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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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y, You Hee-Yeol'''
1. 개요
유희열이 노래를 만들고 객원보컬들이 노래를 부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맨 밴드.[1] 토이 등장 이후로 원맨 밴드들은 항상 '제2의 토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하게 되었다. 그 정도로 토이의 등장은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큰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겠다.
여담으로 그룹명은, Y로 시작하는 두 명의 뮤지션(유희열, 윤정오)을 의미한다. (Two Y에서 w가 탈락된 형태) 그래서 윤정오 탈퇴 후 이름을 바꾸려고 했는데 2집부터 바꾸자니 애매해서 놔둔 게 지금까지 왔다고 한다. 또 한가지 To.Y 즉, 유희열의 첫사랑이었던 'Y씨에게' 쓰는 편지와 가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돌았었다.
2. 특징
토이는 직접 노래를 부르는 일이 거의 없이 객원 보컬을 통해 노래를 만들고 있다. 이따금 유희열 본인이 노래에 참여하거나 아예 한 곡 전체를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앨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노래는 객원 보컬의 목소리를 사용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유희열이 토이라는 원맨 밴드의 이름으로 작곡한 노래를 객원 보컬을 통해 부르게 한다는 것이다.
토이의 앨범에 참여한 객원 보컬들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몇 명만 예로 들어봐도 동갑내기 오랜 친구인 조규찬, 신해철, 이승환, 윤종신, 성시경, 김장훈, 이적, 김연우, 김형중, 조원선, 윤상, 루시드폴, 윤하, 김동률, 김예림, 다이나믹 듀오, 빈지노, 권진아, 크러쉬 등, 실로 무서운 라인업이다. [2]
그뿐만 아니라 변재원 등 토이를 통해 데뷔한 보컬도 많으며, 심지어 '토이 보컬 맡으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으나 현재는..(…) 자세한 것은 아래 항목의 유희열(=토이)의 저주 참고.
정규 7개 앨범 이외에 더블 라이브 앨범도 나와 있고 베스트 앨범도 시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유희열의 허락 없이 음반사에서 무단으로 제작한 앨범이라 팬들은 대체로 까는 분위기. 그리고 5집의 경우 발매 후 약 2년 뒤 절판되었고 이후에도 재발매 계획은 없는 듯하다.[3] 2010년 현재 중고음반 시장에서 5집 Fermata CD의 가격은 3만~3만 5천 원까지 치솟은 상태며, 그나마 물량도 극히 적어 발품을 파는데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는 실정.
아무래도 프로젝트의 특성 상 단독 콘서트는 꿈꿀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토이 콘서트는 꽤 드문 편. 대체로 발매된 그 다음해에 콘서트를 개최하는 편이다.
한때 유희열이 직접 보컬을 맡는 방식으로 베스트 앨범을 내려 했으나, 사장, 엔지니어 등 모두가 결사 반대해서(...) 무산되었다고 한다.[4]
3. 역대 객원 보컬
4. 음반 목록
이외에 유희열이 FM 음악도시의 DJ였을 당시 DJ(음도 시장)와 청취자들의 애청곡을 모아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낸 'FM 음악도시 유희열입니다'(2000)가 있었지만 당연히 컴필레이션 앨범이니 유희열의 디스코그래피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당시 유희열과 음도 시민들의 취향을 잘 보여 주는 앨범이어서 나름의 소장가치는 있다. 트랙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01. 라디오 천국 - 유희열
02. One Last Cry - Brian McKnight
03. Carnival - The Cardigans
04. 습관 - 롤러코스터
05. 챠우챠우 -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델리스파이스
06. 거짓말 같은 시간 - Toy
07. Old and Wise - The Alan Parsons Project
08. 거리 풍경 - 고찬용
09. 서울 하늘 - 조규찬
10. When I First Kissed You - Extreme
11. 기다리다 - 패닉
12.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5] - 이소라
13.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6] - 더 클래식
14. 햇빛 비추는 날[7] - 김장훈
15. Long Goodbyes - Camel
16. Letter From Home - Pet Metheny Group
4.1.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 (1999)
1999년 7월 10일 발매된 유희열의 동명의 삽화집에 동봉되어 있던 음반. 지금 구하려면 엄청난 돈(…)이 들어갈 물건. 대부분의 곡이 연주곡이었으며 스스로 만든 라디오 시그널인 '라디오 천국'을 편곡해 수록하기도 했다. 음반이 아닌 도서인지라 음반사가 아닌 중앙 M&B에서 나왔다. 삽화집은 유희열의 친필과 그림으로 꾸며진 자전적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으며, 앨범의 트랙명의 유래가 되는 꼭지들도 각각 담겨 있다.
01. 형
02. 익숙한 그 집 앞
03. 피아노가 있던 방
04. '''라디오 천국'''(homage Pat Metheny)
05. 옆모습(vo.김연우, 조원선, 김태훈, 지누, 정동인, 변재원, 우형윤, 이중엽)[8]
06. 어렸을 때 그 자리
07. 무덤덤한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상처
08. 흔적
09. 떠나는 날의 흥분(homage Yoon Sang)
10. 즐거운 편지(vo.유희열, 변재원, 김연우, 지누)
5. 유희열(=토이)의 저주
토이 객원 보컬을 한 가수는 '''가수로서의 인지도가 거의 제로가 되고 음반의 텀이 엄청 길어지며 객원 보컬을 맡은 이후의 작품들이 모두 전만 못하다는 평을 받는다'''는 충격적인 진실(?)이 떠돌고 있다. 다음은 증거 목록(?). '''결론부터 말하면 순 억지에 가깝다.(...)'''
- 윤정오 - 토이 1집에 소개된 대로. 일단 엔지니어니까...
- 김정호 & 박상균 - 김정호는 토이 1집의 "In Your Face"를 부르고,1999년 이후로는 행적 확인불가. 아마 은퇴한 듯. 강변가요제 출신이었던 박상균은 토이 1집의 "내가 너의 곁에"를 불렀고,지금도 음악관련활동을 하고 있다.페북 페이지
- 김연우 - 토이 음반의 가장 많은 곡에 참여했다. 그 여파인지는 모르지만(…) 4집까지 냈지만 아는 사람이 꽤 없으며 텀도 엄청 길다.(1998년 1집, 2004년 2집, 2006년 3집, 2011년 4집) "토이"의 김연우는 알아도 "김연우"가 토이에서 보컬을 자주 맡았다는 걸 모를 사람이 있을 정도. 2011년에는 나는 가수다 출연과 샤이니의 온유와 함께 듀엣곡을 불러 인지도 급상승. 그후 각종 예능등에 출연하여 요즘은 꽤나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근에는 미스틱 89로 적을 옮긴 뒤로는 미니 앨범도 꾸준히 발표하는 중. 또 최근에는 복면가왕에도 출연해 양민학살을 시전하시고 가셨다. 본격 유희열이 탄생시킨 라디오 패널 전문 인생 1호. 단, 패널로 들어가면 오래 버틴다. 최소 반년에서 최대 3년까지. 참고로 '연우'라는 예명을 유희열이 지어주었다고 한다. 김연우 항목 참조.
- 이장우 - 공일오비의 객원 보컬이기도 했다. 토이 2집에서 보컬을 맡은 이후 앨범을 두장 더 냈지만 (그 전에 낸 한장까지 합쳐 총 세장) 1999년 3집을 발매하고 2001년 결혼하고선 한동안 소식이 뜸했다가 다시 2004년 손지창과 함께 그룹 피닉스로 앨범을 냈다. 그 외엔 딱히 커리어 없음. 2013년에 아들과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했다.
- 윤종신 - 1996년 토이 2집의 피쳐링으로 처음 참여. 우연인지 필연인지 1996년 연달아 낸 5 & 6집까지가 많이 기억되고 그 이후의 앨범들도 분명 명반이나 어째 수렁으로…. 팔리기는 팔렸지만. 한동안 OST나 헌정앨범에서만 활동하다 2003년 논스톱 4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예능인이 되었다. 이후 2005년 10집, 2009년 11집 등을 발매하다가 2010년 월마다 음악을 한 두곡씩 발표한다는 월간 Monthly 싱글 프로젝트를 출범시켰지만 90년대 음유시인의 이미지는 어디로 가고 웬 깐죽거리는 애 아버지가… 다만 정작 윤종신은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 하긴 성격 자체가 매우 쾌활한 사람이니...[9] 하지만 2017년 좋니를 발표하며 기어이 일을 내고야 만다.
- 조삼희 - 토이 2집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3집의 외로움를 불렀다. 이후 드림팩토리에서 기타 세션을 열심히 맡아 주며 간혹 음악여행 라라라나 이승환의 라이브 기타 세션으로 볼 수 있다.
- 조원선 - 모던 락 밴드 '롤러코스터'의 보컬. 토이 2집 Billy's Bar로 데뷔. 김연우만큼은 아니어도 그 훌륭한 보컬에 비해 인지도가…. 그래도 롤러코스터는 한국 대중음악사 사상 꽤나 특이하고 높은 퀄리티의 모던락 밴드로 자리매김을 했고 그 외에 2009년 개인 솔로앨범을 냈었다.
- 변재원 - 1997년 토이 3집에서 바램과 다시 시작하기 두 곡의 보컬을 맡았다. 원래 신해철이 발굴해서 솔로앨범을 준비중인 가수였고 라디오 출연을 계기로 가까워진 유희열에게 객원가수로 추천을 한 것. 너무나 깨끗하게 묻혀서 OTL. OST.나 디지털 싱글을 내는 정도. 뭔가를 계속 내기는 하는데 거 참.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출연 당시 변재원 본인 스스로 '가요계의 닌자'라며 자학하기도...
- 이재형 - 토이 3집 고백을 불렀다. 이후 위의 한 곡 부르고 퇴장한 가수들 처럼 행적 확인불가…였지만 한동안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 신해철 - 토이 3집에서 '마지막 로맨티스트'를 불렀는데, N.EX.T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와 다음 해인 1998년에 낸 솔로 3집 앨범 Crom's Techno works 히트를 쳤으나 1999년에 낸 솔로 앨범 Monocrom, 2000년에 낸 영화 세기말 O.S.T, 2001년에 비트겐슈타인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낸 A man's life가 모조리 침몰. 그래도 2004년에는 N.EX.T 5집, 2006년에는 N.EX.T 5.5집, 2007년에는 솔로 앨범이자 재즈 앨범을 냈으나 2008년에 N.EX.T 6집 파트 1 내놓고 곡 작업을 한동안 아예 놓아버렸다(...) 그나마 2014년 솔로 6집 "Reboot Myself Part 1"과 넥스트 7집 일부 선공개 등 다시 뮤지션으로 활동을 재개했으나...그 해 10월에 유명을 달리했다.
- 김형중 - 전 E.O.S 멤버였던 가수로, 이쪽은 저주에 씌였다고 하기 뭐 한게 유희열이랑 같은 과다. 앨범 늦게 내고, 라디오 패널이 아니면 잘 눈에도 안 띄고. 2013년까지 솔로 활동을 하다가 변재원, 김연우와 함께 '프로젝트 프랜즈'라는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 중.
- 하림 - 김연우 & 변재원과 함께 유희열의 저주를 직격타로 먹은 사람들 가운데 한명. 2001년 1집, 2004년 2집 이후로는 피쳐링이나 O.S.T. 참여로 근근히 보인다. 정말 근근히. 이후 윤종신, 조정치와 '신치림'이라는 그룹으로도 활동 중. 간혹 촛불집회 현장에서 얼굴을 봤다는 증언이 있긴 했다. 여담이지만, 본격 유희열이 탄생시킨 라디오 패널 전문 인생 2호. 이쪽도 들어가면 오래 버티긴 하는데 본인이 의외로 방랑벽이 있다. 한때 KBS에서 <조정치 하림의 2시>라는 프로를 진행했었고, 성시경의 음도 등에서도 조정치와 같이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결과적으로 둘다 혼자 빠졌다(...) 가장 최근인 현영의 뮤직파티 게스트 역을 그만 둘 때 댄 이유는 아프리카 자원봉사. 그래도 공연쪽은 잘 풀리는 중.
- 김장훈 - 토이 4집에서 윤종신과 함께 스케치북을 불렀다. 이쪽도 신해철처럼 유희열보다 기도 쎄고 훨씬 선배인데다 유희열을 가수로, 그리고 이 모양으로 만든 절대적인 사람이었기에 별 영향은 없었다! 유희열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1998년 3집에서 '사노라면'이 대박을 쳤고 2000년 솔로 6집의 난 남자다를 부를 즈음에는 초메이저 등극의 위업을 이뤘다 오오. 그러다 점점 공연형 가수 크리를 타더니 2006년 이후로 새앨범은 뚝. 그래도 이승환이나 신해철처럼 정열적으로 활동 중. 오히려 열정적인 기부 활동으로 인지도 및 호감이 급상승했다. 다만 본인에 의하면 기부 활동이나 독도 주권 알리미 활동 등에 의해 대중들이 자신을 가수 김장훈이 아닌 기부천사나 독도 지킴이 등의 이미지로 서서히 굳혀지는 것이 걱정인 듯.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가수로서의 입지는 좁아진 셈(...)이니 저주 적중일지도?
- 박인영 - 토이 5집에서 지누 & 유희열과 첫사랑을 불렀다. 이수영이나 이소은 같은 아티스트들의 앨범 수록곡에 참여하고 있으며 영화 O.S.T에도 꾸준히 참여 중. 토이 7집에도 편곡에 꾸준히 참여했다.
- 성시경 - 토이 5집에서 '소박했던, 행복했던'을 불렀다. 김연우, 변재원, 하림과는 달리 토이에서 보컬을 맡았는데도 불구하고 가수로서 꾸준하게 승승장구. . 하지만 2007년 토이 6집에서 "딸에게 보내는 노래"의 보컬을 맡은 이후 군입대 문제와 소속사 간에 의견충돌로 2008년 6월 발매한 6집 앨범이 활동할 겨를 없이 흐지부지 묻혀 나와서 결국 저주는 실현되었다. . 2010년에 전역한 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FM 음악도시의 4대 시장을 맡으며 뒤를 따라갔다. 2011년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준 정규 7집 '처음'은 상당히 성공했으며, 지금은 텔레비전 출연도 잦다. 2014년 토이 7집에서는 타이틀곡 세 사람의 보컬을 맡았다. 그리고 12월에 새 앨범이 나온다고 했으나...정작 정규 8집이 아닌 캐럴 리메이크 앨범 〈Winter Wonderland〉였다(...)
- 이규호 - 토이 6집에서 "나는 달"을 불렀다.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 수상. 이분은 원래 싱어송라이터인지라 커리어가 그리 돋보이는 건 없지만 확실한 커리어를 굳이 하나 적자면 윤종신의 팥빙수를 작곡했다. 여담이지만 정규 1집 이후 2집이 약 15년만에(...) 나온 가수이기도 하다.
- 이지형 - 홍대 남성 뮤지션 중에서도 최고급의 외모를 지녔고 천재라 불릴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해서 토이 6집의 타이틀 뜨거운 안녕을 불렀는데, 이후 작품활동이 '뜨거운 안녕'만한 곡이 없다는 평이 다수. 그전 밴드인 위퍼에서의 행적도 꽤나 화려했었고 2010년 2월 솔로앨범 발매.
- 루시드 폴 - 안테나 뮤직 소속 가수. 루시드 폴의 1집 새는 한국대중음악사 100대 명반 49위에 랭크될 정도였다! 하지만 토이 6집에서 투명인간의 보컬을 맡은 이후 낸 4집은 엄청나게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정말 폭풍처럼 까였다. 이후 5집과 6집을 발표하고 2014년말 결혼.
- 김민규 - 한국 인디씬의 레전드 중 하나인 록밴드 델리스파이스의 보컬. 이쪽은 자기들이 2006년에 6집 낸 후 알아서 봉인된(?) 경우. 2007년 토이 6집에서 안녕 스무살을 부른 이후 피쳐링이나 O.S.T.로 활동중이다.
- 윤하 - 현재까지 토이의 최근 객원가수. 6집 작업을 할 때 '유희열 직접 보기 전까지는 백발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가 나온 후 팬덤이나 찌질이 악플러들에게 집중포격을 받아 충격을 크게 먹은 전력이 있었고, 당연하게도(?) 객원 보컬 이후 낸 3집 파트 A는 실패했고 2011년에는 기존 소속사하고의 충돌도 있었으나, 다행히도 "오늘 헤어졌어요"를 타이틀로 내세운 파트 B는 성공했다. 이후 정규 4집이나 Subsonic 앨범, 나는 가수다 활동 등으로 본격적인 뮤지션, 싱어송라이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이제는 완전히 극복한 듯. 2011년부터 별이 빛나는 밤에의 22대 별밤지기로 취임하여 약 3년간 DJ로 있다가 새 앨범(아마 정규 5집으로 추정) 작업으로 2014년 11월 2일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고.
5.1. 저주의 예외(...)
물론 미묘하거나 예외의 경우도 있다.
- 김동률 - 그냥 갓동률, 저주가 일어날 수 없는 보컬리스트다. 2014년 토이 7집의 너의 바다에 머무네라는 곡을 맡았다. 이전 앨범들도 그러했듯 토이 참여 직전인 10월 1일에 낸 정규 6집 "동행"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꾸준히 미니/싱글 앨범으로 활동을 한 김동률은 2019년 오래된 노래를 주제로 평소 라이브로 듣기 힘들었던 레어한 곡들을 가지고 8회 장기 공연을 통해 2만 4천여 관객과 소통했다. 해당 콘서트는 2분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완벽주의 성향으로 시간과 품이 너무 많이 들어 더이상 라이브앨범을 내지 않겠다던 김동률은 2019 오래된 노래 콘서트 라이브 앨범을 출시했다. 예약판매를 했으나 주문 폭주로 인해 물량부족을 겪으며 재제작으로 3주 가량 배송이 지연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 조규찬 - 레전드 가수. 1~3집에서 보컬을 맡았다. 이후 저주와 상관없이 상당한 완성도의 앨범을 발매해왔다. 2010년에 9집이 발매. 2011년엔 나가수에도 출연했지만 8라운드, 단 두 곡만 보여주고 안타깝게 탈락. 18년 후반기부터 라디오 방송과 더불어 10집 준비중.
- 장필순 - 1집 참여 가수. 5집과 6집이 한국 100대 명반에 선정 되었고, (각각 15위, 62위) 2003년 발매한 6집
이후 2005년 제주도로 이사. 가수가 제주도로 간다는 것은 활동 중지나 마찬가지라 저주 적중일 수도 있지만, 5집과 6집이 토이 1집 참여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미묘하다. (유희열은 군입대전 1993년 발매된 장필순의 베스트 음반 녹음에도 참여한 바 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농장을 경영하다가 2013년 7집 을 내면서 음악계로 복귀하였다.
- 이승환 - 이철민이라는 가명으로 롤러코스터의 최진우(지누)와 함께 애주가를 불렀다. 1999년 이후 낸 6집부터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유치뽕부터 삐걱이기 시작하더니 2004년 낸 8집은 대망(...), 몽롱 앨범에 이르러서는 앨범으로 70만원 밖에 못 벌었다고 하소연 하는 신세로... 그래도 음원수입 좋고 2010년에 10집, 2014년 11집도 나왔다. 게다가 공연장에서의 이승환은 지금도 전성기이다.
- 이적 - 1999년 솔로 1집이 실패에 가까운 모험으로 끝난 이후 밴드 긱스를 조직해서 활동했고, 2000년 말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시작했다. 복무 와중에 2001년에 나온 토이 5집의 "모두 어디로 간 걸까"에서 보컬을 맡았기 때문에 저주고 뭐고 할 것도 별로 없었다(…) 소집해제 이후 낸 솔로 2집 "2적"과 그 4년 후 나온 3집 "나무로 만든 노래"가 연달아 대박을 치면서 꾸준한 아티스트로 복귀. 2010년 11월쯤에 4집 <사랑>을 냈고 2011년에는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로, 2013년 10월 5집 <고독의 의미>로 히트를 치는 등 저주와는 상관 없이 잘나가고 있다. 2014년 토이 7집에서 Reset이라는 곡을 맡았다.
- 윤상 - 토이 4집에서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와 6집에서 "그대, 모든 짐을 내게"의 보컬을 맡았다. 1년 뒤인 2000년 발표한 3집 이후로 점점 소식이 뜸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새 미국유학. 그리고 2009년 6집 발표로 재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6집 활동기간 끝나자마자 상명대학교 교수로 부임해 다시 잠적. 요새는 예능인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다만 2012년에는 월간 윤종신에도 참여했고, 2014년부터는 싱글이나 미니 앨범을 발표하면서 다시 활동을 개시했다.
- 이수현 - 토이 7집에서 "Goodbye Sun, Goodbye Moon"에 보컬로 참여하였다. 이후 YG엔터테인먼트보석함에서 나오자마자 2016년 사춘기 상앨범으로 호평을 받고, 2017년 사춘기 하앨범으로 음악적 감수성을 더해나갔으며, 마침내 2019년 항해앨범으로 음원강자임을 또 한번 입증했다.
[1] 엄격히 따지자면 원맨밴드는 아니다. 유희열이 연주하는건 피아노 하나이기 때문이다.[2] 2011년 7월 1일 음악도시에서 미묘한 심경 표현(...). 이는 2013년에도 성시경과 윤상이 다시 디스했다 카더라.[3] 1, 2, 3, 4집은 재발매되었다.[4] 그래도 2000년에 발매한 로딩 라이브에선 토이 2집에서 수록된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과 3집에 수록된 '선물 파트 2'를 불렀다. 또 2001년에 발매된 토이 라이브에서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의 초중반 부분을 '''유희열이 직접 부르기도 했다'''. 그 후부턴 이 곡을 부른 김연우가 불렀다.[5] 원곡 빛과 소금[6] 원곡 유재하[7] 유희열 작사 작곡, 토이 1집에도 수록[8] 현재까지의 유희열의 앨범중 최다 객원보컬을 쓴 곡[9] 사실 윤종신은 이미 1990년대 중후반에도 라디오 진행하면서 "깐죽거림"의 레전드였다(...) 근래에 TV에도 많이 출연하면서 다들 알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