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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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및 前 배우. 필리핀계 한국인으로 1977년 필리핀에서 태어난 후 1998년에 결혼이민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자스민'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귀화인 국회의원''''이며, 새누리당 소속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19년 10월에는 정의당에 입당했다.
2. 생애 및 경력
2.1. 정계 입문 이전
이자스민(필리핀 이름: 자스민 바쿠르나이 이 비야누에바 Jasmine Bacurnay y Villanueva)은 1977년 1월 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출생했다. 11살에 민다나오 섬 다바오로 이사하여 생활했고, 1993년 필리핀 다바오에 있는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교'(Ateneo de Davao University) 생물학과에 입학하여 학교를 다니다, 항해사로 일하던 한국인 남편 이동호(1965년생)를 만나 1995년 결혼하고 1996년 3월 대학 중퇴 후 한국에 들어왔다. 남편과는 슬하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3]
1998년 귀화해서 이주 여성들의 봉사단체이자 문화네트워크인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을 맡아 다문화가정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남편 이동호는 2010년 8월 8일 오전 10시 10분경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 인근 옥천동에서 급류에 휩쓸린 딸을 구하던 도중에 물에 빠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 후에도 시부모님, 시할머니, 시동생까지 6명이 같이 살았고, 현재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동생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서 9명으로 가족이 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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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KBS스페셜 "나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했다" 편에 남편과 함께 출연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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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스민 의원과 아들 이승근씨. '''
서울특별시 글로벌센터에서 외국인생활지원과 주무관으로 일하며 외국인공무원 1호가 됐고, KBS 러브 인 아시아와 EBS 한국어강의 등 방송 활동도 해나갔다. 그리고 잠깐 배우로도 일하여 영화 의형제(2010)와 완득이 어머니 역으로 완득이(영화)(2011)에 출연했는데, 특히 완득이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널리 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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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출연 장면'''
2.2. 19대 국회의원 활동
2012년에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15위로 공천을 받아 당선되어 정치인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으로 인식되었던 새누리당이 다문화를 내세우며 이자스민을 공천하자,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이자스민은 다른 이주 여성들과 함께 이주 여성을 대표할 지방의원을 내기 위해 활동하고 있었는데, 한국어가 유창하고 얼굴이 알려진 이주여성이 이자스민뿐이었고, 마침 한나라당에서 경기도의원과 서울시의원 제의를 받았다. 이를 모두 거절했지만 2년 뒤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것이다. 이자스민은 당연히 진보적인 민주통합당의 공천을 받게 될 줄 알았지만, 민주당측에서는 이자스민의 공천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자스민의 새누리당 공천 사실이 알려지자 민주통합당에서는 "연약한 지지기반을 가진 우리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거나 "우리가 먼저 데리고 왔어야 했던 인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민주당에서 이자스민을 공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대략 2가지 버전의 이야기가 있다. 첫번째로, 이자스민 의원이 당시 민주당 내부 사정을 전해들은 바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여겨서 거절했다는 것으로, 이자스민 인터뷰 기사에서 언급된 바 있다.# 당시 민주통합당 당직자로부터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2번째 이야기는 민주당 측에서 자체심사한 결과, 이자스민이 학력을 비롯해 각종 경력을 허위로 기재했다고 판정했기에 공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 이야기를 언급한 공신력 있는 기사나 증언은 딱히 없는 상황이며, 민주당이 이자스민 의원의 학력위조 문제를 비판한 논평에서도 그 비슷한 언급은 한 적이 없다. 애초에 당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할 만한 이야기도 아닌데다, 그나마 관련 기사가 존재하기는 하는 첫번째 버전도 이자스민 개인이 전해 들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지라, 현재로서는 실제 이유는 불명인 상황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이자스민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자스민이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은 일을 두고 "다문화 가정과 이민자를 보호한다는 의제를, 진보 계열 정당이 아닌 새누리당에서 선점했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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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지원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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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서울 중구, <다문화가정의 날> 행사에서.
2013년 11월 14일 초강력 태풍 하이옌의 피해를 당한 필리핀에 대한 복구 및 지원을 위한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15년 10월 비례대표 재선을 바란다는 기사가 나왔다, # 현실적으로 볼 때나 이념적으로 볼 때나, 지역구 출마는 당선 가능성이나 명분 모두 부족한 것이 현실. 그런데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등의 당헌과 당규에 의하면 비례대표는 한 번밖에 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적을 옮기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이자스민은 비례대표 재선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2016년 2월 4일 새누리당 내부에서 이자스민 의원의 비례대표 재선 불가 방침을 정했다고 나왔고 20대 출마는 포기하게 되었다. #
2.3. 19대 국회 이후
2018년 11월 19일 부터 교통방송 eFM 10 Everyday 라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관련 자료 국회의원 이전에는 각종 프로그램 번역도 많이 했으나, 퇴임 후 다시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자 사람들은 ‘국회의원까지 지낸 분한테 어떻게 이런 일을 맡기느냐’며 어려워했다고. 또 19대 국회에서 의원 연금이 폐지되어 의원연금도 받고있지 않다고 한다.
2.3.1. 2019년 정의당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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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일,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19대 국회 임기종료 후에도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주여성과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에 한국당원으로 활동하는게 도움이 될까를 고심한 끝에 탈당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인사들을 만나 입당에 대해 논의했단 이야기도 있어 정의당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다만 그녀의 정의당 입당추진이 21대 총선 출마를 위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 겸 서대문구 지역위원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서대문구 갑 지역구 출마를 권유했으나[4] 정의당 중앙당은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
보수정당 출신 정치인이 민주당계 정당도 아닌 진보정당으로 간 사례는 극히 드문데, 굳이 따지자면 신한국당 전국구 국회의원 출신으로 정의당에 평당원으로 입당한 이찬진의 사례가 있다.[5]
이자스민은 본래 이주노동자 및 다문화가정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다, 그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이런 문제에 조예가 깊은 정의당으로의 이적이 이상할 건 없다. 게다가 이자스민이 입당할 당시의 새누리당은 완전한 보수정당이 아니라, 진보 성향 인사들도 일부 가입해 있는 포괄정당이었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자스민은 일단 당의 이념과는 무관하게 진보적 스탠스를 자주 취했으며, 박근혜와 당시 새누리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보수주의적인 이미지를 약화하기 위해 이런 사람을 얼굴마담 삼는 것을 마다했을 리가 없다. 위의 이찬진의 예도 이와 비슷했다.
2019년 11월 11일 공식적으로 입당식을 가지며 이주민인권특위의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 비례대표에 출마했고, 순번 9번을 받게 됐다. 이는 당선권 바깥으로 평가받았다. 결국 정의당이 정당 득표 9.67%를 기록하며 비례순번 5번까지만 당선하며 일단 낙선했다. 경우에 따라 후순위 승계 가능성은 남아있으나 비례대표가 5명밖에 없는걸 감안하면, 9번까지 승계될 가능성은 낮긴 하다.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여야 의원 모두에게 의정활동에 매우 성실하게 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석률도 높고 법안발의에도 적극적이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2016년 1월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2015년 국정감사 때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유일한 의원이라고. 해당 기사
국민과 정치권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국회의원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19대 국회 시절 기자, 보좌관, 수석전문의원과 동료 국회의원들의 평가로는 유승민, 김태원과 함께 당시 여당 국회의원 중 공동 13위를 기록했다. the300 설문조사
3.1.1. 성실한 의정활동
참여연대 열려라 국회 의정활동 모니터
- 본회의 출석률
- 2015년 총 50회 중 출석 44회 결석 6회 출장 0회 청가 0회 (출석률 88.00%)
- 2014년 총 46회 중 출석 37회 결석 6회 출장 0회 청가 3회 (출석률 80.43%)
- 2013년 총 45회 중 출석 44회 결석 1회 출장 0회 청가 0회 (출석률 97.78%)
- 2012년 총 23회 중 출석 23회 결석 0회 출장 0회 청가 0회 (출석률 100.00%)
- 상임위 출석
- 외교통일위원회 총72회 중 출석 70회 결석 2회 출장 0회 청가 0회 (출석률 97.22%)
- 환경노동위원회 총54회 중 출석 53회 결석 1회 출장 0회 청가 0회 (출석률 98.15%)
3.1.2. 우수한 입법활동
2014년에는 ‘제6회 공동선 의정활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 상은 사회정의시민행동[6] 이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결과보고서를 토대로 의정활동평가위원회를 열어 공정하게 심사해 국회의원 중 입법 및 의정활동이 우수한 의원을 선정하여 수여하는데,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이자스민 의원은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탈북민들의 인권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가정폭력피해자문제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공로로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자스민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강동원 의원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 법안 대표발의
4. 논란
4.1. 학력위조 논란
참고. 비교[7]
발단은 이자스민이 자신을 필리핀의 명문 아테네오 마닐라대 의전원 졸업생이라 거짓말한 것이 문제. 하지만 이자스민은 실제로는 의대생이 아니라 이름없는 대학인 아테네오데다바오대 생물학과 중퇴. 서울대와 남서울대가 전혀 다른 학교인 것처럼 아테네오대와 아테네오데다바오대는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학교다. 당연히 대입 시험 성적도 위조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허위학력뿐만 아니라, 동네 축제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것을 미스 필리핀 입상경력이라고 말한 것 등의 거짓말이 연달아 밝혀지면서,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이자스민 본인은 부정하지만, 위키백과에 따르면 국감 중 거짓으로 선관위에 위조학력을 기재했다가 후에 수정한 것이 발견되었다고.
이에 대해 이자스민은 2019년 11월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해명했다. 기사. 대부분의 아테나오 다바오대 생물학과 출신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기에 그렇게 얘기했으며, 이런 정황을 밝혔었다고 주장했다. 일단 아테나오 마닐라대는 학부는 몇 손가락에 꼽히고, 의전은 1위인데 아테나오 다바오대는 10위권 대학이다. 또한 아테나오 다바오대는 의전도 없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대 입학은 경쟁률이 치열하기에, 예외적으로 필리핀의 경우 의전이 인기가 없다던가 입학정원이 넉넉해서 경쟁률이 낮은 게 아닌 이상 대부분의 다바오대 생물학과 출신이 의전에 입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입학한다 가정해도 그냥 의전과 필리핀 최고 의전 입학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물론 이자스민 개인의 고학점, 필리핀의 MEET에 해당되는 NMAT의 고득점 취득 등의 사정이 있었다면 충분히 입학 가능했는데 안 했다고 주장 할 여지도 있을 것이나, 그러한 주장을 한 바도 없고 관련 성적 증빙서류를 공개한 적도 없다. 오히려 교민들의 추적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 성적도 간신히 낙제만 면하던 수준이라 한다.[8] 만약에 국내 국회의원과 같은 잣대를 적용한다면 학력 위조 논란은 덮어두더라도 아테나오 다바오대 부정입학 의혹 및 중퇴 과정 관련 논란도 생길 수 있다.
4.2. 인종차별 피해 과장 논란
4.2.1. 19대 국회의원 총선거기간
야당은 선거기간 동안 이자스민에 대한 학력 위조 의혹, 정책적 비전 등에 대해 검증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누리꾼들의 비판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제노포비아라며 공격했고, 야당측에서는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인종차별로 매도하지 말라며 반박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4.2.2. 의정 활동 중
이자스민 의원이 당선된 뒤에도 그녀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과 비난이 쏟아져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제는 여권 성향이든 야권 성향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 문제. 이자스민에게는 '한국인이 낸 세금으로 다문화와 외국인에게 혜택 줄 정책만 만든다'는 식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그녀가 "필리핀은 여전히 나의 조국"이라는 발언에도 많은 비판을 하는데, 한국 국적도 없고 한국에 와본 적도 없는 한국계 미국인들도 한국이 자신의 모국 내지 특별한 나라로 이야기하며, 한인 단체들은 아예 대놓고 "한국어를 해야 진짜 한국인"이라며 한글학교 홍보를 하고 있다. 바로 이런 다중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다문화사회의 핵심이다. 이 발언이 처음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했을 때, 한국인더러 필리핀은 자신의 조국이니 도와달라는 식으로 발언했다는 이유도 컸기에, 당시 논란이 된 것 자체는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의 산물로만 치부하기에는 좀 애매하기는 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필리핀과 한국 중 필리핀을 우선하고 있는데다가, 그것을 한국에게 요구한다'고 해석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 웹상에서는 필리핀이 한국 전쟁 당시 참전했다는 이유로 태풍 복구 지원에 대한 반대 의견은 적은 편이었다.'''
진보 친다문화 성향의 허핑턴포스트는 그녀를 "다음 10년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인종차별 논란과 다문화정책에 관하여 심도 있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자스민 의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이주민 출신 한국인을 대표하여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여기에는 당시 거대 정당에서 보여주기식 비례 대표 당선이라는 한계도 있다. 이 때문에 이자스민의 다문화 정책과 이주민 법안을 제출에 대한 반론과 논란은 당연히 많을 수 밖에 없었다. '''300명의 국회의원은 우리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 만큼이나 모두 자신이 대표하는 지역, 성별, 계층, 산업, 이슈가 달라야 한다. 그러나 이자스민 의원이 300분의 1의 자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국내 체류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은 문제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들 중 비교적 평균 교육 수준이 높은 중앙아시아 및 동구권 출신들은 과거 이들이 공산권 출신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누리당에서 배제되었던 듯 하고, 파키스탄이나 인도 같은 경우는 이슬람교 혹은 힌두교 의원이 새로 당선되면 발생할 수 있는 논란 때문에 재꼈다는 의견[9] 이 재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지배적이다.
일단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에서 보여준 소극적 태도 및 세월호 사건 당시 단원고 다문화 학생은 사망할 동안 필리핀인 직원 두 명이 무사 구조된 일 때문인지 뻣뻣한 태도를 보여준 것 등으로 국내 체류 외국인 사이에서도 이기적인 처신을 한다며 많은 비판 여론이 나왔다. 애초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자스민에 대해 “외노자들의 우상” 혹은 “편견과 인종 차별에 맞서는 용감한 의원”같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국내 체류 외국인들 입장에서 이자스민은 한국내 필리핀인들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지 다문화 자체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미국 상원의 중국계 미국인 의원에 대해 한국계/일본계 미국인들이 그다지 큰 기대나 애착을 걸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외에도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일단 국내 보수정당들은 아직도 학벌 관련한 권위주의와 보수주의가 강한 편이다. 이자스민은 한국 정치계 내에서 사망 선고에 가까운 학력 위조 논란에도 불구 정치권 내에서 타격이 적었다는 사실은, 이자스민이 새누리당에서 어떤 위치와 입지인지(사실상 열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자스민은 유달리 안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된다. 새누리당 초선 의원 중 이자스민만큼 인지도가 높은 위원은 없다. 당장 새누리당 의원 중 군가산점 부활 반대를 주장한 의원은 이자스민밖에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국회 입법예고 시스템 사이트는 이런 측면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사이트는 국회에서 입법예고된 법률을 공고한 뒤, 공고기간 동안 시민이 그 법률에 대한 의견을 댓글 형식으로 등록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이때까지 입법예고된 법률 중에는, 의견이 하나라도 달린 법률보다 의견이 하나도 없는 법률안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이다. 그런데 이자스민이 발의한 법률에 대해서만은 유난히 의견이 쏟아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자스민이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 난민법 일부개정법률안, 다문화가족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은 만 개 단위의 의견이 달려 있다. 그리고 이 의견들의 상당수는 "한국인이 낸 세금을 외국인을 위해 쓸 궁리만 할 거라면, 한국인이라고 할 수 없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라는 식의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필리핀인들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일베와 오늘의 유머가 함께 혐오하는 이자스민'''이라는 타이틀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봐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GDP 인종차별 등등의 해석도 있지만, 우즈베키스탄처럼 명목상 GDP가 낮은 다른 나라 출신에 대해서는 이와 같은 반감이 적은 편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4.3. 위안부 기림비 건립 반대 논란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을 반대했다고 해 논란이 되었다. 2014년 1월 8일의 위안부 기림비 관련 토론에서 있었던 일인데, 당일 미디어오늘의 기사에서 #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는 식으로 보도되었다. 당시 보도자료의 원문 표현으로는, "다른 의원들 이야기로는 일본은 특히 '위안부' 관련된 것은 굉장히 인정하고 싶은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괜히 건드려서 외교 차원에서는 더 안 좋을 것 같다는 말이 많아서 굉장히 애매하다"라고 말했다고 한다.일본은 특히 위안부 관련된 것은 굉장히 인정을 하고 싶은 그런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괜히 건드려서 외교 차원으로는 더 좋지는 않지 않을까라는 얘기가 너무 많아서
이자스민 13년 12월 16일 국회 여가위원회 회의 도중
그리고 3달 뒤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기림비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는 국회가 아닌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세우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자스민의 반론과는 달리 당시 회의록(제321회국회 여성가족위원회회의록 제 2 호)을 읽어보면 유동인구 관련 이야기는 일절 없으며 보도대로 일본과 외교적 마찰 발언은 실제 있었던 발언이며 오히려 민간차원에서 기림비를 설치하는게 바람직다하며 국가에서 기림비를 설치하는것에 간접적으로 반대의사를 표현한 기록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후 위안부 피해자 기림공원 조성 결의안을 공동발의했다. 이자스민 의원은 이전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법률 상담 지원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었다.
4.4. 호주 ABC방송 인터뷰 논란
2012년 11월 호주 ABC방송국과 인터뷰를 했는데 “순수 한국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해 논란이 되었다. # 다만 해당 발언을 비판한 네티즌들을 무조건 극우 세력으로 모는 것은 문제가 있는데, 전통적으로 교육과 모성애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 동남아 다문화가정 출신 자녀들의 부모들의 상대적인 무관심으로 인한 저조한 학업성취도가 문제가 되는 마당에 이런 발언을 하면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프랑스처럼 다문화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하거나 하는 특별히 경사난 경우에 할까말까한 말을, 그것도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뱉었으니 틀린 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경솔한 발언이라 비판받기에는 충분하다.[10]
4.5. 이주아동 권리보장법안 논란
이자스민 의원은 2014년 12월 이주아동 권리보장법을 발의했다.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한국 국적이 아닌 18세 이하 아이들을 이주아동으로 정의하고 이들에게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국적과 관계 없이 모든 이주아동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본 법안이 규정하는 특별체류허가 대상은 다음과 같다.
- 한국에서 태어나 거주하고 있는 이주아동
- 건강이나 안전에 위해가 발생해 치료 및 진료가 필요한 이주아동
- 한국에 입국한 뒤 5년 이상 거주했으며 연속적인 교육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주아동
- 그밖에 인도적 사유로 한국 거주를 보장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이주아동
이에 대해서 이주아동 부모의 추방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불법체류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정작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의 나라에서는 이런 이주아동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지 않고 정책상으로만 할 뿐인데 선진국에서도 법으로 정해놓지 않는 이주아동법을 한국에서 추진하는 배경에는 이자스민을 포함한 다문화 세력의 의도가 불법인 불법체류자들에게 아동을 이용하여 영주권을 주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비판의 논리는 간단하다. ‘국민들도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이주자와 그 자녀를 도와야 하는가’ 내지는 ‘우리 세금으로 범법자를 보호하지 말라’, '세금 내고 법 지키며 성실히 사는 한국 시민보다 불법체류자에게 오히려 혜택이 더 많은 것 아니냐' 등이다. 그리고 이자스민 의원에 대해서는 ‘자국으로 돌아가라, 귀화했어도 여전히 필리핀 사람이다’라는 반응을 쏟아낸다.
그렇다면 이자스민 의원이 받고 있는 비난은 정당한 것인가?
- 이 법안은 UN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에 따른 입법에 불과하다. 정책상으로 하든 입법으로 하든 협약의 내용을 지키면 되는데, 정부에서 지키지 않는 이상 입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2003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선진국에서는 법으로 보장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시행령이나 행정명령의 형태로라도 보장하고 있으니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UN의 권고사항일 뿐이라 굳이 우리나라 그 권고사항대로 하지 않아도 큰 상관은 없다. 더불어 그 권고사항을 어느 방식으로 어떤 수준에서 이행할 것인지는 입법자인 국회의원들의 재량에 달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UN의 권고사항은 최대한 어떤 방식으로든 지키고 있고, 그래서 이자스민 의원 이전에도 계속 관련 법을 제정하려고 했던 것이다.(아래 항목 참조) - 이자스민 법이라고 불리지만 실상 이 법은 지난 18대 국회에서부터 발의된 법안이다. 당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발의했고 43명의 여야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논의 진행 상황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은 이주아동 권리보장에 대한 법 제정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 때 이자스민 의원은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또한 이 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다문화 공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국 이자스민 의원은 박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법안을 발의했을 뿐이다. 당시 대선캠프에서 다문화 정책을 담당했던 이 의원이 법안을 낸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따라서 정책을 대표 발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의원에게 돌을 던지기는 어렵다. 이 법안은 과거부터 국회에 꾸준히 발의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임수경, 정청래 의원 역시 비슷한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여야 공히 추진하던 입법안에 대해서 단지 이자스민이 이번 회기에서 대표발의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온갖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관심도 안 가지던 법이, 이자스민이 추진한다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화제의 중심에 선 격인데, 이는 여론이 이자스민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4.6. 근무태만 논란?
2015년 12월에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자스민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게임을 하고, 초코바를 반입해 취식해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후에 밝혀진 바로 이는 본 회의 시작 전 시간에 한 행동[11] 이고, 이날 본회의는 2시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몇 차례 연기되다가 결국 '''오후 11시 10분에 시작'''되었다고 하니(...) '''9시간을 대기한 것'''도 성실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심지어 40명의 의원은 이날 출석하지도 않았다. 국회 내 음식물 반입 금지도 법에는 있으나 사문화된 조항이라 큰 문제는 없다는 반론이 존재하니 판단은 알아서 하자. 당시 영상 관련 칼럼
위 문단에도 나와있지만 이 의원은 2016년 본회의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출석률 80% 이상을 달성했다. 참고로 20대 국회를 보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평균 출석률은 55% 정도에 불과하며 유명 의원들이 결석하는 일이 매우 잦다.#
이 사건 때문에 초코바가 싫어졌다고(...) 한다.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1] 1998년 국적 취득.[2] 2010년 사별[3] 아들은 1996년생, 딸은 2000년생.[4] 이자스민 전 의원의 현재 거주지라고 한다.[5] 다만 이찬진은 어디까지나 평당원으로 활동중이며, 당직을 맡거나 정치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자스민과는 차이를 보인다. 반대로 진보정당에서 보수정당으로 건너간 사례는 이재오, 김문수, 박형준, 신지호 등 꽤 많이 존재한다.[6] 상임대표: 천주교 인천교구 오경환 프란치스코 신부[7] 항목에 링크된 기사 두 개만 대조해봐도 쇼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법조인 하려다가 의사 학위 공부했다고 자기 입으로 자랑하다가, 이후 논란이 되자 행정 착오였다 주장하는 말의 앞뒤가 상당히 안 맞는 상황이다.[8] 해당 위키프레스 기사는 현재 삭제된 상태이지만, 원문 내용은 검색 가능[9] # 추측 썰이 아니라 실제로 이런 경우가 일어났다.[10] 예를 들자면 유명 한국사 학자인 이이화의 경우도 귀주 대첩이나 살수 대첩에서 투항한 포로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된 사실을 서술하면서 한국인 단일민족 이념의 허구성을 지적하지, 일제 강점기의 민족 수난사를 서술하면서는 이런 발언을 하지는 않는다. 참고로 이이화는 진보 성향 역사학자이다.[11] 한마디로 말해 '학생이 수업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에 잠깐 놀았다' 정도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