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 우주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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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사령부 부대마크
United States Space Command, USSPACECOM
미군의 통합전투사령부 중 하나. 4개월 후 신설된 미 '''우주군'''의 핵심 세력이다. 현실 속에서 우주군이라 할만한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는 군대는 아직까지 미군 외에는 소련군/러시아군 뿐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엄청난 투자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세계를 휘어잡는 수준인 러시아와 미국의 노하우를 따라가려면 아직은 많은 투자, 노력이 요구된다.
우주사령부와 우주군이 따로 있어서 두 조직을 서로 헷갈려 할 수도 있는데, 우주사령부는 기존 10개의 지역/기능별 통합전투사령부와 동급으로 우주 전력의 총괄적인 지휘통제를 담당한다. 그리고 우주군은 우주 작전을 위한 인력의 교육 및 훈련, 전력의 건설 등을 임무로 한다. 쉽게 말해서 각각 우주 군사력의 운용, 육성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셈.
역사를 논하자면 전략공군사령부나 전술공군사령부, 항공우주방위사령부 등의 여러 조직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뜯어와서 설립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보자면 아무래도 냉전의 산물인 미소 두 초강대국의 '''우주 경쟁'''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세계대전기 이후부터 베르너 폰 브라운 등 나치 독일의 로켓과학자들을 포섭하여 본격적으로 로켓 개발에 착수했지만, 육군, 해군, 공군, 심지어 해안경비대(...)까지 로켓 개발에 나서는등 매우 중구난방으로 진행되었기에 일처리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다. 결국 지지부진한 경쟁 끝에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로 전미가 좌절했다. 이에 NASA가 설립되었고, 공군과 방위산업체들이 X-15 테스트 파일럿 출신을 다수 갈아넣으며 우주에 사람을 보내보자고 시작한 Man In Space Soonest 프로젝트가 유리 가가린에게 밀리자, JFK의 폭탄 선언으로 엄청난 양의 미국의 인적, 물리적 자원과 나치독일의 로켓, 미사일, 과학자들을 갈아 넣은 역사상 초유의 공밀레가 시작되었다. 인류의 꿈과 희망을 안은채로, 달도 가고 다른 행성도 가는 우주시대가 열릴 거라고 전 인류를 들뜨게 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 이걸 하기엔 암울했던 시대 배경으로 인해 우주 나가기 전에 인류 멸망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게다가 소련의 보스토크-보스호드-존드 계획에 맞서는 머큐리-제미니-아폴로 라인업은 체제경쟁 외의 실용적인 이득이라고는 눈꼽만큼에 불과한 유인 달 탐사 미션이었기 때문에[1] 미국은 NASA와는 별개로 군사적인 목적의 우주개발에도 힘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공군이 우주전을 대비하기 위해 우주전투기(...) X-20 다이나 소어(Dyna-Soar)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사업들에 허리가 휠 지경...
그러다 60년대 중반, 소련이 진행하던 살류트 계획의 Orbital Piloted Station, 일명 알마즈 계획이 우주에 군인 우주 비행사들을 상주시키며 미군을 우주에서부터 압도하려는 군사적 목적이라고 판단한 미 공군은 제미니 계획의 외전 격인 MOL 프로젝트를 발족[2] , 다시금 NASA와 별도로 우주 비행사들을 뽑아제끼기 시작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공군의 앞선 유인 우주계획들과 달리 이 계획은 NASA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비록 이들은 자체적으로는 무인 목업 한번 쏘는 것으로 예산 문제가 제기되며 프로그램이 취소되었지만, 이 우주비행사들 중 일부가 NASA로 전속되거나 훗날 공군의 우주사령부에서 활동하며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또한 이들이 '''스타워즈'''를 도모하며 개발한 기술들이 NASA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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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자주 나오는 이런 무선 EVA 로켓 팩[3] 가 그 예로, 우주비행사들이 소련 우주선 정찰에 용이하게 써먹을 것이라 판단하여 공군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4] 을 NASA가 적절히 개량한 것이다. 뭐 실제로는 그래비티 같은 영화마냥 막 쓰지는 못하게 한다지만... 또한 우주왕복선 역시 개발 과정에서 공군이 '''매우''' 많이 관여했고[5][6] 더러는 공군의 이런 참견이 오히려 민폐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우주왕복선을 망작으로 만드는데 막대한 기여를 한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달아버린 곳이 바로 공군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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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우주복 역시 아폴로 이후의 우주복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 사진의 할아버지는 원래 공군에서 우주비행사로 뽑았다가 MOL이 취소되며 NASA로 전속된 로버트 크리펜으로, 우주왕복선의 역사적인 첫 미션 STS-1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우주개발에 있어 미 공군은 NASA에 참견을 많이 했는데, 답답해서 내가 쏜다(?)는 취지에서 직접 발사하는 것들도 많았고, 직접 개발하는 것들도 많았다. X 실험기 시리즈를 보면 알겠지만 공군도 우주전투기(...)에 대한 로망이 상당했기에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속 준궤도 우주비행기나 그와 비슷한 컨셉의 연구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한다. SR-71이나 SR-72, U-2 같은 것만 봐도... 장차 궁극의 셔틀이라 할 수 있는 SSTO 우주왕복선 역시도 실제 개발에 들어간다면 NASA보다는 미 공군의 역량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
하지만, 우주개발이 '''유인''' 프로그램이어야만 하냐는 반론이 가능한데, 미 공군은 우주개발 말고도 많은 곳에 돈을 써야 해서라도 유인 우주개발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주 비행사 선발 대신 ICBM 노하우를 활용한 군사위성, 우주병기 연구에다 우주개발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 공군은 전략공군사령부와 시스템사령부[8] , 전술공군사령부 등의 여러 조직에서 우주개발 전문 자원을 떼어 1982년 9월 1일부로 우주사령부를 창설하여 NORAD의 사령관이 겸직하는 형태로 조직이 개편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미 공군의 발목을 잡은 놈들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NASA와 우주왕복선.'''
1980년대 초반, NASA는 '''지나치게 끗발이 강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1983년 초 로널드 레이건이 발표한 역사적인 SDI를 주도한 인물이 NASA의 셔틀 프로그램과 관계된 인물이었던 것에 기인하는데, 그 인물은 미 공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이자 MOL의 우주비행사 후보자 출신인 제임스 앨런 에이브러햄슨 중장[9] 이었다. 우주사령부가 막 야심차게 창설된 이 시절 미 공군은 옛날 제미니 계획 때 발사체로 쓰고 화성 탐사선을 보낼 때도 쓰였던 타이탄을 개량해서 오늘날의 소유즈처럼 '''아무때나 부담없이 싸게싸게 쏴제끼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게 NASA의 높으신 분들의 눈에는 안 그래도 아폴로 계획 이래로 돈 없어서 골치아픈 NASA의 예산을 뺏어갈 경쟁자로 보였다. 결국 '''그깟 군사위성들 우리가 셔틀로 쏴준다! 우리 셔틀이 아틀라스고 타이탄이고 다 알아서 해준다!'''는 의도로 국회의원들을 감동시켰고, 그런 의원님들 덕에 예산을 받았으니 결국 국회의원들을 우주에 보내주고(...) 어서 우주개발 해본 적도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낚아서 우주 보내주고(...) 굳이 유인 미션으로 안해도 되는 상업 위성을 발사해주고... 그러면서 STS-4까지 마련해놨던 우주왕복선의 사출 장치는 치워버릴 정도로 우리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자만심에 빠졌고... 막장.[10]
어쨌든 툴툴대면서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지시대로 해야 했던 공군은 우주개발에서 주도권을 NASA에 내줘야 했고, 이런 NASA의 대중 홍보에 눈이 먼 서커스 같은 행보에 발끈할 법도 했지만, 정작 이렇게 셔틀을 한달에 몇 번씩 신나게 쏴서 국방부의 페이로드도 셔틀로 쏘는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짰던 이들 중 '''SDI의 두목인 에이브'''[11] 가 있었던지라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에이브가 NASA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굴러갔지만, 에이브가 1983년 초 백악관에서 SDI를 발표하며 1984년 4월 설립한 대통령 직속 연구소장으로 옮겨가면서부터 NASA는 흑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공군에 약속했던 국방부 기밀 위성의 발사를 차일피일 미루는 대신 정치인들을 올려보내고[12]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올려보내며[13] 대중에게 관심을 얻고 예산 확보에 용이할 우주쇼나 기획하고 정작 우주왕복선 페이로드는 텅텅 빈 채로 우주에 외유나 다녀오는 식의 운용이 반복되었다. 정작 이 시절에 진행된 국방부 기밀 위성 미션[14] 은 딱 두 번 뿐[15] 이었다. 이렇게 NASA는 계속해서 여론을 의식하고 보신주의적인 행태에 익숙해졌고, 결국 그 대가는 '''STS-51-L 챌린저 폭발사고'''로 돌아왔다. 그렇게 NASA의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하며 찌들다시피했던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적 행태는 최악의 참극으로 돌아왔고, NASA의 셔틀 프로그램은 싹 캔슬되었다.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의 우주왕복선 발사대 정비가 거진 완료되며 디스커버리를 서부에서도 쏘려는 STS-62-A 미션이 계획되었지만 셔틀 잘못 발사해서 그 끔찍한 사고가 터졌는데 공군이 셔틀을 쏜다니 안될거야 아마... 후일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재개되며 SDI의 일부로 추정되는 국방부 기밀 페이로드가 셔틀로 발사되는 적도 다시 있긴 했지만[16] , 에이브는 챌린저 사고가 터졌던 1986년 상원에서 4성 진급 인사청문회가 거절되는등 시련을 겪다가 로널드 레이건의 퇴임에 맞춰 공군에서 퇴역했고, SDI도 흐지부지되었다가 Missile Defense라는 상당히 축소된 지상에서의 요격 버전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챌린저 참사로 인한 미국의 우주개발 부서 재정비 과정에서 미군은 공군우주사령부와는 별개로 운영되던 육/해군의 유사 사령부를 총괄하는 통합사령부인 우주사령부(United States Space Command)를 창설, 공군우주사령관이 겸임케 했다. 비록 2002년 도널드 럼즈펠드의 구조조정을 통해 통합우주사령부는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공군우주사령부는 군사용 우주개발을 이어갔다. 반면 모체였던 전략공군사령부는 냉전이 끝나자 해체...[17]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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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우주사령부 당시의 부대마크
게다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우주사령부 외에도 대통령 직속 연구소에서 SDI를 연구하기도 했다. SDI 역시 현 시대의 기술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식하게 들이박은 공밀레이자 돈지랄이었고 NASA가 STS-51-L 직전까지 여러 병크를 저지르며 그나마 우물쭈물 진행하려던 것조차 싹 엎어져버렸지만, 이 때의 연구 성과는 비단 공군의 우주전 연구라는 SF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핫이슈인 MD 등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냉전이 이내 끝나버리고 걸프 전쟁, 코소보 전쟁 등 항공우주군 전력이 큰 역량을 발휘하며 이런 조직구도는 이어졌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21세기에는 쓸데없이 비대하다는 평가를 받아서 도널드 럼즈펠드의 칼질을 통해 조직이 축소되었다. NORAD는 이름처럼 항공우주'방위'만 담당하고 우주사령부는 핵무기 담당 사령부인 전략사령부(STRATCOM)으로 간판이 바뀌었으며 공군우주사령부는 전략사령부 내의 최대 조직 정도의 위상에 그치게 되었다. 하지만 우주에서의 레이저 요격, NASA가 STS-107 사고까지 겹치며 백기를 든 우주왕복선이라는 개념을 군사적 용도로 활용하는 등[18] 의 무시무시한 연구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역시 천조국은 씀씀이가 남다르다.
한편, 사이버전의 발달에 있어서도 공군의 사이버전 부대는 인공위성들을 다량으로 띄우고 네트워크 중심전을 펼치는 특성상 우주사령부에 속하게 되었다. NSA의 스턱스넷 개발에도 일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정보전에서도 큰 역할[19] 을 하고 있다.
2018년 6월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합중국 공군에서 '''미합중국 우주군을 분리 독립'''시켜 육군, 해군, 공군, 해안경비대, 해병대에 이어 미국의 제6군으로 독립시킬 것임을 발표했다.# 우주군 창설이 현실화될경우 우주사령부가 그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8월 9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우주군을 창설하여 미국의 제6군으로 할 것임을 확정 발표했다. 우선 우주군 창설 준비를 위해 통합전투사령부에 미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우주사령부를 재창설하여 우주군 창설요원들을 각 군에서 전속 배치하여 2020년 정식으로 우주군을 창설하기로 확정되었다.# 임무 특성상 공군우주사령부가 우주군 창설 주축이 될 것이 확실해졌다.
2018년 12월에 행정명령을 서명한 상태이다.
2019년 8월 29일에 백악관에서 우주사령부 재창설 행사가 열렸다. 재창설된 우주사령부에는 공군우주사령관이던 제이 레이먼드 공군대장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새 본부가 차려질때까지 콜로라도주 패터슨 공군기지에 임시 사령부가 차려질 예정이다.# 아직 의회에서 우주군 창설을 공식 의결한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에 의회내의 예산중복 우려등의 회의적 시각도 점차 바뀌는 추세라서 구상대로 2020년 우주군이 창설될걸로 보인다.
2019년 12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미합중국 우주군을 신설하는 국방수권법에 서명하고# 신설된 우주군의 초대 참모총장에 우주사령부 사령관인 제이 레이먼드 공군대장을 전군시켜 임명했다. ## 참모총장이 통합전투사령관을 겸임하지 않는 미군의 제도 상 우주사령부에는 조만간 새 사령관이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8월 20일 우주군참모총장을 겸임하던 제이 레이먼드 우주군대장의 후임 우주사령관으로 제임스 디킨슨 육군대장이 임명되었다.
현 사령관은 제임스 H. 디킨슨 육군 대장으로 우주사령부 부사령관을 맡던 중 대장 진급과 함께 부임했다.
앨라배마주 헌츠빌로 사령부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사령관은 1980년대 창설시부터 오늘날까지 잠깐의 기간[20] 을 제외하면 4성 장군이 보임되고 있다. 조종사 경력 못지 않게 엔지니어로서도 공군에서 손꼽히는 이들이 보임되며, 21세기 들어서는 조종사 경력보다도 공밀레를 얼마나 잘 견뎌냈느냐가 인사에 있어 더 중요시된다. 다만 의외로 NASA에서 활동한 우주비행사들은 적은 편인데, 이는 우주왕복선 시대 이후의 NASA 우주비행사들은 군경력과 NASA 경력을 모두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서 웬만하면 대령 정도만 달고[21] 은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2]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행사 불려가서 꼬마들이나 우주덕들에게 사인해주고 셀카 찍어주다보면, 그리고 불곰국 스타 시티를 드나들다보면 군인으로서의 신원보호는 안드로메다로(...) 그래서 우주비행사들보다는 '''로켓과 우주선들을 직접 관리하는 엔지니어'''들이 오히려 군 경력 관리에 더 유리한 편이다. STS-51-L 챌린저 참사 이후 로저스 위원회에 참여했던 도널드 쿠티나가 대표적. 미 공군에서 우주 비행사 출신으로 별을 단 이들은 십중팔구 이 쪽에서 활동한다. 로버트 헤레스, 케빈 패트릭 칠튼이나 수잔 헴스가 그 예.
또한 비슷한 연구를 하는 군수사령부나 NASA, 기타 군수산업체들과의 인원 교류도 잦은 편이라 군무원들이 굉장히 많다. 때문에 미합중국 해군 해상수송사령부와 마찬가지로 수뇌부에 민간인 신분의 집행국장(Executive Director)이 따로 있다.
본부는 공군의 주요 부대들이 많이 있는 콜로라도 주의 엘파소 카운티 소재 피터슨 공군기지(Peterson Air Force Base)에 있다. 이따금씩 이 곳에서 '''군사적 목적의 우주개발을 반대'''하는 진보시민단체나 반전운동가들의 집회가 열린다.
산하 부대로 우주연합군구성군사령부(Combined Force Space Component Command)와 우주방어 합동임무부대(Joint Task Force-Space Defense)가 있다. 우주연합군구성군사령부 산하에 연합우주작전센터, 미사일경보센터, 합동상공지속적외선센터, 합동지리전투센터가 존재하고, 우주방어 합동임무부대 산하에 국가우주방어센터가 존재한다.
구성 사령부는 우주군의 우주작전사령부, 육군의 우주미사일방어사령부, 해군의 함대사이버사령부가 있으며 사이버사령부 산하의 16공군 역시 우주사령부와 중복편제되어있다.
로켓, 미사일 등과 관계된 담당 사령부의 위치는 대체로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 공군기지나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있다. 특히 극궤도 군사위성의 발사라면 거의 다 서부에서 발사. 물론 가장 많이 써먹는 곳은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지만 이 쪽은 사실 NASA의 케네디 우주센터가 더 유명한 편이다.
하와이, 뉴멕시코 소코로, 인도양 차고스 제도에 위성추적소(GEODSS)를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이 위성추적소는 대한민국에도 있었는데,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최정산에 1993년까지 주둔하고 있었다.
우주사령부 부대마크
1. 개요
United States Space Command, USSPACECOM
미군의 통합전투사령부 중 하나. 4개월 후 신설된 미 '''우주군'''의 핵심 세력이다. 현실 속에서 우주군이라 할만한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는 군대는 아직까지 미군 외에는 소련군/러시아군 뿐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엄청난 투자를 통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는 있지만 세계를 휘어잡는 수준인 러시아와 미국의 노하우를 따라가려면 아직은 많은 투자, 노력이 요구된다.
우주사령부와 우주군이 따로 있어서 두 조직을 서로 헷갈려 할 수도 있는데, 우주사령부는 기존 10개의 지역/기능별 통합전투사령부와 동급으로 우주 전력의 총괄적인 지휘통제를 담당한다. 그리고 우주군은 우주 작전을 위한 인력의 교육 및 훈련, 전력의 건설 등을 임무로 한다. 쉽게 말해서 각각 우주 군사력의 운용, 육성으로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셈.
2. 역사
2.1. 공군의 우주개발
역사를 논하자면 전략공군사령부나 전술공군사령부, 항공우주방위사령부 등의 여러 조직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뜯어와서 설립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보자면 아무래도 냉전의 산물인 미소 두 초강대국의 '''우주 경쟁'''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세계대전기 이후부터 베르너 폰 브라운 등 나치 독일의 로켓과학자들을 포섭하여 본격적으로 로켓 개발에 착수했지만, 육군, 해군, 공군, 심지어 해안경비대(...)까지 로켓 개발에 나서는등 매우 중구난방으로 진행되었기에 일처리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많았다. 결국 지지부진한 경쟁 끝에 소련의 스푸트니크 쇼크로 전미가 좌절했다. 이에 NASA가 설립되었고, 공군과 방위산업체들이 X-15 테스트 파일럿 출신을 다수 갈아넣으며 우주에 사람을 보내보자고 시작한 Man In Space Soonest 프로젝트가 유리 가가린에게 밀리자, JFK의 폭탄 선언으로 엄청난 양의 미국의 인적, 물리적 자원과 나치독일의 로켓, 미사일, 과학자들을 갈아 넣은 역사상 초유의 공밀레가 시작되었다. 인류의 꿈과 희망을 안은채로, 달도 가고 다른 행성도 가는 우주시대가 열릴 거라고 전 인류를 들뜨게 한 채로 말이다.
하지만 ''' 이걸 하기엔 암울했던 시대 배경으로 인해 우주 나가기 전에 인류 멸망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게다가 소련의 보스토크-보스호드-존드 계획에 맞서는 머큐리-제미니-아폴로 라인업은 체제경쟁 외의 실용적인 이득이라고는 눈꼽만큼에 불과한 유인 달 탐사 미션이었기 때문에[1] 미국은 NASA와는 별개로 군사적인 목적의 우주개발에도 힘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공군이 우주전을 대비하기 위해 우주전투기(...) X-20 다이나 소어(Dyna-Soar)를 계획하기도 했지만, 천문학적인 예산이 드는 사업들에 허리가 휠 지경...
그러다 60년대 중반, 소련이 진행하던 살류트 계획의 Orbital Piloted Station, 일명 알마즈 계획이 우주에 군인 우주 비행사들을 상주시키며 미군을 우주에서부터 압도하려는 군사적 목적이라고 판단한 미 공군은 제미니 계획의 외전 격인 MOL 프로젝트를 발족[2] , 다시금 NASA와 별도로 우주 비행사들을 뽑아제끼기 시작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공군의 앞선 유인 우주계획들과 달리 이 계획은 NASA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 비록 이들은 자체적으로는 무인 목업 한번 쏘는 것으로 예산 문제가 제기되며 프로그램이 취소되었지만, 이 우주비행사들 중 일부가 NASA로 전속되거나 훗날 공군의 우주사령부에서 활동하며 큰 족적을 남기게 된다. 또한 이들이 '''스타워즈'''를 도모하며 개발한 기술들이 NASA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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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자주 나오는 이런 무선 EVA 로켓 팩[3] 가 그 예로, 우주비행사들이 소련 우주선 정찰에 용이하게 써먹을 것이라 판단하여 공군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4] 을 NASA가 적절히 개량한 것이다. 뭐 실제로는 그래비티 같은 영화마냥 막 쓰지는 못하게 한다지만... 또한 우주왕복선 역시 개발 과정에서 공군이 '''매우''' 많이 관여했고[5][6] 더러는 공군의 이런 참견이 오히려 민폐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우주왕복선을 망작으로 만드는데 막대한 기여를 한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달아버린 곳이 바로 공군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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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우주복 역시 아폴로 이후의 우주복 개발에 영향을 끼쳤다. 사진의 할아버지는 원래 공군에서 우주비행사로 뽑았다가 MOL이 취소되며 NASA로 전속된 로버트 크리펜으로, 우주왕복선의 역사적인 첫 미션 STS-1을 수행하기도 했다.
2.2. 우주사령부의 성립
이렇게 우주개발에 있어 미 공군은 NASA에 참견을 많이 했는데, 답답해서 내가 쏜다(?)는 취지에서 직접 발사하는 것들도 많았고, 직접 개발하는 것들도 많았다. X 실험기 시리즈를 보면 알겠지만 공군도 우주전투기(...)에 대한 로망이 상당했기에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속 준궤도 우주비행기나 그와 비슷한 컨셉의 연구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한다. SR-71이나 SR-72, U-2 같은 것만 봐도... 장차 궁극의 셔틀이라 할 수 있는 SSTO 우주왕복선 역시도 실제 개발에 들어간다면 NASA보다는 미 공군의 역량이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
하지만, 우주개발이 '''유인''' 프로그램이어야만 하냐는 반론이 가능한데, 미 공군은 우주개발 말고도 많은 곳에 돈을 써야 해서라도 유인 우주개발에 목을 맬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주 비행사 선발 대신 ICBM 노하우를 활용한 군사위성, 우주병기 연구에다 우주개발 역량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미 공군은 전략공군사령부와 시스템사령부[8] , 전술공군사령부 등의 여러 조직에서 우주개발 전문 자원을 떼어 1982년 9월 1일부로 우주사령부를 창설하여 NORAD의 사령관이 겸직하는 형태로 조직이 개편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미 공군의 발목을 잡은 놈들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NASA와 우주왕복선.'''
1980년대 초반, NASA는 '''지나치게 끗발이 강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1983년 초 로널드 레이건이 발표한 역사적인 SDI를 주도한 인물이 NASA의 셔틀 프로그램과 관계된 인물이었던 것에 기인하는데, 그 인물은 미 공군의 매드 사이언티스트이자 MOL의 우주비행사 후보자 출신인 제임스 앨런 에이브러햄슨 중장[9] 이었다. 우주사령부가 막 야심차게 창설된 이 시절 미 공군은 옛날 제미니 계획 때 발사체로 쓰고 화성 탐사선을 보낼 때도 쓰였던 타이탄을 개량해서 오늘날의 소유즈처럼 '''아무때나 부담없이 싸게싸게 쏴제끼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이게 NASA의 높으신 분들의 눈에는 안 그래도 아폴로 계획 이래로 돈 없어서 골치아픈 NASA의 예산을 뺏어갈 경쟁자로 보였다. 결국 '''그깟 군사위성들 우리가 셔틀로 쏴준다! 우리 셔틀이 아틀라스고 타이탄이고 다 알아서 해준다!'''는 의도로 국회의원들을 감동시켰고, 그런 의원님들 덕에 예산을 받았으니 결국 국회의원들을 우주에 보내주고(...) 어서 우주개발 해본 적도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낚아서 우주 보내주고(...) 굳이 유인 미션으로 안해도 되는 상업 위성을 발사해주고... 그러면서 STS-4까지 마련해놨던 우주왕복선의 사출 장치는 치워버릴 정도로 우리는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자만심에 빠졌고... 막장.[10]
어쨌든 툴툴대면서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의 지시대로 해야 했던 공군은 우주개발에서 주도권을 NASA에 내줘야 했고, 이런 NASA의 대중 홍보에 눈이 먼 서커스 같은 행보에 발끈할 법도 했지만, 정작 이렇게 셔틀을 한달에 몇 번씩 신나게 쏴서 국방부의 페이로드도 셔틀로 쏘는게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짰던 이들 중 '''SDI의 두목인 에이브'''[11] 가 있었던지라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에이브가 NASA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는 그래도 그럭저럭 굴러갔지만, 에이브가 1983년 초 백악관에서 SDI를 발표하며 1984년 4월 설립한 대통령 직속 연구소장으로 옮겨가면서부터 NASA는 흑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공군에 약속했던 국방부 기밀 위성의 발사를 차일피일 미루는 대신 정치인들을 올려보내고[12]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올려보내며[13] 대중에게 관심을 얻고 예산 확보에 용이할 우주쇼나 기획하고 정작 우주왕복선 페이로드는 텅텅 빈 채로 우주에 외유나 다녀오는 식의 운용이 반복되었다. 정작 이 시절에 진행된 국방부 기밀 위성 미션[14] 은 딱 두 번 뿐[15] 이었다. 이렇게 NASA는 계속해서 여론을 의식하고 보신주의적인 행태에 익숙해졌고, 결국 그 대가는 '''STS-51-L 챌린저 폭발사고'''로 돌아왔다. 그렇게 NASA의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하며 찌들다시피했던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적 행태는 최악의 참극으로 돌아왔고, NASA의 셔틀 프로그램은 싹 캔슬되었다.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의 우주왕복선 발사대 정비가 거진 완료되며 디스커버리를 서부에서도 쏘려는 STS-62-A 미션이 계획되었지만 셔틀 잘못 발사해서 그 끔찍한 사고가 터졌는데 공군이 셔틀을 쏜다니 안될거야 아마... 후일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이 재개되며 SDI의 일부로 추정되는 국방부 기밀 페이로드가 셔틀로 발사되는 적도 다시 있긴 했지만[16] , 에이브는 챌린저 사고가 터졌던 1986년 상원에서 4성 진급 인사청문회가 거절되는등 시련을 겪다가 로널드 레이건의 퇴임에 맞춰 공군에서 퇴역했고, SDI도 흐지부지되었다가 Missile Defense라는 상당히 축소된 지상에서의 요격 버전으로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챌린저 참사로 인한 미국의 우주개발 부서 재정비 과정에서 미군은 공군우주사령부와는 별개로 운영되던 육/해군의 유사 사령부를 총괄하는 통합사령부인 우주사령부(United States Space Command)를 창설, 공군우주사령관이 겸임케 했다. 비록 2002년 도널드 럼즈펠드의 구조조정을 통해 통합우주사령부는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공군우주사령부는 군사용 우주개발을 이어갔다. 반면 모체였던 전략공군사령부는 냉전이 끝나자 해체...[17]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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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우주사령부 당시의 부대마크
게다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는 우주사령부 외에도 대통령 직속 연구소에서 SDI를 연구하기도 했다. SDI 역시 현 시대의 기술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식하게 들이박은 공밀레이자 돈지랄이었고 NASA가 STS-51-L 직전까지 여러 병크를 저지르며 그나마 우물쭈물 진행하려던 것조차 싹 엎어져버렸지만, 이 때의 연구 성과는 비단 공군의 우주전 연구라는 SF 수준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핫이슈인 MD 등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하지만 냉전이 이내 끝나버리고 걸프 전쟁, 코소보 전쟁 등 항공우주군 전력이 큰 역량을 발휘하며 이런 조직구도는 이어졌지만,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21세기에는 쓸데없이 비대하다는 평가를 받아서 도널드 럼즈펠드의 칼질을 통해 조직이 축소되었다. NORAD는 이름처럼 항공우주'방위'만 담당하고 우주사령부는 핵무기 담당 사령부인 전략사령부(STRATCOM)으로 간판이 바뀌었으며 공군우주사령부는 전략사령부 내의 최대 조직 정도의 위상에 그치게 되었다. 하지만 우주에서의 레이저 요격, NASA가 STS-107 사고까지 겹치며 백기를 든 우주왕복선이라는 개념을 군사적 용도로 활용하는 등[18] 의 무시무시한 연구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역시 천조국은 씀씀이가 남다르다.
한편, 사이버전의 발달에 있어서도 공군의 사이버전 부대는 인공위성들을 다량으로 띄우고 네트워크 중심전을 펼치는 특성상 우주사령부에 속하게 되었다. NSA의 스턱스넷 개발에도 일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정보전에서도 큰 역할[19] 을 하고 있다.
2.3. 통합사령부 재승격과 미합중국 우주군 창설
2018년 6월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합중국 공군에서 '''미합중국 우주군을 분리 독립'''시켜 육군, 해군, 공군, 해안경비대, 해병대에 이어 미국의 제6군으로 독립시킬 것임을 발표했다.# 우주군 창설이 현실화될경우 우주사령부가 그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8월 9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우주군을 창설하여 미국의 제6군으로 할 것임을 확정 발표했다. 우선 우주군 창설 준비를 위해 통합전투사령부에 미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는 우주사령부를 재창설하여 우주군 창설요원들을 각 군에서 전속 배치하여 2020년 정식으로 우주군을 창설하기로 확정되었다.# 임무 특성상 공군우주사령부가 우주군 창설 주축이 될 것이 확실해졌다.
2018년 12월에 행정명령을 서명한 상태이다.
2019년 8월 29일에 백악관에서 우주사령부 재창설 행사가 열렸다. 재창설된 우주사령부에는 공군우주사령관이던 제이 레이먼드 공군대장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새 본부가 차려질때까지 콜로라도주 패터슨 공군기지에 임시 사령부가 차려질 예정이다.# 아직 의회에서 우주군 창설을 공식 의결한것은 아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에 의회내의 예산중복 우려등의 회의적 시각도 점차 바뀌는 추세라서 구상대로 2020년 우주군이 창설될걸로 보인다.
2019년 12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별도의 미합중국 우주군을 신설하는 국방수권법에 서명하고# 신설된 우주군의 초대 참모총장에 우주사령부 사령관인 제이 레이먼드 공군대장을 전군시켜 임명했다. ## 참모총장이 통합전투사령관을 겸임하지 않는 미군의 제도 상 우주사령부에는 조만간 새 사령관이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8월 20일 우주군참모총장을 겸임하던 제이 레이먼드 우주군대장의 후임 우주사령관으로 제임스 디킨슨 육군대장이 임명되었다.
현 사령관은 제임스 H. 디킨슨 육군 대장으로 우주사령부 부사령관을 맡던 중 대장 진급과 함께 부임했다.
앨라배마주 헌츠빌로 사령부를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3. 인원구성
사령관은 1980년대 창설시부터 오늘날까지 잠깐의 기간[20] 을 제외하면 4성 장군이 보임되고 있다. 조종사 경력 못지 않게 엔지니어로서도 공군에서 손꼽히는 이들이 보임되며, 21세기 들어서는 조종사 경력보다도 공밀레를 얼마나 잘 견뎌냈느냐가 인사에 있어 더 중요시된다. 다만 의외로 NASA에서 활동한 우주비행사들은 적은 편인데, 이는 우주왕복선 시대 이후의 NASA 우주비행사들은 군경력과 NASA 경력을 모두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서 웬만하면 대령 정도만 달고[21] 은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2]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행사 불려가서 꼬마들이나 우주덕들에게 사인해주고 셀카 찍어주다보면, 그리고 불곰국 스타 시티를 드나들다보면 군인으로서의 신원보호는 안드로메다로(...) 그래서 우주비행사들보다는 '''로켓과 우주선들을 직접 관리하는 엔지니어'''들이 오히려 군 경력 관리에 더 유리한 편이다. STS-51-L 챌린저 참사 이후 로저스 위원회에 참여했던 도널드 쿠티나가 대표적. 미 공군에서 우주 비행사 출신으로 별을 단 이들은 십중팔구 이 쪽에서 활동한다. 로버트 헤레스, 케빈 패트릭 칠튼이나 수잔 헴스가 그 예.
또한 비슷한 연구를 하는 군수사령부나 NASA, 기타 군수산업체들과의 인원 교류도 잦은 편이라 군무원들이 굉장히 많다. 때문에 미합중국 해군 해상수송사령부와 마찬가지로 수뇌부에 민간인 신분의 집행국장(Executive Director)이 따로 있다.
4. 조직구성
본부는 공군의 주요 부대들이 많이 있는 콜로라도 주의 엘파소 카운티 소재 피터슨 공군기지(Peterson Air Force Base)에 있다. 이따금씩 이 곳에서 '''군사적 목적의 우주개발을 반대'''하는 진보시민단체나 반전운동가들의 집회가 열린다.
산하 부대로 우주연합군구성군사령부(Combined Force Space Component Command)와 우주방어 합동임무부대(Joint Task Force-Space Defense)가 있다. 우주연합군구성군사령부 산하에 연합우주작전센터, 미사일경보센터, 합동상공지속적외선센터, 합동지리전투센터가 존재하고, 우주방어 합동임무부대 산하에 국가우주방어센터가 존재한다.
구성 사령부는 우주군의 우주작전사령부, 육군의 우주미사일방어사령부, 해군의 함대사이버사령부가 있으며 사이버사령부 산하의 16공군 역시 우주사령부와 중복편제되어있다.
로켓, 미사일 등과 관계된 담당 사령부의 위치는 대체로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앤젤레스 공군기지나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있다. 특히 극궤도 군사위성의 발사라면 거의 다 서부에서 발사. 물론 가장 많이 써먹는 곳은 케이프 커내버럴 기지지만 이 쪽은 사실 NASA의 케네디 우주센터가 더 유명한 편이다.
하와이, 뉴멕시코 소코로, 인도양 차고스 제도에 위성추적소(GEODSS)를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이 위성추적소는 대한민국에도 있었는데,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최정산에 1993년까지 주둔하고 있었다.
[1] 물론 오해하면 안되는게, 머큐리에서 아폴로로 이어지는 일련의 미션은 우주과학 기술 그 자체로는 어마어마한 성과가 있었다. 현재까지 주구장창 사용되는 주요 우주과학 기술들은 사실상 전부 이때 뼈대가 갖춰진 것이다. [2] 사실 제미니에 쓰인 로켓부터가 ICBM이었던 타이탄이었다. 미 공군은 이후에도 신나게 타이탄을 쏴제낀다. 바이킹 화성 탐사선과 보이저 탐사선을 쏘아보낸 로켓 역시 타이탄.[3] NASA가 실제 임무에 투입한 최초의 버전은 Manned Maneuvering Unit, 일명 MMU로 불렸다. 지금은 여러 차례 개량을 거친 SAFER(Simplified Aid for EVA Rescue)가 쓰이고 있는데, 옛날에 MMU를 써본 결과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면서 오늘날에는 웬만한 EVA는 대개 로봇 팔에 묶여서 실시하기 때문에 SAFER는 이름 그대로 구조받을 때나 쓰는 물건이다. [4] Astronaut Maneuvering Unit, 일명 AMU라고 불렸다. 이 모델은 NASA가 제미니 9A에서 테스트를 할 계획이었지만 AMU를 착용한채 EVA를 수행할 예정이었던 유진 서넌이 고열 증세를 보이는등 몸상태가 메롱했던지라 수행하지 못했다. 위의 사진은 STS-41-B 미션(챌린저)에서 브루스 매캔들리스가 MMU를 착용하고 처음 실시한 무선 EVA 장면이다.[5] 총책임자부터가 공군 장성이자 MOL 우주비행사 출신인 제임스 앨런 에이브러햄슨 장군이었다. 이 양반은 우주왕복선 개발 외에도 SDI로 역사에 임팩트를 남겼다.[6] [image] 우주왕복선 시대에 차세대 우주복 개발이 늦어지던 시기를 땜빵한 노란색 우주복은 SR-71 조종사들이 입던 여압복을 개량한 형태였다. 사진의 우주비행사들은 STS-2 승무원으로, 공군의 전설적 테스트 파일럿인 조 엥글과 MOL 출신의 NASA 우주비행사로 해군중장과 NASA 국장까지 오르는 리처드 트룰리.[7] 그래서 스페이스X 버전의 우주왕복선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십의 디자인에는 날개라고 할만한 것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8] 신무기와 신기술 개발을 주도했던 사령부로, 훗날 물류사령부와 합치며 군수사령부로 간판을 새로 달았다.[9] SDI를 연구했지만 정작 이 우주사령부에서 직접 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실 우주사령부 자체도 SDI에 있어서는 직접 아이디어를 짜내고 주도하는 일보다는 발사체의 개발, 개량과 위성의 개발 등에서 협조하는 수준이었다. SDI는 어디까지나 대통령 직속인 에이브의 연구소가 갑이었던 프로젝트라서...[10] 더불어 언젠가부터는 흔히들 ‘호박복’으로 부르는 주황색 여압복도 치워버리고 대충 츄리닝에 헬멧만 쓴 상태로 우주왕복선을 발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NASA와 공군의 근자감은 얼마 안 가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11] 에이브는 SDI 이전에는 셔틀 프로그램의 차장으로 활동하며 셔틀 시대 초기에 셔틀 운용에 있어 공군의 입김을 불어넣는 인물이었지만 십수년 전 MOL 우주비행사 훈련을 함께 받았던 동료들 다수가 NASA의 셔틀 우주비행사들 중에 많이 섞여있었다보니 온전히 공군의 입장만 대변할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12] STS-51-D (제이크 간, 유타주 연방 상원의원-공화당), STS-61-C (빌 넬슨, 플로리다주 연방 하원의원-민주당). STS-61-C의 경우 발사가 너무 미루어지다가 다음 미션인 STS-51-L의 대사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13] STS-51-G,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장교이자 2015년 즉위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왕의 삼남이다. 역대 최초의 왕족 우주인이자 무슬림 우주인으로 기록되었다.[14] 공군에서는 이렇게 위탁하는 거라도 제대로 해볼려고 Manned Spaceflight Engineer 프로그램을 통해 자체 우주비행사들도 뽑아서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로 셔틀에 태울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15] STS-51-C, STS-51-J.[16] 이러한 국방부 기밀 미션들에서도 여러가지 위기가 끊이지를 않았다. 챌린저와 컬럼비아의 14명을 희생시킨 두 가지 사고 원인은 국방부 기밀 미션에서 거의 똑같은 형태로 사고 이전에 한번 이상 징조가 나타났다.(챌린저 사고 1년 4일 전의 발사인 STS-51-C, 반덴버그 기지에서의 발사가 파토난 STS-62-A 팀을 재구성한 STS-27 등) 그러한 불길한 징조들이 STS-51-L, STS-107 같은 非군사 미션에서 터져서 차라리 다행인 것이, 만약 소련과의 우주전쟁이 벌어지던 80년대 중반에 군사 미션에서 그런 사고가 터졌다고 한다면 어떤 후폭풍이 불었을지 모른다. 물론 당시에는 소련이 좀 오늘내일 하던 시기라고는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폴류스를 개발하는등 광폭행보를 보이던 소련이었기에 참사의 후폭풍은 NASA 선에서 끝났을리 만무하다. 이런 우려 때문에라도 미군은 셔틀 프로그램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었다.[17] 2000년대 후반에 지구권타격사령부로 부활하기는 한다.[18] '''컨셉'''만 재활용한다. 공군은 NASA가 썼던 '그' 우주왕복선에 대해서는 챌린저 이후로 GG쳤다. 어디까지나 X-37, X-40 등의 궤도비행선 연구와 준궤도 우주비행체 연구에 응용한다는 선 뿐이다.[19] 반대로 내외부에서 스파이들이 판을 치는 곳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군사위성도 결국은 궤도비행을 하는 물건이니 아무리 언제 어디 상공을 지나는지 비밀로 하더라도 스파이가 들어가서 주시하다보면(심지어는 자국에서 직접 관측하다보면)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분명 이랬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거나 하면 인공위성이 오는 시간을 맞춰서 페이크를 친 결과물이다. 북한(...)이 이런 짓거리로 유명하며, 북한만큼 한국에게 알려져있지는 않다 뿐이지 미/중/러 등도 이런 적국 위성의 비행패턴 파악은 첩보전의 필수요소로 여기고 있다. 이런 것 때문에 ULA 등 미 국방부와 자주 만나야 하는 항공우주 방산업체들은 외국인의 입사지원이나 스카우트가 상당히 까다롭다.[20] NASA가 셔틀로 군사위성 쏴준답시고 미 공군의 타이탄 개량 사업비를 뺏어가서는 이상한 홍보성 미션이나 하던 시절에는 잠깐 중장 지휘관이 보임되었다. 그러다 STS-51-L 챌린저 참사가 터졌고, 이 참사의 진상조사에 타이탄 예산을 뺏겼던 그 도널드 쿠티나 장군이 참여하였다. 결국 공군은 챌린저 참사 이후로 우주개발과 관련해서는 NASA와 조금 거리를 두며 독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즉 웬만한 군사위성은 셔틀로 쏘지 않고 공군이 스스로 델타 Ⅱ 로켓으로 발사한다.) 21세기에는 타군의 우주개발 조직까지 상당부분을 공군이 흡수한 대신 통합군 우주사령부의 기능이 STRATCOM과 합쳐졌다.[21] 물론 국가의 최고 인재들이기 때문에 대령까지의 진급은 순탄한 편이다.[22] 게다가 챌린저 사고 이후로 공군이 셔틀에서 발을 조금씩 조금씩 빼려고 했기 때문에 NASA에서 활동한 공군 출신 우주비행사들도 케빈 패트릭 칠튼과 수잔 헴스는 정말 이례적인 사례일 뿐이지 대개는 정작 공군으로 복귀해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NASA에서도 그런 공군과 츤데레적인 관계가 되어가며 공군 출신 파일럿을 잘 뽑지 않으려 들었고, 셔틀 프로그램이 종료된 2011년까지의 통산 셔틀 미션 사령관은 해군과 해병대 출신 조종사들이 공군 출신보다 많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