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근

 


'''역임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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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제20선거구[9])'''
제2대
박제환

'''제3·4대
장경근'''

제5대
박제환

'''대한민국 제14대 내무부 장관
장경근
張暻根 | Jang Gyeong-geun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11년 5월 18일
평안북도 용천군 (現 평안북도 룡천군)
'''사망'''
1978년 7월 25일 (67세)
서울특별시
'''본관'''
인동 장씨
'''재임기간'''
제3대 내무부 차관
1949년 4월 4일 ~ 1950년 3월 26일
제2대 국방부 차관
1950년 5월 14일 ~ 1951년 6월 22일
제14대 내무부 장관
1957년 2월 4일 ~ 1957년 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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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장익유
'''학력'''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도쿄제국대학 (법학과 / 학사)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3''', '''4'''
'''경력'''
경성지방법원 사법관시보
경성지방법원 판사
경성복심법원 판사
경성지방법원장
제3대 내무부 차관
제2대 국방부 차관
제3대 민의원의원 (부천군)
제14대 내무부 장관
제4대 민의원의원 (부천군)
자유당 선거대책위원회의 기획위원[10]

1. 개요
2. 생애
3. 선거이력
4. 대중매체에서
4.1. 드라마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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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14대 내무부 장관.

2. 생애


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함경북도 관찰부주사와 중추원의관을 지낸 장익유(張益裕)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부천군에서 성장하였다. 경성부 휘문고등보통학교[1], 일본 교토 제삼고등학교,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법률과를 졸업하였다.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1936년 경성지방법원 사법관시보를 시작으로, 1938년 경성지방법원 판사, 1941년 경성복심법원 판사 등을 역임하는 등 일제강점기 말 법조계 관료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미군정기에서도 판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자신의 경력이 문제되자 사임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이 출범하자 1949년 4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이 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친일경찰인 최운하를 체포하자 경찰을 동원하여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경대원들을 무장 해제'''시킨 후 연행하였다. 이를 세칭 '''6.6사건'''이라 한다.[2] 또한 보도연맹 부총재를 역임했다.
1950년 5월부터 1951년 6월까지 국방부 차관을 역임하였는데, 6.25 전쟁 당시, 대통령 일당들과 부산으로 피난으로 튄 후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에 그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나중에 제기되었다. 또 다른 용의자는 '''신성모'''.
1954년 한국기원 초대 이사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무소속 박제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사사오입 개헌을 추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김두한에게 폭행당하였다.[3] 1957년 2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깊이 관여했다.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부정선거 책임자로 지목되어 구속되자, 재판 계류 중 입원해 있던 병원을 탈출해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후 미국, 브라질 등을 전전하다가 지병이 심해지면서 1977년 귀국하였고, 1978년 사망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수록되었다.

3. 선거이력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제20선거구)[4]
'''자유당'''
'''12,992 (35.27%)'''
'''당선 (1위)'''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제20선거구)
'''자유당'''
'''29,393 (67.68%)'''
'''당선 (1위)'''


4. 대중매체에서


드라마 무풍지대에서는 박영목, 제1공화국에서는 장건일, 제2공화국에서는 풍파고 교감으로 유명한 홍순창이 연기하였다.

4.1. 드라마 야인시대



야인시대에서는 MBC 성우 공채 10기 출신인 김강산(본명: 김익곤)이 연기하며, 상술한 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에 설립된 반민특위를 와해한 6.6사태를 묘사한 장면에서 경찰부대를 이끌고 반민특위 위원들이 있는 사무실을 습격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했다. 이때 반민특위 사무실에 있던 위원이자 현직 국회의원 한 명이 체포에 불응하며 총을 빼들자 장경근이 끌고 온 부하 경찰 중 하나인 김형사[5]가 자신도 총을 꺼낸 후, 그를 무자비하게 밟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김형사에게 맞고 있는 반민특위 위원이 더는 자기들에게 저항하지 못 한다고 판단했는지 그에게 "그래도 국회의원인데 그만 때려라." 라고 말하며 폭행을 중지시킨 후에 끌고 가라고 명령한다. 이후에는 김두한, 김영삼과 같이 제3대 국회의원으로 나왔다. 국회 연설에서 이승만사사오입 개헌을 찬성하며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국민을 위한 일이라며 궤변을 늘어놓다가 당시 20대 청년 의원이었던 김영삼에게 말도 안된다는 일갈을 듣는다. 이때 어린놈이 뭘 알겠냐며 초선의원 주제에 다 같은 의원이냐며 소리지르지만, 그 뒤에 나온 김두한이 한 소리 하면서 다가갈 때[6] 벌벌 떨면서 오지 말라고 하지만 무력하게 한대 얻어맞는다.
문제는 이 장면 바로 뒤에 나오는 이기붕도, 그리고 장경근 본인도 실제론 초선 의원이라는 것이다.[7] 실로 내로남불이 아닐 수가 없다.
이후에 이정재를 억지로 밀어내고 이천시 선거구를 차지하라고 이기붕을 꼬드기는 패거리 중 한명으로 등장하기도 했고[8], 결국 어거지로 당선된 이기붕이 당원들과 회의를 할 때도 잠시 등장하여 조봉암을 실컷 까내리는 등,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서울특별시 강남구 휘문중학교&휘문고등학교[2] 야인시대 2부 80화에 언급 된다. 그리고, 그 이정재(야인시대)도 친일파 경찰인 노덕술에게 '''빨갱이''' 누명을 받아 고문을 받게 된다.[3] 야인시대에서의 장면. 여담으로 드라마의 김두한은 장경근을 패면서 "개는 맞아야 알아듣더라고" 라며 독설을 퍼부은다. 참고로 장경근이 김영삼이 발언할 때는 어린 놈이라고 무시하면서 앉으라고 소리지르다가 김두한이 발언할 때 쫄아서 아무말도 못하는 게 압권이다.[4] 부천군[5] 내가 고자라니에서 이정재와 함께 백병원 중환자실에 들어온 뒤, 깜짝 놀란 의사양반과 심영에게 "수도경찰청에서 왔소, 우리 주임님이셔." 라는 대사를 한 그 김형사가 맞다.[6] 장경근이 김두한보다 실제로 7살이 많지만 주먹출신이여서 그런지 김영삼한테는 반말하다가 김두한한테는 존댓말로 대한다.[7] 그래서 야인시대 합성물 중에서는 김두한이 "니도 초선이면서 뭔 소리냐" 라는 말과 함께 나레이션 양반을 소환하여 장경근을 역관광 시키는 작품도 존재한다.[8] 사실 장경근은 이정재를 두번이나 몰락시켰는데 한번은 반민특위 해체 건이고 또 한번은 이천시 선거구를 빼앗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