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클/활동
1. 데뷔 전
대성기획에서 젝스키스 다음으로 야심차게 기획한 아이돌. 본래에는 같은 회사 출신의 중고신인 김준희를 기반으로 그녀가 리더를 맡아 한국의 TLC로 결성하기로 되어있었고 그에 맞춰 훗날 '타샤니'로 데뷔하게 되는 '애니'[1] 등 힙합 삘이 제대로 나는 연습생들이 있었지만, 이후 이호연이 그룹 컨셉을 힙합에서 귀여운 댄스 그룹으로 가기를 원해서 원년 멤버들이 모조리 탈퇴하게 되었다고 한다.[2]
1997년 하반기쯤 합류한 옥주현은 이미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별밤뽐내기 '''연장원''' 출신이었다.[3] 라디오에서 옥주현이 부른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들은 대성기획 사장 이호연이 직접 옥주현과 컨택해서 핑클 첫 멤버로 합류시켰다. 옥주현은 성악을 전공하여 대중가수에는 생각이 없었으나[4] 이호연 사장의 설득을 통해 연예계에 발을 딛게 된다. 옥주현이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이호연은 옥주현을 처음 보고 왜 이렇게 뚱뚱하냐고 돌직구를 던졌으나, 옥주현은 나는 성악하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자 이호연은 너 아이돌 시켜준다는데 뭐가 싫냐며, 여자는 살빼고 쌍꺼풀 수술 하면 확 바뀐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한, 젝스키스 콘서트를 공짜로 보여주며 꼬셨다. 그런데 데뷔 날짜가 다가오는데도 수술을 안 시켜주다가 뒤늦게 시켜줘서, 데뷔하고 쌍꺼풀이 부은 채로 활동했다.
그 이후로 옥주현은 핑클 결성에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데, 이진 역시 옥주현이 캐스팅해 온 멤버다. 이진은 은광여자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 강남 일대에서 유명한 얼짱 이었는데, 옥주현의 친구가 이진과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옥주현은 직접 은광여고로 찾아가서 단역 연기자 출신인 이진에게 오디션을 볼 것을 요청했고 에코의 '행복한 나를'을 부른 이진은 핑클의 두 번째 멤버가 되었다.
성유리는 1997년 5월 교내 사생대회에 나갔다가 김동완, 유진, 이효리, 김상혁 등등을 캐스팅한 바 있는 캐스팅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당시 캐스팅 디렉터는 눈에 띄는 미인이었던 성유리에게 명함을 주면서 젝스키스가 있는 곳이라고 했으나, 성유리는 그 당시 의사가 꿈이었고 나름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가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9월에 부모님 몰래 대성기획에 오디션을 보러간다. 당시 옥주현이 성유리의 오디션을 보았고, 이호연은 옥주현의 말을 듣고 핑클 멤버로 합류시켰다.
남은 한 자리엔 '애니'부터 시작해서 영턱스클럽의 멤버 및 후에 클레오로 데뷔하는 멤버 등[5] 많은 가수 연습생들이 거쳐갔지만 모두 핑클과는 인연이 되지 못했으며, 옥주현, 이진, 성유리 3명은 확실하게 모였지만 소속사 사장의 고집으로 꼭 4인조[6] 로 데뷔해야 했고 세 명이 캐스팅 된 이후 긴 시간 동안 네 번째 멤버를 발탁하기 위해서 공을 들였다. 이 모 기획사에서 힙합그룹[7] 을 준비하는 중이던 이효리가 마지막으로 그룹의 멤버로 확정되었다.
이효리는 당시에도 주변 지역에 소문난 유명인이었고, 압구정동 레스토랑에서 알바하던 중 캐스팅 디렉터에 의해 발굴되었다. 힐링캠프[8] 에서 이효리가 밝힌 바에 따르면, 어느날 대뜸 '나 이호연이요'라고 전화가 와서 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만나서는 노래나 춤 하나도 안 시켜보고 얼굴만 보고 바로 뽑았다고 한다[9] . 참고로 이효리는 과거 H.O.T. 팬이어서 SM 회사 앞에서 토니안을 기다리다가 SM에 캐스팅되어 연습생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효리가 과거 몸담고 있던 회사에서 이효리를 상대로 부적절한 계약을 하고 있던 점을 파악한 DSP 측이 이효리의 가능성을 높게 판단하여, 쿨하게 위약금을 던져주고 이효리를 데려오면서 핑클의 마지막 멤버가 되었다. 최근 한 방송에서 룰라의 이상민, 샵의 이지혜가 같은 소속사(당시 월드뮤직)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것을 기억한다며 말하기도 했다.
이후 PC통신에서 그룹명 공모를 받아 "핑클"로 정했으나 이걸로는 부족했던지 상단과 같은 짬뽕 단어의 약자를 핑클로 부르자고 했다.
'''그렇게 이 4명의 소녀는 핑클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2. 데뷔 이후
2.1. 1998년: 화려한 데뷔
1998년 4월 이효리의 합류 이후 급하게 자켓 재촬영과 음반 리디렉팅을 거쳐, R&B 발라드곡 Blue Rain으로 데뷔했다. 사실 핑클의 경우 정확한 데뷔 방송이 기록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데뷔 전부터 워낙 비공식 행사 및 비방 무대를 많이해서 특별히 데뷔 방송 무대를 정해놓고 있지 않다. 팬덤 측에서 정한 데뷔일은 1998년 5월 12일이지만 이날이 무슨 방송이었는지는 전설 속에 묻혀있다. 또한 위키백과 문서에 따르면 1998년 4월에 비공식 무대를 가졌다고... 그 당시 1998년 5월 12일인 화요일엔 음악방송이 없었다.
제일 유력한 가설은 케이블 채널 쇼! 뮤직탱크로 데뷔했는데(녹화방송) 당시 토요일에 녹화방송한 KMTV 쇼! 뮤직탱크가 그때 화요일에 녹화했다는 것. 다만 가설일 뿐이며 너무 오래돼서 화요일에 녹화했다는 정보를 찾을 수 없다.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핑클을 소개하거나 언급할 때 첫 데뷔무대를 라이브로 했다고 하고 심지어 멤버들도 방송에서 본인들이 첫 데뷔무대를 라이브로 했는데 라이브를 망쳐서 지금까지 악몽으로 남아있다고 언급하는 걸로 보아 1998년 5월 23일을 사실상의 데뷔 날짜라고 추측했었다.[10]
그런데 SBS에서 2019년 9월 업로드한 핑클 컴백 무대 모음 영상의 설명란을 보면 핑클이 SBS 인기가요에서 데뷔한 무대의 날짜는 1998년 5월 17일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영상 자료에 따르면 사실상 핑클의 데뷔 날짜는 SBS 인기가요에서의 첫무대 날짜다. 결국 팬덤, 핑클 멤버, 방송국(?)에서 정확한 정정을 해 주어야 할 듯... 다만, 1998년 5월 12일은 이미 너무나 당연하고 공식적으로 상징적인 날이 되어버렸기에 이제와서 데뷔일자를 바꾸는 것은 의미도, 현실성도 없다.
'''핑클의 시작을 알린 1집 앨범 타이틀곡 Blue Rain 뮤직비디오'''
유튜브 핑클 공식 라이브 데뷔무대 링크
1998년 5월 17일 SBS 인기가요에서 첫 공식 음악 방송 데뷔를 치렀으며 R&B 발라드곡 Blue Rain의 라이브 무대로 데뷔했다. 차별성을 위해 R&B 그룹을 표방하고 청순한 미모와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으면서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최고 순위는 SBS 인기가요에서 2위(1위후보), MBC 음악캠프에서 3위. 신인이 이 정도면 차세대 대세가수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성적이었다.
'''핑클 인기의 서막을 연 내 남자친구에게 뮤직비디오'''
하지만 이쁘장한 외모에 다분한 끼를 가지고도 얌전하게 발라드만 부르는 것으로는 2% 부족했다. 옥주현이 훗날 밝힌 바에 따르면, Blue Rain의 부족한 반응을 보고 이호연 사장이 방향성을 확 바꿔 빛의 속도로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11] 본래에는 은지원이 코러스와 랩핑에 참여한 힙합계 댄스곡 'Shadow'로 후속곡을 내정하고 있었으나 이호연의 촉으로 그룹 방향을 선회, 멤버들은 녹음해놓은지도 잊고 있던 귀여운 댄스곡으로 후속곡을 급하게 바꾸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내 남자친구에게'. 멤버들은 이 노래가 후속곡으로 정해지면서 나온 격렬한 귀여운 컨셉에 모두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이내 폭발적인 반응이 뒤따르기 시작한다. 깜찍하고 발랄한 느낌의 이 곡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걸그룹 요정 컨셉의 원류를 볼수 있다.
핑클은 말괄량이같고 친근한 옆집 누나처럼 마치 '''언제라도 내 곁에 있어줄 것만 같은 친근한 느낌'''으로 접근했다. 가사의 주제부터 평소에 친하게 알고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입술을 보며 망설이지 말라는 등 조금은 도발적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당시 시대 상황을 감안했을 때) 적극적으로 고백하는 가사이다. 장난도 잘 치고 잘 웃던 옆집 소녀가 갑자기 고백해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상큼발랄한 느낌은 이진, 성유리의 '난 니꺼야'로 극적인 포인트마저 잡아내며 기존 큐티이미지를 이어가면서도 차별화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어필했다.
이 곡은 나오자마자 화제를 일으키며 대박을 쳤고, 남자팬들을 순식간에 쓸어모았다. 이 곡이 발표되고 음반판매량도 크게 상승했다.
또한, 이 곡으로 지상파 음악차트 첫 1위에 올랐다. 2016년 기준으로 현재까지 많은 10~30대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이 노래를 선곡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게끔 고백할 수 있는 남성들에게는 심쿵할 애교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포인트를 매우 잘 잡은 노래라는 것이다.
대략 9월 중순까지 내 남자친구에게로 활동하며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어차피 두 달 동안 활동하면서 인기도 많이 누렸겠다, 활동을 접냐 또다른 후속곡을 내놓냐 갈림길에 놓인 시점에서 핑클은 데뷔곡으로의 회귀를 선언한다. 루비라는 발라드로 삼속곡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모니카 사운드로 시작하는 애절한 느낌의 발라드로 핑클은 또 한 번의 도약을 맞았다. 데뷔곡도 발라드였지만 느낌이 상당히 달랐는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청순한 이미지를 매칭하며 또다른 변신을 주었다.
이 변신은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었다. 핑클이 단순히 옆집 누나같은 친근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곱디 고운 느낌까지 있는 아이돌이라는 것을 어필했기 때문이다. 청순한 느낌의 무던한 발라드로 청순함을 좋아하는 남자팬들을 끌어모으며 팬층을 더욱 넓혔고, 세 번째 활동곡임에도 방송사 1위를 또다시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노래로 9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약 두 달 반 동안 길게 활동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앨범 활동을 마무리했다.
1998년 MBC에서 방영된 스타다큐에서 핑클의 데뷔초기 생활상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다.
1집 활동 당시 멤버들간의 불화가 있었는데, 이효리와 이진 사건의 경우 서로 말을 안 할 정도로 심했으며 방송에서도 여러번 불화가 있었다고 인정을 하기도 했다. 2014년 무한도전 토토가에 이효리와 옥주현이 출연했음에도 결국 핑클이 불참하게 되며 불화가 아직도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다시 주목받았지만, 불화는 지금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초창기의 일이다.[12] 핑클 멤버들은 옥주현, 이진, 성유리가 1998년 1월에 모여 음반 녹음과 자켓 촬영을 급하게 끝내고, 이효리는 불과 데뷔 한 달 전에 급하게 투입된, 당시로서는 객원 멤버에 가까운 입장이었다. 서로 만난지 1년도 채 안 되었던 데다, 합숙 생활을 전혀 하지 않아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노는 언니' 이효리는 당시에도 왈가닥 기질이 있어 데뷔 후에도 사적인 대학교 '''이성'''친구들과도 거리낌없이 교류하고, 숙소를 탈출해서 술을 마시는 멤버였지만, 옥주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 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소녀에 가까웠다.[13] 지방 공연을 가면 이효리와 옥주현은 술집에 가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성유리와 이진은 지역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14] 성향이 워낙 반대였기 때문에 서로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결국 어느 인터뷰를 통하여 당시 신인임에도(!) 불화를 인정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는데, 아마 자료가 남지 않은 사소한 마찰들은 더욱 많았을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서로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라 멤버 간 다툼이 어느 정도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 그러나 오히려 멤버들의 이런 솔직하고 바로바로 부딪혀서 푸는 성격 탓에 앙금이 남지는 않았으며,[15] 이후 여러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친자매처럼 똘똘 뭉치게 된다.
데뷔곡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두 후속곡으로 큰 인기를 얻은 1집 앨범은 291,925장이 팔려나가며 그 해 KMTV 가요대전과 골든디스크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가요계 시장에 한 획을 그을 레전드 걸그룹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2.2. 1999년: 정상에 서다
'''핑클 2집 앨범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 뮤직비디오'''
1999년 4월, 데뷔 1년여 만에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공식팬클럽 창단식을 가진 뒤, 5월 2집 <White>를 발표. '영원한 사랑'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 곡이 말 그대로 '''초대박'''을 치면서 상당수의 남성 팬들을 결집시켜 그야말로 핑클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오갈 정도로 완벽한 대세의 위치에 올라섰다. 새끼손가락을 피고 '약속해줘'라고 말하는 포즈, 양팔을 빙글빙글 돌리는 안무가 따라하기 쉬워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랑받는 메가히트곡이 되었으며, 방송 3사 1위를 모두 석권하면서 이견 없는 톱 아이돌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당시 남성 아이돌그룹 극성팬이던 여성들에게는 질투를 많이 받았지만 정작 욕하던 이들도 교실에서, 축제 장기자랑에서, 수학여행 가면서 영원한 사랑은 꼭 한 번씩 따라할 정도로 질투와 인기를 한 몸에 얻었다.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이 메가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귀여운 컨셉으로 가질 수 있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어우러지게 함으로서 요정 컨셉의 절정을 이룬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전작의 '내 남자친구에게'의 사랑스러운 옆집 소녀의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노래로서, 이 곡으로 인기를 얻은 핑클에게는 이 곡의 이미지를 그대로 갖다쓰는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 루비에서 얻은 청순한 이미지까지 매치시키고, 항상 나의 곁에 있어달라는 고백 가사에서부터, 청순함을 극대화시키는 흰색 드래스와 살랑거리는 안무, '약속해줘'라는 전작의 포인트까지 그대로 따왔으며, 숲을 연상하게 하는 뮤직비디오 배경에 성유리가 쓰던 월계관으로 '''요정''' 이미지까지 이 모든 것을 한 곡에 집어넣으면서 귀여움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를 4분짜리 한 곡에 압축시켜넣은 것이다. 이 풋풋한 느낌을 핑클이 매우 잘 살려주면서 다른 걸그룹들과의 경쟁에서 독보적으로 앞설 수 있게 되었다.
'''영원한 사랑 전설의 무대 영상'''
컴백 당시 다이어트로 몰라보게 예뻐진 옥주현의 미모가 큰 화제를 모았고, 1집에 이어 청순한 모습의 이효리와 여전한 덕후몰이상 이진, 그리고 귀엽고 요정같은 여린 이미지와 미모로 레전드를 찍었던 핑클의 마스코트 성유리까지 4명 모두의 매력이 잘 발휘됬었다. 무대영상 댓글을 보면 4인 4색의 매력을 가진 핑클을 예찬하는 댓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7월부터는 영원한 사랑과 비슷한 이미지의 '''자존심'''으로 활동했다.
귀여운 컨셉으로 인기 굳히기에 들어가며 역시 상당한 인기를 얻었으며 후속곡으로도 엄정화, 양파 등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1위를 차지했다. 뮤직비디오에 물 오른 비주얼로 남성팬들이 크게 열광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타이틀곡과는 다르게 유로비트 기반의 댄스곡이어서 DDR, 펌프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오락실에 가면 거의 항상 들릴 정도로 DDR 열풍에 한 축을 이루었다.
2집으로 네 달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걸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총 8,000여 명의 팬들이 참여하여 성황리에 끝났다고 전해지며, 이 콘서트 영상을 짜깁기해서 발라드곡 'Waiting For You'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원래 이 곡이 정식 삼속곡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너무나 바쁜 스케줄에 2.5집 앨범 준비까지 겹쳐 공식적인 활동은 하지 못했고 2주간 음악방송에서 2집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oh! boy', 'Waiting for you'로 잠깐 무대를 가지고 활동을 곧바로 마무리했다.
이 시기에 대만 제작사를 통해서 대만에 앨범을 발표했고 한국 가수들 공연에 참가하여 공연을 가진 적이 있다.
2집 활동을 접은 지 두 달여 만인 1999년 11월에 겨울 느낌이 나는 스페셜 음반 2.5집을 발표했다. 나미의 곡을 리메이크한 '인디안 인형처럼'만 빼고는 모두 신곡이었고 곡도 13곡이나 들어가 있었다. 활동곡은 총 세 곡으로 11월에 하나, 12월에 하나, 1월에 하나씩 한 곡으로 한 달씩, 지금으로 치면 싱글과 비슷한 활동이었다.
첫 번째로 내놓은 타이틀곡은 '나의 왕자님께'라는 발라드로 전작 2집에서 발라드로 활동하려다 계획이 취소된 것을 의식한 기획이었다. 역시 청순컨셉 걸그룹답게 고백하는 내용의 발라드 형식으로 역시 가볍게 방송 3사 1위를 거머쥐었다.
거기에 '''White'''가 불과 한 달밖에 활동하지 않았고 뮤직비디오도 찍지 않을 만큼 소극적인 프로모션에도 지상파에서는 최고 4위까지 올랐고 겨울하면 생각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매해 겨울마다 거리에서 울려퍼지는 노래가 되었다. 영원한 사랑, Now와 더불어 현재까지도 후배 가수들이 종종 커버하는 곡이며, 최근엔 다비치, 오마이걸, 구구단이 리메이크하기도 할 정도로 꾸준히 인기를 얻는 곡이 되었다.
2000년으로 넘어가면서 '가면의 시간'으로 세 번째 활동에 들어갔다. 기존 청순발랄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 섹시컨셉의 곡이어서, 팬들은 왜 앨범의 좋은 곡들을 놔두고 이런 곡으로 활동하냐는 비난을 수없이 한 적이 있다. 당시엔 섹시컨셉 자체도 데뷔시기나 멤버들 나이를 생각하면 시기상조로 보였지만 이는 3집 NOW로 섹시 이미지를 어필하기 전에 초석이 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10위 권 안에 들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5집은 '''45만 장을 판매'''하여 역대 핑클 앨범 중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았다.
2집 대박에다 2.5집 스페셜 활동까지 성공적으로 이어가면서, 1999년 연말 '''가요대상을 두 번'''[16] 이나 거머쥐었고 걸그룹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대형 콘서트를 개최했다. 대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2집 앨범은 총 60만장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여주면서, 1999년 음반판매량 연간 5위, 핑클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남았다.
더불어 핑클 2집 판매량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어쨌든 공식적이라 여겨지는 한국 음반산업협회 집계로는 최종 60만장이 좀 못되는 판매고를 기록하였는데 이미 몇몇 방송에서 핑클 멤버들에게 밀리언셀러 돌파 축하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핑클 2집이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였다는 기사가 쏟아졌으며, 100만장 돌파 기념으로 첫 콘서트를 개최한 거라고 밝힌 소속사 최측근의 인터뷰 등으로 볼때 팬들이 60만 장이란 판매량에 의구심을 가지는게 당연하다. 단일 음반은 아니지만 공식적인 기록으로도 핑클은 1999년 한 해 동안 3장의 음반으로 무려 110만 509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2집 판매량: 593,816장 / 콘서트 라이브 음반 판매량: 57,275장 / 2.5집 판매량: 449,418장)
이때가 핑클 인기의 최절정기였고,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가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 CF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걸그룹 중에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으로 광고를 찍었고, 예능 활동도 활발하게 하기 시작하면서 TV만 틀면 핑클이 나오던 것도 이때부터였다. 대중적인 노출도가 워낙 높아져서 30대 후반만 되도 트로트를 듣던 중년층에서도 핑클이라는 가수와 노래를 익힐 정도의 범국민적인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다. 전설의 '''핑클빵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2.3. 2000년: 쉴틈없는 활동
데뷔 이후 별다른 공백기 없이 2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던 핑클의 대외활동은 2000년에도 이어졌다. 2집이 초대박나고 CF, 방송활동이 늘어나자 2.5집 활동까지 접은 이후에도 쉼없이 예능을 들고 CF를 찍으며 대중들에게 공백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으며, 각종 행사에 1순위로 불려가고 해외에서까지 반응이 오기 시작해 몇몇 해외 공연까지 가지며 인기를 이어가기 위한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2000년 5월, 소속사 선배가수 젝스키스가 갑작스런 해체를 맞으며 핑클은 명실상부 대성기획의 기둥이자 1순위 밥줄이 되었다. 그래서 이때를 기점으로 핑클을 대하는 소속사의 대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며, 이전부터 핑클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젝스키스 팬들에겐 완전히 공공의 적이 되며 여기저기서 테러의 대상이 되는 등, 높아진 인기만큼 시기와 질투의 상징이 되며 '''베이비복스, 보아와 함께 10대 여자들에게 압도적으로 미움을 받는 아이돌'''이 되어 여러가지 피해를 입었지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베이비복스, 보아와는 다르게 핑클 멤버들은 이들에게 나름대로 복수를 하는 활약상을 보였다.
'''핑클 3집 앨범 타이틀곡 Now 뮤직비디오'''
2000년은 그야말로 가요계 별들의 전쟁이었던 시기로 일명 Big3라 불렸던 H.O.T.와 서태지, 조성모가 컴백해 모두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god의 거짓말, 박지윤의 성인식, 이정현의 와, 너가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다. 이 상황에서 앞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던 핑클은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케줄이 워낙에 많아 쉼없이 달리고 있는데 이렇게 경쟁가수가 연달아 컴백하는 상황, 그리고 대중의 노출도가 절정에 이르며 핑클 멤버들의 비글끼가 노출되고, 2년이 넘는 청순발랄 이미지의 소모로 피로감까지 쌓인 상황. 여러 가지 이유로 3집의 컴백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발매 시기는 2000년 10월로서, 2집과는 1년 5개월, 2.5집과는 11개월의 텀이 있었는데 아이돌 가수치고는 공백기가 상당했다. 타이틀곡은 'Now'로서, 상당히 강도가 센 안무와 리듬감, 청순함 대신 성숙함과 섹시함으로 무장하여 기존의 이미지를 뒤엎었다.
Now의 180도 이미지 변신으로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샀다. 핑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요정, 귀여움, 친근함인데 이와는 정반대에 있는 섹시한 이미지로 돌아섰으니, 핑클과 어울릴까 하는 고민이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와는 다르게 3집도 2집 못지않게 대박을 터뜨린다. 세련된 노래에 비록 섹시 컨셉이었지만 커리어 우먼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성숙하고 정갈한 의상이 대비가 되어 핑클에게 없었던 '''아우라'''를 만들어주었다. 비슷한 시기에 컴백한 H.O.T.와 god 같은 쟁쟁한 가수들 속에서 연달아 1위를 차지하며 SBS 인기가요에서 왕중왕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린다.
또한 이때부터 남성팬들 뿐만 아니라 여성팬들에게도 어필하며 핑클에게도 많은 여덕들이 생기게 된다. 특히 이효리가 크게 주목을 받으며 성유리를 이은 핑클의 새로운 마스코트로 떠올랐다. [17]
Now로 2집 못지않게 큰 인기를 누린 다음 연말부터 후속곡 'Feel Your Love' 활동으로 접어든다. 도도하고 섹시한 느낌이 묻어나는 곡이었으며, '교복컨셉' '힙합컨셉' '작업복컨셉' 등 무대마다 각양각색으로 변신하는 의상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메인인 '스쿨룩'이 화제를 모았다. 또 이효리가 랩을 시도해 '랩퍼횰'이라는 별명이 생긴다. 후속곡 선정은 말이 많았는데, 컴백 때 이미 불러버린 곡이 후속곡으로 낙점되었다. 당시 공식홈페이지 투표에서는 'My Love'란 곡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었다. 하지만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상파에서 3위까지 차지하는 쾌거를 이룬다. 앨범 판매량은 44만 장으로, 2.5집과 비슷한 판매량을 보였다.
3집 활동은 정상급 걸그룹답지 않게 공식적인 막방도 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흐지부지 끝났는데 메인 보컬 옥주현이 KBS 스탠바이큐 예능 촬영 중 다리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제작진들이 무리시킨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자 옥주현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고 말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옥주현은 한동안 제대로 걷지 못했고, 때문에 1000일 파티 당시 휠체어에 앉아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2.4. 2001년: 원숙한 핑클
'''핑클 리메이크 앨범 타이틀곡 당신은 모르실거야 뮤직비디오'''
2001년 4월 리메이크 앨범인 3.5집으로 컴백, '당신은 모르실거야'를 부르며 활동을 이어 나갔다. 2001년 핑클은 핑클팬덤 역사상 많은 팬들을 끌어모았고,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든다. 이들은 '당신은 모르실거야'로 방송 3사에서 2주 동안 전부 1위를 수상했다. 곡의 인기로는 '영원한 사랑'과 'Now'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랑받았지만, 팬덤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가 이 때인데, 당시 아이돌 그룹 팬덤 대결의 장이었던 드림콘서트에서 걸그룹 역사상 가장 많은 팬수인 3500명 이상이 모여 일당백 응원을 시전하였다.
조성모 리메이크 이후로 리메이크 열풍이 분 적이 있었는데, 핑클은 이 열풍에 한 발 앞서 앨범을 발표했다. 여성 선배 가수들의 여러 곡들을 리메이크하였으며 히트곡 위주의 선곡과 눈부신 보컬 능력을 보여준 옥주현 파트에서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고, 대체로 잔잔한 노래들에 이효리의 부드러운 음색이 어우러져 보컬 능력에서도 대체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핑클이라는 그룹의 활동이 3년이 넘어가면서, 이전보다는 더 성숙하면서 청초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대체로 1집 루비와 비슷한 느낌의 분위기로 활동했는데, 무대 경험이 많이 쌓여서인지 뮤직비디오나 무대 등에서 확실히 노련미와 성숙함이 돋보이는 활동이었다. 판매량은 25만장을 기록한다.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웨딩드레스 컨셉이었는데, 뮤직비디오에서 이효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에서 헬멧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뮤비가 방송금지 된 적이 있다.
몇 달간의 공백기를 거친 뒤에 그해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골든디스크 시상식을 제외한 연말 가요 시상식에 대부분 참석하였는데 2001년 <SBS 가요대전>에서 강타와 함께 대상 후보격인 '최고 인기상'을 수상했다. 대상은 god. 상반기에 스페셜 앨범으로 길지 않게 활동한 것 치곤 이례적인 수상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2.5. 2002년: 따로 또 같이
'''핑클 4집 앨범 타이틀곡 영원 뮤직비디오'''
2002년 3월 4집 앨범을 발표하며, 타이틀곡 '영원'을 불렀다. 1집부터 3.5집까지 멤버들은 사실상 공백기가 거의 없었을 정도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3.5집 활동을 접고부터는 방송활동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워낙 바쁘게 달려온 탓에 처음으로 맞은 공백기 동안 핑클이라는 그룹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맞을 수 있었으며, 이 때부터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옥주현이 별이 빛나는 밤에 DJ로 들어가고, 이효리가 해피투게더, 타임머신 MC로 들어가는 등 솔로로서의 독립 준비를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긴 공백기 속에 비교적 여유롭게 앨범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이 덕분에 핑클 4집은 '''역대 핑클 앨범 중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앨범'''으로 남았다. 성숙한 느낌을 강조한 4집은 여러 장르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발전된 믹싱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멤버들의 가창력도 이전보다 더욱 좋아지며 가수로서의 핑클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계기가 되었다. 4집 앨범은 대중들에게 성숙한 핑클, 가수로서 한 단계 성장한 핑클을 보여주었다.
성유리의 생일 3월 3일 첫방을 시작으로, 타이틀곡 '영원'과 후속곡 'Don't Go Away'로 활동하였다. '영원'은 SBS에서의 왕중왕 타이틀을 다시 한번 안겨 주었다. 1집 앨범처럼 발라드곡이 타이틀이 된 두번째 정규앨범으로 전체적으로 성숙해졌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뮤직비디오 역시 네명의 멤버가 각각 스토리를 가진 형식을 취했는데 멤버 이진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과(3분26초) 후반부 자살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와 논란이 되었다.
공식적인 4집 활동 첫방송이었던 2002년 3월 3일, SBS 인기가요 발산동 공개홀에는 무려 1000명이 넘는 핑클팬이 운집했는데 이는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기록이며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여자가수 컴백일 공방팬 동원수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방송이 끝나고 공개홀 근처 공원으로 이동하여 팬미팅을 진행했다.
후속곡을 팬들이 투표하는 형태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는데, 컴백 때 무대를 가졌던 'Never'와 지금도 핑클의 숨은 명곡으로 손꼽는 ‘Fortune’ 등 팬들의 의견이 많이 갈렸었지만 결국 2002년 월드컵 분위기를 고려해 소속사가 'Don't Go Away'로 후속곡을 결정하면서 팬들의 큰 원성을 샀다. 결국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흐르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앨범 활동을 종료했다.
다른 앨범 활동에 비해 3개월 정도로 매우 짧은 활동을 한 뒤 앨범 활동을 접었으며, 그 때문인지 4집 음반 판매량은 다소 아쉬운 26만장을 기록한다. (한터정보시스템 집계로는 31만 장 선에서 마감)
4집 활동 종료 후 본격적으로 개인활동을 시작했고, 2002년 말까지 완전체로 몇 개의 예능에 동시로 출연했다. 희대의 괴작으로 평가받는 긴급조치 19호에도 출연했고, 8월에는 마티즈 2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2002년 11월 24일, 핑클은 마티즈 2 출판을 기념한 서울모터쇼에서 축하 공연을 가졌다. 2003년부터 마티즈 모델을 후배인 쥬얼리에게 넘겨주면서,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개인활동 시대로 접어든다.
그 해 가요시상식은 불참했는데, 원래는 가요시상식 후보에도 올라있었으나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아 인정받기 힘들다는 이유로 불참을 선언했다.
2.6. 2003년~ : 개인 활동의 시작, 2006년~2018년: 그룹 활동 중단
2002년 4월, 그룹을 해체하지 않고 '따로 또 같이'라는 개인활동을 선언했다. 이는 핑클이 처음 선보인 것으로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터라 해체냐 아니냐를 놓고 팬들과 언론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으나 소속사에서는 해체가 아니라고 못박았다.[18] 이를 증명하듯 2002년 말까지는 개인 활동을 병행하며 가끔씩 완전체로 예능에 출연하거나 각 멤버의 방송에 게스트로 등장하며 예능 위주로 활동을 이어갔으나, 옥주현과 이효리의 솔로 가수 활동이 본격화된 2003년부터는 조금씩 이러한 경향이 뜸해졌고 이효리가 솔로 가수로 자리를 잡은 2003년 말부터는 사실상 따로 활동하게 된다.[19]
그리고 2005년 야심만만에 그룹으로 출연했고 10월 디지털 싱글인 'FINKL'이 현재까지 이들이 발매한 마지막 공식음반이였다.[20] 이때 음악 방송활동이 없어서 핑클은 2002년 이후 활동 중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개인 활동이라도 핑클은 무계약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dsp에 있는 동안은 핑클 활동 중 개인 활동이라고 보는게 맞다.[21]
디지털 싱글을 발표한 지 몇 달 후, SBS 인기가요 무대 영상과 자켓 사진집 등을 포함한 형태로 DVD를 발매하였는데 당시 가수들에겐 생소하던 DVD라는 점과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1만장의 판매고를 거두며 식지 않은 인기를 증명했다. 또한 'FINKL'로 당시 음원사이트 점유율 3위이던 도시락[22] 주간차트에서 1위에 오르긴 하지만 명성에 비해 조금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 이것도 도시락 사이트에서 디지털 싱글의 대대적인 프로모션(이벤트 팝업창이나 메인 배너 노출, 음원 추천 마크, 도시락 자체 CD제작 후 지급)을 진행한 결과이기도 하다.
'''핑클 디지털 싱글 타이틀곡 FINKL 뮤직비디오'''
이후부터 그룹 활동은 중단되었고 완전한 개인 활동이 시작되었다.[23]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이때까지도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함과 동시에 개인 활동을 시작해, '''핑클이 '해체'라는 개념 없이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핑클은 무수히 많은 CF와 예능몰이로 대중들에게 여전히 인기 걸그룹으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룹 활동을 이어가는 도중 하나씩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면서 '해체'라는 표현과 활동의 끊김이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길을 찾아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 '털털함'이라는 이미지를 찾아 '섹시함'으로 포텐을 터뜨린 이효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 탑 뮤지컬배우로 성장한 옥주현과 연기자로 자리를 잡은 성유리, 이진까지, 남녀 1세대 아이돌을 통틀어 현재까지 가장 독보적으로 돋보이는 그룹으로 위상을 굳힌 것은 이때의 자연스런 흩어짐이 큰 역할을 했다. 굳이 해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핑클 팬들을 굳건히 결집시킨 상황에서 그 인기를 자연스레 개인의 인기로 끌고 온 것은, 비록 지금에 와서 개인 활동에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었을지 몰라도 이들이 아니었으면 현재의 이효리, 옥주현, 이진, 성유리의 인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24][25] 현재 2세대 이후 아이돌의 개인활동에 신화와 더불어 매우 큰 영향을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26]
그 이후 멤버들은..
리더인 이효리는 가요계 아이콘이 되어 각종 가요대상을 휩쓸고, 신드롬을 불러 일으킨다. 90년대, 00년대, 10년대, 20년대 모두 1위를 기록한 유일한 여가수. 또 각종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 <패밀리가 떴다> 등등..)에서 활약하며 연예대상 까지 받아 먼치킨급 커리어를 작성한다.
성유리도 연기 활동 초반, <나쁜 여자들>, <막상막하>, <천년지애>에서 연기력 논란으로 욕을 많이 먹었지만, <천년지애>는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였고[27] , 이후로도 <황태자의 첫사랑>, <눈의 여왕>, <쾌도 홍길동>, <태양을 삼켜라>, <로맨스 타운>, <신들의 만찬>, <출생의 비밀>, <몬스터> 등 웬만한 탤런트보다 훌륭한 필모그래피를 써가고 있으며 최근엔 피나는 노력을 통해 연기력이 많이 늘어 연기자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힐링캠프>를 통해 MC로도 점점 성장을 하고있다.
옥주현은 가수 활동에서는 큰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으나, 라디오 DJ로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며 장수했다. 또 뮤지컬 분야에서는 대형극 <아이다>, <시카고>, <캣츠>, <브로드웨이 42번가>, <엘리자벳>, <레베카>, <위키드> 등등의 여주인공을 연달아 차지하며 양대 뮤지컬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휩쓸어 그야말로 최고의 뮤지컬 여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이진은 원래 꿈이었던 연기로 변신, <뉴논스톱3>, <왕과 나>, <대풍수>, <출생의 비밀>등 각종 드라마에서 주조연으로 활약 중이고[28] SBS 예능프로그램인 <X맨을 찾아라(당연하지)>, <영웅호걸> 등에 출연한 바 있다. MBC 일일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후 이진의 활동에 대해서는 이진/핑클 활동 중단 이후 참고.
이 효과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역대 최고의 걸그룹에 자주 손꼽히는 그룹이다. 핑클이 활동을 안 한 지 거의 10년이 넘었는데도 핑클의 브랜드파워는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 예로 2015년 1월 힐링캠프에서 MC인 성유리의 게스트로 옥주현이 초대되고 이효리랑 전화 통화 연결만 하였는데도 시청률이 7.4%로 전주 대비 2.4% 상승해서 그해 최고 시청률을 올린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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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이효리 결혼식 때 멤버들이 단 한명도 참석하지 않아 불화설이 있었으나 이효리의 결혼식은 가족들과 절친한 지인들만 모여서 제주도에서 하우스 웨딩을 올렸다. 당시 멤버들은 모두 스케줄이 있었고 거리가 거리인지라 실제 이효리와 절친하다고 알려진 연예인들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정재형이나 디자이너 요니 등 일부 연예인이 참석한 것으로 밝혀져 궁금증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효리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옥주현이 축가로 루비를(...) 직접 불러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 노래 마치고 나서 '''가... 가버렷!'''이 압권.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멤버들은 여전히 친하게 잘 지내고 있으며 서로 축하할 만한 일이 있을 때에도 모인다고 한다. 다만 2014년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이효리가 밝힌 바에 따르면 2008년 이효리 콘서트 이후로 다 같이 모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4월 26일. 불화설을 모두 종식이라도 하듯 오손도손 다정해 보이는 사진이 공개되어 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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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데뷔 20주년을 맞아 이진, 성유리, 옥주현이 이효리가 있는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 그리고 3년 만에 단체 사진과 영상을 올렸다.
2.6.1. 해체 논란
정규 4집과 마티즈 2 광고모델 계약 종료 이후 활동도 중단하고 핑클이 지금까지 음반활동이 없어서 해체한 그룹이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앞에서 언급했지만 핑클은 공식적으로 '''아직 해체 안 한 현재 한국 최장수 아이돌 걸그룹이며 또한 멤버 전원이 핑클은 아직 해체 안 했다면서 단호하게 못박고 있다.''' [30] 하지만 각자 소속사도 달라졌고 서로의 활동 범위가 너무나 판이해졌기 때문에 2005년 디지털 싱글 'FIN K.L' 이후 지금까지 후속 앨범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서 '''사실상 해체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긴 하다.[31][32]
그래도 2007년 이효리 생일파티와 2008년 성유리 생일파티 때 네 명이 함께 출연하거나 이효리 첫 번째 단독 콘서트 때 이진, 성유리, 옥주현이 깜짝 출연해 넷이 이벤트 무대를 벌인 적은 있다. 성유리는 핑클 얘기가 나오면 되도록 언급을 피했으나[33] , 2008년까지 여전히 핑클 멤버임을 수차례 못박아왔고, 2013년 DSP festival에선 영상으로 "앞으로도 계속 저희 핑클도 많은 관심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진은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2009년 이진이 핑클 결합을 원치 않는다는 오보가 난 후 오보라는 사실을 피력하기 위해 팬사이트에 글을 쓴 적도 있다. 특히 이효리, 옥주현의 경우엔 매년 꾸준히 "핑클은 해체하지 않았다"고 말을 해왔다.
과거 소속사인 DSP조차 "현재 소속사가 다를 지라도 굳이 핑클이란 이름으로 넷이 활동하는 것에 대해 제재하지 않겠다"고 했다. 게다가 2004년 3월 DSP 사장 이호연이 특허법인을 통해 핑클 상표를 등록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였으나 2005년 6월 거절당한 기록이 남아있다. 즉, 핑클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은 DSP에게 없을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므로 굳이 앨범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런 산발적인 이벤트는 일어날 수도 있다.'''[34]
사실 핑클의 위력은 '''각자의 길을 떠난 후에 증명되었다.'''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그룹 해체 후 솔로로 전향할 때 큰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이들 모두 자신의 새로운 자리를 확고히 잡았고, 연예계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계속 다져나갔다.
2.7. 2019년: 캠핑클럽과 완전체 활동
2019년 7월, JTBC 캠핑클럽을 통해 14년 만에 완전체로 예능 활동을 했다. 참고로 단체 예능은 2005년 1월 10일, 17일 출연한 야심만만 이후 최초다.
'''핑클 디지털 싱글 남아있는 노래처럼 뮤직비디오'''
2019년 9월 22일에 14년만의 신곡인 '남아있는 노래처럼'이 디지털 싱글로 발표되었다. # 음원은 멜론 실시간 차트에 78위로 진입[35] 한 후 99위에 머무르고 있다가 캠핑클럽 방영 직후 85계단이나 올라 차트 14위를 차지하였고, # 지니 6위, 엠넷 5위[36] , 벅스, 네이버뮤직, 소리바다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90년대 치트키 아이돌들 중 아무런 사건사고(?) 없는 거의 유일한 그룹이기에 다시 뭉친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특히 다른 가수들과 다르게 굉장히 솔직한 모습들로 예능을 접수했던 핑클이기에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효리의 '배란일 드립' 과 이진의 '구마의식'은 그야말로 아이돌 예능계의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추가적으로, 엄밀히 말해서 캠핑클럽 출연은 핑클이 해체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결합'''했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37]
[1] 애니는 핑클에 합류했고 1집 녹음도 다 했었다. 은지원이 핑클 전 멤버로 애니를 계속 꼽는 이유가 그때 은지원이 핑클의 1집 수록곡 shadow를 함께 녹음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 멤버들의 상징색은 애니(블랙), 옥주현(레드), 이진(블루), 성유리(화이트).[2] 이유는 성유리의 외모랑 S.E.S의 성공 때문이었다. 컨셉을 바꾸면서 S.E.S을 겨냥하게 되어 핑클은 무조건 4인조 데뷔를 해야 했다.[3] 당시 별밤지기 이문세가 '밤의 교육부장관'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청소년들 사이에선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이었고, 이 프로그램의 꼭지 코너였던 별밤뽐내기는 요새 프로그램에 비유하면 프로듀스 시리즈와 같은 스타 등용문 같은 코너였다.[4] 당시에 옥주현은 성악에 소질이 있어 이탈리아로 유학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옥주현 엄마가 유학 가기 전에 점을 봤는데 무당이 "이번 해에 바다를 넘어가면 얘는 죽는다, 1년만 기다리면 귀인을 만나니 기다리라"고 해서 유학도 못가고 학교 1년만 꿇은 상태였다. 옥주현이 회상하기를 그 귀인이 바로 이호연이었다고.[5] 이 2명 외에도 옥주현이 2007년 상상플러스에 출연해 밝힌 바로 티티마의 최유진, 탤런트 임유진이 네 번째 멤버의 자리를 거쳐갔다고 했다. 특히 이날 방송에서* 유명 걸그룹 메인보컬이 핑클 데뷔곡 녹음 중 욕설을 하여 짤렸다고 밝혀 방송 후 옥주현이 경솔했다며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었다. 방송 10년 후인 2017년에 클레오의 채은정이 그 멤버가 결국 자신이었음을 모 잡지 인터뷰를 통해 실토했다. 실제로 채은정은 핑클 데뷔 한달 전에 하차해 사실상 이효리가 합류하기 전 마지막 데뷔조 멤버였다.[6] 당시 DSP의 전략으로 유명한 SM+1 시스템이었다. 당시 H.O.T, S.E.S 등 SM 측 주요 아티스트들 보다 한 명을 더 뽑아 데뷔시키던 전략. 원래는 '애니'를 포함해 데뷔한다고 이미 광고를 했던 상황에서 4번째 멤버가 계속 바뀌어 데뷔가 미뤄지고 있었다. 그래서 옥주현, 이진, 성유리는 지쳤던 상황이었다.[7] 이 그룹이 타샤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며, 원래 이효리는 월드뮤직에서 윤미래와 99년 데뷔하게 되는 탤런트 임유진과 함께 3인조 힙합 그룹 '''업타운 걸스'''를 준비하다가 이 팀이 어른의 사정으로 무산되고 같은 회사의 연습생 신분이던 샵의 이지혜, MC몽, 신화의 김동완과 함께 10대 댄스 그룹을 준비하던 차에 DSP에 캐스팅 되었다. (그래서 결국 김동완, 이지혜와 준비하던 그룹은 녹음도 마쳤지만 이효리가 빠지는 바람에 무산되었다고.) 타샤니는 한참 후에 윤미래와 본래 핑클 데뷔조였던 애니가 함께 모여 만든 듀오 그룹이며, 타샤니는 원래 윤미래의 솔로 데뷔 프로젝트였지만 앨범 발매 1달전에 듀오 체제로 바뀐 그룹이다. 타샤니와는 상관 없다.[8] 2012년 4월 16일자 방송[9] 성유리 역시 캐스팅 된 이효리를 처음 만나고 얼굴만 보고서 "'''됐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라고.[10] MBC가 공식적으로 개설한 네이버TV의 타임머신TV 채널에서 2016년에 (제목도)핑클의 데뷔 무대를 업로드 했는데 설명란을 보면 1998년 5월 23일로(생방송 음악캠프 5회 방영분) 설명하고 있다.[11] 2015년 핑클 회동 당시 옥주현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오랜만에 옛날 이야기 보따릴 펼쳤더니 재미난 일들이 많긴 하다. 넷은 여러모로 세고 특이했다.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다, 우린. 가수가 되고 싶단 큰 꿈도 없이 캐스팅된 아이들. 노래 안 되고 춤도 안 되는데 '연습생 시절'이란 것도 없이 그 상태로 데뷔를 시킨다고… 망할 거라고 확신하며 아무 기대도 겁도 없이 세상에 나왔다. '''예상대로 데뷔곡 '블루레인'은 큰 집중을 받지 못했지만 좌절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우리 사장님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곡으로 방향을 바꿔 빛의 속도로 일을 진행했다. 뮤직비디오를 찍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옷을 입고, 이런 유치한 가사를 립싱크하라니. 이걸로 앞으로 방송도 해야 하냐고. -이것봐 나를 한번 쳐다봐. 나 지금 예쁘다고 말해봐-콜미 콜미 콜콜 기 붜 코올 -난 니 거야- 우린 모두 하기 싫은 티를 뚝뚝 묻혀가며 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터질 줄이야…! 그 이후 고공행진.''' 노래 춤 실력을 키워야 하는데 예능의 절대 강자로 시청률을 제압하던 핑클은 잠자는 시간, 가요 프로그램 출연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예능촬영에 몰두. 노래 연습은 안녕… 춤은 모두가 따라 출 수 있는 걸로. 오늘 밥 먹으면서 저 위의 내용으로 웃음꽃이 활짝 폈다. 신기하지 않냐며, 잠깐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다며. 갖춰진 것도 없이 운이 억수로 좋았던 건 말이 안 되는 걸 되게끔 옆에서 애써준 사람들의 공이 크다고…FBI에서 훈련 받는 것보다 우리 넷을 케어하는 게 몇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__^) 매니저 오빠들. 불도저 이호연 사장님. 오늘 귀 좀 간지러우시겠다. 핑클을 에워싼 숲이 되어준 그대들에게 고맙고 보고 싶고 미안하고… 넷이서 이야기 나누며 많이 그리워했어요. 오겡키데스카.[12] 멤버끼리는 그전까지도 꾸준히 모임을 가지는 사이였으며, 캠핑클럽에서 결국 재결합이 이루어졌다. [13] 옥주현은 당시 불교였다.[14] 이건 1998년 이후다. 1998년에 이효리 제외 세 사람은 다 미성년자였다.[15] 이는 신화와도 비슷하다. 신화는 대기실에서 주먹이 오갈정도로 심하게 다투었지만, 오히려 멤버 탈퇴 없이 어느 그룹보다도 돈독하게 오랜기간 유지되고 있다.[16] 서울가요대상, SBS 가요대전[17] 이효리는 이전에도 영원한 사랑을 기점으로 성유리 다음으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긴 했지만, 그동안 핑클의 이미지는 성유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가 3집 'Now'와 후속곡 'Feel Your Love'부터 이효리에게 초점이 맞춰 컨셉이 잡혔다. 귀여운 컨셉을 할 때도 이효리는 잘 소화를 했지만 다른 멤버들에 비해 성숙함, 섹시미가 묻어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귀여운 그룹 컨셉에 맞추어져 철저히 가려져 있었는데 이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시기부터이다.[18] 이는 아예 2002년 12월 공식적으로 해체를 선언했던 S.E.S.와 달리 애매한 개념이라 더욱 더 논쟁이 뜨거웠다.[19] 만약 이효리가 초대박이 아닌 적당한 선에서 성공한 결과를 냈다면 2004년에 핑클이 컴백했을 수도 있다. 당시는 S.E.S가 없었기 때문에 걸그룹 시장에서 핑클을 1강으로 봐도 무방했다.[20] 원래는 3~4월에 발매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멤버들의 스케줄로 미루어졌다.[21] 당시에 그룹계약 후 솔로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었는데 나중에 성유리가 무계약이었다고 밝혔다.[22] 지니뮤직의 전신이기도 하다.[23] 그룹 활동 중단의 내막에 대해선 핑클 멤버들이 한번도 구체적으로 말한적 없기 때문에 알려질 일은 없을 듯하다. 알려진 사실로는 이효리는 솔로로 성공하고 잘나가는 동안 동생들에게 무심했고 나중에 이에 대해 사과했다. 성유리는 황태자의 첫사랑을 끝낸 후 좌절감을 겪어 연예계 은퇴를 고려했었다고 한다. 옥주현과 이진의 경우는 알려진게 없고 이들의 행보는 그룹 활동 중단을 선택한 후 결정된 것으로 보는게 맞을 것이다.[24] 핑클과 달리 해체를 선언한 S.E.S 같은 경우 한동안 논란이 있었고 그 대상은 소속사를 이적한 바다, 유진이었다. 만약 핑클도 같은 선택을 했다면 역시 논란이 있었을 테고 그 대상은 소속사를 이적한 이진, 성유리로 향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아예 배우 소속사로 이적했다.[25] 사실 그때도 논란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핑클 멤버라는 것을 강조했고 dsp와 핑클 멤버들이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 했는지 모를 팬들을 달래기 위한 말들로 어떻게 넘어갔다. [26] 핑클 이후로 '해체'선언을 하지 않고 후일을 기약하고 그룹 활동을 중단하는 후배 아이돌들이 많이 생겼다.[27] 연기로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미모로는 찬양받았다.[28] 성유리의 전례를 보고 연기에 힘을 썼는지 사극에서의 표정연기나 발성도 꽤 괜찮은 수준이었다.[29] 진짜 문제가 있는 그룹들을 보면 이런 사진조차 없기 때문에 핑클팬들 입장에선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30] 1997년에 데뷔했던 베이비복스, 디바도 공식 해체는 안 했다. 심지어 무려 1954년(!)에 데뷔했던 은방울 자매도 공식 해체를 안 했다. 이렇게 보면 최장수 걸그룹은 은방울 자매가 된다. 물론 저들보다도 훨씬 전 세대인데다가 아이돌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만...[31] 참고로 해체된 S.E.S.를 제외하더라도 베이비복스가 있었으나 원년멤버가 다 빠진 2기 그룹마저도 해체되었으며, 한때 활동했던 쥬얼리 역시 원년멤버인 박정아가 나간 상태인지라 장수 걸그룹으로서의 이미지를 상실하면서 결국 2015년 1월에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32] 멤버들 역시 해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다시 뭉치는 것에 있어서 적극적인 모양새를 띤 적이 거의 없어서 더 이 논란이 애매해진 경향이 있다.[33] 훗날 싸이더스와 개인 팬들, 그리고 여배우 이미지를 위해 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하나라도 화제되는 재밋거리가 있으면 모든 연예인들이 어떻게든 물고 늘어지는 게 트렌드이다.[34] 2021년을 끝으로 JYP랑 재계약을 안했던 보이그룹 갓세븐은 상표권이 JYP한테 있지만 그룹을 유지한 상태에서 각자의 길로 가는걸로 정리했다.[35] 지니 29위, 벅스 18위, 엠넷 85위, 네이버뮤직 22위, 소리바다 10위로 진입[36] 엠넷에서는 23일 오전 8시에 최고 순위 2위까지 차지했다.[37] 오히려 공백기를 끝내고 활동을 재개했다는 말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