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사회/남북문제
1. 설명
1. 설명
이탈리아는 유럽권 국가 중 지역감정이 가장 심각한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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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들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남북간 소득격차는 반 세기 동안 분단되었던 동독과 서독 간 격차보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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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탈리아의 행정구역별 가처분소득을 살펴보면, 북부는프랑스,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지만(최근엔 계속되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북부조차 독일, 영국, 프랑스 평균보다 낮은 편), 남부는 그리스, 포르투갈, 헝가리와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의 소득격차가 워낙 심해서 양측의 대립이 상당해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이탈리아 남부의 1인당 GDP는 PPP 기준으로 2만 달러에 불과해 한국의 2/3 정도에 불과하다. 헝가리와 흡사한 정도. 반면 북부, 특히 롬바르디아 지역은 유럽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부유한 지역에 속한다. 이탈리아의 20개 주 중 가장 부유한 롬바르디아와 가장 가난(?)한 시칠리아의 1인당 소득 격차는 2.1대 1이다. 2014 년 기준, 미국의 50개 주 중 1인당 GDP 66,160달러로 가장 부유한 주(알래스카)와, 31,551달러에 불과(...)해 가장 가난(?)한 주(미시시피)의 소득 격차와 비슷한 수준이라고는 하나, 이탈리아는 국가 규모와 주의 수에서 미국보다 많이 작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지역 간 소득 격차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1] 이탈리아의 경제 수준이 한국과 비슷한 이유가 이런 것인데 북부 지방은 바이에른,[2] 오스트리아와 동급으로 잘 사는 반면 남부 지방은 굉장히 허접한 경제력으로 악명높아 두 지역이 같은 나라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 소득격차가 지역과 관계가 있다기보다는 보통 도시 지역이 높고 농촌 지역이 낮거나, 혹은 자원이 나는 지역이 높은 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탈리아는 그냥 도시고 시골이고 상관없이 북부 지역이 높고 남부 지역이 낮다. 가령 남부의 대도시 지역인 나폴리나 팔레르모 지방의 지역 총생산은 북부 지방에서 가장 1인당 지역총생산이 낮은 지역인 임페리아(Imperia)나 베르바노쿠시오오솔라(Verbano-Cusio-Ossola)보다도 낮다.
소득격차 이전에 현재의 이탈리아 영역으로의 통일이 역사적으로 최근(1861년)에 일어난 일이고 그 이전엔 서로 간의 동질감이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남남이었다.[3][4] 그래서인지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와 같이 옛날에 잘 나가는 공화국이 있었던 도시에는 공화국의 부활을 꿈꾸며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소수 정당이 있다. 이런 점은 이탈리아에서도 어느 정도의 자치를 인정해준 사르데냐와 베네토 그리고 쥐트티롤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난다.
언어 또한 다르다. 이탈리아 북부의 언어는 프랑스 남부와 오히려 유사하며,[5] 남부의 언어는 북부보단 차라리 루마니아어와 가깝다.[6] 쥐트티롤 같은 아예 독일어가 우세한 지역도 있다.
통일은 이탈리아 반도 북부와 사르데냐 섬을 다스리게 된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이는 남부 사람에겐 "하나된 이탈리아"라는 대주제보다 '지배자가 바뀌었을 뿐'으로 비춰졌다.[7] 실제로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이탈리아 중남부의 역사는 끝없는 외세의 강점이었다. 근대 이전서부터 북부와 남부는 경제력에서 많은 차이를 보였는데, 북부는 중세시절부터 도시산업의 발달과 부르주아의 성장, 시민 사회의 형성이라는 서유럽의 전형적인 코스를 밟은 반면에 남부는 오랫동안 농경사회에 정체되어 있었고 봉건적인 체제 아래에 있었다. 게다가 북부에는 초기 산업혁명 시대의 동력원인 수자원도 풍부했다. 산업혁명하면 떠오르는 것은 물론 증기력이지만 수력은 2차 산업혁명 때에도 여전히 중요했다. 포강은 물이 풍부하다 못해 논농사 하는 동네고, 그 결과 북부는 19세기 초중반에 이미 실크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면직-실크가 수력에서 증기력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시기가 1790년경이고, 그 이후에도 수력이 여전히 중요했으므로 인프라에서 우월하다. 피에몬테나 북부 지역도 초기 산업혁명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철도 연장률이 남부에 비하면 넘사벽이었다. 또 인구가 많았기 때문에 남부에 비해 시장규모도 컸으며 북부는 풍요로운 서유럽 시장에의 접근성이 높지만, 남부는 주변 경제권 버프도 없다. 한 마디로 모든 산업 발전 조건이 북부에 유리했다.[8]
또한 북부는 포 강을 낀 비옥한 평지를 끼고 있어 인구 부양에 필요한 곡물 생산력이 높았지만[9] 남부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토양도 척박해서 곡물 재배에 불리했고[10] 화산까지 끼고 있으며 북아프리카발 사막화까지 진행되는 중이다. 이러니 인구를 부양할 농업혁명의 성과도 당연히 북부의 압승. 이런 이유에다 기본적인 공업화의 차이까지 나니 북이탈리아의 유명 지역들은 2005년 포브스의 조사에서 유럽 연합의 159개 지역 중 '''빈, 런던, 함부르크, 일드프랑스, 바이에른, 스톡홀름'''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도시들과 함께 가장 부유한 10개 지역 안에 들었고 2009년의 조사에서도 '''런던''', '''브뤼셀''', '''프라하''', '''룩셈부르크''', '''일드프랑스''' 등과 함께 30위 안에 들었지만 남부는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그리스의 빈곤한 지역들과 비교당하면서 가장 가난한 10개 지역 안에 드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게다가 남부의 실업률은 북부의 7배가 넘어 온갖 범죄와 마피아들이 남부에 창궐하고 있다. 이는 체제가 달랐던 과거 동독과 서독 간의 경제적 격차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다.
또, 통일 이전 북부의 경우 프랑스와 비슷한 소작권 보호 및 소출물 분익 관습(지주 : 소작농 1:1)이 존재했던 반면(Mezzadria)[11] , 남부는 봉건제도 해체의 미비로 인해 대토지 부재지주 계급이 존재했고 소작권 보호 없이 소작농들이 마름을 통해 매년 계약해야 하는 Latifondo 시스템으로 굴러갔다는 농업 문화의 차이도 남북격차를 악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12] 제2차 세계대전이후 남부와 대토지 부재지주 위주로 돌아가는 북부 일부 지역에 토지개혁을 진행하였지만 행정 비효율과 부패, 지주 계층에 대한 정치적 고려, 분배한 박토지역의 개간 미비 등으로 인하여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남부 농민 상당수가 빈농으로 전락했다. 이후 경제성장과 동시에 남부 빈농들이 대거 북부로 이주해 하부 노동자계층을 형성했고 남부의 인구 유출로 인해 남북격차 문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페르디난도 2세 시기에 양시칠리아 왕국이 나폴리를 중심으로 국가 주도로 육성해놓은 남부의 공업 시설들이 사르데냐 왕국의 저관세 조치의 적용으로 경쟁력을 잃어 급속도로 붕괴하였고 이후 프란체스코 크리스피 내각 이후로 보호무역이 대두되며 대유럽 수출로 먹고살던 남부의 상품작물 자영농이 타격을 입는 등 통일 정부의 정책이 남부에 불리하게 돌아가며 격차가 더더욱 벌어진 면도 존재한다. [13] 이 외에도 통일 자금 확보를 위한 곡물세 등의 고세율 농업세 등 남부에 타격을 준 정책은 (통일 정부가 남부 몰락을 의도했다는 증거는 딱히 없지만) 더더욱 많아 북부의 남부 착취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기후 차이 때문에 요리 문화도 꽤나 다르다. 북부는 쌀과 옥수수농사가 가능해서 리소토와 폴렌타를 주식으로 먹고 파스타도 생파스타 종류가 많으며 버터도 아낌없이 쓴다.[14] 반면 남부는 우리가 흔히 '이탈리아 요리'하면 생각하는 건조 파스타와 포모도로, 올리브유 위주로 먹는다. 당연하지만 음식 문화를 갖고도 서로 편견을 갖는 사례가 굉장히 잦다.
위와 관련된 지역드립도 유서 깊다. 북부 사람들은 남부를 농사밖에 못짓는 촌놈이라며 '''테로니(terroni)'''란 욕설로 경멸하고, 반대로 남부 사람들은 북부에서는 왜 옥수수죽이나 쳐먹느냐며 '''폴렌토니(polentoni)'''란 욕으로 응수한다.
이탈리아 정부도 남부를 지원하기 위해 수많은 경제 정책을 세웠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고, 북부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그에 따라 "차라리 갈라서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바로 현 집권당인 북부동맹이다. 이들은 '파다니아(Padania)'란 국명으로 북부의 완전 독립과 연방제를 주장했고, 세금은 많이 내면서 효과는 없는 현상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지금은 집권하기 직전에 북부 독립을 포기했지만, 이탈리아의 남북문제가 얼마나 골이 들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이발사의 90%는 남이탈리아 출신이라(…)[15] 이라 남북 이탈리아가 쪼개지면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머리도 못 깎는다는 우스개가 있기는 하나, 사실 북부 독립주의자들의 속내는 남부와 북부가 분할되더라도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남부 출신의 인력은 외국인 노동자의 형태로 계속 활용할 수 있으니 상관없다는 것에 가깝다. EU 내에서는 인력이나 상품의 이동이 자유로우니까... 오히려 사회보장을 해줄 필요가 없어지니 더 싸게 부려먹을 수 있고, 남부의 사회보장이나 기간시설 정비에 북부의 세금이 사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북아프리카 출신 밀입국자나 사막화 문제 역시 남부에 떠맡기겠다는 속셈이다. 이런 북부 독립주의에 대하여 움베르토 에코는 '보통 부자들이 가난뱅이를 뜯어먹지, 가난뱅이가 부자를 뜯어먹으면 왜 가난뱅이로 남아있겠냐?'고 비꼰 바 있다. 이탈리아의 이런 배경을 주제로 한 만화가 있는데 바로 건슬링거 걸이다.[16]
덤으로 베네치아가 속한 베네토 지역은 최근의 경제난 때문에 독립의 목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있으며 쥐트티롤 지방도 꾸준히 분리주의 운동이 나타나는 곳이다. 쥐트티롤은 1차 세계대전까지, 즉 20세기만 하더라도 쥐트티롤은 원래 오스트리아 땅이고 아직도 독일어 화자가 우세한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지역이였던 베네치아 등과는 상황이 또 다르다(...).
이렇게 남부지방이 불안정하다보니 범죄의 소굴로 악명 높고, 특히 시칠리아 섬은 도망칠 곳조차 없다. 그리고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는 적대국인 2개의 국가를 하나로 억지로 합쳐놓은 것과 똑같아서 여기저기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남부 마피아들이 1차적으로 노리는 표적이 바로 이탈리아 북부의 부유층이다.
유전적으로도 북부인과 남부인의 차이가 상이한 편인데, 북부 지방은 남성 평균 신장이 177cm 정도로 게르만계인 잉글랜드와 비슷하고 피부가 흰 편인데, 남부 지방은 남성 평균 신장이 173cm 정도로 황인종인 한국 및 중국 북부와 비슷하고 피부가 중동인, 인도인과 비슷할정도로 까만 편이다.[17] 이는 먼나라 이웃나라에도 묘사되었다시피 역사적인 이유가 강하다. 북부로는 롬바르드족을 필두로 게르만계 혈통이 유입된 반면, 남부로는 아랍계 혈통이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 의원 수 감축 국민투표에서도 남부가 득표율이 높았고, 북부는 10% 이내에 낮았다.
2.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그렇지만 2020년 코로나 19가 이탈리아 북부를 초토화시키면서 바이러스가 상대적으로 덜 퍼진 남부에서는 북부를 바이러스 온상지라며 조롱하고, 북부지역에서는 봉쇄조치를 내리자면서 북부에서 남부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남부에서도 봉쇄조치가 시행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코로나 전파속도가 완화되자 북부에서 봉쇄조치를 해체해야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반면에 남부에서는 북부지역 사람들이 남부로 몰려들 것이라며 탐탁치 않은 분위기이다.
롬바르디아주 부지사가 지역별 경제 기여도에 따라 코로나19 백신을 배분하자는 발언을 하여 다시 남부에서 분노만 샀다.#
[1] 사실 미국의 불평등의 특징이,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격차는 비교적 크나,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의 격차는 비교적 적은 것이다. 미국의 3,144개 군 가운데 가장 부유한 곳과 가장 가난한 곳의 차이도 22배에 '불과'하다.[2] 독일에서도 부유한 지방[3]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이탈리아 북부나 사르데냐 섬은 이탈리아 남부보다는 스페인이나 남부 프랑스와의 연관이 훨씬 크다. 사르데냐 섬도 이전까지는 그냥 따로 놀던 왕국이었다.[4] 유럽의 나라들은 정도의 차이만 좀 있을 뿐 모두 이와 유사한 현상을 겪고 있다. 고려시대 이후 단일화된 나라를 유지해오며 고도로 관료화된 중앙집권국가가 일찌감치 안정된 형태로 자리잡았었던 한반도와 달리 유럽에서 영토가 좀 넓다 싶은 나라들이 지금의 판도로 합쳐진 것은 폴란드를 제외하고는 길어봐야 2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특히 지방자치와 연방제의 발달, 분리주의, 지역연고제 스포츠(축구 등)의 높은 인기 등을 이로 인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5] 사실 프랑스도 북부와 남부에서 언어가 매우 상이하다.[6] 그 유명한 푸니쿨리 푸니쿨라가 바로 남부 방언(나폴리어)로 씌여진 노래다. 가사를 보면 표준 이탈리아어와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7] 그래서 남부에선 통일 이탈리아 정부에 반항하는 '브리간타조'가 발생했고 이탈리아 정부군과 남이탈리아의 게릴라들의 전투는 통일 후에도 몇 년간 이어진다.[8] 현재 페라리, 스메그, 구찌, 페레로, 베레타, 피아트처럼 세계구급으로 잘나가는 이탈리아 기업들은 대부분 본사를 북부에 두고 있으며. 남부에 본사가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이 영세한 수준에 듣보잡, 쩌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한국에 알려질 정도로 성장한 이탈리아 남부 기업은 '''나뚜찌'''라는 소파 만드는 회사 정도.[9] 유명한 롬바르디아 평원이 위치해 있는 곳이 바로 북부이고, 산이라고 해봤자 알프스 산맥 정도다.[10] 남부의 토양도 채소나 과일 재배에는 괜찮았다. 캄파냐 주의 별명이 'Campania Felix'였을 정도.[11] 주로 봉건제가 유명무실화된 근세 이후 북동부 및 중부를 중심으로 이런 관습이 존재했으며 포 강 유역 및 해안가 습지 등의 대토지 위주 지역 또한 일정부분 존재했다.[12] 북부의 경우 중세 이후 서유럽의 발전을 어느정도 따라가며 나폴레옹 전쟁 즈음에 시행된 봉건제 폐지령으로 완전히 근대적 구조가 불평등할지언정 정착했으나 남부 왕국의 경우 조제프 보나파르트의 개혁 전까지 봉건제가 유지되었고 봉건제 폐지 또한 타협적으로 진행되어 근대적 토지소유의 확립이 토지 분배 없는 공유지 폐지와 느슨하게 관리되던 교회토지의 감소라는 농민들에게 최악인 형태로 진행되며 대토지 지주 위주의 억압적 사회구조가 정착하였다.[13] 보호무역 이후 북부 공업지대는 정책에 힘입어 유럽 유수의 공업지대로 성장한다.[14] 북이탈리아 요리는 프랑스 요리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15] 참고로 이 말의 출처는 제노포보스 가이드 이탈리아편이다.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나온 바가 있으나 현재는 절판되어 구해볼 수 없다.[16] 실제의 북부 독립운동은 해당 만화처럼 과격하지도 않고, 클로체 사건의 경우 실제 있었던 일이 모티브이긴 하지만 위에 마피아 항목에서 언급한 대로 본래는 마피아가 벌였던 일이다.[17] 이탈리아계 미국인이긴 하나 아리아나 그란데의 외모가 전형적인 남부 이탈리아인의 모습이다. 실제로도 그란데의 부모는 각각 로마 이남 지방인 아브루초와 시칠리아 출신이다. 반대로 흰 피부에 큰 키를 가진 북부 이탈리아인의 모습으로는 밀라노 출신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나 베네치아 근교 출신인 알베르토 몬디가 대표적이다.