덕츠
'''배급사'''
[image] 파라마운트 픽처스
[image]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장르'''
드라마, 역사
'''감독'''
마틴 스콜세지
'''제작'''
바바라 데 피나
랜들 에멧
비토리오 세치 고리
엠마 틸링거 코스코프
가스톤 파블로비치
어윈 윙클러
마틴 스콜세지
'''원작'''
엔도 슈사쿠
'''각본'''
제이 콕스, 마틴 스콜세지
'''출연진'''
앤드루 가필드, 애덤 드라이버, 리암 니슨, 아사노 타다노부
'''음악'''
킴 앨런 클루그, 캐스린 클루그[1]
'''개봉일자'''
[image] 2016년 12월 23일
[image] 2017년 2월 28일[2]
'''러닝 타임'''
161분
'''제작비'''
'''4,000만 달러'''
'''대한민국 총 관객수'''
65,775명 (3월 9일 기준)
'''국내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1. 개요
2. 출연진
3. 예고편
4. 원작과의 차이
5. 스토리
5.1. 배경 설명: 일본가톨릭
5.2. 모델이 된 인물
6. 평가
7. 흥행
8. 기타


1. 개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016년 영화. 엔도 슈사쿠1966년 소설침묵》을 원작으로 하는 2번째 영화다.[3] 근세 일본의 가톨릭 탄압 속에서 고뇌하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종교적 성찰을 그리고 있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후보작이었다.
스코세이지가 1980년대부터 영화화하고 싶어했던 프로젝트였으나, 판권 문제로 계속 미뤄지다가 2013년에서야 가시화됐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2016년 12월에 개봉하는 것으로 확정지었으며, 12월 23일부터 제한적 상영을 시작했다. 개봉 후 상영관을 차차 늘려갔으나, 결국 박스오피스 10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700만 달러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채 막을 내렸으며 161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종교라는 무거운 주제가 흥행실패 요인으로 꼽힌다.[4] 파라마운트에서는 오스카 버프를 노리고 개봉시기를 잡았으나,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오스카에서는 촬영상 후보 하나밖에 지명받지 못했다.[5]

2. 출연진



3. 예고편



공식 예고편 한국어 자막 예고편

4. 원작과의 차이



  • 세바스티앙 로드리고라는 이름이 영화에서는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로 변경되었다. '로드리고(Rodrigo)'는 성(family name)보다는 주로 이름(first name)으로 사용되고, '로드리게스(Rodrigues)'는 성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로드리게스 쪽이 포르투갈인의 이름으로서 더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원작에서는 로드리게스, 가르페와 함께 호안테 산타마르타라는 또 한 명의 사제가 페레이라를 찾으러 나섰지만 호안테는 도중에 병으로 일본행을 포기했다고 나온다.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로드리게스와 가르페 두 사람만 일본행에 나선 것으로 나온다.
  • 모키치가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직접 만든 십자가를 주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 원작의 후일담 부분에 유럽 상인들의 물품을 검사할 때의 페레이라와 로드리게스의 대화, 기리시단 거주 구역에서의 로드리게스와 기치지로의 대화 같은 내용이 추가되었고, 죽은 로드리게스의 손 안에 모키치가 만들어준 십자가가 놓여 있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한국어 번역본들에서는 로드리게스의 마지막 다짐이 엔딩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 뒤의 '기리시단 주거 구역 관리인의 일기' 부분이 원작의 마지막 부분이다. '기리시단 주거 구역 관리인의 일기'는 작가가 실제 인물을 작품 속 인물인 로드리게스와 기치지로로 바꾼 것 외에는 천주교 박해 당시의 실제 역사 기록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 참고자료, 부록 정도로 생각하고 번역하지 않은 것. '기리시단 주거 구역 관리인의 일기'에는 로드리게스와 기치지로가 기리시단 주거 구역에 유폐된 채로 살아가는 내용, 기치지로가 성물을 가지고 있다 붙잡히는 내용, 기리시단 주거 구역에 있는 로드리게스에게 문서로 또 다시 배교를 확인받는 내용, 로드리게스가 마침내 일본에서 숨을 거두고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스콜세지 감독은 후일담 부분에 위에서 말한 내용들을 덧붙였다.

5. 스토리


시마바라의 난이 진압되고 얼마되지 않은 시기(1638년), 포르투갈 예수회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선교사 페레이라 신부(리엄 니슨 분)가 일본에서 일본인 천주교 신자들이 관리들에게 고문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신자들은 유황 온천수를 붓는 고문을 당하는 장면과 함께 페레이라 신부가 예수회 측에 보내는 서신이 나레이션으로 깔렸다. 편지는 여러 도시를 거쳐 몇 년 뒤에 도착했으며, 발리냐노 신부는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단 소문을 들었다"고 그의 제자인 가르페 신부(애덤 드라이버 분)와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루 가필드 분)에게 밝힌다. 이 말을 믿지 못 한 가르페 신부와 로드리게스 신부는 일본으로 직접 찾아갔다. 마카오에서 일본인인 기치지로(구보즈카 요스케 분)를 만나 뱃길과 현지 안내를 약속 받고 일본을 찾아갔다.
일본의 서남부에 위치한 토모기 마을에 상륙하자, 신앙을 비밀리에 유지하던 마을 주민들이 신부들을 숨겨주었다. 신부들은 미사를 집전했지만 갇혀 사는 것에 갑갑함을 느꼈고 어느 날 햇살을 쬐러 나왔다가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들켰다. 이들은 마찬가지로 신앙을 숨기고 있던 근처의 키치지로의 고향 고토열도[6]의 사람들이었고, 로드리게스 신부는 고토 섬을 찾아가 사목활동을 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자신들을 일본으로 안내했던 기치지로가 몇 년 전에 있었던 천주교 박해 당시에 배교하고 가족 중에 홀로 살아남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에게 고해성사를 해 주었다. 또한 선교 과정에서 이노우에가 잔혹하게 가톨릭 신자들을 박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일본인들이 정통 가톨릭 신앙과 달리, 자신들의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신부들이 왔다는 소문이 번져 나가자 나가사키 봉행소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나가사키 봉행소 소속의 고관 오오메츠키(大目付) 이노우에(잇세이 오가타분)[7]가 관리들을 데리고 와서 토모기 마을의 촌장을 붙잡는다. "사흘 내에 신부들을 내놓지 않으면 세 사람을 더 인질로 데려갈 것이다"라고 밝히고 촌장을 풀어주었다. 촌장(오이다 요이시 분)과 토모기 마을 주민들은 신부들을 밀고하지 않을 거라 합의하고, 인질로 잡힐 사람을 뽑았다.
이 와중에 고토촌 사람이란 이유로 기치지로도 인질에 포함되었다.[8] 인질들은 예수가 새겨진 석판을 밟을 것을 요구받게 되었고 로드리게스 신부는 밟으라 말하지만, 가르페 신부는 안 된다고 했다. 관리는 인질들에게 예수의 석판을 밟을 것을 요구하고 그들이 밟자, 십자가에 침을 뱉고 성모 마리아를 창녀라고 부를 것을 요구했다. 기치지로는 침을 뱉고 배교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거부하고 십자가에 묶여 며칠동안 거센 파도를 정면에서 맨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인질들은 굶주림과 물이 차면서 호흡곤란, 탈수 현상 등으로 며칠 안에 숨을 거두었다. 최후의 순교자인 모키치(쓰가모토 신야 분)는 성가를 부르며 숨을 거두었으며, 하느님은 어떠한 목소리도 보이지 않고 잔인한 침묵 속에 로드리게스는 혼란을 겪게 되었다.
로드리게스 신부와 가르페 신부는 흩어지게 되고, 로드리게스 신부가 고토 촌을 찾아갔을 때 마을은 한바탕 토벌을 당한 모양이었다. 근처의 야산으로 숨던 중에 기치지로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을 받던 중에 강가에서 물을 보다 예수의 현현을 보게 된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미친 듯이 웃다가 그를 발견한 관리들에게 붙잡혔고, 다른 가톨릭 신자들과 관청으로 끌려갔다. 일본인 신자인 후안(가세 료 분)과 모니카(고마쓰 나나 분)도 만났다.
관리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천민[9]에 집중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관리는 그들에게 배교할 것을 요구했다.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는 통역관(아사노 다다노부 扮)도 붙여주었으며 통역관은 가톨릭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그들은 예전에 신부들을 참수하는 등의 전략을 취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순교자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신자들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는 신부들을 배교시키는 전략을 취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신부들이 배교하면, 신자들도 줄줄이 배교할 거라는 게 이유였다. 신부가 배교하지 않으면 신자들을 죽일 것이라고도 밝혔다.
회유와 협박이 오가는 과정에 로드리게스 신부는 관리들이 생각보다 인격적으로 대함을 알게 되었으며 신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은 계속 일어났다. 기치지로는 로드리게스 신부를 다시 찾아와 붙잡히고 고해성사를 받았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자신에게 비교적 친절하게 대하는 관리가 잔혹하기로 유명한 이노우에임을 알게 되었다. 이노우에는 "가톨릭의 교리가 일본에 맞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지배 체제만 불안하게 한다"며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하루는 통역관이 로드리게스 신부를 데리고 바다로 갔으며 여기서 가르페 신부와 다른 신자들이 붙잡혀 온 것을 보게 되었다. 신부가 배교하지 않자 신자들을 짚단에 묶어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한 다음에 바다에 빠뜨렸으며 가르페 신부는 배교하지 않고 물에 빠진 신자를 구하려다가 익사했다. 통역관은 가르페 신부처럼 순수하지도 못하다며 로드리게스 신부를 비판했다.
그 뒤 통역관은 로드리게스를 에 데려간 다음에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를 만나게 했다. 그는 사와노 추안이란 일본식 이름을 얻고 일본인 아내와 자식까지 둔 상태였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크게 실망했다. 페레이라 신부는 천문학의학에 관해 일본인들을 돕고 있었고, 가톨릭의 교리를 비판하는 책까지 쓰고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노우에는 페레이라 신부를 배교시켰던 것과 같은 고문 방법을 사용했으며 신자들을 거꾸로 매달고 상처만 낸 뒤에 계속 피를 흘리게 하여 정신을 잃지 않게 하고 고문시키는 방법이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예수의 석판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순간 지속되던 침묵이 깨지는 그 순간 하느님은 "석판을 밟아라. 나는 너의 고통을 알고 있다며. 기꺼이 밟아라."고 말하자 로드리게스 신부는 석판을 밟고 배교했다.
그 뒤 로드리게스 신부는 페레이라 신부와 같이 나가사키에서 해외 물품을 검역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막부와 지방 정부가 그리스도교적인 물건을 금함에 따라, 그리스도교적 색채가 있는 물건을 거르는 게 그의 일이 되었다.[10] 그는 오카다 산에몬이란 일본 이름도 받게 되었고, 아내와 자식도 얻었다. 그 와중에 기치지로는 뻔뻔하게 로드리게스를 찾아와 고해성사를 하려고 한다. 처음에 로드리게스는 그를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신앙을 의식하게 만드는 기치지로의 존재와 그 상황에서 믿음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 뒤로는 네덜란드 상인의 관점에서 로드리게스 신부가 배교 뒤에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가 계속된다. 이 과정에서 페레이라 신부는 our lord란 표현을 쓴다. 이 점에서 뒷부분과 겹쳐 복선이 있는데, 페레이라 신부 역시 내심 속으로는 그리스도를 계속 믿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놀란 로드리게스 신부가 조용히 되묻자 그는 잘못 들은 거라며 부인했다.
로드리게스 신부는 그 뒤로 일본 정부의 감시를 받았고, 주기적으로 배교를 점검받았다. 그 과정에서 성물을 갖고 있는 게 들킨 기치지로는 배교하지 않았음이 드러나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 뒤 로드리게스 신부는 일본에 온 지 40여 년 만에 생을 마감했고, 일본 정부의 감시 아래 불교식으로 장례식을 치렀다.[11] 마지막에 세상을 떠난 로드리게스 신부의 주검을 비추면서, 시점은 그의 손에 자리한 작은 십자가를 보여준다.
영화가 끝나고 일본가톨릭 신자에게 헌정하는 문구와 신부들이 소속된 예수회의 표어인 “AD MAIOREM DEI GLORIAM(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가 떴다.

5.1. 배경 설명: 일본가톨릭


16세기 오다 노부나가의 치세 때 성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신부에 의해 일본가톨릭이 전해졌다. 오다는 애초에 종교에 부정적인 사람이라, 불교든 가톨릭이든 신경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절에 이르러 가톨릭의 교세가 커지면서 불교신토와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자 도요토미는 선교를 금지했다.
하지만 규슈 지방을 중심으로 유럽과 교류하고 있었던 탓에 묵인하는 수준이었고, 고니시 유키나가[12] 같은 기리시탄 다이묘[13]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는 도요토미가 망하고 에도 막부가 성립하면서 점차 가톨릭을 일본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로 보게 되고, 박해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가톨릭은 일본의 서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선교됐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먼 에도에는 신자가 적었다. 시마바라의 난후미에 등 대규모 박해가 이어지면서[14] 일본의 가톨릭 신자는 위축되었고 카쿠레키리시탄과 같이 음지로 숨어 들었다.
이후 200년이 넘게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이 이어졌다. 일본이 개화하여 신앙의 자유가 생기면서 가톨릭이 다시 들어오게 되고, 동방정교회, 성공회, 개신교그리스도교 타 종파들도 일본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 기존의 민족종교인 신토국가신토로 발전시키면서 그리스도교는 그다지 포교되지 않는다. 특히 일부 개신교 종파들은 한반도에서도 그랬지만 신사 참배를 거부해[15] 일제 시절 말기에 탄압을 받았다. [16]
어쨌건 추기경도 5명이나 배출한 데 비해서[17] 일본의 가톨릭 교세는 미약한 상태이다. 일본의 그리스도교 인구는 높게 보는 곳에서도 2% 수준이고 보통은 1% 수준으로 본다. 그 중에 가톨릭 인구는 40만여 명, 개신교는 종파를 모두 합해 50만여 명 정도로 추정한다.
다만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역대 내각총리대신 중에 그리스도인이 꽤 있다. 92대 총리를 지낸 아소 다로(가톨릭), 68-69대 총리인 오히라 마사요시(일본성공회), 가타야마 데쓰 46대 총리(개신교), 하토야마 이치로 53대 총리(개신교), 하라 타카시(가톨릭) 19대 총리

5.2. 모델이 된 인물


엔도 슈사쿠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철저히 취재했고, 대부분의 소재는 실제로 벌어진 일에서 따온 것이다. 즉 신자들에게 배교를 강제하기 위해 가해지던 여러 고문방법이나 처형방법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다.
  • "페레이라"로 나오는 크히스토방 페헤이라(Cristóvão Ferreira, 1580~1650)는 실제 예수회 소속 포르투갈 선교사로 마카오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가 되어 1609년 일본에 파견되었다. 일본어에 능했기 때문에 일본교구를 감독했으나, 1633년 막부에 체포되어 5시간동안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영화와 소설에서 묘사)을 받고 결국 신앙을 부정했다.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사와노 추안(沢野忠庵)이라는 이름을 받아 일본인으로 살았다. 스스로 선불교 신자라고 하면서 서양 실용서(천문서 "천문비용", 의학서 "남만류외과비전") 번역에 종사하는 한편 기독교의 모순을 지적하는 현위록(顯僞錄(이 책은 본인이 썼는지 아닌지 여러 설이 있다. 어쨌든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것은 맞다.) , 배야서(排耶書)를 썼다. 또한 막부에 체포된 여러명의 체포된 서양선교사들 취조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후미에에도 나타나 신자들에게 배교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런 행각이 유럽에 전해져서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 이를 확인하고 죄를 대신 갚기(대속) 위해 영화에서처럼 여러 선교사들이 파견되기도 했다. 이들은 체포되거나 순교했다.
  • "로드리게스"로 나오는 사람의 실제 모델은 주세페 키아라(Giuseppe Chiara, 1602-1685)다. 이사람은 영화와는 달리 이탈리아인이다.(정확히는 시칠리아 출신) 원작소설은 사제관계로 그리기 위해서 페레이라와 같은 포르투갈인으로 설정하였으나, 페레이라는 마카오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포르투갈에 제자를 둔 바 없다. 그러니까 사제지간으로 묘사된 영화와는 달리 이 둘은 배교후 일본에서 알게 된 사이다. 키아라는 페레이라와 같은 예수회 소속으로 마닐라를 거쳐 일본에 잠입했다가 1643년 5월에 후쿠오카 근처에서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이후 심한 고문을 받고 배교한 뒤 가톨릭을 근절하려는 막부와 협력하여 페레이라와 함께 선교사나 신도 색출에 앞장섰다.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신앙을 버리지 않아 순교한) 오카모토 산에몬(岡本三右衛門) 이라는 자의 이름과 가족을 받아[18] 에도의 막부에서 복무했으나 죽을때까지 감시를 받았다. 1685년 사망했고, 사망후 불교식 화장(다비)로 장사지냈다.
  • 이노우에 영주의 모델은 "이노우에 마사시게(井上政重, 1585-1661)"다. 도쿠가와 가신으로, 원래 영화에서 처럼 규수 북부의 치쿠고(筑後)의 슈고(말하자면 그지방을 다스리는 사람) 노릇을 했다. 이 곳에서 가톨릭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는데,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소설에는 나옴) 원래 가톨릭 신자였다가 막부의 금지령이 내려지자 출세를 위해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 탄압에 앞장섰다. 이런 공로로 1640년에 영지의 총석고가 1만석이 넘어 다이묘로 출세했고, 다카오카번(현재 치바현 근처)에 영지가 있었다.

6. 평가


'''메타크리틱'''
'''스코어 79/100'''
'''유저 평점 8.0/10'''
'''로튼 토마토'''
'''신선도 84%'''

'''관객 점수 69%'''
'''IMDb'''
'''평점 7.6/10'''
'''레터박스'''
'''사용자 평균 별점 3.8 / 5.0'''
'''왓챠'''
'''사용자 평균 별점 3.8 / 5.0'''
흥행과 별개로 영화 자체의 평가는 좋다.

7. 흥행


3월 초까지 전세계 흥행은 1,542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아직 더 개봉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흥행을 두고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종교 색채가 강한 터라 큰 흥행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7.1. 북미


2016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여 2,37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총제작비가 5천만달러 수준의 독립영화 수준인데도 이정도면 폭망.

7.2. 대한민국


'''대한민국 누적 관객수'''
'''주차'''
'''날짜'''
'''관람 인원'''
'''합계 인원'''
'''순위'''
'''일일 매출액'''
'''합계 매출액'''
개봉 전

3,030명
3,030명
-위
26,326,700원
26,326,700원
1주차
2017-02-28. 1일차(화)
7,030명
-명
10위
52,392,200원
-원
2017-03-01. 2일차(수)
11,917명
9위
94,744,600원
2017-03-02. 3일차(목)
5,136명
8위
36,239,400원
2017-03-03. 4일차(금)
6,131명
7위
48,776,600원
2017-03-04. 5일차(토)
9,276명
11위
74,083,800원
2017-03-05. 6일차(일)
8,442명
10위
66,839,600원
2017-03-06. 7일차(월)
5,482명
5위
37,643,000원
2주차
2017-03-07. 8일차(화)
4,793명
-명
9위
33,177,400원
-원
2017-03-08. 9일차(수)
2,372명
10위
16,095,100원
2017-03-09. 10일차(목)
2,166명
12위
14,426,300원
2017-03-10. 11일차(금)
-명
-위
-원
2017-03-11. 12일차(토)
-명
-위
-원
2017-03-12. 13일차(일)
-명
-위
-원
2017-03-13. 14일차(월)
-명
-위
-원
3주차
2017-03-14. 8일차(화)
-명
-명
-위
-원
-원
2017-03-15. 16일차(수)
-명
-위
-원
2017-03-16. 17일차(목)
-명
-위
-원
2017-03-17. 18일차(금)
-명
-위
-원
2017-03-18. 19일차(토)
-명
-위
-원
2017-03-19. 20일차(일)
-명
-위
-원
2017-03-20. 21일차(월)
-명
-위
-원
'''합계 '''
'''누적관객수 65,775명, 누적매출액 500,744,700원'''[19]
종교 영화이긴 하나 가톨릭 색채가 강한 영화라서 그런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같은 영화와 비교할 때 개신교 쪽에서의 반향은 작은 편이다.

8. 기타


  • 영화 대부분은 대만에서 촬영되었다. 왜냐하면 17세기 일본을 재연하기에는 제작비가 비쌌기 때문.
  • 촬영 기간 동안 구조물의 보강 공사 도중에 천장이 떨어져 작업하던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 일본의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이 무명 엑스트라 수준으로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패셔니스타이자 간지남으로 유명한 쿠보즈카 요스케는 완전 상찌질이(..)가 따로 없는 혼신의 연기를 선보이며, 차세대 국민 여동생 코마츠 나나 역시 그 동안의 청순가련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초췌한 몰골로 나온다. 카세 료 같은 경우에는 대사도 없이 병풍(...) 수준이다.
  • 기독교, 그 중에서 특히 가톨릭에 관한 내용이지만, 정작 신자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내용은 아니다. 신자들은 영화 감상 후 찜찜해거나, 보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는 신자들도 있다. 절망으로 시작해서 절망으로 끝난다. 라는 평까지 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순교자와 배교자 중에선 당연히 순교자의 손을 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배교를 권하는 작품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또 무리다. 주인공인 로드리게스 신부가 (겉으로) 배교하는 엔딩을 맞이하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고 최후까지 믿음을 간직하였다는 메세지를 보낸다. 또한 가루페 신부는 물에 빠진 신자들을 구하려다가 순교하였으며,[21] 평신도인 노익장과 모키치는 끝까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신앙으로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런 상황이면 배교해라'라고 권장하는 영화라기보다는, 가혹한 상황에서 배교하게 되는 대다수의 (신앙적 의미에서) 약자들에게 연민을 보내며 대안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봐야할 것이다. 기치지로의 경우처럼, 비슷한 죄들을 반복하면서도 그럴 때마다 (거짓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시 후회하여 고해성사를 보려고 달려오는 모습은, 당장 주변의 가톨릭 신자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겉으로 보자면 우스꽝스럽지만,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약자들의 모습이다. 영화는 그런 약자들에게 연민을 보낸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 교의적 시선에서 보더라도, 배교는 나쁜 일이겠지만 이런 연민의 시선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하기도 힘들 것이다. 로드리게스의 환청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속의 예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의 배교는 용서해주는 듯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 가톨릭계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가장 극보수적인 일부 가톨릭 신자들, 예컨대 CHURCH MILITANT 같은 곳의 신자들은 이 영화에 대해 "배교를 권장하는 영화"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이런 평가가 나온 이유는 엔도 슈사쿠가 가졌던 일본 천주교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그대로 영화에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엔도 슈사쿠는 소설속에서 배교자 페레이라의 입을 빌어서, 일본의 문화적 토양이 서구식 신의 관념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천주교가 퍼지기 어렵고, 일본인들이 받아들인 천주교는 원래 모습과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에서도 신부가 주는 묵주알을 마치 성물처럼 나눠갖는 일본인 신도들의 모습을 통해 이런 점이 나타난다.
  • 연극 배우 남정우[22]가, 자신을 배우로 이끈 계기가 되었던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혈혈단신으로 촬영장인 대만으로 넘어가 단역을 따낸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뉴욕 사무실에 찾아가려고 했으나 제지당하고, 이후 대만의 촬영장 앞에서 자신을 알리는 홍보문구를 피켓에 적어 서 있었다. 이윽고 이를 본 대만 영화 스태프가 보조출연자를 모집하는 회사를 소개시켜주었고, 결국 오디션에 합격해서 단역을 따냈다. 결국 5년 동안 노력해서 5초[23] 나오는 역을 따냈을 뿐이지만 그만큼 자신이 좋아했고 자신의 인생을 바꾼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노력한 열정은 높이 살 만 하다.(#, #) 대사도 다른 단역들과 함께 외치는 것이 전부지만 그를 위해 공식 극장 자막 번역가가 단독자막을 달아주었다 #
  • 감독인터뷰#

[1] 하워드 쇼어가 예정됐으나 교체됨[2] 원래 개봉일은 2월 22일이었으나, 루시드 드림, 23 아이덴티티 등 경쟁작들을 피해서 한 주 연기되었다.[3] 참고로 2번째 영화화며 첫번째는 1971년 시노다 마사히로가 만들었다.[4] 그런데 애초에 상영관 수를 750개로 늘린 걸 보면, 대체 흥행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날 개봉작 <리브 바이 나이트>는 제한상영으로 시작해서 확대 개봉을 2,800개가 넘는 관으로 했고, <패트리어츠 데이>는 3,120개, <몬스터 트럭>도 2,900~3,000개 사이였던 걸 보면, 애초에 흥행할 수가 없었고 그냥 흥행을 포기한 듯 하다.[5] 이 영화의 흥행 참패가 파라마운트의 브래드 그레이 사장의 퇴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말도 나왔다.[6] 카쿠레키리시탄으로 유명한 곳이다. 19세기에 일본에도 신앙의 자유가 생기면서 카쿠레키리시탄의 상당수가 가톨릭으로 돌아갔으며, 최후까지 일본식으로 바뀐 카쿠레키리시탄 신앙을 유지하던 사람들이 고토 섬의 사람들이었다.[7] 에도 막부 최고 직위인 노중(老中) 밑의 직책으로 고위 관리의 부정을 감찰하는 역. 하타모토 이상의 직급이 맡았다. 이노우에는 실존인물로, 시마바라의 난 때부터 천주교 박해로 악명이 높았다. 본인도 천주교 신자였다는 설이 있다.[8] 이동의 자유가 없었고 지방분권이 강했던 일본 중세인들의 마인드를 엿 볼 수 있다.[9] 한국 천주교도 초창기에는 권력에서 소외된 남인, 소론 등의 양반에게 먼저 전파되었다가, 나중에는 여성, 농민, 천민 등에게까지 널리 전파되었다.[10] 일본포르투갈, 스페인가톨릭 신부들이 선교하러 오는 나라들과 무역을 중단하고, 대신 선교하러 오지 않는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와 거래한다.[11] 그런데 재밌는 건 유일하게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을 허락 받은 그의 아내가 살며시, 조심스레 로드리게스의 손에 끼어 넣는 모양새가 있다! 아무래도 남편의 손에 작은 십자가를 쥐어준 것은 그녀인 것으로 추측된다.[12] 고니시 유키나가의 외손자 고니시 만쇼는 훗날 예수회 신부가 되었다.[13] 가톨릭을 믿는 다이묘[14] 학자에 따라 다르나 수천에서 수만 명의 일본인 신자들이 순교했던 것으로 추정한다.[15] 가톨릭은 신사참배를 종교행사가 아닌 제례로 받아들여 금지하지 않았다.[16] 물론 여러 개신교 종파들은 신사참배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 [17] 베드로 도이 다쓰오(1960-1970 재직), 바오로 다구치 요시고로(1973-1978 재직), 요세프 사토와키 아사지로(1979-1996 재직), 베드로 시라야나기 세이이치(1994-2009 재직), 스테판 하마오 후미오(2003-2007 재직) 등 총 5명으로 2017년 기준으로 생존한 추기경은 없다.[18] 이렇게 죽은 사람의 이름과 관직(직책) 가족을 받아 그사람과 동일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관습을 "나노리(名乗り,)"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중세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도 이어지는 곳이 있다. 조선 도공 후예인 심수관 일가도 이 풍습으로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19] ~ 2017/03/09 기준[20] 프란치스코 교황도 작품 속 수도사제들처럼 예수회 출신이다.[21] 특히 이쪽은 스크린상으로는 주인공인 로드리게스보다 덜 신실한 것처럼 묘사되어 배교할듯한 분위기를 풀풀내었으나, 실제로는 끝까지 배교를 하지 않고 신자들을 구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을 (좋은 의미로) 낚았다. [22] 2016년 KBS임진왜란 1592에서도 일본 백성 역을 맡은 경험이 있다.[23] 사실은 잘려서 3초 정도 나올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