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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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논란
2.1. 사실 관계 논란
2.2. 저자의 아버지 관련 논란
2.3. 일본 국민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본다는 시각
2.3.1. 작중에 나오는 일본인들의 피해 관련 논란
2.3.2. 피난 중인 일본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한국인에 대한 증언
3. 미 교과서 수록과 퇴출
3.1. 일본 정부의 무상지원과 적극적 로비로 부활?
4. 결론
5. 기타
5.1. 반크 역사 바로찾기
5.2. < Flutter, Flutter, Butterfly >


1. 개요


원제는 'So Far from the Bamboo Grove'.
일본어 번역판 명칭은 '竹の森遠く'.
저자는 일본계 미국인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가 패한 직후 주인공과 그 가족들이 조선에서 탈출한 후 전후 일본에서 생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이런 귀환자를 일본에선 히키아게샤라고 부른다.
이 책이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어 논란이 되자 이 책을 낸 문학동네 홈페이지에 온갖 비난글이 넘치면서 결국 문학동네 측에선 대문에 사과글을 올리고 책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2. 논란


일본인들을 일방적 피해자로 보는 입장이 강하다는 비판과, 소설 속의 주인공 소녀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학살했다는 소문을 듣고, 강간 장면을 목격했다는 부분이 수록된 점이 문제점으로 부각되었다. 자세히는 '''해방을 틈타 한국인들이 일본인 처녀를 강간하는 장면'''이 간접적으로 묘사되고, 주인공은 어려서 놓아주었다는 구절이 실려 있는 점이 논쟁을 일으켰다.
<요코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 묘사에 대한 시민 단체 반크의 반박문.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감정적인 시선에서 쓰여진 글이었기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다만 비판이 격렬해져서 다소 사실과는 다른 내용이 비판에 사용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러한 근거를 차용할 때는 사실여부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실과 다른 비판이 제기되었다고 해서 이 글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해방을 전후하여 일본인이 다소 불이익을 받았을 가능성은 있지만, 일제강점기한국한국인이 받은 피해를 생각한다면 '일본인도 피해자다.'라는 논리는 결코 가볍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 항복 이전의 일본인의 삶을 담고 있으며, 일제의 침탈 행위의 부당함을 보여주는 맨발의 겐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국가의 소행일 뿐 시민들은 무고하다'라는 말은 일리가 있으나(북한을 봐도 그렇듯), 일본의 많은 시민들이 정부의 제국주의 전쟁을 찬성하고 원동력을 공급한 것 역시 사실이다(독일을 봐도 그렇듯).[1]
물론 <요코 이야기>가 반전적인 메세지를 다루고 있고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일 양국에게 있어 너무나도 민감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에 대한 주의가 부족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2.1. 사실 관계 논란


<요코 이야기>를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 만들어낸 과장어린 프로파간다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서, 이 책에 나오는 사실 관계의 오류들을 근거로 드는 의견이 있다. 사실 관계 오류의 예로는 1945년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인민군이 언급된다는 점, 원제나 작중에서 대나무 숲을 언급하지만 소설의 배경인 함경남도 함흥에선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점, 작중에 폭격 받는 장면이 나오지만 당시 북한 지역에 미군이 폭격을 한 일은 없다, 등등이 거론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일각에서 다음과 같은 반론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민군이 나오는 대목에 대한 반론은, 원문에서 Korean communist soldiers로 나오는데, 이는 인민군이 아니라 당시 북한 쪽 보안대를 적은 거라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을 한국어 번역자가 인민군으로 번역한 거라는 의견이다. 실제 광복 전후 만주 지역 독립군으로 활약하던 조선인들 중 일부는 공산주의 계열 소련군에 속해 미군정보다 더 일찍 남하하였고, 한반도 북부 청진과 원산 등을 목표로 한 상륙 작전에 함께 참여하였다.
함흥에선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는 지적의 경우, <요코 이야기>의 내용상에 나오는 대나무를 보면 대나무 중에서도 아오모리산 조릿대이고, 조릿대는 대나무 중에서도 추위에 강한 데다가 함흥은 겨울철에도 동해 덕에 상대적으로 따뜻한 편이라 조릿대가 얼마든지 자랄 수 한다. 관련기사 .
또한 <요코 이야기>에 나오는 미군의 폭격 관련한 내용을 두고 미군은 북한 지역을 폭격한 적 없는데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비판하는 의견의 경우, 함경북도 청진은 미군의 목표 중 하나로 실제 폭격을 당했다. 그러니 청진으로 가는 폭격기를 <요코 이야기>의 저자가 봤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2] 당장 평양이 폭격되어서 쑥대밭이 되지 않았나?
그러나 반론에 대한 반박도 존재한다.
우선 위 반론을 고려해도 본작의 서술에 따르면, 함흥에는 대나무숲이 울창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하늘에선 B-29가 집중 포격을, 땅에선 인민군이 총들고 학살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반론 1부터 따져보자면 북한 보안대를 굳이 원문에서도 "communist soldiers"(인민군)이라고 서술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당시 요코가 이를 목격했다고 쳐도 추후 이런 사실은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실이 공개되고 인민군이라는거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굳이 이러한 상황에서 인민군이란 표현을 쓸 이유가 없다.
이러한 반론이 있다는건 사실이지만 주의할 점은 항상 이런 정보는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아무리 해방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탄압당하고, 미군의 B-29 기체들이 함흥 위를 비행했다고 한들 원문에선 실제 폭격이 있었고 마치 조선인들이 조직적으로 일본인들을 강간 학살한 듯이 서술되어있고, 대나무가 몇 그루 자란 정도가 아니라 빽빽한 밀림같이 자랐다고 나온다. 요컨데, 위의 반론은 충분히 나올 수 있지만 이것이 당시 '''일본의 만행을 정당화할 성질의 것은 아니며''', 정작 원문에서부터 대다수 일본인이 피해를 본 듯 묘사한 본작 내용과 달리, 기록에 따르면 요코 이야기의 프로파간다와 대치된다. 나머지는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2.2. 저자의 아버지 관련 논란


저자가 서술한 내용 가운데 그녀의 아버지가 만주에서 활동한 고위 관리로써 아주 비밀스러운 일을 했으며 1948년 1권에선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6년형을 살고 2권에선 일본인 일반 포로에서도 제외되었다는 부분이 있으며 그녀의 아버지가 만주철도 회사[3]에서 일했다는 인터뷰 내용도 있기 때문에 미국의 한 학교에서 원작자에게 이에 관련한 사실 여부를 확인시켜 주도록 요구했으나, 원작자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교재 사용을 취소했다고도 한다.
만철(만주철도회사)은 실제 존재했던 회사로서 만주의 식민통치에 깊숙히 관여한 집단이었고, 실제 그 회사의 직원이었다면 전범으로서 시베리아에서 유형을 살았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조사된 바에 따르면 저자의 아버지는만철의 직원이긴 하였으나, 하위 고용원이었을 뿐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가 밝힌 바에 의하면 그녀의 아버지는 교토대학 의대 출신이자 만주에서 일한 정부 관리라고만 밝히고 있을 뿐 구체적인 직업은 적시하지 않았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저자의 말을 토대로 역사적 사실과 연관지어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의 아버지가 '''"731 부대의 최고위급 간부"''' 였을 거라는 주장 역시 신빙성이 높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의 조사에 따르면 시베리아에서 6년형을 복역한 사람들은 731 부대와 관련이 있는 자들뿐이었고, 포로로 잡혀 6년 동안 시베리아에 수감됐었다는 그녀의 아버지의 행적은 전범으로 25년형을 선고 받은 뒤 감형으로 1956년에 석방된 731부대 연구부장 가와시마 기요시의 행적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하바롭스크 전범재판 기록에 나오는 731부대 간부들과 매우 유사하다. 실제 731부대원들은 다수가 교토대 의대 출신이었고 이시이 시로 항목만 봐도 교토대 의대 교수로 2014년까지 존경받으며 명예롭게 잘살았다. 저자는 그녀의 아버지의 함자가 가와시마 요시오라고 밝혔다. 뜬금없게도 가와시마 키요미는 그녀의 할아버지의 함자라고 한다. #, #

2.3. 일본 국민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본다는 시각


책에선 주인공의 가정은 침공을 반대하는 식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공출에 저항하지만 아버지가 아끼던 문진만 잃게 되는 일화도 나온다. 글에서 줄곧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머물게 해준 "편견 없는" 친절한 조선인 가족에 대한 묘사도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저자는 침략전쟁에 대해서 일관적으로 반성조로 서술하고 있다.[4]
그러나 잘못은 군인과 정치가에게만 돌리며, 주인공 가족을 비롯한 일본인 자체에 대해서는 피해자란 식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지적 또한 존재하며, 이것은 전형적인 일본식 평화주의자, 나아가서는 일본의 역사왜곡의 논리라는 비판이 있다.
다만 일본의 군인과 정치가들을 비판하면서 일본인들 역시 피해자라는 논리는 그런 피해자이기에 또 다른 피해자인 일제 치하 조선인들을 돕는다는 식으로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일본 좌익들이 주장한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박열의 아내로서 천황 암살 모의 사건에 가담한 가네코 후미코도 보면 저런 주장과 비슷하긴 한데, 일단 좌파들은 국제주의를 바탕에 두고 상호 연대와 단결을 통한 민중의 봉기를 통한 혁명을 주장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지배 계층을 제외한 모든 피억압 민중은 피해자"라는 시각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이런 시각이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면서 "우리도 피해자"라고 하는 드립은 거의 모순이다.[5]
역자의 말에 따르면, 개인으로서의 요코 왓킨스는 한 강연회에서 한국인들에게 사과한 경력도 있다고 한다. 이는 의도가 악의는 아니었을 것이란 시각에 힘을 보탠다.
결론을 말하자면 작가의 의도가 좋았다 치고 요코 왓킨스가 한국인들에게 사과를 했어도 과연 '''개인의 사과가 일본정부의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 게다가 요코의 조부가 전범이였다는 사실도 나왔으며, 일본의 선량한 사람들 및 좌파들이 있었다 쳐도, 당시 일본의 극우들과 제국주의자들의 만행은 잊혀지지 않는다. 즉,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개인의 해석도 달려 있지만, 기본적으로 요코 이야기속에 편향이 조금이라도 있었단건 사실이 될 수 있다.

2.3.1. 작중에 나오는 일본인들의 피해 관련 논란


<요코 이야기>의 작중에 나오는 관련 내용에 대해, 한국인이 해방 직후 일본인을 강간한 사건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관련 증언이 이 허구의 소설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다며 <요코 이야기>를 비판하는 의견이 있다.
사실 귀환하는 일본 여성이 성폭행 당하는 것은 당시로써는 비밀도 아니라서 이런 소재로 한국인 주인공이 일본 여성을 구한다든가 하는 소설도 있다. 상식적으로 패전 후 혼란상황 속에서 도망가는 여자들이 정말로 완벽하게 안전했을거라 생각하기는 힘들다.
관련한 공식 기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1979년에 일본에서 나온 책인 水子の譜은 전후 강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치료한 후츠가이치 휴양소의 관련 기록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기록에 보면 한국인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나오고 있다.[6] 주의할 점은 일본 위키러들이 해당 글을 작성하였으므로 편향이 있을 수 있다.
한편 남쪽은 (구)일본군 → 미군에 의해서 치안이 유지되어 일본인의 철수가 상당히 부드럽게 이루어졌다.[7] 하지만 북쪽의 경우 해방 직전까지도 일본군소련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서 남한 쪽과 사정이 같다고는 할 수가 없다.
후츠가이치 휴양소 관련한 기록과는 별개로, 북한과 만주에 진주한 소련군의 경우 이런 저런 강간 사건을 많이 벌였으며 관련한 소문이 많이 돌았는데, 이런 소문이 도는 와중에 한국인도 가해자란 말이 돌았고 그걸 저자가 어린 시절 들어 소설 속에 쓴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설령 천만에 하나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게 당사자에게는 하나의 하나가 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가 있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조선인이 강간마라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이 책의 서술의 가장 큰 문제이다. 특히 그런 내용을 소설에 삽입하였을 경우 그런 사례가 많이 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제3자인 미국 학생들에게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분명하다. 이 항목의 아래 항목에서 볼 수 있듯, 오히려 한국인들의 보호로 잘 돌아갔다는 일본인들의 예도 많이 있으니.
역자의 경우에는 "우리의 나쁜 자화상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표현을 후기에 쓰면서 이 책을 화해와 용서의 계기가 될 것처럼 서술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 선행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따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상황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8]
요약하면 <요코 이야기>의 서술이 (저자의 경험이건 들어 알게 된 소문에서 나온 것이건) 실제 일어난 일이었을 가능성 자체는 존재하나, 당시 한반도와 조선인에게 있어 일본과 일본인은 원천적인 가해자였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나 반성은 쏙 빼놓고 '''단지 일본인의 피해만을 강조하여 자칫 일본인은 피해자, 조선인은 가해자라는 왜곡된 이분법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서술을 한 것은 여전히 잘못되었으며, 비판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조선, 중국인들의 보복으로 인한 일본인들의 피해만 이 소설에서는 부각되었다는 점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피해를 입은 일본인 민간인들이 있다 쳐도 당시 '''일본어떠한 태도유지했는가?'''

2.3.2. 피난 중인 일본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한국인에 대한 증언


한편으로는 일본 패망 직후 만주에서 38선 이남으로 피난 중이던 일본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던 한국인에 대한 증언도 있다. 2003년 작품인 후지와라 데이의 실화소설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에 들어가 있는 내용이다. 당시 26세 주부였던 후지와라 데이는 조선에서 겪은 체험을 기반으로 아래와 같은 발언을 자전적 소설에서 나온다.

'''조선사람들은 궁핍한 처지에서도 우리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베풀어 주었다. 너희들(아들들)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녀는 당시 생후 1달도 안 된 딸, 3살 아들, 6살 아들을 데리고 만주에서 한반도 이남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만주 일대에서는 중국인소련군에 의해 많은 약탈과 범죄가 있었으나, 한반도로 탈출하며 그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책에서 서술했다. 하지만 악몽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상당한 굶주림에 시달렸는데, 그 때 조선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훗날 후지와라 데이의 차남인 후지와라 마사히코(藤原正彦)는 일본 명문인 국립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일본 내에서 250만부가 팔린 '''<국가의 품격>'''이란 책을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군사력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국방력이 팽창주의와 이웃 침략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은 증언을 하였다.

1945년 8월 9일, 소련군만주로 밀려 내려오자 아버지는 26세였던 어머니께 5세, 2세, 그리고 생후 1개월 된 철부지 세 자식을 맡겨 귀국길에 오르게 하셨지요. 둘째가 바로 저였습니다.

책에서도, 평소에도 어머니는 늘 ‘가난한 한국인들의 친절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때 죽은 목숨이었다’며 고마움을 표해 왔답니다. 부자들은 일부 차가운 태도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며 슬쩍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눠주려 했죠.

38선을 넘으면서 산중을 헤매던 어느 날, 굵은 비까지 내리자 체온이 떨어져 모두 빈사상태였지요. 어느 농가에서 거지 행색의 저희 식구를 맞아들여 헛간에 새 건초를 깔고 자게 해 줬답니다. 그날 밤 그 집에서 쫓겨났더라면 저희는 모두 죽었을 겁니다.

이를 요약하자면 비록 요코이야기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당시 선량한 한국인들이 대부분 존재했으며, 이러한 선행을 베푼 한국인들 덕에 일부 일본인들 사이에서 친한 인식을 자아했다고 할 수도 있다.

3. 미 교과서 수록과 퇴출


당시 뉴스 영상
이와 비슷한 식민지 재류 일본인들의 귀국 경험은 일제 패망 전후 한반도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 사료로서는 어느 정도 가치가 있으며, 사실 국내에도 과거에 자료집 성격의 서적으로 비슷한 경험담을 담은 서적들이 출판된 적이 있다.[9]
하지만 문제는 작중에서 묘사된 내용이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편적인 것이라 한국과 일본의 역사 관계에 대해서는 상세히 다루지 않은데다가 개인적인 트라우마에 기인하여 과대포장해서 '''한국인을 극악한 가해자, 일본인을 선량한 피해자로 묘사했으며,'''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어린 시절의 시선'에서 극화하여 묘사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책이 미국 몇몇 학교에서 영어 교재로 사용되는 등 상황이 심각해졌다.
미국 청소년들은 먼 나라인 한국의 역사에 대한 앞뒤 맥락을 잘 알리가 없다. 아직 지식이 부족하고 미디어로 익숙해진 도식적인 이야기에 익숙한 어린 학생들은 다른 자료를 찾아서 책의 내용을 복합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선악관념'에 끼워맞추기 쉬웠으며, 결국 책의 내용을 읽고 '일본인은 괴롭힘 당하니까 착하고 한국인은 괴롭히니까 나쁘다'는 식의 잘못된 편견에 물들게 되었다. 때문에 몇몇 미국 청소년들이 <요코 이야기>를 교과서로 접하다가 한국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한국인 학생들이 고통을 받게 되었는데, 동급생이던 미국인 학생에게서 한국인 학생이 조롱당하거나 왕따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생겼으며, 한 사례로 한인 학생과 친하게 지내던 미국인 친구가 이 교재로 수업을 받고 한국인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울며 사이가 멀어져서 한인 학생이 무척 당황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떤 한국인 학생은 울면서 부모에게 "엄마 아빠, 정말 한국인은 극악한 가해자야? 죄없는 일본인을 이유없이 내몬 거야?"라는 식으로 물어본 일까지 있었다.
왜곡된 묘사로 학생들에게 잘못된 역사인식을 가지게 될 수 있는 것은 큰 문제이므로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허보은(알렉스 허) 양으로 시작된 한인학생들의 수업거부까지 불사한 항의로 2007년, 2008년에 퇴출되었다. 미국 교과서에서 퇴출당하자 저자는 미국인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며 반대운동을 벌였으나 결국 불발되었다. 미국인 역사학자가 이 책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당시 만주의 여러 지리적 모습도 "왜곡이 심하다, 이 책은 엉터리"라고 공개 토론에서 비판해도 저자는 제대로 반론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일제강점기한국전쟁을 둘 다 겪은 재미교포 작가인 최숙렬씨는 이 책에 매우 분노했고, 역으로 자신이 어린 시절 직접 보고 겪은 일제의 만행과 남북분단의 과정을 자세히 다룬 책 <떠나보낼 수 없는 세월>[10]을 영어로 써냈다.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공장의 여공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전부 끌려가던 밤의 일도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초등학생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간결한 어체에 이해도 쉽다.

3.1. 일본 정부의 무상지원과 적극적 로비로 부활?


언제나 그렇듯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 정부가 책을 무상으로 지원한다든가, 저자가 강연을 다닌다든가, 로비 활동을 대가로 미국 학교에서 <요코 이야기>를 다시 교재로 채택하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실제로 2012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요코 이야기>가 다시 채택되는 중이라고 한다. 지속적인 관심과 저지활동이 필요할 듯하다. 이런 적극적인 로비를 하는 것으로 봐도 이러한 움직임이 결코 좋은 의도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로비 활동은 전후 일본 전쟁범죄에 대한 희석과 일본의 역사왜곡의 도구로 <요코 이야기>가 활용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장면이다.
2015년에 뉴욕시 코네티컷 우드브리지 소재 비처로드 공립 초등학교에서 사회과목 서적으로 채택되었고 뉴욕한인학부모협회에서 항의서한과 함께 퇴출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 정부의 로비력을 통한 재채택이 상당했으나 재미교포들의 노력도 만만치 않게 노력하여 성과를 내고 있다고 한다. 즉 이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며 특히 아베 신조 내각 이후로는 이것이 굉장히 노골적이라고 한다. 기사

4. 결론


이 결론을 요약하자면 우선 요코의 증언 중에서 맞는 부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인과 중국인의 보복에 의한 일본인 피해자들도 일본의 패망 후 존재했을 수 있다. 하지만 요코 이야기는 사실일 수 있는 역사적 사건들을 교묘히 조합하여 '''적반하장 식으로 이야기를 과장하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요코 이야기에서 미군 폭격기가 함흥을 지나가다 폭격했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이 또한 연도의 신빙성이 없다. 게다가 아무리 함흥이 동해바다로 인해 기온이 조금 높다쳐도 대나무가 우거지로 밀림같이 함흥에서 자랐다는 사실도 무슨, 중국 남부가 아니랄까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리고, 그 구절이 모두 사실이라 할지라도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은 숨기고, 광복후 일본인의 조선인, 중국인, 미군, 소련군들과 엮이며 일어난 사건(그중 피해가 대부분)들만 강조하고, '''일본은 피해자라는 제 3자가 착각할 수 있게 편향적으로 서술하는 부분도 옳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선 출간되지 않았으며, 작중에서 주인공 가족이 일본의 전쟁 도발을 비판하는 부분이 지적받아서라고 역자 서문엔 수록되어 있다. 언론에서는 "일본에서도 출간되지 않은 불쏘시개가 한국에서 번역되다니!" 식으로 까였지만, 한국에서 이슈가 불거지자 일본 일부 극우들에선 뒤늦게 이 소설을 옹호하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쪽에서 <요코 이야기>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면 미묘한 점이, 정작 <요코 이야기>가 '''당시 일본에 대한 비판도 다루고 있다'''는 내용은 싹 빼놓고 언급하고 있다. 요코의 어머니가 전쟁을 도발한 일본 정부를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가 저지른 전쟁의 만행들을 고발한다거나,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돌아와서 학교에 입학하지만, 전쟁의 피해를 면한 부자집 아이들에게서 가난뱅이라는 이유로 천대를 받고 왕따를 당한다거나, 심지어 학교 교사들 또한 이를 못본 척 할 뿐만 아니라 이런 내용을 담아서 쓴 수필이 공모전에서 당선되자 축하해주지는 못할망정 교무실에 불러다 놓고 학교 망신시켰다며 책망한다거나.
함경북도 나남에서 도움을 드렸던 어느 부상당한 부사관이 요코 자매의 소식을 듣고 만나자는 연락을 하니 자매가 나가기 곤란한 상황도 나온다. "여자들끼리 외간 남자를 만날 수 없다. 코흘리개 남동생이라도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상황 소개가 아스트랄하다. 사실, 독자에 따라서는 <요코 이야기>의 진정한 가치는 '''당시 일제와 일제 사회가 보여주는 아스트랄한 상황과 그러한 상황에서도 나타나는 인간애'''이고, 위에서 지적하는 문제점들은 지엽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근데 그러면 어떤 쪽으로 해석을 해도 '''일제답이 없다'''라는 극우 혐한들에겐 비참한 결론이 나오는 것도 문제(?)다.
자성과 성찰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지만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당시 극적인 상황과 흉흉한 소문 등으로 만들어진 좁은 시야와 기억 오류로 인한 왜곡까지 담게 되어 한국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담게 된 이 소설이 그로 인하여 일제의 정당성으로 악용된 소설이라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5. 기타



5.1. 반크 역사 바로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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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 이야기>에 대해 비판하는 반크 역사 바로찾기 라는 어린이 만화가 있다. 표지부터 요코 가와시마를 도조 유코 + 조미지의 모습과 흡사한 사악한 모습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우선적으로 '''요코 이야기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똑바로 지적한 것 자체는 틀린 것은 없다.''' 하지만 읽어보면 어느 정도 '''민족주의적 애국심에 치우쳐서 서술하였고, 반일 감정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중립성이 다소 떨어진다. 그러니 혹시 읽는다면, 읽을 때 적당히 걸러가면서 볼 것을 권장한다. 안그래도 반크 자체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주의적 성향을 상당히 강하게 불어넣어온 면이 있는 곳이다. 때로는 음모론까지 포함해서.[11] 반크 관련 서적을 읽을 때는 진짜로 반크가 지적한 "사실"과 잘못 짚은 "사실이 아닌 부분"을 잘 구별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

5.2. < Flutter, Flutter, Butterfly >


2017년 미국 한인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을 모으고 재미 한국인 작가 은미희씨를 섭외하여 < Flutter, Flutter, Butterfly > 라는 소설을 출판했다. <요코 이야기> 를 반박하고 세계에 일본의 전쟁범죄를 알리자는 것이 취지였으며 < 나비, 날다 > 라는 이름으로 한국어판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번역 출간은 요원해 보인다.

[1] 맨발의 겐 항목에서도 나와 있는 것처럼, 그때 일본에서는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순수 일본인'''이라도 전쟁을 비판하거나 반대한 사람은 가까운 마을 사람들에게 '''비(非) 국민 취급'''을 받으며 온갖 린치나 다름없는 집단괴롭힘과 왕따, 기타 등등, 당시 사람 대우도 못 받으며 괴롭힘 당하던 한국인, 중국인, 미국인을 비롯한 연합국의 포로들처럼 갖은 탄압과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따지고 보면 일본뿐만 아니라 '''추축국'''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2] 거기다 이런 증언까지 있다. "1945년 7월이 지나고 8월이 되면서, 미군의 B 29 폭격기 편대가 하얀 연기를 길게 늘이며 함흥 감옥소 위로도 날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소리 없이 외쳐 보았다."[3] 만철은 당시 만주국에서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실현시키던 기업으로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생각해보면 된다.[4] 이런 표현에 대해서도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남의 땅에 먼저 쳐들어와서 제국주의 착취와 통치를 하던''' 이들에게 적의나 경계심을 가지게 되는 것을 '''편견'''이라고 간단히 일축하는 게 과연 온당하냐는 것이다. [5] 참고로 당시 일본 공산당 좌파를 비롯한 일본의 자유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 중에는 일본 제국주의에 끝까지 대항하다 일본제국 경찰의 손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현재에는 잊혀졌다. [6] 일본 쪽 위키 내용.[7] 이를 두고 소설가 최인훈은 "총독의 소리"에서 가상의 조선총독부 지하방송을 빌려 "식민통치의 성공을 증명하는 사례다"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8]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연석의 저서 <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에 참조할 만한 서술들이 나와 있다. 조선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귀국한 일본인, 일본인의 남은 재산을 탐내던 한국인, 당시 현재 북한 지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의 불안한 치안 상황과 흉흉한 강간 소문, 전후 일본에 귀국한 부녀자들을 상대로 시행된 산부인과 조사까지 천태만상이 기록되어 있다. 다만 이 책의 저자는 일제강점기 동안 조선인이 받은 피해가 훨씬 크고 본질적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못박고 있다.[9] 물론 이런 회고담들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매우 기분 나쁜 편견과, 패망했음에도 여전히 버리지 못한 오만한 우월의식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10] 영어 원제는 'Year of Impossible Goodbyes'. 90년대에 번역되었을 때는 <안녕할 수 없는 세월>이라는 제목으로도 들어왔다.[11] 이거랑 같은 백두산왜곡 독도왜곡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