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하비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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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1618년作.[2]
근세 유럽에서 활동한 가톨릭 사제이자 선교사, 예수회 창립 멤버, 가톨릭의 성인. 축일은 12월 3일.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에 천주교를 전파한 주역이다.
일반적으로는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천주교식 음역은 스페인 등지의 발음법을 따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옛날에는 음차된 표기 및 이탈리아어식 발음을 섞어 방지거 사베리오로 불리기도 했다. 'Xavier'는 바스크어 에체베리아(etxeberr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새로운 집'을 뜻하며 성인이 태어난 출신지를 가리키는데, 향후 일반적인 남자 이름으로 쓰이는 '자비에르' 의 기원이 된다.
본명은 바스크어로 프란치스코 야추 아스필리쿠에타(Frantzisko Jatsu Azpilikueta). 원래는 바스크 지방 귀족인 요아네스 야추(Joanes Jatsu)의 아들이었지만 집안은 이미 가세가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선견지명이 있던 아버지에 의해 고등교육을 받고 유학을 가며 선진적인 시각을 키웠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출세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킬 생각을 했지 선교사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런 도중에 만난 사람이 예수회의 창시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 그에게 감화받은 하비에르는 말 그대로 종교에 홀딱 빠져 일신 영달을 버리고 선교사가 되어 인도, 동남아 등지에 변변한 지원 없이 선교를 시작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던 중 말라카에서 죄를 짓고 해외로 추방되어 있던 일본인 야지로[4] 를 만나, 그에게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반드시 그 땅에 선교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1549년, 폭풍우를 뚫고 일본에 도착한 그는 사쓰마국/오스미국(가고시마), 히라도 섬, 나가토국/스오국(야마구치) 등을 전전하며 선교를 하여 나가토국의 다이묘인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화승총을 선물하고 선교 허락을 받아내 당시 폐건물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절간인 다이도우지를 기증받아 교회로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본토가 오닌의 난 이후로 사정이 난리 법석인지라 여유있게 전도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일본에서 선교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수인계를 후배 선교사들에게 확실히 하고 갔다.
이 첫 일본 선교에서 4명의 일본인 청년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이 중 베르나르도(일본명 불명)는 인도를 거쳐 로마까지 건너가 일본 최초의 유럽 유학생이 되었다. 총명하고 신앙심이 깊어 현지 예수회 수사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고[5] , 교황 바오로 4세를 알현하기도 했으나, 장기간의 여행으로 지친 나머지 병을 얻어 1557년 포르투갈에서 선종했다.
1551년,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해 출발했지만 진입하지 못하고, 광둥 항 앞의 상치안 섬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나이는 향년 46세. 사후 그곳에 묻혔다가 1553년 3월 22일 말라카로 이장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11일 인도의 고아로 옮겨졌다. 1637년 12월 2일, 부패하지 않은 그의 유해는 은과 유리로 만들어진 관에 안치되었다. 그의 유해 중 오른쪽 발가락들은 유해에서 분리되어 성유물로 각국에 보관되어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하비에스 성인 손 BBC 취재 영상 (성유물이라 하지만 어쨌든 시신의 일부이므로 혐오감이 들수 있음. 클릭 주의)
https://www.facebook.com/plugins/video.php?href=https%3A%2F%2Fwww.facebook.com%2Fbbcnews%2Fvideos%2F10155540933657217%2F
흔히 일본 및 인도의 사도로 칭해지며,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이다. 서강대학교에서는 예수회 인물이나 가톨릭 성인의 이름의 특징에서 건물 이름을 따오는데, 예전 문과대 건물 이름의 정식 명칭이 하비에르관이었다.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이라는 점에서 주로 영문과(영미문화계)나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및 중국문화계가 구비된 건물 이름을 차용한 듯하다. 지금은 문과대는 2011년에 완공된 정하상관으로 모두 이전하였고, 법학전문대학원과 지식융합학부가 하비에르관을 이용하고 있다. 보통 Xavier의 앞글자를 따서 X관이라 부른다. 2013년에는 정하상관 옆에 프란치스코관이 완공되었다.
동명의 이름을 딴 프랑스계 외국인 학교인 하비에르 국제학교(Lycée International Xavier)가 있다. 프랑스의 교육 사도직 수녀회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도회가 1980년대 한국에 진출하여 2002년 서울 성북동에서 학교를 시작했다. 2006년 서울 구기동에 교사가 신축되어 이전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인 12월 3일이 개교 기념일이다.
엑스맨시리즈의 프로페서 엑스의 원래 이름이 찰스 프랜치스 제이비어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덕분에 그 시대를 무대로 한 일본의 작품 등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전국 란스의 자비에르, 전국 바사라 시리즈의 자비 등. 개그성 등장으로는 수도사 특유의 삭발 때문에 주로 대머리, 그것도 옆과 뒤만 머리가 남고 정수리는 벗겨진 형태의 대머리를 개그포인트로 잡는 형태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6]
은혼 스탠드 온천편에서는 삼각팬티 한 장을 걸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질해 준 이발사를 저주하며 벽을 치는 괴상한 원혼이 되어 있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를 저주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저주하는 아케치 미츠히데 다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왔어야 하지만, 개그용으로 대신 나왔다. 이후로 제대로 등장하지 않아[7] 그냥 그렇게 개그용으로 끝나는 줄 알았으나... 유일하게 총을 가지고 있던 스탠드라, 마지막에 뜬금없이 등장하며 스탠드 대결편에서 대활약했다. 긴토키의 몸을 탈취해 도망간 것은 안비밀. 사족으로 소유한 총의 외형은 조총인데 무슨 바주카처럼 어깨위에 매고 쏜다.[8]
대항해시대 3에서는 '샤비에르 데 야소'[9] 라는 이름으로 등장. 작중 최강의 통역사이나 등장 시점이 게임 종반부라 활용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중국어 3랭크인데다 작중 유일하게 동아시아 토착어가 3랭크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토착어를 따로 배우지 않는다면 선택이 아닌 필수자원.
필그림 예거에서는 갑자기 여자 뺨치는 초미소년으로 나와 사람들의 얼을 빼놨다. 30개의 은화 중 하나.
사무라이 참프루에도 언급된다. 하비에르의 3세손을 자처하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천주교를 믿는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왕처럼 군림하다가 무겐 3인방의 활약으로 정체[10] 가 드러나고 리타이어.
빌리 배트에서는 박쥐와 두루마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인물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하비에르가 처음 만난 일본인인 야지로가 사실은 이가의 닌자였다는 식으로도 등장. 임종 시 야지로에게 두루마리를 없애라는 말과 함께 두루마리를 건네고 사망하지만 야지로는 두루마리로 천하를 얻으려 하다 실패. 이후 야지로는 하비에르의 말을 따르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평생 후회하다가 박쥐의 정체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며 사망한다.
Fate/EXTRA 시리즈의 주인공 남녀가 뜬금없이 작중에서 자주 언급하는 이름. 따라서 디폴트 네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오/자비코(…)라는 애칭이 붙어버렸다.
아리무라 카스미가 주연인 비리갸루(한국명 :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서도 잠깐 언급된다. 역사는 커녕 모든 상식이 부족한 주인공이 그의 포즈는 알고 있다는 식으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적〉,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1618년作.[2]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천국으로 보내거나 지옥으로 보내기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분께서 저의 주님이시기에 그분을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1. 개요
근세 유럽에서 활동한 가톨릭 사제이자 선교사, 예수회 창립 멤버, 가톨릭의 성인. 축일은 12월 3일.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에 천주교를 전파한 주역이다.
일반적으로는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천주교식 음역은 스페인 등지의 발음법을 따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옛날에는 음차된 표기 및 이탈리아어식 발음을 섞어 방지거 사베리오로 불리기도 했다. 'Xavier'는 바스크어 에체베리아(etxeberria)에서 유래한 것으로 '새로운 집'을 뜻하며 성인이 태어난 출신지를 가리키는데, 향후 일반적인 남자 이름으로 쓰이는 '자비에르' 의 기원이 된다.
2. 생애
본명은 바스크어로 프란치스코 야추 아스필리쿠에타(Frantzisko Jatsu Azpilikueta). 원래는 바스크 지방 귀족인 요아네스 야추(Joanes Jatsu)의 아들이었지만 집안은 이미 가세가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선견지명이 있던 아버지에 의해 고등교육을 받고 유학을 가며 선진적인 시각을 키웠고, 그 당시까지만 해도 출세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킬 생각을 했지 선교사가 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런 도중에 만난 사람이 예수회의 창시자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 그에게 감화받은 하비에르는 말 그대로 종교에 홀딱 빠져 일신 영달을 버리고 선교사가 되어 인도, 동남아 등지에 변변한 지원 없이 선교를 시작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던 중 말라카에서 죄를 짓고 해외로 추방되어 있던 일본인 야지로[4] 를 만나, 그에게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반드시 그 땅에 선교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1549년, 폭풍우를 뚫고 일본에 도착한 그는 사쓰마국/오스미국(가고시마), 히라도 섬, 나가토국/스오국(야마구치) 등을 전전하며 선교를 하여 나가토국의 다이묘인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화승총을 선물하고 선교 허락을 받아내 당시 폐건물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절간인 다이도우지를 기증받아 교회로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본토가 오닌의 난 이후로 사정이 난리 법석인지라 여유있게 전도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일본에서 선교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수인계를 후배 선교사들에게 확실히 하고 갔다.
이 첫 일본 선교에서 4명의 일본인 청년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이 중 베르나르도(일본명 불명)는 인도를 거쳐 로마까지 건너가 일본 최초의 유럽 유학생이 되었다. 총명하고 신앙심이 깊어 현지 예수회 수사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고[5] , 교황 바오로 4세를 알현하기도 했으나, 장기간의 여행으로 지친 나머지 병을 얻어 1557년 포르투갈에서 선종했다.
1551년,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해 출발했지만 진입하지 못하고, 광둥 항 앞의 상치안 섬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나이는 향년 46세. 사후 그곳에 묻혔다가 1553년 3월 22일 말라카로 이장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11일 인도의 고아로 옮겨졌다. 1637년 12월 2일, 부패하지 않은 그의 유해는 은과 유리로 만들어진 관에 안치되었다. 그의 유해 중 오른쪽 발가락들은 유해에서 분리되어 성유물로 각국에 보관되어 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하비에스 성인 손 BBC 취재 영상 (성유물이라 하지만 어쨌든 시신의 일부이므로 혐오감이 들수 있음. 클릭 주의)
https://www.facebook.com/plugins/video.php?href=https%3A%2F%2Fwww.facebook.com%2Fbbcnews%2Fvideos%2F10155540933657217%2F
흔히 일본 및 인도의 사도로 칭해지며,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이다. 서강대학교에서는 예수회 인물이나 가톨릭 성인의 이름의 특징에서 건물 이름을 따오는데, 예전 문과대 건물 이름의 정식 명칭이 하비에르관이었다.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이라는 점에서 주로 영문과(영미문화계)나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및 중국문화계가 구비된 건물 이름을 차용한 듯하다. 지금은 문과대는 2011년에 완공된 정하상관으로 모두 이전하였고, 법학전문대학원과 지식융합학부가 하비에르관을 이용하고 있다. 보통 Xavier의 앞글자를 따서 X관이라 부른다. 2013년에는 정하상관 옆에 프란치스코관이 완공되었다.
동명의 이름을 딴 프랑스계 외국인 학교인 하비에르 국제학교(Lycée International Xavier)가 있다. 프랑스의 교육 사도직 수녀회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도회가 1980년대 한국에 진출하여 2002년 서울 성북동에서 학교를 시작했다. 2006년 서울 구기동에 교사가 신축되어 이전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축일인 12월 3일이 개교 기념일이다.
3. 서브컬처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엑스맨시리즈의 프로페서 엑스의 원래 이름이 찰스 프랜치스 제이비어다.
일본에서도 유명한 덕분에 그 시대를 무대로 한 일본의 작품 등에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전국 란스의 자비에르, 전국 바사라 시리즈의 자비 등. 개그성 등장으로는 수도사 특유의 삭발 때문에 주로 대머리, 그것도 옆과 뒤만 머리가 남고 정수리는 벗겨진 형태의 대머리를 개그포인트로 잡는 형태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6]
은혼 스탠드 온천편에서는 삼각팬티 한 장을 걸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질해 준 이발사를 저주하며 벽을 치는 괴상한 원혼이 되어 있었다. 아케치 미츠히데를 저주하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저주하는 아케치 미츠히데 다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왔어야 하지만, 개그용으로 대신 나왔다. 이후로 제대로 등장하지 않아[7] 그냥 그렇게 개그용으로 끝나는 줄 알았으나... 유일하게 총을 가지고 있던 스탠드라, 마지막에 뜬금없이 등장하며 스탠드 대결편에서 대활약했다. 긴토키의 몸을 탈취해 도망간 것은 안비밀. 사족으로 소유한 총의 외형은 조총인데 무슨 바주카처럼 어깨위에 매고 쏜다.[8]
대항해시대 3에서는 '샤비에르 데 야소'[9] 라는 이름으로 등장. 작중 최강의 통역사이나 등장 시점이 게임 종반부라 활용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래도 중국어 3랭크인데다 작중 유일하게 동아시아 토착어가 3랭크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토착어를 따로 배우지 않는다면 선택이 아닌 필수자원.
필그림 예거에서는 갑자기 여자 뺨치는 초미소년으로 나와 사람들의 얼을 빼놨다. 30개의 은화 중 하나.
사무라이 참프루에도 언급된다. 하비에르의 3세손을 자처하는 남자가 등장하는데, 천주교를 믿는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왕처럼 군림하다가 무겐 3인방의 활약으로 정체[10] 가 드러나고 리타이어.
빌리 배트에서는 박쥐와 두루마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전 세계에서 몇 안되는 인물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하비에르가 처음 만난 일본인인 야지로가 사실은 이가의 닌자였다는 식으로도 등장. 임종 시 야지로에게 두루마리를 없애라는 말과 함께 두루마리를 건네고 사망하지만 야지로는 두루마리로 천하를 얻으려 하다 실패. 이후 야지로는 하비에르의 말을 따르지 않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평생 후회하다가 박쥐의 정체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며 사망한다.
Fate/EXTRA 시리즈의 주인공 남녀가 뜬금없이 작중에서 자주 언급하는 이름. 따라서 디폴트 네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오/자비코(…)라는 애칭이 붙어버렸다.
아리무라 카스미가 주연인 비리갸루(한국명 :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서도 잠깐 언급된다. 역사는 커녕 모든 상식이 부족한 주인공이 그의 포즈는 알고 있다는 식으로.
4. 같이보기
[1] 일각에서는 안토니오 꼬레아가 아닐까 추측한다.[2] 재밌는 뒷이야기가 있는데, 이 그림에는 '''조선 사람'''[1] 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그림 중간에 보이는 노란 도포를 입고 이상한 모양의 망건을 쓴 인물이 조선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외에도 이 그림에는 일본인이나 아프리카인, 멕시코인 등 다양한 인종이 묘사되어 있다. 그 이전에도 작가인 루벤스가 조선 사람으로 여겨지는 그림을 그린 사람이기에 어떻게든 조선 사람을 보긴 봤을 것이다. 이 그림은 하비에르의 행적을 그대로 묘사한 것은 아니고, 하비에르가 기적을 베풀어서 이교도의 우상들이 무너지고 복음을 얻은 신자들의 병이 낫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3] Xaver라는 표기때문에 자버나 사버 등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이름을 가진 유명인으로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제자인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와 모차르트의 아들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왕족의 초상화를 주로 그린 19세기 화가 프란츠 크사버 빈터할터,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작곡자인 프란츠 크사버 그루버 등이 있다.[4]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일본인 천주교 신자이다. 무역업자였다고 하나 해적이라는 설도 있다. 하비에르가 일본을 떠난 뒤의 행적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은데, 다시 해적일을 하다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고, 가고시마에서 비밀 선교활동을 했다는 설도 있다.[5] 당시는 비백인 인종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지조차 논쟁거리인 시대였다.(바야돌리드 논쟁 참조)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일본인이 유창한 신앙고백을 하니 놀랐던 것이다.[6] 예를 들면 GTO에서 오니즈카가 교장의 이름을 기억 못해서 '자비에르'라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하비에르의 일본식 표기이다.[7] 등장 직후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케치 미츠히테, 오다 노부나가 삼인방이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을 때 나와서 셋을 총으로 암살한 다음에 문 닫고 들어가긴 했다.[8] 마치 모노노케 히메에서 나병환자들이 개량한 철포 같은 형태.[9] 해석하자면 ‘예수회의 하비에르’.[10] 서양인처럼 분장한 일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