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2군
[clearfix]
1. 소개
BB아크, 씨를 뿌리는 사람들
삼성 라이온즈의 2군 야구단. 삼미 슈퍼스타즈와 OB 베어스에 이어 3번째로 창설된 2군 팀이다. 1990년 2군 리그가 창단한 이래 계속 남부리그에 속해있다.
2. 홈구장
-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 1987년 ~ 현재[3]
3. 역사
3.1. 1980년대
1984년에 박창용 전 대구상고 감독을 2군 감독으로 선임하고 1985년에는 천보성을 코치로 뒀고, 1988년에는 장명부[4] 를 투수코치로 영입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다른 팀들은 2군 감독이 아닌 2군 코치가 2군 감독역을 맡고 있었다.
3.2. 1990년대
2군 리그가 생긴 후 1990년대에서는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1992년 첫 우승 이후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총 5시즌 연속 남부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 마무리 훈련이나 미국 교육리그에 선수들을 파견할 정도로 선수 육성에도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5] . 신동주, 이동수, 정경훈, 최익성 등이 이 시기에 2군에서 기량을 닦고 1군에 올라와 맹활약한 대표적인 선수들. 그러나 타자에 비해 투수들의 성장은 지지부진했고[6] 팀은 번번이 KBO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셔, 1990년대 후반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현대 유니콘스와 함께 육성보다는 선수를 사들여 팀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2군 운영은 항상 뒷전이었다.
3.3. 2000년대
2000년, 2004년, 2010년에도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2000년대에도 곽용섭[7] , 박석민, 최형우 등의 선수가 나왔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2군에 전보다 관심을 덜 가지면서 최형우는 2005년 남부리그 타격 2위를 하고도 방출될 정도로 방만한 운영을 했다[8] . 또한 2군 중심타자였던 곽용섭과 박석민이 입대했을 때인 2006년과 2007년에는 젊은 유망주 기근에 시달리기도 했다[9]
3.4. 2010년대
그래서 2010년대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운영 방침이 선수를 육성해서 키우자!로 바뀌게 되었고 2군에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두산 베어스 못지 않은 화수분 야구가 가능하게 되었다[10] . 지원도 빵빵해서 한국프로야구 2군팀 중 유일하게 2012년부터 매년 해외 전지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2군 지원과는 별개로 1군이 잘 나가다 보니 신인 지명에서 좋은 유망주 수급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다 2차 드래프트의 시행으로 그나마 있는 유망주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거나 하는 이유 등으로 팀 성적은 퓨처스리그 전체에서 중하위권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파해보고자 BB 아크도 만들었지만 이 역시 신통치 않은 상황[11] .
2015시즌 부터는 옐로우 리그에 소속될 예정이었으나, 편의 때문에 북·중·남부리그로 이름을 바꾸면서 남부리그 소속으로 남았다.
2016년 3월 9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개장 첫 경기를 했다. 상대는 kt wiz 2군 관련 기사
2016년에는 남부리그 꼴찌에 2005년도의 역대 최저 승률을 갱신하며 최악의 성적까지 기록했는데, 시즌 후 올라온 삼성 2군 관련 기사에 따르면 스카우트 실패, 어차피 떠날 거라 자기는 상관 없다는 무책임한 일부 코치, 노후화된 시설, 부진한 성적 탓에 고참급은 군기를 잡는 등,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감독 교체의 여파로 2군 코칭스태프도 물갈이되면서 2017년에는 예년 수준으로 돌아왔다.
2018년 시즌이 끝난 후에 1군 준주전과 백업, 2군 주전들[12] 을 포함 방출하고 이후에 2018년 드래프트와 육성선수로 들어온 15명 전부를 구단 최초로 재계약하면서 2군에도 대대적인 선수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2군/2010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1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2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3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4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5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6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7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8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19년
- 삼성 라이온즈/2군/2020년
4. 역대 감독
5. 역대 성적
6. 역대 개인 기록
커리어 전체가 아니라 삼성 소속일 때만의 기록으로, 상무나 경찰 같은 군경팀 시절 기록도 제외했다. 단, 투수의 사사구와 타자의 득점 기록은 2006년 이후 기록 한정이다. 2군 기록의 경우 KBO는 2005년까지 연감에 각 투수의 사사구와 각 타자의 득점을 표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상대적으로 경기가 적어서 투수의 평균자책점이나 타자의 타율 정도를 제외하면 경기수가 많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누적 기록이 상위일 수밖에 없다.
6.1. 통산
6.2. 단일 시즌
7. 관련 문서
[1] 팀 이름이 아니라 회사이름이다.[2] 건설 자체는 1987년에 이뤄졌으나 야구장이 건설된건 1995년에 완공되었다.[3] 포항 야구장 개장 후 포항을 홈구장으로 쓰려고 포항시와 협약을 맺었지만, 삼성 구단과 포항시 모두 협약을 두고 서로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며 갈등을 빚는 바람에 이뤄지지 않았다. 2016년 들어 신구장 개장으로 삼성이 포항 경기를 줄이면서 2군팀의 포항 이전은 사실상 무산되었다.[4] 하라는 투수 육성은 안하고, 1군 투수 운용에 사사건건 간섭하면서 1년만에 짤렸다.[5] 특히 1995년에는 2군 선수 전원이 단일 팀으로 미국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가하기도 했다.[6] 박용준과 최한경은 1군에서 혹사당한 탓에 선수 생활이 짧았고, 이상목은 1993년 시즌 중 박선일과 트레이드돼 빙그레 이글스로 간 다음 에이스로 성장했고, 허삼영은 허리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이밖에 2군에서 활동하다 1군에 올라온 투수는 이상훈과 김인철 등이 있는데, 그나마 김인철은 어깨 부상으로 결국 타자가 됐다.[7] 2003년 신인지명 2차 2라운드에서 지명된 좌타자로, 당시 2차 1라운드 지명자였던 강명구보다 더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다. 입단 당시부터 2군 유망주 중 1명으로 손꼽혔지만, 군제대 후 어깨 부상으로 재활하는 사이 포지션이 겹치는 채태인에게 밀려 2008년에 방출됐고 이후 LG나 두산을 전전했지만 결국 1군에 자리잡지 못했다.[8] 다만 2007년까지만 하더라도 2군에 대한 위상은 현저히 낮았다. 특히 삼성의 경우에는 2군 본즈의 원조인 김승관의 사례가 있다 보니, 최형우가 2007년 경찰 야구단에서 타격 7관왕을 했음에도 2008년 시즌 전까지는 최형우의 1군 활약에 대해서 부정적인 전망이 더 많았다.[9] 그나마 2004년부터 1군 주전이 된 조동찬과 2005년 입단한 조영훈이 있었지만, 2007년에 각각 부상과 부진으로 조평신 1, 2호기라는 별명만 얻었다. 이 둘을 빼면 당시 삼성 1군에서 서른을 눈 앞에 둔 박한이가 제일 어린 선수였다.[10] 다만 이는 구단의 언플이고 화수분 정도는 아니고 매년 1~2명 정도 1군으로 올라오는 수준.[11] 그도 그럴 것이 류중일 감독이 BB 아크 설립 당시 코칭스태프의 확충도 요구했지만 새로운 코치 영입 없이 기존에 있던 코치들을 지도위원으로 임명했고, BB 아크의 시설도 기존 역사관을 리모델링한 거라 따로 훈련하는 장소가 없다. 설립 취지는 좋았지만 실적을 내기에는 그 여건 자체가 안 좋다.[12] 안성무, 황수범, 김기태 등은 삼성 2군에서 가장 이닝을 많이 먹은 투수 3명이다.[13] 1989년 말 당시 기사에는 투수코치로 영입했다고 나오는데, 1990년 삼성 수석코치는 유백만이었고 권영호와 마티 디메리트 등이 1군 투수코치였다. 또한 이 당시 류영수의 인솔하에 2군 선수들이 미국 교육리그에 갔다. 2군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던 시절이라서 비단 류영수 뿐만 아니라 다른 코치들도 당시 기사만으로 정확한 보직을 확인하기가 힘들다.[14] 2010년에 삼성은 1감독 2수석 체제로 운영되면서, 2군 감독은 없었고 2군 수석코치가 2군 감독 역할을 맡았다. 2011년에 1군 감독이 류중일로 바뀌면서 2군 감독직이 부활했다.[15] 장효조 감독의 병환이 깊어지면서 양일환 코치가 2군 감독직을 대행했다. 그리고 장효조 감독은 그 해 9월 7일 세상을 떠났다.[16] 힘 싣기+투수 유망주 집중 육성을 통해 결정되었다고 한다[17] 해태와 공동 1위[18] 300이닝 이상 기준. 참고로 이 기준을 만족하는 역대 삼성 2군 투수는 곽동훈, 김기태, 라형진, 이동걸, 정성훈, 정인욱, 황수범 등 7명이다.[19] 1000타석 이상 기준. 참고로 이 기준을 만족하는 역대 삼성 2군 타자는 김승관, 김정혁, 김종호, 모상기, 문선엽, 박규대, 백상원, 손주인, 우동균, 이태호, 정형식 등 11명이다.[20] 참고로 이 당시는 팀당 60경기였다. 팀 이닝의 1/4 가량을 정성훈 혼자서 책임진 셈.[21] 남부리그 단일시즌 최고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