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팀
1. 개요
한 팀의 에이스가 될 만한 복수의 리그 엘리트급 선수들이 리그내의 자유계약 시장질서를 흔들어가며 다수 모인 팀으로서, 흔히 '사기팀'이라고도 불리는 것.
슈퍼팀은 공식 명칭이 아니다보니, 이에 대한 정의가 애매한 감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통용하는 정의는 위와 같다. 이 문서에서는, 최근 트렌드가 된 'NBA에서의 슈퍼팀'에 대해 다룬다.
과거에도 전성기가 지난 에이스들이 트레이드나 자유이적을 통해 가끔 뭉치곤 했으나, 르브론 제임스가 2010년에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에이스들인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와 함께 마이애미 히트에서 뭉치고 좋은 성과를 거두고, 2016년에 이미 전 시즌에 73승이나 거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거의 전력을 유지한 채 MVP급인 케빈 듀란트를 영입하는 등 슈퍼팀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려는 듯한 기세가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슈퍼팀"과 "강한 팀"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2016년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2015년 파이널을 우승하고, 다음해 73승을 거두고 우승 직전까지 간 팀이지만, 이 팀을 슈퍼팀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진 않았다. 이 팀은 슈퍼스타들을 긁어모아 급조된 팀이 아니라, 팀이 운영을 잘하고 육성에 뛰어나 스테판 커리,클레이 탐슨,드레이먼드 그린,해리슨 반스등 자체 지명 선수들을 꾸준히 키워나간 팀이기 때문.
그런데 여기에 듀란트 한 명을 추가한 '17년 워리어즈'부터는 슈퍼팀이라고 부른다. 듀란트가 합류한 방식이 갑작스런 리그 흥행에 따른 샐캡 폭등으로 샐캡 여분이 생기자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듀란트를 덜컥 사인한 것이기 때문.
즉, '슈퍼팀'이란 명칭은 시장질서를 흔드는 편법성 방식으로 엘리트급 선수가 한팀에 모이면서 그 팀 구성원들의 재능이 압도적인 경우를 일컫는 것이지, 그 팀의 전체적인 전력(경기력)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1] 슈퍼팀이 아닌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히트를 꺾었다고 해서, 스퍼스를 슈퍼팀으로 부르진 않는다.[2]
같은 이유로, 유럽축구의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나, 야구의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같은 팀 역시 슈퍼팀으로 정의하기 살짝 애매하다. 돈지랄이 리그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스타선수를 사들이는게 리그 규정상 합법이기 때문이다. NBA는 그 리그 규정을 강화한 샐러리캡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제도적으로는 현 NBA 샐러리캡 제도의 실패와 관련되어있다. 맥시멈 제도를 통해 리그의 상식을 파괴할 정도의 슈퍼 엘리트급 선수가 존재하더라도 맥시멈 제도로 묶여있으면 이 선수가 벌어들이는 실제 가치보다 한참 적은 연봉을 받기 때문에, 사치세를 감수하고라도 그 선수를 데리고 있는게 더 큰 이익을 보장하며, 이런 식으로 장부상 많으면 세명 이상의 엘리트 or 슈퍼 엘리트급 선수가 한 팀에 있어도 규정위반을 피할 수 있으며, 래리 버드 예외조항등 각종 예외조항과 흔히 말하는 페이컷을 통해 연봉을 조정하여 맥시멈보다 적게 받아 장부를 맞추면, 슈퍼 엘리트 코어+롤플레이어로 15인 로스터를 채워 강력한 팀을 완성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이런 팀 결성에 대한 논쟁은 크게 몇가지 핵심 사항들이 있다.
- 슈퍼 엘리트급 선수들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한 팀에 모이는 것이 과연 리그의 시장질서를 해치는가? 아닌가?
- 이 과정에서 몇몇 선수들이 규정준수를 위해 시장가치보다 연봉을 깎는 이른바 페이컷이 리그의 시장질서를 해치는가? 아니면 컨텐더의 특권인가?
- 각종 예외조항으로 만들어지는 슈퍼팀의 결성을 저지하기 위해, 현재의 소프트 샐러리캡을 완전 하드 샐러리캡으로 바꾸고 맥시멈 제도를 없애는 것이 타당한가? 아닌가?
2. 배경
돈 많은 팀들이 훌륭한 선수들을 쓸어가는 EPL이나 프리메라리가 등과 달리 NBA는 샐러리캡의 존재, 그리고 맥시멈 연봉의 존재 때문에 이런 식의 돈지랄, 그리고 슈퍼스타 모으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3]
일반적으로 올스타급 이상의 선수들은 당연히 시장에서 맥시멈 연봉을 받을 수 있으며, 이 때문에 각 팀에 에이스급 선수들이 한 명만 있던 시기엔 웬만한 팀들은 에이스급 선수와 조력자들을 감당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구단주가 가난한 편인 스퍼스같은 구단이 왕조를 구축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돈 외에 결정적인 요소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우승'''이었다.
사실 프로스포츠에서 우승은 어느 종목이나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야구나 축구같은 경우 한 선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제한적인 영향만 미치는 터라 우승을 못 하더라도 그 선수의 실력 자체가 심하게 폄훼되지는 않는 편이다.[4]
그러나 유독 농구는 전원공격/전원수비에 5명이 뛰는지라 한 선수의 존재가 절대적이었고, 이에 따라 아무리 기록이 뛰어나도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는 선수에게는 "자기만 잘한다"는 꼬리표가 붙었다.[5]
이런 와중에 90년대에 마이클 조던이란 불세출의 스타가 우승을 쓸어담으며 이러한 "무관의 제왕"들이 대거 배출되고, 이들은 커리어에서 이런저런 폄훼를 받게 되었다. 또한 우승과 개인기록을 둘 다 거머쥔 조던의 존재로 인해, 그의 후계자들을 찾던 NBA팬들은 "조던처럼" 한 팀에서 독보적인 활약으로 개인기록과 승리를 모두 거머쥐는 그런 슈퍼스타들을 찾게 되었다.
뒤집어 말하면 아무리 날고기어봤자 조던처럼 우승하지 못하면 리그의 지배자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추가로 NBA 슈퍼스타들은 광고수익이 연봉을 가볍게 초과하는 경우도 있는지라 돈을 벌만큼 번 슈퍼스타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시장가치보다 적게 받고 강팀에 합류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은 슈퍼팀들의 탄생으로 나타나고 있다.
3. 역사
사실 에이스 출신들이 강팀에 가는 사례는 과거에도 종종 있어왔다. 득점기계였던 밥 맥아두가 80년대 레이커스 왕조에 합류한 케이스처럼. 그러나 이들은 전성기 기량을 대다수 잃고 합류했기 때문에 큰 반향을 못 일으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각에서는 명예의 전당 멤버가 8명 있었던 60년대 보스턴 셀틱스 왕조가 슈퍼팀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나, 빌 러셀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이들 중 몇 명은 올스타에도 한번 선정 못 되던 평범한 선수였으나 셀틱스 왕조에 대한 예우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경우였다. 또한 대부분은 러셀과 함께 한 시간이 13년 커리어의 절반 정도거나 그 이하라(셀틱스 왕조에서 러셀 다음으로 위대한 선수였던 밥 쿠지는 11번의 우승 중 6번만 함께했다) 정작 셀틱스에서 슈퍼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했던 적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쿠지와 토미 하인손이 스타급이었던 때 존 하블리첵은 올스타에도 못 오르던, 특급식스맨 정도였고, 하블레첵이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했을때 둘은 이미 은퇴했었다. 러셀과 10년 이상 함께 뛰며 꾸준히 수준급 기량을 보여준 선수는 5회 올스타 샘 존스 뿐이었다.
사실상 역사상 최초의 슈퍼팀이라고 할만한 팀은 1968-69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였다. 이미 당시 올NBA퍼스트팀 포워드 엘진 베일러와 세컨팀과 퍼스트팀을 오가던 가드 제리 웨스트로 이뤄진 우승후보급 팀에 68년 MVP인 윌트 체임벌린이 합류한 이 말도 안되는 라이업은 당연히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팀은 노장 러셀과 샘 존스, 그리고 떠오르는 스타 하블레첵이 이끌던, 플레이오프에도 간신히 턱걸이로 합류한 셀틱스에 7차전 혈투끝에 패배하고 만다.
또한, NBA가 샐러리캡을 도입한 계기가 된 80년대 쇼타임 레이커스도 슈퍼팀의 사례이다. 70년대 후반까지는 그저그런 팀이었던 레이커스에 밀워키 벅스를 우승까지 이끈 카림 압둘 자바가 FA권한 행사로 구단에 압력을 넣어 벅스에서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되고, 구단 운영에 크게 몰두하지 않았던 하위권 팀들의 미래 1라운드 픽을 사들였다가 그게 대박이 터지면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이 되어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가 레이커스에 합류했고, 그덕에 쇼타임 레이커스는 80년대 5번의 파이널 우승, 3번의 준우승을 거두었다. 그에 대항하던 래리 버드, 케빈 맥헤일, 로버트 패리시의 보스턴 셀틱스 역시 슈퍼팀이라면 슈퍼팀일수 있는게, 그 기간 래리 버드가 샐러리캡 제도를 거부하고 팀과 재계약 맺으며 버티다가 생긴게 바로 래리 버드 예외조항이기 때문.
하지만 이때문에 두 팀을 슈퍼팀을 규정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견해도 나온다. 먼저 레이커스의 매직 존슨 드래프트 1위 영입건은 FA인 게일 굿리치가 뉴올리언즈 재즈와 계약할 수 있게 하는 대가로 1, 2라운드 지명권을 받은 FA 보상개념의 성격이었는데 재즈가 생각 외로 너무 못해 전체 1순위로 둔갑했으며, 제임스 워디 지명권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정상적으로 부치 리 ↔ 돈 포드를 맞트레이드하면서 서로의 지명권를 맞바꿨는데 하필 클리블랜드가 못하면서 또 그게 1순위로 둔갑한 것이다. 즉, 레이커스가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것이지 무슨 시장질서를 뒤흔든게 아니다. 두 경우 당시에는 공정성에 대해 별 말이 없었는데 지명권이 하필 상대팀의 삽질로 1순위가 되어버린 경우.
셀틱스의 경우 샐러리 캡/NBA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버드가 샐러리캡 제도를 거부한게 '''아니라''' 당시 리그는 팀들이 1983-84시즌 이후 새로 도입되는 샐러리캡 때문에 프랜차이저들을 허무하게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미리 이 규정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즉, 현재 프랜차이저가 원 소속팀과 더 큰 금액에 계약할 수 있게 하는 제도와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저 유지를 위한 규정이며, 버드 한 명을 위해 만든 제도가 아니다. 하필 그때 FA가 되는 선수 중 가장 거물이 버드여서 버드의 이름이 붙은 것 뿐이다. [6] 당시 버드와 셀틱스는 꼼수나 편법을 쓴게 아니라 '''다른 팀들이 모두 적용받는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받으며''' 정상적으로 연장계약했다. 그러니, 셀틱스 빅 3를 받쳐주는 롤플레이어였던 세드릭 맥스웰을 단지 92년 파이널 MVP한번 타갔다고 셀틱스를 슈퍼팀 반열에 올리는 것 역시 부당하다
현대농구에서 슈퍼팀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96-97시즌 휴스턴 로키츠, 그리고 2003-04시즌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이다.
전자의 경우 명예의 전당급 멤버인 하킴 올라주원,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버티는 팀에 MVP 출신인 찰스 바클리가 FA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합류했다. 포인트가드가 허접하고 플레이스타일상 시너지가 그리 좋진 않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어쨌거나 과거 골밑을 박살내던 올라주원과 바클리, 그리고 마이클 조던의 라이벌로 불리던 드렉슬러의 만남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은 너무 나이가 많았다.[7] 안 그래도 고질적인 체중관리 문제로 전성기가 빨리 꺾인 대표적인 스타인 바클리는 운동능력의 상실로 과거 엄청났던 득점력을 많이 잃었고, 원래 좋은 편은 아니던 수비가 더 나빠졌다. 드렉슬러는 그래도 준수한 기량을 유지했지만 예전의 "Clyde the Glide"가 아니었다. 유일하게 정상급 센터의 기량을 갖고 있던 올라주원이었지만, 그래도 34세의 노장이었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후보로서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서부컨퍼런스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마지막 한 단계를 넘지 못하고 존 스탁턴에게 위닝샷을 얻어맞으며 패배하고 만다.[8]
2003-04 레이커스의 경우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 만 40세가 가까웠던 칼 말론, 30대 중반이었던 게리 페이튼이었지만, 코어인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는 각각 30대 초반, 20대 중반으로 젊었다. 게다가 오닐/브라이언트의 원투펀치만으로 이미 우승후보로 꼽히던 터라 여기에 아직 포지션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던 둘이 합류하자 리그는 말 그대로 경악에 휩싸였다. 거기다, 전년도까지 190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아 리그에서 6번째로 고액연봉자였던 칼 말론이, 비록 40세라는 나이 문제가 있다고 해도 레이커스와 1년 150만 달러라는 굴욕적인 수준의 계약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리그에 주는 충격이 매우 컸다. 04 레이커스의 일명 반지 원정대가 논란이 됐던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칼 말론의 상식밖의 페이컷 문제.
그러나 "레이커스의 말론과 페이튼"은 각 팀에서 에이스 노릇하던 때와 달랐다. 유타에서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수가 18년동안 통합 한자리수였던 철인 말론은 커리어 말미에 장기결장하는 부상을 당했고, 평생 자신을 중심으로 한 모션오펜스와 투맨게임을 해온 그는 포스트맨을 중심으로 볼이 없이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응하는데 어려워했다.
더 심한 경우는 페이튼이었다. 본래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한 선수의 리딩에 대한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9] 게다가 필 잭슨은 전통적으로 PG를 중시하지 않는 감독이였고, 그의 팀에서 1번은 항상 실력이 딸리는 선수가 거의 리딩/득점 보조로 나오긴 했다. 이미 우승을 수차례 차지한 시스템을, 전성기가 확연히 지난 페이튼 하나 때문에 바꾸는 것은 무리였고 이 시스템에 들어간 페이튼은 전시즌 20점 8어시스트를 기록했음에도 공격스탯이 대체적으로 하락한다. 심지어 발이 늦어져 최대장점인 수비조차 타격을 입어 결승에서 천시 빌럽스에게 털리고 만다.
애매한 케이스는 2012-13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이다. 전 시즌에 올NBA퍼스트팀 가드 코비 브라이언트, 퍼스트팀 센터 드와이트 하워드, 전전시즌에 올NBA세컨팀 포워드 파우 가솔 그리고 늙었지만 평균 10개 어시스트를 기록하던 스티브 내쉬가 뭉쳤으니 당연히 슈퍼팀이어'''야했다.'''
그러나 하워드를 제외하고 늙어가는 이들은 떨어지는 기동력과 겹치는 플레이로 인해 최악의 시너지를 발휘하며 플레이오프에 턱걸이 진출, 1라운드 스윕 광탈이란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 팀을 슈퍼팀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보다 앞선 07-08시즌, 즉 파우 가솔의 트레이드 영입후의 레이커스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파우의 트레이드 영입이 시쳇말로 조공or약팀 등골 뽑아먹기수준으로 레이커스에게 유리했었기 때문. 다만 이때는 트레이드 자체가 말도 안되는 원사이드고 파우가 팀에 딱 맞는 조각이라 엄청나게 전력이 올라가긴 했지만 슈퍼스타 두명만으로 슈퍼팀이라도 하긴 좀 약하긴 했다. 게다가 파우는 스타라도 후술되는 마이애미 빅3의 넘버2 웨이드나 17골스의 커리/듀란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4. 현재의 슈퍼팀들
이처럼 이때까지 에이스들이 모인 슈퍼팀들은 각자의 재능이 아무리 크더라도 합치는 순간 시너지는 커녕 각자의 장점을 깎어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슈퍼팀으로서 전력은 우승후보급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도 결국 궁극의 목적인 우승에는 실패해 트렌드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전환점이 된 것은 2007년 보스턴 셀틱스가 트래이드로 기존 폴 피어스에 케빈 가넷과 레이 알렌을 영입한 것이었다. 사실 알렌과 피어스가 뭉칠 때만 해도 다이나믹 듀오를 중심으로 강팀이 되긴 하겠지만 (전 시즌에 셀틱스는 꼴찌권 팀이었다) 우승후보로 꼽히진 못했는데, MVP출신인 가넷이 합류하면서 단번에 우승후보로 꼽혔다.
이 팀이 기존 팀과 다른 것은 급조된 팀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짜임새가 좋고, 각자 선수들의 장단점이 어울러진 팀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알렌과 가넷은 다재다능한 선수들이었고 보스턴에 합류 후 터줏대감 폴 피어스에게 득점 면에서 옵션을 많이 양보하면서 가넷은 수비와 리바운드에, 알렌은 외곽슛과 보조리딩, 그리고 외곽수비에 집중하면서 엄청난 효율성을 보여주었다.[10] 결국 이 팀은 우승을 하면서 사실상 현대농구에서 급조된 슈퍼팀으로 확실한 성과를 거둔 최초의 팀이 되었다.
그러나 이 팀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끈 것이라기 보기는 어렵다. 보스턴 빅3가 96-97시즌 휴스턴 로키츠, 03-04시즌 LA 레이커스에 비해서는 훨씬 젊었지만 피어스를 제외하곤 전성기에서 한 풀 꺾인 선수들이었고,[11] 무엇보다 팬들의 시각이 "셋 다 그동안 할만큼 했다"란 인식이 강했다.[12] 또한 앨런과 가넷의 합류는 페이컷이 동반된 FA계약이 아닌 당시 보스턴 단장인 에인지가 성사시킨 트레이드로 이루어졌다. 보스턴-시애틀(알렌), 보스턴-미네소타(가넷)간 트레이드 논의는 둘 다 개별적으로 진행되었고 두 건의 트레이드는 한 달 넘는 기간을 두고 각각 성사되었다. 가넷이 알렌이 보스턴에 합류하기 전까지 트레이드를 거부했지만 이건 전 시즌 동부 컨퍼런스 최하위였던 보스턴의 전력이 워낙 막장이라 그런거지 슈퍼팀 결성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즉, 보스턴 빅3는 커리어 후반부(라고 생각하기엔 전성기에 훨씬 가깝긴 하지만)에 슈퍼팀을 결성하고, 결성 과정도 전적으로 구단이 주도한 방식이었다는 면에서 기존 슈퍼팀의 연장선에 가까웠다. 또한 숫자가 많아서 그렇지 셀틱스도 제프 그린과 알 제퍼슨이라는 롤플레이어 이상급의 좋은 선수가 넘어갔으며 가넷 트레이드 과정에서 2개의 1라운드 지명권을 넘겼기 때문에[13] 일방적으로 퍼준 거래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바뀐 건 2010년, 르브론 제임스의 이제는 전설이 된 "The Decision"쇼와 함께였다. 르브론은 20대 중반 나이에 벌써 2연속 MVP에 확고부동한 리그 최고의 선수였으며, 그 때까지만 해도 조던의 위상에 진지하게 도전할 수 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유일한 선수였다. FA가 된 르브론의 행보에 NBA 전체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클리블랜드 잔류냐, 이적이냐를 두고 팬들의 관심이 절정에 달했던 이때 르브론은 ESPN에서 방영된 한 시간 특집 생방송을 통해 자신의 결정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선수가 비교적 낮은 확률의 예상을 뒤엎고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였던 드웨인 웨이드, 그리고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올NBA세컨팀까지 올랐던 크리스 보쉬와 마이애미 히트에서 전성기에 뭉친 것이다!''' 결성 당시 이들의 나이는 웨이드 만 28세, 보쉬는 26세에 르브론은 생일이 안 지나 25세로 예전같으면 한 팀에 한 명, 많아도 두 명이 있는게 당연하던 에이스급 셋의 결성에 리그는 경악했다.[14] 게다가 그과정에서 세 선수 모두 리그가 규정한 맥시멈 연봉이 아닌 각각 3~4M씩 연봉을 깎으면서 그 연봉으로 빅 3를 받칠 롤플레이어 영입+기존 베테랑 연장계약에 쓸 수 있었기 때문에[15] 그것 또한 경악할 일이었다.
이렇게 결성된 마이애미 히트는 시너지 효과가 적었고 오히려 각자의 장점을 깎어먹는 슈퍼팀의 전형이었지만 끝내 우승했다. 이 중 가장 큰 희생을 한 것은 보쉬로 그는 중거리 위주의 득점원이었지만 이를 거의 포기하고 3점을 갖춘 수비형 센터로 변신하면서 히트에서 단 한번도 토론토 시절의 위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또한 둘 다 볼을 갖고 있어야 위력이 발휘되는 웨이드와 르브론은 좋은 조합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재능은 너무나도 뛰어났다. 보쉬는 한풀 꺾인 상태에서도 스타다운 위력을 발휘했으며 웨이드와 르브론 듀오는 공수양면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이 팀은 리그 트렌드를 바꾸었는데 '''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선수인''' 르브론이 자신의 연봉을 깎고, 심지어 파트너였던 웨이드,보쉬까지 연봉을 깎아 선수가 주도하여(사실 마이애미는 사장인 팻 라일리가 구상하고 이를 선수들이 동의한 것에 가까워서 100% 선수가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빅3를 결성하면서 이런 식의 페이컷과 기존에 완성된 팀에 스타들이 합류하거나 스타 몇 명의 합의하에 슈퍼팀을 결성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적어졌다. 사실 프로에서 연봉은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자존심 싸움+동업자 정신 문제다. 90년대 말에 스테판 마베리가 미네소타를 떠난 것도, 절친이었던 가넷보다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넘버투 역할을 맡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16] 또한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슈퍼스타 선수들은 다른 에이스들과 그 공을 나눠먹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거기다 스타급 선수는 언제나 그해 연봉협상의 바로미터가 되어 후발주자들의 계약규모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이런 간판급 스타가 자진해서 페이컷을 동의하는 풍조가 생기면, 그 피해는 후발주자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잘못하다간 페이컷이 우승 컨텐더의 당연한 권리일줄 아는 풍조가 생기는 것.[17]
사실 이 때문에 페이컷의 의미도 바뀌었다. 기존에 페이컷은 일반적으로, 노장 선수가 팀의 미래를 위해 연봉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미담에 가까운 행위였지 스스로 미래를 저당잡혀서 우승을 노리는 "투자"가 아니었다. [18] "사기팀"을 만들어 전성기 때 손쉽게 우승을 긁어모으려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90년대 말 존 스탁턴의 경우, "내 아들의 아이스하키 팀이 델타 센터에서 연습하게 해준다면 내 연봉을 얼마든 깎아도 좋다"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연봉을 깎았고, 그 덕에 재즈는 좀 더 운영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유타는 이 돈으로 빅 네임을 영입하지 않았으며, 이는 스탁턴의 요구사항도 아니었다. 또한 미담까진 아니지만 찰스 바클리처럼 말년에 연봉을 깎아 빅네임(스카티 피펜)을 영입하는 경우에도, 이미 노장인 선수라 페이컷을 해봤자 다른 슈퍼스타들에게 영향을 크게 못 미치는 선수이므로 [19]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최전성기의 슈퍼스타들이 주저없이 페이컷을 함으로서, "우승후보 팀이라면 슈퍼스타들도 적게 받는게 당연하다"는 꼴이 됐고, 오히려 최고액수 계약을 받는 건 선수 자신의 합당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는 행위가 된 것. 일례로 카멜로 앤서니는 뉴욕과 거대계약 당시 "우승을 원한다고 말만 하고 돈은 다 받는다"며 우승에 대한 열정이 없는 선수 취급 받았는데, 따지고보면 '''이게 정상이다.'''[20] 95-96시즌 당시 패트릭 유잉은 샐러리 캡의 절반이 넘는 1800만불을 받았는데 이걸 갖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의 가치를 연봉으로 받는 것은 프로의 자격이다. 그런데 이게 비정상적인 것처럼 되어버린 것.
이런 배경과 디시전쇼로 인한 경솔한 행동 등으로 르브론과 마이애미는 전 리그에서 미움을 받는 상황이었고 디르크 노비츠키와 노장들의 댈러스 매버릭스가 2011년 파이널에서 대역전 우승을 이루며 현재도 'NBA 역사상 최고의 정의구현'이라 불리고 있다.
마이애미에서 2번의 우승을 거둔 르브론은 팻 라일리의 뒷통수를 후려치면서 2014년에 클리블랜드로 재이적 [21] , 이미 캐브스에 있었던 올스타 가드 카이리 어빙에 더불어 올NBA세컨팀 포워드였던 케빈 러브의 합류를 약속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실상 또 다른 빅3를 결성하게 되었다. 이 팀 역시 히트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의 시너지를 다소 깎아먹었지만[22] 압도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2016년에 기어이 우승을 하게 된다. 특히 2016년 파이널은 팀플레이가 뛰어난 골든스테이트와 다르게 개인재능에 많이 의지하는 캐브스가, 르브론과 어빙이란 압도적인 재능이 대폭발을 하면서 우승해 "시스템보다는 재능"이란 추세에 기름을 끼얹게 된다.
결국 2016년에 73승이나 하고도 파이널에서 재능량에서 딸려 패배를 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화끈하게 MVP출신 케빈 듀란트를 데려오게 된다. MVP급 선수 둘, 올스타급 득점원 하나, 올해의 수비수급 선수 하나란 무지막지한 조합인 이 팀은 정규시즌은 별 힘도 안 들이고 67승을 거두더니 플레이오프에선 서부를 아예 전승으로 정리해버리고[23] 파이널에선 단 1패만 하고 손쉽게 우승을 하게 된다. 게다가 동부 파이널에선 또다른 슈퍼팀인 캐브스가 단 1패만 하고 올라왔다.
즉, 2017년 플레이오프는 결과적으로 두 슈퍼팀이 붙는 과정에서 다른 14개 팀들이 들러리를 선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면서 기존과 다르게 스타 한 두명을 중심으로 잘 짜여진 시스템을 가진 팀보단 재능총량이 압도적인 팀들이 성과를 거두며 결국 스타영입 싸움으로 판도가 흘러갈 가능성이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2017년 오프시즌에도 벌써 크리스 폴이 강력한 MVP후보였던 제임스 하든의 휴스턴 로켓츠에 합류함으로서 스타들이 뭉치는 트렌드가 더욱 강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슈퍼팀 결성이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은퇴한 선수들이나 기존의 팬들 중에서는, 스타선수가 한 팀을 대표하며 우여곡절을 겪지 않고 우승을 위해 팀을 주저없이 바꾸고, 이에 따라 팀들이 오랫동안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는게 아니라 스타들의 합류에 따라 색깔이 확확 바뀌는 (실제로 캐브스와 히트는 르브론 합류전후가 팀 색깔이 확 바뀐다) 이런 트렌드에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또한 이런 방식이 야기한 큰 문제는 바로 하위팀의 무제한 탱킹이다. 마이애미 히트가 대표적으로, 르브론 제임스와 크리스 보쉬 계약을 위해 5년전 우승했던 우승멤버중 합법적으로 샐러리캡 넘어 계약가능한 2명의 선수(웨이드,하슬렘)를 빼고 나머지를 전부 팔아치우고 악성계약을 일부러 떠안는 식으로 채워넣은 다음 한 시즌에 싹 비운뒤 그 해 베스트 FA를 한번에 쓸어담는 모델을 만들었고 그걸로 성공했기 때문에 이 방식을 그 후 리그의 약체팀들이 탱킹의 명분으로 삼기에 딱 좋았으며 그 이후부터 하위팀들의 무제한 탱킹이 리그 질서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3~4년동안 골자만 남기고 싹 팔은다음 폭풍영입하는 패턴을 복수의 팀이 동시에 시도했기 때문.
슈퍼팀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2017년 슈퍼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의 우여곡절이 있긴했지만, 슈퍼팀다운 저력을 발휘하며 2018년에도 2018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이러한 논란은 2018년 오프시즌 드마커스 커즌스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입단하며 정점을 찍었다. 물론 커즌스는 FA를 앞두고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해 타 구단으로부터 만족스러운 오퍼가 없었던 상황이었다.[24] 때문에 커즌스의 워리어스행을 이전의 페이컷 논란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5]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워리어스라는 슈퍼팀에 또 한 명의 올스타 선수가 합류했다는 점이다.[26] 부상 전에는 맥스 계약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리그 최고 수준의 센터가 불과 530만 달러 규모의 단기계약으로 워리어스에 합류하자 모든 NBA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만 커즌스는 새크라멘토 시절보다 확연히 줄어든 기량으로 큰 도움은 못 되었고, 듀란트, 탐슨이 차례로 부상을 입은 골든스테이트는 카와이 레너드의 토론토에게 당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또한 2018년 합류한 르브론 제임스를 앞세워 새로운 슈퍼팀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레이커스의 사장 매직 존슨의 계획은 르브론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여 맥스급 선수를 추가적으로 영입하고 론조 볼, 브랜든 잉그램, 카일 쿠즈마 등의 유망주 자원을 등용해 2019-20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대권을 노리는 것이다. 이에 소속팀에 트레이드를 요청한 앤서니 데이비스, 또는 2019년 여름 FA 자격을 취득하는 클레이 탐슨 등의 선수들이 레이커스로 합류할 시 새로운 슈퍼팀이 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27]
2019년 자유계약선수 계약기간이 시작된 이 시점에서는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슈퍼팀이 결성되고 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커리, 톰슨, 그린 + 듀란트라는 말도 안되는 슈퍼팀에 모든 리그가 대항하는 격이었지만 듀란트가 골스를 떠나고 세명 이상의 슈퍼스타가 모이지 않음으로[28] 리그가 어느정도 평준화 되고 있다. 꽤나 많은 팀들이 두명의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어서 정말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 최근 삼년간 지겹도록 우승이 아예 시작부터 정해져있었던 판도의 NBA와는 달리 정말 누가 우승할지 모르는 춘추전국시대로 회귀하게 된셈.
슈퍼팀 논란을 만들어낸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의 전성기가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며 그의 은퇴 이후에도 슈퍼팀이 계속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르브론을 우상으로 여기면서 따르는 젊은 선수들도 있는가하면 디시전쇼 이후의 계속된 GM을 방불케하는 슈퍼팀 구성에 힘을 쏟는 그의 모습을 불쾌하게 여기는 젊은 선수들도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 슈퍼팀이 NBA의 추세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르브론 제임스라는 한 선수의 역사로 남을 것인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장 레이커스에는 르브론 / 데이비스, 클리퍼스는 카와이 / 폴 조지, 휴스턴은 하든 / 웨스트브룩, 등등 그 동안 원 탑 성향이 강했던 서부지역도 완전 새조합들로 가득하고 기존에 꾸준하던 스퍼스, 트레일블레이져스 등까지 가세하면 정말 서부는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으로 점쳐졌다. 동부는 이보다는 확실히 강팀과 약팀이 구분되지만 상위 4팀은 여전히 엎치락 뒷치락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추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2021년 오랜만에 브루클린 네츠에서 듀란트, 하든, 어빙 조합의 빅3가 탄생하게 되었다.
[1] 다만, 슈퍼스타들이 모인 팀은 웬만해선 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점에서 보면 꽤 관련이 있다. 또한, 슈퍼스타들이 모였다고 해도, 후술되는 레이커스처럼 팀전력이 안 좋으면, 아무래도 슈퍼팀이라 부르기 뭐한 게 사실. 어쨌든 요점은 단순히 강하다는 것보다, 그 구성원들이 다른 팀에서도 충분히 에이스를 할만한 슈퍼스타로 인정받는가 여부다.[2] 사실 슈퍼팀이란 명칭이 애매한게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슈퍼스타들을 긁어모은 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따로 명칭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이에 따라 시카고 불스처럼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건 아니만 전력이 강한 팀을 슈퍼팀이라고 불렀었다. 영어에서 "super~"는 특출나게 뛰어난 것을 서술하는 수식어이기 때문. 이 때문에 당시 방송이나 기사를 보면 이런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 상술한 것처럼 의미가 바뀐 상태. 이 때문에 특히 미국에서 슈퍼팀을 둘러싼 토론에서 용어 인식의 차이로 오해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시카고 불스같은 팀이 슈퍼팀이 아니면 대체 뭐가 슈퍼팀이냐??" "그러니까 전력만 강하다고 해서 슈퍼팀이 아니라고...").[3] 기존 버전에는 샐러리캡이 생겨나기 이전에 레이커스와 셀틱스가 FA를 쓸어담았다고 되어있었는데, 샐러리캡이 생겨날 당시 레이커스와 셀틱스는 돈지랄로 FA를 쓸어담던 팀들이 '''아니었다.''' 레이커스의 경우 매직, 워디, 바이론 스캇, 벤치의 핵인 특급수비수 마이클 쿠퍼까지 모두 드래프트 출신이며, 심지어 쿠퍼는 3라운드 출신에 또 다른 핵심 롤플레이어 커트 램비스는 언드래프티 출신이었다. 카림은 트래이드로 데려왔는데 이때 트래이드 직후엔 아직 지원이 모자라 플옵 탈락하기도. 워디 이전 주전이던 자말 윌크스도 트래이드 영입. 보스턴의 경우 버드, 멕헤일은 드래프트였고 패리쉬는 심지어 픽 트래이드 당시 끼워진 덤이었다. (초창기 그는 부상 때문에 장수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NBA최장수 선수가 됐으니...) 세드릭 맥스웰도 드래프트 출신에 애초에 올스타경력도 없을 정도로 평범한 선수였으며, 버드보다 1년 먼저 입단한 타이니 아치볼드는 레전드였지만 말년이라 영입하고도 29승에 그칠 정도. 대니 에인지는 특이하게 좋은 유망주를 단장 아웨벡의 안목과 수단으로 낮은 픽으로 데려온 케이스였으며, 특급 수비수 데니스 존슨도 트래이드. 당시는 현재처럼 사인 앤 트래이드나 돈지랄로 데려오는 경우가 없었으며, 위에 보다시피 대부분 드래프트해서 키운 선수들이다. 트래이드로 데려온 가장 거물이 레이커스는 그나마 리그 최고였던 카림이 있지만 보스턴은 외부 영입 중 최고선수가 존슨이었다. 이 두 팀은 슈퍼팀 시절 이전 워리어즈나 불스처럼 운영을 잘해 강해진 케이스. 물론 샐러리캡 도입 자체가 전력 평준화를 위한게 맞으며, 당시 두 팀이 샐러리캡으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원래 잘하던 선수들을 쓸어담아서 강해진게 아니라, 영입 당시 유망주(멕헤일, 에인지 등)거나 평범하던 선수들(패리쉬)이 팀이 완성되고 실력이 늘면서 가치가 높아져 몸값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즉, 선후관계가 반대. 특히 셀틱스는 1979년에 신인 하나 (버드) 영입하고 바로 29승에서 61승/우승후보로 전력이 껑충 뛴 팀이다. 81년 우승할때 패리쉬와 버드를 제외한 주전 3명 (아치볼드, 맥스웰, 크리스 포드)는 1978-79시즌 29승팀의 주축들 (...)이었다. 당시 패리쉬가 예상외로 잘해줬지만 아직 스타급은 아니었다는 점, 멕헤일은 신인이라 벤치에서 20분 뛰는 후보였다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버드 한 명의 영입으로 꼴찌권에서 우승권으로 급도약한게 셀틱스다. 애초에 패리쉬/멕헤일은 영입하기 전부터 버드 영입하고 바로 61승했으니...[4] 물론 비교적 그렇다는 거지 메시나 호날두가 월드컵 우승 못한게 선수 평가에 걸림돌이 되긴 한다. 그러나 우승을 못해도 야구의 신 대접받던 배리 본즈 (약물 들통나기 전)만 보더라도 농구와는 케이스가 많이 다르다.[5] 이러한 꼬리표가 틀리다고 볼 수도 없는게, 어쨌거나 스포츠의 목적은 승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잘해서 이기는 개인스포츠라면 개인기록이 다겠지만, "팀이 승리하는 것"이 목적인 팀 스포츠에서 아무리 본인 혼자 잘해도 팀이 진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개인기록은 윌트 체임벌린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최소한 비슷한 평가를 받는 빌 러셀.[6] 비슷한 예시가 앨런 휴스턴 사면룰이다. 사면룰이 도입될 당시 대표적으로 거대계약+먹튀였던 선수가 휴스턴이라 휴스턴의 이름을 붙혔을 뿐, 이건 리그가 닉스에게 혜택을 준게 아니라 당시 샐러리캡 빈틈과 신인계약 규정 빈틈등 각종 빈틈을 악용한 악성계약 때문에 고생하는 팀들이 많고 그것이 시장질서를 흔들 정도로 연봉 폭등의 모멘텀이 되었기 때문에 조정+보상의 차원에서 도입한 것이다.[7] 케니 스미스는 슈퍼팀을 거론하는 자리에서 이 팀이 언급되자 딱 잘라 "그건 슈퍼팀이 아니었어. 그건 슈퍼올드팀이었어"라고 해 좌우를 빵 터지게 했다.[8] 이때 스탁턴을 막지 못하고 (칼 말론의 스크린으로 수비 매치업이 바뀐 상태) 앞에서 허무하게 양팔을 들고 있던 게 아이러니하게 빅3 중 유일하게 우승을 못했던, 그래서 마지막 발악으로 로켓츠에 합류했던 바클리였다.[9] 코비와 피펜이 득점과 다른 역할도 하면서도 동시에 포인트가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10] 가넷의 경우 수비력 자체는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전성기를 보낼 때보다 다소 떨어졌다. 가넷은 운동능력과 기동력을 활용한 팀수비가 최대장점인데 발이 늦어지면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 그렇지만 05년부터 계속된 무릎문제로 기동력이 떨어졌음에도 공격에서 많은 걸 감당하다보니 수비력이 울브스 시절 말기엔 자연스럽게 꽤 떨어졌는데 (물론 그래도 리그 최고수준의 수비수긴 했다), 득점은 그냥 캐치앤 슛 정도만 하고 나머지를 수비에 올인하다보니 득점효율과 수비력이 미네소타 말기에 비해 확연히 올랐다. 알렌의 경우에도 이때 득점부담을 덜다보니 체력 면에서 훨씬 덜 과부화가 왔고, 커리어 말년까지 (빅3중 가장 나이가 많다) 기량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11] 결성 당시 기준으로 알렌이 만 32세, 가넷은 31세였으며 그나마 가넷은 데뷔가 빨라 이미 13년차였다. 운동능력도 노쇠화를 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최전성기와 비교하면 둘 다 어느정도 하락한 상태였다.[12] 특히 당시 MVP후보급인데 원맨팀에서 고생하는 가넷은 팬이건 관계자건 "이적하는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했다. 미네소타는 한시즌 반짝한 마이크 제임스에 낚여 장기계약을 하거나, 터지지도 않는 유망주 랜디 포이 지키려다가 알렌 아이버슨 영입을 실패하고, 거의 D리그급 선수들을 주전으로 세우는 등 뻘영입만 반복하고 있었고 팀전력이 나아질 기미를 안 보였기 때문. 압권은 06-07시즌 매직 존슨이 카메라를 보며 가넷에게 남긴 영상편지(?)인데, "케빈, 자네는 할만큼 했어. 이제 9,10년 정도 뛰었나? 그 정도면 됐네. 앞으로 나아갈 때야(It's time to move on)"라고 진심으로 이적을 충고할 정도였다.[13] 이중 미네소타에게 받아왔다 돌려준 2009년 1라운드 지명권은 전체 6순위가 되었다. 만약 그 지명권을 이용해 그 1칸 뒤 지명자가 갔다면 리그 역사가 뒤바뀔수도 있었을수도...[14] 많은 이들은 "설마 고향팀이고 프랜차이즈인데 전국방송에서 엿먹이지는 않겠지"라는 근거로 잔류를 점쳤으나, 결국 제임스는 진짜 생방송에서 고향팀을 엿먹임으로서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증오받는 존재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2014년에 고향으로 돌아옴으로서 캐브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복귀한 상태. 참고로 이적은 몰라도, 이 쇼 자체는 진짜 병크 중의 병크인지라 팬들도 쉴드를 포기했다.[15] 그걸로 멤피스의 3점 슈터 마이크 밀러를 영입했다.[16] 절친한 친구 사이이자 라이벌이었던 윌트 체임벌린과 빌 러셀도 이런 적이 있었다. 러셀과 윌트는 계약을 할때가 되자 서로 먼저 계약하길 주저하면서 미루다가, 윌트가 연봉 10만 달러 계약서에 사인하자마자 러셀이 '''10만 1달러'''에 사인했다.[17] 이렇게 배쨌다가 뒤통수 제대로 맞은게 샌안토니오 스퍼스 팬덤이다. 데이비드 로빈슨,팀 던컨의 대를 이은 스퍼스의 에이스이자 위 히트 빅3의 3연패를 저지했던 카와이 레너드에게 팀 스피릿,로열티를 요구하며 재계약을 요구했다가 레너드가 거부하고 부상관리를 위한 결장이 이어지자 욕만 엄청먹고, 결국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한 것.[18] 당장은 금전적 손해를 보더라도 우승을 하게 되어 선수 가치가 올라가면 행후 계약이나 광고계약에서 유리한 입지를 갖게 된다.[19] 은퇴를 앞둔 바클리가 적게 받는 건 당연하다. 좀 더 적게 받는다고 큰 영향은 없다는 말.[20] 물론 멜로는 이후에 먹튀화가 진행되지만, 그건 기량을 유지하지 못한 멜로의 문제지 프로가 (계약 당시) 자신의 합당한 가치를 최대한 인정받고 최대한 많은 돈을 받고자 하는 건 전혀 잘못된게 아니다.[21] 팻 라일리는 르브론의 이적에 대해 '내 생애 가장 상상도 못한 일'이라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밝힌바 있다.[22] 사실 어빙의 경우 리딩이 모자란 리딩가드라 르브론과 함께 뛰면서 득이 된게 있었다. 그러나 러브는 정면으로 타격을 입었고, 심지어 보쉬와 다르게 수비도 별로라 캐브스 합류 3년차 때 20-10에 가까운 기록으로 부활하기 전까지 욕을 많이 먹었다.[23] 다만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붙은 1차전에서는 거의 발리다가 자자 파출리아가 엄청난 더티 플레이로 스퍼스의 에이스 카와이 레너드를 보내버린 이후 역전하게 된다. 명승부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에이스급이 어처구니없게 부상으로 빠지고 스윕당했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부분.[24] 아킬레스건 부상은 복귀 후 부상 전 기량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부위로 알려져 있다.[25] 커즌스의 워리어스 입단은 선수와 구단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윈-윈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커즌스는 리그 최강팀에 합류하여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무리하게 복귀할 필요 없이 재활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복귀 후 본인의 건재함을 증명하며 FA 재수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우승 반지 획득 또한 높은 확률로 가능해진 것은 덤. 구단 입장에서도 그동안 유일한 약점으로 평가받던 센터 포지션을 단숨에 보강할 수 있게 되었다.[26] 이로써 워리어스 5명의 선발 라인업은 모두 올스타로 채워지게 되었다. 심지어 전부 미국 국가대표팀 출신이기도 하다! [27] 물론 트레이드를 통해 맥스급 선수를 영입할 경우 기존의 유망주 자원을 모두 지키는 것은 어려워질 것이다. 예를 들어 트레이드 매물로 올라온 AD를 데려오기 위해서는 그 가치에 걸맞는 대가를 내놓아야 하는데, 론조 볼, 잉그램, 쿠즈마를 전부 제시한다 하더라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28] 지명도가 높은 슈퍼스타 내지 에이스를 3명이상 보유한 팀은 골스 하나인데 그나마도 톰슨은 내년 한 시즌을 부상으로 완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