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클럽 경력
1. 개요
이근호의 클럽 경력을 서술한 문서이다.
2. 인천 유나이티드
인천광역시 출신으로 부평고 황금세대의 마지막 멤버로 졸업하고 2004년에 창단 멤버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2군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2군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 2군 리그 MVP까지 차지하고 윤주일을 상대로 대구 FC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대구에서 포텐셜이 폭발했다.'''
3. 대구 FC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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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맞이한 그의 첫번째 전성기'''
대구 FC에서 활동하는 2시즌 동안 이근호는 46경기 19골 9도움을 기록했으며, 외국인 용병 공격수들과의 득점 경쟁에서 가장 돋보이는 한국인이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대구 FC의 엠블럼에 있는 태양 문양에서 따온 명칭인 '''태양의 아들'''이라 불리며 대표팀에도 승선해 맹활약을 펼친다. 이 시기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의 블랙번 로버스에서도 2번이나 이적 제의를 했으나 본인이 주전 출장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팀으로 이적하길 원해 이적이 불발됐다.
2007시즌 초반 변병주가 이끄는 총알축구의 선봉장이었으며, 대구 FC 유일의 국가대표선수였다.[1] 루이지뉴, , 이근호가 주축이 된 삼각편대를 중심으로, 후방에서 하대성과 에닝요가 찔러주고, 진경선이 백업을 해주는 역할로 대구는 공격력의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당시 리그에서 이근호가 기록한 스탯만 봐도 태양의 아들이란 별명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잘 알수 있는데, 2007년 득점 랭킹 10위 가운데 국내 선수는 단 두 사람 이근호(8위/20경기 8득점) 우성용(9위/26경기 8득점) 뿐이었다. 참고로 같은 해 득점 랭킹 안에 든 외국인 공격수들의 면면을 살피면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소리가 절로 나올 이름들 투성이다. 26경기 26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역대급 데뷔시즌을 보여준 득점왕 까보레를 필두로 K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중 한명인 데얀, 신으로 불리운 사나이 모따, 까보레와 함께 경남의 돌풍을 이끈 뽀뽀, 대전의 6강 플옵 진출을 이끈 데닐손과 슈바, 이해가 커리어 하이였던 스테보 등 K리그를 거쳐간 무수한 외국인 공격수들 가운데도 믿고 쓰는 정도가 아닌 역대급 소리를 들을 쟁쟁한 선수들이 휩쓸 때였다.
그리고 2008년 26경기 11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랭킹 5위에 오른다. 여담으로 한가지 재미있는 기록이 있는데 이해 득점 랭킹 10위 안에 대구 선수가 무려 세 사람이나 있었다. 이근호 그리고 에닝요(10위/19경기 8득점). 훗날 전북에서 닥공 축구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60-60 클럽에 가입한 그 선수 맞다. 울산으로 이적한 루이지뉴(7위/19경기 9득점)까지 합친다면 대구FC는 그야말로 공격수의 산실인 셈이었다.
갈락티코도 아닌 일개 시민구단에서 득점 랭킹 10위 안에 공격수 3명이 들어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결과인데, 당시 변병주 감독이 극단적인 공격축구를 표방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해 팀 득점 1위였지만 실점도 독보적인 1위라 리그 순위는 11위에 그쳤다(...).
하지만 국가대표 차출 이후 복귀했을 때 경기를 설렁설렁 뛴다라는 비판을 종종 받곤 했다.[2] 일부 팬들은 스타 의식에 빠진건 아닌지 걱정할 정도. 그래서 당시 악의를 품은 이들이 붙인 별명이 '''이그노어'''였다.
4. 주빌로 이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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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FC와의 계약이 끝난 이후에 이근호는 주전 출장을 할 수 있으며, 향후 유럽 3대 리그로 진출하기에 용이한 유럽의 리그로 이적하길 원했고 겨울 이적 시장이 열렸을 때 프랑스 리그 앙의 파리 생제르맹(PSG),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의 빌렘II, 덴마크 슈퍼리가의 오덴세 등 여러 팀[3] 에 입질을 했으나 진출에 실패한다.
그 후 이근호는 국가대표팀에 계속 남아있기 위한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에 입단한다. 입단 초기에는 브라질리언이 아닌 한국인을 영입한다며 주빌로 이와타에 대한 혐한들의 비아냥도 있었지만 8경기 출전에 6골 5도움이라는 호성적을 내면서 하위권에 머물던 주빌로 이와타를 단숨에 중위권까지 끌어 올리며 에이스가 되었다.
2009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리자 그 전 겨울 이적 시장에서 영입 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PSG에서 다시 입질이 들어왔다. PSG는 이근호의 에이전트 측에 선수를 영입하고 싶으니 주빌로 이와타와의 관계를 정리하면 좋겠다는 입단 의향서를 보냈고 에이전트와 이근호는 그 말대로 주빌로 이와타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하지만 2009년 7월 19일까지 PSG는 이근호에게 아무런 제의를 하지 않아 이적이 불발되었고[4] 다시 주빌로 이와타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
PSG에게 이근호가 두번이나 물을 먹자 여론은 '''"J리그보다 K리그가 좋다더만 결국은 J리그에서 뛰냐?"'''라며 이근호를 욕하는 부류와 '''"에이전트가 계약도 제대로 못한다."'''며 에이전트를 비난하는 부류, 그리고 '''"역시 프랑스 놈들이라 계약을 엿같이 한다."'''라며 PSG를 욕하는 부류로 나뉘고 있다.
2009년 초반까지만 해도 국대 No.1 공격수로서 이근호의 파트너를 정한다고 언론에서 설레발을 떨정도의 최고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적 이후 K리그보다 압박의 강도가 덜한 J리그에서 뛰고[5] 이적 파동으로 마음고생을 하면서 폼이 심각하게 하락했다.
2010년 5월 31일 발표된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에서 구자철, 신형민과 함께 탈락하였다. PSG 이적 불발 이후 2009년부터 이어진 심각한 슬럼프가 그 원인인 듯. 부동의 주전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월드컵 예선때를 생각해보면 그저 안습인 상황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6] 그리고 그 이근호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 왼발골절로 몇 달 동안 재활중인 선수를 데려왔다 그리고.......
5. 감바 오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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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J리그 감바 오사카로 이적했다. 하지만 첫 시즌 활약은 두드러지지 못했다.
2011년 3월, 거의 7개월만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온두라스전에 후반 교체 투입 되었다. 움직임은 활발했으나 좋은 찬스를 몇 번 놓쳐 해충갤에서 이그노어라는 별명을 들으며[7] 가루가 될 정도로 까였으나 후반 추가 시간이 끝날 무렵에 코너킥 찬스에서 헤딩골을 넣으면서 인간극장 취급을 받고 있다. 본인도 골을 넣고선 감격했는지 상당히 표정이...
그리고 2011 시즌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리그와 챔스에서 꾸준히 공격포인트를 올려주었다. 제주와의 챔스 경기에서는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국대에서도 세르비아, 가나와의 평가전에 연달아 출전하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광래식 만화축구 하에서 스코어러 역할은 물론 왕성한 활동량, 미들과의 연계한 상대 공격진 예봉차단 임무까지 몽땅 떠맡은 박주영을 빠른 스피드로 보좌하며 또 다른 공격옵션이 되었고 상대팀 공격진의 섣부른 전진을 막아내는 역할도 준수하게 이행했다.
다만, 2011년 8월 10일. 다른 경기도 아니고 '''한일전'''에서 최악의 경기력으로 한국의 패배에 단단히 일조하면서 그야말로 폭풍처럼 까였다. 물론 전술부터 선수 개개인 실력까지 한국이 전반적으로 일본에게 발린 경기이기는 한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였으니''' 문제다. 덕분에 당시 조광래와 함께 까임의 양대 축을 맡아버렸다.
2011시즌 J리그 득점왕에 가까이 가기도 했었으나 이루지는 못했고 커리어 하이인 리그 15골로 마감한다.
그리고 2012년 1월에 울산 현대로 3년계약 이적했다. 그 과정에서 울산 현대는 국내 소유권 보유하고 있는 대구 FC에 이적료 10억 지불과 이진호를 트레이드하게 되었다.
6. 울산 현대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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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씹어 먹었던 두번째 전성기'''
병역 문제로 인해 군 팀에서 뛸 자격을 얻기 위해 국내 무대로 복귀. 그 때문에 감바 오사카에게 5억원 가량의 위약금을 물어내야 했다.
국내 복귀 이후에는 그야말로 '''사기유닛의 재림'''. 머리까지 노랗다!! J리그 득점왕 근처까지 간게 플루크는 아니었다는 듯이 종횡무진하고 있다. 다만, 골 결정력은 여전히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몸상태가 절정에 올라간 시즌 후반엔 그런 것도 없어졌다.
국대에서는 이청용의 공백으로 인해 붙박이 주전으로 복귀. 활약도 점차 나아지더니 최강희호에서는 이동국과 함께 맹활약중.
2012 시즌 김신욱과 함께 빅 앤 스몰 조합의 정수를 보여주며 팀을 '''AFC 챔피언스 리그 무패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성적을 인정받아 '''2012년 AFC 올해의 선수상'''을 수여받았다. 이는 1991년 김주성 이후 21년만이며, 현행 체재로 개편된 2002년 이후로는 한국인 최초 수상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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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기존의 대표팀 주력이던 유럽파들이 부상과 부진을 이겨내지 못하는 힘든 상황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빠질 수 없는 에이스로 발돋움했다.
7. 상주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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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종료 후 입대를 선택, 13~14 시즌은 K리그 챌린지의 상주 상무에서 보내게 되었다.
2013년 K리그 챌린지에서 이근호의 활약상은 한마디로 '''2부 리그에서 혼자 메시 놀이 한다'''(...). 챌린지 원년인 2013년 득점왕과 MVP를 수상했다.
2014년 상주 상무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면서 이근호의 활약상은 주춤한다. 일단 클래식과 챌린지는 리그 수준이 다른 데다가, 상주가 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점인 입대와 전역에 따른 스쿼드 변경이 걸림돌이 되었다.
2013년 11월 김재성, 김형일, 백지훈 등이 전역했고 상주 돌풍의 주역 이상협과 최철순마저 2014년 4월 전역하면서 졸지에 절름발이 팀이 되어 버린 것. 물론 새로 들어온 선수들과 발을 맞추며 차츰 조직력을 끌어 올리면 해결 가능한 문제겠으나, 문제는 '''이근호는 9월 전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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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5일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그런데 올스타전 홍보용 티저 동영상에서 '''상주에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까지 트랙터를 몰고 상경한다'''는 개그 컨셉을 선보이며 빵 터진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냈다[8]
K리그 올스타 with 박지성 팀 티저 영상 / 영상=프로축구연맹
2018년 아시안게임 축구로 회자되는 원사 손흥민 짤의 원본이 바로 이 시절의 이근호가 국대로 뽑혔을때 나온 사진이다. #
8. 엘 자이시 SC
2014년 9월 5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 소속의 엘 자이시 이적이 확정되었다. 9월 16일 상주 상무에서 제대한 뒤 9월 18일부터 엘 자이시에 합류할 예정이다. 엘 자이시는 아랍어로 군대, 육군을 의미한다.
그리고 2015년 폼이 확 죽어버렸다. 믿음직한 원톱자원이 이렇게 나가떨어지나..
그런 가운데 7월 24일, 전북 현대에서 이근호를 임대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링크
8.1. 전북 현대 모터스
2015년 7월 24일 전북 현대 모터스로 6개월간 임대 이적했다. 이동국의 골을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적 초기만 해도 폼이 전혀 돌아오지 않은 듯, 매우 좋지 못 한 경기력을 보이며 욕을 잔뜩 먹었으나 나중에는 적응이 되었는지, 완전히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동국이 더 이상 나이를 숨길 수 없고, 실질적 포지션 경쟁자인 한교원은 이근호에게 밀려 풀백 기용까지 고려하고 있으니 사실상 윙어 자리를 레오나르도와 함께 자리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문제는 완전 이적 가능성인데 현재로서는 주급이 높아서 어렵다고 보인다.
2015년 기록은 15경기 4득점 1도움.
전북에서의 임대 종료 이후 원 소속팀인 엘 자이시로 복귀했으며 얼마 후 소속팀과의 계약 해지로 FA가 되었다. 관련 기사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나 울산 현대 두 곳중 한군데로 복귀를 타진했지만 엘 자이시로부터 계약 해지서를 18일이나 지나서야 받게 되어 절차가 늦어졌고 이 때문에 K리그 복귀가 '''사실상 무산되었던 상황이었는데.....'''
9. 제주 유나이티드
'''짧았던 제주 시절'''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사 2016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다 다음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던 히카르도 로페즈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영입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리그 개막하고 입단한 몸이라 다른 선수들과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빠른 스피드와 돌파력으로 제주에서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11월에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9]
10. 강원 FC
12월 9일 갑작스럽게 승격팀 강원 FC로의 이적을 확정지었다는 기사가 떴다![10]
왜 아챔 나가는 구단을 떠나 다이렉트 강등될지도 모르는 도민구단으로 가나 했더니 강원이 잔류를 위해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다고 한다. 상세한 액수는 밝히지 않았지만 3년 20억 이상이라고 한다. 본인에 의하면 선수 생활 마지막을 강원 FC에서 보낼 것이라는 듯.
드디어 개막한 K리그 클래식 첫 경기에서 상주 상무를 상대로 2골을 집어넣었다. 완벽한 윙어의 모습을 보여줬고, 헤딩으로도 득점을 만들어냈다. 또한 정조국 - 이근호나 문창진 - 이근호 이 연계가 나오면서 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이후 강원 FC 최고의 윙어로서 맹활약했고, 상주 상무 경기 이후 FC 서울전에서 1골을 넣으면서 현재까지 3골 2도움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7년 5월 22일, 슈틸리케호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아시아)/최종예선/A조에 이근호를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이근호가 강원 FC 역사상 최초의 국가대표 선발 선수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남겼다.'''[11] 슈틸리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은 '지난 주말 (강원의) FC서울 원정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이근호가 예전의 날카로움을 되찾았다. 이번 명단을 구성할 때 과거 우리와 함께한 경험까지 모든 것을 고려했다.'고 발탁 배경을 밝혔다.
수원전 2골으로 1:3에서 3:3으로 따라잡은 극적인 무승부를 도왔다.
대구전에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결승골 장면에서 스프린트 다음 결정적 패스는 백미.
스플릿 이전 '''정규 33라운드 전 경기 출전 3036분'''이라는 엄청난 출전 시간을 기록했다!!![12] 시즌 최종 성적은 37경기 8골 9도움. 한편 시즌이 끝난 뒤 이근호의 도움으로 ACL 우승을 쟁취했던 울산 현대에서 이근호의 재영입을 추진했으나, 강원 측에서 '''2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제시하면서 결국 영입을 철회했다.
2018시즌에도 첫 경기 인천과의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어시 하나를 추가했고 연이은 서울전에서도 이웅희의 자책골을 유도하면서 맹활약했다.
3라운드에서는 엄청난 드리블을 앞세워 상주를 괴롭혔고 어시 하나 적립하며 활약했다.
5월 19일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아웃됐다. 리그는 휴식기라 당장은 영항 없지만 대신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시즌 전반기에서 생각보다는 활약이 저조했다. 이번시즌 아직까지 골 없이 4도움 만을 기록중
5월 28일 이근호가 울산 현대로 이적한다는 단독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팀 간 협상에서 난항을 겪고 있어 이근호의 행선지가 어디일지는 기다려봐야 알 듯 하다.
11. 울산 현대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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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0일, 울산과 '2.5+1년' 계약을 맺었다. 이근호가 35세가 되는 2020년 말까지 울산에서 뛴 후, 1년 계약 연장을 검토한다는 옵션이다. [13] 선수 소개 멘트는 '''울산의 영광재현, 내가 이끈다'''
강원 FC전에서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헤딩 동점골을, 2:2로 맞선 상황에서 역전골을 집어 넣으며 친정 팀에 비수를 꽂았다. 팀은 3:3 무승부.
하지만 2019 시즌 들어서는 무릎 부상으로 시즌 초반을 날려 먹었고, 9라운드 경남 FC전에서 교체 명단에 포함되어 경기 종료 직전 주니오와 교체 투입되면서 시즌 최초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13라운드 성남 FC전에서 주니오의 프리킥이 수비벽 맞고 흐른 것을 그대로 밀어 넣으면서 이 경기의 결승골이자 시즌 마수걸이 골을 성공시켰다.
16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동해안 더비 경기에서 '이근호 DAY'를 진행해 사비로 준비한 1억원 상당의 경품을 문수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선물했다. [14]
ACL 16강 1차전 우라와 레즈 원정에서 주민규의 헤딩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울산은 홈에서 굴욕적인 0-3 패배를 당하며(...) 탈락했고, 전북까지 상하이 상강과의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며 2019 시즌 ACL에서 K리그는 전멸했다.[15]
28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 측면에서 날아온 빨랫줄 같은 크로스를 좋은 헤딩골로 마무리하며 다시 앞서가는 득점을 성공시켰다.
2020년 7월 25일 상주 상무와의 경기에서 후반 86분 이동경에게 준 패스가 골로 연결되어 1어시를 적립, K리그 통산 '''50-50 클럽에 가입하였다.'''
24라운드 상주 상무 전에서 후반 72분 교체투입되었다. 투입된 지 7분만에 날카로운 크로스로 비욘존슨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했다.
27라운드 광주전에서 좋은 호흡으로 이동경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ACL에서는 주로 교체로 출전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2012 울산의 ACL 무패 우승때 MVP였던 그는 2020년 울산에서 다시 ACL 무패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울산이 베터량 선수들을 정리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근호도 포함되어있다. 2021년 1월 18일 친정팀 대구 FC하고 임대협상중이라고 단독보도가 나왔다.
11.1. 대구 FC 2기
2021년 1월 19일에 1년 임대를 통해 07~08시즌 대구의 전성기를 이끈 '''태양의 아들'''의 대구 복귀가 확정되었다. 등번호는 대구 입단시에 달았던 22번이다.
개막전에서 교체 출전하며 대구 복귀전을 치렀다.
[1] 물론 당시 선수들 기준이다. 오장은, 홍순학, 진순진 등의 선수들이 국가대표 경력이 있었다.[2]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로 선출되어 박주영과 함께 팀의 공격을 책임졌으나 단점인 골 결정력 부족을 극복못해 부진한게 컸다. 승점자판기로 예상된 약체 온두라스와 3전 전승이 예상되는 강호 이탈리아, 다크호스 카메룬과 한조가 된 대표팀이 8강에 진출하기 위해선 온두라스는 무조건 이긴다고 보고 카메룬을 잡는게 필수였다. 그러나 이근호가 여러번의 좋은 기회를 모두 날려 버리면서 무승부를 기록한다. 이후 2차전 이탈리아전에서 세바스티안 지오빙코와 토마소 로키를 앞세운 이탈리아에 0-3으로 참패하여 경우의 수를 따지게 되었고 3차전 온드라스 전에서 1-0 승리에 그치며 8강 진출에 실패한다. 지금도 대표팀이 졸전할때면 나오는 축구장에 물채워라 드립이 처음나온게 이 때였다.[3] FA로 풀린 이후 빌렘 II와 계약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파리 생제르맹이 이근호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이근호 측에서 게약을 무산시켰고, 그 후 파리 생제르맹과 게약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비유럽인 등록 기간 문제로 이 역시 무산된다. 당시 파리 생제르맹 측에서 다음 이적시장이 열릴 때 까지 6개월간 뛸 팀을 추천해준다며 알려준 팀이 덴마크의 오덴세였으나 정작 오덴세 측에서는 6개월 계약은 맺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다고.[4] 폴 르구엔 감독이 경질되면서 이근호는 더 이상 팀의 우선 타겟이 아니게 되었고, 만일 이적한다 하더라도 PSG는 이미 공격수 보강을 마친 상황이여서 주전 출장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5] 압박의 강도가 덜하니 골 넣기는 K리그보다 수월하지만 장기적으로 선수의 성장에는 좋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게 중론. 베어백 재임 시절 국대 원톱 이었던 조재진은 K리그 시절 골 결정력은 떨어졌지만 왕성한 활동량과 몸싸움으로 동료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주던 선수였는데 J리그 진출 이후 장점이던 왕성한 활동력을 잃어 버렸다.[6] 물론 강민수는 곽태휘의 부상으로 인하여 대체선수로 뽑힌 것이긴 하지만...[7] 다만 이 이그노어란 별명은 처음부터 비아냥대는 뜻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2007년 아시안컵 당시 주전 공격수들의 절망적인 경기력에도 벤치의 이근호를 베어백 당시 감독이 끝까지 ignore한다는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8] 실제로 트랙터는 서울에 있는 트랙터 업체 본사에서 옮겨다 놓았다. 이근호는 올스타전 후반에서 말년 병장다운 구라빨을 세우며 상주에서 서울까지 자신이 몰고 왔다고 허풍을 쳤다. 시청자 속여먹을 속셈인지 시속이 40km도 안 되더라는 구체적인 드립까지...[9] 여담으로 이근호 선수는 백종원의 3대 천왕 짝꿍 특집편에 이휘재의 짝꿍으로 출연했는데 이휘재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고 밝혔다.[10] 이로써 17시즌 기준 K리그 12개 팀 중 절반이 넘는 7개 팀에서 뛰어본 선수가 되었다. 지금까진 모은 유니폼은 10개로 그 풍운아 이천수와 동일한 숫자다. 17시즌 만 32세로 선수생활 몇년 더 할수 있어서 추가할 가능성도 높다.[11] 런던올림픽 대표까지 포함하면 당시 강원 소속이던 오재석이 있다.[12] 놀랍게도 1위가 아닌 2위다. 경고누적과 지친 체력으로 인해 2위이다.1위는 광주 FC의 송승민.[13] 사실 지난 시즌에도 울산 이적 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된 바가 있다고 한다.[14] 여담으로 유튜브 K리그 콘텐츠 채널인 아싸풋볼의 바로 앞 번호가 차량 경품에 당첨됐다고 한다.[15] 우라와의 2차전에 이근호는 결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