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문명

 


1. 개요
2. 사용 역사
3. 목록
3.1. 4대 문명 목록
3.2. 문명의 요람
4. 내용
5. 전개
6. 4대 문명론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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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 4대 문명'''이란 인류 문명의 원류를 중국,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의 네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으로, '''중국''' 청나라 말기 변법자강운동 사상가이자 중화민국의 정치인이었던 량치차오(梁啓超)가 1900년 자신의 저서 《20세기 태평양가(二十世紀太平洋歌)》에서 주장한 개념이다.
서양에서는 하술할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이라는 개념만을 사용하며, 이는 4대 문명에 한정하지 않고 '고대 안데스(Ancient Andes) 문명' 등 세계 각지의 굵직한 문명과 문화들을 열거하는 표현이므로 외국인과 대화할 때는 사용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사용 역사


세계 4대 문명을 주장한 청나라의 량치차오(梁啓超; 양계초).
이러한 분류법의 원조는 서구 학계에서 나온 '문명의 요람(cradle of civilization)'이라는 용어로, 역사학계에서 '문명의 요람'은 특히 그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인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대 문명의 발상지들을 일컫는 관용구로 쓰였다. 당초 서양에서 이 말이 유행했을 때는 이집트 문명 하나만을 의미했지만,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 등이 추가되었고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들(잉카 제국으로 대표되는 안데스 지역, 아즈텍마야로 대표되는 메소아메리카 지역)을 포함시키며 시대에 따라서 숫자가 달라져 왔다.
이른바 '4대 문명설' 역시 이러한 유행에 따라 '''량치차오가 자신(중국인 개화파)의 관점대로 문명의 요람 네 개를 꼽은 것이며, 따라서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의 독자적 문명들을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인류학 및 문화학적 지식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어찌보면 4대 문명 개념은 서구권의 문명의 요람 개념보다 '동아시아 중심'적, '중국 중심적'으로 치중된 셈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할 때 서방과 동방을 대비시키면서 동방의 대표로 한자문화권을 내세우는 경우가 있어왔다. 그러나 이는 비서방의 대표로, 또는 동방의 대표로서 한자문화권에 특별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중심적인 접근일 수 밖에 없다. 중동, 인도, 중남미, 아프리카, 태평양 군도 등은 이 구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서양 선진국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담론이 많이 진행되어 이렇게 '마이너'하다고 여겨졌던 지역까지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서구중심주의 비판으로 내세우는 접근이 서구의 연구 내용보다 더 편협한 경우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 논점마저 실은 이론적 소스를 대부분 서구권에서 빌려오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적으로는 서구중심주의라는 담론조차 현대 서양학계가 과거 서양학계를 향해 하고 있는 반성에 더 가까우며, 오히려 동양(중국)학계는 서양학계보다 더 자문화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세계 4대 문명'이라는 용어가 익숙한 까닭은 '문명의 요람'의 개념이 한반도에 소개될 즈음 이것이 량치차오의 '4대 문명설'과 혼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앞서 '문명의 요람', 즉 초창기 문명이 발생한 여러 지역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을 갖고 있던 서구 학계에서는 정작 '4대 문명'으로 숫자를 고정하지 않는다. 영문 위키에서는 주요 문명을 다섯가지로 분류하였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권과 이집트 문명이 같은 문명권으로 묶여있고[1], 중남미의 메소아메리카 문명과 고대 안데스 문명이 각각 포함되어 있다.[2] 또 중국은 초기에 황하 문명뿐만 포함시키던 것에서 장강 문명 등 중국 내의 여러가지 문화권을 포함하여 중국 문명으로 통합시켰다.

3. 목록



3.1. 4대 문명 목록


  • 메소포타미아 문명 -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유역 메소포타미아[3].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쿠웨이트. 이란 후제스탄 일대
  • 이집트 문명 - 나일강 하류. 지금의 이집트 일대
  • 인더스 문명 - 인더스 강 유역.[4] 지금의 파키스탄인도펀자브 지방 일대
  • 황하 문명 - 황하 유역. 지금의 중국 북부 일대

3.2. 문명의 요람


익히 아는 4대 문명이 모두 포함되고, 추가로 안데스와 메소아메리카 연안의 2개 지역이 포함된다. 단, 문명의 요람은 '문명'보다는 지리적 개념을 사용함에 주의.
에게 문명을 넣기도 한다.
  •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 -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이 여기에 포함된다.
  • 인더스 평원(Indus Plain) - 인더스 문명이 위치한 지역
  • 중국 평원(China Plain) - 황하 문명, 장강 문명, 사천 문명 등을 모두 포함하는 중국 문명이 위치한 지역
  • 안데스 연안 (Andean Coast) - 잉카 제국이 위치한 지역이다.
  • 메소아메리카[5] 연안 (Mesoamerican Gulf Coast) - 아즈텍 제국마야 문명이 위치한 지역이다.

4. 내용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위치에서 발생하여 오래 전부터 서로 교류해 왔다. 이들 중동 문명은 나중에 인더스 문명과도 서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황하 문명은 타클라마칸 사막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앞의 세 문명을 서양 문명, 황하 문명을 동양 문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황하 문명의 경우, 황하 외 중국 각지에서도 문명의 모습이 포착되어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있다. 때문에 중국에서는 아예 '''중국 문명'''(혹은 중화 문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중. 장강 유역에서 비슷한 수준의 문명이 확인되고 있다는 이유로 황하-장강(혹은 양쯔-황하) 문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주류 학계에서도 이 용어가 정착하고 있는 편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기존에 황하 문명이란 용어가 너무 오랫동안 정착되어 아직 용어가 바뀌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교과서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사세계사 교과에는 '중국 문명'으로 교체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기존의 지역 외에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던 문명 유적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특히 서아시아는 최초 문명의 발상지로 꼽히는 곳답게 아예 한 술 더 떠서 추정연대가 '''매머드가 생존해 있었던''' 기원전 1만년(...)에 달하는 발달된 유적이 나오는 흠좀무한 지경이다.

5. 전개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1900년경부터 쇠퇴하다가 수세기 후 몰락했는데, 그 이유로는 여러 학설이 거론된다. 원인을 찾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 인더스 문명은 '''아직 문자도 해독을 못한다.'''[6] '''가장 유력한 멸망 원인'''은 몬순 지역이 동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벌어진 수계 및 기후의 변화. 이 때문에 도시의 식량 수요를 만족할 만한 배후 농경지가 사라지는 바람에 도시 자체가 버려지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7] 인더스 문명은 브라만교를 비롯한 인도 문화권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여겨진다.
메소포타미아는 바빌로니아 이후 비교적 빠른 시기부터 여러 종족의 유입(히타이트, 아시리아 제국 등)에 따라 문명의 정체성이 이리저리 뒤바뀌는 버라이어티한 역사를 겪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는 수천년간 선진국, 강대국들 중 하나였고 정복당한 후에도 무역으로 잘 나가는 지역이었다. 이들은 모두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에 정복당했고, 알렉산드로스 3세헬레니즘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거쳐 로마 제국의 세력권(일부는 파르티아-사산조 페르시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으며 이집트 문화와 남유럽 일대의 문화가 혼합되었고, 그 이후에는 이슬람화되었다.[8]
중국 문명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은 나머지 3대 문명에 반해 고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발전 수준이 빈약했다. 인구도 다른 문명들에 비하여 많지 않았던 편.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를 시작으로 급격히 발전하다가 한나라 시기에 포텐이 터지더니, 여러 면에서 매우 강력한 문명이 되기 시작하며, 한나라 멸망 후 이민족의 침입과 내부 혼란, 정복을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한편 또다른 시각도 있는데,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중국 문명(Sinic Civilization)은 한나라 말기까지 지속되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위진남북조 시대 여러 종족의 유입과 대승 불교의 도입을 통해 대략 서기 500년경 이전에 극동 문명(Far Eastern Civilization)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해체된 중국 문명의 잔해 속에서 탄생한 극동 문명이 바로 지금 중국에 현존하는 문명이라는 것이다.[9]
원래 문명이란 것은 끊임없이 서로 교류하고 변화하는 것이며 태곳적의 순수한 원시 문명을 아무 것도 섞지 않은 채로 발전시킨 국가나 민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문화를 전파해주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중국조차도 사실 따져보면 북방 유목민과 실크로드등을 통해 받아들이고 변화시킨 문화가 굉장히 많다.[10]
한족왕조가 정복된 이후로도 한족들이 관료와 학자로서 문화를 주도한 것처럼, 이집트 및 메소포타미아 역시 페르시아의 통일이나 이슬람 세력의 도래 이후로도 지식인층은 중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슬람교를 퍼뜨린 아랍인들은 본디 사막과 오아시스를 유랑하던 유목민이라 오히려 문화적으로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동로마인들에게 동화되었다. 물론 이와는 조금 다른 점도 존재한다. 오스만 제국 같은 경우는 동유럽인을 더 중시하였으며 아랍인들 역시 이란의 문명을 흡수하긴 했지만 이란인과 동화될 생각은 별로 없어서 이슬람 제국에서 우월적 우위를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아랍인들이 관용을 베푼 이유도 피정복민들이 같은 무슬림으로 개종하고 아랍의 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진족 금나라거란족 요나라, 몽골족 원나라 만주족 청나라 역시 이중지배 체계를 통해 정복자로서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혼인금지 등을 통해 동화를 거부한건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몽골의 경우는 아예 한족을 원제국의 최하층민인 3, 4등급민으로 분류하면서까지 강력하게 몽골족 우월주의를 고집했다. 몽골족의 통치를 돕기위한 기술관료 등의 파트너쉽 계층도 한족 대신에 색목인들을 등용한건 널리 알려진 얘기. 거란족의 경우는 여진족에게 망한 이후 서쪽으로 이동해 서요를 세웠다가 다시 몽골에게 망하면서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동화되었고, 여진족의 경우는 몽골에게 망한 이후 대부분이 도륙당하고 현재는 러시아 연해주의 나나이족이 되어 살고 있다. 심지어 몽골족은 가장 거세게 탄압했음에도 아예 현대에도 독립국가로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중국의 입식 문화와 치파오, 변발, 호복 등은 유목민 정복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역으로 한족에게 퍼뜨린 것이다.
또한 중동이 종교적으로는 토속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화, 이슬람화되었긴 하지만 이 또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뿐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겪은 일이다. 중국도 역대 왕조중에 불교를 거의 국교수준으로 숭앙한 국가들이 많았고 종교 자체가 금지되어 강력한 탄압을 받는 현대에도 중국 내 최대 종교는 불교다. 그리고 이 불교는 중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온 것이고...아무튼 현재 세계에는 자신들의 토착 종교 대신 불교, 이슬람, 기독교의 3대 종교를 믿는 국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신들의 고유 토속 종교를 유지하는 집단이 있다고 해도 다른 종교와 섞인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지 원시 신앙 그대로 순수하게 이어지는 쪽은 오지의 부족을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도 토착 무속신앙 대신 기독교와 불교가 압도적이고 일본의 신토도 불교와 융합한 것이며 초기 야마토 시대의 신앙과는 천지차이다. 중국에서도 전통적인 복희나 여와 숭배 같은 고대 신앙은 이미 종교로서 사라졌고 도교나 불교 등 여타 종교에 혼합되었다.

6. 4대 문명론에 대한 비판


인류학이 발전함에 따라 한 문명이 인접한 문명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며 발전해 왔다는 것이 자명해졌으며, 이에 따라 '지배자적 입지'를 기준으로 4대 문명을 구분하는 것이 단지 오리엔탈리즘과 힘의 논리에 기반한 편협한 사고임이 드러났다.[11]
또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한 레반트도 4대 문명이라는 용어 때문에 묻혀버리는 감도 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육로로 교류하려면 사막과 바다 사이에 있는 레반트의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레반트도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못지 않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대로 치자면 이 세 지역은 초승달 모양의 고대판 메갈로폴리스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란(페르시아) 역시 옆의 메소포타미아[12]나 이집트에 비해 고고학적 조사가 상대적으로 미진하고, 소위 4대 문명에 꼽히지도 않아 존재감이 낮은 편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곳 역시 상당히 발달한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엘람 문서 참조.
근래까지도 몇몇 국가에서는 4대 문명이라는 용어를 대중적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학, 고고학계에서는 4대 문명이라는 말을 거의 내세우지 않는다.
물론 "세계 4대 문명"이란 표현의 문제는 제쳐두고, 이들 문명이 시대적으로 앞섰고, 규모도 컸고, 세계사에 끼친 영향도 큰 편이기에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다만 교육현장에서 그딱히 그 문명들로만 한정해서 최초의 문명을 규정하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예전에도 '''어디까지나 편의상'''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에서 나오는 대학은 물론 중고등학교 교과서들도 주요 문명들을 필두로 열거하며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일부 학자가 쓴 세계사 서적에서는 의도적으로 저 네 문명 말고 다른 문명들도 존재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건 유튜브에 올라온 세계사 애니메이션. 고생하며 만든 명작이긴 하지만, 이것도 다소 서구중심적이라고 비판을 받는데 몇몇 문명을 간과했다는 이유에서다.

7. 세계 5대 문명?


북한에서는 1990년대부터 세계 5대 문명이라며 대동강 문명설을 밀고 있는데 당연히 코미디도 못되는 사이비 역사로 여겨지며 진지하게 인정되지 않는다. 평양단군릉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믿으면 심히 곤란하다. 비슷한 케이스로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유의 문명으로 내세우고 환빠들이 동이족 것이라며 실컷 우긴 홍산문화("요하문화")도 있다.
이만갑에서도 다뤄졌다. #
과거 신용하 서울대 명예 교수는 한강 문명설을 주장했는데, 고조선은 신석기 시대 후기 한강 주변에서 독자적 문명을 이루고 있던 한(韓)족이 만주예맥족(예+맥)과 연합해서 세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광활한 고양시, 김포시 습지(김포평야)에서 생산된 쌀은 고조선 세력의 경제적 밑바탕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고조선이 초기에 요동 지방에 위치했다가 후기에 연나라에 의해 대동강 유역으로 밀려나갔다는 설이 지배적인 만큼 근거가 없다.[13]

[1] 비옥한 초승달 지대 Fertile Crescent 로 묶인다[2]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긴밀하게 교류한 역사가 있으나 이 두 지역은 교류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각각이 별개로 문명으로서 성장했기에 분리한 것이다.[3] 이집트, 레반트와 묶여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린다.[4] 갠지스강을 추가하기도 한다.[5] 멕시코만 지역[6] 문자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긴 텍스트가 필요한데 현재 남은 인더스 문명의 문자는 인장에 새겨진 '''몇 글자''' 수준 밖에 없어서 해독 자체가 불가능하다.[7] 고전적인 아리아인 침공설은 더 이상 진지하게 이야기되지 않는다. 고고학적인 결과로 보나, 인도유럽어족의 확장 원인을 농경 문화 범위의 확장에서 찾는 아나톨리아 모델로 보나, 인도 상위 카스트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R1a Y 염색체 하플로타입의 인도 유입 시기를 보나 아리아인의 침공론을 반증할 증거는 많다.[8] 그나마 이집트는 이집트인의 장례풍습이나 생활문화 등을 요밀조밀 뜯어보면 역시 고대 이집트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9] 덧붙이자면 그는 한국과 일본을 극동 문명의 분파로 따로 분류했다.[10] 예를들어 중국 하면 떠오르는 패션 아이템인 치파오와 황비홍의 상징인 변발도 이민족 정복왕조인 만주족의 지배를 거치며 퍼지게 된 것이지 본래 한족의 것이 아니며, 또 한국이나 일본과 달리 의자에 앉고 침대에서 자는 입식생활도 북방 유목민들을 통해 전파된 것이다. 심지어 원말명초의 고려양도 있다. 중국의 문화발달역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종교인 불교 역시 인도의 것이다.[11] 4대 문명이 오리엔탈리즘의 결과라는 비판은 다소 문제가 있다. '4대 문명'이라는 개념으로 4개 문명을 취사선택해 사용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황하문명을 추가하고 개선이 없었단 점에선 동아시아 중심적 개념에 가깝다. 서방은 이미 문명의 요람이라는 개념을 통해 안데스나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문명을 포함시키고 있다. 문명의 요람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그것이 문화culture가 아니라 문명civiliztion으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독립적으로 등장한 별개의 문명인지가 영향을 미친다. 아래 내용들도 이와 관련해 생각해보면 왜 무엇은 포함되고 무엇은 제외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엄밀하게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문자 그대로 문명의 요람 역할을 한 지역들에게 일반명사처럼 문명의 요람이란 개념을 널리 사용하기도 한다. 서구중심주의라는 논점은 많은 경우 용이한 비판적 접근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비판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다보니 이 경우처럼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이 초점에서 빗나간 경우도 흔하게 발견된다.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12] 여기에 포함시키기도 한다.[13] 한반도의 농경 문화는 청동기 시절에 선진 농경 문화를 요동으로부터 도입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신석기 시절에는 쌀농사가 대세가 아니었다는 말씀. 황하 문명도 청동기 시기 이전에는 쌀이 아니라 기장 농사로 먹고 살았고, 장강 문화권에서 쌀농사를 배운 연후에야 쌀농사를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