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특이사항

 


1. 친목
2. 별명
3. 두산은 내 운명
5. 욕먹는 레전드?
5.1. 부산 레전드 발언
6. 포지션


1. 친목


기자들과 유난히도 친한관계를 유지하기에, 기자단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상, 대놓고 말하면 골든글러브에서 객관적인 지표의 차이를 뒤엎고 상당한 표차로 수상을 하는 경우가 유독 잦다. 2001년 '''포수로서 20-20을 해낸 박경완을 제치고 수상'''을 한다든지, 2004년 홈런왕[1][2]인 박경완을 제치고 수상을 한다든지, 2011년 골든글러브에서 주요 지표[3]에서 앞선 김동주를 162표 차이로 누르고 수상을 한 예가 좋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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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뱅과도 잘 논다. 문학에서 열린 2005년 올스타전이다.[4] 공교롭게도 11년 후 두 선수는 같은 달에 은퇴를 선언했다.

2. 별명


보통 팬들에겐 포지션을 뒤에 붙여 '''홍포'''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오버를 많이 떤다고 하여 오버맨, 홍오바. 그리고 돌출된 으로 인해 홍턱, 턱성흔 등의 별명도 보유하고 있다. 두 특징을 모두 합친 '오버 더 턱'이란 별명도 있다. 지명타자로 전업한 뒤에는 타격력으로 인해 '홍'''대'''포'로 잠깐 불리우기도 했지만 곧 뻥카가 되는 바람에....
턱돌이#만 합류하면 턱 삼신기가 모여서 롯데가 우승할 것이라는 개그가 떠돌았다. 하지만 일본산 턱돌이 카도쿠라 켄이 등장해서 다시 안개속으로 빠져 들기도 했다.
아무튼 2008년, 2009년, 2010년 연속 타격 2위를 하는 바람에 타격왕 부문 콩라인 가입이 확정됐다. 심지어 2010년에는 타율-장타율-타점으로 트리플 콩을 달성했다.
영웅 스윙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히어로즈의 턱돌이와는 관련 없고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이 성균관대 강연에서 홍성흔은 영웅심리가 있다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롯데팬들은 반발하였으나 결국 현실임을 깨닫고는 오버할 때나 어이없는 스윙, 과도한 주루플레이 등을 할 때 놀리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자세한 내용은 영웅 스윙 문서 참조.
2010년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히든카드가 되겠다고 했으며, 5차전 이전에 "뻥카인지 히든카드인지 보여주겠다."란 발언을 했으나 5차전에서조차 부진하여 병살타도 1개 기록하면서 '홍뻥카'라는 굴욕스런 별칭도 얻었다. 이후 나온 기사를 보면 본인 스스로 개뻥카라며 자조하는 듯했다.#해당기사
2011년 시즌 개막 전에 부산에서 운전 중 유턴을 하다, 오토바이와의 사고가 있었다. 오토바이측의 과실이라고는 하지만 이로 홍턴이라는 불명예 별명이 생겨버렸고, 2012년 시즌 종료 후 두산으로 '유턴'했다.
외야수로 출장하고 난 후 불암콩콩코믹스에서 롯데 외야진을 발레리노로 묘사한 장면이 나왔는데 거기서 홍성흔의 명칭은 '''성흔스키'''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2012년 올스타전 투표와 관련해서 '국민타자' 이승엽에 빗대 자신을 '시민타자'라고 비유하면서 '''(부산)시민타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 팬들은 까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여담으로 2013년에 이승엽이 한국시리즈에서도 부진하면서 '읍민타자', '리민타자'라고 까이며 홍성흔보다 격하당했다.
두산 베어스 복귀 이후로는 언제나 지명타자 자리를 철밥통처럼 차지하고 있다 하여 '''홍무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실 2014시즌 이후로는 홍무원이라는 말이 엠팍에서도 공공연히 보일 정도로 많이 쓰인다. 특히 김동주가 없는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안 그래도 안좋은 별명인데 여기에 '''풀'''스윙까지 합쳐 '''풀무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게다가 이 홍무원과 풀무원은 기사까지 나오면서 공식별명으로 확인사살 당했다. #
2014년 5월 그가 4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맹타를 휘두르자 돡갤 등지에서는 홍제폐하, 고위 홍무원, 주장님, 홍통령, 그가 야구 그 자체라는 뜻으로 더 베이스볼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야말로 극심한 부진을 겪은 2015년에는 홍씨발로 불렸다. 꼴갤에서는 두산으로 다시 이적한 직후에는 그가 해운대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점 등을 가지고 홍식당 등의 별명으로 부르곤 했으나, 이후엔 과거 롯데에서 보여준 활약, FA 보상 선수로 데려온 김승회의 활약, 평소에 롯데 전에서 부진했던 점이나, 2015년 9월 이종운호를 격침시키는 만루홈런 포를 쏘아 올린 점 등 그의 여러가지 활약(?) 덕분에 비밀갈매기, 속칭 '''비갈'''이라고 불렸다.
은퇴 이후에는 팬들 사이에서 흐니흐니라고 많이 불리고 있다. 특히 롯데 팬들 사이에서 흐니흐니 혹은 ㅎㄴㅎㄴ 는 치트키 수준이다. 또한 후술한 부산 레전드 발언 이후로 '''부전드'''도 추가됐다.

3. 두산은 내 운명


부진에 부진을 거듭한 2015년을 시작으로 몇몇 두산팬들에게 여론이 좋지 못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두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 여러 의미로 베어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두산(+OB) 베어스 31년 역사상 최초의 외부 FA 영입 선수다. 다만 원래 두산에서 10년간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인지라 친정 팀 복귀의 느낌이 강하다. 완전한 외부 FA 영입의 예로는 장원준이 있다.
  • 2016년 기준으로 두산 베어스의 2001년 우승 멤버 중 유일하게 2015년 우승을 맛 본 인물이자 유일한 현역 선수였다.[5]
  • 두산 베어스의 우승도 2차례(2001, 2015)[6]나 경험했다. 하지만 홍성흔하면 롯데 자이언츠를 떠올릴 경우도 많다. 4년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매년 커리어하이 수준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고 열광적인 부산팬들과도 잘 맞았다. 또 홍성흔이 뛰던 2009~2012 시즌은 롯데 자이언츠 창단 이래 최전성기여서 더욱 기억에 많이 남는다. 홍성흔이 2013년 두산 컴백 이후 롯데시절과 같은 맹활약을 하지 못한 점도 한몫하는 듯하다.
  • 그래도 은퇴식도 두산에서 성대하게 치루어 줬고, 2018년 신인선수 입단식 및 부모 초청행사에서 멘토로 방문했다. 각종 베어스데이 때 나누어주는 기념 굿즈도 홍성흔의 캐리커처 굿즈도 많이 나누어 주는 편이다.

4. 병전드


워낙 공격적인 스윙을 하는데다 주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병살타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마침 등번호도 '''2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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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레전드 3인방'''
그런데 위 3명 모두 병살타 숫자가 상당하다.
2010시즌까지 통산병살타가 154개로 두산의 두목곰 김동주와 함께 유력한 1위 후보였다. 당시 1위는 172개의 안경현(은퇴), 2위 양준혁(은퇴) 166개, 3위 마해영(은퇴) 157개, 김동주(은퇴) 157개, 홍성흔(은퇴) 5위 154개[7]
통산 병살 순위 5위중 3명이 두산 프랜차이즈 출신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2011년 9월 3일 LG전에서 역사에 남을 3연속 병살타를 달성하며 '''통산 1위'''에 등극했다.[8]
9월 8일 종전 김기태 KIA 감독이 가지고 있던 5경기 연속 병살타기록[9]을 넘어서 8월 30일~9월 8일 '''7경기 연속 1개 이상 병살타 기록'''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2012시즌이 종료후 통산병살타 1위는 홍성흔(186개), 2위는 김동주(은퇴, 182개), 3위는 안경현(은퇴, 172개)...[10] 거기에 포스트시즌만으로 계산해도 2011 시즌 플레이오프에서까지 적립한 병살타를 포함해 10개로 포스트시즌 통산 1위다. [11] 물론 김동주 역시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병살을 치고 계신 관계로 두산 프렌차이즈 출신 두 선수의 병살왕 경쟁이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줄 알았지만 김동주가 부진으로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동안 홍성흔이 전인미답의 200병살을 달성하고 병살왕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2013시즌 종료 기준으로 통산 병살타 '''201'''개로 병살타 부문 단독 1위에 등극하셨다. 그리고 2014시즌 종료 기준 214개 병살타 기록으로 아웃카운트로 환산하면 428아웃, 15.8게임을 삭제시켰다. 김동주의 186병살타와 합하면 아웃카운트는 딱 800개, 둘이 합쳐서 29.6게임을 삭제시켰다.
2014 시즌 종료 후 김동주가 은퇴하면서 정성훈과 병살왕 경쟁을 이어갔다.
2016년 은퇴하면서 통산 230병살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혼자서 460아웃을 만들었는데 산술적으로 거의 17경기를 혼자서 삭제시켰다.
한일 통산 기록으로 확장한다면 백인천 전 감독이 일본에서 225병살타, 한국에서 11병살타를 기록해서 도합 236병살타로 홍성흔보다 많은 병살을 기록하긴 했으나, 백인천의 프로 경력은 23년이나 되기 때문에 홍성흔과의 단순비교는 어렵다.
물론 발이 느리기도 하지만 뚱보들보다는 빠른 편으로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한 시즌도 있고 통산 85도루로 도루도 의외로 많이 한 편. 근데 왜 이렇게 병살타가 많은가 하면 홍성흔의 타격 스타일과 크게 관련이 있는데, 전형적인 다운스윙으로 라이너를 주력으로 하는 중장거리형이기 때문. 타구속도가 빠른 라이너를 주로 생산하다 보니 라이너 항목에도 적혀 있듯 잡기는 힘들지만 일단 손아귀에 들어가면 병살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배드볼히팅을 즐기다 보니 나쁜 공에도 방망이가 나가서 내야땅볼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앞뒤타순인데, 홍성흔은 두산 시절에는 김동주와 안경현, 롯데에서는 이대호강민호, 가르시아라는 똥차로 명성이 쟁쟁한 타자들을 앞뒤에 두고 쳤다. 가뜩이나 본인도 빠른 편은 아니니 병살타가 많을 수밖에.
2020년 기준으로 현역 중 이 기록을 갱신할만한 타자는 이대호가 201개로 유일하다. 국내에 복귀한 17시즌부터 20개 내외의 병살타를 기록하며 22시즌에 경신이 유력. 한때는 김태균이 228개로 턱밑까지 따라왔으나 2020년 10월 21일 은퇴를 선언하며 2개 차이로 기록을 마감했다.[12]

5. 욕먹는 레전드?


비록 롯데에서 커리어하이를 찍었지만, 홍성흔은 두산에서 10년이상 선수생활을 하며 두 개의 우승반지를 낀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러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홍성흔에 대한 두산 팬들의 여론은 부정적인데, 2009년 FA로 롯데로 이적하면서 한 언론플레이와 이후 두산과 롯데를 비교하는 인터뷰 등으로 많은 팬들이 돌아섰다. 하지만 2013년 두산으로 돌아와선 주장을 맡았고, 2014년에도 장타력을 과시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혀있는 상태일뿐더러, 김동주에 의해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활약 자체가 부족했다.
홍성흔에 대한 비난 여론이 눈에 띄게 커진 이유는, 2015년 이후 성적이 폭망하면서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삼진과 병살을 적립하자 홍무원, 비밀갈매기, 홍 발 등으로 불리우며 본격적으로 욕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사람되라며 오재원을 죽도록 때렸다는 인터뷰[13][14]가 뒤늦게 발굴되면서, 야구도 못하는 주제에 팀 분위기만 해치는 게 아니냐 하고 경기 외적인 쪽으로도 욕할 거리를 찾는 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빈궁게이트, 이종욱 빵 사건[15], JTBC 우리집 출연[16]과 같은 과거의 오점들이 다시 재조명되고, 오재원에게 하기 싫다는 주장을 억지로 떠넘기고 기자들에게는 본인이 하고 싶어해서 넘겨줬다고 인터뷰한 사실이 드러나고, 유희관의 야구점퍼를 기자에게 마음대로 가져다가 선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등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면서 인성 논란과 함께 '홍성흔이 팀 분위기를 좀먹고 있다'는 주장이 인터넷 상에서 힘을 얻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2015년 이후 여러 팬덤에서 홍성흔의 은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2016년 시즌 초반 홍성흔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하자 ‘갓스트링 찬양’ , '김현수의 공백은 홍성흔의 공백으로 메꾼다'등의 드립이 흥하기도 했다. 이후 홍성흔의 콜업 뒤 거짓말처럼 홍성흔이 선발출장한 경기에서 전패하자[17] 홍성흔에 대한 시선은 더 냉랭해졌고, 심지어 5월 1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주루 중 부상을 당하자 잘됐다고 비웃는 무개념 댓글들이 여럿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던 8월...

5.1. 부산 레전드 발언


2016년 8월 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두산 유튜브 채널 베어스포티비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던 도중, 홍성흔의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내가 서울에서는 욕먹지 여기에서는 전설이잖아"''' 관련영상

이른바 '''부전드''' 드립. 가뜩이나 15년부터 성적을 미친듯이 말아먹고 있는 데다 정치질 논란, 인성 논란이 겹치며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던 홍성흔인데, 이 발언으로 그를 쉴드치면서 지지하던 소수의 팬들까지 전부 등을 돌렸다. 이 사건 이후로 홍성흔과 관련된 기사는 그렇게 사랑하는 부산에 가셔서 뛰시지 왜 여기 있으면서 민폐나 끼치냐는 비난 댓글들이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송일수노경은에 대한 여론 이후로, 대야베∙곰대돡갤엠팍∙3대 SNS 등에서 상주하던 '''모든 두산 팬들의 대통합'''을 이루어냈다.[18]
참고로 이 사건 이후로 두산 팬이 조금이라도 모인 커뮤니티에서 파이어가 났을 때 이 정도로 팬덤 전원의 생각이 일치한 사례는 2018 시즌 후 FA가 되는 주전 포수 양의지를 반드시 잡아서 종신두산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2019년 신인 선수인 김대한의 포지션에 대한 의견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된다.
사실 이 발언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송출되기 직전 한 두산 베어스 갤러리 유저가 홍성흔이 저런 말을 했다고 목격담을 올렸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랬겠냐, 아무리 홍성흔이 싫어도 이런 주작질은 너무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룰 정도로 팬들은 이 발언을 믿기 힘들어했다. 당장 목격담이 처음 올라왔던 두산 베어스 갤러리 같은 경우는 위에 열거한 두산 팬들이 모인 집단 중에서도 홍성흔에 대해 제일 적대적인 여론이 주를 이루던 곳이다.[19] 그럼에도 초기 반응은 "주작 의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목격담이 올라온 직후 라이브 스트리밍에 그 장면이 바로 잡혀버리면서 목격담은 사실로 드러났고, 순식간에 모든 두산 팬들의 뚜껑을 열어버렸다.
그동안 홍성흔이 여러 부분에서 논란을 자초하며 까이긴 했으나 과하게 까인 부분도 있었고,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홍성흔을 까던 팬들 중 상당수도 이성을 다잡고 생각했을 땐 그래도 김동주처럼 야구 외적인 부분이 심각하게 문제된 적도 없었고, 그간 쌓아온 통산 성적 역시 훌륭했으니 구단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잡음이 있었다지만 '''팀 최초의 외부 FA[20]로 영입하면서까지 다시 잡아온 베어스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했고, 그간의 공로나 팀에서 세운 업적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선수 본인의 커리어하이 시즌은 분명 롯데 시절이지만, '''두산과 선수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고 두 번의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렸다. 두산 시절의 통산기록만 봐도 훌륭한 성적을 쌓은 것 역시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홈 팬들은 본인을 가소롭게 여기고 다른 팀에서나 자기를 알아준다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고 한심할 뿐이다. 그럴거면 자길 아끼고 사랑해 주는 롯데에서 은퇴하든지, 이 정도의 입지를 가진 선수가 팀 1군 엔트리의 발목을 잡으면서 팀의 결속력까지 흐리는 망발까지 시전하고 있으니 어떤 팬들이 홍성흔을 두둔해 주겠나. 훨씬 어린 선수들의 팀 충성도와 깨알같은 팬서비스를 생각해 보면 이건 나잇값을 해도 해도 너무 못하는 거다.[21]
더욱이 이 발언은 지난 몇년 동안 홍성흔 쉴드의 핵심이 되었던 리더∙분위기메이커 역할 설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사실 같은 해 4월에 오재원이 14구 승부 끝에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돈 뒤 덕아웃에 들어왔을 때 "야 칠 거면 빨리 쳐!!"라 하면서 짜증투로 말을 하고, 7월에도 김재환이 수비하다가 실수를 한 뒤 그 이닝이 끝나고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수비도 안 하는 홍성흔이 "내가 나갈까?"라면서 떠드는 장면이 나와서 팀 케미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기는 했다.[22] 같은 상황에서 김재호는 이닝이 끝나고 들어올 때 김재환에게 수비 관련 조언을 해 주는 모습이 베어스포티비 스케치에 포착되어 비교되면서 더 까였다. 사실 이 부분은 말투상 농담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그간 프런트 및 귀가 밝은 선수들이 홍성흔에 대한 팬들의 여론을 미리 인지하고 "홍성흔이 덕아웃 분위기를 띄우고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는 일관적인 주장을 펴 왔고, 그러다보니 홍성흔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팬들도 "선수들이 선배를 믿고 따른다는데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태도로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가 후배들 앞에서 리더이자 분위기 메이커라는 대선배가 모범을 보이지는 못 할 망정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잡혔는데, 어떤 팬이 선수단에서 홍성흔을 좋아할 거라고 마냥 믿어주겠는가? 참고로 2016시즌 두산 선수단에서 투수진에는 정재훈, 김성배, 이현승 등 고참급 선수들이 그래도 포진해 있는 편이지만, 야수진의 경우에는 1군급 선수들 중 최고참이 홍성흔보다 8살이나 젊은 1985년생 오재원일 정도로 리그에서 손에 꼽히게 젊다. 참고로 투수진 중 최고참이던 정재훈도 홍성흔보다는 4살이 적다. 이 젊은 선수단에서 압도적으로 연차가 쌓인 선수가 저러고 다니는데, 홍성흔 본인은 스스로가 분위기를 띄워 준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선수단에서는 볼썽 사납게 설치고 다니는 불편한 선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심증을 상당 부분 확인시켜준 발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오른팔에 타구를 맞고 뼈가 부러지자 왼손으로 송구를 하려고 했던 투수조 최고참 정재훈과 그 태도가 비교되면서 안 그래도 까여 마땅한 일을 두세 배로 더 까였다. 사실 정재훈의 골절상에 대한 선수단의 반응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홍성흔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을 때는 별 움직임이 없던 선수단이 정재훈의 골절상 이후 일제히 그의 등번호인 41번을 분필로 모자에 쓰고 경기를 치르고 있다.[23] 결국 후배 선수들이 믿고 따르는 대선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정재훈이지 홍성흔이 아니란 소리다.
덕분에 원본 영상은 삭제되고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려가기 전 해당 부분만 편집한 유튜브 영상과 두산 페이스북 페이지의 베댓은 홍성흔 부전드 관련 드립으로 도배되고 있다.
이 발언 이후 홍성흔이 8월 11일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 거짓말처럼 팀이 5연승을 달리며 8월 2주차를 맞이하자, 그를 찾는 사람은 아예 없어졌다. 홍성흔이 없으면 두산이 1위가 된다고 하던 팬들의 반장난이 가미된 비웃음과 농담이 이제는 웃음기 싹 빠지면서 차갑고 날선 성토로 바뀌어 버렸다.
8월 17일에 후반기 들어 두산의 발목을 잡던 수요일 연패 행진을 무참히 깨버린데다가, 다음날인 8월 18일은 69승에서 아홉수마저 한번에 무너뜨리면서 두산은 7연승을 달리고 있다. 결국 홍성흔은 과학이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홍성흔 등록시 승률은 47.25%, 말소시 승률은 80%라고한다.
여튼 이 부전드 발언 때문에 팬들로부터 굉장한 질타를 받았고, 이는 본인으로서도 큰 흑역사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은퇴식 당일에도 기자회견 때 기자들이 먼저 물어본 게 아니었음에도 본인이 먼저 이 발언을 언급하며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말을 남겼고, 심지어 은퇴 결심 또한 떨어진 기량과 더불어 저런 사고를 쳤는데도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면 그나마 남은 두산 팬들의 성원마저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말한 사람이 홍성흔 본인이라서 그렇지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두산 팬들에게는 충분히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다른팀 팬, 특히 롯데팬들의 입장에서는 홍성흔의 부전드 언급은 크게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골든글러브를 많이 탄 시절도 롯데 시절이고 전성기 시즌 자체가 롯데 시절이다.
FA로 이적해서 롯데에서 뛴 4년 중 3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4년 모두 롯데를 가을야구로 이끈 주축이며 롯데를 떠나고 8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롯데팬들은 홍성흔을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이런 면에서 부산 레전드라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비록 떠날때 과정은 안좋았지만 그럼에도 롯데팬들이 홍성흔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건 4년이라는 시간동안 그가 보여준 뛰어난 성적과 파이팅 넘치는 모습, 이대호와 조성환, 가르시아, 강민호와의 시너지효과임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24]
냉정하게 홍성흔 본인은 기껏 복귀해서 욕만 먹을 바에는 그래도 꾸준히 4번을 칠수 있는 롯데에 잔류해서 커리어를 잘 마무리하는게 좋았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롯데팬들이 크게 아쉬워 하고 있는데 만약 홍성흔이 롯데에 남았다면 13시즌에 김대우와 전준우, 강민호가 돌아가며 4번을 칠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고 5위로 마무리한 팀성적을 고려했을때 홍성흔의 잔류로 인한 타격만 받쳐줬다면 충분히 더 나은 성적이 나왔을 가능성이 크며 13시즌이후 최준석을 영입할 필요 없이 김주찬의 이탈로 지적받은 리드오프 자리를 이종욱이나 이용규 혹은 정근우 영입으로 메꾸며 타선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홍성흔 본인으로선 두산에서 타격 되는 포수로서 최다안타 1위까지 먹어보는 등 국대급 선수로서 이적하기 전까지 두산에서 8년을 기여한 주축 선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롯데를 갔다 와서도 2014년엔 20홈런을 달성하며 클린업으로 좋은 활약을 했으며 당시로서는 드물게도 팬 서비스까지 훌륭한 선수였는데 고작 1년 반 못했다고 다른 팬도 아니고 자팀 팬들로부터 패드립까지 들어먹으니 프랜차이저[25]를 대하는 팬의 태도가 지나친 것이 맞고 홍성흔이 서운한 것은 당연하다.
허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여론을 주도하는 젊은 두산팬의 대부분은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유입된 팬들인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야구를 보기 시작한 때 홍성흔은 이미 롯데의 클린업으로 두산과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 선수였고, 그로 인해 원래 자팀 선수였다는 인상이 거의 없을 수밖에 없다. 선수에 대해 찾아봤어야한다는 반론이 나올 수도 있지만, 아무리 선수에 대해 찾아보았다한들 본인들이 그 시절을 직접 본게 아니지 않는가? 이들은 말로 들어봤자 직접 보지 못했기때문에 이 사실에 대해서 공감을 할 수가 없었고 이로 인해 두산의 4번타자이자 지명타자이자 팀의 상징은 어디까지나 김동주라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이런 김동주를 알 수 없는 이유로 2군에 박아버리고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26] 홍성흔을 데려왔으니, 베이징 뉴비가 대부분인 두산팬으로서는 돌아온 프랜차이저가 아닌 알 수 없는 이유로 두목곰의 자리를 빼앗은 타팀 출신 FA 영입 선수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처음부터 시선이 곱지가 않았으니[27] 뭐 건수 하나라도 잡히면 죽어라 물어뜯으려 할 것은 뻔했고 2015년 성적이 급락하고 잠바게이트 등 본인의 실책이 겹치며 프랜차이즈 선수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욕을 먹었다. 실제로 김동주는 간통으로 실제 가정법원에 서기까지 했고 후일 밝혀진 국그릇 사건 등 홍성흔이 귀엽게 보일 정도의 사람이었지만, 합법갑이니 버비오빠니 놀리는 것은 타팀 팬이 주축이지 자팀 팬은 그래도 선수로서는 좋은 선수였다 식으로 쉴드를 치거나 아예 인성이 너무 안좋았다 정도로만 언급하고 넘어가며 자세하게는 언급을 하지 않는 식으로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아주 심심풀이 땅콩처럼 온갖 창의적인 드립으로 조롱을 당했던 홍성흔과는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당장 이 위키의 홍성흔 항목과 김동주 항목의 두 선수가 현역 시절 작성된 내용들을 보면 온도차가 확 느껴진다.
10년을 넘게 뛰며 각종 기록을 세우고 오래 활약했던 자팀 팬은 고작 1년 정도의 부진으로 정말 개처럼 욕하는데 4년 뛴 부산에선 좋은 기억으로 자신을 맞아주니, 저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당연할 법도 하다. 부전드 발언이 안 그래도 욕을 먹는 선수 본인의 입에서 나와서 문제였을 뿐이지 홍성흔에 대한 두산 팬덤의 태도는 김동주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홍성흔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어 유독 홍성흔에게 비이성적으로 가혹했다. 그런 팬덤의 비상식적인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한 것에 비해 지나친 비난을 들어야 했던 홍성흔은 꽤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프로선수가 자 팀 팬덤을 비아냥거린 것은 경솔한 발언이었지만 그 심정 자체는 참작의 여지가 있다.

6. 포지션


앞에서 언급됐듯 포수로 데뷔해 지명타자로 전업했다. 2008년에 지명타자로 완전히 전업한 이후 간간히 타 포지션으로 수비를 소화했다.
연도
포지션
출전경기
선발출전
수비이닝
실책
자살
견제사
보살
병살
수비율
2008
좌익수
2
0
3
0
1
0
0
0
1.000
2009
1루수
4
1
13
0
11
0
1
2
1.000
2010
수비기록 없음
2011
좌익수
22
16
133
0
34
0
1
0
1.000
의외로 정규리그에서 실책은 없었다.
[1] 홈런왕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 사례는 위에 서술된 2004년 홈런왕 박경완을 포함해 역대 세 차례가 있다. 한번은 MVP가 골든글러브를 타지 못한 초유의 경우인 1998년의 타이론 우즈다. 나머지 하나는 2015년 53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른 박병호. 다만 경쟁자인 에릭 테임즈성적이 괴물급이었기에... [2] 물론 두산의 팀 성적이 SK보다 좋고 홍성흔이 타율과 안타는 박경완보다 높았지만 출루율은 5푼 장타율은 1할 2푼이나 차이가 난다.게다가 홍성흔은 당시 지명타자로 많이 나왔기 때문에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3] 타율에서 2푼차이로 홍성흔이 낫지만, OPS는 0.090이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4] 2005년 프로 아마 모두 한국야구 100주년 패치를 달았다.[5] 2014년도까지는 김동주도 있었으나 은퇴했고, 타팀 선수 중 NC의 박명환이 2015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이혜천도 KBO 리그 은퇴&호주리그 진출을 선언, 강봉규(삼성)도 방출되고 독일로 진출하면서 홍성흔만 남았다. 그러다 결국 홍성흔도 은퇴했다.[6] 2016년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됐다.[7] 2011 시즌 전지훈련 인터뷰에서 해설자로 데뷔한 안경현 위원은 홍성흔 선수에게 경기 결과에 상관 없을 때는 병살타 좀 쳐서 자기 기록을 깨달라는 부탁도 했다.[8] 첫번째 병살은 매우 일반적인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두번째와 마지막 상황을 보면 우주적인 기운이 돕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스트랄한 병살을 연출했다. 특히 세번째의 경우 이대호를 대주자 정훈으로 바꾸는 초강수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병살.[9] 1997년 5월 31일 군산 삼성전~6월 6일 사직 롯데전[10] 3명 다 두산 출신이다.[11] 참고로 2011년 시즌 병살타 '''1,2,3위는 홍성흔, 강민호, 이대호''' 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다.[12] 다만 KBO 성적이 아닌 전체 커리어로 확장한다면 이미 일본에서 73개, 미국에서 8개를 친 이대호가 총 282개로 한국인 타자 병살타 1위다.[13] 잘 보면 경희대 후배 정대현도 엄청 맞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한다.[14] 아닌게 아니라 정대현은 대학 시절 홍성흔이 쓰는 방의 방졸이었으며 특히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후배다.[15] 이종욱의 생일 때 팬들이 빵을 여러 박스 조공했는데, 상당한 양이 남았다고 한다. 문제는 남은 빵을 당사자인 이종욱이 아닌 홍성흔이 싹 다 챙겨 집으로 가져갔다는 것. 조공 당사자도 차라리 덕아웃에 두고 후배들 먹게 놔두는 게 낫지 않았겠냐고 SNS로 아쉬움을 표시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사건은 아니지만 그의 물욕(?)의 예시로 돡갤이나 엠팍에서 가끔 언급되곤 한다. 홍성흔의 팀 동료이자 선배인 김동주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시즌 때 배트 스폰서에서 나오는 배트 티켓 여유분이 꽤 많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티켓을 좀 나눠줄 수 있는지 묻자 김동주가 나서서 현금화해야 한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16] 해당 프로그램은 어려운 형편의 시청자들의 사연을 주로 받아 집을 고쳐줬는데, 홍성흔은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출연해 무료로 리모델링을 받아 비난을 받았다.[17] 홍성흔 콜업 전까지 2016년 두산은 단 한 차례의 연패도 기록하지 않으며 승승장구 중이었다.[18] 각 사이트별로 친목 위주의 카페인 대야베, 4~50대 이상의 올드팬들이 주류인 곰대, 30대 층이 대부분인 엠팍, 20대 중심의 강성 팬들이 모여 있는 돡갤, 일명 찍덕 활동이 제일 활발한 인스타, 라이트 팬층이 두터운 페북, 마이웨이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은 트위터 등으로 갈라져 있다. 이렇게 다른 성향의 사람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기엔 당연히 어렵다. 사소하게는 소속 선수들을 부르는 별명부터가 다르며, 소속 선수가 못 했을 때 까는 정도 역시 다르고, 소속 선수의 SNS를 커뮤니티에 퍼오는 것 같은 사항에서도 의견이 다르다. 그런데 홍성흔이 그걸 해냈다는 것.[19] 두산 선수로 취급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원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 감독과 주장 두 명만이 제일 앞에 나서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 세리머니를 하는데, 15시즌 KS 우승 직후 감독 김태형과 주장 오재원에 끼여서 우승트로피를 먼저 들고, 심지어 캡틴(C) 마크를 박은 유니폼을 입고 축승회에 나타났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괜히 정수빈의 15KS 최고 업적이 딱 타격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홍성흔을 밀어내고 지명타자를 맡아서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이외에도 홍성흔을 까는 일화가 개념으로 가는 일이 흔했고 흔하다. 2018년 신인들에게 강의하러 왔을 때 두산을 "우리 팀"이라고 칭하자 "왜 두산더러 우리 팀이라고 하냐" 할 정도다.[20] 물론 두산의 실질적인 최초 외부 FA 영입은 장원준으로 본다.[21] 링크에 걸린 세 명의 선수들 뿐 아니라, 외에도 두산에는 모범적인 팀 플레이어들이 많다. 당장 이 시즌 두산 우승의 주역인 더스틴 니퍼트, 장원준마이클 보우덴, 유희관으로 이루어진 선발진인 판타스틱 4만 해도 죄다 무슨 인터뷰만 했다 하면 동료들부터 언급하는 팀무새들이다.[22] 사실 홍성흔이 좌익수 수비를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2016년 시점으로 두산의 주전급 야수들 중 거의 유일하게 수비가 리그 평균 포지션 대비 하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재환보다도 훨씬 못했었던 걸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23] 오재원은 '''정작가''', 이현호는 아스정이라고 적었다(!)[24] 더군다나 만약 정말로 자신들의 선수라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면 빈말이라도 꼴갤에서 홍성흔에 대한 애정을 보일리가 절대 없다.[25] 안티들은 FA로 타 팀 다녀온 홍성흔이 무슨 프랜차이저냐고 하기도 하는데,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기엔 홍성흔 정도면 충분히 프랜차이저다. 원 클럽 맨이면 더욱 좋지만, 원 클럽 맨이 아니라고 프랜차이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당장 보스턴 레드삭스 영구결번 오티즈는 미네소타에서 데뷔해서 6년간 뛴 후 보스턴에 입단했고, 뉴욕 양키스의 영구결번 페티트도 FA로 휴스턴에 다녀왔다. 일본도 FA로 한신을 다녀온 카프의 아라이 타카히로 등 전 세계적으로 딱히 원 클럽 맨이 프랜차이저의 기준은 아니다. 한국도 양준혁이 해태, LG를 돌다 왔지만 그를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생각하지 않는 팬은 없을 것이다. 사실 저기까지 갈 것 없이 더스틴 니퍼트가 말년을 kt wiz에서 보냈다고 두산의 프랜차이저가 아니라고 한다면 두산 팬들이 펄쩍 뛸 일이다.[26] 다 아시는 대로 김동주는 꼰대짓으로 리더십은 커녕 팀 케미스트리를 망쳐서 2군에 박아버렸지만 이 사실은 이때까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었다. 사실 당뇨 문제로 인해 많이 못 나온 것 있지만 주된 원인은 팀 케미 문제이다.[27] 실제로 홍성흔이 두산로 복귀했을 때 두산 팬들의 대부분은 환영해주기보다는 왜 오냐는 얘기를 하는 등 확실히 비난하는 모습이었다. 이때부터 재앙이 시작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