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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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ritish cuisine
영국 요리, 즉 브리티쉬 퀴진이란 오랜 세월동안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노르만 등의 중세까지의 영국을 형성시켜 왔던 역사와,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 홍콩, 이란 등 대영제국 이후 주고받았던 영향들로 여러 민족과 문화가 융합되어 만들어진 요리이며 내부적으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각각의 특색을 지니는 것도 특징이다. 영어 위키백과는 영국의 전통적인 브리티쉬 요리를 '강한 향의 소스로 맛을 가리기보다는 심플한 소스를 곁들이길 즐겨하며 질좋은 현지 재료로 꾸밈없이 만든 요리이다'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대영제국의 주요 구성원들이었고, 현대에는 영연방 왕국 및 5개의 눈으로 영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요리의 뿌리가 되는 요리이기도 하다.
캐나다 요리는 영국 요리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 토속 요리가 융합되면서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기본적인 특징은 영국 요리를 따르지만 프랑스 북부(노르망디,브르타뉴)요리의 특징 또한 녹아들게 되었다. 또한 20세기 초반 이후엔 미국 요리의 영향을 크게 받아 사실상 미국 요리와 완전유사하게 되었다. 미국 요리 또한 영국 요리에서 기원하였으며 사실상 영국 요리와 매우 유사한 면이 많다. 그러나 아프리카계와 프랑스 남부 요리의 특징이 혼합되어 형성된 케이준 요리와, 멕시코 요리, 라틴아메리카 요리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아 차이점도 많아지게 되었다.
분야별로는 베이커리와 육류 요리에 강하고, 채소 요리와 해산물 요리에 약하다.
2. 종류
3. 역사
영국은 기본적으로 육식, 그중에서도 특히 쇠고기 요리가 중점적으로 발전했다. 타 문화권과의 접촉을 통해서 발전한 여타 문화권의 요리들 처럼 영국 요리도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다른 문화권의 접촉을 거쳐 발전했다. 19세기부터는 지속적으로 자국의 영향권에 넣기 시작한 인도 요리와 중국 요리의 영향도 받았다.
이미 기원전부터 영국은 인류가 생활하고 있었던 장소로서 숱한 이민족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함락되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지켜 왔다. 특히, 지금의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4개 지역은 지금까지도 각각 민족적,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 독자적인 요리 문화가 발전했다. 숲이 울창한 스코틀랜드의 경우 사냥한 동물을, 웨일즈는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가축과 야채를, 잉글랜드는 밀을 중심으로 한 곡식을 주요 재료로 하여 요리해 왔다.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요리 참조.
재미있는 것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생선은 인기있는 음식이 아니었는데, 이는 북유럽 지방에 일반적으로 분포하는 바다에 대한 공포가 당시에도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으로 같은 섬나라로서 불교의 전래에 따라 육식을 기피하고 주로 생선을 즐겨먹던 일본[1] 과는 다르게 영국인들은 바다를 식량 창고가 아닌 죽음이 펼쳐진 하나의 암흑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2]
이후 항해술이 발달하자 바다를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한 항로로만 간주하였기 때문에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정어리나 특별히 맛이 있는 대구나 랍스터[3] , 굴을 제외한 다른 물고기나 해초는 음식으로서 취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원전부터 내려온 곡식과 육류 위주로 이루어진 식단을 지금까지도 지켜 오고 있다.[4]
당시 요리의 조리법은 신석기 시대부터 발견하였던 불을 기초로 하는데, 특히 잉글랜드 중심으로는 직화(直火) 문화가 발달하였고 아일랜드 중심으로는 냄비(Pot) 조리가 발달하였다. 예를 들자면, 잉글랜드는 곡식을 불에 구워 빵을 만들고, 고기를 바로 불에 던져 태운 채로 먹었고, 반대로 아일랜드는 감자를 쪄서 으깨거나 곡식을 갈아 끓여 먹는 차이가 있었다. 이는 사실상 국력의 차이로서 꾸준한 정복활동으로 고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잉글랜드는 고기를 통째로 불에 던져 태워낸 겉 부분을 제거하고 고기에 배어진 숯향기와 흐르는 지방질을 양념으로 통째로 먹으며 서민은 곡식을 갈아 불에 구워 독특한 향이 밴 빵을 먹은 반면, 가난한 아일랜드에서는 곡식이든 고기든 일단 물을 넣고 끓이는 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요리법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이다.[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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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와 17세기, 개신교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심플하고 투박한' 특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는 영국 요리만의 특성이 아니라, 독일 등을 포함한 북유럽과 북미 등 여타 개신교 문화권의 요리 문화 전체가 공유하는 특성이다.[7][8][9] 이러한 '심플하고 투박한' 영국과 북유럽의 요리는 가톨릭 문화권인 화려한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남유럽 요리에 비해 오랜 기간 상대적으로 평가가 낮았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이런 평가는 반전되어 가고 있는데, 1970년대 슬로우푸드의 유행과 함께 프랑스 요리도 무겁고 장식이 많은 오뜨퀴진에서 가볍고 담백한 누벨퀴진으로 이행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 영국이 스페인과 함께 분자요리의 양대 산맥이 되고, 2010년대에는 담백하고 현지 재료를 중시하는 북유럽 퀴진이 세계 미식계를 휩쓸며 남유럽을 누르고 대세로 자리잡아 예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달라진 평가를 받고 있다.
1970년대, 현대(modern) 영국 요리가 성립되었으며, 성립 직후 굉장한 인기를 얻어 브리티쉬 퀴진의 대세가 되었다. 현대 영국 요리란 고품질의 현지 재료를 쓰며, 현대적 발명과 20세기 이전의 전통 영국 레시피를 섞어 사용하는 것으로써 슬로우 푸드 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3.1. 영국 요리와 육식
영국 요리의 역사에 있어서 육식은 빼놓을 수 없는 관계로, 영국인들은 광우병 사태 이전에는 자타공인 유럽에서 쇠고기를 가장 탐하는 민족이었다[10] . 그들의 켈트족 선조들은, 기원전부터 이미 영국 섬들에 소 사육 문화를 구축했으며, 43년에 브리튼을 공격해서 남부와 동부의 저지대에 자리잡은 로마인들도 로마군 병사들이 선호하는 쇠고기를 위해 소를 사육했다, 소고기 수요가 증가하자,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소를 매매하는 시장이 형성되었고, 켈트족의 소 사육 문화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북부 및 서부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이후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물러났지만, 소는 자연스럽게 부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육식은 영국인 식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유럽인은 육식을 즐기기로 유명했지만, 그중 영국인들은 이웃한 육지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쇠고기를 소비했다. 쇠고기에 대한 그들의 탐식은 켈트족이 사냥, 동물학살, 화려한 고기 만찬을 즐긴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전통은 봉건왕조 시대의 귀족들을 거쳐서, 이후 젠트리 계급 사이에서 계속 이어졌다.[11] 영국인의 의식에서 동물 도살의 신성한 의미는 이미 오래전에 퇴색되었지만, 고기, 특히 쇠고기가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믿음은 영국인, 그 중에서도 귀족들의 의식에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쇠고기를 대량으로 섭취하는 것은, 엄청난 힘과 남성다움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미국 독립전쟁 직전. 즉, 영국의 군사력이 사실상 전 세계 모든 대륙에 손을 뻗치고 있었던 무렵 한 영국인은 이렇게 적었다. '''"고기를 맘껏 먹는 사람들이 좀 더 가벼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다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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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영국 귀족들은 서로 경쟁을 하듯이 호화로운 고기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서 개인의 재산과 시간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부유층에서는 그 음식 준비가 지위와 특권을 내세우는 기본적인 수단이었다. 영국에서는 '''"빈자들은 살기 위해 먹었지만, 부자들은 먹기 위해 살았다."''' 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귀족들 간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자 1283년 에드워드 2세는, 왕국의 저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성에서 엄청난 양의 고기와 음식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그보다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그들을 흉내내는 것을 금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왕의 칙령은 만찬에서 고기 요리의 수를 제한하는 것이었는데, 만찬 주최자의 정치적 영향력이 준비한 요리에 따라 열렬한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능력을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상당히 중요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고기는 각 군주의 만찬에 초대된 손님들의 적절한 지위와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 주는 정치적, 사회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주빈석은 언제나 가장 윗사람에게 제공되었으며, 그 옆으로 지위에 따라 차례차례 자리가 정해졌다. 최고 부위의 고기는 가장 윗사람의 몫이었고, 질이 좀 떨어지는 부위는 아랫사람에게 제공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굴욕을 참다(eat humble pie)"'''라는 표현도 실은 '''"사슴 내장을 먹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영국의 봉건군주들과 지주계급의 쇠고기 탐식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 시대 후기까지도 귀족과 상류층 계급은 화려하게 차려진 고기 만찬을 즐겼다. 소설가 프리스틀리(J. B. Priestly)는 '''"로마 제국 이래 탐식에 빠져든 사람들이 그토록 많았던 적은 없었다."''' 라고 말한다. 지주계급의 농총 주택에서는 매일같이 백정, 요리사, 주류 관리인, 부엌 하인들이 시중을 드는 성대한 사냥 파티, 만찬 준비, 화려한 음식들이 요란하게 펼쳐지곤 했었다.
근대 초기에 영국 도시에서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했고, 이들은 육식을 갈망했다. 때문에 영국 도시에서는 엄청난 쇠고기 소비가 발생했고, 산업혁명 직전에 영국은 이미 세계적인 쇠고기 육식 생활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1726년 즈음 런던 시장에서만 해마다 무려 10만 마리의 소들이 도살되었다. 당시의 런던 주민들은(물론 빈곤층 제외)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일부 지역 주민들이 한해 동안 소비하는 전체 쇠고기보다 더 많은 양의 질 좋은 쇠고기를 겨우 1달만에 먹어치웠다.
덤으로 영국군은 적색 육류가 군인들을 강하게 만든다고 믿어서, 해군 기준으로 수병 1인당 1년 동안 무려 208파운드(1파운드=0.45kg. 즉, 약 93킬로그램)의 쇠고기를 제공했다. 소비량은 대략 하루에 250g 정도였다. 그러니까 고깃집에 가면 나오는 쇠고기 1인분보다 좀 더 많은 양을 1년 365일 내내 먹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고기를 먹어야 강해지고, 야채를 먹으면 약해진다는 믿음은 비단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대부분에 퍼져 있었다. 이때문에 영국 해군은 채소를 기피했고 이로 인해 괴혈병이 유행했다는 설이 있다. [12] 그리고 이들의 후예인 미국인들은 한 술 더 떠 1년에 100킬로그램 이상의 고기를 먹게 된다. 안 그래도 못 먹어서 한이 맺힌 이민자들 출신인데다가 구대륙에 비해 물산이 풍부한 신대륙이니 오죽했을까.
영국의 엄청난 쇠고기 수요는 영국의 식민지 정책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영국 귀족, 부르주아 계급, 군대에서 쇠고기 수요가 급증하자 영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나서야 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가 최초로 식민화된 목초지가 되었으며, 뒤이어 19세기에는 북아메리카 평원, 오스트레일리아 오지, 뉴질랜드 초원이 똑같은 길(정복)을 걸었다.
양고기 또한 유명한 식재료인데, 영국인들은 어린양(lamb) 고기와 늙은 양(mutton)을 철저히 구분하여 요리법을 체계화시켰으며, 근대 가축 품종 개량 기술의 발전 당시 가장 첫 대상으로 양을 품종 개량해 질 좋은 양고기를 생산해내었다.[13] 또한 여러가지 요리법으로 양고기의 단점인 누린내를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영국인들은 목초지에서 소와 함께 양의 사육도 활발히 했는데, 이렇게 개척된 지역들인 웨일스와 뉴질랜드는 오늘날까지 드넓은 양목장과 질높은 양고기 생산으로 유명하다. 영국식 양고기 스튜는 오늘날 영국의 각 지역과 가문의 특징을 보여주는 가정식이자, 영국계 이민자들이 세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의 각 가정에서도 중요하게 만들어먹는 가정 요리 중 하나일 정도로 양고기에 대한 사랑도 크다.
이렇게 고기 매니아들이 넘쳐난 터라 이들은 고기를 2가지로 나눴는데, 이게 붉은 고기(소와 양의 살코기)와 하얀 고기(우유, 치즈, 버터 등의 유제품과 닭고기)이다. 값비싼 것은 역시 붉은 살코기. 이러한 경향 때문에 닭고기도 고기색은 하얗지만,[14] 오늘날의 고기보다 더 늙고 풍미와 색이 짙었다.[15]
3.2. 영연방과 영국 요리
영국 요리의 발전을 얘기할 때 17세기 이후 전세계 곳곳에 있었던 영국 식민지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20세기 이후 현재까지 영연방의 일원이 된 이들 국가 간 교류의 영향으로 다양한 나라의 음식 문화와 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많은 영연방 국가에 영국 요리가 유입됐다. 또한 현재도 강력하게 남아있는 영연방 국가간 교류 채널들로 영국과 영연방 각국의 요리들이 교류, 발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손에 꼽히는 것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지역의 요리이다. 남아시아 요리는 현재 영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였으며, 영국 요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에는 남아시아로 파견된 영국인들이 귀국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인도인 하인 등 소수의 인도계 노동자들을 통해 영국 상류층 사회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으며, 이 시기 커리, 고추 등 인도식 향신료가 영국 요리에 일부 첨가되게 된다.
19세기 후반 이후 남아시아인들의 영국행이 대폭 늘어났으며, 20세기 남아시아 각국이 독립한 이후에도 영연방 체제 내에서 영국 이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으로 이민온 이민자들은 런던 등 대도시에서 자국 요리를 파는 식당을 운영했으며, 이를 통해 영국 요리에 인도 등 남아시아 지역의 식문화가 유입되게 되었으며, 영국 외식업계의 흐름 또한 바뀌게 된다. 현재도 런던에서 가장 흔한 외식 식당 중 하나로 인도 요리 식당이 꼽힌다. 또한 현대 영국 요리에 카레 등 인도 향신료를 사용한 요리가 많은 원인이기도 하다.
인도 요리에 영국이 영향을 준 것이라면 대표적으로 양고기 문화가 있다. 이전까지 양고기 문화가 크게 보급되지 못했던 남인도 지역을 비롯한 인도 곳곳에 양고기 문화가 퍼진 원인 중 하나로 영국의 영향이 꼽히고 있다. 또한 인도의 짜이를 비롯한 차문화도 영국 차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인도의 주류문화에도 영국의 주류문화가 끼친 영향이 제법 커서 위스키나 맥주 등의 영국식 주류에 대한 소비가 큰 나라들 중 하나가 인도다.
중국, 특히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광둥 지방 요리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 영국의 차문화도 생성 과정에서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받았는데, 19세기 초까지 영국의 차문화는 특히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16]
차를 제외한 영국 요리 자체에 중국 요리의 영향이 유입되기 시작한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19세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17] 등 영국령 식민지로 유입된 화교의 영향과, 영국령으로 편입된 홍콩의 영향이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통해 영국 요리에 중국 요리, 특히 그 중에서도 광둥 요리[18] 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세기 이후 해당 지역들의 발전과 영국과의 교류 확대로 이 흐름은 더욱더 확대되었다. 대표적으로 케첩[19] 과 간장, 그리고 중국식 국수와 만두 그리고 볶음 요리법 등이 영국으로 유입됐다.
중화 요리, 특히 그 중에서도 홍콩과 싱가포르 지역의 해외 중화 요리에 영국 요리의 영향은 매우 컸는데, 우선 해당 지역들에서는 영국식 아침 식사와 영국식 차문화가 남중국 지역의 매식 문화나 전통 요리 문화와 결합하여 독특한 아침 식사 문화와 간식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해당 지역들의 경우 쇠고기와 유제품 그리고 양고기 소비가 적은 남중국 지역의 요리에 그 요리 문화의 기반을 두고 있음에도 영국의 영향으로 쇠고기, 유제품, 양고기 소비가 큰 편이다. 그리고 해당 지역들에서 인식하는 양식의 표준은 일반적으로 영국식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 개발된 여러 퓨전 요리나 양식 간편 요리 레시피는 영국 요리의 영향을 받은 레시피가 많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영국 본토에서는 나지 않는 열대과일, 향신료 등 다양한 식재료가 영국으로 유입됐으며 이로 인해 레시피가 수정, 보완됐으며 새로운 레시피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현재의 영연방 국가들로 건너간 영국인들과 그 후손들은 모국의 요리를 현지 사정에 맞게 개량, 발전시켰고, 지금도 현지화된 영국 요리는 영연방 국가들의 주류 요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현지화 되면서 같은 메뉴여도 나라마다 레시피와 맛이 다른 일도 종종 벌어진다. 대표적으로 피쉬 앤 칩스의 경우 영국 본토에서는 대구를 이용하지만, 캐나다는 연어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호주는 상어를 이용한다고 한다.
영국과 상대적으로 교류가 많았고, 영국의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자메이카의 경우, 영국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자메이카로 건너온 아프리카인들과 크리올들이 영국 요리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영국 요리를 기반으로 자메이카 섬의 독특한 환경과 특산물들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해먹던 요리를 반영해 독특한 자메이카 요리 문화를 형성했다. 자메이카가 독립한 1960년대 이후, 자메이카인 이민자들과 교류 채널을 통해 이런 자메이카 요리들이 영국과 다른 영연방 국가들로 수출 되고 있으며, 현대 영국의 요리 또한 자메이카 요리에 영향을 주고 있다.
4. 특징
4.1. 질좋은 식재료
영국산 식재료는 유럽을 포함하여 국제적으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소고기에 대해서는 잉글리시 비프라고 해서 매우 알아준다. 지리적 표시제/유럽연합에 등록한 유럽연합 역내 28개국과 역외 등록 제품 보유국 8개국을 통틀어 36개국 중 등록 품목수 7위가 영국이다.
18세기, 19세기에는 세계적으로 질 좋기로 유명한 영국의 Hereford 품종 소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 영국 식민지로 수출했으며, 현재도 세계적으로 질 좋은 소고기로 영국산 품종의 소가 자주 이름을 올린다. 광우병 사태 이전에는 영국이 세계에서 제일 질 좋은 쇠고기를 생산한다고 인정받기도 했다.
좋은 예가 '''잉글랜드식 아침식사''' 인데, 논란이 많은 영국요리지만 잉글랜드식 아침식사만은 대부분 여행객에게 맛있는 영국요리의 예로 손꼽힌다. 그런데 잉글랜드식 아침식사의 메뉴는 간단한 조리과정을 거치는 스크램블 에그, 소시지, 블랙 푸딩 등을 이것저것 모듬한 것이라, 요리 방법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결국 준비한 재료가 맛을 좌우하기에 영국에서 공급하는 식재료 품질이 우수한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영국 요리/종류 문서 참조.
블랙유머에 통달한 민족답게 영국인들은 이 사실마저 자기비하에 이용한다. 별 실력이 필요없는 아침식사가 괜찮은 걸 보면 우리는 요리를 열심히는 하는데 실력이 없어 못 만드는 것이 틀림없다는 증거라고 말하는게 주된 레퍼토리.
4.2. 다양한 제과·제빵
1840년대 사회 상류층 풍조로 시작해서 지금에는 서민층, 상류층을 막론하고 영국의 전반적인 식문화로 자리잡은 티타임[20] 영향으로, 영국은 음식만큼은 몰라도 차에 곁들여 먹는 '''제과제빵을 기반으로 한 디저트 음식문화'''는 특출나게 발달했다.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등 과거 대영제국 시절 영국 영향을 받은 나라나 지역도 일상식에서 영국식 메뉴 자체는 드물더라도[21] 제과제빵의 영향은 남은 곳이 많다.[22]
앞서 서술한 잉글랜드식 아침식사 식재료에 기반한 호평과 더불어, 영국산 제과제빵 식품의 품질은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영국산 식재료와 잉글랜드식 아침식사의 인기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아무리 영국 요리를 부정적으로 평하는 나라라도 영국산 빵, 디저트 메뉴에 대해서 만큼은 충분히 높게 쳐주고 있다. 세계에서 많이 소비하는 빵인 '''식빵''' 역시 영국이 기원이다.[23] 영국요리의 문제점 항목에 서술되어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증언에서도 '그래도 빵만큼은 맛있다'는 평이 있다. '''민트초코 또한 영국에서 유래했다.'''
4.2.1. 티타임
영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티타임이 공식적인 식문화로 자리잡았고 케이크와 쿠키, 스콘, 샌드위치 등 다양한 간식을 곁들여 먹는다.
티 샌드위치의 경우에는 보통 마요네즈+햄 1장 or 오이 1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차에 곁들여 먹기 위해 간단히 만든다. 과거 영국에서는 '아삭한 오이'를 먹을 수 있던 것은 상류층들의 특권이었으므로 식빵 사이에 얇게 저민 오이를 끼운 큐컴버 샌드위치가 티타임 전통 음식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애초에 홍차 자체가 찻물의 색이 나지 않을 때까지 여러번 우려먹던 고급 음식이었고 찻잎을 보관하는 상자는 감히 하인들이 만지지 못하고 오직 여주인만이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테스코 같은데서 1파운드도 안하는 싸구려 샌드위치를 사 먹는 게 아니라면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햄 하면 생각하는 프레스햄이 아니라 생햄을 넣는 음식인데다 같은 영국식 식빵이라도 본토 물건은 조금 더 퍼석하기 때문에 촉촉하고 아삭한 오이와 매우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이 외로 곁들여 먹는 스콘은 퀵브레드의 일종으로 견과류와 여러 재료를 섞어 넣기도 하며 종류가 다양하다. 밀가루로 만든 단순한 것은 클로티드 크림 같은 것을 얹어 먹기도 한다. 스콘 같은 경우 아무 것도 곁들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국에서 사 먹는 게 더 맛있는데, 영국 것이 맛 없다기 보단 한국에서 파는 스콘에 유지방과 당분이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저 동네는 빵에다 스프레드를 발라먹는 게 일상이다 보니 그냥 꿀이든 버터든 클로티드 크림이든 치즈든 입맛에 맞게 발라먹으면 그만인 반면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보니 스프레드를 바르는 과정을 대체할만한 제조공정을 추가한 것.
17세기 이후 이런 티타임 문화의 발전은 영국 농업의 산업화로 인한 농업 생산력 폭증과 과일 품종 개량과 겹쳐져 영국 제과 제빵의 급격한 발전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한동안 서민층들은 점심식사를 'dinner'로, 저녁식사를 'tea'로 불렀다.
현대로 들어서 영국 일반 가정이나 평범한 대다수 서민들에게서 전통 티타임은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홍차티백을 머그컵에 담아 간편하게 우려내서 설탕이나 우유 등을 넣은 후 쿠키나 약간 달달한 것을 곁들여 간단히 마시는 정도로 간소화되었다. 특히 젊은 층으로 갈 수록 생활에 치이고 간편한 것을 선호하므로 전통 티타임은 기념일, 접대, 파티, 행사 등에서만 가지는 추세.
4.3. 미식 강국
해외에서 작성된 통계수치를 바탕으로 볼 때, 런던은 미슐랭 레스토랑 별점 갯수에서 '''7위'''에 랭크된다. [24]
영국 텔레그래프지
사실, 영국이라는 나라는 다소 침체되었던 시기는 있었으나 과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세계적인 금융중심지이자 경제강국이며, 인기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 중에도 런던은 수많은 여행객과 사업가가 드나드는 도시이기 때문에, 시쳇말로 '''목이 좋으며,''' 실력있는 셰프가 유럽 관광객들이나 경제력이 있는 사업가들을 타겟으로 할 때, 미슐랭 레스토랑으로 대표되는 하이엔드급 식당이 애초에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환경이다. 물론 이 레스토랑들이 모두 영국요리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때문에 돈이 있고, 미식에 관심이 있다면 영국은 좋은 식도락 관광지이며, 미식 선진국이기도 하다. 물론 그 돈이 있다는 정도는 세계에서 가장 소비물가가 비싼 런던 기준으로도 부유하다는 경우에 한한다.
영국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요리사로는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를 비롯하여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등이 있다. 한국에서도 영국 유학파 출신 쉐프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5. 문제점
너무 길어져서 3개 문서로 분리되었다.
분리할 것을 다 분리하고 남은 이 항목은 상기에 서술된 영국요리의 식재료, 제과제빵, 미식강국으로써의 강점과는 다른, 전반적인 영국요리의 문제점에 대해 서술한다.
상기에 서술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영국요리는 긴 세월동안('''최소 300년 이상''') 전세계적으로 조롱과 풍자, 인터넷 밈(meme)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심지어 '''영국인들 자신조차 디스하는''' 악명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대표적인 증언을 몇가지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어릴 적 나는 전통 잉글랜드 서민 요리의 온갖 익숙하면서도 '''추한 맛'''을 먹으며 자랐다. 매년 도버 해협 건너 벨기에에 사는 친척들 집에서 식사를 하는 명절날을 일년 내내 기대했고, 내 십대 무렵 즈음에 대도시에 막 독립한 식민지 인도에서 온 이민자들의 식당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은 성장기의 축복이었다."
-역사학자 토니 주트(1948~2010, 유태계 '''영국인'''), 유작인 자서전적 회고록 Memory Chalet (2010) 중에서
"영국인의 태도와 생활 양식, 음식 등은 폴란드인[25]
에게 충격이었다. 영국에 도착한 그들에게 제공된 어묵 샌드위치는 잊기 힘든 기억을 남겼으며, 태우다시피 한 양고기와 양배추부터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커스터드 소스에 이르기까지(자유 프랑스인 또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끔찍한 영국 요리 때문에 향수병만 더 짙어졌다."역사학자 앤터니 비버('''영국인'''), 제2차 세계대전, 196페이지
동아시아 담당 기자로 내가 누린 가장 큰 행운은 지난 15년간 '''우리나라 음식 대신''' 한국 요리, 중국 요리, 일본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런던에서 지내는 동안 거의 외식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맛있는 레스토랑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탈리아에서 지내다 보면, 런던에서 돈을 내고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미안한 말이지만 직접 만들어 먹는 편이 더 맛있다. 식빵은 맛있었다. '''요리라고 할 정도의 음식은 아니지만.'''
, 먼 북소리 中
증언은 이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이 외의 증언들은 영국 요리/증언 항목을 참조."올림픽에만 3번째로 참가하면서 '''선수촌 밥'''이[27]
맛없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2012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대한민국 사격선수 진종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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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BBC를 포함하여 다양한 저널리즘 관련 수상경력이 있는 푸드 저널리스트 조안나 블리스먼이다.
책의 제목은 "나쁜 음식 영국 - 어떻게 국가가 그 국가의 식욕을 파괴하는가" ("How A Nation Ruined Its Appetite".) 인데, 이 책의 소개를 일부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러한 비판은 단순히 한 저널리스트의 저서에 그치지 않는데, 다음은 2009년 영국관광청(VisitBritain)에서 영국을 방문하는 36개국 관광객에게 "영국요리는 매우 맛이 없다" (very bad) 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가장 많은 관광객 숫자를 차지하는 상위 10개국의 결과이다.'''레시피와 다이어트책이 꾸준히 베스트셀러 탑10에 들지만, 평균적인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에 단 8분밖에 들이지 않고, 사람들은 스스로 요리하기 보다 유명 쉐프의 TV 요리를 보는데에 더 시간을 들이는 나라에 어서오세요.'''
Welcome to the country where recipe and diet books feature constantly in top 10 bestseller lists but where the average meal takes only eight minutes to prepare and people spend more time watching celebrity chefs cooking on TV than doing any cooking themselves, …
'''음식의 안전과 산지에 거의 병적으로 집착하지만, 영양섭취는 공장생산 제품에 의존해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4배나 많이 소비하는 나라에 어서오세요.'''
Welcome to the nation that is almost pathologically obsessed with the safety and provenance of food but which relies on factory-prepared ready meals for sustenance, eating four times more of them than any other country in Europ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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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웹아카이브)
1이 강한 부정, 7이 강한 긍정으로 3.5미만은 '보통'이라는 뜻이다. 조사국 36개 중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영국음식이 나쁘지 않다고 응답 했으나, 영국 여행국의 상위 10개국 중 6개국이 3.5를 웃도는 답변을 했다는 것은 유럽내에서 영국 요리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28] 영국관광청(VisitBritain)에서 해당 조사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가 오히려 홍보에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였는지 결국 삭제한 상태다.
즉, 이와 같은 영국요리에 대한 자료들은 영국요리에 대한 악명이 무작정 허황된 것이 아닌, 충분히 실제에 근거한 소문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와중에도 상기 서술된 영국요리의 장점들과 문제점들의 다른 모습에 당황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장점들은 식재료, 베이커리, 하이엔드급 레스토랑에 대한 부분이며, 단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 전반적인 영국의 식문화 경험에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런던에 살면서 매끼마다 하이엔드 레스토랑에서 먹을 돈 있으면 서술된 영국 식문화의 문제는 무시해도 된다. 그런데 그만한 돈이 있으면 영국인들도 조국이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미식여행을 하며 살 것이다.
'''영국요리 레시피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것이, 똑같은 레시피라도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심지어 같은 영연방내에서 만드는 피쉬 앤 칩스도 맛은 물론이고 조리법까지 다른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같은 영국인이 만들어도 그 맛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든램지가 만든 피쉬 앤 칩스가 형편없을 리 없지 않은가? 최소한 호주나 캐나다 같은 곳에서 산업혁명에 찌든게 아니라 깨끗한 하천에서 나온 질 좋은 생선에 다른 비영국계 이민자들이 가지고 온 향신료로 맛을 낸 피시 앤 칩스는 꽤나 맛있는 음식으로 평가받는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케이트 폭스는 그녀의 2004년 베스트 셀러 Watching the English: The Hidden Rules of English Behaviour 에서 영국인들은 타 유럽인들에 비해 요리에 관한 열정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청교도 특유의 금욕주의로 요리자체에 관한 열정을 비웃는 분위기와 문화가 있어서 역시 영국 요리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고 말한다. [29]
종합해보자면, 영국요리에 대한 나쁜 인상은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전반적인 영국식사''', 그 중에서도 영국요리라는 '''레시피 자체가 아닌 조리의 측면에서''' 기인하고 있는 면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요약하자면 레시피 자체는 아주 정상적이고 공급되는 식재료의 질도 좋아 잘만 만든다면 맛있는 요리가 맞는데, 몇몇 극소수를 제외한 그걸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요리에 관한 열정도 없고 관심도 없으며 자연스럽게 요리를 배울 기회[30] 조차 없다는 삼위일체로 조리법이 개판이 되어 이런 대참사가 발생했다는 소리다.
5.1. 일반 가정식의 부재
위 원인 분석 문서에서 지적한 여러 원인들로 인해 영국은 식문화 자체가 발전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해당 문서에서도 언급했듯이,
- 요리 자체의 질이 좋은 덕분에 생긴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기는 문화
- 청교도적 금욕주의로 인해 생긴 손이 많이 가는 요리법을 사치로 여겨 기피한 문화
당장 한국 음식만 하더라도 한국의 국과 찌개를 보면 매우 다양한 요리가 포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 외에 굽거나 삶거나 기름에 부치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조리법으로 온갖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고안해놓은 상황이다. 하지만, 영국 음식은 이 단계에 해당하는 요리가 몇개 없다. 한국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간장계란밥이나 스팸에 김치 같은 매우 간단한 음식이나 신선로, 어란같은 고급 요리는 있는데 김치찌개나 제육볶음, 닭도리탕같은 약간 수고를 들여야 하지만 가정집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중간 수준의 요리들이 빈약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정식이란 '집에서 식사로 조리해먹기 편하며', '음식점에서 평범한 한끼 식사로 사먹을만한 요리'를 말한다.
이는 특히 외국에서 영국 요리의 악명이 알려지는데 크게 일조했다. 빈약한 가정식의 풀은 고스란히 영국에서 먹을거리는 고작 피쉬 앤 칩스, 로스트, 파이 정도라는게 다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영국 요리를 까는 원인이되었기 때문.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영국 요리들은 저것들 말고 몇가지 있지만, 조리방법이 너무 간단하고 한끼 식사거리가 되지 못한다. 외국에서 손님이 찾아왔는데 베이크드 빈즈를 올린 '빈즈 온 토스트(Beans on toast)'나 으깬 콩 요리인 '머시 피스(Mushy peas)'를 '''요리'''라고 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또한 이러한 비좁은 가정식 풀은 영국인들에게 영국 요리를 대보라고 해도 말을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런던을 비롯한 영국 대도시에 온갖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하지만 그것이 일반 시민들이 평범하게 먹는 음식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영국인들하곤 엮일 일이 별로 없다. 우리가 신선로나 구절판을 일반적인 한식으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영국 서민들도 그런 고급 요리와 거리가 멀고, 그런요리들은 말 그대로 접대가 있을때 아니면 특별한 일이 있을때에나 먹는 음식이다.
반대로 '영국의 매우 간단한 요리'들은 영국인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요리라고 부르기 민망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 또한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괜찮다고 하는 아침식사 메뉴도 사실 그냥 계란 후라이, 구운 소시지나 베이컨 같이 망칠레야 망치는거 자체가 힘들고, 너무도 보편적이고 평범한 조리법이라 다른 나라 같으면 굳이 '우리 문화 고유의 음식'이라며 내세우지도 않는 것들이다. 흰쌀밥에 구운 스팸, 캐찹 소시지 볶음, 맛김, 볶음고추장, 김치 두어가지, 간단한 즉석 국이나 라면으로 이루어진 한상은 한국인이라면 좋아하다 못해 메일 한끼씩 꼭 먹으래도 "한끼 정도면 매일이라도 생각해 볼만하다"싶은 상차림이지만 '''그 어떤 한국인도 이런걸 한국 고유의 세계 만방에 내세울만한 요리라고 하진 않는것'''과 같다.
그 결과 영국인들이 '가정식'하면 주로 떠올리는 음식에 '인도식 카레'가 당당히 들어간다. 즉, 우리나라의 짜장면이나 피자처럼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끼리 외식을 나가서 인도 카레를 먹고 자라 추억의 음식이 된 영국인들이 상당히 많다. 식민지의 요리가 되려 본토 식문화를 잠식한 어이없는 상황이다.
영국에 '''세계적인 셰프는 즐비한데, 영국 요리는 악평을 듣는 이유'''도 이 사실을 알면 바로 이해가 가능하다. 고급 요리와 레스토랑 문화는 크게 발달했기 때문에 셰프의 수요도 많고 육성 과정도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으므로, 고급 셰프의 양성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 단계인 가정식이 통째로 증발해버렸기 때문에 전체적인 요리 밸런스가 무너져 악평을 듣는 것.
5.2. 비좁은 식재료 풀
아래 항목들을 보면 고기와 술만 빼고 전반적으로 모든 식재료의 활용도가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5.2.1. 채소
동아시아와 남서유럽권 사람들이 영국 요리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공통적인 문제로 지목하는 지점이 바로 영국 요리의 채소 활용이 형편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영국 요리에서 많이 사용되는 채소들이라고 하면 강낭콩, 양상추, 당근, 토마토, 아스파라거스, 그린 빈, 양파 등이 있는데, 이들을 가지고 하는 요리법들을 보면, 갖은 방법으로 요리에 이용하는 타문화권 요리에 비해 매우 뒤쳐진 수준이다. 당장 위에서 그나마 괜찮다고 추켜세워준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만 봐도 구성에서 채소가 쏙 빠져있고 그렇다고 샐러드 등으로 보충되지도 않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32]
이는 영국의 기후적-토지적 요인과 역사적 요인에 기인하는 점이 큰데, 영국 요리가 탄생하고 성장한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은 대부분의 지역이 서안 해양성 기후이기 때문에 다양한 채소를 키우기 좋지 않은 환경이며, 브리튼 섬과 아일랜드 섬의 토질도 밀과 보리 같은 곡류가 아닌 채소를 키우는데에는 문제가 많았다.
이 때문에 영국인들이 접할 수 있는 채소는 매우 한정적이었으며, 온실 기술 등이 등장한 오늘날에도 영국의 채소 생산량은 많지 않다. 따라서 영연방 혹은 유럽산 채소를 제외하면(다시말해 영국 외부에서 들여오는 채소를 제외하면) 다양한 채소를 접하기가 힘들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비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정 국가를 상징할만한 요리가 되려면 일단 재료를 그 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함은 상식이다. 유통 및 저장 기술의 발달로 자국에서 보기 힘든 타지의 식재료를 '구할 수는' 있겠지만 별미에 그칠 뿐 국가를 대표하는 요리가 될 순 없다.
반면 육류와 곡물 생산량 하나 만큼은 끝내줬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영국은 잠시간의 정치적 혼란기를 제외하면 만성적인 기아를 겪은 일이 없고,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평야지대와, 근대 이후에는 세계 곳곳의 식민지들로 말미암아 농축산물 생산량을 중심으로 한 식량 생산량이 넉넉한 편이었다. 근대 이전까지 서민들의 식량 사정이 빈천했던 한국[33] 이나 일본, 이탈리아 등과는 달리 서민들조차도 채소 요리에 굳이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쉽게 말하면 그냥 있는 고기 사다가 구워 먹기만 해도 삼시세끼를 넉넉히 챙길 수 있는데 산나물이나 버섯 등을 힘들여 캐거나 잘 자라지도 않는 채소들을 억지로 재배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영국의 식문화에는 채소를 요리하는 방법이 실종되어 버리는 문제로 이어졌다. 채소를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 타 문화권들과 달리 영국 요리의 채소 요리는 기껏해야 샐러드로 먹는 거나 삶는 것 정도 밖에 없었으며, 그나마 샐러드의 경우도 19세기 들어 다양한 드레싱이 등장하면서 발달하기 시작한 거라, 푹 삶아서 맛없게 먹는 것 외에는 사실상 채소 요리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다만 이 문제는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아이슬란드 등 전반적으로 채소류 재배가 까다로운 서유럽 북부와 북유럽 그리고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싱가포르[34] 등 영연방 국가들의 요리나 미국 요리에서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므로, 딱히 영국 요리만의 문제라고 보긴 힘들다.[35]
5.2.2. 해산물
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다. 과거부터 대구 정도를 제외하면 영국인들의 해산물 요리 수요는 사실상 바닥인데, 이는 오늘날 영국 요리에서 해산물 요리가 매우 낙후된 요인이 됐으며, 해산물 요리가 크게 발달하고, 이를 또 고급 식재료로 치는 프랑스, 지중해, 한국, 일본에서 영국 요리에 대한 평가가 매우 안 좋아진 이유가 됐다.
이는 영국이 위치한 북해가 굉장히 거칠고 자연재해가 잦은 해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앵글로색슨족과 노르만족은 바다를 죽음의 공간으로 간주했고 그곳에 사는 생물들도 괴물이라 하여 먹지 않았다.[36][37] 유대인처럼 빡빡하게 명문화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생선의 형상'을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이라 보았고, 상어나 대구, 굴과 같은 제한된 경우를 제외하면 해산물을 섭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교적 최근까지 영국과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국가들의[38] 해산물 요리는 매우 후진적이었으며, 이런 전통은 현재까지도 많은 영국인들이 해산물 요리를 꺼려 해산물 요리가 발달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환경의 후폭풍으로 인해, 영국에서 그나마 나오는 해산물 요리들도 맛을 내기 위한 제대로 된 처리과정을 거치지 않아 비린내가 넘쳐나거나 기름덩어리가 되는 등 결과물이 좋지 않다. 각주에 나온 랍스터 조리방식이나 영국에서 만든 피쉬 앤 칩스의 안좋은 평가[39] 가 대표적인 예. 추가적으로, 영국 요리의 대명사로 알려진 정어리 파이도 조리와 레시피에 심한 문제[40] 가 있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5.2.3. 향신료
이 점은 고전적인 영국 요리의 문제점인데 사프란이나 바질, 파슬리 등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는 남유럽권 요리들이나, 커민, 정향, 후추, 강황 등 수만가지의 향신료를 때려박는 인도 및 동남아시아 요리, 고추, 계피, 고수, 마늘, 생강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동아시아권 요리들과는 달리, 영국 요리에는 18~19세기 전까지 향신료 사용이 많지는 않았으며, 현재도 요리가 발달했다고 여겨지는 다른 문명권들에 비해 향신료 사용이 적다. 이 시기에도 <Scarborough Fair> 노래 가사에서도 나오듯이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타임 등의 여러 향신료가 영국 내에서 재배되거나 유럽 등에서 수입되었으나, 그 재배량이나 다양성에 있어서는 인도, 동아시아나 남유럽의 사용량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 점도 1.의 채소 요리 미비와 비슷한 원인에서 기인하는데, 영국의 토질과 기후가 향신료들을 키워내기에 매우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지역 불문하고 모든 향신료 식물들은 기본적으로 풍부한 일조량과 온화한 기후가 필요한데[41] 영국은 위도가 높고 다우지이기 때문에 일조량도 적으며 기온도 높지 않아서, 온실 등 근대 과학기술의 도움이 없는 상태에서는 향신료 식물들을 키워내기가 매우 힘들다. 영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안개가 자욱하게 낀 도시에 우산을 든 신사'''라는 것을 떠올려 보자. 그나마 민트와 파슬리는 영국 기후에서 잘 자라긴 한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 소금과 민트, 파슬리 등 몇몇 종류의 작물을 제외하면 향신료는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고, 19세기 영국령 식민지들에서 증기선을 타고 향신료들이 대거 들어오기 전까지 영국 요리에서 향신료는 서민들에게는 접할 수 없는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 없었다. 이 때문에 향신료 사용에 적극적이었던 귀족 요리와 달리, 향신료를 접할 수 없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 요리에서는 향신료가 사실상 사용되지 않았다.
향신료의 사용의 미비는 같은 재료에서 다양한 조리방식을 파생시켜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추고, 나아가 소재 본연의 맛만으로는 다양한 향신료를 맛본 혀를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평가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향신료 사용이 미비할 경우 재료의 품질 저하로 인한 맛의 저하를 덮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즉, 향신료 없이 요리할 경우 재료의 품질이 조금만 떨어져도 요리의 맛이 급격히 나빠진다는 뜻이다. 흔히 영국인은 요리를 못한다는 통념이 있는데 이는 요리 문화가 일천한 것도 일부 있지만 본질은 이렇듯 향신료를 잘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재료 관리에 조금만 실패해도 맛이 크게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애초부터 잘 만들기가 어려운 식문화 환경이라는 것.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아프리카 식민지의 영국인들은 현지인들과 영국 외 이주자들의 향신료 이용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영국 본토인들은 영국으로 건너온 인도인들과 화교, 말레이 족 등의 영향으로 아시아의 향신료 사용법을 받아들였는데, 이 점 때문에 오늘날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의 주류 향신료 요리가 다름 아닌 커리와 케첩과 간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근대 이후 영국인들 나름대로도 연구를 하여 민트나 로즈마리, 오레가노, 타임, 머스타드 등의 향신료에서 영국의 지리적 환경에 자라기 쉬운 육종을 개발하고, 여러 요리법을 개발해내기도 했으나, 여전히 향신료 사용이 많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5.3. 급식의 문제점
1944년 법적인 영양 가이드라인이 갖춰진채 급식이 시작된 이래로 진행되어 오던 급식이지만 맛은 보장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 마가렛 대처[42] 정부에 의해 무상급식과 같은 재정지원이 폐지 되고 학교 급식을 관리하는 주체가 학교에서 민영사업자로 넘어가면서 급식의 질이 급격히 하락했다. 민영사업자들이 감자튀김, 칠면조 너겟, 피자와 파이등 수준 낮은 '따뜻하지 않고 차가운' 패스트푸드 수준의 급식을 학교에서 제공하자 이에 경악한 제이미 올리버가 2004년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시작하고, TV 방송을 통해 이를 알리기 시작했다.
제이미 올리버가 영국 급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보면 정말 충격과 공포. 제이미 올리버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요리사인 그가 성인병 예방과 급사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학교 급식에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자."라는 상식선의 운동을 펼치고 이를 위해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심지어 영국 급식을 상대로는 방송 중에 울면서 노력해도 제대로 안 됐다.''' 그나마, 이 에피소드들이 나간 뒤에 뒤늦게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마사 페인(Martha Payne)이라는 '''9살짜리 꼬마'''가 자신의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에 대해 신랄하게 평점을 매겨 비판하는 글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그 포스팅이 반 년만에 3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이전 급식개혁운동을 주도했던 제이미 올리버의 격려 멘트까지 받았다. 때문에 자신들의 입장이 불리해진 현지 협의회가 근면성실한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부당한 모함이라며 급식에 대한 사진 촬영과 업로드를 금하고 탄압하자, 영국 급식에 대해서 논란이 사회문제로 크게 불거져서 급식 개혁에 대한 불길이 각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2012년 6월 14일 참고[43]
결국, 제이미 올리버의 이러한 노력이 2005년 영국 총선의 주요 화두로까지 진화하여, 영국 정부로 하여금 아이들의 급식영양권을 지키기 위하도록 아이들의 급식신탁(Children's Food Trust)이라는 비정부공공기관까지 만들게 되었고 2014년 9월부터 영국 모든 학교의 유치원생들은 무상으로 '따뜻한' 급식(free hot meal at lunchtime)을 제공받게 되었다. 부총리인 닉 클레그도 적극적으로 나서 모든 유아들에게 인당 2.30파운드를 급식비로 지원하기 시작했고, 스코틀랜드에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무상급식을 제공받게 되었다. 영국의 교사노조는 여전히 영국에서 나머지 모든 학생들이 무상급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영국 노동당에서는 이를 정책 과제로 삼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사실 이건 공립학교뿐 아니라 심지어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년 학비가 12,000~15,000파운드(당시 환율로 2,400~3,000만원)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식사는 무척이나 부실해서 특히 저녁식사의 경우 손바닥 반 크기의 조그만 파이와 삶은 꼬마감자들 정도가 전부인 경우가 대다수이고 거기에 잘 나와봤자 식빵들과 맛없는 샐러드, 차가운 파스타 정도를 추가해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영국학생들은 그 누구도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외국인 유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그래서 동양권 유학생들은 방학만 끝나면 라면들을 산더미같이 싸들고 와서 저녁대신 라면을 먹곤 했고 용돈을 많이 받는 학생들은 저녁마다 중국요리나 케밥등을 배달시켜 먹곤 했다. 너무 음식들이 부실해서 음식을 떠주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신들도 어쩔 수 없다며 학생 한명당 배당받는 일일 식비가 50p라고 하였다. 당시 환율로 1천원 정도인데 아무리 20여년 전이라지만 영국물가에서 하루 3끼에 1천원 (이것도 당시 파운드당 2천원의 환율이었기에 그렇지 지금 환율로 치면 700원 정도이다)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만들기 어렵다. 방학을 제외하면 일년에 약 7개월 정도 학교 기숙사에 머무니 (사립학교라 방학이 좀 많이 길다) 1년에 식비로 학생 1인당 105파운드가 투입되는 셈인데 학비의 1%도 투입되지 않는다. 그 정도로 학교에서 학생들의 식사를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