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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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발라드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이다.
대구광역시에 살다가 혜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 가수가 되기 위해 서울특별시에 있는 중경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양파'라는 예명은 벗겨도 벗겨도 계속 나오는 양파의 모습에 착안해서, 자신도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 시절, 혜성처럼 화려하게 데뷔한 여고생 가수며 정규 4집 활동 이후 6년간의 공백기를 가졌을 때 자신의 본명인 이은진에서 '진' 자를 뺀 '이은'으로 활동명을 바꾸려고 했으나, 결국 본 예명인 '양파'로 활동했다. 대략 2004~2005년쯤 나돌던 소문이었는데, 당시 소속사인 신촌뮤직과 기나긴 법정 다툼 끝에 정신적으로 워낙 피폐해져 있어 아예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려고 했던 흑역사 시절의 계획이었다.
애초에 양파라는 예명은 문제의 이모부가 지은 데다 본인은 마음에 들지 않은 채 유명해져버려서 그대로 쓸지 본명을 쓸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2015년 기준으로 데뷔한 지 20년차가 되었지만 공백 기간은 10년이 넘으며 이 해에 미니 2집 'Together' 발매 이후 3년 만에 MBC <나는 가수다 3>에 출연했다.
2017년에 발매한 싱글 '끌림'이 마지막 디스코그래피이다.
2. 활동
2.1. 1996~2001년
서울 중경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6년 12월 정규 1집 'YangPa'로 데뷔했다.
해를 넘긴 1997년 그해 봄은 데뷔한 뒤 곧바로 찾아온 그녀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었다.[4] 타이틀 곡인 '애송이의 사랑'은 1997년 3-4월에 KBS 2TV <가요톱10>에서 최연소 골든컵 수상자의 영예를 안겨 주었으며, MBC <인기가요 BEST 50>, SBS <TV 가요 20>에서도 여러 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5]
음반은 82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고[6] , 그해 여러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마디로 혜성같이 등장해 데뷔하자마자 엄청난 인기를 얻은 흔치 않은 여가수가 된 건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R&B와 힙합 등 흑인 음악이 우리나라에 막 소개되던 시기였다. 솔리드의 김조한을 통해서 최초로 가요계에 R&B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여자 가수는 아직까지 나타나질 않았다. 한영애, 박미경이 흑인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창법을 구사했지만 한영애는 소울, 박미경은 유로 댄스와 발라드 음악을 다루었기에 R&B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R&B 남자 가수가 있으니 이제 여자도 R&B를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대중들의 기대가 있었고, 때마침 그 틈새를 양파라는 어린 소녀 가수가 파고든 것이다.
양파 역시도 발라드 장르에 뽕끼 섞인 창법으로 정통 R&B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자유자재로 기교를 부리고 서툴지만 극적인 완급조절을 하는 모습이 기존 가수들에게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고, R&B 가수들이 흔히 쓰는 방식이라 대중들에게 '저게 진짜 R&B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트로트의 '간드러지는' 창법이 섞이고 노래까지도 한국식으로 어레인지하여 대중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대중적으로는 현재까지도 여자 R&B 가수들 중 최고의 임팩트를 기록한 노래가 바로 '애송이의 사랑'이다. 또한 1년 뒤에 등장한 S.E.S.가 유사한 방식으로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로도 진주, 박정현, 박화요비, 애즈원, J, 박기영, 유미, 린, 거미, 빅마마, 버블시스터즈, 가비엔제이, 씨야, 다비치, 에일리 등등 수많은 R&B 기반 여가수들이 등장했고, 이들 중 분명히 양파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가수도 있고 양파 이상으로 스테디셀러로 남긴 노래도 있지만 대중적인 폭발력에서 '애송이의 사랑'을 넘는 노래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7] 그나마 이들 중 '애송이의 사랑'과 비견될 만한 앨범은 빅마마 1집이 있지만 이 경우는 꾸준히 오랫동안 사랑받은 경우고 양파처럼 단기간에 대중들에게 충격을 남긴 것은 아니다.[8]
한가지 더라면 1990년대 후반, 이제 막 아이돌의 개념이 생기고 있던 시절 10대답지 않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고 진짜 아이돌로 취급받지는 않았지만 10대 가수였기에 청순 컨셉 아이돌처럼 풋풋한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가창력에서 더욱 주목받을 수 있었다. 노래가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했던 것도 한몫. 덤으로 당시 학교에서 전교권에 드는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엄친딸' 이미지를 가진 가수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전성기를 이어갔는데....
1997년 11월에 1집과 2집 공백기 당시 수능을 치던 도중 언어 영역이 끝난 직후 복통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남은 시험을 치지 못해 본인이 원하는 대학을 못 가는 사태가 발생했다.[9] 양파와 같은 수능장에 있었던 수험생들 역시 지나친 경호+응급실 후송 소동 때문에 영향을 받아 제 실력대로 시험을 보지 못했고, 이 때문에 '원래 공부 못했는데 실력이 들통날까봐 연기한 것 아니냐'는 소문에 시달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녀의 인기는 10대 청소년층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는데 수능 관련 사건으로 인해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었다.
수능 여파가 가시기 전인 1998년 1월에 정규 2집 '2nd'를 발매하고 '알고 싶어요!'라는 곡으로 활동했을 때는 수능을 치른지 불과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앨범이 나온 게 수능 중에 쓰러져 실려갔을 때 몰래 앨범을 준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수능 사건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성급하게 활동을 했던 탓인지 1집만큼의 폭발적인 인기는 간 데 없었고 음반 판매량 역시 전작의 절반에 그치면서 소포모어 징크스에 빠졌다. 사실 1집이 워낙 큰 인기를 끈 것이지 2집이 인기가 없었다는 소리는 아니며 2집도 가요톱텐에서 종영될 때 최고 6위까지 랭크되면서 괜찮은 인기를 이어갔고, 2집 발매 당시까지도 이렇다 할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아 한국 최초의 R&B 여가수라는 수식어를 그대로 이어갈 수 있었다.[10]
문제는 그 이후였다. 2집과 3집 공백기 사이에 진주, 박정현, 박기영 같은 디바가 대거 등장하면서 양파의 위치는 위협받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교포로서 R&B의 본고장에서 제대로 된 R&B를 접하고 창법을 구사했던 박정현은 양파 이상으로 폭발적이고 완급조절을 하는 전설급의 가창력을 보여주면서 대비가 심하게 되기 시작했다. 박정현 창법에 비해 양파 창법이 완급조절이 투박하고 더 잘 꺾이는, 쉽게 말해 뽕끼(...)가 가득한 느낌이어서 '밀린다'는 인상을 많이 주었다. 박정현 1집은 5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후 양파는 'R&B 창법의 정석'에서 '한국적인 R&B'로 평가가 뒤바뀌게 되었다. 다만 가창력 평가절하와는 반대로 정작 이 때문에 2집의 부진을 씻고 대중적인 관심을 더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9년 6월 말, 3집 'Addio'로 컴백했다. 타이틀곡 역시 동명의 슬픈 발라드곡 'Addio'. 여름에 처절한 마이너 발라드로 컴백했으며 박정현의 데뷔 이후 문제점으로 지적된 '뽕끼'가 오히려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며 세간의 우려를 샀으나 막상 발표 후 신나라레코드 가요 집계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종 판매량은 43만장 정도로 앨범 판매량과 노래 인기로는 1집 다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인기를 회복하고 꾸준히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탄탄히 다졌던 시기였다.
그녀는 'Addio' 활동을 끝마치고 미국 보스턴의 명문 버클리 음악대학에 전액장학생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진짜 노래 제목처럼 '''떠났다.'''[11] 물론 유학 중 3.5집과 4집을 내긴 했지만 말 그대로 유학 중에 냈기 때문에 활동 기간은 짧았고 유학 도중에 김동률의 정규 2집 '希望'의 수록곡 "벽"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바 있다.[12] 그렇게 2001년 4집 'Perfume'을 끝으로 그렇게 잊혀지는가 싶더니...
2.2. 2007~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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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정규 5집 'The Windows of My Soul'로 컴백했다. 4집 활동이 끝나고 5집이 나오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 것은 소속사와의 갈등 때문이었다. 계약이 정규앨범 5장 발매로 되어 있었는데 양파는 "3.5집을 포함해서 5장을 냈으니 계약이 끝난 거다", 소속사는 "그렇지 않다. 5집까지 내야한다"는 입장 차이가 드러나면서 싸움이 난 것이다.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더 간드러진 목소리 뿐만 아니라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동안이면서도 뭔가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팬텀엔터테인먼트가 컴백 전부터 언론플레이를 한 데다 KBS2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와 비욘세의 'Listen'을 부른 것까지 화제가 되면서 컴백 자체가 이슈를 모았다.
양파가 부른 'Listen' - 2007년 KBS2 <윤도현의 러브레터>
하지만 뜨거운 화제성과는 달리 5집에 대한 평가는 다소 비판적이었다. 일단 창법이 트로트 가수처럼 변했고, 타이틀곡 '사랑..그게 뭔데'는 이수영이 부른 백지영의 '사랑 안 해'[13] 같을 정도로 양파만의 색깔이 사라졌다는 말이 많았다. 그리고 앨범 작업에 박근태, 김도훈 등 유명 작곡가가 많이 참여해서 대중성이 빵빵했는데 너무 대중지향적인 음악으로 돌아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았다. 여담으로 "사랑..그게 뭔데"의 끝 부분에 카논이 샘플링되어 있다.
대중 지향적인 앨범을 내는 것에 대해 양파가 음악 전문 커뮤니티 izm과의 인터뷰에서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도 일단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야 가능하니까, 6년 만에 컴백하는 만큼 대중성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타이틀곡 '사랑..그게 뭔데'의 창법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중들이 세련된 음악보다는 좀 촌스러운 음악을 더 좋아하므로 노래를 거칠게 불렀다고.
그리고 '애송이의 사랑', 'Addio' 등 소위 '양파 음악'이라고 불리는 노래들도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있기에 딱히 본인이 하고 싶은 노래를 타이틀로 내세운 적은 없었다고 한다. 즉, 1~4집도 당시 대중이 선호하는 노래를 불러 사랑을 받았고, '양파 노래'라는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지 '이은진'만의 음악을 선보인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2002~2003년 경에는 '양파'를 버리고 정말 좋아하는 음악들로 앨범을 채워볼까 생각했지만, 소속사 문제도 있고 일단은 하고 싶은 음악을 위해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다고 한다. 또 어렸을 때부터 실패에 민감해서 다음 앨범도 타이틀곡은 대중성 있는 노래를 내세우고, 실험적인 음악은 수록곡으로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참조.
양파의 이런 생각은 후에 발매된 앨범에 반영된 듯하다. 미니 1집 'Elegy Nouveau'를 보면 수록곡 5곡 중 2곡을 작곡하고 3곡을 작사할 정도로 앨범에 많이 참여했음에도 다른 사람이 작사, 작곡한 대중적인 곡을 타이틀로 삼았다. 물론 타이틀곡 선정에 본인의 뜻이 안 들어갔을 수도 있다. 당시 기획사가 이효리한테 감을 선물로 받았다는 그곳이라서.
어쨌든 음악적으로는 다소 비판을 받았지만, 뜨거운 화제성에 빵빵한 대중성이 더해져 '사랑..그게 뭔데'는 음원 차트를 올킬하고 큰 인기를 모으면서 1집 이후 10년 만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5집은 2007년 여가수 앨범 중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SBS <인기가요>에서 트리플 크라운,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 8만 장이 넘게 팔린 걸로 추산되는데 이후 솔로 여가수 중 단일 앨범으로 8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가수는 전성기 시절 아이유 뿐.
'사랑.. 그게 뭔데'의 활동이 끝나고, 후속곡 '그대를 알고'와 'Marry Me'로 활동했다. '그대를 알고'도 SBS <인기가요>에서 3주 연속 Take7에 오르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 거야'를 표절한 거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에 대해 양파 측과 작곡가 김도훈은 표절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두 번째 후속곡인 'Marry Me'는 재즈풍의 음악인데 기존 양파 활동곡들과는 달라서 신선한 모습을 선보였다. 처음 선보인 자작곡임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5집 활동이 끝나고 2007년 11월 24일과 25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콘서트 <SHOW, SHOW, SHOW>를 열었다. 무대에서 원더걸스의 'Tell Me' 춤을 선보였다는 후기가 있다.
하지만 5집 활동이 끝나고 또 소속사에 문제가 생겼으며 여행 갔다 온 사이에 회사 주인이 바뀌었고, 공중분해된 뒤 상장 폐지되고...
그리고 2009년 4월에 다비치, 티아라의 소속사인 코어콘텐츠미디어로 옮기는데 또 기획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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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혼'의 유일한 무대 캡처 사진.
2009년 여름, 2년 만에 음원을 공개했다. MBC 드라마 <혼>의 OST인 '령혼'. 공포 드라마 배경음악답게 잔인한 가사와 음산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이 곡으로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했는데 얼굴을 다 감싸고 나와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성형수술을 해서 얼굴 다 가리고 나온 거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는데 양파 측은 노래의 콘셉트가 '공포'라서 그에 맞는 분장을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 회차에도 얼굴을 감싼 분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데 이를 둘러싸고 제작진과 의견 충돌이 생겼고, 결국 그녀는 방송을 포기했다.
2.3. 2011~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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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 3월 말, 2년 만에 미니앨범 'Elegy Nouveau'를 발매했다. 좌측 사진은 이 앨범의 자켓이고, 우측 2장은 수록 사진이다.
앨범 수록곡 중 2곡을 작곡하고, 3곡을 작사했다고 한다. 'Elegy Nouveau'의 수록곡 뿐 아니라 5집 'Marry Me', G.NA의 'Black & white', f(x)의 'All Night'의 가사를 보면 이쯤 되면 이런 재미있는(?) 가사들이 양파가 추구하는 스타일 아닌가 싶기도.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깔끔하고 거기에 유학파라 나름 음악 실력이 출중하긴 한데... 뭔가 조금 아쉽다. 유학 가기 전에는 터질 듯 안 터지는 완급조절이 매력적이었는데 유학 후에는 가창 자체는 매우 유연해졌지만 까놓고 말해 소몰이창법화. 이 때문에 뽕끼가 매우 강해졌다.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고 오히려 장점으로 생각하는 듯. 그래서 이 앨범은 심수봉과 이미자를 대놓고 노렸다.
오랜만에 나온 노래였지만 초반 반응과 활동할 때의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타이틀곡 '아파 아이야'는 음원 차트와 음악방송 차트에서 3위 안에 진입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KBS2 <해피투게더 3>에 출연해서 신비주의 때문에 활동하면서 예능 프로그램은 거의 출연하지 않았고, 자기 이름과 연관된 상품들 CF가 들어와도 다 거절했는데 돌이켜보니 아쉽다고 밝혔다.
한편 코어콘텐츠미디어의 이상한 언론플레이로 누리꾼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MBC <나는 가수다> 출연 논란. 양파 측에서 MBC <우리들의 일밤>의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고, 곧 신정수 PD가 양파에게 출연을 제의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얼마 뒤 양파 측에서 "사실은 출연을 제의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한 것이다. 당시 <나는 가수다> 출연진이 이소라, 박정현, 김범수 등 국내 최고의 보컬리스트들이었기 때문에 양파가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만 밝혔을 때도 반감을 사는 누리꾼들이 있었는데, 제의받은 것이 거짓말로 들통나자 질타를 받게 되었다.
방송이 일시 중단되었던 <나는 가수다>가 4월 셋째 주 쯤에 녹화를 재개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나왔고, 김건모와 정엽의 빈자리를 채울 가수를 섭외해야 하기 때문에 양파가 출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있었으나... 결국 <나는 가수다>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2012년 5월, 1년 만에 다시 미니앨범 'Together'로 돌아왔다. 타이틀곡은 '알아요'. 수록곡인 '사랑은 다 그런 거래요'를 4월에 먼저 공개했는데 이요원이 뮤비에 등장하고 다비치 이해리가 피처링하는 등 화젯거리가 충만하여 수록곡 치고 음원 순위는 괜찮았다. (멜론 차트 연간 97위를 기록) 앨범 수록곡 대부분에 코어콘텐츠미디어 소속 가수 및 연습생들이 피처링 형식으로 참여해서 '끼워 팔기', '신인 홍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앨범 자켓부터 양파가 아닌 같은 소속사 연예인들이 나와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양파 앨범인지 코어콘텐츠미디어 단체 앨범인지... 수록곡 'Wonderful Girl'의 가사를 썼는데 이 노래 역시 양파 스타일 가사가 돋보인다.
그 후 앨범 활동은 하지 않았고, 이따금 OST 작업에 참여했다. 대표곡은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OST '사랑... 어떡하나요'.
2014년 3월에는 '드래곤뮤직'이라는 새로운 소속사에서 디지털 싱글 'L.O.V.E'를 선보였으며 본인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2.4. 2015년~
2.4.1. 나는 가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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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앨범 이후 근 3년 만에 방송에 출연했다. MBC <나는 가수다 3>의 경연 가수로 돌아온 것. 비주얼 가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예뻐졌다. 문채원과 걸스데이 소진이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공백 기간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렸을 때 소속사 문제를 여러 번 겪었는데 처세를 잘 못해서 많이 쉬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소속사 없이 작사 활동을 주로 하고 있었다고.
그리고 목소리에 한국적인 호소력이 담겨있는 말, 즉 '뽕끼'에 대해서는 옛날엔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것도 자신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서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미니앨범 Elegy Nouveau'에서 트로트에 가까운 음악을 선보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첫 무대에서 데뷔곡 '애송이의 사랑'을 불러 아직 건재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최근 양파는 창법이 트로트에 어울릴 정도로 너무 과하고 느끼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경연에서는 최대한 과거의 창법을 살려 호평을 받았다.
<나는 가수다 3> 출연 이후 여러 기획사와 접촉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 기획사와 소송을 벌인 경험도 있고, 하고 싶은 음악과 기획사들이 원하는 음악 사이에 거리도 있어서 고민이 많다고 한다. 앨범 작업은 꾸준히 해와서 2015년 상반기 중에는 기획사 문제도 해결하고, 새 앨범을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네이버 프로필에 공식 사이트, 트위터 계정, 페이스북 계정, 인스타그램 계정 등이 업데이트되었다.
나가수 시즌 3에서는 딱 한 번 7위를 차지한 걸 제외하곤 전부 4위 안에 들었고 가왕전에도 진출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24일, <나는 가수다3> 가왕전에서 '''제2대 가왕'''의 자리에 올랐다. 듀엣 경연에서 국카스텐의 하현우와 함께 '붉은 노을'(이문세)을 불러 2위, 솔로 경연에서 '가시나무'(시인과 촌장)를 불러 2위를 기록했는데, 승자는 듀엣 순위와 솔로 순위의 합이 아니라 전체 득표수로 결정되는 것이기에 가왕이 될 수 있었다.[14]
사실 그녀 역시 7위 한 번 한 걸 제외하면 다양한 무대를 꾸미면서도 큰 기복 없이 2~4위를 유지해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듀엣 미션으로 김연우와의 듀엣 때 1위도 했다.
많은 히트곡을 보유해 더욱 대성할 수 있었음에도 소속사 문제가 발목을 잡은 가수긴 하나 본인이 음악에 대한 욕심이 많고, 실력도 있고, 대중들의 기대도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제대로 준비해서 컴백한다면 재기는 시간 문제일 듯 하다.
2.4.2.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6년 5월 1일과 5월 8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신비한 원더우먼이라는 닉네임으로 참가했다. 1라운드에서 정의의 세일러문과 함께 자우림의 "하하하 쏭"을 부르면서 시작부터 유영석에게 가왕 도전자 감이라는 칭찬을 들었고 압승했다.
2라운드에서는 놀랍게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불렀는데 이게 또 엄청난 수준의 고퀄리티 무대여서 모든 판정단들이 그녀의 노래에 매우 신나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이버TV 영상에는 '이 노래를 3라운드에 불렀어야 했다'고 할 정도로 이 무대에 상당한 호응을 보이면서 결승전에 올라갔다. '바람이 분다'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완전히 드러낸 반면 '강남스타일'에서는 자세히 듣지 않으면 양파인지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목소리 변조는 물론이고 편곡마저도 원곡에 전혀 꿀리지 않을 수준으로 만들어놨으니. 링크.
결승전에서는 발라드곡으로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를 부르면서 자신의 실력을 여과 없이 보여줬고 이 날 꾸준히 좋은 무대를 보인 슬램덩크를 7표 차로 이기고 우승했다.
특히 마지막까지 판정단들로부터 자신의 정체를 숨긴 데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도 잘 부른다는 걸 입증했으니 성과는 있었고 이 날 가왕 무대가 역대급이었던지라 대진운만 따랐으면 그녀가 가왕이 됐을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였으니 그녀의 활약이 어땠는지는 설명이 필요없으며 연예인 판정들도 무대들을 보고 호평을 내렸다.[15]
더군다나 그 역대급 무대를 상대로 평가단 3분의 1(33명)에게 표를 받았으므로 다른 도전자들에 비해 꽤나 선방한 거다. 지난 경연 때 가왕과 첫 대결한 상대인 각진 인생 네모의 꿈은 열창했음에도 상대가 Lazenca, Save Us로 역대급 무대를 보여줘서 8표 밖에 받지 못했으며 이전 장기 집권 가왕도 22표 밖에 받지 못했다. 아울러 가왕이 이긴 우승자 가운데서 3번째로 많은 표를 받았으므로 그녀가 아니었다면 역시 완패했을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스포일러]
그녀의 참가 계기는 김현철과 조장혁이 그랬듯이 자신을 아직도 데뷔 적의 모습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다양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출연했다고 밝혔다. 또한 복면가왕에 참여한 뒤에는 남자 가수의 '김나박이'에 대응하는 단어로 '박소양거'[16] 라는 단어가 생겼으며 그 뒤 43차 경연에서 판정단으로 참여했다. [스포일러2]
2.4.3.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 굵은 글씨는 최종 우승.
2.4.4. 그 외
- 2017년 2월 15일 뮤지컬 보디가드 홍보를 위해 배우 이종혁과 함께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인터뷰했는데 예명인 양파가 희화되기 쉽다는 이유로 불만이 있다고 하자 이형근 앵커가 그러면 본명인 이은진으로 부르겠다고 했다. 영상
- 2017년 7월 9일에 방송되었던 판타스틱 듀오 시즌2 마마무와 같이 공연했다. 영상
- 2017년 JTBC드라마 맨투맨(드라마)]OST '오로라'를 발표했다.
- 2017년 12월 8일 작곡가 김도훈이 참여한 싱글 '끌림'을 발표했다.
2.5. 2018년~2020년
2.5.1. 양파의 음악정원
2018년 9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는 KBS 2라디오 개편 설명회가 개최됐다.
이날 설명회에는 DJ 조규찬, 양파, 임백천, 이세준 그리고 각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참석했다.
이날 양파는 “라디오 DJ를 데뷔한 이후부터 큰 꿈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껏 기회가 닿지 않아서 이제야 시작하게 됐다. 나를 믿고 맡겨 주셔서 감사드린다. 사실 요즘은 유튜브 세대라고 하는데, 그 특징은 시대 혹은 아날로그들이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하나의 색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10년 전만 해도 라디오 듣는 사람이 없지 않냐고 했다. 근데 이제는 아날로그가 하나의 취향이 되는 것 같다. 가장 졸리고 짜증나는 순간에, 숲속에서 새 소리를 들려드리는 것 같은 방송, 노래, 사연들을 전해드리면 좋겠다는 포부로 이 자리에 앉았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게 지각하지 않고 잘 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관련기사
2018년 10월 1일부터 KBS 제2라디오 '양파의 음악정원' (정오 ~ 오후 2시)의 DJ를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홈페이지,관련기사 2020년 8월 30일 종영했다.
2.5.2. 그 외
- 2019년 12월 14/15 양일간 'Yangpa 2019 Winter, 있다'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K아트홀에서 진행했다.
- 2020년 MBC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OST '마음의 기록', JTBC드라마 사생활(드라마)]OST '보통의 꿈'을 발표했다.
3. 라이벌
동갑내기 발라드 여가수인 이수영과 은근히 라이벌 기믹이 붙어있다. 둘이 한창 전성기를 달릴 때 '발라드의 여왕' 하면 꼭 이 두 사람이 언급되었기 때문. 그렇지만 실제로 맞붙은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007년에 잠깐 활동이 겹친 적이 있지만 양파는 5집 두 번째 후속곡인 'Marry Me'로 활동을 마무리짓는 중이었고, 이수영은 8집 '내려놓음'으로 막 컴백한 참이었다.
이수영은 양파가 3.5집 활동을 할 때 데뷔했고, 양파가 소속사와의 갈등 때문에 활동이 뜸할 때 단숨에 '발라드의 여왕'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양파가 대중을 겨냥한 5집으로 재기에 성공한 2007년, 이수영은 대중성을 내려놓은 8집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재미있는 건 양파의 재기를 성공시킨 회사가 바로 이수영을 발라드의 여왕으로 만든 팬텀엔터테인먼트이고, 나중에는 양파도 이수영도 팬텀엔터테인먼트에 발목을 잡혔다는 것. 두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맞붙은 적은 없지만, 노래 스타일과 가수로서의 행보가 비슷해서 묘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양파가 5집으로 컴백했을 때, 앨범이 대중지향적이었기 때문에 양파가 이수영을 따라가는 거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에 대해 양파는 "제가 없는 동안 그 친구가 이룬 게 많고 목소리 주파수대도 비슷해서 제가 그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죠.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아요. 하지만 창법이나 음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양파가 컴백했을 때만 해도 이수영이 대중적인 발라드의 정점에 서 있었던지라 사실 양파 뿐 아니라 어떤 여가수든 발라드곡을 들고 오면 이수영과 비교되곤 했고, 그녀의 뒤를 밟으려는 가수도 많았다. 가수 별은 2006년 '눈물샘'으로 활동할 때 이수영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곤 했고, 아이비는 아예 '제2의 이수영'이 되는 것을 목표로 발굴된 가수였다.
그런데 이수영보다는 백지영이 양파의 재기를 눈여겨본 듯하다. 백지영은 양파의 '그대를 알고'를 듣고, 작곡가 김도훈을 찾아가 그녀의 6집 타이틀곡 '사랑 하나면 돼'를 받았다고.
다만 셋 다 라이벌 의식 같은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며 오히려 2007년에 양파, 이수영, 백지영 셋이 KBS2 <뮤직뱅크>와 SBS 가요대전 무대에서 합동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1990년대의 여고생 가수 이소은과도 라이벌로 회자되기도 한다. 후술하지만 엄친 이미지도 비슷하고, 미국 물을 먹은 것도 비슷하고. 다만 이소은은 이승환의 소속사인 드림팩토리 아래에서 윤상과 이승환 등 쟁쟁한 뮤지션들의 프로듀싱을 받다가 자신의 의지로 변호사의 길을 걷기 위해 유학, 연예계를 떠난 것에 반해, 양파는 소속사 문제로 온갖 고초를 겪다가 도망치다시피 미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에서 그 행보는 무척 대비된다. 성격상으로도 양파는 감수성이 높은 축에 속하고, 이소은은 무척 이지적인 편.
4. 여담
- 소문난 엄친딸로 알려졌다.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을 뿐더러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수 생활은 계속하지만 대학생활도 멋지게 해내고 싶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도 있을 정도였다. 특히 가수가 되기 전에 장래희망이 외교관이었던지라 영어 실력이 상당했다. 실제로 자신의 곡을 영어로 번안하여 부른 버전도 있다. 정규 1집 앨범에 있는 'Heart Beat Away'가 '애송이의 사랑'의 영어판이다.
- 당시 엄친딸로 소문나 방송사에서 어머니 인터뷰를 했었는데 어머니의 교육관이 독특해서 리포터가 놀랐다고 한다. 특별히 과외를 시키거나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고, 모든 학습을 자율성에 두었으며, 양파가 등교시간이 늦도록 잠을 자도 깨우질 않았다고 한다. 양파가 어떤 날은 학교를 가기 싫다고 하면 왜 그러냐고 한 번도 반문하지 않고 그냥 허용해주기까지 했다고. 당시 양파가 엄친딸로 화제가 됐음에도 이런 어머니의 독특한 교육관에 놀란 학부모들이 많았다는 후문.
- 그렇게 공부와 연예계 생활을 병행하며 순탄하게 명문대로 진학하는가 싶었는데 1998학년도 수능 시험 당시 1교시 언어영역을 마치고 난 뒤 급성 위염으로 갑자기 쓰러져 시험을 포기하게 됐고[20][21] , 이듬해 재수를 했지만 이미 음악활동에 집중하던 터라 결국 국내 대학 진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22] 나중에 밝힌 바로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수능 성적이 모두 공개되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1집이 성공하면서 자신의 성적에 관심이 쏠리자 모의고사 답안지에 성명을 '이은진'이 아닌 '이은집'이라고 표기한 적도 있다고. 국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할 계획을 밝히며 1999학년도 수능 후에 잠시 미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버클리 음악대학에 진학했다. 미국에 가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며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속사와 갈등이 있었고 스타가 되면서 많은 부담과 피로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길에 올랐다고 한다. 본인의 어릴 적 꿈이 외교관이어서 외국에서 생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 중경고등학교 1학년 때 이효리와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이미지가 정반대였던 탓인지 이효리가 양파를 따돌렸다는 말이 나왔는데, 양파가 2007년 5집으로 컴백하면서 당시 서울로 전학 온 자신을 이효리가 잘 대해주었다고 말하며 소문을 일축했다.
- 유학 시절 중인 2000년 8월 24일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진행한 '한국인의 날' 행사 초청으로 다저 스타디움에서 미국 국가인 'The Star-Sprangle Banner'를 불렀다. 마침 그날 박찬호의 대 몬트리올 엑스포스 전 선발 등판 경기였는데 박찬호는 이날 본인의 커리어 첫 홈런과 7이닝 무실점 경기로 승리를 거뒀다. 시간은 흘러 2015년 6월 16일에 텍사스 레인저스의 '한국인의 날'에 초청, 또 한번 미국 국가를 불렀다. 이날 경기 후 추신수와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 등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 윤종신이 작곡한 성시경의 '거리에서'는 원래 2002년 무렵 양파한테 먼저 갔던 곡이다. 그런데 양파는 거절했고[23] , 이를 나중에 성시경이 불러 대박을 터뜨렸다. 이 일화에 대한 자세한 건 거리에서, The Ballads 항목 참조. 그리고 훗날 양파가 <나는 가수다 3>에서 "이 노래가 원래 나한테 먼저 왔는데 진가를 몰라보고 거절했다"며 이 곡을 선곡해 불렀는데, 반응은 "노래가 주인 잘 찾아갔네(...)" 양파의 유일한 7위 무대가 바로 이 무대였다.
- 쇼핑하러 갔다가 사람들이 알아볼까봐 괜히 중국인인 척 말도 안 되는 중국어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 홍콩 남자와 연애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 응답하라 1997에서도 양파의 이름이 언급됐는데, 작중 윤윤제는 "한낱 뜨고 싶어도 가수 이름이 양파가 뭐고, 양파가! 양파가 가수를 하면 자두도 가수하고, 또 뭐 거미도 가수하면 되겠네? 이런 아가 뜨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장을! 홀딱 벗고 부산여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돈다! 내가!"라고 언급했는데... 공교롭게도 위에서 언급된 이름의 가수들은 모두 유명해졌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공부의 신 강성태가 양파의 엄청난 팬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썰을 푼 적이 있다. 3.5집 타이틀곡 '다 알아요' 라는 노래를 공부할 때 쉬는 시간마다 들었다는데[24] 정작 노래는 못 불러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고등학교 시절 때 양파에게 계속 미니 홈페이지 쪽지 보냈는데 씹혔다고... 참고로 공부의 제왕이라는 옛날프로그램에서도 부른 적이 있는데 역시 못 부른다. 이로 인해 90년대 가수인 양파에 대해 알게된 학생들도 꽤 있는듯.
- 방송인 전현무 역시도 그녀의 상당한 광팬이었음을 자처했다.
- 테라모토 유키카의 애창곡 중 하나가 '애송이의 사랑'이라고 한다.
- 노래 제목 가운데 유독 '알다'라는 동사가 많이 들어간다. '그대를 알고', '다 알아요', '알고 싶어요' 등등.
5. 디스코그래피
✔ 정규앨범
- 1집 'YangPa' (1997) - 타이틀곡: 애송이의 사랑, 후속곡: 천사의 시(Forever With You)
- 2집 'Neverland' (1998) - 타이틀곡: 알고 싶어요!
- 3집 'Addio' (1999) - 타이틀곡: Addio
- 3.5집 'A Letter from Berkley' (1999) - 타이틀곡: 다 알아요
- 4집 'Perfume' (2001) - 타이틀곡: Special Night, 후속곡: 고백
- 5집 'The Windows of My Soul' (2007) - 타이틀곡: 사랑..그게 뭔데, 후속곡: 그대를 알고
- 'Elegy Nouveau' (2011) - 타이틀곡: 아파 아이야
- 'Together' (2012) - 타이틀곡: 알아요
- '비밀' (2008) - 비밀은 어디에 있나요 (With 미호)
- 'Hitman Project #5 : A Tribute To The Hitman, David Foster' (2013) - Glory Of Love
- '2013 월간 윤종신 Repair 6월호' (2013) - 나에게 온다
- 'L.O.V.E' (2014) - L.O.V.E
- 'Hail To The Brightness (I Am Melody 3) (아이 엠 멜로디 3)' (2015) - Hail To The Brightness [ccm]
- '끌림' (2017) - 끌림
- 'The Legacy 03' (2018) - 6월부터 1월까지 (With 015B)
- KBS2 드라마 '명성황후' OST (2001) - If I Leave(Clean & White Ver.)
맑고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양파의 음색이 이 곡에서 잘 드러난다.]
- 영화 '달콤한 인생' OST (2005) - 달콤한 인생 3
- MBC 드라마 '혼(드라마)' OST (2009) - 령혼
- 뮤지컬 '천국의 눈물' OST (2010) - Can You Hear Me?
당시 이 뮤지컬의 제작을 맡았던 소속사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하게 아닐까하고 다들 추측한다.]
- MBC 드라마 '계백' OST (2011) - 알고 있나요
-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OST (2011) - 기억할게요
- SBS 드라마 '신사의 품격' OST (2012) - 사랑..어떡하나요
- KBS2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OST (2014) - 태양은 가득히
- JTBC 드라마 '맨투맨' OST (2017) - 오로라
-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OST (2020) - 마음의 기록
- JTBC 드라마 '사생활(드라마)' OST (2020) - 보통의 꿈
6. 뮤지컬 활동
7. 수상 내역
✔ 음악방송 1위
✔ 시상식
8. 관련 문서
[1] 온누리교회에 출석 중이며 나얼, 이정 등과 함께 CCM 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다. #[2] RBW에서 나온 후 소속사 없이 활동중이다.[3] 이 곡의 원조 가수이자 원작자는 Dolly Parton이다.[4] 여담으로 1997년 1~2월은 쿨의 전성기였다.[5] 여성 솔로 가수의 마지막 골든컵 수상곡이며 후속곡으로 선보인 '천사의 시'도 가요톱텐에서 최고 4위까지 랭크되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6] 60만 장이라는 말도 있으며 당시 음반시장 규모를 생각해도 60만 장이 더 실제에 가깝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당시는 정확한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기사로만 판매량을 알 수 있었는데, 대부분 실제보다 훨씬 뻥튀기해서 발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어쨌든 어느쪽이든 연간 10위권에 들어가는 매우 높은 판매량이다.[7] 박정현의 정규 1집 'Piece(음반)'가 50만장을 넘었다.[8] 하지만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음반 시장이 체감이 될 정도로 급격히 줄어들던 시기였고, 서서히 음원 위주로 바뀌던 시기였다. 그 이전이면 모를까 이후 가수들까지 묶어서 평가절하 하는 건 옳지 않다.[9] 이게 글이어서 맘에 와닿지 않는 거지, 실제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상황이다. 당신이 12년 동안 노력해서 맺은 결실이 불합격이란 결과로 갑자기 모두 증발해 버린다 생각해 보라!![10] 또한 당시 이때는 IMF 여파로 음악프로그램들이 침체기였던 부분도 있다.[11] 'Addio'는 이탈리아어로 '안녕'이라는 뜻으로 헤어질 때 쓰는 말이다. 참고로 이 노래 가사가 알고 보면 시궁창인데 사랑했던 사람이 자살했음을 암시하는 가사 내용이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이승기가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다.[12] 당시 김동률 역시 버클리 음악대학에 유학 중이었다.[13] '사랑 안 해'의 작곡가와 '사랑..그게 뭔데'의 작곡가가 똑같이 박근태인 데다 양파 목소리는 예전보다 더 '뽕끼'가 들어가 이수영과 비슷해졌다.[14] 이 날 듀엣 경연 1위는 김경호, 솔로 경연 1위는 박정현이다.[15] 이 때 김구라는 그 정체를 눈치챘고 김현철에게 물어봤더니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전문 용어까지 쓰며 부정했지만 현실은...[스포일러] 참고로 당시 가왕과 나는 가수다 3 가왕전에서 듀엣곡을 부른 적이 있었다. 또한 그 가왕은 그녀가 나가수 4회 때 커버한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2라운드에서 불렀다.[16] 김나박이와 비슷한 나이 대의 여가수들이다.[스포일러2] 이 중에서 두 사람은 장기가왕이다.[17] 샘 김과 함께[18] 김연지와 공동우승[19] 오연준과 함께[20] 근데 그 언어영역 성적이 120점 만점이었다는 루머가 있으나, 중도퇴실자의 경우는 결시자로 분류되어 채점을 아예 하지 않으므로 헛소문이다.[21] 당시 심정은 매우 분했다고[22] 당시 수능 시험장의 최대 화제거리였으며 수능의 난이도도 어렵기로 소문이 났다는 루머가 있으나 양파가 본 수능은 역대급 불수능이었던 96학년, 97학년 수능이 아니라 당시로선 물수능이었던 98학년 수능이었다. 97학년 수능에 비해 상위권의 기준인 3%의 점수가 50점이 넘게 상승했다.[23] 항목 참조하면 알겠지만 다른 가수들도 너무 어렵다고 거절했었다고 한다.[24] 본인 말로는 1,000번도 넘게 들었고 이 노래가 없었으면 지금 자신은 공부의 신이 될 수 없을 거라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