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캐시

 

''' 조니 캐시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펼치기 · 접기 ]
[image]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 [42]
<-2><^|1><bgcolor=#ffffff><height=32>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이름'''
'''조니 캐시
JOHNNY CASH
'''
'''멤버'''
(개인자격)
'''입성 연도'''
'''1992년'''
'''후보자격 연도'''
'''1986년'''
<:><#0C0000>'''후보선정 연도'''||<:><#0C0000>'''{{{#ffd700 1990년, 1991년, 1992년
'''||
}}}




}}}||
---
[image]
[image]
John R. "Johnny" Cash.
1932년 2월 26일 ~ 2003년 9월 12일
1. 개요
2. 특징
3. 음악
4. 결혼 생활
5. 조니 캐시 프로젝트
6. 여담
6.1. 조니 캐시의 음악을 사용한 미디어


1. 개요


'''Hello, I'm Johnny Cash!'''[1]

미국싱어송라이터, 그리고 '''America’s Foremost Singing Storyteller'''[2]
컨트리 음악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레전드 아티스트다. 장르적 특성 때문인지 컨트리 가수들이 대부분 그 내부에서 활동하고 인기를 얻는 반면, 그는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 소통하며 음악적 저변을 넓혀왔다. 2004년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100 Greatest Artists'에서 31위에 올랐는데, 컨트리 가수로는 유일하다. 소위 컨트리 록이나 얼터너티브 컨트리처럼 록과 컨트리의 융합을 시도한 뮤지션들 대부분은 조니 캐시 영향을 강하게 받은 편이다. 닐 영이나 밥 딜런이 대표적인 예.
별명은 '''Man in Black'''.[3]
모든 공연을 시작하기 전 "Hello, I'm Johnny Cash"라는 인사말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4]

2. 특징


[image]
그는 컨트리 음악계에서 일종의 반항아(outlaw)로 분류되었다. 특유의 중저음과 독특하고 진보적인 사운드도 기존의 컨트리와 확연히 다른 점이었지만, 무엇보다 그의 성향이 여타 컨트리 가수들과는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수감자, 하층민, 노동자, 북미 원주민 등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위해 노래했으며, 심지어 죽기 전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5] 그의 가치관은 "Man in Black"의 가사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반복된 약물 복용과 체포도 그의 반항적 이미지에 한몫했으며, 그나마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이 여타 컨트리 가수들과 비슷한 점이다.[6]

3. 음악


데뷔곡인 "Cry, Cry, Cry"부터 "I Walk the Line", "Ring of Fire", "Man in Black", "Get Rhythm", "Sunday Morning Coming Down", "A Boy Named Sue", "Understand Your Man", "Don't Take Your Guns to Town", "What Is Truth", "The Ballad of Ira Hayes",[7] "Jackson"[8] 등 수많은 명곡이 있지만, 하나만 꼽자면 단연 "Folsom Prison Blues".[9]

이 곡은 그가 서독에서 공군으로 복무하던 시절 다큐멘터리 영화 <Inside the Walls of Folsom Prison>을 보고 만든 곡이다. 1956년 처음 발표되고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으나, 더욱 크게 성공한 것은 그로부터 십여 년 후 1968년 라이브 앨범인 <At Folsom Prison>을 발매하면서다. 앨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앨범은 같은 해 1월 13일 폴섬 감옥[10]공연을 녹음한 것이다.[11] "Folsom Prison Blues"은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4주 간 1위를 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I hear the train a comin'
열차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
It's rolling round the bend
철로를 따라 모퉁이를 돌고 있어
And I ain't seen the sunshine since I don't know when,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햇볕을 보지 못한 지도 오래됐어
I'm stuck in Folsom prison, and time keeps draggin' on
나는 폴섬 감옥에 갇힌 신세,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가
But that train keeps a rollin' on down to San Antone...
하지만 열차는 계속해서 저기 샌안토니오로 향하네
When I was just a baby my mama told me. Son,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말해주셨지. 아들아,
Always be a good boy, don't ever play with guns.
언제나 바르게 살렴, 총은 손에도 대지 말거라
But I shot a man in Reno just to watch him die
하지만 난 그저 그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기 위해, 리노[12]에서 한 사람을 쏘았지
When I hear that whistle blowing, I hang my head and cry...
열차 경적 소리[13]가 들릴 때면 난 고개를 떨구고 울지...
I bet there's rich folks eating in a fancy dining car
내 장담하건데 세상엔 으리으리한 식당칸에서 식사를 하는 금수저 양반들이 있을 거야
They're probably drinkin' coffee and smoking big cigars.
그 작자들은 커피를 마시고 큼직한 시가를 피워대겠지
Well I know I had it coming, I know I can't be free
글쎄, 나도 이게 내 잘못이라는 걸 알고 있고 내가 자유의 몸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아
But those people keep a movin'
하지만 그 작자들은 계속해서 이곳 저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And that's what tortures me...
그 점이 날 괴롭히지
Well if they freed me from this prison,
만에 하나 내가 자유의 몸이 된다면
If that railroad train was mine
저 기차가 내 것이 된다면
I bet I'd move it on a little farther down the line
철로를 따라 좀 더 먼 곳으로 기차를 몰 거야
Far from Folsom prison, that's where I want to stay
난 폴섬 감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머물고 싶어
And I'd let that lonesome whistle blow my blues away...
그리고 난 열차 경적 소리에 내 우울함을 날려버릴거야...
가사가 굉장히 노골적인데, 대표적으로 "I shot a man in Reno/just to watch him die"(난 리노에서 한 남자를 쏘았지/그저 그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는 구절은 처음 들으면 깜짝 놀랄 내용이다.[14] 이에 대해 그는 "손에 펜을 쥐고 곰곰이 생각해 봤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데 가장 최악의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말이 떠올랐어요"[15]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범죄를 옹호하거나 지지하기 위해 이 곡을 쓰고 감옥에서 공연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당시 수감자들이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한 채 억압된 생활을 하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더 나아가 하층민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 보다 심층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그는 수감자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A first offender needs to know that somebody cares for him and that he is given a fair shake. The purpose behind prison reform should be to have less crime. The prisoner has to be treated like a human being. If he isn't when he gets out, he won't act like one. (Johnny Cash)

〈At Folsom Prison>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는 물론 미국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명반이다.[16] 약물 복용으로 잠시 침체기를 겪던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이 건재함을 증명해냈고, 특유의 반항아적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또 다른 명곡인 "Man in Black"은 그의 가치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다. 그는 왜 항상 검은 정장을 입는지 소회를 밝히며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설 것을 이 노래를 통해 다짐했다.

Well, you wonder why I always dress in black,
Why you never see bright colors on my back,
And why does my appearance seem to have a somber tone.
Well, there's a reason for the things that I have on.
I wear the black for the poor and the beaten down,
Livin' in the hopeless, hungry side of town,
I wear it for the prisoner who has long paid for his crime,
But is there because he's a victim of the times.
I wear the black for those who never read,
Or listened to the words that Jesus said,
About the road to happiness through love and charity,
Why, you'd think He's talking straight to you and me.
Well, we're doin' mighty fine, I do suppose,
In our streak of lightnin' cars and fancy clothes,
But just so we're reminded of the ones who are held back,
Up front there ought 'a be a Man In Black.
I wear it for the sick and lonely old,
For the reckless ones whose bad trip left them cold,
I wear the black in mournin' for the lives that could have been,
Each week we lose a hundred fine young men.
And, I wear it for the thousands who have died,
Believen' that the Lord was on their side,
I wear it for another hundred thousand who have died,
Believen' that we all were on their side.
Well, there's things that never will be right I know,
And things need changin' everywhere you go,
But 'til we start to make a move to make a few things right,
You'll never see me wear a suit of white.
Ah, I'd love to wear a rainbow every day,
And tell the world that everything's OK,
But I'll try to carry off a little darkness on my back,
'Till things are brighter, I'm the Man In Black.
1985년 그는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윌리 넬슨, 웨일런 제닝스와 함께 하이웨이맨(The Highwaymen)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는데, 컨트리 끝판왕 네 명이 모인 말 그대로 '''슈퍼그룹'''이었다. 침체기를 겪고 있던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다시금 재도약했다.

컬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이 만료된 이후에는 릭 루빈이 이끄는 아메리칸 레코딩스(American Recordings)와 계약했다. 그리고 1994년 <American Recordings>를 시작으로 'American' 시리즈를 연이어 내놓았다.
2002년에 발표한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17]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의 1994년 곡 '''Hurt'''를 커버했는데, 그의 덤덤한 목소리와 그의 일생을 반추한 뮤직비디오가 큰 주목을 받았다. 마치 가왕 조용필이 2013년 앨범 <Hello>로 한국 가요계에 파장을 일으켰듯이 세대를 뛰어넘는 음악적 깊이로 자신의 건재함을 널리 알린 것이다. 원곡자인 트렌트 레즈너[18]는 물론 평단과 대중 모두 극찬했고, 2011년 타임지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뮤직비디오 30편 중 하나로, 2012년 영국 음악 잡지 NME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직비디오로 꼽았다. 그리고 그는 2003년 MTV VMA의 '올해의 비디오'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VMA에 이름을 올린 최고령 아티스트'라는 역사를 새로 썼고, 그 중 촬영상을 거머쥐었다.[19] 나이 많은, 그것도 컨트리 가수가 젊은이들의 시상식인 VMA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Cry Me a River"로 그를 제치고 '최우수 남성 비디오'를 수상한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수상소감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재검표라도 해야 합니다. 전 저의 할아버지로부터 조니 캐시 노래를 들으면서 자랐고, 그가 지금 여기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이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his is a travesty! I demand a recount. My grandfather raised me on Johnny Cash, and I think he deserves this more than any of us in here tonight."


이 뮤직비디오가 촬영된 시점인 2003년에 조니 캐시 는 71세였고, 인생을 바꿔준 아내인 준 카터 캐시가 아직 생존해 있었으며, 비디오에 잠깐 등장한다. 아래에도 서술되어 있지만, 이 비디오가 촬영된 3개월 후 준 캐시는 사망하며, 조니 캐시 본인도 그 4개월 후 사망하게 된다. 비디오의 배경은 조니 캐시가 30년간 살았던 집이자 박물관이었던 건물인데, 2003년 당시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어 곡의 분위기와 일치하는 환경을 보여주며, 슬프게도 이 건물 또한 2007년 화재로 전소된다.
그리고 이 노래는 로건(영화) 예고편에도 삽입되는데, 휴 잭맨이 마지막으로 연기하는 울버린이라는걸 감안하면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20]
그의 유작인 <The Man Comes Around>.[21] 요한묵시록을 노래로 만든듯. 새벽의 저주인트로 곡, 제너레이션 킬의 OST. 로건(영화)의 엔딩 크레딧으로도 나왔다.
처음에 나오는 <Der Sinn des Lebens?>는 "삶의 의미란?" 이라는 뜻의 독일어이다.
(나레이션)
And I heard, as it were, the noise of thunder: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 하나가
One of the four beasts saying: "Come and see."
우렛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And I saw.
이에 내가 보니,
And behold, a white horse.
흰 말을 보았네
There's a man goin' 'round takin' names.
가오가며 이름을 적고있네.
An' he decides who to free and who to blame.
누굴 살리고 누굴 벌할지.
Everybody won't be treated all the same.
모두 같은 대접을 받지는 못할 것이니.
There'll be a golden ladder reaching down.
황금 사다리가 내려오고 있네.
When the man comes around.
그분이 오시는 날에는.
The hairs on your arm will stand up.
팔에 난 털이 곤두서네,
At the terror in each sip and in each sup.
모두 공포를 경험할 심판의 축제날에,
For you partake of that last offered cup,
당신은 마지막 축배를 들 것인가,
Or disappear into the potter's ground.
진흙탕 속으로 사라질 것 인가.
When the man comes around.
그분이 오시는 날에는
Hear the trumpets, hear the pipers.
나팔과 피리 소리 들리네.
One hundred million angels singin'.
수많은 천사가 노래하네,
Multitudes are marching to the big kettle drum.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는 많은 사람들
Voices callin', voices cryin'.
부르짖고 울부짖는 목소리들
Some are born an' some are dyin'.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It's Alpha's and Omega's Kingdom come.
처음이자 마지막인 왕국이 오네.
And the whirlwind is in the thorn tree.
가시나무[22]에 소용돌이가 일고.
The virgins are all trimming their wicks.
처녀들은 그들의 등잔을 준비하네[23]
The whirlwind is in the thorn tree.
가시나무에 소용돌이가 일고
It'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
가시덩굴을 걷어내는 것은 힘들것이오
Till Armageddon, no Shalam, no Shalom.
아마겟돈이 오기전까지 안식과 평화는 없을 것이다
Then the father hen will call his chickens home.
지옥의 아버지는 자식을 집으로 불러들이네
The wise men will bow down before the throne.
현명한자는 왕좌 앞에 엎드려서,
And at his feet they'll cast their golden crown.
그들의 발밑에 황금 왕관을 바치네
When the man comes around.
그분이 오시는 날에는.
Whoever is unjust, let him be unjust still.
공정하지 못한자는 공정하지 않게 남을것이며
Whoever is righteous, let him be righteous still.
정의로운 자는 계속 정의로울 것이다
Whoever is filthy, let him be filthy still.
더러운 자는 더러운 채로 내버려두어라.
Listen to the words long written down,
이 모든 기록된 말씀을 듣게 하라.
When the man comes around.
그분이 오시는 날에는
Hear the trumpets, hear the pipers.
나팔과 피리 소리 들리네.
One hundred million angels singin'.
수많은 천사가 노래하네,
Multitudes are marching to the big kettle drum.
북소리에 맞춰 행진하는 많은 사람들
Voices callin', voices cryin'.
부르짖고 울부짖는 목소리들
Some are born an' some are dyin'.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It's Alpha's and Omega's Kingdom come.
처음이자 마지막인 왕국이 오네.
And the whirlwind is in the thorn tree.
가시나무에 소용돌이가 일고.
The virgins are all trimming their wicks.
처녀들은 촛불을 켜네
The whirlwind is in the thorn tree.
가시나무에 소용돌이가 일고
It's hard for thee to kick against the pricks.
당신의 아픔을 걷어내기는 힘들것입니다.
In measured hundredweight and penny pound.
하루 품삯에 연명하며 살아갈 것이요,
When the man comes around.
그분이 오실 때에
(나레이션)
And I heard a voice in the midst of the four beasts,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And I looked and behold: a pale horse.
그리고 내가 보니,청황색 말 한 마리가 나오는데
And his name, that sat on him, was Death.
그 위에 탄 사람의 이름은 죽음이고,
And Hell follwed with him.
지옥이 그뒤를 따르더라.
가사출처

4. 결혼 생활


그가 두 번째 아내인 준 카터[24]를 처음 본 것은 1950년이었다. 수학여행으로 테네시내시빌을 갔는데, 컨트리 음악의 성지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공연 중이던 그녀를 얼빠진 듯 바라보았다고 한다.[25] 그리고 데뷔 후 1955년 그가 오프리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준과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된다. 이때 둘은 각자 막 결혼한 상태[26]였는데, 당시 둘이 한 대화가 대략 이렇다.

"Hello, I'm Johnny Cash and I'm going to marry you someday."

"Really?"

"Yeah."

"Well, good. I can't wait."

"안녕하세요. 전 조니 캐시이고 언젠가 당신과 '''결혼'''할 겁니다."

"진심인가요?"

"그럼요"

"뭐, 좋아요. '''기다려지네요.'''"

둘은 이후 같이 투어를 다니게 되고, 13년이 흐른 1968년[27]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에서 공연을 하던 중 조니가 준에게 청혼한다. 그리고 결혼골인. '''로맨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더군다나 준이 컨트리 음악계의 귀족 가문이라 할 수 있는 카터 가의 딸이었기 때문에 둘의 결혼은 세간의 화제를 불러왔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컨트리 음악계의 브란젤리나 커플인 셈. 둘은 35년을 인생의 동반자로 지냈고, 아들 존 카터 캐시를 낳았다.
[image]
둘의 대표적인 듀엣곡인 "Jackson".
2003년 5월 15일 준이 심장 수술 경과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머지 않아 4개월 후 9월 12일에 그 역시 당뇨 합병증으로 그녀 곁으로 갔다.[28] 2003년 6월 5일 마지막 콘서트에서 그는 "Ring of Fire"를 부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The spirit of June Carter overshadows me tonight with the love she had for me and the love I have for her. We connect somewhere between here and heaven. She came down for a short visit, I guess, from heaven to visit with me tonight to give me courage and inspiration like she always has. (Cash)

그녀가 저에게 주었던 사랑과 제가 그녀에게 주었던 사랑으로 준 카터의 영혼이 오늘 밤 제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우리 둘은 이 세상과 천국 사이의 어딘가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잠시 저를 보러 와준거겠죠, 제 생각엔요, 천국에서 오늘 밤 제게 용기와 영감을 주려고 저를 찾아온 것이겠죠, 그녀가 언제나 그랬 듯 말입니다.

2005년 개봉한 호아킨 피닉스,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 <앙코르>(Walk the Line)가 둘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29]
[image]
이 정도 싱크로율이면 훌륭하다!

5. 조니 캐시 프로젝트


'''"검은 옷의 사나이의 살아있는 초상화"(Living Portrait of the Man in Black)'''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구글 크롬이 그의 유작인 <American VI: Ain't No Grave>[30]의 수록곡 "Ain't No Grave"[31]뮤직비디오를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만드는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명 뮤직비디오 감독인 크리스 밀크와 디지털 미디어 예술가인 아론 코블린이 주축이 되었고, 둘이 만든 영상 그림판을 기초로 누구나 온라인 계정을 만들고 자신만의 프레임을 제작해 영상에 집어넣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점수를 매길 수록 매 순간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만들어진다.

The Johnny Cash Project is a visual testament to how the Man in Black lives on – not just through his vast musical legacy, but in the hearts and minds of all of us around the world he has touched with his talent, his passion, and his indomitable spirit. It is this spirit that is the lifeblood of The Johnny Cash Project. Thank you for helping Johnny’s spirit soar once more. God bless. (Chris Milk)

아래는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2010년 9월 30일까지의 결과물로 탄생한 뮤직비디오다. 최신 버젼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여담


어렸을 때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감명을 받아 '괴물'을 "나쁜 부분들을 모아 만들었지만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made up of bad parts but trying to do good) 캐릭터로 생각했다고 한다.
첫 싱글이었던 "Cry, Cry, Cry"를 녹음한 후 그가 받은 돈은 2.41달러.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의 독특한 복장 때문에 동료 가수들은 그를 장의사라고 놀렸다.
1965년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출연 정지를 당한다. 이유는 마이크 스탠드로 바닥에 있던 조명을 깨버려서였다. 물론 이후 해지된다.[32]
1969년부터 71년까지 ABC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조니 캐시 쇼>(The Johnny Cash Show)를 진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컨트리 음악이 미국 전역에서 사랑 받는 장르는 아니기 때문에[33] 컨트리 가수가 지상파에서 단독쇼를 진행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그가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때 그는 다양한 뮤지션들을 초대해 협연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밥 딜런[34] ,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에릭 클랩튼, 루이 암스트롱, 조니 미첼, CCR, 닐 다이아몬드, 멀 해거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image]
평생 좋은 음악적 동료였던 밥 딜런과 함께
때문에 꽤 어린 후배들에게도 친절하게 잘해줬다는 얘기가 많다. 나이로 따지면 자식뻘인 후배 밴드 요 라 텡고 역시 막 유명해지던 시절 조니 캐시의 오프닝 밴드로 같이 일했는데, 조니 캐시가 엄청 잘해주고 집에도 초대해 식사도 할 정도로 가족 같았다고 얘기했을 정도. 이들 역시 조니 캐시가 사망했을때 슬퍼했다고 한다.
감옥에 간 적은 없지만 모든 사건을 다 합치면 총 7일 간 구류당했다.
1972년 백악관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을 만났다. 수감환경 개선을 의논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는데, 분위기도 풀 겸 닉슨은 그에게 간단하게 몇 곡 불러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때 요청한 곡이 멀 해거드의 "Okie from Muskogee",[35] 가이 드레이크의 "Welfare Cadillac",[36] 그리고 그의 히트곡 "A Boy Named Sue". 앞의 두 곡은 백인 보수주의자들이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이 요청을 거절하고 자신의 곡 중 가장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What Is Truth", "Man in Black", "The Ballad of Ira Hayes"를 차례로 불렀다. 역시 그다운 배짱. 원래 짜여진 대본과 달리 기자들 앞에서 갑작스럽게 벌어진 돌발상황에 닉슨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One thing I've learned about Johnny Cash, is that you don't tell him what to sing"이라고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그는 여러 번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으로 닉슨을 꼽았다. 자기 멋대로 했는데 뒤끝없이 허허 하고 넘어간게 인상 깊었던듯.
1977년 내시빌 작곡가 명예의 전당, 1980년 컨트리 음악 명예의 전당, 199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각각 헌액되었다.[37]
1996년 케네디 센터 아너스를 받았다. 헌정 공연으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Sunday Morning Coming Down", 라일 로벳이 "Folsom Prison Blues", 에밀루 해리스가 "Ring of Fire", 그의 딸인 로잔느 캐시[38]가 "Walk the Line"을 불렀고, 마지막에 다함께 부른 곡은 "I'll Fly Away". 영상 속에서 당시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과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모습도 볼 수 있다.
1999년 그래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39]
2014년 미국아카펠라 그룹 오디션인 The Sing off 시즌 4에서 Home free라는 그룹이 조니 캐시의 명곡 Ring of fire를 불러 우승했다.


6.1. 조니 캐시의 음악을 사용한 미디어


HBO의 드라마 제네레이션 킬의 마지막 장면에서 The Man Comes Around가 사용되었다.
어덜트 스윔의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 시즌2 10화의 최후반부에 Hurt가 사용되었다.(커버 버전)
잭 스나이더의 영화 새벽의 저주의 오프닝 크레딧에서 The Man Comes Around가 사용되었다. 세상이 멸망해가는 과정과 함께.
게임 배틀필드 3의 싱글 캠페인 인트로에서 God´s Gonna Cut You Down가 사용되었다. 이후 배틀필드 1게임즈컴 게임플레이 트레일러에서 다시 리믹스 버전으로 사용되었다.
올리비아 메가턴의 2011년 영화 조 샐다나 주연 콜롬비아나에서 Hurt가 ost로 사용되었다. 영화의 스토리나 상황전개 그리고 최후반부 모든 가족을 잃고 홀로 눈물을 훔치며 다시 은둔의 길을 찾아 연인과 헤어지는 주인공의 심경과 합쳐져 씁쓸 하고도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017년 엑스맨 영화 로건 예고편에서 조니 캐시의 Hurt가 사용되어 대호평을 받았다. 트레일러. 노래와 영상의 싱크로율등이 엄청날 정도로 잘 맞았기 때문. 본영화 크레딧에서는 The Man Comes Around가 사용되었다.[40]

2017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의 예고편에서 Ain't No Grave가 사용되었다.[41] 트레일러주인공 잭 스패로우가 트레일러 내내 등장하지 않다가 마지막에 강렬한 한 마디를 하고 퇴장하는 것이 인상적.
2011년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 의 임시 레슬메니아 테마곡으로 Ain't no grave가 사용되었다. 본래 스팅(프로레슬러)의 WWE입사 테마곡으로 할려고 했지만 스팅이 트나에 재계약을 했었는데.. 이때 아까운 노래인지..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 한테 준거라고..

[1] 연주를 시작할때 마다 늘 하던 인사말이다.[2] 매니저였던 사울 홀리프가 그를 설명하며 만든 말이다.[3] 그는 항상 검은 정장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대부분의 남성 컨트리 가수들이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 카우보이 부츠를 입고 신었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옷차림이었다. 그는 노래 "Man in Black"을 통해 검은 정장을 입는 '숭고한' 이유를 밝혔는데, 사실 투어를 오래 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 데 검은 정장이 가장 유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첫 공식적인 공연에서 검은 정장을 입고 결과가 좋았기 때문에 일종의 부적으로도 생각했다고 한다.[4] 모든 무대를 시작하기 전 그는 이 한 마디만 했고 곧바로 "Folsom Prison Blues"를 연주했다. 1970년에 같은 제목의 앨범도 냈다.[5]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지지 정당이 공화당인지 민주당인지 확언하기는 어렵다. 참고로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대통령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인데,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앨 고어를 지지한 적도 있다.[6] 참고로 그는 가스펠 앨범을 여러 개 냈다.[7] 북미 원주민계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인 아이라 헤이즈의 비극적인 죽음을 노래한 곡이다. 조니 캐시는 미국 사회에서 철저히 무시당하는 북미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다방면에서 앞장섰는데, 백인 위주의 보수적인 남부 사회에서는 이때문에 이 곡을 보이콧 하기도 했다. 참고로 아이라 헤이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버지의 깃발>에 나오는 세 인물 중 한 명이다.[8] 아내인 준 카터와의 듀엣곡[9] 그의 첫 그래미 수상곡이기도 하다.[10] 캘리포니아 주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감옥이다.[11] 당시 그는 오전 9시 40분, 오후 12시 40분에 공연을 했는데, 앨범에 수록된 것은 12시 40분 공연이다.[12] 네바다 서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라스베가스만큼은 아니지만 도박으로 유명함.[13] whistle의 중의적 표현을 잘 살린 부분이다. 열차의 경적 소리 혹은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14] 실황 앨범인 만큼 중간중간 환호성이 들리는데, 이 구절에서 나오는 환호성은 녹음 후에 추가된 것이라 한다. 수감자들이 간수들의 보복이 두려워 범죄 행위에 관련된 가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내지 못했기 때문.[15] "I sat with my pen in my hand, trying to think up the worst reason a person could have for killing another person, and that's what came to mind."[16] 2012년 롤링 스톤지에서 선정한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88위에 올랐다. 2004년에는 미 의회도서관이 선정한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영구 등재되었다.[17] 그가 죽기 전 나온 마지막 정규 앨범.[18] 어떤 의미에서는 트렌트 레즈너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기도 했다. 저 당시 트렌트 레즈너는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한동안 음악을 쉬고 있었는데, 조니 캐시의 커버 버전을 듣고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The Downward Spiral 문서를 참조할 것.[19] 이 외에 2004년 그래미에서도 뮤직비디오상을, 2003년 CMA에선 '올해의 싱글'을 수상했다.[20] 재밌게도 로건, 조니 캐시 전기 영화인 '앙코르'의 연출 둘 다 제임스 맨골드다.[21] 언더테이커vs브레이 와이어트 프로모에서도 쓰였던곡이다.[22] 여기서 가시나무의 의미는 하찮은 것들, 즉 네똥기같은 인간들이 끝장난다는 것이다.[23] 유대인 관련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유대인들을 밤에 결혼식을 치른다. 그렇다면 등잔불이 필요한데, 등잔불을 키는 데에 필요한 기름을 준비한 여자들과,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나중에 기름을 준비해 오나 성문이 닫혀서 결국 결혼식에 참여를 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다.[24] 준에게는 조니와의 결혼이 세 번째.[25] 카터 패밀리(The Carter Family)는 컨트리 음악 초기의 대표적인 밴드로 준은 열 살 때부터 엄마인 메이벨을 따라다니며 공연했다. 조니는 어렸을 적부터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26] 당시 조니는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이 넷, 준은 첫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이 하나 있었다.[27] 그동안 준은 첫 번째 이혼 후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딸도 낳았지만 다시 이혼했다. 조니는 지속적인 마약과 알코올 남용, 외도 등의 사유로 2년 전에 아내와 이혼한 상태.[28] 준은 그가 자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 음악을 하길 바랐고, 실제로 그는 마지막 4개월 동안 60여 곡을 녹음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정규 앨범이 여러 번 나온 것은 모두 준 덕분.[29] 이듬해 리즈 위더스푼은 이 영화로 생애 첫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30] 그의 78번째 생일인 2010년 2월 23일에 발매되었다.[31] "Gonna Hold This Body Down"이라고도 알려진 이 곡은 미국의 오래된 가스펠 노래다.참고로언더테이커도 이노래를 사용하였다[32] 또 다른 컨트리 음악계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행크 윌리엄스도 1952년 알코올 중독과 계속되는 리허설 불참으로 그랜드 올 오프리에서 출연 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다만 그는 이듬해 1월 1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복귀하지 못했다.[33] 컨트리 음악은 인종, 지역에 많이 영향을 받는 장르다. 일반적으로 남부 백인 중산층이 좋아하는 음악. 다만 연령대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폭넓은 편이다.[34] 마침 밥 딜런은 이 시기에 Nashville Skyline이라는 컨트리 앨범을 선보였는 데, 이 앨범의 스튜디오 녹음과 조니 캐시 쇼에서 종래의 창법과 다른 미성으로 노래해 밥 딜런의 목소리를 알고 있던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35] 히피족과 반전 운동가들을 비판한 노래.[36] 과도한 복지 제도를 비판한 노래.[37] 이 세 곳에 헌액된 컨트리 가수는 그를 포함해 행크 윌리엄스, 지미 로저스, 밥 윌스, 빌 먼로, 이렇게 총 다섯 명밖에 없다. 또한 다른 네 명이 "초창기에 영향을 주었다"(early influence)는 명목으로 락앤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반면, 그는 정식적으로 락앤롤에 대한 업적을 인정 받아 헌액되었다는 차이가 있다.[38] 이쪽도 아버지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유명한 가수다.[39] 같은 해 공동 수상자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샘 쿡, 오티스 레딩, 스모키 로빈슨, 멜 토메.[40] 본작의 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쟈니 캐쉬 전기 영화인 앙코르를 감독했었다.[41] 참고로, WWE언더테이커가 2011년에 잠깐 쓴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