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대왕(소설)
1. 개요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은 1954년에 발표된 윌리엄 골딩의 소설이다.
출간 당시에는 3천 부 미만의 낮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데 그쳤지만,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60년대 초반에는 수많은 학교의 학생들에게 읽히게 되었고, 골딩은 198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그제서야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말하자면 파리 대왕은 골딩에게 작가로서 일생일대의 명예를 안긴 대표작으로, 이후 그는 여러 작품을 발표했지만 파리 대왕의 명성을 넘지는 못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은 제2차 세계 대전이다. 전쟁을 피해 피난가던 영국 소년들이 비행기 추락으로 인하여 무인도에 표착되고 고립된 뒤 벌이는 모험담이다. 언뜻 생각하면 15소년 표류기의 줄거리와 내용이 비슷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으며 몇 독자들은 15소년 표류기의 타락 버전이라고 치부하지만, 두 소설은 배경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그야말로 문명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 고립된 소년들이 조금씩 야만인으로 변질되어가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정체불명의 외부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극한 생존 위기로 인해 오로지 힘만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 신앙, 이성, 마지막으로 양심까지 버리는 순으로 인간성을 상실하는데, 천재지변이나 전쟁 등의 격변으로 인해 사람들이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들이 무너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간다는 무섭고도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고 있다.
2. 내용
비행기가 섬에 추락하고, 어른 없이 아이들 몇몇만이 무인도에 남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행기는 영국에서 피난을 위해 이륙한 것으로, 공격을 받아 추락한 것이다.[1] 책 서두에서 주인공인 랄프와 피기[2] 가 만나고, 랄프가 소라껍질을 찾아 그것을 나팔 불듯이 불자 아이들이 정글 밖에서 나온다.
초반에 소년들은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리더십이 있는 소년인 랄프를 대장으로 삼아 나름 질서를 유지하면서 그럴 듯하게 어른들의 흉내를 냈으나, 산 위의 '짐승'이라 불리는 알 수 없는 존재[3] 에 대한 불안감이나 사냥 등을 통해서 표출되는 야만성, 그리고 본래 권력욕을 숨겨왔던 잭이 그의 욕심을 표출하면서 상황은 점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국 잭이 한없이 잔인한 로저와 자신의 무리를 조직해서 떠나버린 다음에 소년들은 결국에는 문화인으로서의 질서를 완벽하게 잃고 야만인이 되어버린다.
물론 소년들이 저렇게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도 그들이 멧돼지를 사냥하는 방법이 갈수록 잔인해졌고, 나중에는 괴로워하는 돼지를 보고 즐거워하는 등 계속해서 서구 문명의 질서와 문화로부터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법규와 양심을 잊은 나머지 결국에는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고 고문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고, 결국은 그들 스스로가 완벽하게 '''야만인'''이 되어 유일하게 규범과 양심이 있는 세계를 잊지 않고 있던 랄프만이 그들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야만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마저 랄프를 떠나게 된다.
가장 충실히 일하던 사이먼[4] 과 가장 합리적인 생각을 하던 피기는 죽어버리고, 랄프를 따르던 쌍둥이 샘, 에릭은 포획된 후 로저의 고문, 협박 등에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잭에게 합류하게 된다. 쌍둥이는 랄프의 처지를 동정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로저가 두려워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최후의 랄프 추적에도 동원되게 된다.
랄프는 잭과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쫓기게 되며, 그 와중에 잭과 추종자들이 그를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 '''섬에 불을 질러버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섬을 덮친 대화재를 목격한 해군이 섬에 상륙하며, 마침 그때 랄프가 그 어른들과 조우하게 된다. 고향에서 온 어른들을 본 랄프는 눈물을 흘리고, 어른들은 다른 아이들의 행방을 묻지만, 곧 랄프를 쫓아온 야만인 아이들을 보고서는 그들이 단순히 전쟁놀이라도 한 마냥 착각한다. 어른들(즉, 문명)을 다시 만난 다른 아이들도 오열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5][6]
3. 설명
- 작품의 이름의 유래는 역시 바알제붑. 실제로 소설 중에 파리가 꼬인 죽은 돼지 머리와 소년들 중 한 명인 사이먼이 대화를 나누는 초자연적인 장면이 있는데, 바알제붑을 연상시킨다.
- 작가는 제1차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그리고 전 인류의 역사를 통해 목격한 인간에게 숨겨진 사악한 내면을 소년들이 조금씩 야만인같이 변질되어가는 과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소년들을 구출한 '어른'들이 하필 구축함에 타고 있는 해군이라는 것 역시 작가가 의도한 일종의 장치라는 분석도 있다. 즉, '야만'으로 전락한 아이들을 질책하는 '문명'의 상징이 곧 어른들이지만, 이 어른들 역시 바다로 나가면 (마치 아이들이 멧돼지나 랄프를 쫓은 것처럼) 적군을 쫓기 시작할 것이라는 것. 원작 소설 초반부터, '적군' 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여 작중 세계에서 전쟁이 진행 중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 작가는 소년들의 외모로 소년들의 성격과 성질을 비유하는데, 이게 중요한 요소로 작중에서 전반적으로 작용한다. 서구권에는 빨간 머리는 성질이 급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잭이 빨간 머리이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소설에서 잭은 성질이 급하고 남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다. 따라서, 잭의 캐릭터는 완전한 악으로 분류된다. 악마의 존재가 돼지의 시체나 낙하산의 존재로 생각하기도 하는데, 잭을 바알제붑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악마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해석이 가장 적절하게 받아들여지고, 잭과 로저가 모든 아이들을 타락시킨다.
- 이 소설에 여성은 등장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비평가들은 성(性)의 힘을 배제하여 인간의 총체성에 중대한 왜곡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양 고등학교의 경우, '그중에 만약 여성이 존재했다면 좀더 밝은 결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나 어느 미국 유학생이 그 반에서 이 소설에 여자가 나왔다면? 하는 토론을 했더니 "여자가 철저하게 성노리개가 된다"는 의견이(여학생들도 다수)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잭 일행이 워낙 타락하고 야만적인 인간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성과 이성에 대한 본능은 어린아이들도 지니고 있다. 일례로 뭣도 모르는 어린 초등학생들이 베개에 자신의 성기를 문지르며 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본능이며, 스스로 성에 대한 본능에 의해 자신과 성에 대해 서서히 탐구해가는 것이다. 일례로, 현실에서 홍일점 표류로 인해 발생한 아나타한 섬 사건이 있었다. 하나뿐인 히가 카즈코가 일종의 트로피 와이프가 되었고, 한 명뿐인 여자를 확보하기 위해 무분별한 살인이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하지만 작중 등장 인물들의 연령을 따지면 여성이 등장해도 성욕과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전개할 방법도 충분하며, 오히려 이쪽으로 전개해야 개연성이 있을 수도 있다. 생식기와 결합해 쾌감을 얻을 수 있고, 생식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의 습득은 지식과 학습에 의해 가능하다. 성교육이 강화되고 음란물이 범람하는 21세기의 경우 섹스에 대한 것을 여러 방법으로 자체 습득할 수 있지만, 해당 소설이 창작된 시기는 1950년대로, 상당한 보수성이 남아있던 시기였다. 야생 암퇘지가 잭 일행의 손에 잔혹하게 죽는 장면을 강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작중에 여성 인물이 전무한 것도 암퇘지가 죽는 것이 강간의 은유라는 것과 연관짓는 추측도 있다. 작중 아이들의 잔혹성을 고려해보면 여자아이가 등장했더라도 랄프/피기/사이먼처럼 희생양이 되거나 잭 일행에게 물들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만. 골딩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여성이 포함됐을 경우 인물 간의 관계가 생겼을 것이고 본인은 그걸 원치 않았다고 한다.
- 제목이 악마인 만큼 성경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랄프가 눈을 뜨고서 가장 먼저 옷을 다 벗고 바다에 들어가는 장면을 문명에서 떨어진 섬(야생)에게 받는 침례로 해석한다. 피기의 전신이 물에 온전하게 잠기지 않는 것은 침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피기가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한다는 해석이다.
- 피기를 진짜 리더로 치기도 한다. 다만 조언자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리더십에 가장 중요한 '인원 챙기기'를 먼저 실행한 자이기도 하다. 초반에 소년들이 흥분해서 불을 지필 나무를 구하러 산을 가느라 인원을 신경쓰지 않고 이것저것 줍다가 한 아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챈 피기가 아이들에게 성질을 낸다.
3.1. 나오는 비유와 상징
- 랄프 / 민주적 지도자, 합리적으로 권력을 인계받은 인물. 권력(잭)의 폭주를 막는 견제수단.
- 조종사의 시체 / 무질서한 사회를 진정시키거나 사회의 질서를 수호하고 유지시킬 수단과 제도(어른)의 부재.인간을 타락시키는 거짓된 환상 혹은 독재자의 권력을 정당화시키기위한 거짓된 명분.
- 피기 (출판사에 따라 새끼돼지[7] ) / 행동 없는 지성, 관료, 공무원, 주체성이 없는 지식인.[8]
- 소라 / 민주주의 혹은 회의와 질서를 상징, 랄프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매개.[9]
- 안경 / 불, 문명, 과학력[10] 피기의 지식.[11]
- 잭 / 열정적이지만 충동적 지도자. 반역과 분열의 주모자.[12]
- 성가대 / 조직화된 무력(군대), 타락천사 루시퍼(사탄)가 천사장이었을 때 맡은 직무는 찬양 음악, 성가였다.[13]
- 파리대왕, 괴물 / 막연한 공포, 내재된 악마성.[14][15] 달리 생각하면 처절한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해서든 일단 살아야한다는 인간의 생존욕구가 인간을 가장 쉽게 타락시키는 심리적 기제임을 고발하는 것일 수 있다.[16]
- 사이먼 / 진실의 목소리, 세상의 어둠으로부터 진리의 길을 찾으려는 승려, 구도자, 선지자와 같은 종교적 인간[17]
- 로저 / 사형집행인. 순수한 무력.[18]
- 아이들 / 피동적 인간상. 잭과 랄프 사이에서 단순히 좋다는 의견만 듣고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하다가, 결국 잭을 선택하여 모조리 잭의 편으로 가버리더니 그 밑에서 전부 야만화되었다.
- 오두막과 봉화 / 실행하는데 오래 걸리는 장기적 이익.[19]
- 고기 / 단기적이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 육신의 쾌락.[20]
- 방화 / 독재자 본인(잭)의 횡포가 초래한 자멸과 몰락.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자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구원). 야만성에 물든 아이들의 재문명화.
4. 타 작품과의 연관성
4.1. 산호섬과의 연관성
국내에서는 15소년 표류기가 유명하기 때문에 자주 비교 대상이 되지만, 사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소설은 15소년 표류기가 아니라 로버트 밸런타인의 1858년작인 '산호섬(The Coral Island)'이다. 15소년 표류기는 1888년작으로 후대의 소설이기도 하다.
산호섬은 랄프, 잭, 그리고 피터킨이라는 3명의 영국 소년이 난파를 당하여 이름 모를 섬에 표류하게 된 뒤 서로 협동하여 용기있게 난관을 헤쳐나가고 모험 끝에 집으로 돌아간다는 줄거리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빅토리아 시대의 낙관론의 입장에서 기독교적 가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영국인의 우월의식을 과장하여 표현한다. 영국 소년들은 선과 미덕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반면, 원주민들은 악의 화신처럼 잔인하고 야만적으로 그려진다.
로빈슨 크루소 류의 장르소설 중 서양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설 중 하나였다. 당시 유행했던 캘빈주의와 퓨리턴의 원죄 교의에 대한 반박으로 쓰였는데, 원죄 교의는 인간 본성은 피할 수 없이 비뚤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동양철학에서 법치의 근거가 되었던 성악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산호섬에서 인간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동양 철학에서 유가가 주장하였던 성선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성선설도 아니다. 원주민들은 인간이 아닌가? 그냥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파리 대왕의 내용은 산호섬의 이런 원죄론 반박에 대한 재반박의 성질을 가진다. 주인공들의 이름을 산호섬과 동일하게 쓴 것은 노골적인 패러디의 일환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나타나 랄프를 구조하는 해군이 "왜 산호섬처럼 하지 않았니?"라고 묻는 장면은 비꼼의 절정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애초에 애들을 점잖게 구해준 어른들은 이미 본인들이 핵전쟁으로 모든 걸 박살낸 상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파리 대왕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산호섬은 '파리 대왕의 모티브가 된 소설'로만 알려져 있고, 앞서 설명한 두 작품의 대립되는 관계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 산호섬이 그리는 영국인의 우월 의식을 현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유치하고 비합리적이지만, 파리 대왕의 치열한 문제 의식은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야말로 문학계의 청출어람.
이 작품이 씌어진 다음해 로버트 하인라인은 이를 역 패러디한 'Tunnel in the Sky'를 썼다. 내용은 흡사하지만 이 작품속 주인공들은 희망적인 결말을 맞는다.
4.2. 15소년 표류기와의 연관성
비슷한 상황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비교되지만, 사실 두 작품은 비교하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포커스가 다르다.
15소년 표류기의 경우, 후반부엔 성인 조력자도 생기고 나름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배드 엔딩에 가깝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어이없는 행동이다.
우선, 15소년 표류기는 '''어른들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파리 대왕이 점점 통제를 잃어가는 아이들을 보여준다면, 15소년 표류기는 '''기존의 사회와 동떨어진 무인도에서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여럿이 모이면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15소년 표류기에서도 까딱하면 이 소설처럼 될 만한 요소들이 있지만, 그러한 요소들은 '''규율을 통해 통제된다.''' 위험한 상황에 놓이고,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을 사회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며, 작중 소년들이 보이는 모습들은 어른들이 사회에서 나타내는 모습들과 같다. 결국 어른이나 어린아이나 근본적으로는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15소년 표류기에서는 후반부에 여성이 한명 등장하는데, 아이들과는 달리 성인이고, 아이들은 이 여자에게 어찌 보면 "의존적인" 모습을 보인다. 무력은 자신들이 훨씬 강하지만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악당들을 죽이는 데에 가차없다.
5. 번역본
대표적인 번역본으로는 이덕형이 번역한 문예출판사본과 유종호가 번역한 민음사본이 있다. 민음사 유종호 역은 번역이 썩 좋지 않은 걸로 악명이 높다. 교수들이 뽑은 번역본에서는 그나마 가장 나은 본으로 뽑혔지만 읽어보면 문제투성이다.
야만인을 오랑캐로 옮긴 것까지야 한국적 취향이라고 넘어갈 수 있어도, 충분히 다른 말로 바꿔 쓸 수 있는 단어들이 '초호(礁湖), 금강석, 야코, 치도곤, 귀쌈, 고대(高臺), 능보(陵堡), 무연(憮然)히, 미만(彌滿/彌漫)하다' 같은 잘 안 쓰는 말로 번역되어 있기에, 어색하고 이해하기 힘들어서 몇 번씩 돌려읽거나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수준이다. 사전에 없는 단어도 꽤 많아 한자 한 자 한 자를 뜯어봐야 할 지경. '나 단어 이렇게나 많이 알아!'라는 식으로 잔뜩 무게를 잡고선, 무슨 고전 소설 옮기듯 해 놓았다. 정작 원문은 특별히 문장이 어려운 소설이 아니라는 점이 아이러니.
또 작중 인물들이 아이들이라 대화문에서 어색함이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어 "네가 할래?" 정도로 옮겨도 무난할 말을 "네가 하겠니?"로 옮겨서 지나치게 올드한 느낌을 주는가 하면, "줘", "봐"처럼 모음 음절 축약(반모음화)을 적용하면 자연스러울 표현을 굳이 "주어", "보아" 등으로 옮겨 두었기에 구어체를 쓰는 어린이들 대화 같지가 않고 매우 어색하다. "~고 했잖아!"를 "~고 했잖았어!"로 옮긴 건 애교 수준.
그리고 "Got a ship in your pocket?"을 "네 봉창에 배라도 들어 있냐?"로 번역한 데에서 보듯, '호주머니'를 역자 스스로의 고향인 충청도 방언 표현 '봉창'으로 옮긴 데에 이르면 독자로선 이래저래 힘이 빠질 정도.[21]
거기다가 번역기들 돌려서 직역을 한 듯한 느낌이 심하게 드는 문장들이 많다. 특히 I, he, we를 그대로 번역했는지 나, 너, 우리 같은 말이 틈만 나면 나온다.
'날 때'를 '날을 때'로, '껴안고'를 '껴앉고'로, '초점'을 '초첨'으로, '두어 뒀어'를 '두워 뒀어'로, '볼을 홱 떼어'[22] 를 '불을 홱 떼어'로, '풋내기'는 '풋나기'로 아예 잘못 쓴 말도 많다.
조사 사용도 형편없는데, "Ralph hit Jack in the stomach and made him grunt." 같은 경우 "랠프는 잭'''이''' 배때기를 한 대 질러 신음소릴 내게 하였다."로 옮겨졌다. 당연히 "랠프는 잭'''의''' 배때기를..."로 옮겨야 옳다.
어미라고 온전하지는 않다. "랠프는 당분간은 자기가 안전'''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안전'''하'''다는..."이 옳고, "뱉'''아'''보았으나"는 "뱉'''어'''보았으나"가 옳다.
결국 난해한 어휘, 지나치게 예스러운 대화, 방언 사용, 과도한 직역, 잘못된 표현, 조사 및 어미 오용 등이 만나 내용 이해도와 가독성을 심하게 떨어뜨리기에, 한 번만 보고선 내용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과 내용은 좋은데 번역 때문에 다시 읽기가 꺼려진다는 말이 많다.
이는 1968년에 나온 역본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출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독서 갤러리
이에 대해 민음사 측에 문의한 결과, 1~2년 내에 전체적으로 세계문학전집의 번역을 개정할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링크 하지만 역자 유종호가 문단 권력자라서 사망하기 전에는 힘들어 보이며 과연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6. 기타
- 가끔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선에 포함되어 있기도 한다. 이 무슨 동심파괴를... 80년대 시절에 제목을 보고 거대한 파리가 나오는 소설인가 해서 읽었지만 도저히 이해 못했던 사람도 있었다고. 워낙 상징적인 장치가 많이 나와서 아이들에게 문학 속 상징을 가르칠 때 주로 이용된다.
- 이 작품에는 한 가지 오류가 있는데, 피기는 지독한 근시로 묘사되고 따라서 근시 안경이므로 오목 렌즈여야 한다. 하지만 오목 렌즈로는 햇빛을 모을 수 없어 불을 피울 수 없다. 작가도 작품이 출판된 이후에 지적을 받고 알았다고 한다.
7. 미디어
영화[23] 와 오디오북으로 각각 2번씩 제작되었다.
7.1. 1963년 영화
[image]
(피기와 랄프)
무채색으로 나온 1963년판은 걸작으로 평가된다. 원작을 세세히 옮겼고 은근히 실사 다큐멘터리나 기록영화 같은 분위기. 로튼 토마토 등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은 작품으로 제작 연도가 특히 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지 20여 년 뒤이기 때문에 2차 대전과 핵전쟁에 관한 공포를 영화에서 은근히 깔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 출연하는 어른들은 영화 촬영지에서 훈련 중이던 영국 구축함의 실제 해군들이다.
7.2. 1990년 영화
[image]
(잭과 추종자들)
유채색으로 나온 1990년판은 설정을 바꾸어서 전쟁 때 피난가는 소년들이 아닌 단체 여행 중에 비행기가 추락해서 표착한 유년사관학교[24] 학생들로 설정되어 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잔혹한 장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특징. 실제 이 작품을 본 어린 시청자들이 트라우마를 얻기도 했다. 예전에는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청소년 추천 영화 등으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개봉 당시에는 아직 한국의 어린 학생들에게 추천이라길래 보았다가 마구 미쳐 돌아가는 어린 등장인물들의 행태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이 제법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비평가들에게는 좋은 평을 받지 않았고 그럭저럭 중박은 친 작품으로 평가된다. 바뀐 설정 때문에 원작의 긴장감과 절망적인 설정이 상당히 약화되었기 때문이다.[25][26] 마지막 장면도 해군 대신 섬 주변에서 훈련 중인 미국 해병대원들이 우연찮게 상륙하는 것으로 마무리.
1990년판 감독인 해리 훅(1960 ~ )은 1987년 영화 <노예소년 망기>(The Kitchen Toto/ 세경문화영상 출시 비디오판 제목. 미국 캐논에서 배급했고 지금은 MGM에서 판권 소유.)라는 작품 감독과 각본을 맡아 큰 호평을 받았는데, 1950년대 케냐를 배경으로 식민지배하는 영국과 케냐인 사이에 갈등하는 현지인 소년 망기의 눈으로 가혹한 식민지배를 일삼는 영국을 비난하면서도 케냐 내부 문제도 꼬집던 수작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 영화로 기대를 모았던 게 이 작품이었는데 이 영화 이후로 TV영화나 주로 맡다가 2005년 이후로 영화 감독도 안하고 또 다른 직업인 각본 및 사진 작가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2016년에 낸 어바웃 아프리카라는 사진집으로 여러 국제 사진전 수상도 했다.
7.3. 3번째 영화
2017년에 워너 브라더스가 판권을 획득하여, 여학생 버전으로 제작하려고 했으나 취소되어 기획에 그치다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연출을 맡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1] 추락하기 전, 영국에서 원자폭탄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묘사가 나온다.[2] 새끼돼지(Piggy)라는 별명이 있다고 스스로 말한 뒤 쭉 피기라고 불린다.[3] 사실은 추락한 비행기 안에 남은 파일럿의 시체였다.[4] 사이먼이 하필 밤에 산속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아이들은 그가 짐승이라 착각하고 살해한다.[5] 하지만 바깥세상에서도 커다란 전쟁이 일어났으니 구출된 뒤의 삶도 그다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많다. 그나마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잃지않았던 랄프나 잭에게 휘둘렸지만 끝까지 양심을 지키려고 했던 쌍둥이 형제는, 친구들(사이먼, 피기)의 죽음과 섬에서의 끔찍한 기억들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어도 특유의 선한 성품으로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돼서 살아갈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섬 안에서 각종 악행을 저지른 잭과 로저, 그리고 잭을 따르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때문에 고통받으며 폐인이 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죄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6] 간단히 섬만 수색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랄프의 증언과 상처들을 통해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잭이 부정해도 쌍둥이 형제가 증언을 뒷받침 해줄 것이고. 때문에 마지막 부분은 문명인들이 야만인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여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문명인들 입장에서 야만적인 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7] 후에 피기가 로저에 의해 죽을 때 책에서 '돼지처럼' 죽어있다며 묘사한다.[8] 뚱뚱하고 행동력이 없었다. 하지만 매우 똑똑하여 랄프에게 잘 조언하였고 그의 안경은 아이들을 생존시키는 데 유용하게 작용했었다. [9] 처음 소라를 통해 랄프는 주변에 떨어진 아이들을 한 대 모았다. 그리고 회의를 주관하게 되어 사실상 리더가 된다. 회의 중 아이들이 산만해질 때 피기가 소라를 나팔처럼 입으로 불어 아이들을 다시 집중하게 한다. 훗날 소라가 박살나는 장면은 더이상의 회의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암시했다.[10] 초기에 눈이 나쁜 피기의 안경은 불을 피우는데 사용되었다. 안경이 점점 박살나 갈수록 아이들은 점점 야만스러워졌다. (안경이 원인을 제공한 것은 아니고, 안경의 파손과 아이들의 야만화가 동시에 진행된다.)[11] 안경을 빼앗기고 나서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해 움직임이 불편해지면서 랄프에게 충고를 못 해주기 시작한다.[12] 랄프의 라이벌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잭과 랄프의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지만, 서로 간의 의견충돌(오두막과 봉화vs 고기)로 인해 사이가 악화되었는데, 후에 잭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버리고 상당수 아이들이 잭의 편이 되자, 스스로 무리의 지도자가 되었다. 랄프 편에 있던 모든 아이들을 흡수하고, 랄프를 위협한다.[13] 잭(성가대원 우두머리였다.)과 처음에는 정찰의 임무, 아이들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잭과 매우 친하여 나중에는 잭의 심복이 된다. 처음부터 창을 깎아가지고 다녔는데 이것은 나중에 랄프와 피기를 위협하는 데 쓰인다.[14] 미지의 섬에 공포를 느끼던 아이들은 산 꼭대기의 추락한 파일럿 시체의 형상을 확인하러 원정을 했다가, 시체에 뒤엉킨 채 바람에 흔들거리는 낙하산의 모습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괴물이 있다며 좀더 두려움에 떨게 된다.[15] 이 소설의 제목인 파리대왕은 악마 바알세불을 뜻한다.[16] 실제 역사에서도 전쟁이나 학살을 벌인 지도자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논리는 다름 아닌 '생존'이다. 생존본능이 양심을 누르는 순간부터 범죄를 용인하는 사회가 펼쳐진다.[17] 사이먼은 괴물로 오인된 파일럿의 시체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았고, 괴물은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그때 공포를 느끼던 아이들이 주술적 행위를 했고, 사이먼을 튀어나온 괴물로 착각하여 사이먼을 죽여 버린다.[18] 음침한 데다가, 처음에 요새와 같은 지형을 발견했을 때, 이곳에 거주해 침입자가 오면 돌을 굴리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다소 폭력적인 소년. 나중에 랄프와 잭이 다투던 도중에 돌을 굴려 자신의 경쟁 관계인 피기를 죽여버린다. 그리고 낄낄거리며 좋아한다.[19] 랄프가 주장한 것으로 비를 피하고 외부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는 집과 봉화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이 일은 매우 오래 걸리는 데다가, 즐거움도 없고, 이것이 당장에 도움이 될 것인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잭은 그것 대신 고기를 얻자고 한다.[20] 랄프의 주장에 잭이 처음에는 겨우 툭툭 던지는 수준이었지만, 랄프의 계획이 지지부진하던 와중 운좋게 잭이 짐승을 잡아 고기를 획득한다. 아이들은 간만에 보는 고기에 기뻐하고, 잭은 모두의 영웅이 된다. 그 인기가 잭을 좀더 사냥에 집착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잭과 성가대의 지속적인 고기 공급과 잭과 랄프의 대립은 랄프의 지배체제에 균열을 만들었다. 결국 고기맛에 반한 아이들은 죄다 잭의 편으로 가버린다. 후에 잭이 랄프를 고기로 회유하는 장면도 있다(랄프는 갈등하다가 그들이 내미는 고기를 받아 먹고 잭의 휘하로 들어가려다가 사이먼을 야만적으로 살해하는 장면을 보고 경악한다.).[21] 물론 문학 작품에서, 대화의 생동감을 위해 방언을 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의 아이들은 방언을 쓸 이유가 없다.[22] Ralph jerked his cheek off the earth and...[23] 1963년과 1990년. 한국에선 90년판이 비디오로 나와 알려졌는데 간혹 63년판도 TV에서는 틀어주었다. 1990년판도 KBS에서 ''''대낮''''에 틀어주었다.[24] 미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으로 인정하는 초등~고등학교 과정까지의 일종의 생도학교, 오멘2나 사탄의 인형3 같은 곳에서도 등장하고 뭐니뭐니해도 직접 다룬 작품은 생도의 분노일 것이다.[25] 성가대 이야기보다는 잭의 과거 이야기가 대사로 언급되었고, 일단 전쟁 중에 표착한 경우는 이미 자신들의 국가나 사회가 영원히 사라졌을 가능성이나 자칫하면 영원히 구조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소년들이 그에 대한 절망감으로 점차 야만인화 될 수 있다. 하지만 90년판의 설정대로라면 국가나 사회는 무리 없이 돌아가고 있고 언제든지 구조가 가능한 상태이므로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26] 사실, 원작의 핵전쟁이라는 배경은 인간의 야만성과 폭력성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더욱 강조해준다. 아이들을 구조한 어른들 또한 전쟁으로 서로를 수없이 죽이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