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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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역사를 설명한 항목.
1. 기원
마약으로서의 담배는 술보다는 역사가 일천하지만 오랜 과거로부터 존재했다.
서기 7세기경 마야 신전의 벽에, 이미 '''제사장이 담배를 피우는 그림이 묘사되어 있다.''' 담배에 대해 말할 때 담뱃잎을 피운다는 개념을 떠나서 어떤 종류든 풀이나 약초 등에 불을 붙여 연기를 빨아들이는 '흡연' 문화는 기원전에도 인류 곳곳에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불씨라는 게 쉽게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서, 사제가 있는 신전 같은 곳에서 처방받아서(불까지 붙여줘서) 피우거나 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흔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술의식에 사용하던 것을 유럽인들이 기호품화 시켰다고 알려져 있으나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이미 남유럽에서 자생했었다는 설도 일부에서 제기된다.[1][2] 어쨌건 15세기~16세기 대항해시대 돌입과 함께 기호품으로 전 세계로 급속히 전파된 것은 사실이다.
2. 서구권 상륙
초기 식민지 시절 미국의 담배 재배에 관한 영상.
담배가 유럽의 문헌에 가장 처음 언급되는 것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항해를 통해 원주민에게서 잎담배를 받아온 뒤였다. 영국에선 16세기 후반에서야 귀족인 월터 롤리가 처음으로 담배를 피웠는데, 물론 당시에는 담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고, 원주민들에게 받아온 담배만으로 피워야 했다. 당연히 담배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골초가 된 롤리는 방에서 몰래 혼자 피웠다. 어느 날 하인이 우연히 보니 주인 머리에서 연기가 나는 것에 기겁하고 다른 하인들에게 주인 머리에 불이 난다고 말하는 통에 하인들이 물을 가득 가져와 그냥 머리에 끼얹어버렸다.(...)
막상 담배가 알려지긴 했어도 유행이 되는 것은 반세기나 지나서였다. 본격적인 담배 경작의 시초로 평가되는 것은 프랑스인인 장 니코가 '''약초'''로서 담배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담배의 주요 성분인 니코틴의 어원 또한 이 사람이다.
초기에는 시가만 있다가, 시가잎을 자르다가 남은것을 종이에 말아 피우는 궐련, 담배잎을 절여 파이프 등에 넣고 피우는 파이프 담배 등이 생겨났다. 물담배 역시 넓게 보면 파이프 담배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에 말하는 담배는 대개 궐련이다.
흡연자와 비흡연자와의 대결은 이미 담배 보급 초기인 15세기부터 존재했다.[3] 이때 열었던 토론회를 보면 지금과 매우 흡사한데 비흡연자는 입냄새, 건강 악화, 비흡연자에 대한 피해 등을 주장한 반면, 흡연자들은 입이나 손이 심심할 때 달랠 수 있다거나 초면에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옹호했다. 보급 초기에는 성적 흥분을 유발시킨다 하여 악마의 도구로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력을 감퇴시킨다.
심지어 지금과 달리 구취제거 등의 이유로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담배를 강요하기도 했고, 현대에는 만악의 근원이지만 당시에는 약초로 취급하였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여성이 담배를 피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컸는데, 여성의 흡연은 남녀평등의 상징이라며 여성 흡연을 적극 권장하던 움직임도 이 때 일어났다. 럭키 스트라이크는 당시 PR의 달인이었던 에드워드 베네이즈[4] 는 심리학자 A.A. 브릴과 함께 '''여성 흡연은 여성 해방의 상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담배 소비량을 크게 늘렸다. 자유의 횃불 문서 참조. 이상론이 항상 좋은 쪽으로만 쓰이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주는 사례. 이 광고 이후로 늘어난 흡연량 때문에 폐단으로 인해 건강을 해친 자들 또한 크게 늘었다.[5]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는 동안 군대의 정식보급은 물론 미군은 아예 전투식량에 담배를 포함해 공급하는 통에 전세계에 걸쳐 대량으로 골초를 양성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당시 미군이 지급하던 K-Ration의 경우 끼니마다 4개비씩의 담배가 레이션에 공식 포함되어 있다.# 미국서 나온 전시광고들을 보면 남녀공히 대놓고 흡연을 권장하며 여성이 담배를 물고 있는 장면들도 광고에 많이 나온다. 공식적으로 당시 미군은 전시 상황에서 심신을 혼미하게 하는 진정제인 술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대신 긴장 상태나 가혹한 상황에서 이성을 잡을 수 있는 각성제인 담배와 커피를 병사들에게 적극 권장했다.
반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흡연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흡연하는 병사, 장교들에게 담배의 공급을 막았다고 한다. 사족으로 패전 후 독일에선 미군의 담배가 대용화폐로 사용되기도 했다.[6]
3. 한국 상륙
우리 나라 사람이 몰래 남령초[南靈草](담배)를 심양(瀋陽)에 들여보냈다가 청나라 장수에게 발각되어 크게 힐책을 당하였다. 담배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풀인데 그 잎이 큰 것은 7, 8촌(寸)쯤 된다. 가늘게 썰어 대나무 통에 담거나 혹은 은(銀)이나 주석으로 통을 만들어 담아서 불을 붙여 빨아들이는데, 맛은 쓰고 맵다. 가래를 치료하고 소화를 시킨다고 하는데, 오래 피우면 가끔 간(肝)의 기운을 손상시켜 눈을 어둡게 한다. 이 풀은 병진·정사년(1616~1617년)간부터 바다를 건너 들어와 피우는 자가 있었으나 많지 않았는데, 신유·임술년(1621~1622년) 이래로는 피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손님을 대하면 번번이 차[茶]와 술을 담배로 대신하기 때문에 혹은 연다(煙茶)라고 하고 혹은 연주(煙酒)라고도 하였고, 심지어는 종자를 받아서 서로 교역(交易)까지 하였다. '''오래 피운 자가 유해 무익한 것을 알고 끊으려고 하여도 끝내 끊지 못하니, 세상에서 요망한 풀이라고 일컬었다.''' 심양으로 굴러 들어가자 심양 사람들도 또한 매우 좋아하였는데, 오랑캐 한(汗)은 토산물(土産物)이 아니라서 재물을 소모시킨다고 하여 명령을 내려 엄금했다고 한다.
―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1638년) 8월 4일 갑오 1번째 기사
조선에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부터 고추, 호박 등과 함께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엔 남령초(南靈草), 연다(煙茶), 연주(煙酒), 담박괴(淡泊塊), 담파고(談婆姑), 담바구 등등 다양하게 불렸다. 현재 남아있는 문헌 중 가장 오래된 담배 언급은 1614년 이수광이 펴낸 지봉유설이다. 그리고 여기서도 약초로 와전되어 있다(…). 서구와는 다르게 말아 피우는 시가 대신 파이프 담배라 할 수 있는 '곰방대'부터 들어왔다. 조선시대 담뱃대의 길이마저 반상과 권력의 차이를 반영했으며 양반님네들이 피우던 장죽이 서민들에게 넘어오면서 곰방대로 간소화되었다. 담배라는 이름은 '조끼'(jaque)나 '빵'(pão)처럼 포어 tabaco의 일본식 표기인 タバコ가 담바고로 전해진 것에서 유래되었다.
연장자 앞에선 안경도 쓰지 않는 게 예의였던 조선이지만 의외로 담배에 대해서는 별도의 제한이나 금기가 없어 남녀노소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웠다. 서양처럼 여성흡연을 금기시하는 문화도 없어서 조선시대 담배와 가장 친숙한 직업군중 하나가 궁녀였다. 서당에서도 훈장과 학도가 같이 맞담배를 피우고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담배 피우라고 해놓고 귀엽다고 칭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상에 지독한 혐연가인 광해군에 의해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한국의 예절이 되었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데 이건 사료가 아니라 이성주의 엽기조선왕조실록이 출처로 근거없는 이야기다. 어린아이들이 아무런 제한없이 담배 물고 다닌 풍경이 조선말 외국인들 기록에까지 꾸준히 나온다.[7]
조선왕중에선 정조가 술과 함께 담배를 즐겼지만, 아들 순조는 혐연가라서 "애들이 젖만 떼면 담배부터 입에 문다." 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실학자 이익이 자신이 접한 것들을 여러 주제에 걸쳐 기술한 성호사설에 담배에 관한 부분이 나와 있다.
보다시피 담배가 대단히 해롭다며, 오죽하면 '''담배 구하러 다닐 시간에 공부하고 돈 벌면 뭐라도 되겠다'''며 까고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당시에 대단히 담배가 널리 퍼져 있던 것과, 흡연이 영 좋지 않은 행동이라는 인식 역시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는 대목. 담배가 해롭다는 이유로 제시된 내용이 오늘날의 상황과 매우 비슷한 것이 담배 피우면 건강에 안 좋고 돈 많이 드는 건 당연히 옛날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우리나라에 담배가 많이 유행된 것은 광해군(光海君) 말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로는,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담파국(湛巴國)이란 나라에서 들어온 것인 까닭에 속칭 담배[湛巴]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가 태호 선생(太湖先生)[8]
에게, “지금 이 담배란 것이 사람에게 유익한 물건입니까?”고 묻는다. 태호 선생은, “담배란 가래침이 목구멍에 붙어 뱉아도 나오지 않을 때 유익하고 구역질이 나면서 침이 뒤끓을 때 유익하며, 먹은 것이 소화가 안 되고 동작이 나쁠 때 유익하고 가슴이 조이면서 신물이 올라올 때 유익하며, 한겨울에 추위를 막는 데 유익한 것이다.”고 대답했다. 어떤 이는 또, “그러면 담배는 사람에게 유익하기만 하고 해는 없다는 말입니까?”고 묻는다. 태호 선생은, 〈몸에 이롭고 해로움을 따진다면〉 해가 더 심할 것이다. 안으로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듣고 보는 것까지 해쳐서 머리가 희게 되고 얼굴이 늙게 되며, 이가 일찍 빠지게 되고 살도 따라서 여위게 되니, 사람을 빨리 늙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 담배는 유익한 것보다 해가 더 심하다고 하는 것은 냄새가 나빠서, 재계(齋戒)하여 신명(神明)을 사귈 수 없는 것이 첫째이고, 재물을 없애는 것이 둘째이며, 세상에 일이 많은 것이 진실로 걱정인데, 지금은 상하노소를 막론하고 해가 지고 날이 저물도록 담배 구하기에 급급하여 한시도 쉬지 않으니 이것이 셋째이다. 만약 이런 마음과 힘을 옮겨서 학문을 닦는다면 반드시 대현(大賢)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글에 힘쓴다면 문장도 될 수 있을 것이며, 살림을 돌본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역(周易)》에, ‘상륙(上六)은 오르는 이치에 어두우니, 곧고 바른 데에 한결같이 쉬지 않는 것만이 이롭다.’ 했다.”고 답하였다.” - 이익, 성호사설(星湖僿說) 만물문(萬物門) 남초(南草)편
이것 말고도 담배가 가져온 부작용으로 쌀 생산량의 감소를 드는데. 특용작물을 팔면 같은 면적에서 쌀농사를 할때보다 몇십배 이득이라는 말에 너도나도 쌀농사를 포기하곤 해서 재정적, 의식주적으로 골치였던 시기였기에 담배 때문에 굶주린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9] 사실 담배가 커피, 인삼 수준은 아니지만 땅의 기력을 빨아들여 크게 황폐화시키는 부작용이 있기에 더더욱 이런 말이 나올만도 하다. 미국 초기 개척시대에 원주민들의 땅을 야금야금 점령한 것도 당시 주력 수출품인 담배를 심을 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구한말(대한제국기)에 이르면 그 곰방대조차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간소화된다.[10] 궐련은 개화기를 전후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며, 초기에는 독하고 비린 맛이었으나 이후로는 1mg 등 약한 담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과거 한국에서는 타르함량 10mg 이상의 담배는 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는 10mg 이상으로 팔리는 다비도프, 럭키 스트라이크 등도 모두 타르 함량을 상당히 깎아내 출시해야 했다. 현재는 타르 함유량 제한이 없어졌으나 고타르 담배가 인기없는 국내 사정상 타르 함유량 10mg을 넘기는 담배를 찾기 힘들다.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5년에는 일제에게 빚을 갚기 위해 대한매일신보에 '금연 동맹선언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빚이란 일종의 강제적 차관으로, 조선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간 차관을 떠안겨 생겨난 빚이었다. 금연하여 담배값을 아껴 빚을 갚자는 운동이었고, 완전히 끊을 건 없이 몇 달간만 담배값을 모으면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기생들이나 고종도 운동에 동참했다고 한다. 이 운동은 결실을 맺어 실제 일부 빚을 갚기는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수가 틀어지자 또 차관을 떠안기는 바람에 결국 실패. 이때 발생한 웃지 못할 아이러니로, 담배를 끊은 사람들 상당수가 대용품으로 은단을 구입했는데, 이게 일본 수입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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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최초로 자체제작한 담배는 1945년 광복을 기념해서 바로 만들어진 승리 담배. 그 다음으로 동년의 장수연이 이어졌고, 이듬해 1월에 백두산, 무궁화, 백구 등이 생산되면서 국산 담배 역사가 시작되었다. 자세한 것은 링크 참고. 덤으로 한국 담배 가운데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1949년[11] 에 제조가 시작되어서 1981년 11월에 단종된 군용담배 화랑이다.
참고로 북한 담배는 한국산과 차원이 다를 정도로 지독하다고 한다. <남쪽손님>을 보면 경수로 공사 일로 북한에 가서 일하던 한국 관계자들이 북한 측 인사들과 어찌 친해져서 담배를 교환하여 서로 피웠더니 북한 관계자는 "뭔 놈의 담배가 피우나마나한 느낌이냐?" 반응이었고 한국 측 관계자들은 담배 피우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독한 거에 놀랐단다. 기 들릴이 그린 '평양'이라는 만화[12] 에서도 보면 같이 일하는 북한인이 담배를 피는데 얼마나 지독한지 근처에 있으면 저절로 기침이 나왔다고... 월북군인(...) 찰스 로버트 젱킨스의 회고록을 보면, 북한에서 담배라고 지급해 준 물건들은 하도 금방 타들어가서 침으로 축축이 적시지 않으면 단 3모금도(...) 빨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젱킨스가 언급하는 이 시기는 북한의 나름 리즈시절이라는 1970년대인데.... 안습....
한국에서도 아직까지 어른들에게 선물로 담배를 보루 (10갑) 단위로 사다 드리는 문화가 있지만, 북한에서 담배는 선물을 넘어서서 '''뇌물'''로까지 써먹을 수 있는 귀하신 몸이다. 사용처도 다양해서 기차표를 얻는다거나(...) 시장에서 자리를 얻는다거나, 열차에 짐을 싣는다거나[13] , 심지어는 사업상 고위간부에게 뇌물을 바칠 때에도 담배가 등장한다. 북한 국내에서도 이런저런 담배들이 생산되지만, 가장 인기있는 것은 이른바 '''고양이 담배'''라 불리는 영국 RBH사의 CRAVEN "A"로 북한 내에 합작공장이 건설되어 이곳에서 담배를 생산한다. 장마당에서 보통 1갑에 3,000원 정도에 팔린다고 하는데, 북한에서 규정상 현금으로 지급되는 월급은 아무리 당간부라도 1만원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14] 엄청난 고가상품이다. 보통 북한 중산층들이 월 생활비로 15~20만원 정도 쓴다는 점을 감안해도 한국에서 1갑에 3~6만원 하는 수준. 다만 요즘에는 고양이 담배는 한물 갔고, 2012년 즈음부터 중국산 '장백삼' 담배가 주요 뇌물의 지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물론 중앙당 최고위층 간부들에게는 양담배가 올라가고....
남한에서는 그나마 정책적인 노력에 힘입어 흡연율이 조금씩 줄고 있는 추세지만, 북한은 아직도 '''아시아 2위의 흡연율'''을 기록할 정도다. 북한 매체에서 말로는 금연정책을 취한다고 떠들지만, 애초에 먹고 살기 힘든 주민들이 건강 따위를 챙길 리가 없다. 어떻게든 낙을 찾으려 마약 구매도 서슴치 않는 판이다보니 차라리 담배를 피우는 게 애교로 보일 지경(...) 더군다나 아직도 담배 자체가 사회적인 지위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인식 개선이 쉽지 않다.[15] 당장 국가원수라는 인간이 방송에서 버젓이 담배 꼬나물고 다니는 것만 봐도... 어쩌면 통일이 된 후에 가장 골치아픈 사회문제가 될 수도 있다.
4. 담배 = 명약?
과거 편두통, 매독 등에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유명하였다. 북미 원주민들 사이에서 한국의 인삼과 같은 취급을 받았으며, 그것이 그대로 유럽에도 이어지게 된다. 유럽의 몇몇 고서적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한국의 인삼을 소개하면서, "북미 원주민들 사이에서의 담배와 같이 인삼은 한국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린다"는 소개도 종종 있을정도이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를 보면 그 당시 담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잘 알 수 있다. '''담배 잎을 럼주에 침지시켜 마시며 열병을 이겨내는''' 묘사가 나온다. 물론 실제로 했다가는 니코틴 중독 때문에 골로 가기 딱이다. 작중에서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는데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몰라 날짜 계산을 할 수 없었다고. 작중 설명으로는 '토인들은 모든 병을 담배 잎으로 치료한다'라고 하는데 로빈슨이 체질적으로 건강했고, 섬에 들어와서도 영양섭취를 충분히 했기에 스스로 이겨냈다고 보는게 맞다. 사실, 담배를 약으로 쓰던 시기는 담배보다 훨씬 더한것도 약으로 쓰던 시기이다. 당시에는 아무래도 환자 개개인의 목숨보다는 치료가 되는가 안되는가에만 초점을 맞추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고, 오늘날 의학이 발달하고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인권이라는것이 생겨난 이후부터는 당연히 환자를 한방에 골로 보낼 수 있는 그러한 위험한 물질은 효과 유무를 떠나서 사용을 안하는 추세로 흘러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명말~청초에 쓰여진 경악전서에서도 연(烟)이라는 이름으로 담배를 써놓았는데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다. 저자가 골초였다는 야사가 남아있다. 여기서는 담배가 중국 남부에서 퍼지기 시작해 북상했다고 한다.
과거 유럽에서는 담배 급성중독[16] 의 약으로 사과와 식초를 사용했다고 하니, 혹시 담배로 인해 저런 증상을 겪는다면 한번 시험해봐도 무방하겠다. 저것들은 담배와는 다르게, 해가 될것은 없으니 말이다.
1950년대까지 집안 식구들이 배가 아픈 아이에게 담배를 물렸던 적이 있었다. 과학적으로 보면 당시 구충제가 널리 퍼지지 않았던 시점에서 뱃속에 기생충이 너무 많이 자라있는 경우에 담배를 피움으로써 잠시 기절시킨 것. 담배연기는 기도를 통해 들어가는 것 이외에도 식도에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50년대에서는 아이들이 담배를 태우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뭐 이 시절 시골에서는 양귀비꽃도 약으로 쓰여서 어린아이가 아프면 이 가루를 달여마시게 했던 적도 있긴 하지만.
물론 이상의 담배 예찬론은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당대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오늘날 담배는 건강에 나쁜 기호품일 뿐이다.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