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대학농구연맹전
1. 개요
1996년도 대학농구연맹전 및 기타 대학농구 대회들에 대해 소개한다.
- 서장훈이 1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 연세대 3학년으로 복귀하면서 라이벌이자 휘문고 1년후배 현주엽과 같은 학년이 되었다. 그러나 서장훈은 1년전 미국행으로 인해 홈에서 열렸던 1995 서울 ABC 대표팀 차출을 거부한 일로[3] 대한농구협회에 찍히게 되고, 몸상태가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못한다.
- 추일승(C, 前 기아자동차), 이영주(G, 前 현대전자) 등을 배출한 홍익대학교 농구부가 1996년 시즌 참가를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운좋게도(?) 신생팀 청주SK 나이츠의 선수 수급난으로 인해[4] 홍익대 농구부의 4학년 및 재학생 대부분이 청주SK에 합류할 수 있었다.
2. 대회결과
2.1.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3월)
1996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항목 참조
- MVP: 양희승(고려대)
- 서장훈이 복귀했지만, 아직까지는 기존 선수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았고, 연세대는 맞수 고려대에 2차례 패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2.2. 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 (5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농구연맹 산하 11개 대학팀이 모두 참가하였다.
3) 결선리그[5]
- MVP: 서장훈(연세대)
2.3. 대학농구연맹전 2차대회(9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농구연맹 산하 11개 대학팀이 모두 참가하였다.
- 홍익대학교 농구부가 마지막으로 참가한 대회였다.
※ 골득실차로 순위결정.
3) 결선리그[6]
- 개인부문 수상자
- 기록부문
2.4. 전국체전 (10월)
2.5. 1996-97 농구대잔치
1996-97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3. 시즌 결산
4. 1996년 졸업반 선수들의 행보
- 국가대표팀 선발
- KBL 커리어 (출전시즌 순)
5. 그때 그 선수들
항목이 개설되지 않은 4학년 선수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5.1. 건국대
- 박영진(3학년,G,182cm)
- 김상우(2학년,G,182cm)
- 황문용(3학년,F,191cm)
- 변청운(3학년,F,192cm)
- 신현식(4학년,C,196cm): 대경상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9). 3시즌.
90년대 초 황소군단의 나름 장신 센터. 졸업 후 동양제과에 스카웃 되었으나 전희철, 허남영 등 팀내 빅맨들에 밀려 루키 시즌엔 거의 게임을 뛰지 못했다. 1998-99 시즌, 팀내 빅맨들이 모조리 군입대 및 공익근무로 빠지면서 이훈재(193cm), 김재열(191cm) 등과 번갈아가며 4번으로 나섰는데, 시즌초 출중한 기량의 외인센터 그레그 콜버트(200)가 있을때만 해도 콜버트에 집중된 수비를 틈타 경기당 10점 가까운 점수를 올리는 등 괜찮은 활약을 (가끔) 보여줬으나, 콜버트가 야반도주하고 자바리 마일스라는 기량미달의 센터가 오면서부터 본 실력이 뽀록;;;나며 출전시간이 급감한다. 1998-99 시즌 대구 동양의 세계신기록 32연패의 일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뒤 군입대, 제대 후 곧장 은퇴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동양 신인시절, 1997 리야드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준비하던 대표팀이 출국 직전 오리온스와 마지막 연습경기를가졌는데, 이 게임에서 신현식이 당시 국대 주전이던 현주엽의 코를 아작내버린다;;; 이 부상때분에 현주엽은 리야드에 도착해서도 대회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고[9] 신현식의 팀선배 전희철이 주전센터로 뛰며 28년만의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달성하는데 기여;;한다.(응??)
- 김완수(1학년,G,180cm)
- 이영준(1학년,F,192cm)
- 손창환(2학년,F,192cm)
5.2. 경희대
- 박성배(4학년,G,180cm): 경복고 졸. 수원/서울삼성(97-98,00-01)-여수골드뱅크(00-01)[10] -서울삼성(01-06). 7시즌.
- 강혁 (2학년,G,187cm)
- 손규완(4학년,F,186cm): 전주고 졸. 청주/서울SK(97-00,02-04)-부산KTF(03-05)-원주동부(05-09). 10시즌.
- 김성철(2학년,F,195cm)
- 윤영필(3학년,C,193cm)
- 하상윤(2학년,G,180cm)
- 양은성(2학년,G,186cm)
- 윤훈원(1학년,C,195cm)
- 송영환(1학년,F)
5.3. 고려대
- 신기성(3학년,G,180cm)
- 이정래(1학년,G,189cm)
- 양희승(4학년,F,195cm): 광주고 졸. 창원LG(97-00)-대전현대/전주KCC(00-02)-안양SBS/KT&G(02-07)-부산KT(07-09). 12시즌.
- 현주엽(3학년,F,195cm)
- 박재헌(4학년,C,200cm): 미국 Artesia고 졸. 창원LG(97-00,03-04)-서울SK(04-06). 6시즌.
- 주희정(2학년,G,182cm)
- 박규현(4학년,G,185cm): 부산중앙고 졸. 창원LG(97-00,01-04)-울산모비스(03-04)-인천전자랜드(04-06)-창원LG(06-09). 11시즌.
- 오광택(1학년,F,186cm)
- 박훈근(4학년,F,195cm): 부산중앙고 졸. 창원LG(97-00)-대구동양(00-03)-인천전자랜드(03-06)-창원LG(06-07)-서울삼성(07-10)-대구오리온스(10-11). 14시즌.
- 김기만(1학년,F,192cm)
- 이규섭(1학년,C,198cm)
5.4. 단국대
- 김동환(1학년,G,187cm)
- 김정인(4학년,F,190cm): 부산동아고 졸. 부산기아/울산모비스(97-98,00-02)-여수코리아텐더/부산KTF(02-04). 5시즌.
부산동아고 재학시절 선배 김용식(187cm,G), 허남영(197cm,C), 후배 조우현(190cm,F), 구병두(187cm,G)와 함께 1991, 92년도 추계연맹전을 2연패 했고 본인은 1992년 대회 MVP에 오를 정도로 촉망받던 유망주였으나, 대학농구 최하위팀 단국대에 진학하면서 4년간 철저한 무명 시절을 겪는다. 김정인은 단대의 고독한 에이스로서 30~40득점을 밥먹듯 할 정도로 맹활약했지만, 단국대는 4년간 모든 대회에서 단 한차례도 예선통과를 하지 못할 정도로 초 약체팀이었고, 농구대잔치에도 한번도 못나가다가 실업-대학팀이 모두 참가하는 마지막 대잔치에서 모든 대학팀에게 출전권이 주어지면서 겨우 참가, 대학부 풀리그에서 성균관대에 겨우 1승을 거두는데 그친다.
하지만 대학시절 김정인의 득점력을 높이 평가한 부산 기아의 스카웃을 받게 되고, 팀 세대교체의 기수로 낙점받으며 명문팀 부산 기아의 일원이 된다. 97-98 시즌을 앞두고 참가한 ABC 챔피언스컵[11] 과 시범경기에서, 부상으로 빠진 허재, 김영만의 공백을 메우며 맹활약, 새 시즌의 루키 김정인 돌풍을 기대하게 했으나, 정작 1997-98 KBL 시즌 초반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며 이탈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부상 복귀후엔 회춘한 허재가 그야말로 맹활약[12] 하는 바람에 출장기회가 줄긴 했지만, 루키 시즌 평균 15분 가량 출전하며 핵심 식스맨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여느 유망주들처럼 루키시즌이 커리어 하이시즌이 되고 만다;;)
루키 시즌만 보낸 뒤 곧장 상무에 입대, 김병철, 박재일, 김희선 등과 꼬꼬마 라인업[13] 을 구성하며 1998 농구대잔치 3위, 그리고 1999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사상 최고성적인 동메달을 따내기도 한다.
제대 후 00-01 시즌, 모기업과 팀명이 바뀐 원소속팀 울산 모비스로 복귀한 김정인은 동 포지션의 큰 산이었던 허재의 트레이드 공백을 메울 것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시즌초부터 계속해서 부상에 시달리며 시즌을 절반씩 날리곤 했고, 덕분에 박수괴 감독의 신임도 받지못하며 벤치워머로 전락했다. 02-03 시즌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최희암 감독은 여수 코리아텐더의 에이스 포인트가드 전형수를 데려오기 위해 김정인을 트레이드 시켰는데,[14] 김정인은 여기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04-05 시즌 종료후 은퇴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 성남중학교 코치를 거쳐 현재 낙생고등학교 코치를 맡고 있다.
하지만 대학시절 김정인의 득점력을 높이 평가한 부산 기아의 스카웃을 받게 되고, 팀 세대교체의 기수로 낙점받으며 명문팀 부산 기아의 일원이 된다. 97-98 시즌을 앞두고 참가한 ABC 챔피언스컵[11] 과 시범경기에서, 부상으로 빠진 허재, 김영만의 공백을 메우며 맹활약, 새 시즌의 루키 김정인 돌풍을 기대하게 했으나, 정작 1997-98 KBL 시즌 초반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며 이탈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부상 복귀후엔 회춘한 허재가 그야말로 맹활약[12] 하는 바람에 출장기회가 줄긴 했지만, 루키 시즌 평균 15분 가량 출전하며 핵심 식스맨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여느 유망주들처럼 루키시즌이 커리어 하이시즌이 되고 만다;;)
루키 시즌만 보낸 뒤 곧장 상무에 입대, 김병철, 박재일, 김희선 등과 꼬꼬마 라인업[13] 을 구성하며 1998 농구대잔치 3위, 그리고 1999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사상 최고성적인 동메달을 따내기도 한다.
제대 후 00-01 시즌, 모기업과 팀명이 바뀐 원소속팀 울산 모비스로 복귀한 김정인은 동 포지션의 큰 산이었던 허재의 트레이드 공백을 메울 것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시즌초부터 계속해서 부상에 시달리며 시즌을 절반씩 날리곤 했고, 덕분에 박수괴 감독의 신임도 받지못하며 벤치워머로 전락했다. 02-03 시즌을 앞두고 새로 부임한 최희암 감독은 여수 코리아텐더의 에이스 포인트가드 전형수를 데려오기 위해 김정인을 트레이드 시켰는데,[14] 김정인은 여기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04-05 시즌 종료후 은퇴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 성남중학교 코치를 거쳐 현재 낙생고등학교 코치를 맡고 있다.
- 양준호(4학년,C,197cm): 단대부고 졸. 인천대우(97-98). 1시즌.
- 남진우(3학년,C,195cm)
- 곽기완(4학년,C,200cm): 대구계성고 졸. 인천대우(97-99,00-01). 3시즌.
5.5. 동국대
- 김기정(4학년,F,186cm): 광주고 졸. 인천대우(97-99). 2시즌.
광주고 시절 양희승과 쌍포로 활약하며 3학년때 광주고를 한차례 결승 진출 및 2차례 4강으로 이끌었다. 대학 최약체 동국대에서 고군분투 했으나 4년간 출전한 전대회 예선탈락;;;에 그쳤다.
KBL 2시즌간 고작 4게임만 뛰고 은퇴, 대학농구 2부리그의 울산대학교 코치를 거쳐 2017년부터 동국대 코치로 있다.
KBL 2시즌간 고작 4게임만 뛰고 은퇴, 대학농구 2부리그의 울산대학교 코치를 거쳐 2017년부터 동국대 코치로 있다.
- 송태영(1학년,C,198cm)
5.6. 명지대
- 김태진(4학년,G,174cm): 배재고 졸. 창원LG(97-98,00-01)-전주KCC(01-02)-울산모비스(02-04)-인천전자랜드(04-08). 9시즌.
- 표명일(3학년,G,182cm)
- 최훈석(2학년,F,180cm)
- 박재일(3학년,F,190cm)
- 윤제한(4학년,F,192cm): 휘문고 졸. 청주/서울 SK 나이츠(97-99,01-02,06-07)-원주 TG삼보/동부(02-06). 7시즌.
- 황인성(3학년,F,185cm)
- 길도익(2학년,F,191cm)
- 장영재(2학년,C,196cm)
5.7. 성균관대
- 이흥배(1학년,G,180cm)
- 김종흥(1학년,G,185cm)
- 허훈(4학년,F,186cm): 용산고 졸. 창원LG(97-98). 1시즌.
- 전재경(4학년,C,195cm): 용산고 졸. 창원LG(97-98). 1시즌.
90년대 초 휘문고, 경복고와 3강 구도를 이루던 용산고의 센터로, 서장훈-현주엽의 휘문고, 전희철-우지원의 경복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신이던 용산고의 골밑을 홀로 사수하며 고교 3년간 3차례 전국대회 우승을 따냈다. 특히 3학년때 춘계연맹전에선 전년도까지 에이스였던 김병철의 졸업공백에도 불구, 준결승에선 서장훈-현주엽이 버티던 고교 최장신군단 휘문고를, 결승에선 경복고를 연파하며 우승할때 맹활약했고, 이 활약 덕분에 1992년 9월에 열린 FIBA 아시아 U-18 대표팀에 서장훈, 현주엽, 추승균 등과 함께 뽑혀, 대회 준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성균관대 진학 후 워낙 약한 팀 전력 탓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4년내내 잊혀졌고, 창원 LG 세이커스의 창단멤버로 입단하긴 했지만 KBL에서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하고 은퇴했다.
하지만 성균관대 진학 후 워낙 약한 팀 전력 탓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4년내내 잊혀졌고, 창원 LG 세이커스의 창단멤버로 입단하긴 했지만 KBL에서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하고 은퇴했다.
5.8. 연세대
- 은희석(1학년,G,189cm)
- 김승관(4학년,G,178cm): 대경상고 졸. 청주 SK(97-98). 1시즌.
대경상고 시절 이종호(180cm,G), 이상영(188cm,F), 이흥섭(200cm,C) 등과 함께 뛰며 매 대회 4강권의 성적을 거뒀고, 연세대가 청소년대표팀 출신 가드 이종호를 스카웃할때 같이 연대로 입학했지만, 이종호가 출장기회 부족에 불만을 품고[16] 이탈한데 반해, 김승관은 4년내내 출장기회가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벤치를 지켰다. 신생팀 청주 SK에 스카웃되긴 했지만 단 한게임도 뛰지 못하고 은퇴했고, 2006년부터 모교 대경중학교 코치로 부임, 이후 대경정보산업고 코치로 가서 정효근을 키워내기도 했으나 농구부가 해체되면서 실직했다. 이후 2015년 휘문고 농구부 코치로 부임했으나 2019년에 계약이 만료되면서 물러났다.
대경정산고 코치 시절이던 2011년 2월 춘계연맹전 경복고와의 경기에서, 경기에서 패한 뒤 상대팀 신종석 코치에게 달려들어 머리끄댕이를 잡고 흔드는(;;;) 폭행을 가해, 중고농구연맹으로부터 3개월 출장정지를 받았다. 사유는 당시 "레알 경복"이라 불리며 전국 각지의 우수한 중학생들을 다 쓸어가던 경복고가 대경정산고의 연계학교인 대경중학교 출신 선수들도 자꾸 빼가는 바람에[17] 열받아서 그랬다고;;; 그리고 대경정산고 농구부는 1년후 해체되었다.
대경정산고 코치 시절이던 2011년 2월 춘계연맹전 경복고와의 경기에서, 경기에서 패한 뒤 상대팀 신종석 코치에게 달려들어 머리끄댕이를 잡고 흔드는(;;;) 폭행을 가해, 중고농구연맹으로부터 3개월 출장정지를 받았다. 사유는 당시 "레알 경복"이라 불리며 전국 각지의 우수한 중학생들을 다 쓸어가던 경복고가 대경정산고의 연계학교인 대경중학교 출신 선수들도 자꾸 빼가는 바람에[17] 열받아서 그랬다고;;; 그리고 대경정산고 농구부는 1년후 해체되었다.
5.9. 중앙대
- 임재현(1학년,G,182cm)
- 구병두(3학년,G,187cm)
- 조우현(2학년,F,190cm)
- 신종석(3학년,F,193cm)
- 이은호(3학년,C,196cm)
- 이세범(4학년,G,180cm) : 용산고 졸, 대구동양(97-00), 대전현대(00-01), 서울SK(01-05), 서울삼성(05-06), 원주동부(06-09). 12시즌.
- 김병천(3학년,G,180cm)
- 한규현(4학년,F,188cm) : 경복고 졸, 창원 LG(97-99). 2시즌.
- 박도경(3학년,C,202cm)
- 정훈종(1학년,C,205cm)
5.10. 한양대
- 정락영(3학년,G,183cm)
- 이홍수(2학년,G,179cm)
- 이상영(4학년,F,188cm): 대경상고 졸. LG(97-98, 00-01)-KCC(01-02)-모비스(02-04). 5시즌.
이종호(180cm,G)-이흥섭(200cm,C)와 함께 대경상고를 전국 4강권으로 이끌었던 불꽃슈터로, 센터 이흥섭이 졸업한 1992년 종별선수권에서 팀을 5년만에 결승전까지 올려놓았으나 장신군단 휘문고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1992년 베이징 아시아청소년농구대회 대표에 서장훈, 현주엽, 추승균 등과 같이 뽑혀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다.
한양대 진학후 만능선수였던 동기 추승균을 보좌하여 김동철(180cm,G), 이현주(185cm,F)과 함께 3점 슈터로 활약했다. 3학년이던 95년 추계연맹전에서 3점슛 성공률 60%를 찍고, 96-97 농구대잔치에서 자유투왕을 수상하는 등 추승균과 함께 한양대의 쌍포로 활약했으나, 프로 진출 후 그 귀신같은 슛감이 다 죽어버려 새깅 디펜스의 표적이 되거나 벤치 머릿수만 채우다가(...) 은퇴했다. 은퇴 이듬해인 2005년부터 한양대 코치로 부임, 오랜 기간 김춘수 감독과 최명룡 감독을 보좌하다 2013년 감독에 취임했다. 2017시즌을 끝으로 사임.
2008년 농구대잔치 대 고려대 전 당시 폭력감독으로 유명했던 김춘수 감독 시절, 코치-감독이 하나가 되어 라커룸에서 선수를 쥐어패는 동영상이 찍히기도 했다. (동영상 처음부터 아주 찰지게 주먹을 날린다.) 무려 경기중 하프타임이었다는데, 그동안의 폭력이 오죽 심했으면 선수가 몰카를 설치해서 고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춘수 감독, 이상영 코치 둘다 짤리지 않았고 이상영은 감독까지 되었으니... 우리나라 운동부가 폭력에 얼마나 관대한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양대 진학후 만능선수였던 동기 추승균을 보좌하여 김동철(180cm,G), 이현주(185cm,F)과 함께 3점 슈터로 활약했다. 3학년이던 95년 추계연맹전에서 3점슛 성공률 60%를 찍고, 96-97 농구대잔치에서 자유투왕을 수상하는 등 추승균과 함께 한양대의 쌍포로 활약했으나, 프로 진출 후 그 귀신같은 슛감이 다 죽어버려 새깅 디펜스의 표적이 되거나 벤치 머릿수만 채우다가(...) 은퇴했다. 은퇴 이듬해인 2005년부터 한양대 코치로 부임, 오랜 기간 김춘수 감독과 최명룡 감독을 보좌하다 2013년 감독에 취임했다. 2017시즌을 끝으로 사임.
2008년 농구대잔치 대 고려대 전 당시 폭력감독으로 유명했던 김춘수 감독 시절, 코치-감독이 하나가 되어 라커룸에서 선수를 쥐어패는 동영상이 찍히기도 했다. (동영상 처음부터 아주 찰지게 주먹을 날린다.) 무려 경기중 하프타임이었다는데, 그동안의 폭력이 오죽 심했으면 선수가 몰카를 설치해서 고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춘수 감독, 이상영 코치 둘다 짤리지 않았고 이상영은 감독까지 되었으니... 우리나라 운동부가 폭력에 얼마나 관대한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 추승균(4학년,F,190cm): 부산중앙고 졸. 대전현대/전주KCC(97-12). 15시즌.
- 안종호(1학년,F,192cm)
2003년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았기에 99학번으로 알기 쉽지만 96학번이다. 2학년을 마치고 상무에 입대해 당시 운동 선수로는 보기 드물게 재학 중 병역을 마친 케이스.
- 강기중(3학년,G,180cm)
- 김성모(1학년,G,182cm)
- 최성우(3학년,F,191cm)
- 민병희(2학년,C,197cm)
5.11. 홍익대[18]
- 배길태(3학년,G,182cm): 경복고 졸. 청주SK(97-99)-창원LG(99-01,03-05)-대구오리온스(05-06)-원주동부(06-07)-전주KCC(06-07). 8시즌.
- 전일우(3학년,G,182cm): 송도고 졸. 청주SK(97-99)-인천신세기/SK(99-00,02-03)-전주KCC(02-05). 6시즌.
- 홍창의(3학년,G,182cm): 군산고 졸. 청주SK(97-00). 3시즌.
군산고 시절 혼혈선수 권종오(192cm,F)와 함께 팀을 2차례 전국대회 4강으로 이끌었다. 홍익대 졸업 후 청주 SK의 초창기에 준주전급으로 활약했지만, 상무에 다녀온 뒤 팀에 자리가 없어지며 은퇴했다.
은퇴 후 부산 KTF 팀 매니저, 2008 베이징 올림픽 세계예선 대표팀 매니저 등을 지냈다.
은퇴 후 부산 KTF 팀 매니저, 2008 베이징 올림픽 세계예선 대표팀 매니저 등을 지냈다.
- 이규철(3학년,F,190cm): 경복고 졸. 청주SK(97-98,99-00). 2시즌.
- 이정환(4학년,C,195cm): 마산고 졸. 청주SK(97-98). 1시즌(출장기록 없음)
- 이석희(4학년,G,183cm): 명지고 졸. 청주SK(97-98). 1시즌(출장기록 없음)
- 김영구(4학년,F,185cm): 홍대부고 졸. 창원LG(97-98). 1시즌.
- 최경훈(3학년,C,196cm): 송도고 졸. 청주SK(97-98). 1시즌.
[1] 대한농구협회의 KBL 창설 작업으로 인해 대학연맹전이 12월 대회 1차례만 열렸다.[2] 1997년 2월부로 농구부가 해체되면서,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들 모두 곧장 KBL에 진출했다. 선수 수급 문제에 시달리던 신생팀 청주 SK가 홍익대 선수 대부분을 데리고 갔는데, 배길태, 전일우, 홍창의를 제외하곤 대부분 1,2시즌만에 은퇴했다.[3] 사실 이때 1994-95 농구대잔치 8강전에서의 목부상 회복이 완벽히 되지 않은 상태로, 미국에서도 주로 재활훈련에 전념하고 있었다.[4] 같은 신생팀이었던 창원 LG 세이커스의 경우 신생팀 창단혜택으로 양희승, 박훈근, 박재헌 등 좋은 선수가 많이 있는 고려대를 지명하고 대졸 예정자 스카웃에 적극 참여하는 등 1996년 초반부터 착실하게 창단준비를 해온 반면, 청주SK 나이츠는 진로그룹으로부터 뒤늦게 신생팀 창단 권리를 넘겨받으면서 창단 준비자체가 늦었다. 더군다나 신생팀 창단혜택으로 서장훈 하나만 바라보고 연세대를 지명하였는데, 서장훈의 졸업이 1년 연기되면서 선수수급 플랜자체가 꼬인 상황이었다. (서장훈 말고는 김승관(G), 신석(F) 등 대학시절 출장기회가 없던 선수들 뿐이었다.) 긴급히 손규완(경희대, F, 186cm), 윤제한(명지대, F,192cm) 정도를 스카웃하긴 했지만 엔트리 12명 채우기도 부족한 상태였다.[5] 예선에서의 전적을 가지고 간다.[6] 예선에서의 상대 전적을 안고 갔다.[7] 2차연맹전 도중 부친상을 당하면서, 연세대 선수 전원이 검은 리본을 유니폼에 달고 뛰었다. 김택훈의 MVP는 다분히 동정표가 반영된 결과였다.[8] 대학 9팀, 실업 8팀 참가.[9] 이때 주전센터 서장훈마저 중이염에 걸려 뛰지 못하는 낭패가 이어졌다.[10] 임대 트레이드[11] 주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역 클럽팀들이 참가하던 대회로 1997년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으며, 부산 기아는 결승에서 홍콩팀에 지며 준우승했다.[12] 그 유명한 허재의 부상투혼 시즌으로, 부산기아가 대전현대에 져서 준우승했음에도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수상했다.[13] 당시 입대자들 장신선수가 없어, 190cm의 박재일이 센터를 보는 상황이었다.[14] 김정인에 현금 2.5억을 얹어주는 트레이드였다. 당시 자금난에 시달리던 여수 코리아텐더로선 운영비가 시급했었다.[15] 1995년 미국 유학(or 연수?)로 인해 1년 휴학처리 되었다.[16] 애초에 이상민이 선배로 있는 팀에서 출장시간을 원한다는 자체가 과욕이다;;[17] 참고로 경복고등학교 농구부의 연계 학교는 삼선중학교다.(둘 다 공립)[18] 1997년 2월부로 농구부가 해체되면서,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들 모두 곧장 KBL에 진출했다. 선수 수급 문제에 시달리던 신생팀 청주 SK가 홍익대 선수 대부분을 데리고 갔는데, 배길태, 전일우, 홍창의를 제외하곤 대부분 1,2시즌만에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