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B48/역사/팀 구성
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의 팀 구성 역사를 설명하는 페이지.
AKB48은 크게 그룹의 이름에서 따온 네 개의 정규 팀인 팀A, 팀K, 팀B, 팀4 및 이 정규 팀에 들어갈 자리가 없거나 승격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멤버들이 모인 연구생 집단으로 멤버를 나눈다.[7]
이러한 팀 구성은 여러 가지 굴곡의 과정을 거치며 바뀌어왔다. 초창기 1기생으로 들어온 멤버는 모두 팀A, 2기생으로 들어온 멤버는 팀K, 3기생으로 들어온 멤버는 팀B 같은 식으로 간단하게 나누어 기수간 경쟁을 유도하려 했으나, 이 때문에 팀끼리의 경쟁이 곧 기수간 경쟁으로 바뀌어 미묘하게 그룹 내부의 단결력이 어그러질 수 있는 조짐이 약간 보였고, 그래서 기수간 경쟁은 해체되었다. 일단 팀A-팀K 합동 공연인 해바라기조 공연을 통해 1기-2기 갈등은 해결했지만 대신 메인 멤버-스탠바이 멤버의 격차가 심해졌다. 그리고 13명이었던 팀B에 1기생 3명을 서포트 멤버로 보내기도 했다.
이후 4기부터 들어오는 신규 멤버는 일단 연구생 신분으로 두고, 기존 A-K-B 팀 중에서 졸업생이 나오는 경우 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연구생을 승격시키는 방식으로 팀을 꾸려나가게 된다. 이런 식으로 7기까지 쭉 가긴 했는데, 그룹이 2008년 이후 대중적 인기도를 얻어 '졸업하기보다는 팀에 남아 있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라는 판단을 내린 멤버들이 졸업을 하지 않아 물갈이가 되지 않는 바람에 새로운 기수는 계속 뽑는데 연구생은 쌓여만 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8] 결국 운영진은 전격적으로 기존 멤버들의 팀을 확 갈아엎는 '팀 셔플'을 실시하고 동시에 정규 팀으로 새롭게 팀4를 만들어 보다 많은 자리를 만드는 결정을 내린다. 또한 각 팀에 '캡틴' 제도를 만들어 이 캡틴이 팀을 이끌어가게 만든다. 이것이 '1차 팀 개각'.
팀 셔플로 많은 개변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멤버들은 졸업할 줄을 몰랐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한 팀4 역시 9,10기생 위주의 뉴비들이라 이들보다는 기존 인기 멤버들에게 더 많은 주목과 푸쉬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에 결국 팀4는 병풍 소리를 들어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약해지게 된다. 이후 팀 8까지 확장할 계획이었는데 이래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 결국 2012년 중순 팀4를 없애고 16명 멤버제한을 해제하며 또 다시 팀 셔플을 실시하는 '2차 팀 개각'이 발표된다.
이후로는 계속 이 체제로 팀을 운영하다가, 2014년 2월 24일 48그룹 전체에서 팀 셔플을 실시한다는 '대조각'이 발표되면서 3차 체제로 이어지게 된다.
초기 어려웠던 지하돌 시절 1,2,3기의 많은 멤버들이 졸업하고 빈자리에 4기 이후 멤버들이 승격하여 2010년 팀 셔플 직전의 멤버구성이다. 2006년에 이미 팀A와 팀K를 섞어 장미조와 백합조로 나누는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이렇게 될 경우 멤버들의 피로가 과중된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취소되었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해바라기조. 해바라기조 구성을 통해 기존에 과열 양상을 띄었던 팀A, 팀K 간의 경쟁을 줄이고, 미디어 멤버의 원활한 활동을 보조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 멤버 두 명씩 조를 짜서, 한 명이 미디어에 출연하면 다른 한 명은 공연에 출연하는 식으로 멤버들의 구멍을 메꿨다. 물론 AKB48이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한 2010년 이전에는 미디어라고 해봐야 AKBINGO!와 같은 자체 방송 정도밖에 없었다.
1기 멤버 위주의 구성.
초기 팀A는 초기 최연장자였던 오리이 아유미[9] 가 캡틴 역할을 했으며 오리이가 졸업한 후에는 오오시마 마이가, 오오시마 이후에는 타카하시 미나미가 캡틴 역할을 했다. 타카하시의 경우 초기에는 센터 역할도 했는데 연장자들이 졸업하고 난 후 캡틴으로서의 모습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2기 멤버 위주의 구성. 연장자이자 숨겨진 리더 노로 카요를 중심으로 하여 끈끈한 단결력을 보여준 팀이었다. 여기도 딱히 별 문제는 없었던 팀.
다만 정말 초창기 시절에는 팀 A가 싱글 선발곡을 부르고 미디어에 출연하는 일이 잦아져 극장 공연을 나올 수 없게 되자 팀 K가 대타로 공연을 다 뛰어야 했고, 이런 빡센 스케쥴로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고 방송에 자주 나오는 팀 A와 비교받게 되며 이른바 지나친 경쟁의식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공연 문제는 '해바라기조'를 만들어 전 팀이 아예 셔플 식으로 섞어 공연에 참가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선발 및 방송 노출도 팀K 멤버들이 점차적으로 합류하면서 갈등이 해결되었다. 이런 고생을 겪으면서 단결력이 극대화됐다고.
여담이지만 팀의 연령대가 매우 넓다. 최연소 95년생 오쿠 마나미와 최연장 83년생 오오호리 메구미의 나이 차이는 무려 12살.
3기 멤버 위주의 구성. 3기는 원래 후보생이 18명이었는데 그 중 5명이 후보생에서 정규 멤버로 전환되지 못하고 사퇴했다. 그리하여 팀 A에 있던, 즉 1기생이던 히라지마 나츠미, 우라노 카즈미, 와타나베 시호를 팀B로 옮겨 새 멤버들을 서포트한다는 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행했다. 이것이 첫 팀 이동의 시초. 참고로 졸지에 서포트 역할을 맡게 된 세 명은 버려진다는 느낌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맡겨진 일에 열심히 임하는 멘탈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운영은 이들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대신 팀B의 떠오르는 신성들[10] 에 대한 전폭적인 푸쉬를 보낸다. 이런 문제로 와타나베 시호는 결국 얼마 안 가 졸업, 히라지마 나츠미, 우라노 카즈미는 SDN48을 거쳐 버려지게 된다. 원래 1기생 최연소인 마스야마 카야노도 이 때 팀B로 갈 예정이었으나 마침 팀A 맏언니였던 오리이 아유미가 졸업하면서 A의 인원수를 고려해 그냥 A에 남았다. 다만 마스야마 카야노는 얼마 안 가 결국 졸업을 선택하게 된다.
우라노가 멤버들을 혼내는 '메인 캡틴' 역할을, 히라지마가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는 '서포트' 역할을, 그리고 와타나베 시호[11] 가 이 둘 사이를 조율해가는 '조정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노력을 기반으로 와타나베 마유 와 카시와기 유키와 같은 인재들이 빛을 발하게 된다.
참고로 제7회 선발 총선거에서 4위 이하와의 압도적인 표차로 1,2,3위를 차지한 사시하라 리노, 카시와기 유키, 와타나베 마유가 모두 이 팀 소속이었다.
104인 선발 조각 마츠리를 단행, AKB48과 자매그룹을 섞는 한편, 최초로 '캡틴' 제도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이미 기존에 팀 내에서 공공연하게 리더십을 발휘해온 멤버인 타카하시 미나미와 아키모토 사야카에게 캡틴직을 준다. 다만 의외인 점은 팀B의 캡틴이 카시와기 유키였다는 점인데, 카시와기 본인도 말한 바 있지만 캡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2010.5.21 ~ 2012.10.31 까지의 현황. 명단은 2차 셔플이 실행되기 직전의 멤버 구성으로, 중간에 졸업자 등이 있기 때문에 빠진 멤버들이 있다.[12]
별다른 문제 없이 굴러갔다. 구 팀A부터 이어왔고 이미 리더십을 공공연하게 인정받은 타카하시 미나미를 캡틴으로 삼은 데다가, 최연장자 시노다 마리코를 비롯해 이른바 언니 멤버들이 꽉 잡고 있는 팀이라 뭐 어떻게 삐딱하게 나갈 수가 없는 구조다. 초기에는 선발 멤버와 비선발 멤버의 격차가 가장 큰 팀이라 우려된다는 소리도 나왔지만, 선발 멤버들이 극장 공연에도 자주 출연하는 한편, 아무리 비선발 멤버라고 해도 제각기 역량이 뛰어난 멤버들로 아리요시AKB공화국 등에서 활약하면서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시기의 팀A가 역대 최강급의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역시 큰 문제 없이 굴러갔다. 무엇보다 오오시마가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함과 동시에 아키모토도 연장자로서의 연륜을 발휘하여 극장 공연 등에서도 멤버들을 잘 이끌었기 때문. 중간에 2010년 10월 문춘 스캔들이 터져 아키모토가 캡틴 직을 스스로 사임하는 사건이 하나 터진 적이 있다. 이후 4개월 정도 지나 도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근성의 모습을 보여 아키P로부터 복귀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원상태로.
팀 개편이 실시되고 기존 팀B를 이끌던 음지의 리더 우라노와 와타나베 시호가 빠지게 되며 카시와기 유키가 팀 리더를 맡게 된다. 문제는 멤버 구성상 이게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였다는 것. 각 팀은 각자의 극장 공연을 메인으로 하여 묶인 팀으로, 캡틴을 중심으로 하여 공연에서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이 캡틴 제도를 만든 운영진의 의도였겠지만 이 당시의 팀B의 경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선 카시와기는 남들을 이끌어야 하는 캡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왜 억지로 시켰을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기수로 따질 때 동기생은 와타나베 마유밖에 없었고, 이에 따른 불안감 및 선배 기수에게 '쓴소리'를 던지지 못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15] 여기에 카시와기는 미디어에 자주 출연하는 에이스 멤버였기 때문에 극장에 좀처럼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게 된다. 그나마 원 팀B에서 계속 함께 해왔던 히라지마 나츠미가 있었을 때는 히라지마가 '음지의 리더'라 불리면서 팀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히라지마가 불의의 사건으로 나가고 난 후에는 그런 역할을 할 이가 없어졌다.
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카시와기 유키 대신 코바야시 카나를 캡틴으로 삼았다면, 팀 내 벨런스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았겠느냐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결과로 팀 말기에는 연구생 공연 혹은 심할 때는 밑의 팀4 공연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공연에서 부족한 모습을 연이어 보이고, 미야자키 미호, 사토 스미레 등 멤버들이 개인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모습을 보여 살찐 모습이 유독 눈에 띄거나, 마스다 유카 등 스캔들을 일으키는 멤버가 속속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2012년 8월의 2차 팀셔플은 사실 이 팀 B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행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여기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캡틴직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카시와기는 이후 레알 행복한 얼굴을 보인다. 그 대신 엉망진창이 된 팀B는 우메다 아야카에게 재조정을 받아야 했다. 결론적으로는 운영진의 판단미스 및 내부 알력싸움의 절묘한 증폭효과.
사실 위의 카시와기 팀B도 막장이었지만, 오오바 팀4가 제일 막장으로 불리는 팀이었다. 팬덤에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감이 잡힐 거다.
위에서 설명하였듯 새로운 인재들은 계속 들어오는데 정규 멤버들은 졸업할 줄 모르는 상황이 계속 이어져 연구생만 가득 쌓이고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는 현상이 2009년 이후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8기가 흑역사가 되고 난 이후 9기, 10기생들이 이러한 제도에서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18] , 기적적으로 팀K의 오노 에레나가 졸업하면서 빈 한 자리를 요코야마 유이가 가져가는 행운을 얻었지만 기타 다른 멤버들은 이런 행운을 또 다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후 AKB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되는 2010년 부터는 아무도 졸업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온것이다.
그렇다고 1년 반이 넘게 연구생으로 뛰고 있는데 승격을 시키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승격을 시키자니 정규 팀에는 자리가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9기, 10기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일단 승격을 시키긴 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소속 미정'이라는 형태로 두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식이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4라는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 이들을 소속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 결정은 그야말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는데, 팀4 공연을 주고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등의 노력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16명조차 구성되지 않은 채 나중에 멤버가 들어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적은 인원으로 그대로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었고, 이는 '다른 팀과 달리 뭔가 이상하다'라는 불안감을 멤버들에게 심어주게 된다. SKE48나 NMB48 같은 자매그룹에서 겸임이라는 형태로 정규 팀에 참여하는 것과 달리 거의 유배 식으로 따로 격리된 것.
여기에 초창기 팀B와 달리 선배 기수 하나 없이 시작하였기 때문에 무언가 잘못된 일이 있어도 제대로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큰 타격이었다. 내부의 지나친 친목질이나 공연에서의 미스 등에 대해 제대로 지도받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것인데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팀4 멤버들 각각의 미디어 출연이 많아지면서, 점점 팀과는 떨어진 개인활동을 하게 되는 멤버들이 많아졌고 이건 팀 단결력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하나는 이치카와 미오리 항목을 참조. 팀4 공연 역시 상당히 평가가 좋지 않았다.
당시의 팀4 공연의 문제점을 말하자면 따로국밥 그 자체였다.
캡틴 선출도 잡음이 많았는데, 연구생 시절부터 사실상의 리더 역할을 맡아온 시마다 하루카가 아닌 오오바 미나가 캡틴으로 뽑히게 된 것. 시마다는 총선거에서 권외였고 오오바는 순위권에 들었다는 인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납득이 갈 만한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 팬들의 중론이었다.[19] 심지어 선배기수의 멤버들도 이 선출에 의문을 표했는데, 타카하시 미나미는 "이렇게 하면 균형이 깨질텐데"라고 직접적으로 언급, 아키모토 사야카는 "시마다가 캡틴이어야 팀4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거다"라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팀A, 팀K의 캡틴들이 연이어 우려를 표명한 것. 결국 이 우려대로, 이후 오오바가 음주 및 연애 스캔들을 터트리면서 근신 처분을 받고 캡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시마다가 캡틴 대행을 맡게 된다. 그래도 그럭저럭 넘어가나 했는데 결정적으로 이후 오오바가 근신 처분이 풀리고 다시 캡틴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흐릿하던 균열이 이를 계기로 삼아 푸쉬에 대한 형평성 문제로 점차 확산되게 된다. 이건 팀4 붕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시마다 하루카의 존재가 붕 떠버리면서, 팀 내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누구도 나서지 않는, 한마디로 팀 인원 전원이 무한 개인주의로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팀4 공연은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팬들한테서는 "그따위로 공연할 거면 때려치워라"라는 식의 냉담한 비난을 사게 되었다. 안무도 엉망, MC도 엉망, 그야말로 황금기수로 불릴 정도로 재능 많은 아이들이라고 해도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만 지나치게 커져버려서 결국 팀4는 내부에서 자체 붕괴되었다. 아무도 협력하지 못했고 서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극장공연 MC는 학예회 레벨의 저속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2012년 3월에 펼쳐진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의 콘서트에서 10~12기 5명을 받아들여 팀의 구성 요소인 16명을 채우게 되었다. 이 때 들어온 멤버들이 당시 연구생에서 인기가 좋았던 멤버들이었고,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그나마 정상궤도로 들어설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받았지만, 애초에 이미 붕괴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였던 팀4에 후배기수 멤버들이 들어온다고 해도 균열이 안정될 거라는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이후에도 삐그덕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결국 운영은 팀4를 해체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8월의 돔 투어에서 팀4를 해체하고 다시 팀을 섞는다는 셔플이 발표되게 된다.
원래는 팀 정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 서브 제도를 신설해서 사실상의 승강제를 실시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러나 결국 팀4의 해산과 함께 팀 정원제가 해제되고 스타팅/벤치 멤버제가 시행되었다.
팀4 결성 전의 팀4 멤버들과 같은, 정규 멤버기는 하나 소속 팀이 없는 멤버들. 코지마 나츠키를 제외하면 전부 극장 언더를 전전하던 비인기 멤버들이다. 2차 팀 셔플 체제에서 팀 정원이 없어지면서 다들 각자의 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들 병풍이다.
기본 틀은 2012년 8월 24일 도쿄 돔투어에서 발표되었다. 2012.11.01 ~ 2014.2.23 까지의 멤버 구성이다.
시작 당시에는 팀A 캡틴 시노다 마리코, 팀K 캡틴 오오시마 유코, 팀B 캡틴 우메다 아야카 체제로 운영되었으나 2013년 7월 22일 시노다가 그룹을 졸업하고 캡틴 자리를 요코야마 유이에게 양도하면서, 시노다 팀A → 요코야마 팀A로 명칭이 바뀌는 변화가 있었다. 이후 팀4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캡틴으로 미네기시 미나미가 임명되었다. 여담이지만 요코야마가 캡틴을 맡은 이후 전 아키모토 팀K 출신들이 모두 캡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변화의 골자는 팀4를 없애는 대신 팀의 16인 정원 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그래서 팀의 인원이 최대 23인까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게 바뀌었다. 정규 멤버 승격은 쉬워졌지만 그만큼 정규 멤버가 된다는 의미는 줄어들었다. 팀의 인원은 20명 이상이지만 공연의 포지션은 16명이므로, 누군가는 자신의 포지션이 아닌 남의 포지션을 뛰는 언더 멤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 정규 멤버지, 다른 인기 멤버가 자리를 비울 때나 공연에 나올 수 있는 '언더 5분 대기조'라는 비참한 입장이 된 것이다.[23] 반면 연구생은 연구생이라는 신선한 이미지에 연구생 전용 공연도 있고 정규 공연의 언더를 뛸 기회도 있기 때문에 자신을 알리기에는 오히려 연구생 신분이 더 유리하다.
2013년 8월 8일 오사카 돔투어 공연에서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AKB48/드래프트 문서 참고. 처음에는 그 조건을 제대로 발표하지 않아 팀을 나간 히라지마, 연구생으로 쫓겨난 미네기시 등등을 다시 승격시키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뒷말도 있었지만 이후 제대로 된 계획이 발표되었다. 11세 이상의 여성[24] 중 소속사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인을 각 팀 캡틴 및 극장 지배인이 프로야구 드래프트 형식으로 뽑아 각 팀의 공연 언더로 바로 써먹겠다는 것.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던 제도이고 이대로라면 기존 연구생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꼴이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고인 물처럼 변화없는 현 체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자극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1회 드래프트 회의를 거쳐 선출된 드래프트생들은 즉각 전력 투입이라는 당초의 발표와는 달리, 실제로 해보니 전력 투입감이 안 된다는 비판이 있었고, 결국 각 캡틴들이 건의를 했다는 형식으로 연구생처럼 남게 되었다.[25]
이후 매우 얄궂게도 딱 1년이 지난 2013년 8월 24일 도쿄 돔투어 3일차에서 13기, 14기 멤버들을 승격시킨 '''팀4''' 재결성 및 각 팀의 언더 체제를 없앤다는 서프라이즈가 발표되었다. 특히 재결성 신생 팀4의 캡틴이 미네기시라는 점에서 팬덤은 충격과 공포. 각 팀의 언더 체제 이야기는 16인 공연에 못 들어갔던 언더들이 각 소속된 팀의 공연만 언더를 뛰는게 아니라 다른 공연에도 언더를 뛴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출연 기회가 확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보다 더 많은 경쟁자 및 연구생들과 다투어야 한다는 소리로 사실상 기존의 모든 공연을 뛰던 연구생 취급한다는 소리, 즉 16인 체제의 부활 및 이후부터는 새롭게 뽑힐 드래프트생들이 각 팀의 공연 언더로 우선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니 기존의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된 병풍 멤버들이 나설 기회가 더욱 더 줄어들었다는 소리이다.
타카하시가 '총감독'이라는 자리를 맡게 되고, 캡틴 직은 시노다가 맡게 된다. 그러나 시노다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얼마나 더 캡틴 노릇을 할 지는 미지수였던 상황. 결국 2013년 7월 시노다가 졸업하면서 캡틴직을 요코야마에게 넘기게 된다. 극장에서 사실상 A 멤버들을 통솔하던 '음악학원 원장님' 역할의 마츠이 사키코가 캡틴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인기가 너무 딸려서...
초기에는 타카하시, 시노다 두 명의 1기생과 차세대 센터 마유유, 소수의 중견, 그리고 10기 이하 대다수의 어린 후배 멤버들로 구성된 팀으로 팬들의 우려가 많은 팀이었다. 1기생 선발들은 바쁘니 공연에 잘 못 나올 것이고 그럼 중견 몇 명과 나머지 후배들이 딩동댕 유치원이라도 찍는 거 아니겠냐라는 것. 그러나 이 시기에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 요코야마 유이의 활약, 그리고 광푸쉬를 받게 된 카와에이 리나를 필두로 한 차세대 멤버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샌가 안정을 되찾았다.
아키모토에 이어 오오시마가 캡틴을 맡게 된다. 시작부터 걱정을 사던 팀이었는데, 인기 멤버들은 건재하지만 언제 졸업할 지 모르는 고참이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극장의 여신들이 대부분이며 차세대를 찾아볼 수 없는 무너진 밸런스라는 것. A에는 카와에이를 비롯해 10기 이후의 에이스들이 전부 배치되어 미래를 기대해볼 만 하고 B에는 당시 차세대의 중심이었던 시마자키를 비롯해 적절한 기수 분배로 가장 밸런스가 맞는다는 평이 나온 것에 비해 K에는 오오시마와 같은 인기 멤버가 떠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나마 K에게 주어진 미래의 보석은 SKE48의 나이 어린 에이스 마츠이 쥬리나와 13기의 에이스이자 당시 무시무시한 푸쉬와 주목을 받던 원석 미츠무네 카오루였지만 쥬리나는 애초에 원 소속이 SKE48였기 때문에 딱히 믿을 만한 카드는 못 되는 상황.
그런데 미츠무네가 건강상의 이유로 그룹을 떠나게 된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안 그래도 불안하던 오오시마 팀K에서, 커다란 희망이 너무나 쉽게 그들의 손을 떠나버렸다. 여기에 이타노 토모미, 아키모토 사야카의 졸업 및 미야자와 사에의 겸임 거부 등 오오시마를 비롯해 팀의 구심점이 될 만한 멤버들이 하나 둘씩 팀을 떠나게 되면서 K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말이 201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게 되었다. 순수 팀K 출신 선발 멤버는 오오시마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5회 총선거에서 나가오 마리야, 무토 토무가 선전하였지만 선발급으로 올라오려면 아직 멀고 먼 길이 남아있었다. 결국 오오시마도 졸업을 선택하고 팀K는 정말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캡틴 후보감이 누군지조차 제대로 정할 수 없던 상황. 결국 1월 26일의 리퀘스트 아워 2014 2일차에서 대조각이 실시된다는 발표가 나오는데 사실상 팀K 때문에 조각을 한다라는 메시지를 암시하면서[26] K 멤버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내부 단결력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지만 K 내부의 차세대에 대한 무관심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운영진의 참담한 작품.
밸런스에 대해 가장 잡음이 없던 팀. 캡틴직을 힘겨워하던 카시와기 대신 '센 언니'인 우메다가 이를 맡으면서 팀 분위기가 많이 안정화되었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우메다는 선발 말석에 고참이라는 위치 치고는 개인 일이 많지 않아(...) 극장 출연률도 훌륭했고, 이 때문에 멤버들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인기 멤버와 극장 출연 멤버, 고참과 중견과 차세대의 밸런스가 가장 적절하게 짜여진 팀이었다. 비주얼 담당 멤버가 많아 B는 팀 뷰티의 약자라는 말도 나오기도. 2013년 중반에는 공연 분위기가 별로 안 좋다는 말도 나왔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롭게 다시 만들어진 팀4. 2013년 8월 24일 도쿄 돔투어 3일차 서프라이즈에서 발표되었다.
최고참 멤버이자 연구생 강등 이후 연구생들을 이끌어왔던 미네기시가 캡틴인데다가, 멤버의 절반을 차지하는 13기생들이 연구생 공연을 정말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리더십 부족과 공연 퀄리티 저하가 문제가 되었던 옛 팀4의 문제점을 답습하지는 않으리라는 말이 있었고, 말 그대로 그러한 문제점은 발생하진 않았다.
다만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14기의 '삼총사'[27] 중심으로 푸쉬가 몰려들면서 다른 멤버들이 자동적으로 병풍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일이야 원래부터 부지기수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룹 내의 파이가 작을 때는 푸쉬를 받는다 치더라도 '파이 자체가 작은데 가져가봐야 얼마나 크게 가져가겠냐'라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파이가 커지면서 이 차이도 놀랄만큼 커지게 된 것이다. 미츠무네에게 푸쉬를 다 뺏기고 한동안 암전 상태로 지내오던 13기 및 삼총사에게 주목을 뺏긴 나머지 14기들이 조금 실망을 한 듯. 멤버들 개인적으로는 서로 사이가 좋지만, 푸쉬와 비푸쉬 멤버 사이에 의도치 않은 묘한 분위기가 형성될 조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내심 대조각을 바라고 있는 멤버들이 나오기도.
2차 팀 셔플의 골자는 당시 차세대 멤버들의 모임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한참 헤매고 있던 팀4를 해체하여 기존 팀에 재편성하는 동시에 팀별 인원 16명 제한을 없애 중견 멤버들, 소위 '병풍들'의 졸업을 빠르게 유도하여 물갈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는데, 일단 9기생이자 안정적 선발 라인에 진입한 요코야마 유이, 시마자키 하루카를 제외한 '차세대'들의 성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한 중견 멤버들도 AKB를 나간 이후의 불안한 앞날이 걱정되는 것인지 좀처럼 그룹을 졸업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012년 8월 이후 졸업은 그들 개개인의 앞날을 위해서는 바람직했고 또한 그룹 전체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루어져야 했지만, 정작 중견은 그대로 남아있는 채 1,2,3기 위주의 '카미 멤버'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이미 졸업을 발표한 마에다 아츠코를 비롯해 이타노 토모미, 카사이 토모미, 아키모토 사야카, 시노다 마리코 등 초창기부터 그룹과 팀의 중심 역할을 맡아온 고참 멤버들이 2012년 후반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잇달아 졸업하였으며, 결정적으로 마에다 이후 그룹 내 에이스 역할을 맡아오던 오오시마 유코까지 2013년 12월 홍백가합전에서 졸업할 것을 담담히 발표하였다.
여기에 '본점'인 AKB와 비교하여 '지점'이라 부르는 자매그룹들의 약진도 팀 셔플 2차 체제 이후에 나타난 돌풍이었다. 그 돌풍이 가장 매섭게 나타난 것은 2013년의 5회 총선거로, 비록 AKB 출신이긴 하지만 스캔들로 인해 하카타로 건너간 사시하라 리노가 경악의 1위를 차지했으며 그 외에도 SKE48의 W마츠이는 카미의 벽을 깨고, NMB의 두 에이스는 선발권에 진입했으며 결정적으로 SKE에서도 운영진에게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던 스다 아카리가 16위를 차지하여 선발에 차지하는 등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제 '본점'의 싱글에는 지점 멤버들을 위한 자리가 2개씩 주어지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았고 본점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여러가지로 AKB라는 브랜드가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가고 동시에 잇따른 고참 멤버들의 졸업으로 팀 내 밸런스가 무너진다는 말이 나오면서 팀셔플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공연도 받지 않은 채 웨이팅 공연으로 때우고 있는 상황에서 신공연이 나오고 1년 정도 공연하기지는 그대로 가야되지 않겠냐는 신중론이 많았다. 그러나 2014년 1월 26일 리퀘스트 아워 2014 2일차에서 대조각을 2월 24일에 실시한다는 서프라이즈가 터져나오면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기존의 팀 셔플이 어떠한 예고 없이 조각 당일 바로 실시한 것과 달리 '대조각'을 내걸고 본점만이 아닌 48그룹 전체를 다 섞어버리겠다는 발표가 이어지자 멤버들이며 팬들이며 전체가 멘붕에 빠졌다. 2ch 등 지하 사이트에서 간간히 떡밥 수준으로 나온 말이 진짜 실행될 판.
그리고 '''2월 24일 정말 헬게이트가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쥬리나의 완전 이적은 없었지만 '''노기자카46에서 멤버 겸임''',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충격파가 연타로 팬들의 뒤통수를 강타. 같은 그룹 내 이적은 양반이고 그룹 간 이적 및 겸임이 쉴새없이 발표되었다. 역대 모든 조각이나 인사이동 중 가장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받는 대조각은 그렇게 끝을 내렸고, 대조각 결과에 납득하지 못한 많은 멤버들이 차례차례 졸업을 발표하면서 결국 대혼란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중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곧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그날의 일을 엿볼수가 있다. 제목은 2014 DOCUMENTARY of AKB48 The time has come 이라는 것으로 대조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팬들도 느낄수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부:https://tv.kakao.com/channel/2742489/cliplink/303091171
2부:https://tv.kakao.com/channel/2742489/cliplink/303091172
3부:https://tv.kakao.com/channel/2742489/cliplink/303091173
1-3부 통합: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45ACC65425CD5AB2ECCE9FBAC37C07F8CBB8&outKey=V128a61ce580cf61ae4756b9438f8028aaf5ea33b3a534bb11fd86b9438f8028aaf5e&width=1280&height=720
AKB48의 대조각 결과를 놓고 보면 A>K>B>4 순으로 팀이 점점 어려지는 느낌. 각 팀 간의 차별화를 확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2월 27일 발표된 대조각 최종 확정안에서 일부 멤버들의 이적이 취소되고, 대조각 이전의 소속팀으로 돌아가는 것이 발표되었다.
2015년 3월 26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AKB48 봄의 단독콘서트에서 발표된 봄의 인사이동으로 일부 겸임 멤버의 겸임 해제가 발표되었다.
타카하시가 1년 4개월만에 다시 팀A 캡틴으로 복귀. 와타나베 마유가 팀B로 떠나긴 했지만 코지마 하루나와 시마자키 하루카가 팀B에서 넘어왔다. 차세대 에이스 라인인 이리야마와 카와에이를 더하면 팀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를 대표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라인업. 하지만 대조각 이전과 비교하면 팀A에 남아 있는 멤버가 단 6명(겸임 포함)뿐이라, 새롭게 호흡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타카하시 캡틴의 임무가 막중할 듯하지만, 이미 이 시기 타카하시 본인은 졸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졸업 전에 할 일을 마무리할 생각으로 팀A를 다시 다독이겠다는 의지를 표시했다.
이전까지는 푸시와 거리가 멀었던 나카무라의 부캡틴 임명과, HKT48을 겸임하던 코다마가 팀K로 이동한 대신 새롭게 두 명이 겸임과 완전이적의 형식으로 팀A에 합류한 것이 특기할 점. 또한 15기 연구생 2명이 합류함으로써, 1기와 15기를 모두 아우르는 폭넓은 구성이 되었다. 최연장자 코지마와 최연소자 타츠야 마키호, 니시야마 레나와의 나이차이가 무려 13살.
2015년 3월 26일 봄의 인사이동으로 후루하타 나오, 야구라 후코의 겸임해제가 발표되었다.
동년 5월 29일 두 멤버의 송별공연을 끝으로 겸임이 해제되었다.
졸업을 발표한 오오시마의 뒤를 이을 팀K의 캡틴은 팀A의 차세대 캡틴이었던 요코야마로 결정되었다. 마츠이 쥬리나의 겸임이 유지되는 가운데, SKE48로 떠난 와타나베 미유키를 대신해서 야마모토가 AKB48을 겸임하게 되었다. 팀4에서 넘어온 코지마 마코를 제외하면 투톱이 전부 겸임 멤버로 채워지게 되는 미묘한 상황. 추후 총선거 등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코지마를 비롯한 차세대 멤버들의 성장이 필요해 보인다.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면 중견 멤버들 상당수가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팀 단결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점.
ハート・エレキ 싱글에서 팀K의 곡에 참여했었던 아이가사와 유모토가 대조각을 통해 팀K에 합류, 차세대 라인을 맡게 되었다.
타 그룹간의 이동이 상당히 많았다. 오오바와 이치카와는 겸임이 이적으로 변경되면서 팀B를 떠났고, 캡틴이었던 우메다를 비롯하여 후지에와 야마우치의 완전 이적, 와타나베 미유키는 겸임 팀이 변경되는 등 많은 멤버들이 다른 그룹으로 떠나버린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이뤄진 팀B의 멤버 수혈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팀A의 센터였으며 오오시마의 졸업 이후 더욱더 그룹 내에서의 비중이 커질 와타나베 마유가 팀B로 돌아왔다. 또한 JKT48을 겸임 중이던 두 멤버의 겸임을 해제하여 팀B로 전속시키고, 오가사와라가 NMB48에서 완전 이적했으며 토모나가는 겸임 멤버로 합류. 그것도 모자라 노기자카46에서 1~5싱글간 센터였던 이코마 리나를 겸임 멤버로 데려왔다. 그야말로 대조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엄청난 변혁.
전반적으로 팀 컬러를 젊게 만드려는 듯, 팀A에서 12기 에이스 타카하시 쥬리와 13기 에이스 오오시마 료카를 데려왔으며 팀4에서 3명이 이동하고 연구생 2명이 들어왔다. 15기 에이스인 오오와다는 타카하시 쥬리, 오오시마와 함께 차세대 트리오를 이룰 것으로 예상. 이쪽도 잔류멤버가 단 5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 캡틴 쿠라모치와 함께 잔류멤버인 오오야, 카시와기, 타카죠, 타나베, 나토리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듯.
2015년 3월 26일 발표된 봄의 인사이동으로 이코마 리나의 겸임해제가 발표되었다.
동년 5월 14일 극장 송별공연을 끝으로 겸임이 해제되었다.
유일하게 캡틴의 변화가 없는 팀이다. 팀 A, K, B로 이동하지 않은 나머지 15기 연구생들이 전부 승격했으며, 10기 및 12기 멤버가 각각 2명씩 이동했다. 푸시멤버인 카토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어정쩡한 위치에 있던 멤버들이라,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한 겸임/이적 멤버를 받아들여 키자키 유리아가 완전 이적 형식으로 부캡틴을 맡게 되었고, 코타니가 약 10개월여만에 AKB48 겸임 복귀, 시부야의 겸임이 발표되었다. 키자키와 코타니는 경력과 나이 면에서 거의 중견급에 이르렀기 때문에, 미네기시 캡틴과 더불어 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차세대 팀의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에이스 코지마 마코가 팀K로 이동한 이후 새로운 경쟁 체제에 돌입할 것을 예고하는 팀이라고 볼 수 있겠다.
2015년 3월 26일 봄의 인사이동으로 코타니 리호의 겸임해제가 발표되었다.
동년 5월 28일 극장 송별공연을 끝으로 겸임이 해제되었다.
2015년 8월 24일에 있었던 센슈락 공연에서 미네기시가 밝히기를 팀4는 시작부터 큰일이었다고 한다. 기존의 멤버와 새로온 멤버간에 의견차이가 심해서 쇼니치공연 당일까지도 리허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팀4 투어 때도 오카다 아야카와 카토 레나가 유닛곡을 같이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지금은 같이 보낸 시간이 늘어서 멤버 간에 사이가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해서 캡틴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2014년 12월 8일 총감독 타카하시 미나미가 2015년 극장 10주년 공연에서 졸업할 것임을 발표하고, 차기 총감독으로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했다. 그 후 3개월 뒤인 2015년 3월 총 지배인인 카야노 시노부를 통해 기존의 팀 체제에서 큰 틀을 그대로 놔둔 채 변화를 주는 인사이동이 발표되었다.
이 인사이동으로 각 팀의 캡틴들이 교체되었는데, 팀A는 타카하시 미나미에서 요코야마 유이, 팀K는 요코야마 유이에서 미네기시 미나미, 팀B는 쿠라모치 아스카에서 키자키 유리아, 팀4는 미네기시 미나미에서 타카하시 쥬리로 변경하고, 그 변경일을 2015년 8월 센슈락 공연으로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5년 8월 센슈락 공연에서 각 팀은 마지막을 맞이하고 새로운 팀 체제가 되었다.
또한 일부 겸임멤버들의 겸임 해제가 발표되었다.
2018년 4월 1일, AKB48 단독 콘서트에서 4차 팀 체제에 의한 마지막 팀 무대가 있었다. 그후 신팀 소속으로 무대를 가짐으로서 4차 팀 체제가 마무리됨을 알렸다.
2017년 12월 8일, AKB48 12주년 기념 극장 공연에서 발표되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운영은 더이상 예전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것을 선언하였다. 바로 팀 8을 최초로 대규모 겸임시켰다. 속된말로 전부를 AKB 본체로 그냥 꽂아버렸다.
돌이켜보면 이미 같은해 10월 상황은 최악이었다.
팀A - 10명
팀K - 12명
팀B - 8명 (마유유 졸업시)
팀4 - 13명 (이이노 미야비 졸업시)
이렇게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사실상 언더를 받지 않고는 팀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겨우겨우 연구생, 팀 8 등의 언더를 받으면서 근근이 유지하던 AKB 극공은 사실상 마비되었고 팀제는 유명무실해졌다. 투어 따윈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팀 B는 심지어 캡틴(키자키 유리아), 부캡틴(오오시마 료카)이 졸업한 상황에서 몇 개월이 지나도 차기 캡틴을 선임을 하지 않았다. 그 얘기인즉슨 다음 조각까지는 일단 버티겠다는 뜻이다.
결국 위처럼 운영은 팀 8 멤버 전원 타 팀으로의 겸임을 해결책으로 들고 나왔다. 팀 8도 비인기 멤버들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공연하는 게 전부였기에 어떤 식으로든 케어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또한 그동안 자매그룹 인기 멤버를 띄워주기 위한 형식적인 겸임도 다 해제했다. 사실상 AKB의 재시작을 선언한 셈이다. 재능 있는 16기 연구생도 승격하는 등 운영이 꽤나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AKB48 5차 팀 캡틴'''
팀A : 오카베 린
팀K : 코미야마 하루카
팀B : 타카하시 쥬리 → 이와타테 사호[32]
팀4 : 무라야마 유이리
(2018.04.02 시작)
각각 장점이 뚜렷하고 12기, 13기, 15기, 팀 8 등 다양한 기수에서 캡틴을 선정했다. 특히 오카베 린에게 팀 A 캡틴을 임명하였다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AKB선발로 밀어준다는 상징과 같은 위치다.[33] 사실상 모험에 가까운 것인데, 그동안 외전 격으로 잘하던 팀 8을 굳이 본점으로 끌어버렸기 때문이다. 팀 8이란 독특한 존재가 AKB에 물들어 과연 그것이 과거처럼 시너지가 날 것인가?라는 것엔 의문이 있다.
AKB 순혈 쪽의 문제는 나름 본점에서 어렵게 해쳐가던 차세대들 후쿠오카 세이나 , 고토 모에 , 쿠보 사토네, 히와타시 유이같은 재능들의 기회 문제이다. 팀 8의 인기가 더 높다 보니 이들에게 자칫하면 적은 기회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체제에서 AKB는 AKB대로 인원 부족으로 방전과 투어조차 못하는 최악의 신세. 팀 8은 팀 8대로 일이 없어서 졸업을 생각하는 멤버가 많았으니 서로 간의 수요는 어느 정도 일치했다.
요점은 하나의 팀으로써 그들이 잘 섞일 수 있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향후의 운영진의 AKB로서의 로드맵이 중요해 보인다.
전팀 마지막 공연은 팀A 5월 16일, 팀K 5월 15일, 팀B 5월 28일, 팀4 5월 18일이며 신팀 공연 첫날은 팀A 6월 12일, 팀K 6월 24일, 팀B 6월 26일, 팀4 6월 6일로 공지되었다.
그랬는데 6월 13일에 갑자기 신팀K와 신팀B 공연 첫날이 각각 7월 6일, 9월 8일로 연기되었다.
차세대 기대주와 에이스들을 엄청나게 넣어버린 팀이 되었다. 팀 A에 인기 멤버가 너무 몰려서 다른 팀과의 밸런스가 좀 무너졌다는 평가가 많다.
무카이치 미온은 말이 필요 없는 차세대 에이스. 또한 오구리 유이는 와타나베 마유의 후계자 포지션이고, 오카베 린의 현장 인기는 상당하다. 거기에 이리야마 안나, 카토 레나는 고정 선발. 총감독 요코야마 유이도 있다. 하야사카 츠무기, 쵸 쿠레나, 타니카와 히지리의 팀 8 멤버 역시도 악수 완매율이 좋은 편이다.
차세대에 기대받는 타구치 마나카, 스즈키 쿠루미, 마에다 아야카 등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인기 밸런스가 잘 잡힌 팀이다.
유일한 1기생인 미네기시가 있는 팀이지만 미네기시 외의 멤버들은 대체적으로 낮은 기수로 구성되어 있고 팀 8의 중상위권 멤버들이 다수 겸임으로 들어왔다. 특이점으로는 무토 토무와 무토 오린 자매가 같은 팀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
유일하게 16기 승격 멤버가 없고 팀8 겸임 멤버보다는 기존 본점 멤버들에 초점이 맞춰진 팀이다.
쿠보 사토네, 후쿠오카 세이나, 타니구치 메구 3인의 차세대 트리오를 안정적인 선발 카시와기 유키, 타카하시 쥬리가 받쳐주고,
팀 A에서 오오야 시즈카,나카니시 치요리가 이동해 팀의 분위기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팀8 멤버들은 다른팀의 비해 선발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토크력이 좋은 오오타 나오, 요시카와 나나세,시미즈 마리아, 사토 시오리 등이 분포 되어 있어 토크 부분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2019년 5월 2일 이와타테 사호가 캡틴이던 타카하시 쥬리의 졸업 공연에서 팀 B의 다음 캡틴으로 지명되었다.
신 팀 체제로 전 팀에 비해서 라인업이 매우 약해졌다. 팀 4에서 성장한 코지마 마코, 코미야마 하루카 등이 다시 떠났는데 들어온 멤버는 에이스급은 별로 없다. 그래도 무라야마 유이리, 오카다 나나가 2018년 시점에 그룹 내 최고 레벨의 인기 멤버가 된 점이 위안이다. 멤버를 살펴보면 총선 상위 성적을 유지 중인 카와모토 사야가 남은 것은 희소식. 또한 사카구치 나기사가 팀 8에서 TOP5로 꼽히는 인기 멤버다. 나가노 세리카도 권내에 성공한 멤버다. 다른 팀들에 비해 어린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연장자인 마챠링이 96년생이며 최고참도 12기인 미유퐁이다.
유망주로는 16기의 에이스 야마우치 미즈키가 뛰어난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팀 8 우타다 하츠카 역시도 2016년 가입한 멤버로 팀 8의 뉴페이스 중 가장 기대를 받는 멤버다.
- 이 페이지는 AKB48/역사 및 AKB48/전 멤버 일람과 함께 읽으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 멤버들의 순서는 일본어 50음도 순으로 배열되었다. 또한 연구생은 배제하고 팀과 관련 있는 정규 멤버를 대상으로 하였다.
1. 개요
2. 역사
3. 팀 셔플 이전 체제 (초창기 ~ 2010.5)
4. 팀 셔플 1차 체제 (2010.5 ~ 2012.10)
5. 팀 셔플 2차 체제 (2012.10~2014.04)
6. 팀 셔플 3차 체제 (2014.04~2015.08)
8. 팀 셔플 5차 체제 (2018.04~)
1. 개요
AKB48은 크게 그룹의 이름에서 따온 네 개의 정규 팀인 팀A, 팀K, 팀B, 팀4 및 이 정규 팀에 들어갈 자리가 없거나 승격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멤버들이 모인 연구생 집단으로 멤버를 나눈다.[7]
2. 역사
이러한 팀 구성은 여러 가지 굴곡의 과정을 거치며 바뀌어왔다. 초창기 1기생으로 들어온 멤버는 모두 팀A, 2기생으로 들어온 멤버는 팀K, 3기생으로 들어온 멤버는 팀B 같은 식으로 간단하게 나누어 기수간 경쟁을 유도하려 했으나, 이 때문에 팀끼리의 경쟁이 곧 기수간 경쟁으로 바뀌어 미묘하게 그룹 내부의 단결력이 어그러질 수 있는 조짐이 약간 보였고, 그래서 기수간 경쟁은 해체되었다. 일단 팀A-팀K 합동 공연인 해바라기조 공연을 통해 1기-2기 갈등은 해결했지만 대신 메인 멤버-스탠바이 멤버의 격차가 심해졌다. 그리고 13명이었던 팀B에 1기생 3명을 서포트 멤버로 보내기도 했다.
이후 4기부터 들어오는 신규 멤버는 일단 연구생 신분으로 두고, 기존 A-K-B 팀 중에서 졸업생이 나오는 경우 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연구생을 승격시키는 방식으로 팀을 꾸려나가게 된다. 이런 식으로 7기까지 쭉 가긴 했는데, 그룹이 2008년 이후 대중적 인기도를 얻어 '졸업하기보다는 팀에 남아 있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라는 판단을 내린 멤버들이 졸업을 하지 않아 물갈이가 되지 않는 바람에 새로운 기수는 계속 뽑는데 연구생은 쌓여만 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8] 결국 운영진은 전격적으로 기존 멤버들의 팀을 확 갈아엎는 '팀 셔플'을 실시하고 동시에 정규 팀으로 새롭게 팀4를 만들어 보다 많은 자리를 만드는 결정을 내린다. 또한 각 팀에 '캡틴' 제도를 만들어 이 캡틴이 팀을 이끌어가게 만든다. 이것이 '1차 팀 개각'.
팀 셔플로 많은 개변이 일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멤버들은 졸업할 줄을 몰랐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한 팀4 역시 9,10기생 위주의 뉴비들이라 이들보다는 기존 인기 멤버들에게 더 많은 주목과 푸쉬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에 결국 팀4는 병풍 소리를 들어야 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약해지게 된다. 이후 팀 8까지 확장할 계획이었는데 이래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 결국 2012년 중순 팀4를 없애고 16명 멤버제한을 해제하며 또 다시 팀 셔플을 실시하는 '2차 팀 개각'이 발표된다.
이후로는 계속 이 체제로 팀을 운영하다가, 2014년 2월 24일 48그룹 전체에서 팀 셔플을 실시한다는 '대조각'이 발표되면서 3차 체제로 이어지게 된다.
3. 팀 셔플 이전 체제 (초창기 ~ 2010.5)
초기 어려웠던 지하돌 시절 1,2,3기의 많은 멤버들이 졸업하고 빈자리에 4기 이후 멤버들이 승격하여 2010년 팀 셔플 직전의 멤버구성이다. 2006년에 이미 팀A와 팀K를 섞어 장미조와 백합조로 나누는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이렇게 될 경우 멤버들의 피로가 과중된다는 결과가 나와 결국 취소되었다. 그 대신 등장한 것이 해바라기조. 해바라기조 구성을 통해 기존에 과열 양상을 띄었던 팀A, 팀K 간의 경쟁을 줄이고, 미디어 멤버의 원활한 활동을 보조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 멤버 두 명씩 조를 짜서, 한 명이 미디어에 출연하면 다른 한 명은 공연에 출연하는 식으로 멤버들의 구멍을 메꿨다. 물론 AKB48이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기 시작한 2010년 이전에는 미디어라고 해봐야 AKBINGO!와 같은 자체 방송 정도밖에 없었다.
3.1. 팀 A
1기 멤버 위주의 구성.
초기 팀A는 초기 최연장자였던 오리이 아유미[9] 가 캡틴 역할을 했으며 오리이가 졸업한 후에는 오오시마 마이가, 오오시마 이후에는 타카하시 미나미가 캡틴 역할을 했다. 타카하시의 경우 초기에는 센터 역할도 했는데 연장자들이 졸업하고 난 후 캡틴으로서의 모습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3.2. 팀 K
2기 멤버 위주의 구성. 연장자이자 숨겨진 리더 노로 카요를 중심으로 하여 끈끈한 단결력을 보여준 팀이었다. 여기도 딱히 별 문제는 없었던 팀.
다만 정말 초창기 시절에는 팀 A가 싱글 선발곡을 부르고 미디어에 출연하는 일이 잦아져 극장 공연을 나올 수 없게 되자 팀 K가 대타로 공연을 다 뛰어야 했고, 이런 빡센 스케쥴로 부상자가 속출하게 되고 방송에 자주 나오는 팀 A와 비교받게 되며 이른바 지나친 경쟁의식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공연 문제는 '해바라기조'를 만들어 전 팀이 아예 셔플 식으로 섞어 공연에 참가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선발 및 방송 노출도 팀K 멤버들이 점차적으로 합류하면서 갈등이 해결되었다. 이런 고생을 겪으면서 단결력이 극대화됐다고.
여담이지만 팀의 연령대가 매우 넓다. 최연소 95년생 오쿠 마나미와 최연장 83년생 오오호리 메구미의 나이 차이는 무려 12살.
3.3. 팀 B
3기 멤버 위주의 구성. 3기는 원래 후보생이 18명이었는데 그 중 5명이 후보생에서 정규 멤버로 전환되지 못하고 사퇴했다. 그리하여 팀 A에 있던, 즉 1기생이던 히라지마 나츠미, 우라노 카즈미, 와타나베 시호를 팀B로 옮겨 새 멤버들을 서포트한다는 대책을 세우고 이를 실행했다. 이것이 첫 팀 이동의 시초. 참고로 졸지에 서포트 역할을 맡게 된 세 명은 버려진다는 느낌에 충격을 받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맡겨진 일에 열심히 임하는 멘탈갑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운영은 이들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대신 팀B의 떠오르는 신성들[10] 에 대한 전폭적인 푸쉬를 보낸다. 이런 문제로 와타나베 시호는 결국 얼마 안 가 졸업, 히라지마 나츠미, 우라노 카즈미는 SDN48을 거쳐 버려지게 된다. 원래 1기생 최연소인 마스야마 카야노도 이 때 팀B로 갈 예정이었으나 마침 팀A 맏언니였던 오리이 아유미가 졸업하면서 A의 인원수를 고려해 그냥 A에 남았다. 다만 마스야마 카야노는 얼마 안 가 결국 졸업을 선택하게 된다.
우라노가 멤버들을 혼내는 '메인 캡틴' 역할을, 히라지마가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는 '서포트' 역할을, 그리고 와타나베 시호[11] 가 이 둘 사이를 조율해가는 '조정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노력을 기반으로 와타나베 마유 와 카시와기 유키와 같은 인재들이 빛을 발하게 된다.
참고로 제7회 선발 총선거에서 4위 이하와의 압도적인 표차로 1,2,3위를 차지한 사시하라 리노, 카시와기 유키, 와타나베 마유가 모두 이 팀 소속이었다.
4. 팀 셔플 1차 체제 (2010.5 ~ 2012.10)
104인 선발 조각 마츠리를 단행, AKB48과 자매그룹을 섞는 한편, 최초로 '캡틴' 제도를 도입한다. 이를 통해 이미 기존에 팀 내에서 공공연하게 리더십을 발휘해온 멤버인 타카하시 미나미와 아키모토 사야카에게 캡틴직을 준다. 다만 의외인 점은 팀B의 캡틴이 카시와기 유키였다는 점인데, 카시와기 본인도 말한 바 있지만 캡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2010.5.21 ~ 2012.10.31 까지의 현황. 명단은 2차 셔플이 실행되기 직전의 멤버 구성으로, 중간에 졸업자 등이 있기 때문에 빠진 멤버들이 있다.[12]
4.1. 타카하시 팀A
별다른 문제 없이 굴러갔다. 구 팀A부터 이어왔고 이미 리더십을 공공연하게 인정받은 타카하시 미나미를 캡틴으로 삼은 데다가, 최연장자 시노다 마리코를 비롯해 이른바 언니 멤버들이 꽉 잡고 있는 팀이라 뭐 어떻게 삐딱하게 나갈 수가 없는 구조다. 초기에는 선발 멤버와 비선발 멤버의 격차가 가장 큰 팀이라 우려된다는 소리도 나왔지만, 선발 멤버들이 극장 공연에도 자주 출연하는 한편, 아무리 비선발 멤버라고 해도 제각기 역량이 뛰어난 멤버들로 아리요시AKB공화국 등에서 활약하면서 조화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 시기의 팀A가 역대 최강급의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4.2. 아키모토 팀K
역시 큰 문제 없이 굴러갔다. 무엇보다 오오시마가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다함과 동시에 아키모토도 연장자로서의 연륜을 발휘하여 극장 공연 등에서도 멤버들을 잘 이끌었기 때문. 중간에 2010년 10월 문춘 스캔들이 터져 아키모토가 캡틴 직을 스스로 사임하는 사건이 하나 터진 적이 있다. 이후 4개월 정도 지나 도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근성의 모습을 보여 아키P로부터 복귀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원상태로.
4.3. 카시와기 팀B
팀 개편이 실시되고 기존 팀B를 이끌던 음지의 리더 우라노와 와타나베 시호가 빠지게 되며 카시와기 유키가 팀 리더를 맡게 된다. 문제는 멤버 구성상 이게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였다는 것. 각 팀은 각자의 극장 공연을 메인으로 하여 묶인 팀으로, 캡틴을 중심으로 하여 공연에서 단결력을 보여주는 것이 캡틴 제도를 만든 운영진의 의도였겠지만 이 당시의 팀B의 경우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선 카시와기는 남들을 이끌어야 하는 캡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왜 억지로 시켰을까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기수로 따질 때 동기생은 와타나베 마유밖에 없었고, 이에 따른 불안감 및 선배 기수에게 '쓴소리'를 던지지 못하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15] 여기에 카시와기는 미디어에 자주 출연하는 에이스 멤버였기 때문에 극장에 좀처럼 나올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게 된다. 그나마 원 팀B에서 계속 함께 해왔던 히라지마 나츠미가 있었을 때는 히라지마가 '음지의 리더'라 불리면서 팀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지만 히라지마가 불의의 사건으로 나가고 난 후에는 그런 역할을 할 이가 없어졌다.
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카시와기 유키 대신 코바야시 카나를 캡틴으로 삼았다면, 팀 내 벨런스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았겠느냐는 불만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결과로 팀 말기에는 연구생 공연 혹은 심할 때는 밑의 팀4 공연보다 못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공연에서 부족한 모습을 연이어 보이고, 미야자키 미호, 사토 스미레 등 멤버들이 개인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모습을 보여 살찐 모습이 유독 눈에 띄거나, 마스다 유카 등 스캔들을 일으키는 멤버가 속속들이 나오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2012년 8월의 2차 팀셔플은 사실 이 팀 B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시행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 여기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캡틴직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카시와기는 이후 레알 행복한 얼굴을 보인다. 그 대신 엉망진창이 된 팀B는 우메다 아야카에게 재조정을 받아야 했다. 결론적으로는 운영진의 판단미스 및 내부 알력싸움의 절묘한 증폭효과.
4.4. 오오바 팀4[17]
사실 위의 카시와기 팀B도 막장이었지만, 오오바 팀4가 제일 막장으로 불리는 팀이었다. 팬덤에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감이 잡힐 거다.
위에서 설명하였듯 새로운 인재들은 계속 들어오는데 정규 멤버들은 졸업할 줄 모르는 상황이 계속 이어져 연구생만 가득 쌓이고 물갈이가 전혀 되지 않는 현상이 2009년 이후부터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8기가 흑역사가 되고 난 이후 9기, 10기생들이 이러한 제도에서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18] , 기적적으로 팀K의 오노 에레나가 졸업하면서 빈 한 자리를 요코야마 유이가 가져가는 행운을 얻었지만 기타 다른 멤버들은 이런 행운을 또 다시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후 AKB 인기가 하늘을 찌르게 되는 2010년 부터는 아무도 졸업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온것이다.
그렇다고 1년 반이 넘게 연구생으로 뛰고 있는데 승격을 시키지 않으면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승격을 시키자니 정규 팀에는 자리가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9기, 10기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일단 승격을 시키긴 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소속 미정'이라는 형태로 두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식이였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4라는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 이들을 소속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 결정은 그야말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는데, 팀4 공연을 주고 미디어에 노출시키는 등의 노력을 하긴 했지만 애초에 16명조차 구성되지 않은 채 나중에 멤버가 들어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적은 인원으로 그대로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었고, 이는 '다른 팀과 달리 뭔가 이상하다'라는 불안감을 멤버들에게 심어주게 된다. SKE48나 NMB48 같은 자매그룹에서 겸임이라는 형태로 정규 팀에 참여하는 것과 달리 거의 유배 식으로 따로 격리된 것.
여기에 초창기 팀B와 달리 선배 기수 하나 없이 시작하였기 때문에 무언가 잘못된 일이 있어도 제대로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도 큰 타격이었다. 내부의 지나친 친목질이나 공연에서의 미스 등에 대해 제대로 지도받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했던 것인데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팀4 멤버들 각각의 미디어 출연이 많아지면서, 점점 팀과는 떨어진 개인활동을 하게 되는 멤버들이 많아졌고 이건 팀 단결력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 중 하나는 이치카와 미오리 항목을 참조. 팀4 공연 역시 상당히 평가가 좋지 않았다.
당시의 팀4 공연의 문제점을 말하자면 따로국밥 그 자체였다.
캡틴 선출도 잡음이 많았는데, 연구생 시절부터 사실상의 리더 역할을 맡아온 시마다 하루카가 아닌 오오바 미나가 캡틴으로 뽑히게 된 것. 시마다는 총선거에서 권외였고 오오바는 순위권에 들었다는 인기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납득이 갈 만한 이유는 아니라는 것이 팬들의 중론이었다.[19] 심지어 선배기수의 멤버들도 이 선출에 의문을 표했는데, 타카하시 미나미는 "이렇게 하면 균형이 깨질텐데"라고 직접적으로 언급, 아키모토 사야카는 "시마다가 캡틴이어야 팀4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 거다"라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팀A, 팀K의 캡틴들이 연이어 우려를 표명한 것. 결국 이 우려대로, 이후 오오바가 음주 및 연애 스캔들을 터트리면서 근신 처분을 받고 캡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시마다가 캡틴 대행을 맡게 된다. 그래도 그럭저럭 넘어가나 했는데 결정적으로 이후 오오바가 근신 처분이 풀리고 다시 캡틴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흐릿하던 균열이 이를 계기로 삼아 푸쉬에 대한 형평성 문제로 점차 확산되게 된다. 이건 팀4 붕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시마다 하루카의 존재가 붕 떠버리면서, 팀 내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누구도 나서지 않는, 한마디로 팀 인원 전원이 무한 개인주의로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팀4 공연은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고, 팬들한테서는 "그따위로 공연할 거면 때려치워라"라는 식의 냉담한 비난을 사게 되었다. 안무도 엉망, MC도 엉망, 그야말로 황금기수로 불릴 정도로 재능 많은 아이들이라고 해도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만 지나치게 커져버려서 결국 팀4는 내부에서 자체 붕괴되었다. 아무도 협력하지 못했고 서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극장공연 MC는 학예회 레벨의 저속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2012년 3월에 펼쳐진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의 콘서트에서 10~12기 5명을 받아들여 팀의 구성 요소인 16명을 채우게 되었다. 이 때 들어온 멤버들이 당시 연구생에서 인기가 좋았던 멤버들이었고,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그나마 정상궤도로 들어설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받았지만, 애초에 이미 붕괴 직전까지 가 있는 상태였던 팀4에 후배기수 멤버들이 들어온다고 해도 균열이 안정될 거라는 기대는 헛된 것이었다. 이후에도 삐그덕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면서, 결국 운영은 팀4를 해체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8월의 돔 투어에서 팀4를 해체하고 다시 팀을 섞는다는 셔플이 발표되게 된다.
원래는 팀 정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 서브 제도를 신설해서 사실상의 승강제를 실시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그러나 결국 팀4의 해산과 함께 팀 정원제가 해제되고 스타팅/벤치 멤버제가 시행되었다.
4.5. 소속 미정[22]
팀4 결성 전의 팀4 멤버들과 같은, 정규 멤버기는 하나 소속 팀이 없는 멤버들. 코지마 나츠키를 제외하면 전부 극장 언더를 전전하던 비인기 멤버들이다. 2차 팀 셔플 체제에서 팀 정원이 없어지면서 다들 각자의 팀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다들 병풍이다.
5. 팀 셔플 2차 체제 (2012.10~2014.04)
기본 틀은 2012년 8월 24일 도쿄 돔투어에서 발표되었다. 2012.11.01 ~ 2014.2.23 까지의 멤버 구성이다.
시작 당시에는 팀A 캡틴 시노다 마리코, 팀K 캡틴 오오시마 유코, 팀B 캡틴 우메다 아야카 체제로 운영되었으나 2013년 7월 22일 시노다가 그룹을 졸업하고 캡틴 자리를 요코야마 유이에게 양도하면서, 시노다 팀A → 요코야마 팀A로 명칭이 바뀌는 변화가 있었다. 이후 팀4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캡틴으로 미네기시 미나미가 임명되었다. 여담이지만 요코야마가 캡틴을 맡은 이후 전 아키모토 팀K 출신들이 모두 캡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변화의 골자는 팀4를 없애는 대신 팀의 16인 정원 제도를 폐지한 것이었다. 그래서 팀의 인원이 최대 23인까지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게 바뀌었다. 정규 멤버 승격은 쉬워졌지만 그만큼 정규 멤버가 된다는 의미는 줄어들었다. 팀의 인원은 20명 이상이지만 공연의 포지션은 16명이므로, 누군가는 자신의 포지션이 아닌 남의 포지션을 뛰는 언더 멤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말이 정규 멤버지, 다른 인기 멤버가 자리를 비울 때나 공연에 나올 수 있는 '언더 5분 대기조'라는 비참한 입장이 된 것이다.[23] 반면 연구생은 연구생이라는 신선한 이미지에 연구생 전용 공연도 있고 정규 공연의 언더를 뛸 기회도 있기 때문에 자신을 알리기에는 오히려 연구생 신분이 더 유리하다.
2013년 8월 8일 오사카 돔투어 공연에서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AKB48/드래프트 문서 참고. 처음에는 그 조건을 제대로 발표하지 않아 팀을 나간 히라지마, 연구생으로 쫓겨난 미네기시 등등을 다시 승격시키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뒷말도 있었지만 이후 제대로 된 계획이 발표되었다. 11세 이상의 여성[24] 중 소속사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인을 각 팀 캡틴 및 극장 지배인이 프로야구 드래프트 형식으로 뽑아 각 팀의 공연 언더로 바로 써먹겠다는 것.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던 제도이고 이대로라면 기존 연구생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꼴이라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고인 물처럼 변화없는 현 체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자극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1회 드래프트 회의를 거쳐 선출된 드래프트생들은 즉각 전력 투입이라는 당초의 발표와는 달리, 실제로 해보니 전력 투입감이 안 된다는 비판이 있었고, 결국 각 캡틴들이 건의를 했다는 형식으로 연구생처럼 남게 되었다.[25]
이후 매우 얄궂게도 딱 1년이 지난 2013년 8월 24일 도쿄 돔투어 3일차에서 13기, 14기 멤버들을 승격시킨 '''팀4''' 재결성 및 각 팀의 언더 체제를 없앤다는 서프라이즈가 발표되었다. 특히 재결성 신생 팀4의 캡틴이 미네기시라는 점에서 팬덤은 충격과 공포. 각 팀의 언더 체제 이야기는 16인 공연에 못 들어갔던 언더들이 각 소속된 팀의 공연만 언더를 뛰는게 아니라 다른 공연에도 언더를 뛴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출연 기회가 확장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보다 더 많은 경쟁자 및 연구생들과 다투어야 한다는 소리로 사실상 기존의 모든 공연을 뛰던 연구생 취급한다는 소리, 즉 16인 체제의 부활 및 이후부터는 새롭게 뽑힐 드래프트생들이 각 팀의 공연 언더로 우선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니 기존의 스타팅 멤버에서 제외된 병풍 멤버들이 나설 기회가 더욱 더 줄어들었다는 소리이다.
5.1. 시노다 → 요코야마 팀A
타카하시가 '총감독'이라는 자리를 맡게 되고, 캡틴 직은 시노다가 맡게 된다. 그러나 시노다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얼마나 더 캡틴 노릇을 할 지는 미지수였던 상황. 결국 2013년 7월 시노다가 졸업하면서 캡틴직을 요코야마에게 넘기게 된다. 극장에서 사실상 A 멤버들을 통솔하던 '음악학원 원장님' 역할의 마츠이 사키코가 캡틴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인기가 너무 딸려서...
초기에는 타카하시, 시노다 두 명의 1기생과 차세대 센터 마유유, 소수의 중견, 그리고 10기 이하 대다수의 어린 후배 멤버들로 구성된 팀으로 팬들의 우려가 많은 팀이었다. 1기생 선발들은 바쁘니 공연에 잘 못 나올 것이고 그럼 중견 몇 명과 나머지 후배들이 딩동댕 유치원이라도 찍는 거 아니겠냐라는 것. 그러나 이 시기에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한 요코야마 유이의 활약, 그리고 광푸쉬를 받게 된 카와에이 리나를 필두로 한 차세대 멤버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느샌가 안정을 되찾았다.
5.2. 오오시마 팀K
아키모토에 이어 오오시마가 캡틴을 맡게 된다. 시작부터 걱정을 사던 팀이었는데, 인기 멤버들은 건재하지만 언제 졸업할 지 모르는 고참이 대부분이었고, 나머지는 극장의 여신들이 대부분이며 차세대를 찾아볼 수 없는 무너진 밸런스라는 것. A에는 카와에이를 비롯해 10기 이후의 에이스들이 전부 배치되어 미래를 기대해볼 만 하고 B에는 당시 차세대의 중심이었던 시마자키를 비롯해 적절한 기수 분배로 가장 밸런스가 맞는다는 평이 나온 것에 비해 K에는 오오시마와 같은 인기 멤버가 떠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나마 K에게 주어진 미래의 보석은 SKE48의 나이 어린 에이스 마츠이 쥬리나와 13기의 에이스이자 당시 무시무시한 푸쉬와 주목을 받던 원석 미츠무네 카오루였지만 쥬리나는 애초에 원 소속이 SKE48였기 때문에 딱히 믿을 만한 카드는 못 되는 상황.
그런데 미츠무네가 건강상의 이유로 그룹을 떠나게 된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로 안 그래도 불안하던 오오시마 팀K에서, 커다란 희망이 너무나 쉽게 그들의 손을 떠나버렸다. 여기에 이타노 토모미, 아키모토 사야카의 졸업 및 미야자와 사에의 겸임 거부 등 오오시마를 비롯해 팀의 구심점이 될 만한 멤버들이 하나 둘씩 팀을 떠나게 되면서 K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말이 2013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게 되었다. 순수 팀K 출신 선발 멤버는 오오시마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5회 총선거에서 나가오 마리야, 무토 토무가 선전하였지만 선발급으로 올라오려면 아직 멀고 먼 길이 남아있었다. 결국 오오시마도 졸업을 선택하고 팀K는 정말로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장 캡틴 후보감이 누군지조차 제대로 정할 수 없던 상황. 결국 1월 26일의 리퀘스트 아워 2014 2일차에서 대조각이 실시된다는 발표가 나오는데 사실상 팀K 때문에 조각을 한다라는 메시지를 암시하면서[26] K 멤버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내부 단결력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지만 K 내부의 차세대에 대한 무관심이 이어지면서 만들어진 운영진의 참담한 작품.
5.3. 우메다 팀B
밸런스에 대해 가장 잡음이 없던 팀. 캡틴직을 힘겨워하던 카시와기 대신 '센 언니'인 우메다가 이를 맡으면서 팀 분위기가 많이 안정화되었다.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우메다는 선발 말석에 고참이라는 위치 치고는 개인 일이 많지 않아(...) 극장 출연률도 훌륭했고, 이 때문에 멤버들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인기 멤버와 극장 출연 멤버, 고참과 중견과 차세대의 밸런스가 가장 적절하게 짜여진 팀이었다. 비주얼 담당 멤버가 많아 B는 팀 뷰티의 약자라는 말도 나오기도. 2013년 중반에는 공연 분위기가 별로 안 좋다는 말도 나왔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5.4. 미네기시 팀4
새롭게 다시 만들어진 팀4. 2013년 8월 24일 도쿄 돔투어 3일차 서프라이즈에서 발표되었다.
최고참 멤버이자 연구생 강등 이후 연구생들을 이끌어왔던 미네기시가 캡틴인데다가, 멤버의 절반을 차지하는 13기생들이 연구생 공연을 정말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리더십 부족과 공연 퀄리티 저하가 문제가 되었던 옛 팀4의 문제점을 답습하지는 않으리라는 말이 있었고, 말 그대로 그러한 문제점은 발생하진 않았다.
다만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14기의 '삼총사'[27] 중심으로 푸쉬가 몰려들면서 다른 멤버들이 자동적으로 병풍이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일이야 원래부터 부지기수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룹 내의 파이가 작을 때는 푸쉬를 받는다 치더라도 '파이 자체가 작은데 가져가봐야 얼마나 크게 가져가겠냐'라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파이가 커지면서 이 차이도 놀랄만큼 커지게 된 것이다. 미츠무네에게 푸쉬를 다 뺏기고 한동안 암전 상태로 지내오던 13기 및 삼총사에게 주목을 뺏긴 나머지 14기들이 조금 실망을 한 듯. 멤버들 개인적으로는 서로 사이가 좋지만, 푸쉬와 비푸쉬 멤버 사이에 의도치 않은 묘한 분위기가 형성될 조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내심 대조각을 바라고 있는 멤버들이 나오기도.
6. 팀 셔플 3차 체제 (2014.04~2015.08)
2차 팀 셔플의 골자는 당시 차세대 멤버들의 모임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한참 헤매고 있던 팀4를 해체하여 기존 팀에 재편성하는 동시에 팀별 인원 16명 제한을 없애 중견 멤버들, 소위 '병풍들'의 졸업을 빠르게 유도하여 물갈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생각보다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는데, 일단 9기생이자 안정적 선발 라인에 진입한 요코야마 유이, 시마자키 하루카를 제외한 '차세대'들의 성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또한 중견 멤버들도 AKB를 나간 이후의 불안한 앞날이 걱정되는 것인지 좀처럼 그룹을 졸업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012년 8월 이후 졸업은 그들 개개인의 앞날을 위해서는 바람직했고 또한 그룹 전체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루어져야 했지만, 정작 중견은 그대로 남아있는 채 1,2,3기 위주의 '카미 멤버'들 위주로 진행되었다. 이미 졸업을 발표한 마에다 아츠코를 비롯해 이타노 토모미, 카사이 토모미, 아키모토 사야카, 시노다 마리코 등 초창기부터 그룹과 팀의 중심 역할을 맡아온 고참 멤버들이 2012년 후반부터 2013년에 이르기까지 잇달아 졸업하였으며, 결정적으로 마에다 이후 그룹 내 에이스 역할을 맡아오던 오오시마 유코까지 2013년 12월 홍백가합전에서 졸업할 것을 담담히 발표하였다.
여기에 '본점'인 AKB와 비교하여 '지점'이라 부르는 자매그룹들의 약진도 팀 셔플 2차 체제 이후에 나타난 돌풍이었다. 그 돌풍이 가장 매섭게 나타난 것은 2013년의 5회 총선거로, 비록 AKB 출신이긴 하지만 스캔들로 인해 하카타로 건너간 사시하라 리노가 경악의 1위를 차지했으며 그 외에도 SKE48의 W마츠이는 카미의 벽을 깨고, NMB의 두 에이스는 선발권에 진입했으며 결정적으로 SKE에서도 운영진에게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던 스다 아카리가 16위를 차지하여 선발에 차지하는 등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제 '본점'의 싱글에는 지점 멤버들을 위한 자리가 2개씩 주어지는 것이 관례로 자리잡았고 본점의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여러가지로 AKB라는 브랜드가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가고 동시에 잇따른 고참 멤버들의 졸업으로 팀 내 밸런스가 무너진다는 말이 나오면서 팀셔플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신공연도 받지 않은 채 웨이팅 공연으로 때우고 있는 상황에서 신공연이 나오고 1년 정도 공연하기지는 그대로 가야되지 않겠냐는 신중론이 많았다. 그러나 2014년 1월 26일 리퀘스트 아워 2014 2일차에서 대조각을 2월 24일에 실시한다는 서프라이즈가 터져나오면서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기존의 팀 셔플이 어떠한 예고 없이 조각 당일 바로 실시한 것과 달리 '대조각'을 내걸고 본점만이 아닌 48그룹 전체를 다 섞어버리겠다는 발표가 이어지자 멤버들이며 팬들이며 전체가 멘붕에 빠졌다. 2ch 등 지하 사이트에서 간간히 떡밥 수준으로 나온 말이 진짜 실행될 판.
그리고 '''2월 24일 정말 헬게이트가 펼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쥬리나의 완전 이적은 없었지만 '''노기자카46에서 멤버 겸임''',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충격파가 연타로 팬들의 뒤통수를 강타. 같은 그룹 내 이적은 양반이고 그룹 간 이적 및 겸임이 쉴새없이 발표되었다. 역대 모든 조각이나 인사이동 중 가장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받는 대조각은 그렇게 끝을 내렸고, 대조각 결과에 납득하지 못한 많은 멤버들이 차례차례 졸업을 발표하면서 결국 대혼란은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중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곧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그날의 일을 엿볼수가 있다. 제목은 2014 DOCUMENTARY of AKB48 The time has come 이라는 것으로 대조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팬들도 느낄수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부:https://tv.kakao.com/channel/2742489/cliplink/303091171
2부:https://tv.kakao.com/channel/2742489/cliplink/303091172
3부:https://tv.kakao.com/channel/2742489/cliplink/303091173
1-3부 통합: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45ACC65425CD5AB2ECCE9FBAC37C07F8CBB8&outKey=V128a61ce580cf61ae4756b9438f8028aaf5ea33b3a534bb11fd86b9438f8028aaf5e&width=1280&height=720
AKB48의 대조각 결과를 놓고 보면 A>K>B>4 순으로 팀이 점점 어려지는 느낌. 각 팀 간의 차별화를 확실히 한 것으로 보인다.
2월 27일 발표된 대조각 최종 확정안에서 일부 멤버들의 이적이 취소되고, 대조각 이전의 소속팀으로 돌아가는 것이 발표되었다.
2015년 3월 26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AKB48 봄의 단독콘서트에서 발표된 봄의 인사이동으로 일부 겸임 멤버의 겸임 해제가 발표되었다.
6.1. 타카하시 팀A[28]
타카하시가 1년 4개월만에 다시 팀A 캡틴으로 복귀. 와타나베 마유가 팀B로 떠나긴 했지만 코지마 하루나와 시마자키 하루카가 팀B에서 넘어왔다. 차세대 에이스 라인인 이리야마와 카와에이를 더하면 팀 뿐만 아니라 그룹 전체를 대표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라인업. 하지만 대조각 이전과 비교하면 팀A에 남아 있는 멤버가 단 6명(겸임 포함)뿐이라, 새롭게 호흡을 맞춰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타카하시 캡틴의 임무가 막중할 듯하지만, 이미 이 시기 타카하시 본인은 졸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만 졸업 전에 할 일을 마무리할 생각으로 팀A를 다시 다독이겠다는 의지를 표시했다.
이전까지는 푸시와 거리가 멀었던 나카무라의 부캡틴 임명과, HKT48을 겸임하던 코다마가 팀K로 이동한 대신 새롭게 두 명이 겸임과 완전이적의 형식으로 팀A에 합류한 것이 특기할 점. 또한 15기 연구생 2명이 합류함으로써, 1기와 15기를 모두 아우르는 폭넓은 구성이 되었다. 최연장자 코지마와 최연소자 타츠야 마키호, 니시야마 레나와의 나이차이가 무려 13살.
2015년 3월 26일 봄의 인사이동으로 후루하타 나오, 야구라 후코의 겸임해제가 발표되었다.
동년 5월 29일 두 멤버의 송별공연을 끝으로 겸임이 해제되었다.
6.2. 요코야마 팀K[29]
졸업을 발표한 오오시마의 뒤를 이을 팀K의 캡틴은 팀A의 차세대 캡틴이었던 요코야마로 결정되었다. 마츠이 쥬리나의 겸임이 유지되는 가운데, SKE48로 떠난 와타나베 미유키를 대신해서 야마모토가 AKB48을 겸임하게 되었다. 팀4에서 넘어온 코지마 마코를 제외하면 투톱이 전부 겸임 멤버로 채워지게 되는 미묘한 상황. 추후 총선거 등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코지마를 비롯한 차세대 멤버들의 성장이 필요해 보인다.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면 중견 멤버들 상당수가 이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팀 단결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점.
ハート・エレキ 싱글에서 팀K의 곡에 참여했었던 아이가사와 유모토가 대조각을 통해 팀K에 합류, 차세대 라인을 맡게 되었다.
6.3. 쿠라모치 팀B[30]
타 그룹간의 이동이 상당히 많았다. 오오바와 이치카와는 겸임이 이적으로 변경되면서 팀B를 떠났고, 캡틴이었던 우메다를 비롯하여 후지에와 야마우치의 완전 이적, 와타나베 미유키는 겸임 팀이 변경되는 등 많은 멤버들이 다른 그룹으로 떠나버린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이뤄진 팀B의 멤버 수혈은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팀A의 센터였으며 오오시마의 졸업 이후 더욱더 그룹 내에서의 비중이 커질 와타나베 마유가 팀B로 돌아왔다. 또한 JKT48을 겸임 중이던 두 멤버의 겸임을 해제하여 팀B로 전속시키고, 오가사와라가 NMB48에서 완전 이적했으며 토모나가는 겸임 멤버로 합류. 그것도 모자라 노기자카46에서 1~5싱글간 센터였던 이코마 리나를 겸임 멤버로 데려왔다. 그야말로 대조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엄청난 변혁.
전반적으로 팀 컬러를 젊게 만드려는 듯, 팀A에서 12기 에이스 타카하시 쥬리와 13기 에이스 오오시마 료카를 데려왔으며 팀4에서 3명이 이동하고 연구생 2명이 들어왔다. 15기 에이스인 오오와다는 타카하시 쥬리, 오오시마와 함께 차세대 트리오를 이룰 것으로 예상. 이쪽도 잔류멤버가 단 5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 캡틴 쿠라모치와 함께 잔류멤버인 오오야, 카시와기, 타카죠, 타나베, 나토리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듯.
2015년 3월 26일 발표된 봄의 인사이동으로 이코마 리나의 겸임해제가 발표되었다.
동년 5월 14일 극장 송별공연을 끝으로 겸임이 해제되었다.
6.4. 미네기시 팀4[31]
유일하게 캡틴의 변화가 없는 팀이다. 팀 A, K, B로 이동하지 않은 나머지 15기 연구생들이 전부 승격했으며, 10기 및 12기 멤버가 각각 2명씩 이동했다. 푸시멤버인 카토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어정쩡한 위치에 있던 멤버들이라,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또한 겸임/이적 멤버를 받아들여 키자키 유리아가 완전 이적 형식으로 부캡틴을 맡게 되었고, 코타니가 약 10개월여만에 AKB48 겸임 복귀, 시부야의 겸임이 발표되었다. 키자키와 코타니는 경력과 나이 면에서 거의 중견급에 이르렀기 때문에, 미네기시 캡틴과 더불어 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차세대 팀의 이미지는 유지하면서, 에이스 코지마 마코가 팀K로 이동한 이후 새로운 경쟁 체제에 돌입할 것을 예고하는 팀이라고 볼 수 있겠다.
2015년 3월 26일 봄의 인사이동으로 코타니 리호의 겸임해제가 발표되었다.
동년 5월 28일 극장 송별공연을 끝으로 겸임이 해제되었다.
2015년 8월 24일에 있었던 센슈락 공연에서 미네기시가 밝히기를 팀4는 시작부터 큰일이었다고 한다. 기존의 멤버와 새로온 멤버간에 의견차이가 심해서 쇼니치공연 당일까지도 리허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팀4 투어 때도 오카다 아야카와 카토 레나가 유닛곡을 같이 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지금은 같이 보낸 시간이 늘어서 멤버 간에 사이가 좋아졌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해서 캡틴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고 한다.
7. 봄의 인사이동(2015년 3월)에 따른 4차 팀 셔플 체제 (2015.09.~2018.03.)
2014년 12월 8일 총감독 타카하시 미나미가 2015년 극장 10주년 공연에서 졸업할 것임을 발표하고, 차기 총감독으로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했다. 그 후 3개월 뒤인 2015년 3월 총 지배인인 카야노 시노부를 통해 기존의 팀 체제에서 큰 틀을 그대로 놔둔 채 변화를 주는 인사이동이 발표되었다.
이 인사이동으로 각 팀의 캡틴들이 교체되었는데, 팀A는 타카하시 미나미에서 요코야마 유이, 팀K는 요코야마 유이에서 미네기시 미나미, 팀B는 쿠라모치 아스카에서 키자키 유리아, 팀4는 미네기시 미나미에서 타카하시 쥬리로 변경하고, 그 변경일을 2015년 8월 센슈락 공연으로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15년 8월 센슈락 공연에서 각 팀은 마지막을 맞이하고 새로운 팀 체제가 되었다.
또한 일부 겸임멤버들의 겸임 해제가 발표되었다.
2018년 4월 1일, AKB48 단독 콘서트에서 4차 팀 체제에 의한 마지막 팀 무대가 있었다. 그후 신팀 소속으로 무대를 가짐으로서 4차 팀 체제가 마무리됨을 알렸다.
7.1. 요코야마 팀A
7.2. 미네기시 팀K
7.3. 키자키 팀B
7.4. 타카하시 쥬리 팀4
8. 팀 셔플 5차 체제 (2018.04~)
2017년 12월 8일, AKB48 12주년 기념 극장 공연에서 발표되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운영은 더이상 예전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것을 선언하였다. 바로 팀 8을 최초로 대규모 겸임시켰다. 속된말로 전부를 AKB 본체로 그냥 꽂아버렸다.
돌이켜보면 이미 같은해 10월 상황은 최악이었다.
팀A - 10명
팀K - 12명
팀B - 8명 (마유유 졸업시)
팀4 - 13명 (이이노 미야비 졸업시)
이렇게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니 사실상 언더를 받지 않고는 팀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겨우겨우 연구생, 팀 8 등의 언더를 받으면서 근근이 유지하던 AKB 극공은 사실상 마비되었고 팀제는 유명무실해졌다. 투어 따윈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팀 B는 심지어 캡틴(키자키 유리아), 부캡틴(오오시마 료카)이 졸업한 상황에서 몇 개월이 지나도 차기 캡틴을 선임을 하지 않았다. 그 얘기인즉슨 다음 조각까지는 일단 버티겠다는 뜻이다.
결국 위처럼 운영은 팀 8 멤버 전원 타 팀으로의 겸임을 해결책으로 들고 나왔다. 팀 8도 비인기 멤버들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공연하는 게 전부였기에 어떤 식으로든 케어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또한 그동안 자매그룹 인기 멤버를 띄워주기 위한 형식적인 겸임도 다 해제했다. 사실상 AKB의 재시작을 선언한 셈이다. 재능 있는 16기 연구생도 승격하는 등 운영이 꽤나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AKB48 5차 팀 캡틴'''
팀A : 오카베 린
팀K : 코미야마 하루카
팀B : 타카하시 쥬리 → 이와타테 사호[32]
팀4 : 무라야마 유이리
(2018.04.02 시작)
각각 장점이 뚜렷하고 12기, 13기, 15기, 팀 8 등 다양한 기수에서 캡틴을 선정했다. 특히 오카베 린에게 팀 A 캡틴을 임명하였다는 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AKB선발로 밀어준다는 상징과 같은 위치다.[33] 사실상 모험에 가까운 것인데, 그동안 외전 격으로 잘하던 팀 8을 굳이 본점으로 끌어버렸기 때문이다. 팀 8이란 독특한 존재가 AKB에 물들어 과연 그것이 과거처럼 시너지가 날 것인가?라는 것엔 의문이 있다.
AKB 순혈 쪽의 문제는 나름 본점에서 어렵게 해쳐가던 차세대들 후쿠오카 세이나 , 고토 모에 , 쿠보 사토네, 히와타시 유이같은 재능들의 기회 문제이다. 팀 8의 인기가 더 높다 보니 이들에게 자칫하면 적은 기회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체제에서 AKB는 AKB대로 인원 부족으로 방전과 투어조차 못하는 최악의 신세. 팀 8은 팀 8대로 일이 없어서 졸업을 생각하는 멤버가 많았으니 서로 간의 수요는 어느 정도 일치했다.
요점은 하나의 팀으로써 그들이 잘 섞일 수 있느냐는 문제일 것이다. 향후의 운영진의 AKB로서의 로드맵이 중요해 보인다.
전팀 마지막 공연은 팀A 5월 16일, 팀K 5월 15일, 팀B 5월 28일, 팀4 5월 18일이며 신팀 공연 첫날은 팀A 6월 12일, 팀K 6월 24일, 팀B 6월 26일, 팀4 6월 6일로 공지되었다.
그랬는데 6월 13일에 갑자기 신팀K와 신팀B 공연 첫날이 각각 7월 6일, 9월 8일로 연기되었다.
8.1. 오카베 팀A
차세대 기대주와 에이스들을 엄청나게 넣어버린 팀이 되었다. 팀 A에 인기 멤버가 너무 몰려서 다른 팀과의 밸런스가 좀 무너졌다는 평가가 많다.
무카이치 미온은 말이 필요 없는 차세대 에이스. 또한 오구리 유이는 와타나베 마유의 후계자 포지션이고, 오카베 린의 현장 인기는 상당하다. 거기에 이리야마 안나, 카토 레나는 고정 선발. 총감독 요코야마 유이도 있다. 하야사카 츠무기, 쵸 쿠레나, 타니카와 히지리의 팀 8 멤버 역시도 악수 완매율이 좋은 편이다.
차세대에 기대받는 타구치 마나카, 스즈키 쿠루미, 마에다 아야카 등도 있어서 전체적으로 인기 밸런스가 잘 잡힌 팀이다.
8.2. 코미야마 팀K
유일한 1기생인 미네기시가 있는 팀이지만 미네기시 외의 멤버들은 대체적으로 낮은 기수로 구성되어 있고 팀 8의 중상위권 멤버들이 다수 겸임으로 들어왔다. 특이점으로는 무토 토무와 무토 오린 자매가 같은 팀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
8.3. 타카하시 쥬리 → 이와타테 팀B
유일하게 16기 승격 멤버가 없고 팀8 겸임 멤버보다는 기존 본점 멤버들에 초점이 맞춰진 팀이다.
쿠보 사토네, 후쿠오카 세이나, 타니구치 메구 3인의 차세대 트리오를 안정적인 선발 카시와기 유키, 타카하시 쥬리가 받쳐주고,
팀 A에서 오오야 시즈카,나카니시 치요리가 이동해 팀의 분위기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팀8 멤버들은 다른팀의 비해 선발적으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토크력이 좋은 오오타 나오, 요시카와 나나세,시미즈 마리아, 사토 시오리 등이 분포 되어 있어 토크 부분에서 좋은 평을 받고 있다.
2019년 5월 2일 이와타테 사호가 캡틴이던 타카하시 쥬리의 졸업 공연에서 팀 B의 다음 캡틴으로 지명되었다.
8.4. 무라야마 팀4
신 팀 체제로 전 팀에 비해서 라인업이 매우 약해졌다. 팀 4에서 성장한 코지마 마코, 코미야마 하루카 등이 다시 떠났는데 들어온 멤버는 에이스급은 별로 없다. 그래도 무라야마 유이리, 오카다 나나가 2018년 시점에 그룹 내 최고 레벨의 인기 멤버가 된 점이 위안이다. 멤버를 살펴보면 총선 상위 성적을 유지 중인 카와모토 사야가 남은 것은 희소식. 또한 사카구치 나기사가 팀 8에서 TOP5로 꼽히는 인기 멤버다. 나가노 세리카도 권내에 성공한 멤버다. 다른 팀들에 비해 어린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연장자인 마챠링이 96년생이며 최고참도 12기인 미유퐁이다.
유망주로는 16기의 에이스 야마우치 미즈키가 뛰어난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팀 8 우타다 하츠카 역시도 2016년 가입한 멤버로 팀 8의 뉴페이스 중 가장 기대를 받는 멤버다.
8.5. 연구생
[1] 활동 당시에는 캡틴의 이름을 넣은 기존 정규팀과 달리 오오바 팀4라는 명칭이 일반적이진 않았지만, 이후 미네기시 팀4가 만들어지며 이와 구분하기 위해 임의로 이 당시의 팀4를 오오바 팀4로 명명[2] 2012년 6월 24일 관동지역 전국악수회 때 승격 발표[3] 캡틴이 요코야마→타카하시로 다시 변경[4] 캡틴이 오오시마→요코야마로 변경[5] 캡틴이 우메다→쿠라모치로 변경[6] 캡틴 변화 없음[7] 팀8은 운영 방식 자체가 달라서 제외.[8] 이 때문에 8기생은 단체로 해고를 당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8기생들의 태도를 문제삼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셀렉션에 탈락한 10명 모두가 문제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이전에는 연구생 단계에서 문제를 일으켜 들킨 멤버가 없었다. 8기생들은 일부 멤버가 선배 멤버들을 조롱하는 내용의 글을 트위터 이면계정에 올린 일이 발각되는가 하면, 프리쿠라 사진이 유출되는 등 연구생일 때 수난이 닥친 기수였다. 비슷한 경우가 9기생인 오오바 미나였지만, 그녀는 이미 정규멤버로 승격된 이후에 들킨 경우였다.[9] 2007년 초반에 졸업하여 하기의 명단에는 없지만, 초창기 팀A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멤버. 타카하시 미나미가 매우 좋아했던 멤버 중 하나다.[10] 와타나베 마유, 키쿠치 아야카가 이때 운영이 점찍어 놓은 푸쉬 멤버였다. 그러나 키쿠치 아야카는 얼마 후 스캔들 문제로 인해 사퇴, 그 푸시 자리를 카시와기 유키가 메꾸게 된다.[11] 오리이와 마찬가지로 하기의 명단에는 없다[12] 조각 직후의 멤버 구성으로 부른 노래가 '君と虹と太陽と'이니 당시를 추억하고 싶다면 들어보자. 노래도 좋다.[13] 남친과의 프리쿠라(스티커 사진)가 발각당해서 쫓겨났다가 다시 복귀했다.[14] 2012년 SSA 콘서트에서 SKE48 팀 S와의 병행 발표[15] 이게 얼마나 심했으면 팀 K에서 옮겨온 카사이 토모미가 쟤(카시와기)를 도와줘야겠다라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 물론 '도망전설'로 유명한 카사이인 만큼 그녀 역시 캡틴 재목이 아니었다. 그런 카사이마저 도와줘야겠다고 할 정도로 카시와기의 리더십이...[16] 2012년 SSA 콘서트에서 NMB48 팀 N과의 병행 발표[17] 활동 당시에는 캡틴의 이름을 넣은 기존 정규팀과 달리 오오바 팀4라는 명칭이 일반적이진 않았지만, 이후 미네기시 팀4가 만들어지며 이와 구분하기 위해 임의로 이 당시의 팀4를 오오바 팀4로 명명[18] 9기, 10기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8기를 대량 해고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사실 8기는 해고당하기 전 연구생 시절에도 특출나게 뛰어난 멤버가 없었다. 그에 반해 9기, 10기는 그야말로 황금기수라고 불릴 정도로 깡패급 실력을 자랑하는 멤버들이 넘쳐난다.[19] 다만 당시 후배 멤버였던 아베 마리아는 시마다는 캡틴을 하기엔 안어울렸다고 안다레에서 말한적이 있다[20] 스캔들로 인해 물러났다가 이후 복귀[21] 오오바가 스캔들로 물러났을 때 잠시 캡틴 대리를 맡음[22] 2012년 6월 24일 관동지역 전국악수회 때 승격 발표[23] 이것은 이미 히마와리조 시절에도 있었던 일이다.[24] 초기 발표에서는 대상자가 11~18세였으나 8월 26일 공식블로그를 통해 상한선을 없앴다고 발표했다.[25] 이후 전원 2014년 대조각을 통해 승격한다[26] 조각을 안내하는 영상 메시지에 どうするんだチームK(어쩔거냐 팀K)라는 말이 대놓고 쓰여 있었다. 2ch 지하 게시판에서 떠돌던 말을 운영진이 그대로 가져온 것[27] 코지마 마코, 니시노 미키, 오카다 나나[28] 캡틴이 요코야마→타카하시로 다시 변경[29] 캡틴이 오오시마→요코야마로 변경[30] 캡틴이 우메다→쿠라모치로 변경[31] 캡틴 변화 없음[32] 타카하시 쥬리의 졸업으로 19년 5월 신캡틴으로 임명[33] 시노다 마리코, 타카하시 미나미, 요코야마 유이 이 세명의 레전드 만이 AKB 팀 A의 캡틴을 역임했다는걸 감안하면 기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34] SKE48 야하기 유키나의 여동생[35] 전 HKT 2기생과 동명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